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부자들의 자녀 교육
너희들에게 돈을 물려주지는 않겠다!
** 후손 대대로 놀고먹을 만큼 돈을 많이 번 세계적인 부자들은 과연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대로 된 부자는 그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면 그 돈을 감당할 만한 교육을 철저히 한 다음에야 재산을 물려준다. 왜냐하면, 그 엄청난 부에 깔려 죽기 십상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대에 부가 흩어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부자 가문이 많다. 진짜 부자는 자신이 부를 일굴 수 있던 힘이야말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 " 책 속에 세상이 들어 있단다"
- 컴퓨터 시대가 낳은 부자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어릴 적만 해도, 사업할 만한 싹이 보이지 않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경쟁
을 두려워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게다가 키가 작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고, 웃옷의 목까지 단추를 채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가 다닌 뷰리지 초등학교는, 공부 잘하는 남학생이 왕따가 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빌 게이츠는 왕따가 되기 싫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만 열심히 공부했다. 이를 걱정한 그의 부모는, 중고등학교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모인 레이크사이드라는 명문 학교에 그를 보냈다. 적절한 경쟁에 노출되자 빌 게이츠의 능력은 빛을 냈고, 전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된 것도 그때였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프로그램을 제작해 주며 돈을 벌기 시작한 빌 게이츠는, 친구들과 교사들에게 "스무 번째 생일이 되기 전에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수학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빌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뿐 아니라 프린스턴 대학과 예일 대학 등 쟁쟁한 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았다. 사업에 뜻을 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업을 하려고 했지만, 부모는 아들에게 좀더 똑똑한 학생들과 경쟁해 보라며 하버드 대학에 입학시켰다.
아버지는 빌 게이츠가 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을 할 때도 중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번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초창기에 스티브 발머가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당시 빌 게이츠는 경영을 도와줄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스티브 발머를 보더니 빌 게이츠를 조용히 불러 반드시 스티브를 잡아야 해. 그 아이가 바로 네게 필요한 사람이야 하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단단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이 되었다.
그의 부모는 정보의 보고인 책을 가깝게 여기고 독서광이 되도록 이끌어 주기도 했다. 자녀가 책 읽는 데 집중하도록 주중에는 텔레비전 보는 것을 금지하고 주말에만 보도록 했다. 빌 게이츠는 커서도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다. 텔레비전이 재미없는 게 아니라 시간을 텔레비전을 보면서 쓰는 게 아깝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일곱 살 때 부모가 사 준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A에서 시작해서 P까지 읽은 후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유명한 사람의 전기를 읽는 것이다. 루스벨트, 나폴레옹, 뉴턴 등의 전기를 읽어 나가면서 성공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이 밖에도 공상과학 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는 어른이 돼서도 정기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저택에 있는 도서관에는 책이 무려 1만 4천 권이나 있다.
빌 게이츠는 천재적인 감각이 있는 프로그래머이자 사업가다. 그렇다 해도 그의 부모가 그를 내성적인 소년에서 도전적인 사업가로 길러 내지 못했다면, 어쩌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능력을 썩히면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능력을 찾아 크게 꽃피울 수 있게 한 부모의 교육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 재산은 신이 잠시 맡겨 놓은 것일 뿐
- 아버지의 뒤를 잇는 부자 록펠러 2세
록펠러 2세는 20세기 초 세계 최고 부자였던 존 데이비드 록펠러의 외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부를 물려받아 유지하고 다시 불려 낸, 즉 자기 대에서 부를 다시 한 번 꽃피운 인물이다.
그의 자녀는 아버지가 주는 용돈을 잘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용돈을 버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더 많은 용돈을 받기 원한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집안 일을 해야 했다. 어릴 때부터 돈은 공짜로 남이 주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벌어야 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몸으로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집에는 아이들이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해, 정해진 가격이 매겨져 있다. 노력을 기울여 한 일에 대한 대가로 용돈을 늘릴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예컨대 아이들이 다락방에서 쥐를 잡으면, 한 마리에 5센트를 받을 수 있었다. 파리를 잡으면 100마리에 10센트의 대가를 받았다.
아이들이 산책 코스를 걸으면 1마일에 10센트씩 주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스물한 살 때까지 금연, 금주를 한다면 2천500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고 제시하기까지 했다. 이 상금은 여섯 아이 가운데 세 명이 받아 챙겼다.
록펠러 2세 부부는, 집안에 부가 없어도 세상에 나가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되려면 독립심을 키워 주는 게 중요했다. 부부는 수요일 저녁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아이들끼리만 한 끼 식사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날이 되면 아이들은 식모나 급사들한테서 도움을 받지 않고 밀가루를 체질하고 채소를 썰어서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다림질하는 법도 가르쳤다. 하루는 둘째 아들 넬슨이 마당에서 잡초를 솎아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정원사가 다가와 "도련님, 도와드릴까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넬슨은 정색하며 만류하고는, "그러지 마세요. 내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엄마가 점검하러 올 거예요" 하고 말했다. 록펠러 2세 부부는 아이들에게 용돈 교육을 하고 집안 일을 시키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부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록펠러 2세의 금전 교육을 충실히 받은 록펠러 3세는, 역시 절약 습관이 뛰어났다. 그는 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마다하고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다. 출장을 갈 때도, 사무실에서 오전에 나와 점심때 공항에 도착하면, 핫도그와 우유 한 잔으로 점심을 때우곤 했다. 오늘날 록펠러 제국은 이런 후손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록펠러 2세의 막내아들은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현명한 부모가 제대로 인도해 주지 않은 재산 상속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 밑바닥부터 시작해라
- 최초의 억만장자로 인정받은 폴 게티
폴 게티가 미국 최고의 부자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57년 <포춘>이 미국의 400대 부자 순위를 처음으로 집계해 발표하면서 1위로 폴 게티를 올렸을 때다. 당시 그는 최초로 억만장자로 일컬어졌다.
아버지는 그에게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보다는 실제로 세상에 데리고 나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아버지는 10대였던 폴 게티를 자신의 사업 현장에 데리고 가기를 좋아했다. 노동자들과 어울려 유정을 시추하는 현장을 보는 것은, 아들에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생생한 경험이었다. 폴 게티는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들려주는 유정 개발 뒷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폴 게티가 열한 살 때였다. 아버지는 폴 게티의 저축 중에서 5달러를 꺼내 자신의 회사 주식을 사도록 했다. 주당 5센트씩 주식을 발행했으므로, 폴 게티는 100주를 살 수 있었다. 아버지는 주식 증서에 사인해 주면서 "자 봐라. 이제 너는 아버지가 일하는 회사의 주인이 된 거야. 너는 아버지의 보스 중의 한 사람인 거야" 하고 말했다. 사업하는 데에 '내 회사', '내 사업'이라는 주인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려 한 노력이었다.
1909년 열일곱 살이던 폴 게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에게 "아버지 회사의 유전 지대에 가서 일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네가 바닥에서부터 일하고 싶다면 나는 상관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특별 대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아들은 그래도 일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얻은 게 유정 뚫는 일을 보조하는 일이었다.
폴 게티는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하고 3달러를 받았다. 이는 유정을 시추하는 다른 노동자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임금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의 노동자들에게 폴 게티를 사장 아들로 대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노동자들은 그를 이름이 아닌 '어이!'라고 불렀다. 폴 게티는 다른 노동자와 같이 합숙소에서 지내면서 그들과 같이 식사했다. 피곤해서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숙소에 돌아오거나 손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혔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중에 폴 게티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외교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아버지 조지 게티의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1년간만 석유 개발 사업을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교관이 되라고 권했다. 폴 게티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아버지의 사업 본거지인 오클라호마에서 유전 개발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게 하거나 넉넉한 자본을 대 준 것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자신이 그랬듯이 아들이 스스로 '성공의 단맛'을 맛보기를 원했다. 실제로 폴 게티는 첫 유정을 개발하면서 평생 그를 사업에 매진하게 할 만큼 잊지 못할 성공을 맛보게 된다.
폴 게티의 아버지는, 아들을 일찌감치 세상으로 데리고 나가, 직접적인 현장 경험을 시켜 주었다. 폴 게티의 사회생활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셈이다. 그러니 그가 20대에 백만장자가 된 것은, 결코 이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돈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주식 투자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워렌 버핏은, 죽을 때 많은 재산을 자식에게 남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부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녀가 아버지 재산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1986년 <포춘>과 한 인터뷰에서 "진짜 부자는 자녀에게 무언가 일을 해야 할 정도의 재산을 남기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할 재산을 남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워렌 버핏이 자신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자식들의 자선 재단도 아닌 빌 게이츠의 자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자식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올바른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였다.
워렌 버핏은 자식들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나가기를 원했다. 그와 자식들과의 일화들에는, 자식들이 결코 부모에 기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큰딸 수전 버핏은 오래전에, 워싱턴 DC에 있는 공항 주차장에서 주차비로 현금 20달러를 내게 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현금이 없었다. 창에 같이 탄 아버지에게 "20달러만 주세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워렌 버핏은 "수표를 써 주렴" 하고 말했다. 수전 버핏은 20달러짜리 가계수표를 써 주고서야 아버지에게 20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큰아들 하워드 버핏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에게 새 차를 사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차를 사라고 5천 달러를 주기는 했다. 하지만 그 대신 3년 동안의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그리고 졸업 선물을 못 받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게다가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차 값의 부족분 2천500달러를 메워야 했다.
워렌 버핏은 아이들에게 돈 대신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물려주었다. 하워드 버핏은 아버지가 일하던 모습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집에 있는 서재에서 아버지가 무디스의 평가보고서와 같은 것을 읽고 있던 걸 기억한다. 아버지는 정말 열심히 읽으셨다. 아마도 하루에 열여덟 시간을 일했던 것 같다." 그는 또 어릴 적에, 아버지가 투자한 '버펄로뉴스'라는 지역 신문사의 파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사흘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하던 모습도 기억한다.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 결정 과정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하워드 버핏이 자신의 투자 철학을 잘 계승할 것으로 믿고 있다. 하워드 버핏은 자신의 회사와 재단 운영 외에도 1992년부터 아버지 투자 회사인 버크셔해서웨이의 이사도 맡고 있다.
워렌 버핏이 원한 대로, 그의 아이들은 현재 스스로 독립하여 각각 자신들의 길을 걷고 있다. 덤으로 아버지의 돈을 기부 받아 자선 사업에까지 나서고 있다.
* 부자라는 특권 의식을 버려라
- 가족을 다 부자로 만든 샘 월튼
샘 월튼은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과 달리 자녀에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 대신 그는 자녀가 막대한 재산
을 물려받고 빈둥거리지 않도록 가정교육과 경제교육을 철저하게 했다. 그가 자녀들에게 가르친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부자라는 특권 의식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부자라는 의식을 버려야 돈을 벌 수 있고 부를 대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가르침 덕분에 샘 월튼의 자녀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고도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특권 의식을 가지지 않는 대신, 독립심이 강하고 쓸데없는 돈을 쓰지 않는 성인으로 자라났다.
샘 월튼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돈의 소중함을 일깨우려고 자신의 가게에 나와서 일하도록 했고, 신문 배달 등을 통해서 용돈을 벌도록 했다. 자신이 어릴 적에 신문 배달로 용돈을 벌었던 것을 따라하게 한 것이다.
큰아들 롭 월튼은 어릴 때, 학교가 끝난 후에 아버지 가게에서 상자를 나르고 바닥 청소를 하고 타일을 까는 등의 궂은일을 해야 했다. 여름 방학이면 오히려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일하는 대가로 용돈을 받기는 했지만, 친구들보다 용돈 액수는 적었다. 그리고 더 많은 용돈을 벌려고 신문 배달을 했다. 둘째 존 월튼과 셋째 짐 월튼도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고 신문 배달도 했다. 막내딸 앨리스 월튼은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음에도 아버지의 교육에서 열외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 가게에 나가서 일해야 했는데, 주로 사탕과 팝콘 코너를 맡았다.
2001년 존 월튼의 아들인 루크 월튼이 학교에 들어갔을 때 일이다. 존 월튼은 학교를 찾아가 교장에게
"학교에 필요한 시설이 없나요?" 하고 물었다. <포브스>에 따르면 당시 그의 재산은 187억 달러로 세계 8위의 부자였다. 교장은 아이들이 수업을 빼먹고 도망간다면 학교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마도 교장은 억만장자인 존 월튼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러 며칠 사이에 울타리를 만들어 줄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존 월튼은 전동 드릴과 나사를 들고 와서는 혼자서 나무막대를 꽂고 울타리를 설치했다.
샘 월튼은 자신이 가졌던 돈과 노동에 대한 가치 의식을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자 노력했다. 큰아들 롭 월튼은 월마트의 회장을 맡아 아버지의 비용 절감 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둘째아들 존 월튼은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아들 학교의 울타리를 직접 만들어 줄 정도로 소탈하게 살았다. 셋째아들 짐 월튼은 월마트 본사가 있는 소도시인 벤턴빌을 지키며 살고 있다. 막내딸 앨리스 월튼은 다섯 살 때 아버지 가게에서 캔디와 팝콘을 팔던 기억을 간직하면서 텍사스의 목장에서 말을 키우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 가족이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기 직전까지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매장을 둘러보고 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듯 말이다.
[출처] 세계부자들의 자녀교육 (39세 100억, 젊은 부자의 부동산 투자법) |작성자 정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