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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충북 옥천군)의 유래와 소개
옥천읍의 기록은 1739년의 [여지도서] 이전의 기록을 찾을 수 없고 다만 이 [여지도서]에는 읍내면이라 하여 향청리, 저전리, 고증개리, 고수동리, 향교리, 정곡리, 동안리, 매화리, 대사동리, 석응리, 가화리, 수정리등 12개 리와 군남면에 목금리, 귀일리, 야미리, 송고개리, 신원리, 가척동리, 삼청리, 대야동리등 8개 리로 되어 있다가, 1890년 [신유장적]에서 읍내면의 12개 리 중 정곡리가 부곡리로, 석응리가 석현리로, 가화리(가화리)가 가화리(가화리)로 변하고 신촌리, 역리, 마항리등 3개 리가 늘어나 15개리가 되었고, 군남면의 12개리 외에 장천리, 신대리, 관암리, 서당리, 각리동리, 맹동리등 6개 리가 늘어 14개 리가 되었다.
그 후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읍내면과 군남면을 합병하면서 군남면의 군자와 읍내면의 내자를 합하여 군내면이라 고치고, 사암리, 마항리, 상수, 하수, 금구, 신촌, 삼양, 이문, 하정, 하계, 행동, 죽동, 상계, 외매, 내매, 동애, 고랭, 교동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군남면의 상삼, 중삼, 하삼, 송대, 덕천, 옥풍, 가척, 원각, 서당, 야미, 장천, 대야, 귀화, 귀죽, 귀현의 15리와 군내면의 마항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군내와 군남의 이름을 따서 내남면이라 하고, 마암, 양수, 금구, 삼양, 문정, 죽향, 매화, 동안, 하계, 상계, 교동, 삼청, 가풍, 장야, 대천, 구일, 서대등 7개 리로 개편관할하였는데, 1917년 10월 1일 옥천면이라 고치고 이때 면청사는 죽향리는 83번지에 있었는데 건물이 낡고 군청사를 비롯하여 각 기관이 삼양리와 금구리로 이전하여 오자 1919년 면청사도 금구리 23번지로 이전하였다. 1949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 156호에 의거 옥천읍으로 승격하면서 군서면의 서정리와 옥각리, 동이면의 수지리를 옥천읍에 편입하였다. 1990년 3월 31일 안남면의 오대리를 옥천읍에 편입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읍의 기구가 늘어나 사무실이 협소하여 1978년 11월 5일 옛날 군 청사 자리인 삼양리 222번지로 이전하였다가 청사시설 노후로 1997년 5월20일 문정리 430-10번지에 신청사를 신축 이전하였다.
옥천읍의 마을
죽향리, 문정리, 상계리, 하계리, 교동리, 동안리, 수북리, 매화리, 구일리, 서대리, 가풍리, 삼청리, 대천리, 마암리, 양수리, 금구리, 장야리, 삼양리, 서정리, 옥각리, 오대리
죽향리
죽향리는 원래 읍내면 저전리와 고증개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문정리와 죽향리로 나뉘어 현재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일제 조정때 군내면이 되면서 저전리를 문정리와 죽향리로 나누고 고증개리는 죽향리에 합하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향동과 죽동, 상계리, 이문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죽동과 향동의 이름을 따서 죽향리라 하여 내남면에 편입시켰다. 죽향리는 북동과 탑산이골 두개의 마을로 되어 있다.
문정리
문정리는 원래 읍내면 저전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죽향리와 문정리로 나뉘어 현재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군내면 저전리가 죽향리와 문정리로 나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문리, 신촌, 하계리, 하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문과 하정리의 이름을 따서 문정리라 하여 내남면에 편입하였다. 문정리의 자연마을은 문정, 모산골, 목독거리, 무지랭이, 비석거리 등이 있었으나 아파트가 입주하고 도시형태를 갖추어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상계리
상계리는 원래 읍내면 향청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체 상계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군내면 향청리를 상계리와 하계리로 나누었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계리라 하고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상계리라 이름하게 된 것은 갯골 위쪽이 되므로 위갯골 또는 상계라 하였다고하며, 일설에는 마을 한가운데 큰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마을을 나누어 이름을 지을때 괴목으로부터 윗쪽에 있는 마을을 상괴, 아래쪽에는 하괴라 하다가 이름이 좋지 않다하여 계자를 써서 상계, 하계라 하였다 한다.
하계리
하계리는 원래 읍내면 향청리와 대사동리, 정곡리등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하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군내면이 되면서 향청리가 상계리와 하계리로 나뉘고 부곡리와 대사동리가 하계리로 합하여졌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계리 일부를 합하여 하계리라 하고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교동리
교동리는 원래 읍내면 향교리와 고수동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이 합하여 교동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동과 고냉리 일부를 병합하여 내남면에 편입하였다. 교동리라 한 것은 조선 태조때에 지방의 영재를 기르기 위해 향교를 세웠기 때문에 처음에는 향교리라 부르다가 교동리라 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교동, 섯바탱이, 고수골이 있었으나 고수골 원 마을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교동 저수지가 자리하고 있다.
동안리
동안리는 원래 읍내면 동안리라 불렸으며,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동안리(동안리)를 동안리(동안리)로 고쳐 불렀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때에 내매리와 상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안리라 하여 내남면에 편입하였다. 동안이라 하게 된 것은 옥천읍내 동쪽 안 골짝기에 있으므로 동안(동안) 또는 동안(동안)이 라 하였다 하며, 일설에는 관어가 있는 동쪽의 언덕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수북리
수북리는 원래 군동면 수북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옥천읍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에 때 군동면이 동이면이 되면서 동이면 수북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적구역 폐합에 따라 지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이면에 편입하였다가 1949년 옥천면이 옥천읍으로 승격하면서 동이면에서 옥천읍으로 편입되었다. 수북리라 불리게 된 것은 금강 갯가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마을로는 꾀꼬리와 동경재가 있으며, 화계는 마을 윗쪽에 복숭아나무가 많아 봄이 오면 복숭아 꽃이 떨어져 하천 가득히 떠내려 가므로 "꽃내"라 하다가 한자화하여 화계라 부르게 되었고, 동경재는 옥천에는 동정자와 서정자가 있었는데 동정자는 현재 동경재 마을에 있었고 서정자는 서정리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정자가 있다하여 동정리라 이름하게 되었다 한다.
매화리
매화리는 원래 읍내면 매화리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외매리와 내매리 일부를 합하여 매화리로 다시 고쳐 부르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매화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의 지형이 매화가 땅에 떨어진 형국이라 하여 붙여졌다 한다. 자연마을로는 매화, 구덕재, 산정말 등이 있다.
구일리
구일리는 원래 군내면 귀일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옥천읍 구일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1910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군남면과 읍내면이 합하여 군내면이 되면서 귀일리가 구일리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귀화리, 귀죽리, 귀현리를 병합하여 구일리라 하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구일리라 부르게 된 것은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마을 이름을 새로 지면서 한자화하여 마을이 아홉 마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홉구, 놓일일자를 써서 구일리라 하였으나 현재는 자연마을 한 개 마을이 없어지고, 자구티, 회중골, 진말랑, 새보루, 중골, 토골, 고사리골, 회충골등 8개 마을로 되어 있다.
서대리
서대리는 원래 군남면 송고개리, 신대리, 서당리와 신원리 일부에 속했던 마을로서, 후에 이를 합해 서대리라 하고 옥천읍에 속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당리, 송대리, 하삼리 일부를 병합하여 서당의 서자와 송대의 대자를 따서 서대리라 하였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이 마을에 편입된 송고개리는 솔고개를 말하는 것이며, 신원리는 군남초등학교에서 원각까지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곳에는 김천원이란 관리들의 여행중 숙식을 제공하던 원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자연마을로는 솔고개, 신대, 서당골 등이 있다.
가풍리
가풍리는 원래 군남면 가척동리, 각리동리와 신원리 일부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이를 합하여 가풍리라 하고 옥천읍에 속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옥풍리, 가척리, 원각리, 중삼리, 서당리의 각 일부를 합하여 가척리의 가자와 오옥풍리의 풍자를 따서 가풍리라 하였고 내남면에 편입하였다. 옛 이름인 가척리는 "가자골"을 한자화 하면서 지어졌으며, 원각리는 신원리의 원자와 각리동리의 각자를 한 자씩 원각리라 하였고, 각리동은 현재 원각의 윗마을로 도로변 마을이 되겠고 신원리는 현재 본동에서 군남초등학교에 이르는 곳이 되겠다. 자연마을로는 위가자골, 아래가자골, 난쟁이, 뒤엥이가 있다.
삼청리
삼청리는 원래 군남면에 속해 삼청리라 불리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상삼리, 중삼리, 하삼리, 송대리, 덕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청리라 하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삼청리라 불리게 된 것은 소나무와 잣나무, 대나무가 늘 푸르고 많아서 세 가지가 푸르다 하여 "삼푸리"라 부르다가 "삼파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를 한자화하면서 삼청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안말, 중삼, 태동, 아래말, 중마루, 소정등이 있다.
대천리
대천리는 원래 군남면 대야동리와 맹동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이 합해서 옥천읍에 속하여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대야리와 덕천리의 일부와 군내면 마항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야리의 대자와 덕천리의 천자를 따서 대천리라 하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솔미, 대골, 말라깽이 등이 있다.
마암리
마암리는 원래 읍내면 수정리에 속하였다가 그 후 신촌리와 마항리를 관할하였고 두 마을이 합하여 마암리가 되어 옥천읍에 속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마항리 일부와 사암리를 병합하여 마항리의 마자와 사암리의 암자를 따서 마암리라 하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새말, 윗망기미, 아래망기미, 산정말, 동문거리, 바끄뜰, 물방아기리 등이 있다.
양수리
양수리는 원래 읍내면 수정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옥천읍 양수리라 하여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수리와 하수리를 병합하여 양수리하 하고 내남면에 속하였다. 양수리라 부르게 된 것은 윗수정과 아랫수정의 두양자와 수자를 따서 양수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수정이란 이름은 삼국시대에 관산성에서 길어다 먹던 아주 좋은 샘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한다. 자연 마을로는 윗수정과, 아랫수정, 두 개의 마을이었으나 후에 새마을, 군인주택, 못골 등이 생기었다.
금구리
금구리는 원래 읍내면 가화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금구리가 되고 옥천읍에 소속되어 현재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신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구리라 하고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금구리라 부르게 된 것은 현재의 신기리와 경찰서 사이에 있는 동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이고, 풍수설에 금구몰니라 하여 금거북이가 진흙에 묻혀 있는 명당이란 뜻으로 금구리라 하였다. 금구리는 자연마을로 금구, 음지가, 새터, 공심이골 등이 있다.
장야리
장야리는 원래 군남면 야미리와 장천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을 합하여 장야리가 되고 옥천읍에 속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야미리, 장천리, 송대리 일부를 합하여 장천리의 장자와 야미리의 야자를 한자씩 따서 장야리라 하고 내남면에 속하게 되었다. 야미라 한 것은 "뱀이"를 한자화하면서 야미라 하였고, 장천은 "장내"의 옛 이름을 장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장내, 숫골, 뱀이, 아랫뱀이, 배나무골 등이 있다.
삼양리
본래 옥천읍 군내면 지역인데 1914년 서정리는 원래 군서면 서정자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서정리가 되고 옥천읍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군북일소면의 백석리일부를 병합, 서정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13일 옥천읍으로 승격되면서 군서면에서 옥천읍으로 편입되었다. 서정리라 부르게 된 것은 옥천군의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양쪽에 정자가 있었는데 동쪽에는 동정자가 서쪽에서 서정자가 있었다. 이 마을에는 서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서정자리라 하다가 서정리라 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청중말, 진터벌, 당골 등이 있다.
서정리
본래 옥천읍 군내면 지역인데 1914년 서정리는 원래 군서면 서정자리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서정리가 되고 옥천읍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군북일소면의 백석리일부를 병합, 서정리라 하여 군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13일 옥천읍으로 승격되면서 군서면에서 옥천읍으로 편입되었다. 서정리라 부르게 된 것은 옥천군의 관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양쪽에 정자가 있었는데 동쪽에는 동정자가 서쪽에서 서정자가 있었다. 이 마을에는 서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서정자리라 하다가 서정리라 하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청중말, 진터벌, 당골 등이 있다.
옥각리
옥각리는 원래 군서면 서정자리에 속해 있다가 후에 옥곤리와 각신리로 분구되었다가 후에 옥가리가 되어 옥천읍에 속해 오늘에 이른다. 191 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옥곤리와 각신리 일부와 군북일소면의 백석리 일부를 폐합하여 옥곤리의 옥자와 각신리의 각자를 한 자씩 따서 옥각리라 하고 군서면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옥천읍이 승격이 되면서 옥천읍으로 속하게 되었다. 옛 이름의 옥곤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 뒷산에 차돌이 옥같이 박혔다 하여 구슬옥자와 산이름곤자를 써서 "옥곤"이라 부르다 외꼰으로 변하였고, 각신리는 마을 앞에 이지당인 신각서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마을로는 외꼰, 각신이 있다.
오대리
오대리는 원래 안남면으로 오유상리와 유포리를 합하여 이루어진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에 오유리와 유포리, 대곡리, 포내리를 병합하여 오유리의 오자와 대곡리의 대자를 취하여 오대리라 하였다. 1990년 3월 31일 옥천군 조례 1229호에 의해 옥천읍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오유상리는 옛 우리말로 "오리티"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하면서 오유상리라 하였는데 이는 도연명의 오유를 상징하여 오유상리하 하였다 한다. 보내는 강가에 잇는 마을이라 하여 "보내"라 부르다가 한자화하면서 보내라 쓰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버들개, 텃골, 오리티, 보내, 용노골이 있었으나 대청댐 수몰로 오리티와 보내에 몇집만 남고 그 외의 주민들은 전부 이주하고 집들은 물속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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