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통하는 포르쉐가 996의 후속 997을 발표했다. 이번 시승은 새로운 997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성능을 베이스로 하는 카레라S 모델이다.
포르쉐는 40년 전통을 가진 911시리즈를 중심으로 로드스터인 박스터(Boxster), 고성능 모델 카레라 GT(Carrera GT)를 비롯해 SUV 카이엔에 이르기까지 고성능 모델을 만들어내는 스포츠카의 명가다. 또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와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카와 직접 경쟁을 하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성격을 가진 브랜드라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911시리즈를 경험해본지 약 2년이 넘었고 과거 911(996) 카레라 매뉴얼 변속기의 매력이 지금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996 모델은 993까지 사용하던 공냉식 엔진을 버리고 성능을 향상시켰지만 입문형 포르쉐인 박스터와 부품 공유가 많다는 이유로 포르쉐 매니아들의 원망을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이후 996의 매력에 빠진 매니아들은 다시금 996 모델을 포르쉐의 가족으로 인정해 주긴 했지만 과거 모델들이 갖던 고유한 특징이 사라진 점에 대해 서운했던 것이 사실이다.
997모델은 이런 고객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한 차원 강화된 성능을 자랑하도록 설계되었고 다시금 새로운 911시리즈의 전성기를 예고시키는 모델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승차를 대면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무래도 전면 마스크. 993 이후 사라진 원형의 헤드램프 디자인이 다분히 911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후 필자의 시선을 잡는 것은 리어에 장착된 295mm급의 타이어. 직접 운전해 보지 않아도 리어 타이어가 전하는 카리스마만으로도 이미 고성능이라는 것을 예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박스터에서도 고성능 모델에 S가 붙은 것처럼 CARRERA 라는 이니셜 뒤에 붙은 S자가 더욱 강한 포르쉐임을 실감케 한다.
카레라S에 장착되는 19인치 알루미늄 휠 역시 세련되고 강한 퍼포먼스를 예감하도록 디자인 되었지만 실제 이차를 대하고 있으면 각 부분의 개성이 모두 고성능을 직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분위기다.
리모컨 키를 이용해 도어를 개폐하자 블랙톤의 인테리어 분위기가 필자를 맞는다. 풀 버킷시트라 말하긴 어렵지만 승차감을 살리면서도 코너링에서 필자의 몸을 잡아줄 시트에서 적당한 크기의 스티어링휠까지 모든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간의 전통과 같이 왼손을 사용해 시동을 거는 방법은 동일하다. 단, 996에서 필자가 아쉽게 느꼈던 틸트 기능이 추가된 점이 가장 만족스러운 사항이다. 사실 996에서 이 기능의 부재로 시트 포지션을 잡은 후 스티어링을 잡을 때 왠지 불편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의 만족감은 누구보다 컸다.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모니터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트립컴퓨터 및 CD플레이어, 네비게이션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 한국형 네비게이션이 탑재되지는 않고 있다. 대시보드 상단에 위치하는 크로노미터는 차량의 퍼포먼스를 비롯해 개인의 랩타임을 측정하는데 유용한데 시승차에는 장착되지 않았다. 또한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플러스 옵션을 장착하면 센터페시아 하단에 스포츠 버튼이 마련되는데 BMW에서도 그랬지만 엔진의 반응 및 자동변속기 변속 타이밍, 서스펜션을 스포츠 모드로 바꿔주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인 드라이빙을 할 수 있다. 물론 시승차에 마련된 PASM은 스포츠와 노멀 모드로 변경이 가능한 만큼 서스펜션은 운전자 임의대로 조작이 가능했다.
시동키를 돌리자 그르렁거리는 포르쉐 사운드가 퍼진다. 어찌 보면 탁한 음색이지만 이 사운드가 세계적인 팬을 매료시키는 포르쉐만의 사운드인 만큼 설레임이 없다면 거짓말이 될 것이다. 포르쉐의 자동변속기인 팁트로닉S의 레버를 D레인지로 향하고 시승기를 나섰다.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면서 특이한 엔진의 음색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한다. 시승차의 특성상 엷은 썬 팅도 안 된 이유로 조금은 부담이 느껴진다. 신호 대기 중 출발시에는 보통 2단에서 출발을 하게 되는데 이때 가속페달을 터치만 해주면 즉각 1단으로 바뀌며 튀어나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2단으로 출발해 여유있게 가속해도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카레라S 혼자만 앞서간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도심 내에서 잠자고 있던 엔진이 한 번 더 포효한다. 가속페달을 밟고 rpm이 상승하자 운전자의 맥박과 더불어 엔진 회전이 상승한다. 5천rpm 부근에 달하자 상당한 토크감이 느껴지며 이후 6천rpm을 넘어서면 짜릿한 마력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고속 주행 능력은 다분히 포르쉐다. 2단을 넘어 3단부터 기어비가 길어지긴 하지만 이때부터 상승하는 속도의 폭이 넓어 빠르게 솟구치는 스피드 미터에 신경이 쓰이게 된다. 4단으로 여유 있게 200km/h를 넘어서며 꾸준한 가속은 계속 연장된다. 짧은 스트레이트에서 느껴본 270km/h의 압박은 역시 대단했다. 카레라 S의 메이커 발표 수치는 285km/h에 달하고 있는 엔진의 파워를 감안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시승을 즐기는 코스에 들어서 카레라S의 중저속 능력을 체감해 보기로 했다. 우선 서스펜션 모드를 Sport로 바꾸고 팁트로닉 레버를 매뉴얼로 전환했다. 이때부터는 핸들에 마련된 버튼을 통해서 기어를 조작할 수 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레버를 사용한 수동 변속이 안 된다는 점이다. 물론 버튼만으로도 충분히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레버가 사용될 타이밍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타사와 같은 레버를 통한 변속 모드가 추가되었으면 한다.
주행에 나서자 허리로 부담이 전해지며 차체가 튀어 오른다. 역시 PASM을 Sport 모드로 바꾼 효과가 즉각 나타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반 도로인 만큼 부담에 대한 요소가 커진 이유로 노멀 모드를 사용해 시승을 진행하기로 했다. 단, 서키트와 같이 노면의 굴곡이 적고 일정한 그립을 끌어낼 수 있는 경우라면 단연 Sport 모드가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코스를 향해 가속 페달을 밟자 그르렁 거리는 엔진 사운드가 극에 달한다. 달리는 느낌도 상당하지만 편도 1차선 도로인 만큼 운전자가 받는 압박감 역시 대폭 증가한다. 잠시 후 나타난 코너를 맞아 브레이킹을 가했다. 타이어의 마찰음과 더불어 강력한 제동력이 빛을 발한다. 역시 스포츠카다운 성능이다. 단, 이때 프론트 타이어의 그립이 약한 부족한 느낌이다. 295mm의 리어 타이어는 여유가 있지만 브레이킹 때 하중이 가해지는 프론트 타이어는 역시 이 녀석의 성능에 모자라는 감이 있다.
날카롭게 반응하는 핸들링 감각을 살리며 코너를 클리어 하자 짧은 스트레이트가 펼쳐진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역시 가공할 만한 파워를 도로위에 뿌려놓는다. 이후 코너 진입전 브레이크... 몇 번이 반복되었는지 모르지만 필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좁은 도로의 압박감과 엄청난 가속 성능, 코너를 돌아나가면서도 타이어 마찰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 이 상황에 휘말리다보면 어느새 지쳐가는 드라이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단, 포르쉐 카레라S를 이용해 중저속 와인딩 로드를 즐길 때 아쉬운 부분도 있다. 1~2단의 짧은 기어비와는 달리 3단부터 늘어나는 넓은 기어비는 재가속을 염두에 두는 드라이버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고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저속 코너를 클리어 하고 짧은 스트레이트에서 가속중인 경우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브레이크 포인트를 약 40~50m 남긴 상황에서 3단으로 변속하자니 곧바로 브레이킹 포인트에 다다르게 되며 코너를 클리어하면서 재가속을 하면 떨어진 rpm으로 인해 가속이 느려지는 것이다. 또한 2단으로 계속 가자니 레드존을 향해 솟구친 타코미터의 바늘이 운전자를 압박하기 때문에 도저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변속기의 반응이 빠르긴 하지만 적어도 1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시간 안에 기어를 올렸다 내리는 것도 불가능 하다. 고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5단 자동변속기의 기어비가 운전자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런 이유로 기어비가 타이트하게 조율된 수동 6단변속기가 더 그리워진다. 또한 Audi의 DSG나 BMW SMG 같은 빠른 변속이 가능한 트랜스미션이 탑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그밖에 코너를 클리어 하는 능력이나 운전자가 요청하는 핸들링에 따라 반응하는 차체의 움직임도 완성도 면에서 상당했다. 특히 오버스티어를 295mm 타이어가 방어하고 있는 만큼 오버스티어로 인한 PSM의 개입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단, 전륜 235mm 타이어는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와 같이 녀석의 코너링 성능을 약간 떨어뜨리는 문제를 보였다. 실제 카레라를 타면서 뒤쪽의 트랙션이 충분함에도 가속페달을 밟기 어려웠던 것은 프론트 그립 부족으로 인한 언더스티어 때문이었다. 따라서 탄탄한 후륜의 그립을 감안할 경우 전륜 타이어의 재선택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911을 운전하면서 오버스티어에 대한 부담을 덜어냈다는 것이 누구나 빠르고 손쉽게 운전할 수 있는 차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분명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뒤쪽의 문제를 해결했으면 앞쪽에서 아쉬움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에 있지 않나 싶다.
세월이 지나면 사람도 성숙해가고 차도 성숙해져 간다. 이번 997의 완성도는 과거 996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킴과 동시에 디자인의 회귀가 이뤄져 더 의미가 있다. 소비자가 원하면 바뀌어야 한다는 기업의 기본 원리에 충실한... 이번 카레라는 그렇게 한걸음 더 팬들에게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