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 오만 난장이네
세월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니며
시간 속에 사는 우리가
가고 오고 변하는 것일 뿐이라 하는데…….
삶의 흐름 속에 흘러 온 시간만큼
주름살의 골은 깊어만 가고
마누라 머리는 이미 백발이 성글어
까만 머리는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날씬한 다리는 무릎관절로 휘어지고
자꾸자꾸 처지는 눈 카풀 바라보며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미인이라고 추겨주며
여보라는 호칭을 바꿔 장미인, 장미인, 하고 불러줄때면 쓰잘데기 없는 소리한다고
화를 팍 내지만, 빛나는 대머리의 한결같은 진심입니다.
그런데 벌써 마누라 회갑이라고 애들이 동구라미로
표시 해놓은 달력을 쳐다볼 때 마다 적잖은 부담과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넌지시 마누라에게 물어 봤습니다.
당신 무엇이 제일 필요하며 갖고 싶냐구?
왜 사줄려구! 아니 그래도 마누라가 평상시 갖고 싶은 게
뭔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참고 할려고, 그랬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내가 당신주머속 다 아는데 뭘 바라것소,
난 아무것도 필요 없소
그저 당신 건강 챙기고 제발 담배좀 끓어요.
그러면서 슬슬 잔소리가 나와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그럼 그렇지
안도의 숨과 함께 뒷마당으로 가 이놈에 담배 얼른 피워 없애 버려야지........
아! 그런데 문제는 저녁시간 식사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은근슬쩍 밍크나 하나 사주면 몰라도........
이러는 겁니다.
그래요 오래 전부터 친구들 다 입은 밍크코트 하나 갖고 싶어 하는
당신의 마음을 나는 옛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알아보았더니.
흐미, 150만원도 아니고 쓸 만한 것은 5백-6백이라고,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농협 마이너스 통장 돈 갚기 바빠 죽겠는데
이 백수에게도 언감생심 그래서 또 고민 다시시작.......
몆날밤을 생각해도 뾰쪽한 수가 없더니만
역시 나이 먹으면 꾀만 는다고, 그야말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 했냈습니다.
깜짝 이벤트(행사)로 마누라에게 감사장을 주는 겁니다.
마눌 없는 셀프인생 잠도 안 오고 밤을 세워가며
감사장을 쓰고 다듬어 컴에 저장하여 놓고
장소는 어디서 해야 될까? 그리고 초청인원은?
그래서 시내 괜찮다싶은 식당을 알아보니 처제 왈! 최소 50만 원 이상 드는데
뭘 그러느냐고 그 돈으로 집에서 소등심 사다가 먹는게 실속이 있지 않느냐고
해서 그렇까 하고 정육점에 등심을 예약(15근) 했는데 소고기가 워낙 비쌀뿐더러
당신이 어차피 요리를 해야 하니까 차라리 마을식당에서 하자고 했더니만
마누라가 정색을 하며 먼 길에 애들까지 불러놓고 맨 날 먹는 오리고기 먹일 거냐고,
집에 있는 애들도 다 반대라고 은근히 조직력을 동원하여 압력을 넣으면서
큰애가 서울에서 하자고 하니 당신과 막내딸만 올라오면 되니까.
그렇게 하시라고 힘주어 강조하는 바람에 이 힘없는 영감은 불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형제간들도 회갑이라고 초청하면 아무래도 부담을 줄 것 같기
도 하고,(회갑은 당사자들이 오늘에 있기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녀와 이웃에게 베풀어
야 한다고 생각됨)그래서 사위가 미리 예약한 롯데호텔 뷔페식당에 들어서고 보니 시골
영감 어리등절 그러나 사위 앞에 점잖은 체면은 지켜야 하겠기에 내 어림짐작에도
1인당 10만 원짜리가 될 것 같은데 물어보지도 못하고 예약된 룸(5-6인용)들어가
옷걸이에 웃옷을 벗어놓고 우리 여섯 식구는 멋들어지게 차려놓은 식단으로
손여(3세)안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손녀가 차려진 음식을 내려다
보며 “오-메 오만 난장이네”하여 옆에 있는 요리사와 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애들 앞에서 말조심 해야지, 전라도 할머니가 거실바닥에 어지럽게 늘어진
장난감이며 책을 치울 때마다 오-메 오만난장이네 하며 치우니까.
아무튼 기왕 왔으니까, 본전을 뽑아야 된다고 5분이면 끝나는 식사를 한 시간여를
넘게 이것저것 골라다 이제 더 이상 못 먹겠다는 것을 억지로 독촉하여 배를 채우고
과식인지 번연히 알면서도 미련한 욕심을 부리는 우리보다
먹는 량을 분명히 하는 욕심 없는 손녀를 보며 쓴 웃음이 나옵니다.
또한 정신없는 식탐에 옆을 보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큰 접시에 적게는 서너 점
많게는 다섯 점을 가져다 먹고 또 가져가고 하는데
나는 적은게 다섯 점 이상 실어 오니 참 문화의 차이일까?
아무튼 과식으로 저녁을 거르고 큰애가 밖에 나가 조그마한
케이크를 사와 촛불에 불을 붙이고 다섯 식구 둘러앉아 손녀와
같이 축가 불러주고 나서 사위가 장모님생신을 축하한다고
두툼한 봉투를 주고, 막내딸이 엄마 무릎 안아프는 신발 사라고
봉투를 내밀어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러나 고맙다.
그리고, 나 ! 일어나서 상위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뽀스락
거리는 소리에 모두는 무엇인가 하고 시선이 나한테 집중되었습니다.
부피 없는 하얀봉투 하나 달랑 커내어 오니까
성미 급한 막내딸이 아빠 그것 무엇이야?
응 이건 아빠가 생전 처음으로 엄마에게 주는 감사장이다.
마누라를 마주 앉혀놓고 나는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감 사 장
아내 장정순. 당신은 종갓집 대종손 6남매의 맏며느리로
들어와 오늘로13,096일(36년)그간 고생 참 많이 했소.
집안의 모든 대소사 평생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주셨으며,
특히 내가 쓰러지고 몆번의 위험한 고비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나를 살려낸 당신의 그 눈물겨운 정성과 심성은
그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것이요
당신은 나를 살려낸 생명의 은인이고 3남매를 바르게
길러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당신 앞에 나는 당신말대로 인정머리 없는 영감탱이,
속알머리 없는 이영감은 평생을 든든한 버팀목 당신을 의지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날 평생을 뼈골이 빠지게 문가종자들 봉양하고
내입에 들어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항변을 안 해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은 언제나 뒷전 어머니로, 아내로, 며느리로
희생을 감내하며 사셨습니다. 지금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손여 현서 돌보느라 주일마다 먼 길 마다않고 여명의 새벽녘
부터 남편 일주일분 반찬 챙기고 서둘러 바쁘게 떠나는 당신에게
늘 미안할 뿐이랍니다. 현명한 어머니로, 정숙한 아내로 그리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 늘 모범 이었던 당신의 삶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 감사장을 드립니다.
카네이션 꽃 같은 당신의 환한 웃음 오래오래 보고 싶습니다.
경인년 새해 남편 문일선
분위기는 금방 숙연해 지고 큰 딸은 눈시울을 붉혀습니다.
인감도장을 날인한 감사장과 함께 ‘선물을 준비할까 했는데 당신은
현금을 더 좋아하여 지갑을 톡털어 30만원과 내가 발행한 여행상품권
(지금 당장은 돈안들어가니까 여유가 있음) 두장을 담았소.
여행상품권
하나 : 베트남하롱베이 배경사진을 넣은 여행상품권(국내또는동남아)
유효기간 : 2010.02.22부터12.31까지
둘 : 미국나이가라폭포배경사진을 넣은 크로우즈여행상품권
유효기간 :2012년부터 - 영구
첫댓글 마누라회갑을 보내며 쓴 지난 글입니다.
근디요 괜한 호기부리다 첫 번째 여행상품권은 간신히 돌려 막았는데두번째 상품권 어찌 해야 될지. 내 발등 내가 찍어 누굴 원망 할 수도 없고 솔찬히 고민 중에 있습니다.
ㅎㅎㅎ 참으로 재밋고 근사합니다. 좋은글에 미소 머금어봅니다. 어쩌긴 어쩝니까 약속 지키셔야지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자주 뵙수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합니다.
저두 담에 감사장을 써야겠습니다.
근데 여행상품권은 안될 것 같은데 어쩌지요?
아름다운 가족모임에 참석했다 감탄하고 갑니다.
ㅎㅎㅎ 궁여지책이라고 급하면 다 통하게 되어 있읍니다.
근디 나처첨 당시 우쭐한 기분에 너무 큰걸 남발하지 마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