[충무공 탄생 476주년 영웅 이순신 탐구] 난중일기 속 ‘인간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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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그리워하는 아들이자
가족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 이순신 장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 명장이었다. 그는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운해(雲海)가 지나가는 모습. /조선일보 DB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년 4월 28일생)이 태어난 지 476주년이 되는 날이에요. 이순신 장군은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위인으로 꼽히지요.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어떤 분이었을까요? 그는 한 나라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한집안의 아들이자 가장(家長)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 알아봐요.
어머니에 대한 걱정·그리움, 난중일기에 100여 회 기록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45~1598) 때 전장(戰場)에서 쓴 친필 일기입니다. 그 속엔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을 담은 글이 100번 넘게 등장하죠. "오늘은 어머님의 생신이나 적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가서 축수(祝壽)의 잔을 올리지 못하니 평생의 한이다." 어머니의 생일이지만 전쟁을 치르느라 찾아뵙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는 대목이에요. 이순신은 전장에서도 항상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했어요. 난중일기에는 "어머니가 안녕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다행이다"란 문장이 80여 회 기록돼 있죠.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저술한 최초의 이순신 전기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에선 이순신의 '아버지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1583년 10월, 이순신은 함경도 건원보 권관(종9품 무관)으로 여진족의 우두머리인 울지내(鬱只乃)를 격퇴했어요. 그 공로로 훈련원 참군(정7품 무관)으로 승진하지요. 그러나 11월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함경도에서 한달음에 지금의 충남 아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삼년상(喪)을 치렀지요. 당시의 관습으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순신 개인에게는 출세 기회를 잃는 불운이었어요. 불과 1년 전인 1582년 모함으로 파직됐다가 복직해 공을 세우고 새 출발을 하려는 즈음이었거든요. 이순신은 군인으로서 변방을 전전했기에 아버지를 제대로 모실 수 없었던 불효를 자책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산으로 내려갔어요.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순신의 마음은 난중일기에도 나옵니다.
"아버님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러 나가지 않았다. 혼자 앉아서 그리워하는 생각에 품은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했다." "삼경에 꿈을 꾸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분부하기를… 그리움에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다."
"아직 12척이 남아 있사옵니다" …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의 아내 사랑은 어땠을까요? 조선시대 남자들의 일기엔 좀처럼 아내가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난중일기에는 아내 얘기가 자주 나오죠. "앉았다 누웠다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촛불을 켜 놓고 뒤척거렸다. 조용히 앉아서 아내의 병세를 점쳤더니 오늘 안으로 좋은 소식을 들을 징조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대단했어요. 특히 막내아들 이면이 전사(戰死)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자식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너무나 컸지요.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치에 어긋남은 어째서인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이순신 장군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한 명장(名將)이었어요. 임금에게 "지금 신에게 아직 12척이 있사옵니다. 제가 죽지 않았으므로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리고 명량해전에서 왜선 300여 척과 맞붙어 승리했답니다.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는 "싸움이 급하다. 부디 내 죽음을 말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전사했어요.
이순신 장군은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족과 나라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한 이순신 장군. 죽음까지 불사했기에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성웅(聖雄)으로 남아있답니다.
● 참고 자료 '이순신 인생병법(박종평)' '난중일기에 나타난 이순신의 일상인으로서의 면모(장시광)' '최광수의 통영이야기-오늘의 이순신' 등
임진왜란 전장에서도 어머니 건강 기원
아내 병세 걱정하는 따뜻한 남편의 면모
자신 목숨보다 가족·나라를 아낀 이순신
▲ 국보 제76호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의 명언·명문장
1.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이순신의 장검에 새겨져 있는 문구
2.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라
-옥포해전(1592년 5월)을 앞두고 한 훈유(訓諭)
3.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을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4. 한 번 승리하였다 하여 소홀히 생각하지 말고 위무하고 배를 다시 정비해 두었다가 변보를 듣는 즉시로 출전하여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도록 하라
-당항포해전(1592년 6월) 승리 후
5.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1598년 11월)을 앞두고 한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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