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가 온몸을 훝고 지나가는 악몽으로 비몽사몽하며 숲속의 아침을 맞는다. 의외로 정신은 상쾌하다.
아마도 수천년의 생명을 간직한 야쿠시마의 정기탓이리라. 전날밤 한껏 만끽한 밤하늘 은하수의 잔영이
눈앞에 아른거린탓인지 이른 새벽의 여명이 아름답게 밝아오지만 마음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전날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수천년을 거스르는 산행을 나선다.
야쿠시마의 최고봉 미야노우라다케(宮之浦岳1,936m)를 오르기 위한 산행 코스는 대표적으로 두개의
코스를 많이 이용하는데, 최고의 수령을 자랑하는 조몬스기(縄文杉)와 윌슨그루터기 등을 관광하며
정상으로 오르는 아라가와(高塚) 등산코스가 있고, 능선을 지나 정상을 오르는 요도가와(淀川) 등산코스
가 있다. 특히 아라가와 등산코스는 환경보호문제와 도로의 빈약한 환경으로 인하여 야쿠시마 자연관에
차를 주차하고 등산로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한 후 폐철길인 삼림궤도(森林軌道) 약 9km를 걸어야하
는 다소 지루한 코스이다. 반면 요도가와 등산코스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여 안보오임도(安房林道)를
1시간 정도 구불구불 올라 약 1300m에서부터 능선산행을 하여 정상에 오르는 코스이다. 두코스 모두
12시간 이상의 산행코스로 최소 1박2일의 산행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음날 아라가와
코스를 이용하여 정상에 오르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오늘은 가볍게 요도가와 코스의 초입만 산행하기로
한다.
야쿠시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안보우(安房)항구 초입 삼거리에서 산쪽도로로 좌회전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야쿠시마 자연관과 순환버스 승강장을 지나 산길을 계속 달리다보니 아라가와 등산코스와
요도가와 등산코스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잠시 달리다보니 예전의 임도를
포장한 좁은 2차선의 안보오임도(安房林道)이다. 곳곳에서 확포장 공사를 하고있고 도로 자체가 워낙
좁으며 곳곳에서 사슴과 원숭이가 튀어 나오고, 도로 양쪽의 원시림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운전하다
보니 기원삼(紀元杉)이란 표지판이 불쑥 나타난다. 도로쪽에서 보이는 기원삼은 조작품인양 바짝 마른
나무조각 하나를 매달고 있다. 강인해보이는 줄기를 중심으로 아직도 푸르른 잎으로 덮여있는 많은
가지를 거느린 수령 3000년의 삼나무이다. 나무 목책으로 둘러 쌓이고 나무계단을 통하여 한바퀴 돌아
볼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있지만 삼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생명에 대한 보호시설로는 미흡해보인다. 아
래쪽에서 보이는 기원삼은 한편으론 강인하고 건강해보이지만 다른 한쪽면은 찢어지고 헐어서 곧 무너
질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기원전 일천년에 태어나
인간문명의 태동을 묵묵하게 지켜보고
기원후 이천년이 지나도록
인간문명의 성쇠를 굽어보도다.
십구점오미타의 작은 키에
팔점일미타의 통통한 몸통을 가진
작고 보잘것없는 노인이지만
삼천년의 지혜가 담겨있도다.
온갖 기생식물 받아주고
착생식물까지 넘나드니
찢어지고 꺽였지만
삼천년을 이어온 고고함 잃지않네.
삼천년의 세월에 견주어서
백년 인간 삶 허무하다 하지마라
아버지의 아버지,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는 그것이 삼천년의 지혜로다.
"삼천년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어쩌지 못하는 산이 이태우 씀"
우리가 삼천년의 세월을 더듬고 있던 이시각 일단의 몰지각한 일본 우익 의원들이 독도에 대한 어거지
를 위하여 김포공항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괘씸하게 보이면서도 삼천년의 지혜를 자기네
섬 안에 간직하고 있음에도 떼를 쓰고 있는 그들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허긴 삼천년의 지혜를 백년도 못
사는 우리가 어찌 짐작이나 하랴.~~ 우리 모두가 불쌍한 존재일런지......
기원삼(紀元杉)과 인근의 웅장한 크기의 천상삼(川上杉)을 감탄과 존경의 마음으로 감상하고 산길을 재
촉한다. 5~6대의 주차공간과 화장실 건물이 전부인 요도가와(淀川) 등산로 입구에는 정상인 미야노우라
다케(宮之浦岳1,936m)까지 왕복 9시간이 걸린다는 산행 안내판(산행고도 표시판)과 함께 500엔의
입장료 자유 기금을 받는다는 기부함이 있다. 하여간 우리에겐 공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수천년을 살아온 삼나무를 감상하는 산행길은 과거로 회귀하는 길이다. 거대
한 삼나무와 온갖 기생 이끼류들이 어우러져 만화속 세상을 만들어준다. 어디선가 요정이 튀어 나올듯
한 분위기에 취해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 요정이 되어 보기도 한다. 오늘의 일정을 맞추기 위하여 산행
중간에 원점으로 돌아와 야쿠스기랜드로 향한다. 1000년 이상의 수령을 갖는 삼나무에게 붙여진 이름
"야쿠스기(야쿠삼나무)", 그 야쿠스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야쿠스기랜드이다.
대부분의 야쿠시마 관광지는 기금형식으로 모금함에 자발적으로 돈을 내도록 되어있지만 야쿠스기랜드
는 입장권을 받는 사람이 지키고 있어 일인당 300엔의 피같은 돈을 내고 입장한다. 입장료를 받는 만큼
모든 시설이 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30, 50, 80, 150분 등 다양한 코스로 야쿠스기를 돌아 볼 수 있
도록 판석과 나무 계단 등으로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산책하는 마음으로 천년의 세월을 넘나
든다. 맑은 물이 풍성한 계곡을 오가는 몇개를 현수교를 건너기도 하고 계곡에서 족탕을 즐기기도 하면
서 푸르른 이끼로 뒤덮인 멋진 삼나무 숲을 감상하다보니 예정보다 시간이 너무나 초과되고 말았다.
오전의 일정이 추가되어 늦은 점심을 한 호텔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으로 챙기고 다시 섬을 반바퀴 돌아
야쿠시마의 북쪽에 위치한 백곡운수협(白谷雲水峽, Sirataniunsuikyou)으로 이동한다. 백곡운수협은 "하
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유명한 지브리 에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원령공주와 토토로의 영감
을 받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끼와 거대한 삼나무 밀림 협곡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와 엔
트로 묘사된 서양 분위기속 숲속의 요정이 백곡운수협의 이끼에 묻힌 거대한 삼나무 밀림속에서 튀어나
올듯한 분위기로 지브니 에니의 많은 작품들에서 묘사한 동양적인 숲속의 정령으로 어디선가 나올듯하
다. 수천년은 되었을 거대한 삼나무의 그루터기에 아들의 아들 그리고 손자의 손자 나무가 자라나고 그
위에 이끼가 덮히고 덮혀 거대한 성곽과 같은 형상으로 수많은 가지를 거느린 모습은 주변의 이끼에 덮
힌 분위기와 어우러져 오래도록 발길을 잡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계속된 맑은 날씨에도 몽환적인 분
위기를 보여주는데, 희미한 안개까지 덮어준다면 조금 똑똑한 원숭이가 태어나던 날을 말해줄 엘프와
엔트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올듯 하다.
1시간에서 5시간까지 다양한 코스로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잘 정비된 산행로를 오래도록 하염없이 걷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진 시간에 걸음을 재촉하여 하산을 서두른다. 다시 섬을 한바퀴 빙돌아 전날밤 아쉬
움에 발길을 돌렸던 평내해중온천(平內海中溫泉)으로 향한다. 밀몰시에는 바닷물에 잠겼다가 썰물이 되
면 모습을 드러내는 평내해중온천은 바다와 하늘과 별이 어우러진 노천탕으로 이날은 우리 일행만을
위한 가족탕이 되고 말았다. 마침 하늘도 우리 일행을 반기듯 멋진 밤하늘의 은하수와 검은 빛 바다위를
저어가는 밤배같은 수많은 별똥별과 부드러운 파도소리를 선사해주었다.
부러진 가지 하나를 머리에 이고 삼천년의 세월을 인고한 기원삼(紀元杉)의 상단모습
강인하고 건강하게 보이는 기원삼(紀元杉) 하단의 한쪽면.
다른 한쪽면은 찢어지고 갈라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기원삼(紀元杉)의 모습.
강인하게 쭉뻗은 천상삼(川上杉)의 위용
요도가와(淀川) 등산로 입구의 안내간판
요도가와(淀川) 등산에서 만난 거대한 삼나무.
요도가와(淀川) 등산로에서 만난 또다른 거대한 삼나무
다양한 코스를 보여주는 야쿠스기 랜드의 안내간판
야쿠스기랜드 초입의 대문역할을 하는 거대한 삼나무
야쿠스기 랜드에서 만난 아들과 손자나무를 이고 있는 거대한 그루터기
야쿠시마 곳곳에서 만난 야생 사슴
야쿠스기 랜드의 이끼에 덮인 삼나무
야쿠스기 랜드의 천년삼
야쿠스기 랜드의 이끼에 덮인 산책로
야쿠스기 랜드의 잘 정비된 나무 계단과 삼나무
야쿠스기 랜드의 잘 정비된 나무 계단과 바위를 감싸고 있는 삼나무
야쿠스기 랜드의 잘생긴 멋진 부처삼
야쿠스기 랜드의 잘 정비된 판석 산책로와 삼나무
야쿠시마의 길에서 자주 만난 원숭이 가족
백곡운수협 입구의 다양한 산행코스를 보여주는 안내간판
백곡운수협의 이대삼(二代杉)
백곡운수협의 거대한 삼나무
백곡운수협의 기이한 형상의 나무와 밀림
거대한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삼본족삼(三本足杉)
백곡운수협에서 맞이한 일몰
첫댓글 옛 생각이 나네요, 야쿠시마 삼(杉)나무 숲은 원시림이란 말보다는 태고림(太古林)이 적합하다는 것을 가보면 알게 될겁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대단한 숲속이죠, 또 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