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 Москва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로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지이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크레믈린을 중심으로 고풍스러운 스탈린식 건물들과 수많은 박물관, 미술관, 콘서트장 그리고 찬란한 문화를 뽐내듯 유명한 인물들의 동상들까지 멋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내중심에서 원형으로 뻗은 도로망과 11호선 150개의 역으로 연결되는 지하철 그리고 8개나 되는 기차역, 5개의 공항, 전세계 자동차 전시장이라 불릴만큼 다양한 각종 자동차들 등으로 인해 대도시 다운 면모를 느낄수 있다.
여행하다 보면 불시에 경찰들의 검문을 받게 될수도 있다.
항상 여권을 소지하고 거주등록을 반드시 해야한다.
지역번호 : 095
인구 : 약 1.00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6 (summer time 시 -5)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직항으로 아에로플롯(수, 금, 일)과 대한항공(수, 일)이 있다.
이 밖에도 노보시비르스크나 블라디보스톡을 거쳐서도 갈수 있다.
성수기때는 항공편이 증편된다.
♠♠♠♠♠♠♠♠♠♠♠♠♠♠♠♠♠♠♠♠♠♠♠♠♠♠♠♠♠♠♠♠♠♠♠♠♠♠♠♠♠♠♠♠♠♠♠♠♠♠♠♠♠♠♠♠♠♠♠♠
▒ 붉은광장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모든 사람이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이미 익숙한 장소이다. 이곳은 구 소련시절 5월1일, 11월7일에 혁명기념 퍼레이드를 하던 곳으로 모스크바의 심장과도 같다. 크기는 넓어 보이지만 실제의 길이 695미터, 폭 130미터, 넓이 약 7만 3,000평방미터의 이 광장은 수 많은 러시아 역사의 산 현장이었다.
크라스나야란 러시아어는 지금은 ''붉은''의 뜻이지만 고어에서는 ''아름다운''의 뜻이었다.
15세기말부터 처음에는 단순한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여서 토르그(시장)라고 불렸다.
1571년 발생한 화재로 점포들이 불타버린 뒤 빠자르(화재)로 개칭되었다. 그 이후에 키타이 고르드 지역을 17세기에 정리하여 ''아름답게''만든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 광장 주위는 크렘린, 아름다운 탑들, 성바실리 사원, 미닌과 포자르스키, 러시아호텔, 굼백화점, 루보예 메스터, 국립역사박물관, 레닌박물관, 모스크바호텔 등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과연 아름답다라는 찬사가 나올 것이다.
▒ 국립역사박물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
붉은 광장으로 가는 길에 우뚝 솟은 붉은 벽돌 건물, 1872년 알렉산더 3세에 의해 건립된 국립역사 박물관은 1883년부터 개관했지만, 잠시 폐쇄됐다가 혁명 이후부터 대중에게 개방되고 있다. 고대 네안데르탈인의 생활상과 키예프 러시아 형성기의 자료들, 도시 건설계획 등이 전시된다. 매달 다른 주제의 전시회도 열린다.
슬라브 민족의 대이동에서 미래 청사진까지 상세히 다루는 이 박물관은 스랄브 역사학 자료의 맹아다. 총42개의 방에 4백 5만 개의 전시물과 1천 5백 만 정 이상의 사학자료를 모아두었으며, 특히 모스크바 공국 시대의 지질학 자료, 15세기 이꼰화, 초기 출판물들의 초고, 고대 러시아 화폐, 중세 러시아 서민층의 의복, 군복과 군대 휘장 등 진귀한 물건이 가득하다. 박물관은 대학자 로마노사프가 세운 최초의 대학 부지에 자리잡고 있다.
붉은 광장으로 연결되는 미뜨로 역이라면 어디로든 이동이 쉽다.(찌아뜨랄나야 역, 쁠로쉬지 리발류찌 역, 아호뜨늬 럇드 역).
▒ 레닌묘 Мавзолей В И Ленина
블라지미르 일리치 레닌은 1924년1월21일 죽었으며 이 곳에 안치된 것은 알렉세에시츄세프에 의해 적토색 화강암으로 1929년 다시 만들어졌다.
이 곳은 과거 소련시절 당 서기장들이 위에서 손을 흔들던 곳으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한번참배하려면 30,40분 줄을 서야 했지만 지금은 비정기적으로 개방을 하고 있어서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그 주변에는 러시아 상징물처럼 전나무가 서있는 그 곳으로 10월 혁명 때 노동자, 병사들의 유해들을 모은 묘들이 있다. 레닌 묘 바로 뒤에는 역대 당 서기장들인 스탈린,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초대 KGB의장인 제르진스키의 묘가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다른 곳에 있는 사람은 후르시초프이다.
▒ 굼백화점 ГУМ (Государственнчй Универсальный Магазин)
레닌 묘의 맞은 편에 있는 굼 백화점은 1890~93년에 건립된 백화점이다. 혁명전에는 200여개의 코너가 있었으며 1953년에 지금과 같이 개조하였다. 카운터의 총 길이는 2.5KM이며 3층 건물로서 유리창을 사용하여 내부를 밝게 하였다. 지금은 거의 전 코너가 외국산 제품을 전시하여 팔고 있다
▒ 성 바실리성당 Храм Василия Блаженного
붉은 광장 남쪽 , 모스크바 강 쪽으로 성바실성당이 있다.
러시아 교회 건축의 백미이자 러시아 정교사원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이반4세가 카잔 한국을 합병한것을 기념 해서 바르마와 포스닉이라는 사람에 의해 짓도록한
건물이다. 현재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물로 우리 눈에도 낯익은 건물이다.
▒ 크레믈 Кремль
모스크바의 심장 ? 크레믈 (Кремль) 모스크바를 여행 하는 사람들이 꼭 들러 가는곳, 마치 이곳을 보고 나면 모스크바를 다 본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곳,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고유명사와 같은 곳 인 크레믈.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자 제정 러시아 시절엔 ‘뾰뜨르(Петр I) 대제’ 전까지 - 궁전 으로써 혁명 이후엔 레닌(Ленин) 이후 역대 서기장 들이 철의 장막으로 사용 하던 곳,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타곤 지금의 뿌찐(Путин) 대통령 까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는 우리의 청와대와 같은 이 곳. 이 크레믈 안의 모스크바 도시역사 와 같이한 수많은 건축물들은 이 곳을 찾는 사람 들의 마음을 한편으론 부러움과 한편으론 몰락한(?) 거인의 모습을 연상케 해 조금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도 하지만 아직도 러시아 인들의 자국에 대한 긍지와 믿음을 지탱 시켜 주는 힘인 곳임엔 틀림이 없다.
크레믈 하면 마치 모스크바에 있는 궁전의 고유명사 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성벽’ 이란 뜻의 보통 명사이다. 모스크바 이외에도 고도시 였던 지역 중심엔 이 성벽인 ‘크레믈’이 서 있어서 이 성벽을 중심으로 도시들이 발전 하게 되고 또 외부의 침입으로 부터 도시를 지켜 주던 역할을 했는데 지금은 크레믈 안에 보존 되어 있는 고 건축물들이 박물관으로 쓰이게 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자, 그럼 지금 부터 모스크바 크레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해 보자.
I. 크레믈의 역사. 1156년 모스크바를 창건한 ‘유리 돌가루끼(Юрий Долгорукий)'''' 의 명으로 지금의 크레믈 자리에 최초로 나무로 된 성벽을 쌓게 되는데 그 면적은 지금의 것 보단 훨씬 작은것 이었지만 이 나무로 된 성벽이 지금 크레믈의 시초가 된다. 그런것을 1238년 모스크바 화재 이후에 ‘이반 다닐로비치 깔리따(Иван Данилович Калита)''''의 명으로 5개월동안 참나무로 성벽을 다시 둘러 쌓았고 이 참나무 성벽 안에다 모스크바 최초로 하얀벽돌의 성당들을 비롯해 영주들, 성직자들을 위한 나무로 만들어진 주택들을 짓게 된다. 1367년 부터 1368년 사이 에는 ‘이반 깔리따’ 의 손주인 ‘드미뜨리 단스꼬이 (Дмитрий Донской)''''에 의해 나무로 된 성벽대신 흰 벽돌로 성벽과 최초의 성탑 들을 다시 쌓게 되는데 당시 성벽의 두께가 2~3m 였다 한다.
이렇게 ''''드미뜨리 단스꼬이''''가 세운 크레믈은 그후 100 여 년간을 모스크바의 상징으로 존재 했으며 당시 모스크바는 ''''하얀 도시''''란 별칭 으로도 불려 지게 된다. 15세기 말 부터 16세기 초 엽, ''''이반 III세( Иван III )''''와 ''''바실리 III세( Василий III )''''때 이태리 르네상스 시절의 건축사 들과 화가들을 초청해 - ''''이반 III세''''가 그리스 비잔틴의 공주였던 ''''소피아( София Палеолог )''''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모스크바에 이태리 건축가들이 들어 오게 된다. - 크레믈을 지금의 모습인 붉은 벽돌로 다시 쌓게 되었고 그 면적도 북쪽과 남서쪽으로 넓혀 현재 모습인 직삼각형으로 재탄생 하게 된다. 1156년에 최초로 쌓여진 성벽은 19세기 말까지의 세월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인 총길이 2235m, 28 hectars의 면적, 높이 5~19m, 두께 3,5~6,5m의 20개 성탑 으로 완성되어 러시아 심장부로써의 역할을 수행해 내고 있다.
▒ 알렉산드로프 공원 Александровский сад
크레믈의 뜨로이츠카야 탑 서쪽 외곽에 위치한 공원으로 입장료는 따로 없다. 크레믈 입장권 매표소와 짐 보관소, 무명용사의 묘도 이 고원에 있다. 더위를 식히는 가족, 힙합 춤을 추는 어린 학생들, 잡담을 나누는 노인들 곁에서 노도에 지친 몸을 잠시 쉬게 하자. 겨울에는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를 파는 노점상이 곳곳에 있어 크레믈 입장 전에 배를 채울 수도 있다. 이 공원에서 크레믈 방향을 쳐다보면 아스라한 중세의 환상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한여름 흐드러진 꽃밭에서 소풍 나온 가족들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 러시아 국립도서관 Библиотека им Ленина
2,000만 권 이상의 장서와 파르테논 신전에 비견되는 석조 기둥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도서관은 구관과 현대식 빌딩인 신관, 폐가실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돔 빠쉬꼬프''''라고 불리는 구권은 신관에서 미뜨로 바로비쯔까야 역, 비블리오쩨까 이메니 레니나 역을 지나 사거리에 닿으면 볼 수 있다. 돔 빠쉬꼬프는 1887년 완공 이후 모스크바에서 가장 고전적인 건측물로 인정받고 있다.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려면 쁘로뿌스크(증명서)를 받아야 하는데 입구에서 신분증(여권)을 제시하면 간단히 받을 수 있다. 경제적 악조건에서도 시민들과 학생들은 책읽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 구세주의 성당 Храма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참 사연도 기구한 성당이다. 1857년 처음 지어졌다가 스탈린의 ''''소비에트 궁전 건설 계획''''에 의해 철거됐고, 모스크바의 대형 야외 수영장으로 활용되다가 수영장 부지 위에 다시 지어졌다. 어색할 정도로 외관 색상이 선명하지만, 내부 공간과 건물 모양만은 대물림한 그대로 압권이다. 성당 입구에는 예수의 순교 장면이 부조로 설명돼 있다. 새로 지으면서 추가도니 것은 주차장뿐이다.
▒ 깔로멘스꼬예 Коломенское
크레믈 남등쪽 10km 지점에 조성된 깔로멘스꼬예 공원에서 모스크바의 미소를 만나보자. 1336년 이반 1세가 그의 아들에게 물려준 영지 깔로멘스꼬예는 바실리 3세가 모스크바 공국을 주축으로 루시를 통합하던 당시 꾸며지기 시작했다. 1667년에는 엘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가 미관이 수려한 목조 궁전을 지었다는데 지금은 어설픈 흔적만 남아 있다.
시계탑을 시작으로 1532년 알렉세이 황제 시대에 지어진 구세주 교회, 1768년 예까쩨리나 여제의 명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던 목조 궁전과 17세기 옛 궁전 터 맞은편에 지어진 까진 성모의 교회 등이 있다. 2000년 1월 외부에서 보관해온 이꼰화가 다시 이 교회로 환원됬따. 공원을 상징하는 박물관에서는 알렉세이 황제 시기에 건설된 목조 궁전의 신비스런 모형과 17세기의 목조, 철제 세공 장식품도 감상할 수 있다.
1532년 대공 바실리 3세가 이반 뇌제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예수 승천교회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성당만ㄴ큼이나 유명하다. 멀리서 보이는 교회 외관은 촛불 모양이다. 공원 남쪽으로는 16세기에 완공된 성 게오르기 종루와 오래된 목조 주택이 즐비하다. 그중 뾰뜨르 대제의 통나무집은 1700년대 아르항겔스크에서 옮겨온 것이다. 깔로멘스꼬예는 여름철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전승공원은 제 2차 세계대전 승리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5년 완공된 공원이다.
전쟁이 진행된 기간인 1417일을 의미하는 141.7m의 승리탑이 웅장하게 서있다.
그 뒤로 기념관이 있어, 전쟁당시 사용하던 무기와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공원에는 수많은 분수들과 꽃밭으로 아름다움을 더한다.
▒ МГУ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Ломоносова)
정식명칭은 M.V.로모노소프 기념 국립모스크바 대학 으로 1755년에 개설되었다.
이 대학에서 배출한 유명한 사람으로는 혁명적 사상가 라디시체프, 게르짼, 역사가 그라노프스키,평론가 벨린스키, 교육사상가 우신스키등이 있다.
20세기 초두의 사회적인 변혁기에는 학생운동의 고조로 1911년에 대학을 폐쇄하였다.
10월 혁명후인 1918년에 국립으로 되어, 노동자 계급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창설당시의 학부는 철학, 법학, 의학 등의 3개 학부에서 혁명후 대폭증설하였다. 1987년에 공학, 수학, 컴퓨터 수학 및 사이버네틱스, 아시아, 아프리카국제연구소를 비롯하여 각종 부속 연구소와 도서관을 갖게 되었다.
교수의 총 수는 8000여명 이상이고, 그중 1000여명이 박사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다.
대학건물은 구교사가 마르크스 거리와 게르짼 거리에 면한 도심에 있고, 신교사는 1949부터 1970년까지 건설되었다.
관광객들이 찾는 본관 건물은 높이 240미터의 32층 건물로서 정면의 길이는 450미터이고, 45000개의 강의실이 있으며 이 건물을 다 둘러 보려면 145Km를 걸어야 한다.
건물은 스탈린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아주 웅대한 느낌을 받는다.
▒ 레닌언덕 Воробьевы Горы
모스크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프탄키노 텔레비젼 중계 탑을 제외하고는 이 레닌언덕이 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높으며 해발 115미터인 이곳은 우리의 기준으로는 언덕도 아니지만 산(山)을 보지 못하는 모스크바인에게는 산(山)인 것이다.
여름이면 이곳에서 날씨가 좋으면 모스크바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다. 주말이면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를 한 신혼부부들이 많이 모여 이 또한 러시아의 결혼 풍속도를 알 수 있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1924년 이전의 이름이 참새의 언덕이었으며, 모스크바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게르짼과 오가료크가 이곳에서 러시아의 혁명가로 되기를 결심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강 건너 정면에는 무즈니끼 경기장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 여러 종목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던 곳이다. 총 수용인원수는 10만명 정도이다.
▒ 아르바트 거리 ул. Старый Арбат и новый Арбат
우리 나라를 보면 명동거리와 같은 곳으로 모스크바 하면 이거리를 떠올리는 사람 들이 많다. 입구에 금성 광고판이 있는 곳에서 외무성 건물까지 약 2Km정도이며 이곳에는 얼굴을 속성으로 스케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혼자서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과, 러시아의 유행의 첨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리가 생긴 것은 15세기이며 더 유명한 것은 러시아의 대문호 뿌쉬킨이 거리 No.53에 2층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新)아프바트거리에는 지금 거의 외국물품과 달러가게, 카지노 등이 있어 러시아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다.
▒ 노보데비치 수도원 Новодевичий Монастырь
레닌 언덕에서 시내 쪽으로 보면 왼쪽 앞으로 보이는 수도원이 보일 것이다.
수도원안에는 12개의 망루가 있는데 만든 목적은 모스크바 대공 바실리 3세가 스몰렌스크를 리투아니아로부터 빼앗은 기념으로 1524년에 세웠는데, 주 목적은 수도원 겸 외적을 감시하는 감시소의 역할을 같이하던 곳이었다.
러시아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이고 뿌쉬킨의 소설 보리스 고두노프에도 이곳이 나오면 뒤에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소련 당 서기장 중에서 유일하게 흐루시초프의 묘가 이곳에 있다.
그 외에도 트레챠고프형제, 역사가 솔로비요프, 문학가인 고골, 체호프등의 묘가 있다.
중앙에 있는 프몰렌스키 사원을 기준으로 십자가를 이루며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게 특징이다.
▒ 트레챠코프 미술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ая Третьяковская галерея
19세기 러시아 산업자본가 뜨레챠꼬프는 러시아 미술의 후원자로서 활동하며11세기 이후 러시아 걸작들을 모조리 수집하였다. 1856년 개관한 이 갤러리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며, 걸작 이꼰들을 비롯하여 례삔, 뻬로프, 브루벨 등 빛나는 러시아 화가들의 명작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지하철 겨자색 선 뜨레챠꼬프스까야 역)
▒ 발쇼이 극장 Большой Театр
오페라와 발레의 상연장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러시아 예술의 전당이다. 정식이름은 소련 국립 레닌 훈장 소유 아카데미 대극장인데 마지막 대극장으로 알려져있다. 1776년에 창립되어 1824년에 안드레이 미하일로프와 오시프 보베가 완전한 마무리를 하였으나 화재를 한번 입은 후 1856년에 다시 지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시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1943-44년 전쟁기간 중에 다시 복구하였다. 내부는 8개의 돌기둥과 지붕위로 로마식 전차상이 극장의 상징이며 1층의 파르테르외에 5단으로 2000여 객석으로 칸막이석이 무대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다.
길 건너에는 모스크바 호텔과 메트로폴 호텔사이에 칼 막스동상이 두손을 불끈 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동상은 160톤의 거대한 돌을 깍아서 높이 7.7m로 만들러 졌으며 앞에 있는 글귀는 전세계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는 슬로건이 적혀 있다. 여기에는 가까운 곳에 국가보안위원회 건물인 1층은 회색, 2-4층은 황토색으로 지어진, KGB,건물이 보인다.
♠♠♠♠♠♠♠♠♠♠♠♠♠♠♠♠♠♠♠♠♠♠♠♠♠♠♠♠♠♠♠♠♠♠♠♠♠♠♠♠♠♠♠♠♠♠♠♠♠♠♠♠♠♠♠♠♠♠♠♠
블라디보스톡 ВЛАДИВОСТОК
블라디보스톡은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적극적인 동방정책으로 ''블라디''(정복하라)와 ''보스톡''(동쪽)을 의미해 나온 이름이다. 1872년 러시아의 태평양 해군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면서 이 도시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시발역이 되면서 러시아의 여러 지역과 직접 연결되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블라디보스톡은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로 조선, 수산가공, 산업항 등 공업 중심지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일본,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인 위치때문에 항상 외국인들이 붐비며 우리나라의 다소 부산과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지역번호 : 4232
인구 : 약 75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1 (summer time 시 +2)
인천에서 2시간도 채 안걸리며 블라디보스톡 항공(수, 금, 일)과 대한항공(월, 화, 토)을 이용해 갈수 있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자루비노로 입국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 향토박물관 Примор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им В К Арсеньева
혁명광장에서 커다란 하얀색 건물인 주 청사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여기서부터 보행자 거리가 나오는데 바로 그 거리의 왼쪽 첫번째 건물이다. 이 박물관은 2000년에 110주년을 맞이하였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전시품의 수준도 뛰어나 지금까지 세 차례나 국제 박람회에서 수상했을 정도이다. 박물관의 이름에서 짐작해 볼수 있듯이 유명한 탐험가였던 아르세니예프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다양하고 매혹적인 진열품을 가지고 있다.
여러 진열품들은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톡의 역사와 자연을 보여준다. 이 곳에서는 100년 이상 된 고고학, 지리학, 민속학의 자료들과 희귀한 서류와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의 로켓과 화폐 컬렉션, 선물가게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 나라와 관련된 진열품이 눈에 들어온다.
▒ 잠수함 박물관 Подводная Лодка-Музей
2차 세계대전 당시 10대의 적함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적인 잠수함 C-56호를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든 곳으로서 어떤 곳에서도 보기 힘든 잠수함 내부 구조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잠수함의 연역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함장이 이용하는 방과 수병들이 잠자는 방, 그리고 수병들이 활동하는 공산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잠수함 박물관 바로 옆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다.
▒ 블라디보스톡 요새 Военно-исторический фортификационный музей
이 요새는 1862년 이 곳 수비를 맡았던 러시아 포병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1900년에 콘크리트로 개축되었다. 1989년부터 박물관으로 만들어지는 공사에 들어가서 1996년 10월에 러시아 함대 창설 300주년을 맞이하여 개관하였다.
지금 한인촌의 흔적은 간데없고 스탈린 시대때 지어진 아파트 숲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그나마 최근 한국 학자들을 주축으로 기념비가 세워져, 이곳이 한인들의 최초 정착지임을 알리고 있다.
♠♠♠♠♠♠♠♠♠♠♠♠♠♠♠♠♠♠♠♠♠♠♠♠♠♠♠♠♠♠♠♠♠♠♠♠♠♠♠♠♠♠♠♠♠♠♠♠♠♠♠♠♠♠♠♠♠♠
뻬쩨르부르그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상트 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 제 2의 도시이다.
유럽으로 향하는 창''이란 칭호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릴만큼 유럽적인 도시이다. 1703년 표트르 대제가 유럽의 유명한 건축. 조각가들을 초빙하여 지은 계획도시이다. 그래서 처음 이 도시에 발을 디디는 순간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딱 맞게 들어선 건물, 시내 중심이 들어선 웅장한 박물관, 사원들로 하여금 입을 다물수가 없다.
또 이 도시는 6월 말 즈음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로도 아름다움을 더한다. 2003년에는 300주년을 맞아 관광객이 최고로 많았으며, 미국. 유럽 등의 각 나라에서 준 선물이 도시에 남아있다. 여름에는 기온이 25도까지도 올라간다. 관광객이 많을때 복잡한 대중교통이나 대로에서 소매치기나 짚시를 조심해야 한다.
지역번호 : 812
인구 : 약 47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6 (summer time 시 -5)
현재 직항이 없어 노보시비르스크(시베리아항공)이나 모스크바(아에로플롯)를 경유해 갈수 있다.
성수기때(6-8월) 직항이 있다.
♠♠♠♠♠♠♠♠♠♠♠♠♠♠♠♠♠♠♠♠♠♠♠♠♠♠♠♠♠♠♠♠♠♠♠♠♠♠♠♠♠♠♠♠♠♠♠♠♠♠♠♠♠♠♠♠♠♠♠♠♠♠♠
▒ 이삭성당 Исаакиевский собор
뻬쩨르부르그의 가장 대표적인 성당으로 1818년부터 1858년까지 40년에 걸쳐 지어졌다. 러시아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투입된 인원(10만명)과 물자만으로도 바티칸 성당과 맞먹는다. 높이 약100M(30층 빌딩높이) 그리스정교의 본산지라는 의미로 세움. 문의 무게는 약 10톤(4게) 22명의 예술가에 의해 내부가 장식되었다. 약 50m 높이의 쿠플은 24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각 무게 67톤)
성당 내부에는 22명의 화가, 조각가들이 남긴 모자이크 벽화와 스테인드글라스로 메워졌다.
150여 명의 성인들의 모습과 성서 내용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으며 초록색 공작석이 건물 내벽을 떠받치고 있다. 내벽은 황금과 대리석, 유리, 화강암 등으로 수놓아져 있는데 이 물자들을 우랄산맥과 핀란드 등지에서 열차와 배로 실어 날랐다. 262개의 계단을 따라 황금색 돔과 연결된 전망대로 올라가면 뻬쩨르부르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당 건너 동상은 니콜라이1세. 뒤편은 구마리야궁전이다.
☞ 위치 : 지하철역 넵스키 대로에서 도보 또는 1,7,9,10 뜨랄레이 부스 이용
☞ 입장료 : 약 10$
☞ 개관시간 : 평일 11:00-18:00, 목요일 12:00-20:00, 매주 수요일 &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 청동 기마상 Медный Всадник
이삭성당 앞에 있는 이 동상은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말을 타고, 그 말의 뒷발이 뱀을 밟고 있는 모습니다. 이것은 성자 게오르기가 창으로 용을 무찌르는 것과 같은 상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독일 출신 예까쩨리나 2세가 도시 건설을 기념하고 자신이 표트르 대제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프랑스 조각가를 초빙해 12년 동안 지었는데, 신기한 것은 이 무거운 동상이 말의 뒷발로 지탱한다는 것이다.
▒ 에르미타쥐 박물관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궁정광장 한 편에는 재정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었던 겨울 궁전이 네바 강을 따라 230m 나 쭉 뻗어있다. 담록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이 궁전은 1762년 라스트렐리(B.Rastrelli)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총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건물 지붕 위에는 170개가 넘는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다.
겨울 궁전은 오늘날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 에르미타쥐 국립 박물관 건물 중의 하나이다. 1764년 예까쩨리나 2세가 서구로부터 226점의 회화를 들여왔던 것을 계기로 현재는 약 300만점의 전시품이 소장되어 있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곳은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 전시관 등 총 6개의 큰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한점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는 에르미타쥐에서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125개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으로 이 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주소 : 34-36 Dvortsovaya Naberezhnaya |
지하철역 넵스키 대로에서 도보 또는 1,7,9,10 뜨랄레이 부스 이용
☞ 전화 : 311-37-25, 219-86-25
☞ 개관시간 : 평일 10:30-18:00, 목요일 12:00-20:00, 월요일 휴관
☞ 홈페이지 : http://www.hermitage.ru
▒ 넵스키대로 Невский првспект
상트 뻬쩨르부르그에서 제일 넓고 유소가 깊은 대로이다. 작가 고골은 넵스키대로보다 훌륭한 곳은 없다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모스크바 역에서 에르미타쥐까지 약 4Km 달하는 이 거리는 이 곳이 러시아의 유럽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는 곳이다. 도로 주변의 모든 건물들의 양식을 보면 파리의 시내를 걷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시내 중앙에 카잔 성당이 있으며 그 앞에 있는 동상은 나폴레옹과의 대조국전쟁 때 러시아를 지킨 장군인 쿠투조프 장군동상이며 그 옆에 있는 분수에서 여름이면 개구쟁이들이 물장난을 치곤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기준으로 예브로페이스카야 호텔에서 왼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예술의 광장이 있다. 이곳에 문학가 뿌쉬킨의 기념동상이 있고 러시아 박물관, 말리오페라 극장, 뮤지컬 코미디 극장과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성 바실리 사원을 연상하게 하는 스파스 나 크로피 성당이 외벽으로 모자이크화를 과시하고 있다.
카잔성당에서 모스크바역쪽으로 조금 걸으면 예카쩨리나 2세 동상이 있는데, 동상 밑에 남자들이 여제와 같이 잠자리를 한 특징적인 사람들만 모아 두었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다. 그 곳에서 가스찐느이 드보르라는 백화점이 있고, 길 건너에는 빠싸지라는 백화점이 있으며, 카잔 성당에서 에르미타쥐쪽으로 가면 1층 한 건물 귀퉁이에 문학카페가 있다. 이 곳에서 뿌쉬킨이 아침식사를 하고 1837년 1월 27일 아침에 결투하러 갔다가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 카잔성당 Казанский собор
(1801-1811) 보로니힌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되었다. 소련시절에는 무신론박물관이었으며 비금은 사제가 집전 중이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을 본 땄으며 회랑에는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서 있다. 성당 안에는 나폴레옹군에게서 탈취한 깃발 107개가 전시되어 있으며 나폴레옹군에게 승리한 꾸뚜조프 장군의 묘가 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엄숙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성가가 울려퍼져 분위기를 압도한다.
▒ 순양함 오로라호 Крейсер Аврора
피터 대제의 오두막 부근, ''St.Petersburg''호텔 바로 건너편에는 역사적인 순양 한편이 영구정박하여 있다. 1897년부터 1900년에 건조되어 1904-05년 러일전쟁에 참가,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7000톤급 일반 순양함에 불과했었던 이 함정은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함포 한방을 쏘아올림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는데 바로 그 신호탄 한발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레닌을 선두로한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상전투를 위해 순양함의 대포만 떼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이 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주소 : Petrogradskaya Naberezhnaya 4.
☞ 지하철역 : Gorkovskaya
☞ 개장시간 : 10:30-16:00, 매주 월, 금요일과 마지막 수요일
☞ 입장료 : 무료
▒ 스몰늬 사원 Смольный собор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 스몰리 수도원
엘리자베스 여제는 러시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라스트렐리(Rastrelli)에게 자신의 노후를 편안히 보낼 수 있는 수도원을 하나 건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을 짓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는 여제의 생전에 그녀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고, 이에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이후 예카쩨리나 여제는 러시아 여성들을 위한 최초의 교육기관을 설립한다는 취지하에 귀족의 딸들을 위한 학교로 스몰니 수도원을 이용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이 아름다운 수도원은 야채 보관소로 이용되었고, 이후 소장하고 있던 이콘들과 귀중품들이 도난당하게 되자 이 마저도 폐쇄해 버렸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이 곳은 레닌그라드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가 현재는 현대미술품의 전시와 콘서트 홀로 간간이 이용되고 있다.
☞ 위치 : 지하철역 체르니쉡스카야에서 하차, 15,18,49번 뜨랄레이 부스 이용
☞ 전화 : 271-91-82
☞ 개관시간 : 10:00-17:00, 매주 수요일은 10:00-16:00, 목요일 휴관
▒ 뻬쩨르고프 Петергоф
뻬쩨르부르그 시내에서 차로 약 한시간 거리에 위치한 뻬쩨르고프라는 1000헥타에 이르는 광대한 황제의 영지에 1714년 뾰뜨르 대제의 명에 의해 지어졌다. 궁전은 윗 공원과 아래공원으로 나누어지고 대궁전과 작은 궁전, 정원, 250개의 분수, 아름다운 가로수길 등이 만들어져 있다. 고유의 이름이 붙혀진 수많은 아름다운 분수들을 볼수 있다.
핀란드만과 접한 곳에 500m에 이르는 운하를 만들어서 수로로 네바강(겨울궁전)으로부터 해발100m 바비곤 언덕의 여름궁전까지 닿을 수 있게 만들었다. 분수들과 조삭상, 대궁전이 있다. 공원 내에는 260여 개의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의 조각상이 있다. (7,8월 개장)
▒ 뻬뜨로파블롭스키 요새 Петропавловская крепость
1703-1740. 피터폴 성당이 요새 안에 위치해 있어 요새 이름도 피터폴(뻬뜨로빠블롭스크)로 불린다. 스웨덴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뾰뜨르 1세가 건설했고 피터폴 성당은 로마노프 왕가의 매장지로도 유명하다. 피터폴 성당의 높이는 121.8m이며 첨탑 끝에 십자가를 천사 상(십자가 높이 6.4m, 천사상 3.2m)이 있다. 요새 안에는 조폐국이 있는데 지금도 기념주화와 메달의 일부를 이곳에서 만들고 있다.
♠♠♠♠♠♠♠♠♠♠♠♠♠♠♠♠♠♠♠♠♠♠♠♠♠♠♠♠♠♠♠♠♠♠♠♠♠♠♠♠♠♠♠♠♠♠♠♠♠♠♠♠♠♠♠♠♠♠♠♠♠♠
이르쿠츠크 Иркутск
이르쿠츠크는 몽골, 중국과 인접한 시베리아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이르쿠츠크는 옛부터 국경무역이 이루어졌고 한국. 일본과도 관계를 맺을수 있었다. 이 도시는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호수를 끼고 있어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다소 온화한 기후를 갖고 있다. 또한 도시 중심으로 앙가라 강이 흐르고 제정러시아 때 지어진 아름다운 건축물로 인해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도 시베리아의 도시 중 관광지로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어 여름이면 러시아내,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어 숙소 잡기가 힘들다. 게다가 요즘 이 도시로 유학을 가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어 점점 교육의 도시로 급상하고 있다.
지역번호 : 3952
인구 : 약 6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1 (summer time 시 같음)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 노보시비르스크나 심양을 경유해 갈 수 있다.성수기(7-8월)때는 시베리아항공으로 직항이 있다.
♠♠♠♠♠♠♠♠♠♠♠♠♠♠♠♠♠♠♠♠♠♠♠♠♠♠♠♠♠♠♠♠♠♠♠♠♠♠♠♠♠♠♠♠♠♠♠♠♠♠♠♠♠♠♠♠♠♠♠♠♠♠♠
▒ 제까브리스트 박물관
시베리아는 유형의 땅이었다. 실권한 황제, 혁명가, 죄인들이 뻬쩨르부르그와 모스크바에서 추방당해 동토의 땅으로 유배되었다. ''''''''제까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 ''''''''제까브리스트''''는 12월 당원을 뜻한다. 1825년 12월 일단의 귀족 청년장교들이 나콜라이 1세의 즉위식에 맞춰 당시의 수도 뻬쩨르부르그 원로원 광장에서 거사를 일으켰다.
나폴레옹 전쟁에 출전해 유럽에 만연한 자유의 공기(공화주의)를 쐬었고, 농민 출신 병사들로부터 농촌의 비참한 설정을 전해들은 그들은 농노제 폐지와 짜르(러시아의 황제)의 전제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나 이내 진압되고 말았다. 주모자 5명은 처형당하고 120명은 이르쿠츠크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두 발로 6000km가 넘는 길을 걸었으며 유배지에서는 20kg이 넘는 족쇄를 차고 중노동을 했다.
그들이 떠나자 약혼자들과 젊은 아내들 일부가 연인을 찾아 같은 길을 걸었다. 상당수는 눈보라 속에서 객사했다. 몇 명의 여인은 기어이 연인을 만났고, 허드렛일로 연명하며 사면이 될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 중 트루베츠코이(1790-1860년)의 아내 예까쩨리나 트루베츠까야는 혹한이 광산 갱으로 남편을 찾아가 족쇄를 찬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30년이 흘러 마침내 사면을 받았으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남편은 수도로 돌아가지 않고 이르쿠츠크에 남아 문화를 고양하다 죽었다.
▒ 즈나멘스키 수도원 Знаменский женский монастырь
이 곳은 제까브리스트의 난으로 유배되었다가 죽음을 맞이한 일부 귀족들의 묘가 있다. 1762년에 건설된 장엄한 분위기의 수도원으로 돔은 황금색 테두리에 여러가지 상화로 되어있다.현재 수녀원이기 때문에 여성 성직자만 근무한다. 수녀원 건물 안에는 화려한 예수상을 비롯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울려퍼지는 성가가 메아리쳐 엄숙하며 장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알렉산더 3세 기념비 Помятник Императору Александру III
이르쿠츠크 향토 박물관 근처에 있는 이 입상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1908년에 세워졌다. 1897년 시베리아 철도는 첼랴빈스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부분 개통되었고, 철도 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 곳(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 뻬쩨르부르그)에 세워지게 되었다. 최초 건립시에는 당시의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혁명 뒤에 벌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1960년에 이르쿠츠크의 오랜 명물인 오벨리스크가 세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2003년 10월을 기해 그 오벨리스크 대신 원래의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을 복원시켰다. 정면에는 러시아 문장인 쌍두 독수리가 있고 뒷편에는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무라비요프-아무르스키가 있다.
▒ 끼로프 광장 Площадь Кирова
끼로프 광장은 이르쿠츠크의 중앙 공원과 낮과 저녁을 불문하고 휴식을 취하려는 많은 시민들로 항상 활기차다. 근처에는 아름다운 교회와 호텔, 카페, 정원들이 있어 결혼을 한 신랑 신부들의 사진찍은 모습을 많이 볼수 있다.
밤에는 화려하게 장식한 카페에서 춤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광장에서 강쪽을 바라보고 정면에 서있는 건물이 이르쿠츠크 주 정부 청사이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보이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오르간 홀이 마련되어서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주 정부 청사 뒷편으로 구세주 성당이 있고, 그 주변 공원에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이르쿠츠크 시민 기념비가 서 있다. 강변을 따라 오른쪽에는 그리스도 탄생 사원이 자리잡고 있다
▒ 중앙시장 Центральный Рынок и Торговый Комплекс
중앙 시장과 백화점을 같이 붙어 있는데 규모가 무척 큰 편이다. 중앙 시장은 새로 지어진 큰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과일, 꽃, 오믈, 고기 등 생활 필수품을 판매한다. 쇼핑을 즐기는 시민들로 항상 붐벼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중앙 백화점은 이르쿠츠크 상류층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한국 백화점 보다는 상품의 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은 비싸다.
▒ 향토박물관 Иркутский Областно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
앙가라 강에서 마르크스 거리로 향하여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건물로 1782년에 설립되었다. 러시아에 표류한 일본인 일행의 귀국을 실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락스먼이 이 박물관의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많은 전시품을 수집하였다. 시베리아 선주민의 무기, 생활일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시베리아 동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의 그릇, 어린이들의 완구, 민속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 세레호프가 탐험에 사용하였던 짐승가죽으로 만든 카누 등이 볼만하다.
1층 매표소 옆에는 선물상점이 있고 시베리아에서 산출되는 돌에 그린 인형 등을 팔고 있다.
▒ 바이칼 생태박물관 Музей байкаловедения Лимногического иститута
2,500만년의 바이칼호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박물관이다.
바이칼 호수의 나이, 깊이, 길이 등 도표를 이용해 쉽게 이해할수 있게 해 놓았다.
바이칼호수에만 사는 각종 동, 식물의 표본이 수집되어 있다.
바이칼 호수를 안내하는 비디오도 볼수 있다.
▒ 딸찌 목조건축 박물관 Архитектурно-этнографический Музей Тальцы
우리나라의 민속박물관 식으로 드넓은 초원과 뒷편으로는 앙가라강이 흐르고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
18세기 러시아 사람들이 거주하던 가옥, 학교,성당 등 약 30동의 건물이 있으며 주위로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 바이칼호수 Озеро Байкал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는 그 명소답게 여러가지 애칭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1,637미터나 되고 수심 40미터의 동전도 시별이 가능할 정도의 깨끗함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가장 많은 담수량을 자랑하는데 세계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를 차지하는 천혜의 호수이다.
호수의 길이는 640KM, 가장 넓은 곳은 80KM, 가장 좁은 곳은 27KM이고 이 호수로 유입되는 강은 336개이며 바이칼 호수에서 나가는 강은 유일하기 앙가라강 하나이다.
바이칼 호수와 아주 비슷한 호수가 아프리카에 있는 탄가니카 호수로 수심이 1,400미터로 세계에서 두 번재로 깊은 호수이나 바이칼 호수에는 1,637미터 깊이에서도 생명체가 살고 있는 반면 탄가니카 호수는 수심 400미터부터는 어떠한 생명체도 찾아 볼수 없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는 내수심 200미터부터는 연중 수온이 영상 4도를 유지하고 여름에는 바이칼 호수 물이 차가워 몇 분간 발을 담그고 있기 어렵다.
이 거대한 바이칼 호수는 11월 중순부터 얼기 시작해 12월 말이되면 호수 전체가 얼게된다.
얼음두께는 80cm - 1m 20cm 정도나 되기 때문에 1월말 부터는 이 호수가 이 지역 주민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호수외로 교통표지판이 세워지고 10톤 화물 트럭이 이 호수 위로 운송을 하기도 한다.
♠♠♠♠♠♠♠♠♠♠♠♠♠♠♠♠♠♠♠♠♠♠♠♠♠♠♠♠♠♠♠♠♠♠♠♠♠♠♠♠♠♠♠♠♠♠♠♠♠♠♠♠♠♠♠♠♠♠♠♠
하바롭스크 Хабаровск
|
하바롭스크는 1649년 하바로프라는 탐험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후 1858년 군사 요충지로 세워졌으며 러시아 극동지방의 산업,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대학이 많아 교육도시로 알려져 우리나라 대학과도 자매결연이 맺어있다.
여러 박물관이 시내 중심에 몰려있고 아무르강과도 멀지 않아 2-3일 정도면 도시를 다 둘러볼 수 있다.
지역번호 : 4212
인구 : 약 6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1 (summer time 시 +2)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직항편인 달라비아항공(목, 일)이나 아시아나항공(수, 토)이 있다.
♠♠♠♠♠♠♠♠♠♠♠♠♠♠♠♠♠♠♠♠♠♠♠♠♠♠♠♠♠♠♠♠♠♠♠♠♠♠♠♠♠♠♠♠♠♠♠♠♠♠♠♠♠♠♠♠♠♠♠♠
▒ 아무르강 Р. Амур
하바롭스크를 대표하는 아무르 강가에 가면 시베리아의 대자연과 만날수 있다.
강을 바라보고 서면 아득히 보이는 건너편 강가의 건물들은 그 형태조차 알수 없을 정도다.
아무르 강은 중국과 시베리아의 경계선이 되기도 하는데 중국이름은 흑룡강으로 북쪽에서 흘러와 오호츠크해로 흘러 들어간다.
여름이면 모래사장에서 수영과 썬텐을 즐기는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 레닌광장 Площадь Ленина
레닌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심장과 같은 곳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여름이면 아름다운 분수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얼음 축제가 열려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하바롭스크 주 청사와 의과대학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광장에는 레닌 동상과 분수대가 있다. 그리고 동상 뒤로는 디나모 공원과 연결된다.
▒ 향토박물관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ево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 им. Н. И. Гродекова
연해주 일대에 있는 향토박물관 중 가장 큰 박물관
하바롭스크 지방의 생태계, 각종 동물의 박제, 러시아인의 이주 역사 등 다양한 전시품들을 자랑한다.
가는 방법 : 트롤리 버스 1번 (호텔 인뚜리스트 오른쪽 방면)
휴관 : 매주 월요일
▒ 전쟁박물관 Музей боевой славы моряков-амурцев
이 박물관은 1층/2층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극동전사에 대한 정보와 구 만주를 점령한 일본, 중국, 소련군의 전투자료도 상세히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도 볼 수 있으며, 시베리아 소수 민족의 수공예품을 살 상점도 자리잡고 있다.
가는 방법 : 향토박물관 맞은 편
휴관 : 월요일
▒ 극동 미술관 Дальневосточны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музей
하바롭스크 박물관 중 가장 볼만한 곳 레핀 등 러시아 거장의 작품들을 많이 전시하고 있으며 이콘, 회화, 민예품 등 전시물이 다채롭다. 가끔 어린이들을 위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가는 방법 : 향토박물관 옆 흰 건물
휴관 : 월요일
▒ 중앙시장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중앙시장은 하바롭스크 서민 경제의 중추다. 음식(빵, 고기, 생선, 유제품, 캐비어, 보드카, 꿀 등)과 동물(강아지, 고양이, 물고기, 새, 파충류 등), 음반, 의류, 골동품 등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다. 시장은 크게 야외 동물시장과 공산품시장, 음식시장으로 나뉜다. 실내 음식시장에서는 김치를 비롯한 한국 음식과 과일, 채소 그리고 꽃을 파는 고려인들을 만날 수 있다.
▒ 디나모공원
산책로에 만발한 꽃들이 화사하다. 산책로에서 말찌감치 보이는 테니스 코트와 축구장, 어린이 놀이터는 아무르 강변의 시립공원보다 한산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공원 한가운데 놓인 디나모 체육관은 경기장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고, 경기장 입구에는 아예 사우나 간판까지 걸어두었다.
크라스나야르스크 Красноярск
크라스나야르스크의 기원은 1628년 예니세이강 상류에 러시아 제국의 요새를 구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요새의 성벽이 붉은 벽돌로 지어졋기 때문에 ''''''''붉은 벽''''''''이란 뜻의 ''''''''크라스늬 야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유배지로서, 동방 진출의 군사기지로 사용되다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완성으로 도시 발전에 탄력을 얻어 금속산업과 건축업이 발달한 주요 도시가 되었다. 남북으로 나누는 예니세이강 때문에, 이 도시와 관련해 예니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곳이 많다. (시베리아횡단열차 크라스나야르스크발 : 예니세이 호)
지역번호 : 3912
인구 : 약 95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2 (summer time 시 -1)
인천에서 가는 방법은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롭스크, 이르쿠츠크를 경유해 가는 항공편이 있다.
단, 크라스항공(직항)이 현재 운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중간 경유지에서 1-2일정도 머물러야 한다.
♠♠♠♠♠♠♠♠♠♠♠♠♠♠♠♠♠♠♠♠♠♠♠♠♠♠♠♠♠♠♠♠♠♠♠♠♠♠♠♠♠♠♠♠♠♠♠♠♠♠♠♠♠♠♠♠♠♠♠♠♠♠♠
▒ 수리코프 박물관 Музей-усадьба В. И. Сурикова
수리코프 박물관은 1948년 수리코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관하였으며, 이 곳에서는 19세기 러시아 화가 수리코프의 다양한 정물화와 시베리아 풍경,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을 그린 그림들을 볼수 있다.
수리코프의 그림은 이곳 말고 수리코프 미술 박물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중앙 시베리아 지질학박물관 Музей геологии Центральный Сибир
중앙 시베리아 지질학 박물관에는 도특한 광석 컬렉션을 보여준다.
또한 모형, 설명서, 지도 등을 통해서 지표 안의 세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방문하기 전에 예약을 해야한다.
▒ 크라스나야르스크 기차역
도시 중심에 있는 이 기차역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어 여행자에게 매우 편리하다.
휴대품 보관소는 역사 오른쪽의 구 건물에 위치하여 휴대품 보관을 요청할 수 있다.
24시간 영업을 하기는 하지만, 쉬는 시간이 있으므로 짐을 맡길 때에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역사 큰길 건너편에는 우체국과 국제 전신국이 있어 국제 전화가 가능하다.
♠♠♠♠♠♠♠♠♠♠♠♠♠♠♠♠♠♠♠♠♠♠♠♠♠♠♠♠♠♠♠♠♠♠♠♠♠♠♠♠♠♠♠♠♠♠♠♠♠♠♠♠♠♠♠♠♠♠♠♠♠♠♠
캄차카 Камчатка
캄카차는 태평양을 둘러싸고 있는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해 있다. 세계 화산의 10%가 이 캄차카에 있으며, 그 중 28개의 화산은 아직 활동중이어서 화려한 장관을 연출한다. 또한 이 화산으로 생성한 자연 온천이 있어 고혈압, 심장병 등에 좋다는 심천수에서 천연 온천을 즐길수 있다. 그리고 캄차카는 각종 동식물의 천국으로, 유명한 야생곰과 연어를 들 수 있다. 하나도 때묻지 않은 수려한 자연경관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캄차카는 러시아 지역 중에서도 아직은 많이 특수하기 때문에, 여행하기 전 반드시 설명회나 충분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지역번호 : 4152
인구 : 약 2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3 (summer time 시 +4)
한국에서 블라디보스톡이나 하바롭스크를 거쳐 갈수 있다.
♠♠♠♠♠♠♠♠♠♠♠♠♠♠♠♠♠♠♠♠♠♠♠♠♠♠♠♠♠♠♠♠♠♠♠♠♠♠♠♠♠♠♠♠♠♠♠♠♠♠♠♠♠♠♠♠♠♠♠♠♠♠
▒ 나리체보 국립공원
30만 헥타르에 걸친 아름다운 자연 특구, 이 국립공원은 날리체보 강의 그림같은 풍경을 중심으로 펼쳐진 캄차카의 자랑거리다. 날리쳅스끼예 광천수 보호구역의 광천수는 비소, 붕산, 규소 등을 풍부하게 포함하공 있으며 아바찬스끼, 까략스끼, 쥬빠놉스꼬-드젠쥬르스까야 화산에서 연결된 나지막한 산맥이 국립공원의 꾸뽈, 베르쉰스끼 화산까지 연결돼있어 확실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관광객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온천은 가랴체리첸스끼예, 줼또리첸스끼예, 딸롭스끼예, 끄라예볫체스끼예 등이며, 아그스끼예, 까략스끼예, 치스찐스끼예 나르쟌 온천도 적극 추천한다. 산과 드넓은 툰드라, 신기루처럼 의미하게 보이는 바다가 주는 미감도 빼어나다. 두 말하면 잔소링니 자작나무 숲의 대명사 까멘나야 비료자, 여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모든 종류의 낙엽송과 러시아 전지역에 고르게 퍼져있는 자작나무들이 풍성하게 퍼져있다.
이미 많은 사업가들이 이 타이가 지역 개발을 위해 나무를 잘나래고 있지만 아직 여름, 가을로 이어지는 형형색색의 풍경을 건재하게 선보인다. 6-8월이 가장 아름답다. 날리쳅스까야 강 유역에 분포하는 다양한 동식물 생태계도 놀랍다. 특히 강을 중심으로 33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날리쳅스까야 강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100m 앞에서도 볼수 있다. 하지만 혼자 다니다 곰의 먹이가 된 사진작가들이 많아 반드시 총을 소지한 가이드를 택해야 한다. 여름철 날립쳅스까야 강은 연어들이 집단 산란하는 곳으로 유명해 불곰의 공격에 대한 대비에 더욱 신경 쓰는게 좋다.
날리체보 국립공원 한 가운데를 지키고 서있는 것은 날리체보 암산이다. 꼬대기가 1년 내내 눈으로 덮여있고, 산 중턱까지는 90여 종의 희귀 조류가 서식한다.
날리체보 국립공원 전역에 사는 조류 친구들은 145종에 이른다.
날리체보 국립공원은 헬리콥터로만 갈수 있다.
▒ 니꼴스까야 언덕
뻬뜨로빠블롭스크-캄차트카의 중심지이자 아바차 만을 가까이 내려다 볼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이다. 막수또브 포대가 늘어선 미모리알 바따레야 막수또바에는 5개의 대포와 기념비가 있으며 자작나무 숲도 근사한 볼거리다. 1854년 크리미아 전쟁 희생자를 위해 지은 작은 예배당도 볼만하다.
니꼴스까야 언덕 아랫길을 따라 내려가면 계절에 따라 물개 떼가 먹이 몰이를 하는 광경도 볼수 있으며 여름철에는 해변 가득 피서객들로 가득차 불타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이곳은 캄차카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또한 언덕을 내려오면 시내 곳곳의 쇼핑센터와 재래시장, 해변 박물관 기념품점 등을 관광할 수 있다.
▒ 비스뜨라야 강
캄차카 반도 한 가운데를 흐르는 비스뜨라야 강(폭 20-40m, 수온 영상 5-7도)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레프팅과 캠핑을 연계해 시간을 보낼수 있다. 엘리조보 공항에서 서쪽 80km, 말끼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20km 지점에서 이 강이 시작되며, 남부로 흘러가 오호츠크해로 연결된다.
뻬뜨로빠블롭스크에서 버스를 타고 말키 마을까지 가서 비스뜨라야 강으로 이동한 다음 레프팅, 낚시, 버섯과 과실류 채집을 하러간다. 그림같은 화산의 경치를 산책하며 즐길수도 있다.
비스뜨라야 강 이외에도 아빨라 강에서 시작해 오호츠크해까지 이어지는 래프팅 코스도 유명하다. 차로 들어가기 번거로운 지역이라 헬리콥터를 이용해 많이 가는 편이다.
▒ 지역학 박물관
건물 절반이 목재로 지어진 매력적인 박물관 건물로 아바차 만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언덕 배기에 위치해있다. 박물관에는 캄차카 반도의 지형자료와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 전통 문양이 새겨진 나무토막 같은 입체적인 조형물이 많아 예쁘다.
▒ 빠라뚠카
뻬뜨로빠블롭스크에서 차고 40여분 거리에 떨어져잇는 빠라뚠까 마을은 곳곳이 노천온천과 휴양시설이라 캄차카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되엇다. 베링해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다른 곳에 비해 따듯한 편이며, 활화산 지대와 연결돼있어 빠라뚠까 강 일대의 작은 온천들도 많이 흩어져 있다.
신경통과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캄차카 반도의 광천수는 전역에 걸쳐 274 곳이나 퍼져있는데, 1960년대 부터 빠라뚠까를 중심으로 군인 전용 사나또리야(휴양소)가 조성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나치낀스끼예, 비스뜨린스끼예 온천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중, 장년층 관광객들은 대부분 광천수 온천 때문에 빠라뚠까를 찾고 잇으며 여름철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노천 온천의 수온은 보통 40도 안팎이며, 가스에는 질소 성분이 많이 함유돼있어 최고의 온천으로 각광받는다.
뻬뜨로빠블롭스크에서 빠라뚠까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리 호수와 빌류친스끼 화산, 빌류친스끼 온천도 가볼만하다. 이 일대에는 수많은 간헐 온천과 용천수가 퍼져있고, 화산도 볼수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낚시, 등산, 산악스키, 개 썰매 등도 가능하고 이 곳에서 듣는 러시아 전통기타 연주나 피아노 연주는 피로가 가실 정도로 일품이다.
♠♠♠♠♠♠♠♠♠♠♠♠♠♠♠♠♠♠♠♠♠♠♠♠♠♠♠♠♠♠♠♠♠♠♠♠♠♠♠♠♠♠♠♠♠♠♠♠♠♠♠♠♠♠♠♠♠♠♠♠♠♠♠
노보시비르스크 Новосибирск
노보시비르스크는 모스크바, 뻬쩨르부르그 다음으로 큰 도시로 지하철이 놓여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 건설 노무자의 조그만 숙소로 시작한 마을이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면서 눈부신 발전이 있었다.
1930년대 노보시비르스크와 카자흐스탄을 연결하는 철도의 건설로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또한 군수공업이 발달했으며 가장 큰 기차역, 비행장,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이 도시는 학문의 도시로 물리, 화학, 사회과학 등 학문전통이 깊은 시베리아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독자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관광도시라기 보다는 학술도시로 각종 세미나 등 학술적 목적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 도시에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극동지역 등지에서 넘어온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놓치지 말고 관광해야 할 곳은 아카뎀고로독이다.
지역번호 : 3832
인구 : 약 145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3 (summer time 시 -2)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직항인 시베리아항공(일)이 있다.
경유노선으로는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크를 거쳐 갈 수 있다.
♠♠♠♠♠♠♠♠♠♠♠♠♠♠♠♠♠♠♠♠♠♠♠♠♠♠♠♠♠♠♠♠♠♠♠♠♠♠♠♠♠♠♠♠♠♠♠♠♠♠♠♠♠♠♠♠♠♠♠♠♠♠
▒ 아카뎀고로독 Академгородок
1950년대 소비에트 공화국이 직면했던 문제들 중 하나가 시베리아의 생산력을 급속히 증대시키는 일이었다. 시베리아 천연자원의 전례없는 사용규모는 러시아 동부지역에 대한 기초 연구 조사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대규모의 과학단지가 모스크바나 뻬쩨르부르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설립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많은 러시아인들과 외국인들은 아무도 이러한 계획에 대해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공산당 지도력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던 시대였다. 많은 모스크바와 뻬쩨르부르그의 과학 단체들이 노보시비르스크로 옮겨왔으며, 과학단지의 창시자들은 그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다.
아카뎀고로독의 첫 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매우 열정적이며 사심 없는 그들의 노동이었다. 기호(시그마)는 아카뎀고로독의 상징이다. 이 기호는 아카뎀고로독에 자리잡고 있는 과학 연구소들의 다양성과 동시에 통합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들은 과학을 연구하고 실험하는데 있어 독특한 풍토를 일구어 냈다.
▒ 철도박물관 Музей Железнодорожной им. Н. А. Акулина
1차 세계대전 당시 애전 이동병원으로 이용되던 기차, 레일을 까는 기차 등 여러가지 종류의 기차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조그만 기차역에 레일을 만들어 기차를 이어와와서 그대로 전시했다.
가는방법 : 아카뎀고도록
휴관 : 금요일
▒ 역사박물관 Музей истории
시베리아 철도건설과 시베리아의 자연, 역사에 관한 자료들과 민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이 박물관에는 시베리아 지역의 무속신앙에 대한 자료가 대량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드는 것은 시베리아의 무속신앙이 우리의 그것과 매우 닮았디 때문이다.
이 박물관에는 우리나라의 장승과 흡사한 것과 시베리아 무당 사진, 그리고 무당이 쓰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시대별로 시베리아 원주민의 의상과 집안 도구와 가옥이 전시되어 있어서 학술적으로도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곳은 항상 열려있는 박물관이 아니어서 예약을 꼭 해야한다.
▒ 오페라 발레 극장 Театр Оперы и Балета
레닌광장 뒤로 오페라 발레 극장이 있어 노보시비르스크를 문화의 향기로 가득 채워준다.
극장 면적이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보다 크고, 35m 높이의 은색 돔이 인상적이다.
2000석 규모의 큰 홀과 550석 규모의 콘서트 홀을 가지고 있으며 실력있는 오페라단과 발레단, 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다.
이 극장의 오페라단, 발레단은 러시아 내에서도 실력이 있다고 정평이 나 있으며, 오페라단은 부산문화회관과 교류 활동을 벌이고 잇어서 비시즌 기간에는 부산에서 공연하는 모습도 볼수 있다.
▒ 동물원 Зоопарк
오비강 수달, 바이칼호의 산새, 캄차카와 중앙아시아산 산양 등 러시아 외 지역에서는 볼수 없는 여러 종류의 동물을 볼수 있다. 400종류, 4000마리의 동물이 사육되고 있다.
♠♠♠♠♠♠♠♠♠♠♠♠♠♠♠♠♠♠♠♠♠♠♠♠♠♠♠♠♠♠♠♠♠♠♠♠♠♠♠♠♠♠♠♠♠♠♠♠♠♠♠♠♠♠♠♠♠♠♠♠♠♠
예까쩨린부르그 Екатеринбург
러시아 황제 표트르의 부인 예까제리나의 이름에서 도시이름이 지어졌다. 1924년 우랄의 적군에 승리를 안겨준 레닌의 친구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을 개명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이 도시 출신인 옐친의 집권 이후 다시 옛 이름으로 복원한 것이다.
예까쩨린부르그(스베들롭스크)는 모스크바, 뻬쩨르부르그, 노보시비르스크와 함께 큰 도시로 뽑힌다.
우랄산맥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이 도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로마노프 가의 니콜라이 2세와 그의 황족이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소비에트 시대에는 군수공업 단지로 외국인에게 전혀 개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한국 사람이 없다. 이 도시의 중심지는 작기 때문에 여행할 때 레닌대로를 중심으로 보면 된다. 레닌 대로를 중심으로 우랄대학교, 오페라 발레 극장, 백화점 등 각종 상점들이 즐비해있다.
지역번호 : 3432
인구 : 약 150만
한국과의 시차 : 동계 -4 (summer time 시 -3시간)
한국에서 가는 방법은 블라디보스톡이나 모스크바를 경유해 갈수 있다.
직항은 없다.
♠♠♠♠♠♠♠♠♠♠♠♠♠♠♠♠♠♠♠♠♠♠♠♠♠♠♠♠♠♠♠♠♠♠♠♠♠♠♠♠♠♠♠♠♠♠♠♠♠♠♠♠♠♠♠♠♠♠♠♠♠
▒ 향토박물관 Свердловский областно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
1871년 세워진 이 박물관은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인사들이 운영하다 1925년에 국가로 귀속되었다. 예까쩨린부르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박물관이며, 주 전역에 11개의 분관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에는 5십 만 점이 넘는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오래된 조각품들과 여러 미술품, 희귀 고서적이 있다.
특히 러시아 최후의 로마노프 가의 유품과 초기 우랄 지역 주민들의 종교 생활을보여주는 전시물은 눈길을 끈다.
▒ 오페라 극장 Государственни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 и балета России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 중 하나에 속한다. 이 극장의 창립에는 19세기 유명한 음악가들이 참여하였고 내노라 하는 갑부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다. 이 곳의 명성은 러시아 전역에 걸쳐 유명해졌고 작품 연출 또한 훌륭하여 소비에트 시대에는 ''''''''소비에트 오페라의 실험실''''''''이라고 불려졌다.
이 극장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두 번이나 상을 수여받아 예까쩨린부르그의 자랑이 되었다.
▒ 우랄 국립대학교 Урал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 А. М. Горького
우랄 국립대학은 1920년 소비에트 시대에 창립되었다. 종합대학이기 때문에 다양한 학부가 있으며, 중앙 건물은 레닌 대로 51번지에 위치해 있다. 그 외 이공게 학부는 시내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순수과학 분야로 유명하여 국내에도 이곳 대학출신의 연구월들이 활동하고 있다.
▒ 마야콥스키 공원 Маяковский Парк
우랄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려 겨울 스포츠를 즐길 곳이 많다.
도시를 떠나기가 어려우면 도심에서 5km 떨어진 곳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할수 있는 마야콥스키 공원이 있다. 기차역에서 전차 3번이나 레닌 거리에서 29번을 이용하면 갈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