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시인을 만나다&사이펀이 주목한 시집
초대시인: 유병근 시인
어제의 시는 죽은 시, 언제나 새로움 찾아야
대 담: 송 진(시인, 사이펀 책임편집인) 이효림(시인, 객원편집위원) 안 민(시인, 객원편집위원)
기록 및 정리: 박 솔(시인, 사이펀 편집장) 장 소: 사이펀 편집실
송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사이펀》이 가을호 ‘주목 시집’으로 선정한 시집 『꽃도 물빛을 낯가림 한다』를 펴낸 유병근 시인을 모시고 ‘제5회 사이펀 문학토크 및 주목시집’을 겸한 후배 시인들과 정담의 자리를 마련해 보았습니다. 유병근 선생님의 육십여 년이 넘는 문단 활동의 소중한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유병근: 그냥 그렇게 삽니다(웃음). 나이 들어 가지고 건강이 어떻다 얘기하면 좀 주책스러워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이 든 것만큼 어떤 면에선 건강하지 않아야 돼요. (웃음) 또 나이가 든 만큼 건강해야 돼요.
이효림: 선생님 역설입니다^^
유병근: 그렇죠. 근데 나이 든 사람이 자기 건강을 자랑한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에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되는데, 저는 불행히도 나이에 걸맞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런 점에서...미안합니다^^)
송진: 무슨 말씀을요. 역시 유병근 선생님다운 건강론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건강하셔서 좋은 시 많이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병근: 감사합니다.
송진: 무엇보다 이번에 작가마을 출판사에서 ‘사이펀의 시인들’ 제1호 시집으로 『꽃도 물빛을 낯가림 한다』가 나왔는데요. 선생님 이번이 몇 번째 시집인가요?
유병근: 하도 두서없이 해서 몇 번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열 몇 권(15권) 될 겁니다. 저는 그런 숫자 개념이 굉장히 서툴러요. 가령 예를 들어서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는지를 몰라요. 돈이 많이 있어서 모르는 게 아니고, 그냥 헤아리지 않고 쓰다가 어느 날, 아! 텅 비었네, 그래요. 그런 숫자 개념이 없습니다. 책을 몇 권 냈는지, 하나도 내지 않았는지 그것도 몰라요.
송진: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시인들이 유목인이라 그러잖아요? 선생님도 유목인, 방랑자, 그런 낭만적이고, 자유롭고, 그리고 또 자본주의를 경계하는 그런 말씀으로, 장엄하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시 쓰는 사람들이 어떤 물질에 집착하면 좋은 시 쓰기가 어려워진다고 그러더라고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병근: 네, 맞습니다.
송진: 평생을 경계하셨다는 그런 뜻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네.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또 좋은 시집을 내주셔서 게으른 후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데요. 제가 시집을 읽고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봅니다. 시 ‘육이오’와 ‘심청가였는지’에서 저희가 경험하지 못한 전쟁에 관한 이야기, 피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육이오’의 첫 행 “그가 발 들여놓기도 전에/문이 닫힌다 먼저 들어간 그와/미처 들어가지 못한 그는/서로 안과 밖이다...”- 시 <육이오> 부분 이 부분만 읽어도 저희가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정말 그때 얼마나 급박한 상황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프고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고요. 전쟁에 관한 시를 어떻게 이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시편을 쓰셨는지, 저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떻게 녹여내서 쓰셨는지, 어떤 경험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아서 이런 현대시로 형상화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유병근: 아마 육이오 시를 많이 읽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육이오에 대한 시를 인상 깊게 쓴 분은 전봉건 선생입니다. 육이오 연작이 몇 편 나옵니다. 제가 시 ‘육이오’에 대해 쓰게 된 건 함흥철수, 그 무렵에 미국 수송선-LST(Landing Ship Transportation)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을 제가 많이 알고 있어요. 서로 타려고 그야말로 북새통이었죠, 타야만 내려오니까. 그때 내려온 함경북도 함흥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시의 모티브가 됐죠. 내가 아는 그 양반은 수송선을 타고 거제도로 가서 부산으로 와서 다시 인천으로 이동해서 들어왔어요. 육이오라는 시 제목은 흔한 제목입니다. 어떤 면에서, 신선하지가 못해요.
송진: 현대시에서는 ‘육이오’라는 시는 본 적이 없는데요. 백일장에는 봐도 현대시에서는 육이오는 잘 없었는데요?
유병근: 행사시죠. 전봉건 선생은 육이오 때 군 생활을 한 사람인데, 그 양반이 쓴 ‘육이오’ 연작시가 참 좋아요.
송진: 제목이 ‘육이오’ 라고 있습니까? 네, 한 번 읽어 봐야겠네요.
유병근: 그분이 쓴 시가 우리나라 전쟁 시로써는 대표적인 작품이 될 겁니다. 그 후에 육이오에 관해 쓴 시가 많이 있지만, 그 시가 특출해요. 제가 육이오에 관해 쓴 거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때 그 양반이 탈출할 때의 이미지를 얻어 쓴 것인데, 한 마디로 우리 민족의 아픔이죠.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지만, 십이 열차 타고 이별하고, 영도다리에서 이별하고...이별에 관한 겁니다. 육이오 아픔은 이별의 아픔이죠. 그런 것이 하나의 모티브랄까, 이별이 묻어있죠.
송진: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저도 시집을 부지런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모르는 내용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민: 선생님 반갑습니다. 평소에 굉장히 뵙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작품집을 접하고 큰 충격이랄까, 울림들이 많습니다. 작품이 굉장히 젊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시인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치명적이라고도 하고, 감수성도 상실하고 시가 낡아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거라고 선배들한테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작품을 접하고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예컨대 시, <모처럼 쪽지>에서 “뭉그러진 시간의 진물 터진 내장을 굴리고 있어요”, <진술서를 쓴다>에서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발칙한 고드름을 쓴다”, <거울 속에는>에서는 “참새가 거울이다”, “징역살이 같은 날의 세 칸으로 분리된 감옥 하나”, <숨바꼭질>에서는 “꽃 속에 사자 이빨이 보인다 무서운 이빨을 걷어내고 해바라기 꽃 속에 숨을까”, “무너진 얼음산 어느 골짝에 숨을까”, 이런 시편들을 보고 선생님 작품들이 연세에 비해 젊고 모던해서 놀랐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젊은 시인들보다도 더 젊게 느껴졌습니다. 시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유병근: 안민 시인이나 이효림 시인은 제가 한 번 만나보았으면 하는 그런 시인입니다. 저한테 어려운 거 묻지 마세요.
일동: (웃음)
유병근: 비결은 없고, 단지 생각을 젊게 한다는 게 비결 아닌 비결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주책없는 짓입니다. 아까 서두에서 말했죠. 나이 따라 건강도 따라붙고....시도 나이 따라서 가야 하지만, 저는 또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는 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감각이 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젊은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주책입니다. 제 연배의 많은 시인이 어떤 시의 고정관념 때문에 젊어지려고 하는 관념이 그다지 없습니다. 저는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의 길이 없겠는가 있겠는가를 늘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시라는 것을 보면요, 전부 어떤 행 갈음, 연 갈음, 다 고정되어 있습니다. 고정된 형태의 틀을 깨뜨려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 수 없겠는가 하는 그런 고민을 저는 많이 합니다. 하지만 시를 쓰고 나면 똑같아요. 도로아미타불입니다.(웃음) 고민하지만, 똑같아요. 아까 지하철 타고 오면서 시를 한 편 썼어요. 그 시도 조금 더 새롭게 쓰자 하면서도 나중에 결과는 똑같아요. 오늘 오신 세 분은 제가 부러워하는 잡지입니다. 등단한 잡지가요.(참고: 송진-다층, 이효림-시와반시, 안민-불교문학) 제가 젊은 나이 같으면 그런 잡지로 재 등단했으면 싶다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는데, 그것도 늦은 나이에 등단했습니다. 누가 저한테 언제부터 시를 썼느냐 묻기에, 저는 나이 팔십에 쓰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쓴 시는 제가 다 버립니다. 버리고 새롭게 써야 된다는 관념은 제 머릿속에 항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제가 시집을 냈지만 이 시집도 제가 버려야 됩니다. 버리고 새롭게 나가야 되거든요. 그런 생각이 저로 하여금 조금 더 시를 새롭게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를 구태의연하게 쓰면 쓰나 마납니다. 어제 한 이야기는 오늘 버려야 됩니다. 오늘 한 이야기는 내일 또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이야기가 늘 있음으로써 새로운 시를 쓰게 되는데, 만약 그러지 못하고 어제 한 이야기, 작년에 한 이야기, 스무 살 때 한 이야기, 서른 살 때 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쓴다면 그건 시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시를 써야 한다는 그것 때문에 제 시가 젊지 않은가, 젊은 흉내를 내는 겁니다.
안민: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저희가 시작(詩作)할 때도 방금 말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두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생님 말씀 감사합니다.
이효림: 네. 저도 유병근 선생님께서 조금 전에 말씀하신 팔십 세부터 시를 쓴다고 하신 그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는 어제 썼던 시에 연연하면서, 또 질질 끌려가기도 하곤 합니다.^^ 오늘 제가 간단히 준비를 하면서, 새로웠어요. 저번에 시집하고 이번에 시집하고 보니 아, 전혀 새롭다.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네. 그래서 저번 시집보다 이번 시집이 더 새로워져서 정말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송진: 저번 시집을 갖다 버리셨잖아요!
일동: (하하하하)
이효림: 시집에 대해서 송진 시인과 안민 시인이 말씀해 주셨으니까 저는 평소 글을 쓰면서 궁금했던 것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알면서도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서요. 세포를 깨우듯 일깨우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시 <모래집물 같은>에 보면 “젖은 옛날이 토닥토닥 떨어지고 있어요” 이 부분이 좋더라고요. 토닥토닥 사물을 깨우면 되는 걸, 시에 푸념하고 또 어떻게 쓰지? 하는 고민이 쌓이거든요. 토닥토닥 깨우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선생님은 토닥토닥 깨우세요? 사물들을요?
유병근:... 솔직히 말씀드려서요, 시인은 무당입니다.
이효림: 네.
유병근: 그 이야기는 미당 서정주 선생이 벌써 이야기를 하셨지만, 시인은 저는 무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로써 굿을 하는 무당이죠. 무당 입에서 어떤 말이 자기도 모르게 떨어져요. 옛날에, 그러니까 육이오 전이죠. 1940~50년 그 사이에는 굿을 하는 집이 밤마다 있었어요. 사람들이 아프면 우선 무당부터 불러요. 저는 굿 구경을 좋아했어요. 시골에서는 굿 아니면 따로 구경할 게 없습니다. 극장도 없고. 가서 무당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봅니다. 들어보면요. 아주 엉뚱한 말을 많이 합니다. “동에 한라산, 남에 백두산....”
일동: 네. 네. 네.(격하게)
유병근: 근데 그 말이 틀리잖아요, 틀리지만 그게 뭐가 되는 거예요, 그게. 그 이야기를 요즘 떠올리는데요. 시인도 엉뚱한 소리를 해야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시는 과학이 아니잖아요, 자연과학이 아니죠. 자연과학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 거고, 시나 인문과학은 물질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동에 한라산, 남에 백두산...’ 하면, 시인은 남에 백두산이 있다 생각하면 되는 것이죠. 시인은 무엇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 시가 아니다. 엉뚱한 행위를 많이 하는 겁니다. 저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말 끼워 넣기.
유병근: (탁자에 놓인 꽃 화분을 가리키며) 여기 탁자에 꽃이 있는데요. 무슨 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꽃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말을 집어넣거든요. 예를 들면, 기차 타고 어디에 갑니다. 어디를 가다가 마차가 지나 간다 또는, 상여가 지나간다. 엉뚱한 말을 끼워 넣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생각이 좀 젊지 않겠는가, 제 나름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시를 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자기 시 이론을 공부하잖아요. 시 이론을 마스터하는 거죠. 마스터한 그 이론을 기본으로 해서 자기 나름의 시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근데 시 이론에 그대로 매이게 되면 시가 안 돼요. 제 나름대로 새로운 밑천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거죠. 비유하자면, 장사하는 사람들이 일단 돈을 많이 모읍니다. 그 돈을 밑천으로 해서 또 다른 장사를 하는 거죠. 똑같아요. 시도 장사하는 사람들과 똑같아요.
일동: (웃음)
송진: 선생님 재밌는 비유를 해주셨네요.
이효림: 선명해집니다.
송진: 네. 저도 궁금한 게 있어서.,. <흙수저>라는 시가 있더라고요. 몇 년째 청년 실업으로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렸던 단어가 흙수저인데요. 다이아몬드 수저까지 나오고 그랬는데요. 선생님 시집 안에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시 제목이 많다고 느끼거든요. 거기 맨 마지막행 “허리 어깨 무릎 팔을 밀고 간다”에서 저는 선생님의 몸시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우리 몸의 각 기관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 궁금해졌고요. 어쩌면 이 부분에서 선생님이 중요한 시론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 가 생각하였고요. 몸시에 대해 궁금합니다. 선생님.
유병근: 제목을 ‘금수저’ 하면 시가 안 됩니다. ‘흙수저’ 하면 가장 서민층을 이야기하니까요. ‘허리 어깨 무릎 팔을 밀고 간다’는 전심전력으로 밀고 간다, 저는 그런 뜻으로 썼어요. 그리고 또 서민의 생활이죠. 서민은 온 힘을 다해 전심전력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흙수저와 연관된다. 저는 이 시를 다 쓴 다음에 흙수저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이 시는 가장 하층계급에 있는 사람들의 시다. 제가 생각하는 시는 고급 패턴이 아니고, 가장 서민적이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을 저는 언어로 건져 올리려고 해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위에 있는 사람들이 돌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인들만이라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거를 건져 올려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시 언어는 정치가가 쓰는 알아듣지도 못할 고급 언어가 아니고, 우리 시인이 쓰는 언어는 흙구덩이에 묻은 언어, 폐광 속에 묻힌 언어, 쓰레기통에 묻힌 언어, 그런 것을 찾아 쓰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다. 바로 그것이 언어를 살리는 길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흙수저라는 제목을 붙인 겁니다. 실제 이 시는 흙수저와 가히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시는 손수레를 밀고 가는 노인에게서 이미지를 얻었는데, 그 사람들이 손수레를 밀고 갈 때 전력으로 밀고 가요. ‘머리 어깨 무릎 팔을 밀고 간다’ 바로 그겁니다.
송진: 선생님이 그렇게 쓰셨더라도... 자유롭고 모던하고 감각적이잖아요. 각 부분에 대해서 분리했다가 합쳤다가 그런 상상력을 많이 가지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팔은 팔, 다리는 다리, 구분하지 않더라도. 어떤 시어들 낱말이라든지 사물이라든지. 예를 들어 쿠키와 식물을 갖다 붙였다 뗐다, 도로와 강아지를 붙이던가 뗐다 하며 무의식중에 자유자재로 언어를 갖고 노시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허리 어깨 무릎 팔은’ 무의식중에 그런 게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질문을 드려봤습니다.
유병근: 허리 어깨 무릎 팔은 하나하나의 몸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한 거죠.
안민: 엉뚱한 이야기, 말 끼워 넣기, 무당의 언어를 말씀하셨는데, 저도 유병근 선생님 작품집을 보고 송진 시인이 말씀한 바로 그, 무의식의 깊음을 느꼈습니다. 저의 시작(詩作)에서의 고민이기도 한데요. 무의식에 치중하다 보면, (변의수 선생님은 비의식이라는 표현도 하셨는데) 시가 관념화되어간다, 주제가 불분명하다고도 비판을 듣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주제에 치중하다 보면 전형적인 시 창작의 정형화된 틀에 얽매여 시가 찍혀져 나오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그런 부분들이 싫어서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시작을 해야 하는지 요즘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유병근: 예를 들어 공기, 바람, 언어 다 관념어죠. 근데 그걸 구체화하는 거죠. ‘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하게 되면 관념어가 되어 버려요. 어떤 공기냐. 공기를 구체적으로 보면, 그 공기는 둥근 공기, 세모 공기, 네모 공기도 있어요. 공기도 각이 있어요, 둥근 각, 각이 진 것, 네모짜리도 있어요. 어떨 때는 공기가 둥그냐, 분위기가 좋을 때는 공기가 둥급니다.
일동: 네^^
유병근: 분위기가 살벌할 때는 공기가 세모짜립니다. 삼각형입니다, 아주 날카로운 그런 삼각형. 뭔가 분위기가 정확할 때 그때는 공기가 네모짜리입니다. 공기 속으로 들어간다 공기는 네모짜리다 네모짜리 문을 열고 누가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관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되죠. 관념어를 구체어로 바꾸는 것이 좋아요. 바람이 지나갑니다. 어떤 바람이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뛰어가는 머리카락처럼 바람이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요. 또 느린 바람이 지나갈 때는 늙은이가 천천히 걸어가듯이 지나간다 하게 되면, 어떤 바람이 지나가는지를 알 수가 있죠. 그 바람 속에는 꽃향기가 들어 있어요. 달콤한 바람이 있어요.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찡그린 바람이 지나가겠죠. 그래서 저는 관념어를 구체화할 때 그렇게 하고 있어요. 모든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는 연습을 제 나름대로 하고 있어요. 이미 습득한 시론을 계속하면 그 시론에 의한 시를 쓸 수밖에 없어요.시론을 습득한 후 그 시론을 벗어나게 되면 새로운 자기 나름대로 시론이 생기게 됩니다.
안민 : 우문의 현답을 해주셨습니다.
유병근 : 제가 말한 게 엉터리일 수도 있어요. 엉터리이지만 제 나름대로는 그것이 엉터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송진: 오늘 구체적인 시작법을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예전의 얘기로 잠깐 돌아가 볼까 싶어요. 1954년에 ‘신작품’ 동인으로 등단하신 걸 알고 있는데요. 당시에 ‘신작품’ 동인으로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 고석규 선생님, 조영서 선생님이 계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만약, 고석규 선생님이 일찍 작고하지 않으셨더라면, 선생님의 문단 활동이 더 확장되었으리라 개인적으로 생각되는데요.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일화를 말씀해주셔도 좋고요.
유병근: 제 밑천을 다 들추는데... 아까도 얘기했듯이 실제로 제가 시를 쓴 것은 팔십이 넘어서 시를 쓴 건데... 그때 시 쓴 거는 전부 다 연습입니다. 그러니까 1954년 12월 무렵 <신작품 8집>이 나왔습니다. 8집으로 끝났죠. 전시, 전란 통이니까. 그나마 8집 때에야 인쇄본이 나왔습니다. 그 전에는 프린터 물 같은 형태였죠. 1954년에 해군 사병으로 있었어요. 해군본부가 그때 부산에 있었어요. 전란 때니까. 그 당시에 《사상계》로 등단한 윤일주 시인이 있었어요. 윤동주 시인의 동생인데......
일동: 사상계라면 이유경, 강은교 선생님이 등단한......당시에 사상계가 대단했었지요?
유병근: 네. 사상계로 등단한 윤일주 씨가 당시 해군 대위였습니다. 해군 시설감시를 했어요. 지금의 건축설계 등을 돌보는 일이었죠. 저는 통신감시에서 근무했고요. 흔히 그런 말을 하잖아요. “꾼은 꾼끼리 모인다.”고. 한번은 제 눈에 윤일주 씨가 보여요.
일동: 네^^
유병근: 제가 윤일주 씨를 찾아갔죠. 졸병이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이 양반이 굉장히 반갑게 여겨요. 계급을 떠나서 시를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갑자기 친해졌어요. 윤일주 씨 덕에 제가 외출을 많이 했어요. 근무 끝나면 윤일주 장교가 저를 나가자고 하니까 외출증 없이 제가 밖에 나가요.
송진: 책에 나가도 되는 얘기입니까?^^
유병근: 헌병이 모른 척했어요. 장교랑 나가니까. 국제신보사(지금의 국제신문)에 저를 데리고 가서 김규태, 조영서 씨를 만나게 됐죠. 그때 고석규, 손경하, 하연승, 조영서 씨가 신작품 동인회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뒤에 합류해서 자주 어울렸죠. 윤일주, 김규태, 조영서, 고석규 씨랑 자주 어울렸어요. 현재 시작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서울에 있는 조영서 씨입니다. 함흥 출신인 고석규 씨랑 특히 친했죠. 고석규 씨가 주로 발행비를 대고 있었는데, 갑자기 타계하는 바람에 동인회가 8집으로 끝나 버렸어요. 그 이후에는 생활하느라 시를 잠시 중단했죠. 시 쓰는 것이 생활이 안 되니까 자연스럽게 해산이 됐죠. 그러다 누가 그랬는지 정식으로 등단을 권유하는 바람에 70년에 등단을 하게 됐죠. 등단 후, 작품 활동을 그러나 못했죠. 제대 후 미 8군 통신사령부에서 근무했어요. 쉽게 말하면, 전신전화국 역할을 하는 곳이죠. 그때는 진공관 시대였어요.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데. 진공관 이론을 공부하느라 시 못 썼어요. 제가 독학을 했어요, 전자공학을. 때문에 시를 못 썼어요. 우선 생활을 해야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요즘도 자기 직업이 있는 다음에 시 써라 그런 말을 하죠. 시 써서 돈이 안 되잖아요.
일동: 네.
유병근: 제 손자 놈이 대학생인데... 시를 써요. 하지만 다음에 취직한 다음에 시 써라. 쓰는 거는 환영한다. 모든 젊은이들한테 저는 그래요. 저는 1970년에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는데... 그러고 시를 안 썼어요. 고석규 씨가 등단 기념으로 제게 시집을 내라고 했는데... 그 전에 고석규 씨가 <연안>이라는 연작시를 썼어요. 그래서, 제 첫 시집 제목이 연안집입니다. 그리고서는 시 안 썼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시는 팔십이 넘어서 썼어요. 팔십 넘으니까 시가 무엇이다 약간 감이 와요. 그래서 제가 팔십 넘어서 시를 쓴 거다 하죠.
송진: 선생님께서는 서울 바라기를 하지 않고 평생을 부산에서만 창작 활동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워낙 시작(詩作)에만 몰두하시고 알리려고 다니시지도 않는 것 같아요. 시인은 시만 잘 쓰면 된다, 하시는데 아쉬운 점은 없으세요? 어떠세요, 부산에서만 활동하시는 점에서 만족도는 높으신가요?
유병근: 네. 저는 저 스스로는 만족합니다. 근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권하지는 않아요. 해 보니까 손해라는 거예요.
일동: (웃음)
송진: 어떤 점에서 손해라는 겁니까?^^
유병근: 시 쓰면서 적당하게 어울리고 적당하게 시 쓰고 그렇게 해야 돼요. 저는 적당히 어울리지 못했어요. 저는 술을 못하거든요. 김규태 씨가 살아있을 때 그런 말을 했어요. ‘이형이 술 할 줄 알았으면 우리하고 같이 어울리면 참 좋은데...’ 그런 말을 했어요. 어울리지 못하니까 자연히 외톨이입니다. 술 못 먹는 사람이 술상에 앉으면 밉상입니다. 안주만 집어 먹고. 술 안 먹는 사람은 술자리가 지루해요.
송진: 담배도 안 태우는 거로 알고 있는데......
유병근: 저는 어울릴 줄 모르니까 시도 혼자 씁니다. 혼자 쓰니까 시도 내가 제일 잘 쓴다 그런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밖으로 나오면 내가 제일 시를 못 씁니다, 왜냐하면, 남의 영향을 받아야 하고요. 남의 시를 읽으면 왜 난 이것 밖에 못 쓰는가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아까 제가 오면서 쓴 시가 있습니다. 낙서가 있습니다.
송진: 신작이신데......
유병근: 낙서를 한 게 있습니다.
<한때 밥그릇이었다가 퍼 담을수록 새는 물그릇이 된 나는 우여곡절이다 비둘기를 탄 적이 있다 메밀국수를 파는 저기서 후딱 국수 한 그릇 땡 처리하고 한동안 졸음에 빠져 코를 골았다 인생이 어디 별 것이던가 때로 신발 끈이 풀리고 허리 숙인 채 흙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어제 읽은 구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잠겼던 재채기가 또 터진다 디오게네스는 디오게네스 무슨 개똥철학이냐고 나는 나를 빈정거린다 이유도 없이 무슨 논리 같은 것으로 따지지 않는다 조금 전에도 비둘기가 지나간다> 이렇게 낙서를 한 게 있습니다.
일동 : (박수!^^) 낙서가 아닌데요.
송진: 감사합니다. 지하철 2호선 타고 다니면서 쓰신...
유병근: 네. 이번 시집의 8~9할 정도가 지하철에서 쓴 시입니다. 왜냐하면 지하철에 앉아 있으면 맞은편 사람 보기도 그렇고, 이런 글을 쓰다 보면 금방 지나가요.
송진: 네. 제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만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반가워 인사한 적이 있는데, 늘 펜과 종이가 호주머니에 항상 꽂혀 있어요. 언제든지 시를 쓸 준비가 되어 계시더라고요. 선생님이 정말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고 아마 전국을 통틀어 선생님 연세에 이만큼 촘촘하게 시어를 엮어내시는 분이 과연 몇 되겠는 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돈데요. 후배 시인들도 선생님 성함만 나오면 다 고개를 움츠리거든요. 정말 유병근 선생님 반만 따라가도 좋겠다,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시를 쓰시는지 우리가 부끄럽다, 하기도 하는데요. 그 많은 시를 지하철에서 쓰셨다니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시인으로서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나 마음가짐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일 겁니다.
유병근: 저보다 안민, 이효림 시인이 더 잘 알 것입니다. 시는 어떤 면에서 비생산적이죠. 사회에서는 시인이다 하면 저 친구 가난한 친구다 하죠. 당연한 얘깁니다. 쓸모없는 친구다. 그러죠. 왜냐, 경제학이나 정치, 그림이나 하면 돈이 되죠. 근데 시는 돈이 안 되죠. 근데 시인이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시인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언어가 새로워져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지만, 시인은 언어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 면에서 시인이 대접받아야 돼요, 원래는. 그런데, 정치인들이 시인을 모릅니다. 저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알고 있어요. 시인은 열외입니다. 자기네 관심 밖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예 기금 같은 거나 뭐라나 쥐꼬리만큼 줘 놓고 많이 줬다 그래요.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바라보기보다는 자기 작품에 대해서 우선 치열한 것이 가장 좋아요. 끊임없이 시를 생각해야 돼요. 밥을 먹을 때도 생각해야 되고 화장실에 가서도, 세수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시를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해야만 자기 나름대로 시의 세계를 정립시킬 수 있지 않겠는 가 그리 생각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시에는 선배 후배가 없습니다. 제가 전에 선배 시인한테 건방지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선배시인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먼저 등단한 사람이 선배 시인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고 있잖아요. 근데 시인은 선배 후배가 없습니다. 시 세계는 계급 사회가 아니거든요. 시 잘 쓰는 이 시인이나 안 시인이 선배입니다. 왜냐 저한테 선배이거든요. 저보다 훨씬 시를 잘 쓰기 때문이에요.
이효림: 무슨 말씀을.... 오늘 잘못 나온 거 같습니다.^^
유병근: 이건 제 시론입니다. 단지 나를 선배로 알아달라고 할 때는 선배로 해줘야 돼요. 그 외에는 선배 후배가 없습니다. 오늘의 선배가 내일의 후배가 될 수 있습니다. 내일의 후배가 오늘의 선배가 될 수 있습니다. 시는 어떤 작품을 쓰느냐에 따라서 어떤 열정을 갖느냐에 따라서 선후배가 정해집니다. 굳이 선후배라 할 것도 없지만요.
이효림: 저는 또 궁금한 것이 시 창작은 오감의 열고 닫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물의 내면세계와 뜻깊은 교감과 사물의 다른 점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이에 대해 흔히 우리가 잊고 있거나 쉽게 놓치거나 생각을 잘못하여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유병근: (비타 파워를 들며) 지금 이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의 목을 따면 액체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우리를 평화롭게 만드는, 우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이 이 속에 들어있어요. 이 속에 액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액체라고 하는 꽃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병을 따니까 그 꽃이 밖으로 나와요. 그래서 우리가 마시는 것은 그 꽃을 마시는 겁니다. 그런데 시인들 다 그렇게 생각하죠.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송진: 마술이 갑자기 하나...나왔네요.
유병근: 모든 걸 그렇게 보자는 거죠.
송진: 선생님 상상력이 뛰어나니까 그런 거죠.
유병근: 편지를 써 가지고 봉투 안에 집어넣잖아요. 편지지를 넣는 것은 내 마음을 그 속에 집어넣는 거죠. 그러니까 내 마음이 가는 겁니다.
이효림: 편지와 같이요.
유병근: 사물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남다른 시가 되지 않겠는가. 근데 시와 반시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마 그런 걸 겁니다. 제 나름대로 생 각하는 시론이라면 론(論)이고 시반이라면 반(反)입니다.
송진: 선생님, 시에서 주전부리가 좀 나오는데요. 좋아하시는 음식이나 동물 같은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유병근: 제가 불행히도 동물은 거의 안 좋아해요.
송진: 아, 그렇습니까^^
이효림: 선생님 저는 모자란 점이 너무 많아서 어디 가서 끼지도 못하고, 술도 못하고, 춤도, 노래도 못하거든요. 저 스스로 열외입니다. 시의 열외가 되어 위축되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모임에 가면 그렇습니다. 오늘 선생님 뵈니까 한 시름이 좀 없어집니다.^^
유병근: 위축될 거 조금도 없습니다. 너는 그렇게 놀아라 나는 이렇게 논다 그러면 돼요. 근데 보통 시를 하는 사람들 동물을 좋아하는데요. 개, 고양이... 아마 인정머리가 없어서 그런지 저는 동물을 좋아하진 않아요. 군것질은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컴퓨터 앞에서 군것질하는 동안 생각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또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고 그래요. 그래서 군것질을 좋아하고요. 요즘은... 저... 긴 글을 읽으면 머리가 좀 아파요.
이효림: 아, 네 그 점에 대해서 질문을 하겠습니다. 요즘의 긴 시들은 할 말은 다 하되 매무새가 잘 되어 있어서 읽고 나면 마음에 누룽지가 남지 않아서 참 편하기는 해요. 한편으로는 상상의 문을 탁! 닫아버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괜히 속상하더라고요, 시를 읽고 나면요. 그래서 시의 처음인 간결과 압축이 시를 어떻게 단단하게 하는지, 살아서 움직이게 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유병근: 저보다 이효림 시인이 더 잘 알 건데... 요즘 젊은 시인들이 시에서 굉장히 말이 많아요. 좋은 점이라면 좋은 점이고, 나쁜 점이라면 나쁜 점이고. 그래서 어떤 것이 우월하다고 정할 수는 없어요. 근데 시가 지나치게 간결하게 되면 또 재미없어요. 여운이 없어요. 뭔가 군더더기가 있으면 여운이 있어요. 길게 쓰는 것도 괜찮아요. 서울에 서정춘 씨가 굉장히 짧은 시를 쓰거든요. 짧으면 짧은 대로 압축이 있어서 좋거든요. 그렇지만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해요. 시공부하는 사람은 긴 시라야 되요. 그 속의 이야기를 알 수 있고... 지나치게 압축된 시는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도움이 별로 되지 않아요.
송진: 선생님 시에서 여자 분이 잘 등장하지 않는데요. 근데, 이번 시집에서 <그녀 나들이>라고 나오고, 부모님 얘기도 잘 안 나오는데, 시 <모래집물 같은>에서 부모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님 이야기도 들어 볼 기회가 될까요?
유병근: 이 시는 제 자서전입니다. 이 시 속에는 제 어머니 아버지가 나와요. 일종의 자서전 같은 겁니다.
송진: 네, 참 귀한 시입니다. 선생님 시에서는 부모님 이야기나 여성과의 연애담 이야기 등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는데... 혹시 사모님을 생각하고 안 적으시는 건 아닌지... 사모님 미인이시라고 들었는데요.(웃음)
유병근: 전에 최영철 씨가 저한테 그런 말을 했어요. 제 시에는 인물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요. 아, 그런가! 하고는 제가 많이 깨달았어요. 누구든지 결점을 말해주지 않으면 결점을 몰라요. 결점을 말해주는 사람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결점을 잘 말 안 해줍니다, 왜냐하면 시인들이 질투가 많아요.
송진: 좋은 시 나올까 봐요?^^
유병근: 저이가 나보다 잘 쓰면 안 된다 그런 질투를 가지고 있어요. 시인들은요. 심지어는 시를 가르치는 사람도 요점을 말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아는 거 다 말해야 돼요. 나보다 시를 잘 쓰면 기분이 좋아요. 그 사람이 나한테 자극이 되니까. 누가 나보다 시를 못 쓰면 자극이 되지 않아요.
송진: 천생 시인이십니다!
유병근: 제가 어느 잡지에서 부산의 어느 원로시인 시를 읽었는데, 읽고 난 뒤 참 싱겁다! 그런 시는 자극이 안 됩니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자극이 될 수 있는 시를 쓰는 것이 좋아요.
이효림: 또 읽고 싶고...
송진: 저희도 좋은 시를 읽게 되면 자극이 많이 되거든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유병근: 근데 질투가 생깁니다. 질투가 안 생기면 시인이 아닙니다.
이효림: 예. 질투가 생깁니다. 이렇게 시를 보다가 아는 사람 시가 나오면 먼저 보고, 이번 거 더 좋다 싶으면 열이 바짝 올라요.^^
송진: 요즘 그런 말 있잖아요. 잡지가 오면요. 자기 아는 시인들 시 먼저 쫘악 읽어보고 안심을 한다 하더라고요. (웃음) 실제로 저도 들은 얘긴데... 봤는데 누가 잘 쓰면 아, 큰일 났다 이 사람이 드디어 나를 뛰어넘었구나! 그런 얘기가 지금...
유병근: 예, 그거 사실입니다. 당나라 문종이 그런 말을 했어요.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고. 문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가볍게 생각한다, 그런 말을 했어요. 그 말이 맞아요. 돈이 안 되니까 그런 말을 하지. 돈이 되면 그런 말을 하지 않죠.
이효림: 저보다 확실히 잘 쓰시고 굉장하다 하시면서도 이번 작품이 에고, 쪼끔 이렇다 싶으면 쪼금 다행이다 이렇게 누가 볼까 봐, 혼자서 이렇게 표정관리를 합니다.(웃음)
송진: 그런 마음들이 시의 맥을 이어온 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병근: 맞아요, 그렇죠. 저하고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 분이 있는데, 시를 잘 써요. 시 아이디어가 좋아요. 솔직히 질투가 생깁니다. 그 질투가 뭐냐면 나를 키우는 힘입니다. 그 질투심 없으면 나를 키우지 못해요. 질투함으로써 내가 성장도 되고. 그래서 좋은 시를 읽는 게 좋죠.
송진: 저도 막내딸이 시를 쓰고 있는데, 그런 말을 했거든요. 절대 시를 경쟁해서는 안 된다. 자기 자신과 경쟁을 해야지,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서는 안 된다. 시를 오래 쓸 수가 없다. 지쳐 버린다. 그래서 결국 시는 자기 자신이 끝까지 온몸으로 밀고 갈 수밖에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환경도 탓할 수 없고, 배고픈 정신으로 가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배고프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고.
유병근: 맞아요.
송진: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시를 쓰는 정신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에 대해 집착할 수밖에 없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거라고 그러잖아요. 절대 끊을 수 없는 중독 성분이고, 형벌이고, 족쇄다 하면서 시에 대한 얘기는 밤새도록 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그만큼 시가 거룩한 존재이기도 하고, 또 가장 미천한 존재이기에 모두에게 가 닿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선생님께서는 끊임없이 시작 활동을 해오시고 창작 기금을 받아 계속 시집을 이어오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에 대한 예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벨기에 같은 경우는 예술가들에 대한 예우가 남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한국에서만도 서울보다는 부산이, 부산보다는 또 다른 지역이 열악할 수 있겠지만요. 서류도 복잡하고 기금도 적고... 평생 봐오셨을 텐데 문예 기금을 집행하시는 분께 하고 싶은 말은 없으신지요?
유병근: 창작 기금이 지나치게 관료적입니다. 문화재단 등에서 집행하는 일들은 공식에 의해 일을 진행해 나가는데, 문인들은 그런 공식을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시인들은 두루뭉실하는 거를 좋아해요. 올해만 해도 서류 등 형식이 복잡해서 지원금을 기피하는 사람도 있어요. 서류 때문에. 간소화되었으면 어떻겠는가. 만약 문화재단을 운영하는 고위 인사들이 시인이나 소설가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서류 등 형식이 조금은 달라질 겁니다. 시인이 시집 내서 그냥 갖다 주면 되는 거예요. 지원금 달라 하고요.
일동: 네. 그게 다죠. 가장 간단하죠.
송진: 우리 사회가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이 돈 받아서 술이나 마시나, 어디 쓸까 하는...너무나 복잡한 과정 때문에 시집을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하는 분들도 있는 거 같아요.
유병근: 저는 여기 출판사에 그냥 맡겨버리는 처지예요. 알아서 해주라고. 그런 처지예요.
안민: 네 선생님. 제 경우는 시 창작 동기가 몸이 굉장히 아파서 시작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다음 단계가 세계가 모순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순된 세계에서 탈출해서 세상에 없는 어떤 것을 찾아보자 하다가 그다음으로는 제 안에 무수히 많은 나를 찾는 여행,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 창작 동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유병근: 저한테는 시 창작 동기가 따로 없어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느냐 안 떠오르느냐 그게 중요합니다. 저는 이미지가 떠오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찾아 나서요. 가만히 있으면 안 떠오르니까 찾아 나서요. 과거에 쓴 시 중에 버리는 시도 있지만, 그 시 행간 하나하나에서 이미지를 얻기도 합니다. 저는 시를 다 쓰고 나서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무엇을 끼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시인은 이미지를 떠오르기를 기다려서는 안 돼요. 찾아 나서야 해요. 시의 소재, 시의 동기, 이미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할 게 아니라 떠오르지 않는 것을 떠올려야 돼요. 그것이 바로 시 정신이고 시적 노력이 되는 겁니다. 좋은 시를 쓰려면 좋은 이미지를 헌팅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송진: 이미지 하니까 떠오르는 시인들이 있습니다. 김혜순 시인도 떠오르고요. 박상순, 김경주, 황인찬 등이 떠오르는데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인들 있다면 시 세계를 겸해서 말씀해 주시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유병근: 박상순 시인 시, 슬픈 감자 참 좋았어요. 서점에서 그 시 한 편 보고 시집 샀어요. 저보고 누가 이렇게 동어 반복을 해도 되느냐 물었는데, 동어 반복해서 좋은 시가 있고 안 좋은 시도 있겠죠. 슬픈 감자 200그램 시 참 좋아요. 한 권의 시집 속에 그 한 편 시 때문에 제가 구독하게 됐죠. 흔히, 서울 문단을 중앙문단이라고 하는데, 중앙 아닙니다. 부산은 부산이 중앙이고 서울은 서울이 중앙입니다. 서울 문단, 부산 문단입니다. 서울 해바라기 하는 것도 괜찮지만, 부산도 좋은 것이 많이 있거든요. 어시장으로 얘기하면 자갈치가 있는 부산이 중심이고, 밀감을 말하면 제주도가 중심입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느냐 어디서 좋은 시인이 많이 나오느냐에 따라 그 시인이 있는 곳이 바로 중앙이 되는 거죠. 옛날에는 대구가 시가 강했습니다. 지금도 강하지만. 지금은 부산도 젊은 시인들 강합니다. 사오십, 육십 대가 지금 활발합니다. 옛날에 수도가 부산이 중심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때죠. 시의 중심이 부산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젊은 시인들에게 달렸죠. 칠십 대 이상은 다 갔습니다.
이효림: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질문 추가하자면, 시의 확장, 외연까지는 아니더라도 과학, 수학, 우주까지 시와 거리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보면요. 새롭고 궁금하고 감정의 진동을 느끼는데 마음은 출렁입니다. 책으로 매체로는 쉬운데 시와 전혀 다른 분야라 딱딱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우리 마음이 친해지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는지요?
유병근: 학교 때 수학, 물리, 음악을 못했는데 지금은 후회합니다. 문학에 수학, 물리가 많이 차지합니다. 시는 전 방향입니다. 어떤 하나에 치중되는 것이 아니라 전방향입니다. 과학, 물리, 화학 같은 것이 시에 있어 참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시의 언어는 무한대인데, 무한대의 언어를 시인들이 다 활용을 못 하고 있어요. 시 세계를 확장하려고 시인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시를 시험합니다. 제 경우는 산문시를 썼다가 행갈음 시로 고쳤다가 행갈음 시를 썼다가 산문시로 고치기도 하는데, 제 나름대로의 시도입니다. 독자를 봐서 하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봐서 그렇게 합니다. 독자가 시에 따라와야지 시인이 독자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독자가 내 시를 읽지 않아서 애태울 게 아니라 독자가 읽도록 이끌어 와야 해요. 제가 여기 오는 도중에 시간이 남아 영광도서에 들렀다가 길거리에서 약장수를 만나 노래를 듣고 왔어요. 약장수 노래는 어제 노래나 오늘 노래나 똑같아요. 사람들이 노래의 정서에 끌려서 노래를 들어요. 근데 시는요, 어제 없던 언어를 오늘 써서 시가 새로운 거에 끌려 사람들이 시를 읽게 되는 겁니다. 요즘 독자들이 게을러요. 어떤 책에 보니까 시인의 책임이라는데 시인의 책임 아닙니다. 독자의 책임입니다. 읽지 않는 독자의 문젭니다. 요즘 독자들은 쉬운 거 재밌는 거 원하지만, 독자의 구미에 맞춘 시는 시 아니거든요. 그건 유행가지. 독자가 읽든 말든 내 시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시를 써 나가다 보면 자연히 나중에 독자가 따라옵니다. 시인은 강력한 자석이 되어야 합니다. 강력한 자석이 되면 어떤 독자든지 절로 끌려 들어옵니다.
안민: 네. 선생님 시집 중 <시작 후유증> 부분에 보면 ‘시를 음미하고 하는 독자를 끌어들일망정 독자에게 꼬리를 치며 빌붙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저도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근데, 제 주위에 고급독자도 있고, 딸아이가 문학을 전공합니다. 일동: 네. 배고픈 길을 가려고 하는군요.
안민: 딸아이가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데, “아빠 시는 도대체 이해가 안 돼.”하며, 그럴 때마다 소통의 문제가 생기고, 독자들이 멀어져 가는 게 아닌가 반론을 제기해요. 저는 공감은 하는데, 마음속에 고민은 생기는 거예요. 내 의지와 독자들과의 소통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듣고 보니 그냥 내 방식으로 써야겠다 확신이 서기도 합니다. 보충해서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유병근: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아무도 컴퓨터 이용 못 했어요. 컴퓨터 이용하기 위해서 열심히 이론을 공부한 다음에야 컴퓨터를 다룰 수 있거든요. 시도 마찬가지예요.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공부해야 돼요. 독자들도 공부를 해야 돼요. 이 시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하는 거는 독자가 공부 안 했다는 겁니다. 근데 이런 반론이 생깁니다. 시, 그까짓 공부 하면 뭐 하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고, 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공부하게 되면 절로 알게 됩니다. 저도 요즘 젊은 시인들 시를 잘 모릅니다. 잘 모를 때는 자꾸 읽어요. 자꾸 읽다 보면 알게 되거든요.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아요. 저는 집사람보고 신문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해요. 소리 내어 읽으면 치매도 안 걸리고 건강에 좋다고요. 좋은 시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감흥이 달라져요. 물론 시인에게도 모순이 있겠지만, 독자한테도 모순이 많아요.
송진: 독자들의 문제도 한국교육이 껴안고 갈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유병근: 맞아요.
송진: 지금 현대시가 교과서에 잘 실리지 않는데요. 교과서에 실린다면, 이런 시는 접하면 아이들에게 좋을 것이다 싶은 시, 몇 단계 필터를 거친, 누구나 읽어도 이해하기 쉬운 시들을 선정하여 싣는데요. 저는 아이들에게 시의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현대시가 얼마나 복잡하고 구조가 다양하고 합리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현대시의 문호를 활짝 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독자들에게만 넘기기에는 사회적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송: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릴게요. 이번 시집도 제목이 <꽃도 물빛을 낯가림 한다>고, 저번 시집 제목도 <어깨에 쌓인 무게는 털지 않는다>인데요. 이 두 시집과 제목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시인이 그렇잖아요. 시인이기 때문에 어깨에 쌓인 무게를 느끼려고 온몸으로 끌어안고 가죠. 바로 유병근 선생님이라는 그런 생각하고요. ‘꽃도 물빛을 낯가림 한다’ 이거 역시 선생님이다. 이 꽃이 얼마나 얼마나 예민하고, 수줍고, 시 외에는 다른 건 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쳤으면 꽃도 물빛을 낯가림할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이 꽃도 바로 유병근 선생님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천생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병근: 저는 시인 된 거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솔직히. 옳은 시를 쓰지 못하면서 시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는 엄청나게 부끄럽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저는 시에 열정을 쏟는다고 할까요.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시를 쓰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떤 말이 저도 모르게 입안에서 터져 나옵니다. 그것을 메모해둡니다. 또 쓸데없는 문장이라도 메모를 해두면 쓸 때가 생깁니다. 어느 건축가들이 쓸데없는 거라도 놔두면 나중에 꼭 쓰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 거를 소중하게 다루게 되면 앞으로 시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송진: 선생님 말씀 듣다 보니까 요즘 현대 건축 쪽으로 보러 가면 선생님 말씀하신 그 쓸데없는 재료들이 굉장한 뜻 깊은 장식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나름대로 빛을 발하고 있거든요. 그런 거 보면 선생님이 오늘 이 긴 시간 동안 말씀해 주신 그 모든 말씀이 곳곳에 다 자리를 잡아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긴 시간 고생 많이 하셨고요. 말씀 감사합니다.
유병근: 오늘 제가 많이 배웠어요.
안민: 저희가 많이 배웠습니다. 부산의 선배 선생님들이 오늘 유병근 선생님 뵌다니까, 가장 노력하는 시인이라고 오늘 많이 배울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유병근: 저한테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어요.^^
이효림: 시집 뒤에 보면, 시작 후유증에 ‘지금 가만히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장이 저를 깨우는 거예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시면서 가만히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역설로써 저희한테 말씀을 해주시는구나.
유병근: 거, 잘 보신 겁니다!
이효림: 네. 감사합니다.
송진: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남겨 주십시오. 저는 건강하셔서 선생님 오래오래 시 쓰셨으면 좋겠고, 후배들에게도 언제라도 얼굴 뵐 수 있는 포용력도 저희에게 활짝 열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가져 봅니다. 저희 사이펀에서도 선생님과 자주 대화 나눌 수 있는 시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효림: 선생님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많이 보여 주셔요!
안민: 선생님 행복한 일들이 가득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박솔: 이제 시를 못 쓰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말씀 듣고 보니 또, 시를 써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시 열심히 쓰겠습니다.
송진: 선생님 오늘 여러 목숨 살리셨네요.(웃음)
배재경(발행인): 좋은 시간을 내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일동: 좋은 자리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송진 시인 1999년 《다층》 제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이 있음.
이효림 시인 2007년 《시와 반시》 신인상 당선, 시집 『명랑한 소풍』이 있음.
안민 시인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박솔 시인 2015년 《다층》 신인상 등단. |
첫댓글 유병근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 주옥 같지요.
정말 더웠던 이 날 이 시간 참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유병근 선생님
올해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기를 기원드립니다.
다들 고생 많으셨지요 유병근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새해 늘 건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