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hwp
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
김원택 신부 사제서품 40주년 감사미사 강론
찬미 예수님! 많이들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역시 김신부님의 인기는 아직도 하늘을 찌를만큼진행형입니다. 경향각지에서 오셨네요. 너무 좋습니다. 옛말에 난향천리(蘭香千里)인덕만리(人德(萬里)라 했습니다. 난(蘭)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인품과 덕망의 향기는 먼 곳으로 퍼진다는 뜻이다. 신부님의 인품의 향기가 대단함을 느낍니다. 오늘 서품 40주년을 맞이하신 김원택 신부님 축하합니다. 박수를 !! 신부님, 벌써 땅바닥에 엎드린 지가 40년이 되셨네요. 내덕동 성당 제대앞 차가운 콩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대답은 필요 없습니다.
1.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나도 몰라!!!
1964년 2월 27일 밤 11시 45분 조치원역에서 출발하는 목포행 완행열차에 올랐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다. 기차는 서울서부터 초만원이라 좌석은 생각도 못했다. 신학생이라야 다해서 고작 10여명이다. 4-5명이 함께 탄 기차는 대전역에 도착했다. 이 기차가 노래에도 나오는 대전 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다. 대전역 홈에는 가락국수를 파는 곳이 있는데 이때 김신부님이 손짓하기에 따라갔다. 얼른 국수를 두 그릇을 사서 한그릇을 주면서 먹으란다. 내 나이 21살 개 눈 감듯 한 그릇을 훗딱 해 치웠다. 와. 나는 이 국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 국수를 먹어본 사람 있으면 나와 봐? 나와 봐!!!
이렇게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가 되었다. 그로부터 맺은 인연이 50년이 다 되었으니 세월도 빠르다. 그런데 그 50년 지기도 모자라서 복대동 성당에서 서품40주년 미사를 하겠다니, 그건 그렇다 치자. 복대동만한 성당이 또 어디 있을까 만은, 그런데 강론은 왜 나에게 부탁하는지 모르겠다. 아주 일시불로 하자는 것인가?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Total Service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봉사하라는 것이다. 혹시 김신부님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그 때 나보고 호상(護喪)도 보라는 것은 아니겠지?
2. 신학교 생활 10년은 천국이며 또한 지옥이다.
가난한 시절, 먹고 자고 공부하는 신학생은 모든 젊은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학사님 칭호는 요즘 신부님 칭호보다 더 존경스런 칭호였다. 1965년 11월에 군에 입대를 했는데 - 김유철 신부님이 논산 훈련소 근무 - 군에 와서야 신학교가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대하고 복학하니까 군대가 천국이고 신학교가 지옥이니 이 일을 어쩌나! 왜냐구요? 신학생들에게는 시험이 지옥이니까 그렇지요.
김신부님은 군복무를 어디서 하셨는지? 생사를 넘나드는 월남전에 참전하였으니 신부님은 국가 유공자시네요. 유공자는 죽으면 국립묘지에 간다는데! 갈꺼여? 말꺼여? 신부님, 월남에서 이중권 신부님 ‘딱갈이’ 했죠?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이중권 신부님이 또 ‘딱갈이’ 하라면 할꺼여 말꺼여? 이제는 거절하세요.
그런데 듣자하니 월남에서 잡으라는 베트공은 안잡고 펜팔만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말이 펜팔이지 그거 연애편지 아니었나요? 그때 알게 된 부산의 어느 여고생과 썸씽이 이었다는 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월남에서 귀국하여 부산에서 서로 만났는데 그 학생은 수녀원에 들어가 수녀님이 되었다고요? 아뿔사! 경성도 말로 - 이느머 가시나 찌기삐리가 보다! 하하.어쩌나.
신학교에서 청주교구 신학생 다 모여야 겨우 배구(9인제) 한 팀 만들 수 있는 처지지만배구는
최고의 강팀이었다. 나는 전위 쎈터이고 중위 쎈터는 김광명이고 김신부는 공격수 킬러였다. 신부님은 힘이 장사였다. 동물성 음식은 먹지도 않는 까다로운 식성인데도 어디서 힘이 날까? 배꼽에 삼손처럼 털이라도 났을까? 장주교님도 키가 커서 킬러였다. 지금도 신부님은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좋아 하신다. 만능 운동선수시다.
신부님이 대건출신 1번 신부가 되어 내덕동보좌 후에 오송본당 주임신부로 갈 때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지 아십니까? 후배들이 놀러갈 수 있는 선배신부가 있어서 기뻤던 거지요. 방학 때 인사하러 가면 밥은 사주면서도 용돈은 주지 않아서 무척이나 섭섭했던거 알기나 하십니까? 지나간 일들이라 한번 해본 소리이니 달리 부담 갖지 마십시오.
3. 멋쟁이 우리 신부님!
신부님의 헤어스타일은 언제나 올빽이다. 한 번만이라도 헤어스타일을 바꾼적이 있나요? 오늘도 변함없는 올빽 머리는 멋있어 보기에 좋다. 두 번째 본당인 목행동에 가시더니 250CC 오토바이를 사서는 온 동내를 시끄럽게 하더니, 도대체 얼마주고 샀으며 무슨 돈으로 샀습니까? 월남파병 때 모아둔 돈이었습니까? 나도 괴산본당 시절 1975년 성탄판공에 고마리 공소를 갔더니 공소기금으로 90CC 혼다. 오토바이를 성탄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37년 전에 315,000원 이였으니 50CC 오토바이는 요즘 에쿠스는 저리가라입니다. 기분이 짱이였지요? 하얀 로만카라에 가죽잠바를 입고 색안경을 쓰고 250CC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신부님. 아! 당신은 멋쟁이, 진정 멋쟁이 중에 멋쟁이였지요.
요즘 신부님이 신으시는 구두는 더 멋져 보입니다. 구두 뒷꿈치에 헤리콥터가 달렸으니 까요.
우리 신부 중에 헬리콥터 자가용을 가진 신부는 신부님뿐입니다. - 뿐이고 - 라는 노래가 유행이다. ‘신부님 뿐이고’ 뿐이고!를 노래 불러 봅니다.
4. 신부님의 애창곡은? 신부님의 단골메뉴가 있다.
제목 : ‘너와 나의 고향’ - 미워도 한 세상 좋아도 한 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온 사나이는
구름 머무는 고향땅에서 너와 함께 살리라.
이 노래곡에 가사를 바꾸어 언제나 어디서나 기분이 좋으면 노래를 불렀다. 우리도 한 번 가사를 바꾸어 노래불러보자. 시작.
제목 - 조미료 . 작사와 편곡 - 김원택
가사내용 - 미원도 70원 미풍도 70원
합하면 140원 훔치면 공짜다.
미원 따라 미풍 따라 흘러온 조미료는
국자 머무는 냄비 속에서 보글보글 끓는구나. 박수. 짝 짝 짝
먹는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합니다. 1984년 8월, 나는 서운동 성당에 이었다. 내덕동 주임에서 미국 교포사목 발령을 받은 김신부님은 아직 미국 비자를 받지 못하여 2달 이상을 기다린 것 같은데 맞나요? 방 빼고 보니, 자고 먹고 하는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라 얼마나 힘이 드셨겠어요. 옛날 고속터미날 앞에 털보식당이 있었는데 참치회집이다. 아니, 그 비싼 참치회를 날보고 사라는 거예요. 송별금 받은 것은 어디다 두고 왜 내 돈을 갈가 먹씁니까? 그것도 한 두 번이면 얘기도 안합니다. 그때 내 지갑은 거덜이 났습니다. 그러고도 미국서 귀국할 때 언제 그랬느냐 그냥 입 싹딱고 말더라고요. 그 흔한 양주한 병 없었으니. 섭하죠.!
5. 사제여, 그대는 누구인가? - 광주교구 김홍언 신부의 글 중 몇 줄 옮겨보겠습니다.
그대는 누구인가? - 원피스 치마 두른 여장한 남자.
- 목에 로만 칼라 메어 놓아 도망도 못 치는 개 아닌 사람.
- “오라 하면 오고 가라 하면 가는” 주거의 자유마저 저당 잡힌 떠돌이
- 일요일에 일하고 월요일에 쉬고 어둑한 저녁녘에 돌아오면
불 꺼진 방 만이 기다리는 홈이 아닌 하우스에 사는 홀아비
- 늙어서도 등 긁어 줄이 없어 책상 모서리에 등대고 바동대는 독거노인
- 한 밤 중에 큰 병나면 홀로 몸부림치다 죽을 사람
그대는 누구인가? 서품식 때 온 몸을 땅에 내던져 “흙이 되라, 먼지가 되라”는
낮음의 미학을 살고자 부단히 정진하며 죽으면 살리라는 어리석음을 택한
위대한 바보
그대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그대는 사제입니다. 침묵 - 박수
6. 마지막 한마디
40주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복대동 신자들을 이다지도 고생을 시킵니까? 어제 새벽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렸다. 아침일직 일어나 식당엘 가보니 식당바닥이 한강이 되어 버렸다. 주차장에 빚물이 넘쳐 식당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참에 식당 물청소 깨끗이 했는데. 그런 줄이나 아세요!
오늘 함께해 주신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신자분들! 감사합니다. 귀만 즐거우면 되나요? 눈도 입도 즐거워야죠. 네. 식사하고 가세요. 정성을 담았습니다. 선물도(1단 묵주) 받아 가시고요.
신부님의 서품 40주년을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멘.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 박수. 김신부님 박수. 짝 짝 짝.
복대동 성당 주임신부
김 홍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