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진'관련 논문 - '유치진의 초기 희곡과 연극론의 거리'

[homodramacus]

유치진의 초기 희곡과 연극론의 거리

김 재 석*


Ⅰ. 서 론

유치진의 등장은 우리 연극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해도 좋을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희곡 창작과 연출 작업, 그리고 극이론(비평) 활동을 함께 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제일 앞에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33년에 발표한 <토막>을 시작으로 하여 약 30여편의 작품을 남겼고, 같은 해에 이루어진 제 3회 공연에서 <유아나>(友情)를 연출함으로써 연출가로써도 발을 디뎠다. 극비평과 이론 분야에서의 활동은 그보다 앞서는 데, 1930년대 초반에 왕성하게 발표된 글에서 이미 그의 연극관이 뚜렷하게 정립되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치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극작가, 극이론가, 연출가를 세 꼭지점으로 하는 즉, 정삼각형의 그를 상정하고 논의를 전개하여야만 바람직한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30년대의 유치진에게서는 이 세 가지 역할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하겠다. 기실 우리 연극사에서 유치진만큼 세 가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낸 연극인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1930년대 극작가 중에서 그와 어깨를 겨룰만한 채만식과 송영도 그러하지는 못했다. 채만식은 희곡 창작에 있어서 실험 정신은 강했으나 연극계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고, 송영의 경우 극작 활동에 비해 연극 담당자로서의 역할은 미비했다.
극작가와 극이론가, 연출가의 어느 점이 삼각형의 정점(頂点)에 놓이느냐는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하겠다. 유치진의 전 생애를 어느 때를 경계로, 몇 단계로 나눌 것인가에 대해 논자들에 따라 입장이 조금씩 다르지만, 1935년의 이른바 '소'사건 이전을 초창기로 보는 데는 대개 일치하고 있다. 1930년대 전반기에 해당하는 초창기는 극이론가로서의 그를 정점으로 하고,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의 유치진이 저변을 이루고 있던 시기라 해도 좋겠다. 대개의 극작가들과는 달리 유치진은 작품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이전에 자신의 연극관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을 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간다면, 희곡 창작은 그 자신의 연극관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며, 연출 작업을 통해 더욱 확고하게 실행에 옮겼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유치진에 대한 연구 성과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우리 극작가들 중에서 최고 수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개 특정 작품 중심의 연구이거나, 극이론 중심의 연구로만 한정되고만 아쉬움이 있다. 본고는 그러한 입장을 염두에 두고 유치진의 초기 연극론과 작품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 보고자 한다. 그가 지녔던 연극관을 파악해보고, 그의 연극관이 초기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 이후의 유치진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 생각한다.

Ⅱ. 초기 연극론: 민중적.공리적 연극관

1. 행장극장(行裝劇場)

유치진이 일본에서 연극공부를 할 때 해방극장에 관여했었음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축지소극장이나 근대극장을 떠나 '아나키스트'(ana- rchist)들의 단체인 [해방극장]으로 옮겨간 것은 무정부주의에 경사되어 있었던 탓도 있지만, "공부와 체험이 오로지 행장극장을 차리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20년대 일본의 신연극을 이끌던 축지소극장은 "돈 있는 집애들이 소위 학구적, 예술적으로 연극을 해보자는 모임"이었다는 유치진의 설명처럼 그들의 목표는 민중지향적이지는 못했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던 축지소극장의 방향에 대한 불만과 '민중 지향의 연극관'은 당시 동경 유학생으로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가 지식인을 위한, 혹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연극보다는 민중지향의 연극에 관심을 가진 것은 로망 롤랑(Romain Rolland)의 [민중예술론]의 영향과 식민지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던 우리 민족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뒷날 그가 로망 롤랑에 경사되었던 자신의 입장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기는 하지만, 그 시절에는 [민중예술론]을 나름대로 소화해 민중을 위한 연극이 올바른 길이라 선택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문맹이 80%나 되던 당시의 우리 민족에게 시나 소설은 잘 먹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일부러 공리적 예술--연극을 택"했던 입장이 깔려 있다.
그가 민중지향의 공리적 연극관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공연 단체의 형태로 선택한 것은 '행장극장'이었다. 행장연극이란 "4,5명 정도의 동지로 한 그룹을 만들어서" 농어촌이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느티나무 밑이나 거리의 한 모퉁이에 모인 시골 사람들 앞에서 무대설비 없이, 가난한 공연"을 행하는 단체이다. 이른바 '개화기'이래 대부분의 연극인들이 서양식의 극장과 무대를 선호해온 데 비하면 유치진의 행장연극이 가지는 의미는 참으로 신선한 것이었다. 우리의 전통연극의 공연방식이 실내극이 아닌 야외극이었고, 전문적인 연극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비직업적인 성격을 지닌 마을 단위 모임에서 이루어진 점을 생각해보면 전통연극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가 행장연극으로 이루려고 했던 목적은 무엇이었고 유용하게 생각했던 극양식은 어떤 것이었을까? 유치진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행장연극의 목적을 잘 알려주고 있다.

제정 러시아의 지식인들이 헌신적으로 농촌계몽을 위해 벌였던 [브나로드] 운동에 나는 많은 감명을 받았고, 일본인과 대항하는 방법으로는 가장 적합한 방법 같이 생각되었다. 하다 못해 낙이 없는 내 동포에게 낭만 하나만은 선사할 수 있으리라. 예술은 이런 의미에서 얼마든지 인생에 이용되어도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 행장극장을 차리자. 나 자신이 인생의 밑바닥에서 서서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는 일반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자. 일반 문학이 갖는 우회성을 경원하고 보다 직접적인 연극을 하자!

유치진이 행장연극을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극을 통해 식민지의 질곡에 허덕이는 대중들을 위무(慰撫)하고 그 난관을 헤쳐나갈 힘을 북돋우어 주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저급한 신파 연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식민지 민중들의 감상적 정서에 영합하여 "한바탕의 눈물과 한숨"만 양산하고 있던 상업적 신파극을 정면 거부하는 것으로, 연극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치진은 1920년대 연극인들이 지녔던 '계몽적.공리적 연극관'을 계승하면서도, 1920년대 연극운동론자들이 지니고 있던 서양식 소극장 연극운동의 답습이 던져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노동자구락부극에 대한 고찰]은 그가 기대하고 있었던 행장연극의 효과가 어떠한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그는 러시아 노동자구락부 연극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물론 구락부극은 구락부에서 탄생하얏다고 거긔에서만 유폐되여 잇슬 성질은 아니다. 그의 대중과의 교제를 확대하기 위하야 지역적으로 광범한 활동을 할 필요가 잇다. 처녀회의 발회식에나 직공들의 픽크닉크에나 학교의 연극제가튼데에도 채용될 뿐만 안이오. 어　 경우에는 농촌에나 거리나 직장에 　지 출동하여야 할 것이다. 　로는 가두에서 靑天의 프로세니암을 그대로 사용하야 볼 것이오. 　로는 농가의 툇마루를 무대로 사용하야도 볼 것이다. 로서아서는 트레챠곱흐 작 <瓦斯마스크>를 연출하는데 공장내에서 실물의 瓦斯탕크를 사용하야 큰 효과를 어덧다 한다. 이와가티 이 극의 이동성을 확대하야 비로소 구락부극은 그의 연극으로서의 직접 행동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잇슬 것이니　.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내에서 찾아오는 관객을 상대로 하여 공연하는 연극이 아니라 스스로 관객을 찾아갈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춘 연극이라는 점을 후히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유치진이 꿈꾸던 행장극장도 이러한 기능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이 극장을 찾아와 연극을 관람하기란 경제적 형편으로나 문화적 형편으로나 불가능한 일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계몽적.공리적 연극관에서 주요 관객층으로 설정되기마련인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극장으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연극담당자들 스스로 그들을 찾아간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 농민과 노동자들이 연극을 대할 기회는 한층 많아질 것이며, 인생의 밑바닥에서 서서 인생의 밑바닥을 헤매는 일반 대중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자 했던 유치진의 계획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1920년대 김우진과 홍해성을 비롯한 신극운동론자들이 자유극장을 본뜬 소극장운동을 시도하려 하였으나 계획 단계 이상 나아가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극장을 떠나 공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잘 알 수 있겠다.
민중지향의 연극관을 펼쳐보일 행장극장의 구체적인 모습은 그가 분장과 의상을 무시하는 연극으로 소개하고 있는 靑服(Blaue Blusen)에서 발견 된다. 청복이란 이름은 산신문극에 착안해서 공연한 첫 연희패의 통일된 복장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청복은 노동자 혹은 농민클럽(俱樂部)에서 활동했고, 거의 대부분이 비전문적인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공연단체로써 청복에 대한 착상은 1923년 모스코바에 있는 [국립신문학연구소]에서 이루어졌는 데, 1926년에는 5000개의 청복극단과 약 100,0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한 인기를 누리게 된 배경에는 현실문제를 생동감있게 표현해내었다는 것 외에 "어떤 장소, 어떤 조건하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민첩하고 생동감이 넘치고 기운차고 예리하며 이동이 가능한 순회극단"이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국토가 넓고 문맹율이 높았던 당대 러시아 상황을 고려할 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연 방식이었으며, 식민지의 억압에 고통받고 있던 조선에서도 아주 유용한 방식이라 하겠다.
유치진은 당대 민중을 위무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려는 행장연극이 담당할 극양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러시아의 진보적 연극운동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그가 [노동자구락부극에 대한 고찰]에서 언급하고 있는 '산신문극' '프롤레타리아 레뷰' '슈프레히 콜'이 그가 추구하려던 행장연극의 극양식이라 해도 무리가 없겠다. 유치진이 언급한 극양식은 연극의 기능 중에서 선전선동의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이라는 점과, 완전한 무대장치를 갖춘 특별한 공연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소수의 인원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관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가야 하는 행장극장의 속성상 그러한 방식의 공연이 선호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현대의 예술형식 중에 가장 현대의 의지와 동향을 성격적으로 반영하며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라며 산신문극(living newspaper)에 큰 관심을 표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 즈음에 일본에서는 [좌익극장]의 제 21회 공연으로 村山知義의 <산신문극>(生きた新聞)이 공연되는 등 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유치진은 나름대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다. 산신문극은 러시아혁명이후 소련에서 1920년대 후반까지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유럽 등지에서도 1920년대의 대표적 선전선동극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산신문극은 소수의 인원이 신문을 낭독하던 방식에서 점차 연극적인 성격을 갖추는 쪽으로 나아갔는 데, 간소한 의상과 분장으로 공연되며 노래와 춤 등 갖가지 볼거리들이 동원되는 것이다. 유치진은 "우리가 보는 산신문극은 무엇보다 먼저 대중의 건설적 감흥을 북도두려하고 한거름 압서서는 해방운동전선의 전위대에 의식적으로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하여 산신문극의 강력한 전파력을 장점으로 들고 있지만, 그러한 효과를 가지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행장극장'적인 것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 극에 잇서서는 공간과 시간의 절약을 극도로 요구하는 기계문명의 현대적 '템포'에 극의 '리즘'을 마추기 위하야 무대상의 話物質的 조건은 극도로 단순화되어 젓다. 이는 이 극의 이동성을 도우며 그 활동을 경쾌하게 하야 드디어 연극의 영향을 지역적으로 자유스럽게 확대할 수 잇는 것이다.

그는 산신문극의 공간과 시간이 기왕의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극도로 단순한 무대 조건으로 인해 산신문극은 공연장의 조건에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서든지 손쉽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이다. 유치진의 그러한 인식은 프롤레타리아 레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롤레타리아 레뷰(Proretarische Revue)는 프랑스 등지에서 많이 공연되던 춤과 노래, 촌극 등이 혼합된 레뷰(Revue)와 유사하지만, 정치적인 내용을 담아 민중들에게 정치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플롤레타리아 레뷰는 당대의 시급한 정치 사안에 대해 신속한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과 공연 상황과 장소 등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변화가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큰 장점이라 하겠다.
슈프레히콜(sprech chor)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 진다. 슈프레히콜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독일에서 노동자들의 집회 때 선전선동을 목적으로 탄생한 극양식이다. 합창대가 나와서 대본을 리듬과 박자에 맞추어 낭송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노동자들의 행사와 결합하여 공연될 경우 분위기를 고양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의 기둥 줄거리만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창작이 가능해서 일반 연극에 비해 월등한 기동력을 가진다.
이상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유치진의 초기 연극관은 계몽적.공리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으로 행장극장을 지지했다. 행장극장을 통해 당대의 민중들에게 보여 줄 극양식으로는 산신문극, 프롤레타리아 레뷰, 슈프레히콜 등을 예로 들었으며, 그러한 작품들은 당대의 현안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공연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연극을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지 찾아가서 선전선동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치진이 소극장운동을 부정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파악된다. 그는 입센 이후의 소극장 운동에 대해 "극장은 다만 희곡을 위하여 聖堂化" 되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연극은 소수의 특수 연극 청년의 손에서 전문적으로 硬化"되어 대중의 존재를 망각하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연극이 원래적으로 가져야 하는 대중성을 폐쇄적 공간과 운영 체계로 인하여 잃어버렸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극장으로 진출한 연극을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연극을 점검하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는 소극장을 벗어난 일본 신극이 "부르조아 시장에 상품으로 채용"되어 대극장에 진출하였으나 외국의 유명 작품을 공연하면서 "　나리ㅅ틔 한 인기에 영합"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해산되고 말았음을 극단 축지소극장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소극장의 폐쇄성 만큼이나 대극장의 상업성을 경계하고 있다 하겠다. 그에게 있어서는 연극의 가장 이상적 형태는 연극이 원래 그러했듯이 관객과 연극담당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 제대로 된 방식이 행장극장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는 것이다.

2. 교화적 대중성

희곡이 문학의 여타 갈래, 즉 소설이나 시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연극으로 전환됨으로해서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연극은 공연 당시 관객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제공함으로써 선전선동력을 지니고 있다. 연극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특성은 물론 관객들이 많이 확보될 수록 더욱 큰 효과를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로인하여 연극에서는 '대중성'의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된다. 따라서 대중추수주의에 의해 얻어진 대중성을 바탕으로 하는 상업극과는 다른 건강한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면서, 연극운동담당자로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이다.
유치진도 연극의 대중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이 단순하게 관객을 많이 모으자는 식이 아니어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그에게 있어서 대중성은 공연물과 관객의 정서적 교감 사이에서 발생하는 효과의 정도를 가르키는 것이다. 즉 수적으로 얼마만한 관객을 동원하고 있느냐가 대중성의 문제가 아니라,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연극담당자들의 인식을 어느정도로 효과있게 그들에게 전해주는냐의 문제인 것이다.
먼저 연극의 대중성에 대한 유치진의 설명을 보기로 하자. 그는 연극이 오락성과 교화성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 예술이다는 점을 전제하고서, 현대 연극의 크게 두 갈래의 경향으로 나타나는 데 부르조아를 위한 향략본위의 극과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데올르기' 본위의 연극이라고 했다.

연극의 본질상으로 보아서는 전자는 순전히 아페말한 연극의 오락적 대중성만을 取中하야 연극으로 하야 곧 불조아의 향락기분에 영합시킨 것이오. 후자는 전혀 연극의 교화적 대중성에 역점을 두어 연극으로 하야곰 사회정책의 한도구로써 새로운 계급의 정치적 선동에 봉사시키려는 것이라하겟다.

향락본위의 극이 오락적 대중성을 추구하고 있고 이데올로기의 극이 교화적 대중성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30년대의 극예술연구회 계열 작가군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견해이다. 대중성의 문제를 얼마만한 수자의 관객을 모으느냐는 식의 단선적 논리로 이해하지 않고, 연극의 방향성과 결부시킴으로써 대중성 문제를 연극 외적인 문제, 즉 기획상의 문제로 파악하는 점을 탈피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락적 대중성을 추구한 연극이 상업극으로 전락했는 데비해, "현대 연극에 잇서서 가장 연극의 대중성을 단적으로 발전시키고 잇는 것은 푸로레타리아연극에서 발견할 수 잇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분명한 입장을 알 수 있다.
그가 교화적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연극 활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그의 글 [노동자구락부극에 대한 고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의 노동자구락부연극이 동일한 계급, 동일한 지적 수준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관중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용이하고, 그러므로 적은 힘을 들여서도 교화적 대중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했다. "즉 그들은 한 자리에서 가치 웃고 가티 분노하고 가티 울고 가티 즐기는 동안에 그들에게 공통한 정의와 이익을 늣기게" 된다고 했다. 유치진의 이러한 설명은 식민지 조선의 관객들에게도 교화적 대중성이 중요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유치진의 입장에서는 개화기 이래 상업적 신파극을 중심으로 발전해오고 있던 당대 연극계의 상황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이며, 자신의 연극 활동이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라 해도 좋겠다.
유치진이 추구하려던 교화적 대중성은 관객들에게 어떤 효과를 가지는 것일까. 관객들이 연극을 보고 연극담당자들이 제시하는 어떠한 측면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터이지만, 유치진의 생각은 그 이상에 미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28년 이 극 - 우리들은 범인이다 - 가 아나-키즘 극단인 解放劇場의 손으로 동경 胡日講堂에서 상장하엿슬 　에 突然관중은 激하야 총립하고 그 일부는 무대로 밀렷다. 장내 정리 차로 임석하엿든 (경)관은 놀래서 관중을 統御하기에 땀을 쥐엿다. 그러나 짓구진 사실로 이 (경)관의 활동하는 광경이 이 극의 전체의 효과에 비상한 성적을 내여 주엇다 한다.

공연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생겨난 관객들의 즉발적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그의 견해는 일반적인 관객론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서구적 연극의 일반적 관례는 무대와 객석이 강하게 분리되는 것이 특징이어서, 관객들이 객석을 이탈하여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거나 극중에 참여하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치진이 위에서 밝힌 견해는 그러한 일반적 관례와는 다른 방식의 공연을 선호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공리적 예술로서의 연극의 기능을 십분 발휘한다는 데 있다고 해야 하겠다.
유치진이 그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면극에서 교화적 대중성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가면극과 민속극에 대한 당시의 관심은 영성(零星)하기 이를 데 없었던 데 비하면 놀랍기까지 하다. 1932년에야 조선민속학회가 만들어지고, 오광대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긴 하였으나 민속물로써 연구 대상으로 삼았을 뿐이지 당대에 되살려야 할 연극적 유산으로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유치진은 산대나 오광대를 예로 들면서 공연 장소가 극장처럼 일정한 구조를 갖춘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민중들이 아무나 구경할 수 있다는 개방적 환경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연극이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객만을 상대할 경우, 식민지 조선의 노동자와 농민들을 연극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게 된다. 1920년대 김우진이나 KAPF계열 단체들이 추구했던 바 처럼 회원제로 유지하려던 계획이 실패로 끝난 것도 경제적 조건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관객들이 극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가면극에서는 공연담당자들도 전문인이 아닌 사람들이고, 관객들도 그 동리의 사람들일 것이어서 쉽게 어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극에 개입하더라도 내용이 흩으러지지 않고 공연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서구적 연극을 모범으로 삼고 그에 따르려던 당대의 일반적 경향과는 달리 가면극이 가지는 특성에 대한 주목은 아주 값진 것이다. 관객과 공연 담당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특성은 행장연극적인 연극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연극 대중화의 최고 형태라 아니할 수 없는 데, 그 가능서을 가면극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사실은 극을 휩싸고 구경하는 민중이란 극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며 극을 진행시키는 한 도구임을 예증함이오. 극장과 관중이란 떼내야 뗄 수 업는 유기적 관계에서 단일히 一個가 되야잇는 것을 말함이다. 즉 이때에는 연극이란 직접 민중의 창작이며 오락이오. 드듸어 그들의 의지인 것이다. 이보다 더 밀접한 예술의 대중성을 어듸서 구하랴!

유치진은 연극의 진정한 대중성은 민중이 연극 공연의 주체이자 향수자가 될 수 있을 때 최상의 위치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관객들이 극의 구성요소로 참여할 수 있을 때 그들은 극중의 상황을 체험하게 됨으로써 단순한 관찰자 이상의 감동을 맛볼 수 있게 된다. 유치진의 이러한 견해가 일방적인 것이 아님은 브레히트(Brecht)의 교육극(Lehrst ck)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교육극은 1920년대말과 30년대초에 브레히트가 쓴 희곡들 중 일련의 짧은 작품들이다. 그는 관객들이 소비자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 생산에 함께 참여하는 존재가 될 때 연극이 관객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목적을 시험하기 위해 '배우와 관객의 철저한 역할 분리'에 기반을 두었던 전통적인 시민 연극의 공연 방식을 거부하고 '연기자와 관객의 역할 통합'을 시도 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상연 실천 그 자체가 동시에 기존의 공연 관행과 수용 습관을 개조해 나가는 과정으로 만들어 연극의 '기능전환'을 꾀하게 된다. 동양과 서양에서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유치진과 브레히트의 유사한 관점이 흥미로운데, 전통 연극인 가면극에서 그 예를 발견한 유치진이 그러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여건면에서는 한 발 앞서 있었다 하겠다.


Ⅲ. 초기 작품: 현실의 자연주의적 재현

1935년 이전에 발표된 유치진의 초기 작품으로는 <토막>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獸> <소> 등이 있다. <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극예술연구회를 통해 공연됨으로써 당대 사회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논자에 따라 그의 작품에 대해 부분적으로 비판한다 하더라도, 유치진의 초기 작품들이 1930년대 전반기의 대표적 작품 중의 하나임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안정된 극작술을 보여주고 있는 데, 서구적 극작술을 제대로 체득하고 있는 작가로서는 김우진 이후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초기 작품들은 동 시기에 발표한 그의 이론들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론 작업을 통해서는 러시아의 진보적 연극운동과 작품 경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그가 발표한 작품들은 그와는 달랐다. 현장을 찾아다니며 기동성 있는 공연을 선호하고 거기에 알맞는 작품, 즉 무대 장치 등이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작품을 발표할 듯 했지만 실제 작품은 그와는 반대되는 경향이었다. 그 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사실적 무대 조건과 작품의 짜임새

<토막>은 유치진의 첫 작품이면서도 초기를 대표할만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일반적인 경우 처음 작품은 공연에 따르는 제반 사항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공연성이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나 <토막>은 아주 뛰어난 공연성을 지니고 있다. 인물의 성격 형성이나 명서 집안과 경선의 집안을 대조시킴으로써 비극적 상황을 심화시켜 나가는 솜씨 등은 1920년대 작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그의 뛰어난 극작술을 증거하고 있다.
그의 뛰어난 솜씨는 무대 설정에서부터 이미 드러난다. "시골 명서의 토막 집"으로 설정된 공간에 대해 유치진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오양　가치 누추하고 음습한 토막 집의 내부 -- 온돌발과 그에 접한 부억. 방과 부억 사이에는 벽도 업시 그냥 통하엿다. 천장과 벽이 시커머케 탄 것은 부억 연기 　문이다. 온돌방의 후면에는 뒷골방에 통하는 방문이 잇다. 좌편에 입구. 우편에 문도 업는 창 하나. 창으로 가을 석양의 여윈 광선이 흘러 드러올 　. 대체로 토막내는 어두컴컴하다.(<토막>, 34쪽)

무대 배경의 이러한 설정은 단순하게 토막의 내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는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 들, 즉 "읍습한" "시커머케 탄 것" "여윈 광선" 등은 <토막>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 지를 예견하게 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러한 무대 설정은 유치진이 무대 배경에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며, 올바른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무대 조건을 필요로 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버드나무 선...>을 위시한 여타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유치진이 이론을 통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러시아의 진보적 연극들, 즉 행장연극의 공연 작품으로는 상당한 어려움을 주게 된다. 유치진은 행장극장을 염두에 둔 작품으로 자유로운 공연조건을 첫째로 삼았었다. 그러면 유치진이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운 공연 조건을 염두에 두었는 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러시아의 노동자극의 공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좋은 참고가 된다.

노동자 구락부의 '홀'이란 그다지 설비가 충분치 못할 것이니 특별히 무대란 '프랫트 폼'을 가지지 못할 　도 잇슬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홀'의 사방진중 그 어느 일각을 무대로 택하고 경제상 특히 무대장치도 하지 못할 　에는 사각의 벽을 그냥 '셋트'로 가정하기로 한다. 즉 '홀'의 벽에다 '×××의 실내' 혹은 '거리의 一隅' 등이라고 문자로 써서부처서 무대 장치의 대용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허하는 한에서는 흑색 '백크'나 하나 준비하고 평면식 '셋트' 사매쯤 가젓스면 훌륭히 어울리는　도 잇다. 그리고 발서 여긔서는 삼면에 벽을 가져야 한다는 근대극의 무대적 약속은 염원에 업다. 대소도구도 돈을 드려서 장식할 여지는 업스니 될 수 잇는대로 가진 것으로 암시적으로 장치하야 쓴다.

삼면의 벽을 기본으로 하지 않고, 무대를 사실적으로 꾸미려 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의 공연은 그 당시 우리나라 연극계를 장악하고 있던 자연주의적 무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920년대 초 일본 유학생들에의해 자연주의적 연극이 유입되면서 당대까지 신극운동자들의 모범적 극양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유치진은 자연주의적 공연방식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치진은 제대로 된 무대와 극장을 필요로 하는 자연주의적 공연방식이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는 방식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진의 초기 작품은 철저하게 자연주의적 무대를 필요로 하는 작품으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의 주장을 뒤덮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토막>이든 <소>이든 간에 제대로 된 공연 효과를 내어 관객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무대 장치와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극장이 필요한 것이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들이 그의 이론과는 달리 행장연극을 목표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극의 짜임새에서도 확인이 된다.
유치진이 산신문극에서 강조했다시피 농민이나 노동자들을 상대로 교화적 대중성을 얻기 위해서는 당대의 현안을 즉각 즉각 연극화할 수 있는 극의 짜임새가 유리하다. 즉, 필요에 따라 손쉽게 창작될 수 있고 오랜 기간의 연습을 거치지 않고도 공연될 수 있는 작품이 좋은 것이다. 산신문극이나 프롤레타리아 레뷰, 슈프레히 콜이 모두 그러한 조건에 적합한 것임은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이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들은 프라이타그가 설명한 五部三點 구조설의 적합한 예로 들 수 있을 만큼 잘 짜여진 극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탄탄한 구조의 작품의 경우 상당 기간의 연습이 되지 않으면 올바른 공연을 할 수가 없으며, 공연 조건이나 공연 장소의 상황에 따라 일 부분만을 따로 떼어 공연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된다. 당시의 신문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와 농민들을 위한 공연에서는 서너작품이 공연되는 것이 상례였으므로 유치진의 초기 작품같은 경우는 소인극단에 의한 공연 작품으로는 적합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그 자체로써 수미일관된 줄거리에 공연 상황에 맞추어 내용을 변화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연이 되는 장소의 분위기에 맞게 효과적으로 각색하는 일도 어렵게 되어, 행장연극에 알맞는 효과는 제대로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유치진은 자기의 이론 작업과는 달리 행장연극으로는 거의 부적합한 자연주의적 경향의 작품을 내어 놓음으로써 이론과 실재의 거리를 넓혀 놓았다.

2. 우회적인 문제 제기

다음에는 초기 작품이 행장연극에서 목표로 하는 선전선동의 역할을 어느정도 하고 있으며, 대중성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그 점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구도를 따져보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 할 것이다. 등장인물의 구도는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세력간의 긴장 관계를 바로 드러내어 주므로 사회극을 살피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에는 <소>를 제외하고는 주동인물에 대응하는 적대자(OP)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에 민중들의 삶을 억압하는 세력(적대자)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프로작가군과는 달리 계급의식을 가지지 않았던 1920년대 신극작가군의 사회극에는 무대 위에 실제 인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적대자의 존재가 지주, 혹은 공장주 정도로 막연하게나마 암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치진의 극에는 그보다 오히려 약화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토막>의 경우를 살펴보자.
명서 일가족의 기대(FO)는 명수의 귀환(O)이다. 그러나 명수는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서 죽고만다. 명수의 죽음을 가져온 직접적 원인은 노동운동을 탄압했던 일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작품상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일제가 명서 일가족의 기대를 파괴한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들의 존재가 너무나 막연하여 명서 일가족과 대립 혹은 대결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이 아니다. 환언하자면, 명서 일가족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구체적인 세력에 의하여 그들의 꿈이 깨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낄 수도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좌절당한 것이다.
이러한 인물구도가 유치진의 초기 희곡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주동인물과 적대자 사이의 긴장된 관계가 극에 드러나지 않고, 그로인해 극의 갈등이 거의 없다시피 약해져 있다. 즉 주동인물이 적대자와의 갈등으로 인해 결정적으로 몰락하는 경우가 아니다. 주동인물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는 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으며, 이들은 자신이 처해있는 궁핍한 환경 속에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동인물은 20년대 신극작가군의 사회극과 마찬가지로 피해자형의 인물이라 하겠다.
뚜렷한 갈등이 존재하지 않으므로해서 유치진의 초기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극이 진행되지를 않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극적 사건은 자식의 죽음(<토막>), 기생으로 팔려가는 딸(<버드나무 선 동리풍경>) 등으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에 그 무게만큼의 변화를 던져주지 못한다. 극이 끝이 나는 순간에 이르러도 주동인물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삶이 더이상 상승하지도, 하강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토록 엄청난 사건조차도 그들의 일상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할만큼 절망의 나락(那落)에 빠져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대 민중의 삶을 억압하는 세력과의 다툼에서 일찌감치 패배하여, 이제는 그러한 사실에조차 무감각해저 버린 당대 민중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절망적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워진다. 전망을 담보해낼 수 있는 인물을 창조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화가 유치진을 비꼬아서 "그의 희곡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 예술적 인물을 한 사람도 창조해 내지 못한데 가장 뚜렷한 예술적 흔적을 남겼다"고 평했던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유치진은 그러한 부담을 관객에게 넘겨버린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이론을 통해 제시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행장연극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교화적 대중성을 제대로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만을 사실적으로 보여준 후, 다음과 같은 선언적 대사를 통해 마무리짓는다.

명서: 금녀야. 우리의게는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새로운 힘! 나나 너가튼 병든 몸에서는 구할 수 업는 새로운 힘이.(<토막>, 51쪽)

계순: (가만히 안젓다가 조모에게) ……어머니 과연 이 일은 우러야 할 일입니까? 울고만 잇서서 될 일입니까……
할머니: 웨 그걸 내게 뭇니? 이 눈 어두운 내게다…… 큰길에 나서서 눈뜬 절문 놈들에게 무러볼 일이다.(<버드나무선 동리 풍경>, 11월 15일)

조부: 얘어 울지 마러라. 누가 우리 소선이를 죽엿니? 그걸 생각해봐(<수>, 66쪽)

극의 결말부분에 제시되는 이러한 대사는 관객에게 극중의 상황에 대한 원인과 해답을 찾아 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당대의 현실적 상황은 보여주었으니 나머지 문제는 관객들이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유치진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당대 민중들의 절망스런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현실적 방법도 기대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당대 연극을 대표한다는 '엘리뜨'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극중에 과도하게 작가의 개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서사적 인물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발언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결론적인 대사도 그러하지만 작품 속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금녀: 아버지! 아버지 마음을 상하시지 맙소 녜. 옵바는 죽엇습니다. 밤낫으로 기다리든 우리 일　은 죽어버렷서요. 이가치 섭섭하고 분한 일이 어듸 　 잇겟습니　! 그러나 아버지, 아버지 혼자가 외아들을 일코 저 혼자가 옵바를 일흔 것이 아니랍니다. 아버지 옵바는 우리를 위하야 싸우다가 용감히 죽엇습니다. 아버지 서러마시오. 우리의 영광이얘요. 서러하지 마시고 살어갑세다. 이대로 살어갑세다. 내일부터 나는 더 애써 부지런히 　아리를 만들겟습니다. 내일 장에 저 맨들어둔 것을 다 팔면 　 몃십전이 생기지 안나요. 걱정마세요. 녜 아버지. 우리는 여전히 여전히 살어갑세다.(<토막>, 51쪽)

이러한 발언이 작품 속에 녹아들지를 못하고 있다. 이러한 결함은 현실적 대안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면서도 무엇인가를 말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산이라고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치진의 초기 작품은 당대 사회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빚에 몰려 딸을 유곽으로 보내게 되는 현실, 노동자의 동맹파업, 사음과 지주의 횡포 등 당대 민중들이 처한 현실적 사건들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선에서 멈추고 말 뿐, 왜 그러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게 되었는 지에 대한 원인 탐구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당대의 노농문제를 부분적으로 밖에 파악하고 있지 못해서, 20년대 후반기부터 발전.변화해가고 있던 노농문제의 본질을 포착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일제에 의한 극도의 탄압과 그로인한 궁핍 속에서도 노농운동의 최절정기를 맞이했던 1930년대 전반기의 흐름을 놓쳐버린 것이다.


Ⅳ. 이론과 실재의 배치(背馳)와 그 의미

1930년대 초 유치진에게 나타나는 현상, 즉 이론과 실재 작업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동시대의 어떠한 연극인보다 진보적인 연극 활동에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연극 활동으로 나타난 작품은 그와 동떨어져 있는 현상의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그가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한계로 인해 진보적 연극을 추진할만한 동력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며, 둘째로는 [극예술연구회]라는 단체가 가지고 있던 운영방식으로 인해 행장연극적 공연 자체가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다.
첫번째의 이유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유치진은 후대에 "<토막> <소> 등에서 참담하고 어두운 우리의 역사적 현실을 정면에서 파고드는 작업에 지치기도 했"고라면서 자신의 극작경향이 1935년 <소> 사건 이후 달라진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작품은 30년대 민중적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었다기 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비껴간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지치기도 했다'는 말이다. 1935년 이후의 허무주의적 경향은 일찍이 임화에 의해 "현실의 가치에 대한 절망"이라고 날카롭게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허무주의의 원천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유치진의 불철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환언하자면, 유치진은 식민지 연극의 현재적 상황과 미래의 전망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진보적 연극운동에 찬성을 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즐겨 인용하는 로망 롤랑도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겉모습만을 추종하고 있을 뿐이다.
로망 롤랑은 [민중연극론](Le Th tre du Peuple)에서 프랑스 혁명에서 해방된 새로운 민중을 위한 새로운 연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민중연극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연극을 위해서는 '이중의 단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그 형태, 언어, 주제 등으로 인해 연극이라는 문화적 전통에 낯선 관중에게는 '말을 걸 수 없는' 기존 레퍼토리와의 절연이고, 다른 하나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선호하는 극 형태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인 이른바 이탈리아식 극장과의 결별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극작법과 새로운 공간을 동시에 창출해냄으로써 '민중의 행동'을 담아낼 수 있는, 열린 공간 위에 펼쳐지는 서사극을 기초하게 된 것이다.
로망 롤랑은 기존의 레퍼토리를 기존의 극장에서 공연하면서 민중들을 극장으로 끌어 들이는 방법이 거의 실효성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익숙해진 연극 형태와 결별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20년대 김우진을 비롯한 연극운동론자들이 하나의 이상적 형태로 삼았던 앙드레 앙토와느(Andr Antoine)의 자유극장(Th tre Libre)이나, 시민 계급의 상업적 극장과 구별되는 협동조합형태의 노동자극장인 독일의 자유민중극장(Freie Volksb hne)이 프롤레타리아 생활 조건의 개선과 노동자 계급의 일반적인 교육수준의 향상에는 엄청난 성과를 가져다 주었지만, 비타협적인 저항을 통한 정치 권력의 장악 측면에서는 내적인 모순에 근거해서 실패하고 말았던 전례를 반성한 결과라 하겠다. 그러나 유치진은 로망 롤랑의 사유 결과를 민중지향의 연극을 하자는 선언 정도로 가볍게 이해한 것 같다.
그러한 추측은 행장연극을 실현하지 못했던 이유를 언급한 것에서도 분명해진다. 그는 "일본서 철이 난 나[유치진]는 한국과 같은 지독한 탄압 밑에 놓인 식민지의 경우를 몰랐던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대하여 유치진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말해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가 민중을 위한 연극을 택했다고 하지만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중의 삶에 대해서는 깊은 신뢰를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혜자의 입장에서 민중들에게 연극을 통해 교화하려는 의욕만이 앞섰지 민중의 실체와 그들의 역량에 대해 구체적인 인식이 결여된 상태였다. 그러므로 스스로 극장공연의 틀을 박차고 나가서 민중 속으로 들어가 현장공연을 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예로들었던 '산신문극'이나 '노동자 구락부 연극'은 민중의 역량이 성장되면서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극양식을 확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한 경우 전문연극인의 입지는 극히 축소되면서 아마추어연극인들이 주축이된 공연형태를 가지게 된다. 유치진은 그러한 점은 소홀히 한 채 단순히 현장공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광범위한 효과에만 눈을 돌려 강조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 점은 20년대 이후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던 소인극활동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외국의 현장공연활동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국내의 소인극활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모순성을 드러내었으며, 그 모순성이야말로 이론과 실재 사이의 거리를 만든 원인이 되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로는 [극예술연구회]의 성격이다. [극예술연구회]는 연극인들이 중심이되어 조직된 극단이 아니라 연극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동인제 형식의 모임으로 출발했다. 식민지 조선의 연극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태되어 나온 존재라기 보다는 지식인의 '엘리뜨의식'에 바탕을 두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연구회'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전문적인 극단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외국의 극이론을 소개하여 연극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정도의 목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점은 그들이 활동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실험무대]는 대중적 오락내지 대중적 취미에 영합하랴는 일체의 추종적 아편적 경향을 배격한다. 왜그러냐? 그 이유는 단순하다. 조선가튼 사회에 잇서서 극예술의 가지는 본질적 사명의 분야는 대중을 교화하는 문화운동의 일부분이 되어야하기 　문이다.

라고 한 이헌구와 동일한 발언을 계속하지만,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처럼 막연한 계몽적 연극관과 더불어 공연을 담당할 수 있는 자가 홍해성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역량부족으로 인해 일본에서 이루어졌던 연극을 재탕하는 선에서 머물고 만다. 그로인해 심훈으로부터 "번역극을 집어 치우고 차라리 번안을 하야 조선 것을 만들어가지고 무대에 올리"라는 극단적인 비판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도 "실험무대의 현재의 극행동은 신극운동전기에 속하는 것"이며, 현재까지는 "연구적 실험의 과정에서 소극장운동을 임시목표로 하고 잇지마는 그 쥔취를 　라서는 이미 공언한 바와 가티 민중극운동의 미래로 전개될 것이다"라며 옹호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극예술연구회]의 대표적 입장이라고 보아도 좋을 서항석의 설명을 통해 독일의 [자유극장] 방식의 연극운동을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유극장](20년대와 연계) 방식의 연극운동이 식민지 조선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미 20년대에 밝혀졌고, 일본의 [축지소극장]이 이미 그 역할의 한계를 보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극예술연구회]의 지향점에 많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움직임을 빗대어 "조선에 잇서서 축지소극장의 흉내를 내여 분수외의 　을 　다는 나포레온이 전 구주를 토벌하련 것을 지금 　　는 것과 갓다"고 했던 신고송의 견해가 타당성이 있다.
"극이 업는 사회에서 극을 잇게 - 극문화를 세워볼가"하는 차원에서의 활동은[극예술연구회]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킬 수 밖에 없다. 그들은 "결코 반동적이 아닌 범위에서 극행동을 제일의로 함으로 실천이 봉쇄되어 잇지 아니하야 현단계에 잇어서는 가장 실제적 효과를 만히 낼 수 잇다"는 선에 자족하고 만다. 합법적인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자신감은 [극예술연구회]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된다. 그러나 합법적인 공연을 위하여 일제의 검열을 용인해야 했으며, 그로인하여 스스로 자기검열에 충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상업적 연극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만을 내세우고 있는 [극예술연구회]의 입장에서 유치진이 의도한 바를 실험해볼 수 없으리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유치진은 극장공연이 줄 수 없는 관객과의 일치감을 찾기 위해 전통가면극이나 서구의 노동자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극예술연구회]를 뛰쳐나가 진보적 연극활동을 수행할만큼의 의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이론상의 관심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겠다.


Ⅴ. 결 론

본고는 유치진의 초기 연극 활동기에 속하는 1930년대 전반기를 대상으로 하여 그의 연극론과 희곡의 거리를 살펴 본 것이다. 유치진의 초기 연극관은 계몽적.공리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식으로 행장극장을 지지했다. 행장극장을 통해 당대의 민중들에게 보여 줄 극양식으로는 산신문극, 프롤레타리아 레뷰, 슈프레히콜 등을 예로 들었으며, 그러한 작품들은 당대의 현안에 대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고, 공연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연극을 필요로 하는 어느 곳이든지 찾아가서 선전선동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소극장운동을 부정한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되는 데, 입센 이후의 소극장이 대개 일반 민중과는 동떨어진 상태에서 소수의 지식인을 위한 공연장으로 한정되고 만 경향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의 견해로는 신극이 대극장으로 진출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에 휘말려 좋은 연극을 선택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아 이상적이지 못하며,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는 길은 연극을 가지고 수요자인 민중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행장극장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행장연극적인 방식이 연극의 발생 당시의 대중성을 회복하는 길이라 강조하였다.
연극은 공연 예술이기 때문에 대중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유치진 역시 연극의 대중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데, 대중성을 단순하게 수적으로 많은 관객을 모으자는 식이 아니고 공연물과 관객의 정서적 교감이 얼마만큼 원활하게 이루어지느냐의 문제로 보고 있는 점이 신선하다. 유치진은 연극의 대중성을 오락적 대중성과 교화적 대중성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오락적 대중성은 부르조아를 위한 향락본위의 극에 나타나는 것이며, 프롤레타리라를 위한 이데올르기 본위의 연극이 교화적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연극의 대중성이 가장 완벽하게 얻어지는 경우를 극장(연극담당자)과 관객이 일치되는 것으로 보았다. 진정한 대중성은 민중이 연극 공연의 주체이자 향수자가 되었을 때 얻어질 수 있다고 했다. 유치진은 그러한 가능성을 전통 연극인 가면극의 공연 방식에서 발견했으며, 관객이 극중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과 관객들이 개입하더라도 극의 내용이 흩으러지지 않고 공연될 수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유치진의 이러한 견해는 브레히트가 교육극을 시도하면서 내세운 견해와 상당히 닮아 있어 주목을 끈다.
그의 연극론이 당대의 어느 연극인보다도 진보적이고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 작품은 그와 전혀 동떨어진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최초 발표 작품인 <토막>을 위시하여,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獸> <소> 등은 행장극장적인 요소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토막>을 위시하여 모든 작품이 사실적인 무대 설정을 하고 있어 제대로 된 무대를 갖추지 않은 극장이 아니면 공연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서구적 극작술에 의거해 창작된 작품들은 내용의 수정이 어렵게 되어 있어 공연 장소의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탄력성을 거의 지니고 있지 못하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은 당대 농민과 노동자들의 궁핍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행장극장에서 필수적이라 할 선전선동성이 극도로 약화되어 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를 억압하는 세력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을 택하여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도에 대해서도 얼버무리고 만다. 그런 점에서 유치진의 초기 작품은 그가 이론에서 제시했던 행장극장적인 연극 작품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그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소극장운동 용 작품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하겠다.
1930년대 초 유치진에게 나타나는 현상, 즉 이론과 실재 작업 사이의 거리는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그가 가지고 있던 현실 인식의 한계로 인해 진보적 연극을 추진할만한 동력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며, 그 다음은 극예술연구회의 운영 방식으로는 행장연극적인 공연 방식이 애초부터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다. 유치진은 러시아의 노동자 연극을 비롯한 서구의 진보적 연극운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이 지식으로만 존재할 뿐 그 자신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로망 롤랑의 [민중연극론]에서 새로운 연극의 필요성을 결과론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치진의 그러한 성향에다 극예술연구회의 문화엘리뜨적인 속성이 결합되면서 식민지 조선의 어려운 연극 환경에 절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론은 이론대로 작품은 작품대로 따로따로 이루어지는 모순에 빠져들게 되었다.
유치진의 초기 연극 활동에 나타나는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그의 연극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적 요인이 아닌가 생각 한다. 1930년대 후반의 변화에 대해서는 자리를 달리하여 계속 논의하면서 그 점을 천착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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