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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무안군과 신안군의 봉대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번호 : 제157-1번째 지맥산행
산행일자 : 2022년 10월 21일 (금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대체적으로 맑았으나 가끔 구름이 껴 있었으며 약간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1도에서 영상 20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봉대지맥 분기점(이정판, 물탱크, 무안읍 매곡리 수빈마을)-수양길 시멘트 포장도로(오리사육장)-갈림삼거리(주영한우농장)-갈림삼거리(현경평림길 시멘트 포장도로)-민가와
갈림삼거리(현경평림길 시멘트 포장도로)-지하도로(12번 무안광주고속도로 통과)-현경평림길 시멘트 포장도로-평산리 갈림삼거리(현경평림길 시멘트 포장도로)-원평산 버스
정류장(24번 함장로 2차선 포장도로와 현경평림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평산성결교회-유수정 버스정류장(24번 함장로 2차선 포장도로와 유수정길 및 통정길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현경교차로-지하도로(현경교, 77번 공항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현경면사무소와 현경보건지소-현경삼거리(현해로와 815번 운해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해동마을 표지석과 입간판-목동육교(77번 공항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송정삼거리(현해로와 망운로 갈림삼거리)-하수정마을앞 버스정류장-송정정미소(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송정마을 입간판과 버스정류장-송정교차로-삼수장3반과 서해오리집앞 버스정류장-봉월로 용정리 갈림삼거리(무안갯벌도립공원 도로표지판)-봉오제삼거리-봉오제 버스
정류장(서해랑길 무안24코스 안내판) 이정표(봉대산 0.7 Km와 24코스 종점 20.5 Km)-봉대산 능선진입(옹산봉수지 안내판)-비포장임도-김해김씨 가족묘지-조릿대 등로-칡넝굴 지대-
봉대산(83.8봉, 이정판, 옹산봉수 설명판, 육각정자와 운동시설)-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복귀-성제동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장-신대림 SK주유소-민가와 고구마밭-잡목능선진입-수확한
고구마밭 경작지-탐진최씨세장산(능선진입)-밀양박공 가족묘지-간벌지-작은봉대산(62.2봉, 이정판)-신대림 SK 주유소 복귀-오류길 1차선 포장도로-삽다리 마을회관-어은동회관-
비포장임도-잡목 능선진입-무명묘지-검무산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검무산(104.3봉, 이정판, 와도25 삼각점, 돌탑2, 운동시설)-오류길 시멘트 포장도로 복귀-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삽다리 마을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장-현경북초등학교-마산육교(24번 송마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마산2리 신기마을 표지석(신기 버스정류장)-마산길(2차선 포장도로, 마산마을
표지석)-큰재(마산리 마산길 시멘트 포장도로)-밭경작지-잡목 능선진입-53.6 삼각점봉(와도452 삼각점, 띠지들)-큰재 복귀-홀통 버스정류장(현해로와 마산길 갈림삼거리)-현해로 시멘트
포장도로-마산 활어회마트-홀통교차로(24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유진농산앞 버스정류장-가입리 버스정류장(가입리 표지석)-능선진입(비포장임도)-잡목능선진입-비포장임도-
43.1봉(이정판, 띠지들)-24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복귀-물암 버스정류장-수암교차로(24번 형해로와 해제지도로 및 만송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사거리)-월암 버스정류장-미곡처리장
버스정류장-오류회관-해제오류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 능선진입-밭경작지-겨울용 양배추밭-비포장임도-이성산 약수터 갈림삼거리 이정표(신만마을 1.9 Km, 무안생태
갯벌센터 2.2 Km)-갈림삼거리 이정표(황금박쥐금굴 400 m, 약수터 200 m)-나무계단-122 삼각점봉(이정판, 와도444 삼각점) 이정표(신만마을 1.4 Km, 무안생태갯벌센터 2.7 Km)-
황금박쥐금굴 갈림삼거리 이정표(황금박쥐금굴 200 m, 무안황토갯벌랜드 2.4 Km)-이성산(123.6봉, 이정판)-77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복귀-학천교차로-토치 버스정류장-양매 버스
정류장-양간사거리-805번 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신협 주차장-신백법식당(점심식사, 짱뚱어탕)-양간2리 버스정류장(해제 초등학교)-매곡내분길 1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고구마밭 경작지(수확)-양파 파종예정지-사야길 시멘트 포장도로-신정1리 응양마을 표지석(805번 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 남양홍씨세장비)-해제신정길 시멘트 포장도로-
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잡목등로, 해피 마당쇠님 띠지)-초지밭 경작지-감나무 과수원-우거진 칡넝굴 등로-편백나무 군락지-시멘트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비포장임도-이정표(제2약수터 150 m, 응양마을 1.2 Km)-육각정(공터, 화장실)-운동시설-봉대산(197.1봉, 봉태정 팔각정, 삼각점 소실)-비포장임도(봉대산등산로
안내판)-능선진입-우거진 잡풀 및 칡넝굴 등로-비포장임도-202.2봉 갈림삼거리-202.2봉(이정판,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갈림삼거리 복귀-비포장임도(편백나무 군락지)-KT 해제 이동통신탑-
LG 해제 이동통신탑-비포장임도 공터-묘지지대-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이정표(광천 등산로)-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 등로-시멘트
포장도로(땅골길)-비포장임도(밭경작지)-능선진입(비포장임도, 편백나무)-광산김공 묘지들-남양홍공 부부묘지-대나무 등로-양파 재배지-땅골길 시멘트 포장도로-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김해김씨세장비)-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임도)-회안길(신설 1차선 포장도로)-밭 경작지(고구마 수확)-용덕사-시멘트 포장도로-초지지대-능선진입(산객님 띠지)-
56.8봉(법광님 띠지)-가시잡목등로-비포장임도-양배추밭-시멘트 포장도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발산길 시멘트 포장도로-발산길 1차선 포장도로-뿌리분재-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수준점(16미터)-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복귀(발산 표지석, 발산 버스정류장)-기상레이더 연구센터-감나무재(천장2리 보천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해제남부교회-원갑사
갈림삼거리(신등마을과 강산마을, 원갑사, 가람농장, 진주강씨세장비)-구등마을 갈림삼거리-구등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천장2리 보천마을 표지석-천장삼거리-해제남초등학교
갈림삼거리(돌기마을 표지석)-해제남부경로당-갈림삼거리(지도, 좌측의 무안과 장등 방향)-천장교(24번 해제지도로 4차선 포장도로 통과)-창매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편백나무
군락지-자연화 묘지-무명묘지-잡풀 공터-묘지들-갈림삼거리(좌측)-지독한 잡목능선진입-이장묘터(해피 마당쇠님 띠지)-71.5봉(잡목 무명묘지)-무안천장 와이어블 공용기지국-
비포장임도-금성나공 묘지-밭경작지-양배추밭경작지-비포장임도-고구마밭-시멘트 포장도로-양파 파종지-잡목능선진입-80.2 바위무명봉(산행띠지들)-천마산(83봉, 이정판)-팔각정
이정표(소망바위 0.22 Km, 창산버스승강장 0.47 Km)-바위와 나무계단-소망바위 이정판-창산길 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표(소망바위 0.15 Km와 전망대 0.37 Km)-양배추밭-양파 파종
예정지-능선진입-양파 파종지-잡목 능선진입-독산(56봉, 이정판)-양파밭 파종지 복귀-잡풀과 잡목등로-비포장임도-밭경작지(고구마 수확밭)-참새골 버스정류장(참새골길 2차선 포장도로)-
고래캠핑장-능선진입(비포장임도)-잡목 능선진입-초지등로-양배추밭-해제지도로 1차선 포장도로(민가)-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서해랑길 이정표(25코스 시점 4.2 Km, 황토골
휴게소매점 0.2 Km와 25코스 종점 12.5 Km)-황토골휴게소매점(편의점, 식당)-신촌 버스정류장-능선진입-잡목능선진입(묘지)-벌목 후 소나무 조림지-묵은 비포장임도(우거진 잡목등로)-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능선진입-간벌 후 편백나무 조림지-대월산(106.9봉, 이정판, 와도450 삼각점)-잡풀공터(운동기구, 벤취쉼터들, 대월산등산로 안내판)-지독한 잡목능선진입-지독한
가시잡목등로-지독한 잡목과 고사목 등로(산객님 띠지)-청다래넝굴과 칡넝굴 등로-명암길 시멘트 포장도로-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신월마을 표지석)-광산김씨 가족묘지-잡목능선
진입-이동통신탑-소나무 등로-잡목등로-78.5봉(이정판)-지독한 잡목과 청다래나무 등로-편백나무 군락지-잡목등로-편백나무 군락지-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등로-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
등로-시멘트 포장도로-공동어업 면허지역 경고판(창매어촌계)-민가-연육교(지독한 칡넝굴과 가시잡목 등로)-비포장임도(지도읍 자동리)-봉대지맥 산행종료-비포장임도-공사장-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자동가스충전소)-산행종료
산행거리 : 46.70 Km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 수빈마을 봉대지맥 분기점에서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 연육교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11시간 28분 (04시 56분부터 16시 25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전날 22시 00분 산행 들머리인 무안군 무인읍 매곡리 수빈마을을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시 56분 호남고속도로 함평나비휴게소에서 차박 후 수빈마을 분기점 전 갈림삼거리 도착 후 산행시작
올때 - 16시 25분 신안군 지도읍 자동리 자동가스충전소에서 해제면 택시 호출(061-452-7111)
17시 20분 해제면 신협 본점 앞 주차장 도착(10,000.-원, 현찰로 계산하며 2,000.-원 할인)
17시 50분 해제면 장가계 중화요리점에서 짬뽕 곱빼기(9,000.-원)
18시 40분 지도읍 모텔일번지 투숙 (40,000.-원)
봉대지맥이란 ???
영산기맥 감방산(258.9봉) 남쪽 3.9 Km 지점인 무안읍 매곡리 수반마을 서쪽언덕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현경면과 해제면을 지나며 봉대산(83.8봉), 검무산(104봉, 0.3 Km), 이성산(124봉, 0.7 Km), 동산(64봉), 봉대산(197봉), 천마산(83봉), 독산(56봉), 대월산(106.9봉)을 일구고 신안군 지도앞에서 끝나는 36.3 Km되는 산줄기인데 섬이었던 지도가 지금은 연육교와 방조제와 갯벌로 육지와 연결이 됐고 실질적으로 연육교와 지맥의 끝에 있는 제방사이는 담수호가 돼 있어 지도의 점암선착장까지 16 Km를 연장하여 지맥의 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선택의 여지없이 내려간 봉대지맥에서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며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며 힘들게 산행을 이어갔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봉대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라남도 무안군과 신안군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그리고 네이버의 지식백과,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거리가 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모임들이 많아져 힘들게 진행한 거제지맥까지 잘 마무리하고 강원도쪽에 남아 있는 두개의 지맥 산행을 이어가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호남쪽에 남아 있는 3개의 나즈막한 산줄기인 봉대와 백룡 및 옥룡지맥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 봉대지맥부터 진행을 계획하는데 대부분의 선답자들이 봉대와 옥룡은 가능하면 잡목들이 숨을 죽인 이후로 진행을 추천했지만 남아 있는 지맥 수가 별로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초반부는 대부분 도로와 임도를 따라 이어지기에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지만 중간중간 나즈막한 봉우리를 오르고 내릴때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들로 인해 고생을 하였고 특히나 마지막 대월산과 78.5봉을 다녀오면서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어 고통속에 힘들게 마무리를 하였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무난하게 진행되어 다행이었다.
남아 있는 산안군 지도읍에 펼쳐진 나머지 추가된 구간도 내일 하루 잘 진행하며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래 본 시간이기도 하다.
어둠이 깔려있는 이른 새벽 시간에 오래 전 영산기맥 산행을 하면서 가족들의 도움으로 만났던 봉대지맥 분기점으로 오르니 커다란 물통 옆 전봇대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반겨주고 사진에 담은 후 이어지는 도로는 애마를 이용해 무안광주간고속도로를 통과해 현경면으로 진입하니 아직도 어둠이 깔려있어 조용하기만 하다.
현경면을 통과해 83.8미터의 봉대산과 옹산봉수터를 확인하고 내려 와 도로 건너편의 62.2미터의 작은봉대산을 방문해 추억을 남기고 멀리 떨어져 있는 104.3미터의 검무산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확인하고 돌아 나온다.
검무산 지나 마산마을로 들어 가 드넓은 양배추 밭과 양파를 파종한 밭경작지를 타고 53.6 삼각점봉을 만나고 내려오며 남쪽을 보니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24번 송마로 2차선 포장도로 건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검마산이 사진 중앙부로 솟아 있고 그 좌측으로 작은봉대산과 봉대산이 차례로 줄지어 늘어서 있어 잠시 추억이 되어 버린 시간을 반추해 본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애마로 진행하니 금새 64.2미터의 동산과 123.6미터의 이성산을 다녀오고 해제면에 들어가 넓은 주차장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근처 식당에서 오랫만에 짱뚱어국으로 허기를 달래준 후 두다리를 이용해 이틀간 걷게 될 봉대지맥의 주산인 197.1미터의 봉대산으로 오르니 정상석 하나 없이 봉대정이란 정자가 전부이고 그곳에서 추억을 남기고 사방팔방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기다 보니 남동 방향으로 점심식사를 한 무안군 해제면이 내려다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동산과 좌측으로 제법 높아 보이는 이성산이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인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 해제면과 동산 뒤로는 가입리와 마산리 지나 새벽에 다녀 온 또 다른 봉대산과 작은봉대산 그리고 검무산이 펼쳐져 있는데 박무로 인해 눈으로는 잘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그 뒤로 있어야 할 분기점은 하늘금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그 봉대지맥 뒤로는 희미하지만 나지막하게 흐르는 영산기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우측 뒤로 승달산이 살짝 존재감을 알리지만 워낙 거리가 멀고 박무로 인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분간하기도 쉽지 않아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다.
늦가을이란 계절치고는 생각보다 잘 진행한 봉대지맥이지만 역시 지맥 산행은 끝날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진리가 이곳 산줄기에도 적용이 되었는지 마지막 106.9미터의 대월산과 78.5봉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온 몸이 성한곳이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맛보면서 진행하게 되었다.
마지막 78.5봉 넘어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절개지와 만나는데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로 인해 도저히 내려갈 수 없아 좌측 잡목등로를 헤치며 어렵게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남해바다와 담수호를 가르는 연육교와 내일 만나야 할 123.8미터의 한봉산이 땅거미가 지는 어둠속에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봉대지맥 산행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최선인지 많은 고민을 한 끝에 결국 초반부는 대부분 도로를 따라 이어지기에 애마를 이용해 해제면까지는 진행하고 그 중간에 존재하는 지도에 표기된 봉우리나 다녀와야 할 지점은 모두 왕복으로 다녀오기로 결론을 내리고 출발해 무안읍 매곡리 수반마을회관 앞에 도착을 하니 새벽 4시 20여분을 지나고 있어 잠시 또 고민에 들어간다. 새벽 일찍 애마를 끌고 산행 들머리로 내려가며 계획이 바뀌어 수반마을회관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가능하면 새벽 이른 시간부터 걸어 온전한 마루금 산행을 제대로 진행하려고 하였으나 수반마을회관에 도착해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시 생각이 갈팡질팡해 결국 애마를 끌고 해제면까지 가기로 하니 시간이 흘러 벌써 새벽 5시가 가까워진 시간이다.
결국 수반마을회관을 출발해 주영한우농장 앞 갈림사거리 앞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수양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오리사육장이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지만 빛이 적어 잘 담기지 않는다.
잠시 후 전남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 수반마을과 현경면 평산리 평림마을 경계지점에 설치된 커다란 물통 옆 전봇대에 걸려있는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을 사진에 담으며 또 다른 산줄기인 봉대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마음이 조금은 비장하기만 하다.
평림마을은 원래 마을지형이 연화당이라 하여 연화동이라 불렀으나 지나는 도사가 폐촌이 된다고 해서 연화의 기지를 감추기 위해 매화를 바라본다는 망매(望梅)로 부르다가 후에 일제시대부터 평림(平林)으로 불러왔으며 또한 매곡리 수반마을은 전남 무안군 매곡리의 다섯개 마을중 하나의 마을로서 매곡리는 무안읍 소재지에서 북으로 4.5 Km지점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보평산의 줄기가 가로 놓여 있다.
수반마을의 대표성씨는 무안박씨이고 마을은 신촌서쪽에 있고 감방산을 중심으로 옥녀봉과 임자봉이 소반을 받은 형국이라 하여 반곡으로 부르다가 후에 수반으로 개칭하였는데 마을형성은 고절리 무안박씨 박익경의 증손이 을사사화 이후 이 마을로 내려와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 그가 시와 글을 읊조리며 문인제자들과 강학했다는 죽헌정이 남아있다.
봉대지맥 분기점에서 선생님의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좌측으로 거대한 오리사육장을 내려다 보며 애마가 주차되어 있는 주영한우농장 이정판이 서 있는 갈림사거리로 돌아 와 애마를 몰고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달려가니 도로 양쪽으로 거대한 양배추밭이 펼쳐져 있는데 양이틀 간 원없이 만나게 될 풍경이다.
잠시 더 무안광주간고속도로 방향으로 달려가니 갈림삼거리 지나 현경평림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민가들이 보이면서 비닐하우스와 양파밭들이 펼쳐져 있는데 민가 담벼락에는 현경평림길이란 도로표지판도 걸려있다.
이곳 평산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 위치한 리로서 포구 앞에 자리하며 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평산, 평림, 유수정마을 등이 있는데 평산마을은 마을주위의 산이 모두 야산이므로 평산(平山 )이라고 불렀다 하고 평림마을은 원래 마을지형이 연화당이라 하여 연화동이라 불렀으나 지나는 도사가 폐촌이 된다고 해서 연화의 기지를 감추기 위해 매화를 바라본다는 망매(望梅)로 부르다가 후에 일제시대부터 평림(平林)으로 불러왔으며 유수정마을은 마을형성 당시 감방산에서 아흔 구비의 물이 흘러 마을 앞에서 멈춘다 하여 유수정(流水亭)이라 하였다.
이제 무안군 무안읍 현경면 평산리 민가들을 지나 갈림사거리에서 남서 방향에서 북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무안광주고속도로 상 무안공항TG의 불빛이 밝게 빛나고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고속도로 아래로 나 있는 지하차도를 통해 현경평림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24번 함장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한쪽으로 원평산 버스정류장도 보이고 이제 마루금은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평산마을은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 평산1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현경 면소재지에서 돗재를 넘어 함평으로 가는 3 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 지역명은 현경면 평산1리 원평산 마을이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을에 높은 산이 없고 평평한 들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평산이라 했다는 설과 다른 하나는 현재의 무안 박씨와 영성 정씨가 들어오기 전에 평산 선씨가 살았다 해서 평산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다른 마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마을의 형상이 면소재지 쪽에서 보면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형국이어서인지 이곳 지역에서 인물이 제일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한데 마을의 유래를 전해주는 사람들의 말은 무안의 일류마을이 곧 평산이라고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 마을에서 유독 인물이 많이 배출된 이유는 풍수상의 학 형국이기도 하지만 무안의 주산이라 일컫는 감방산의 맥이 이 마을에 닿고 있으며 마을 앞을 흐르고 있는 물길이 결코 예사롭지 않은 기류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주민들은 마을 뒤에 있는 8바위의 영험스러움이 마을에 미치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예로부터 마을에 놓여있는 큰 바위는 그냥 바위로 보지 앟고 큰 산으로 보았다 해서 8개의 큰 산이 마을을 받치고 있어 큰 인물이 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원평산 버스정류장에서 좌측인 서쪽 방향의 현경 방향으로 진행하니 우측으로 원평산길 갈림삼거리 지나 평산성결교회가 보이고 다시 좌측으로는 공항로가 분기하는 갈림삼거리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24번 함장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갈림사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유수정 버스정류장도 통과하는데 유수정마을은 현경면 평산4리로서 지명유래는 마을 형성 당시 감방산에서 아흔아홉 구비의 물이 흘러 마을앞에서 멈춘다 하여 유수정(流水亭)이라 하였으며 이 마을의 입향성씨는 장흥고(高)씨로 고태욱이란 사람이 1800년경에 함평에서 이 마을로 옮겨와 살았다고 전해지나 그 근거는 불분명하다.
그 유수정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눈 앞으로 고가도로가 지나고 그 앞으로 현경교차로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는데 좌측으로는 1번 국도를 따라 무안과 목포 방향이 우측으로는 24번과 77번 도로를 따라 지도와 해제 방향이 그리고 직진 방향으로는 현경 표시가 보이는 표시판이다.
현경교차로를 통과하니 다양한 입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살펴보니 이제 현경면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는 초입처럼 보이는데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현경면 중심부의 행정리는 현경면 외반리로서 찾아보니 외반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 있는 리로서 바다 앞에 있으며 간척사업 후 농토화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반룡, 화촌, 조암, 내반마을이 있는데 반룡(盤龍)은 마을의 지형이 용이 도사리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화촌(花村)은 이곳에 꽃이 많고 잘산다 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조암(鳥岩)은 마을 뒷산에 새처럼 생긴 황새바위 또는 한새(큰새)바위가 있어서생긴 지명이고 내반(內盤)은 마을이 반룡마을의 안쪽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잠시 더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현경면사무소와 보건지소 도로표지판이 보여 자료를 찾아보니 현경면은 전라남도 무안군의 서북쪽에 있는 면이며 면의 동쪽으로 감방산과 병산으로 이어지는 산지가 있지만 대체로 동쪽에서 서쪽의 바다를 향해 낮은 구릉지가 펼쳐지는 지형이다.
지명은 조선 시대 함평현 다경면(多慶面)과 무안현 현화면(玄化面) 관할 지역이 합쳐져서 현화의 현(玄)자와 다경의 경(慶)자 이름을 따서 붙여졌고 1914년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여지도서에 다경면은 관아에서 서쪽 방향으로 40리이고 (중략) 옹산이 있는데 감악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고 역원으로 옹산원이 있다.
옹산봉수는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고 서쪽으로 해제후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남쪽으로 무안현 고림산 봉수로 신호를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 현화면은 무안현 관아에서 서쪽 방향으로 15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면 소재지인 외반리를 비롯하여 12개의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으며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산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마산리,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는 송정리, 수양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붙여진 수양리, 학이 새끼를 길렀다고 하는 양학리, 버드나무 정자가 다섯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오류리, 마을 앞에 용샘이 있으므로 용샘, 용정골로 불렸던 용정리, 마을 뒷산이 평평하므로 붙여진 평룡리, 마을 주위의 산이 모두 야산이므로 평산(平山)이라고 불렸다는 설과 평산 신씨가 터를 잡았다고 하여 붙여진 평산리, 조선 시대 현화면 소재지여서 붙여진 현화리 등이다.
현경면사무소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다시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이는데 현경삼거리란 글씨가 보여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우측의 현해로로 진행을 해야 하는데 좌측의 815번 운해로로 진행하고 있어 그 가운데로 보이는 현경 오일뱅크주유소를 통해 정상적인 마루금으로 복귀해 진행한다.
내반마을은 현경면 외반4리로서 지명유래를 보면 마을이 반룡동(盤龍洞) 안쪽에 있다하여 내반(內盤)이라 하는데 반룡동은 용이 서려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려지고 있다.
마을형성 과정을 보면 조선시대 광산김씨(光山金씨) 김헌문공(金憲文公)이 왜란을 만나 김천일장군의 막하에서 싸우다 수절한 뒤 자손이 그 묘를 운남 성내리에 마련하여 그곳에서 자손이 번창하였다.
그후 손자인 김립(효종때 인물)이 이 마을로 분가하여 자손이 번창하였고 그후 광해노(光海魯)씨, 장흥고(長興高)씨, 평산신(平山申)씨, 무안박(務安朴)씨 등 여러 성씨가 모여 현재는 12개 성씨가 함께 살고 있다.
현경삼거리에서 잠시 방향을 헷갈려 등로를 놓치고 좌측으로 진행하다 곧바로 수정해 정상적인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전진하니 해제까지 16 Km와 지도까지는 30 Km란 도로표지판이 보이는데 생각보다 먼 거리이기에 홀로 쓴 웃음을 지어본다.
잠시 후 찌그러진 해동마을이란 도로표지판이 보여 찾아보니 전라남도 무안군 망운면 목동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밭에 인접된 갯마을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지형이 울퉁불퉁하여 밤까시라고도 한다.
해동마을이 있는 목동리는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고 현재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농토화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설치된 망운목장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목동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자연마을로는 압창과 해동마을 등이 있다.
잠시 후 다시 도로 좌측으로 해동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목동육교가 나타나는데 그 육교 아래로는 77번 공항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목동육교를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망운리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가 보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송정삼거리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송정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 위치한 리(里)로서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수자원이 풍부하며 간척사업 후 농토화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하수장과 상수장마을이 있는데 하수장마을은 마을앞 우물의 수질이 좋고 물의 양이 풍부하여 수장(水長)이라 부르고 리의 아랫마을에 속한다 해서 하수장(下水長)이라 하였고 상수장마을은 리의 위에 위치한다 해서 상수장(上水長)이라 한다.
송정삼거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하수정마을앞 버스정류장이 나타나는데 오래되었는지 글씨는 모두 지워져 있다.
하수정마을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엷은 불빛들이 보이는 송정1리 마을이 보이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송정정미소란 입간판이 보이는데 최근들어 잘 들어보지 못하는 단어이지만 이 산객이 어릴때만 해도 가장 친숙한 단어로서 자주 방문했던 곳이었기에 잠시 옛추억도 떠올려 보는 시간이다.
잠시 후 도로 옆으로 송정마을이란 도로표지판도 보이고 버스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송정2리 마을이 보이더니 회전교차로인 송정교차로란 도로표지판이 전방으로 서 있고 우측으로는 무안과 목포로 가는 방향이 보이는데 마루금은 직진의 해제 방향으로 계속 이어진다.
회전교차로인 송정교차로를 통과하니 민물장어집이 보이고 곧이어 상수장3반과 서해오리집이란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도로 양쪽에 있는 버스정류장의 이름이 달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다시 이어지는 가로등불이 밝혀진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니 무안갯벌도립공원으로 갈 수 있는 방향이 표기된 도로표지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우측으로 용정리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이는데 봉오제삼거리란 이름도 보인다.
그 도로표지판 우측으로는 서해랑길 안내판과 봉대산까지 0.7 Km란 이정표가 보이고 도로 건너편으로는 봉오제 버스정류장도 보인다.
자료를 찾아보니 봉오제는 봉대로서 전라남도 우안군 현경면 용정리의 봉대마을은 예전 봉화를 올리던 봉대산의 아래에 있다 하여 생긴 지명으로 봉대산은 이제부터 잠시 올라 만나야 할 산이기에 어떤 인연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봉오제삼거리 도로표지판 아래 서해랑길 안내판과 이정표를 확인하고 도로 건너편의 봉오제 버스정류장까지 사진에 담은 후 출발하니 금새 도로 우측으로 83.8미터의 봉대산 진입로가 보이고 그곳에서 잠시 우측으로 올라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는데 입구 우측 시누대 옆으로 안내판이 보여 살펴보니 옹산봉수지(봉대산)란 글씨가 보여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봉대산 옹산봉수는 나라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통신망으로서 함평현에 소속된 봉수이고 조선 초기인 1438년(세종20) 경에 개설되어 남쪽의 무안현 고검산 봉수(무안군 청계면 강정리 도대봉)에서 전달한 내용을 서쪽의 함평현 해제 봉수(무안군 해제면 신정리 봉대산)에 전달하는 연락체계로 1894년(고종31) 봉수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 되었다.
봉수는 밤에는 햇불(烽)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燧)를 올리는 통신망으로 조선시대에는 전국적으로 5개의 봉수 연락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제1 봉수로는 함경도 경흥을 기점으로 제3 봉수로는 평안도 강계를 그리고 제4 봉수로는 평안도 의주에서 출발하여 최종 집결지인 서울의 목멱산(남산) 봉수대로 내려오는 것으로 이들 봉수로 1,3,4는 모두가 북방 오랑캐들의 침입을 방지코자 했다.
제2 봉수로는 경상도 동래에서 제5 봉수로는 전라도 순천에서 시작하여 해안선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는 것으로 봉수로 2,5는 남방 왜구의 침탈을 막고자 했다.
이중 옹산봉수는 5번째에 속하는 간봉(間烽)으로 임지왜란 당시에는 가장 많은 승전보를 임금에게 알린 봉수로 알려져 있고 이곳 현경면과 이웃한 해제면은 함평현에 속해 있다가 1896년에 무안현으로 편입된 관계로 아직껏 주변 바다가 함평만으로 남아있다.
봉수는 국가 통신망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여 12시간 안에 남산 제1 봉수대에 집결되어야 했고 올라온 소식은 봉수대의 오원이 병조에 종합하여 보고하며 병조에서는 매일 새벽에 승정원에 알려 임금에게 보고했다.
옹산 봉수의 크기는 해제 봉수와 함께 임치진에 속한 봉수로 별장 8명 봉수군 75명이 배치되어 활동했으며 임치진(臨淄鎭)이란 수군진영이 있는 곳으로 오늘날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 임치마을에 있었던 진영을 일컫는다.
이곳은 역사적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서해안 해상무역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런 관계로 한 때는 8만호를 거느렸던 수군 진영이 있었고 지도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육지이기도 하다.
옹산 봉수와 해제 봉수는 그 옛날 서남해의 군사 교두보였던 임치진에 소속되어 그 위수지역인 임치해역 수호에 함께 했으나 옹산봉수는 1976년 전경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관계로 유구(遺構)가 완전히 파괴된 것을 2001년 공공근로사업으로 정비하였는데 화덕지나 연대 그리고 방화벽이나 막사 터의 흔적은 이미 사라지고 복원할 수 없었다.
넓은 비포장임도 입구에 세워진 웅산종수지 이정판을 보고 자료를 찾아 본 후 오르니 카가 큰 조릿대가 임도 양쪽으로 보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많은 묘지들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더 이어지는 조릿대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임도는 우측으로 휘돌아 진행되는데 우거진 칡넝굴지대 지나 육각정과 운동시설들 그리고 굵은 나무 아래 옹산봉수 설명판이 누워있고 그 뒤 또 다른 나뭇가지에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해발 83.8미터의 봉대지맥 상 봉대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봉대산은 이 산객이 지금 걷고 있는 봉대지맥이란 이름을 부여한 주산인 봉대산이 아닌 또 다른 현경면의 봉대산으로서 주산인 봉대산은 해제면에 있는 봉대산이다.
이곳 해발고도 83.8미터의 봉대산은 전라남도 무안군의 서쪽 해제반도 형경면 용정리에 위치한 산으로 조선 시대에 옹산으로도 불렸다.
여지도서에 감악산에서 뻗어 나오고 함평현 관아에서 서쪽으로 40리에 있으며 옹산(瓮山) 봉수는 관아의 서쪽 30리에 있는데 서쪽으로 해제후산의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남쪽으로 무안현 고림산 봉수로 신호를 보낸다고 기록하였다.
대동여지도에 함평 감악산에서 해제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벗어나 옹산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봉수대터가 있다.
봉대산을 둘러보고 많은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올라갔던 조릿대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임도 우측 묘지지대 넘어 남쪽 방향으로 방금 전 봉대산으로 오른 입구와 그 뒤로 넓은 황톳빛 밭경작지들 지나 해무속에 서해바다가 희미하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우측인 남서 방향으로는 잠시 후 만나야 할 작은봉대산과 조금 더 남쪽 뒤로 치우쳐 솟아 있는 검무산이 보이는데 나뭇가지들에 막혀 깨끗하지는 못하다.
현경면의 나즈막한 봉대산과 옹산봉수지를 확인하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다시 이어지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우측으로 성재동 가는 도로표지판 지나 도로 건너 SK주유소가 보이는데 그 주유소 한쪽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모바일 폰 하나만 챙겨 좌측 뒤로 나즈막하게 올려다 보이는 작은봉대산으로 출발한다.
주유소 우측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입하니 임도 우측으로 고구마밭이 펼쳐져 있고 좌측 앞으로는 민가와 농막이 보이는데 그 농막에서는 커다란 라디오 음악소리가 귓전을 때기고 있어 새벽부터 누가 이런 음악을 틀어 놨나 궁금해 살펴보니 연세가 많이 든 백발의 할머니가 아침상을 준비하며 고구마 밭 방향으로 스피커를 통해 음악방송을 내보내고 있어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인 고구마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민가와 콘테이너박스의 농막 뒤 고구마밭 가장자리를 따라 우측으로 꺽어 잠시 더 전진하니 고구마순이 밟힐 것 같아 좌측 잡풀지댜로 내려가 진행하고 곧이어 좌측 마을에서 올라오는 비포장임도 건너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렵게 오르니 나즈막한 둔덕넘어 얼마 전 고구마를 수확한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가 나타나 가시잡목들을 피해 그 비어있는 밭경작지 좌측 가장자리로 내려가 편안하게 걸어가다 우측을 보니 밭경작지 지나 오류리 마을과 좌측으로 검무산으로 들어가는 마산리 마을 및 우측 뒤로 잠시 후 만나게 될 큰재 옆 53.6삼각점봉이 구름속에 갇혀 하늘만 붉게 물들이는 햇살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에 담으며 진행한다.
고구마를 수확해 비어 있는 밭가장자리를 타고 끝까지 가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탐진최씨세장산 표지석이 서 있고 잘 정비된 시멘트 계단을 타고 오르니 이번에는 밀양박공 묘지들이 모여있고 그 우측 뒤로 간벌된 오르막 등로가 펼쳐지는데 나뭇가지 높게 간벌이 되어 있어 진행에 어려움과 함께 위험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조심스럽게 그 간벌지를 타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한쪽으로 대전의 산꾼들이 걸어 둔 종이코팅지에 62.2미터의 작은봉대산이란 이정판이 보여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생각보다 뚜렷한 마루금을 아쉽게 살펴 본 후 올랐던 등로를 타고 뒤돌아 내려간다.
작은봉대산을 다녀 와 다시 이어지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북서방향에서 서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삽다리떡방앗간 지나 도로 좌측으로 곡지마을로까지 1.6 Km 거리라는 작은 이정판이 눈에 들어오고 그쪽 방향으로 나 있는 오류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삽다리마을회관이 있는 외야골마을 지나 어은동마을회관이 있는 어은동마을도 통과하는데 그곳을 통과하자마자 도로 좌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양배추 밭 넘어 저 멀리 두꺼운 구름속에 숨어 보여주지 않던 밝은 햇살이 드디어 찬란하게 비추며 일출을 알리는데 조금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오랫만에 만나는 일출에 잠시 멈춰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사진을 담다 보니 방금 전 떠오른 태양 아래 멋진 산줄기들이 보여 지도로 확인해 보니 바로 앞으로 중첩되어 보이는 나즈막한 산줄기는 함평을 지나는 영산기맥이고 뚜렷하게 하늘금과 맞닿아 보이는 제법 웅장한 산줄기들은 나주시의 금성산 방향의 산줄기로 추측되는 모습들이다.
일출을 감사하고 계속 이어지는 오류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드디어 좌측의 작은봉대산 방향에서 이어지는 봉대지맥 마루금과 만나고 검무산 방향인 우측을 보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 있는데 그 임도 좌측으로는 드넓게 우거진 칡넝굴 지대가 마치 초지지대처럼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간단하게 스틱만 챙겨 봉대지맥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다 칡넝굴 지대 상단에서 등로 좌측을 보니 바로 발 아래 현경면 오류리 들판과 비닐하우스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바로 뒷쪽으로 해제만 지나 무안공항과 수많은 천사의 섬이 있는 신안 앞바다의 섬들이 마치 나즈막한 들판으로 이어진 듯 펼쳐진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고 좌측 옆으로는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지도로 확인을 해 봐도 알 수가 없고 그 좌측으로 길게 펼쳐진 제법 웅장한 산줄기는 승달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 마루금처럼 보인다.
검무산 오르막 등로 뒷쪽으로 펼쳐진 들판과 서해바다를 살펴보고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전진하니 칡넝굴이 터널을 만들어 긴장을 하지만 등로까지는 내려오지 못하고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진행에는 문제가 없는데 아마도 추석을 전후로 후손들이 성묘를 위해 정리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잠시 더 편안하게 오르니 임도가 우측으로 약간 휘어져 올라가는 지점 좌측 잡목능선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어렵게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잡풀들이 무성한 무명묘지 지나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검무산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좌측 검무산 방향으로는 다시 뚜렷한 수렛길 같은 등로가 이어지고 국가지점번호판 지나 오르니 금새 커다란 돌탑 2개와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104.3미터의 검무산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이정판을 찾아 보니 대전 산꾼들이 종이코팅지로 걸어 둔 임시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다만 이곳 무안군 현경면 오류리에 있는 104.3미터의 검무산에 관한 자료가 없어 왜 검무산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검무산 정상은 넓은 공터 주위로 나무들이 자라면서 풍경과 조망이 좋지 못한데 진행 방향으로 조금 더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몇발자국 걸어 내려가니 서해바다 건너 좌측으로 희미하게 평지처럼 보이는 무안공항이 보이고 그 우측인 사진 정중앙부로 풍력발전기 4기가 보이는데 운남면 내리 방향으로 풍력발전기 건설 현장이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너무 가까워 설치 할 때부터 말이 많았던 곳이다.
그 풍력발전기 바로 우측으로는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 하나가 눈길을 끄는데 매화도의 240.1미터의 매화산이 아닐까 추측되고 그 앞으로 선도의 범덕산과 대덕산 줄기도 펼쳐져 있는 모습이 희미하지만 눈에 보인다.
남쪽에서 남서 방향을 살펴보고 출발하기에 앞서 벤취쉼터로 올라 동쪽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봉대지맥이란 이름으로 만났던 산줄기가 마을 사이로 평지처럼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산줄기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살펴보니 함평과 무안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영산기맥 산줄기가 이어져 오다 승달산을 두고 산세를 높히는 구간처럼 보인다.
그 우측 아래로도 영산기맥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특징있는 산들이 없으니 산인지 들판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운 비산비야를 이루며 내려가는 모습이 또한 오래 전 걸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늘은 마치 바다에 설치한 양식장 구조물이 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구름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검무산 정상에서 제한된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다시 올랐던 등로를 따라 원점 회귀를 하는데 현경북초교 방향인 북쪽으로 뚜렷한 등로가 보여 아쉬움도 남기는 시간이다.
다시 어은동과 삽다리마을 지나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옆으로 삽다리마을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계속 전진하니 현경북초등학교가 도로 좌측으로 보인다.
초등학교를 지나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드넓은 파란 양배추밭과 양파를 재배하기 위해 비닐을 씌워 놓은 황토밭들이 눈길을 사로잡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금새 마산육교를 통과하는데 아래로는 24번 송마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육교이다.
마산육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마산2리 신기마을이란 표지석이 서 있고 바로 앞으로는 신기 버스정류장이 보이며 우측으로는 민가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 우측으로 마산1리 방향으로 분기하는 마산길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는 방향이 마루금이지만 어짜피 도로를 따라 진행되기에 의미가 없어 조금 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직진하기로 한다.
잠시 후 직진 방향으로 마산1리와 좌측 방향으로 24번과 77번인 해제와 무안으로 갈 수 있는 분기점 표시가 있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곳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좌측 24번 도로에 원마산 버스정류장이 설치되어 있고 현해로 우측 옆으로는 마산길 2차선 포장도로 초입에 마산마을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이제 마산마을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는 곳에서 현해로를 버리고 우측 마산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인 북쪽으로 들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거대한 양배추와 고구마를 수확한 빈 황톳빛 밭경작지가 펼쳐져 있어 이국적인 느낌도 드는 모습이다.
잠시 더 북쪽으로 2차선 포장도로인 마산길을 따르니 우측으로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어 이제는 마산길을 버리고 우측인 동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곧이어 눈 앞으로 드넓은 양배추밭이 펼쳐지는 곳 좌측으로 53.6 삼각점봉으로 오를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여 그곳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그곳에서 방금 전 올라 온 방향인 서쪽에서 남서 방향을 보니 저 멀리 희미하게 머리만 보이는 좌측의 대월산과 한봉산 쪽 봉우리들이 보이고 우측 뒤로는 안개속에 봉대산이 아련히 보일듯 말듯 솟아 있다.
방금 전 지나 온 마루금과 그 뒤 저 멀리 내일까지 걸어 만나야 할 연육교와 지도읍 방향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확인하고 시멘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밭둑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묘지 지나 동백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이 나타나고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봉대지맥 마루금을 만나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관목의 나무들과 잡목들 사이에 와도452라는 삼각점이 박혀있고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53.6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뒤돌아 내려간다.
이제 53.6봉에서 마산길로 내려갈 땐 잡목능선이 아닌 정상 봉대지맥 마루금을 따라 내려가고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다시 등로가 합류되어 드넓은 밭경작지 사이로 보이는 밭둑을 타고 내려가는데 그 좌측 앞으로는 방금 전 다녀 온 검무산과 그 좌측으로 작은봉대산 그리고 좌측 가장 먼곳으로 옹산봉수지가 있던 봉대산으로 이어지는 봉대지맥 마루금이 아련한 추억이 되어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지나 온 발주취를 더듬어 보는 시간이다.
바로 앞 붉은 황토밭도 역시 고구마를 수확한 후 양파 모종을 심기 위해 정리를 해 놓은 듯 싶은데 비닐이 씌여져 있지 않아 다른 작물을 재배하려는지도 모르겠다.
넓은 들판 사이로 펼쳐진 파란 양배추밭과 황톳빛 밭경작지 사이로 도상 53.6 삼각점봉을 다녀 와 마산길 2차선 포장도로 옆 마산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곳에서 우측 소로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인 북서 방향으로 전진하니 지하통로를 통해 24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고 이제 24번 현해로 좌측의 옛날 현해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좌측으로 마산활어회센터 건물이 나타나더니 그 건물 넘어로는 드넓은 서해바다와 갯벌 뒤로 오늘과 내일 걸어야 할 해제와 지도읍의 봉대지맥 마루금과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우측으로 휘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홀통교차로라는 도로표지판이 걸려있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마산리에 있는 홀통이란 지명이름이 너무나 어색해 찾아 보니 해변에 홀로 삐쭉하게 튀어나간 뭍을 홀투이로 불러오다 한국전쟁 이후 홀통으 변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름도 생소해 마치 외국어처럼 보이는 홀통교차로에서 다시 24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드넓은 양배추와 비닐을 씌워 양파를 모종하기 위한 밭경작지들이 펼쳐져 있고 좌측으로는 무안 앞 드넓은 서해바다와 갯벌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뒤 저 바다 건너로는 오늘과 내일 걸어 만나야 할 봉대지맥 마루금과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더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가입리 마을로 분기하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가입리 버스정류장도 설치되어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가입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에 위치한 리로서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진 농촌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가입마을이 있는데 이는 조선 중엽 상주주씨가 입향하여 존도리라고 부르다가 후에 가입(加入)으로 개칭한 것이다.
주근봉이라는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상주주씨인 주근봉은 본래 영광군 육창면에 살았으며 부친이 병을 얻자 배를 타고 이 마을 근처로 와서 약초를 구해 부친을 극진히 간호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 마을에 정착해 살기시작했으며 이후 후손들이 번창해상주주씨 집성촌이 되었고 당시 그가 심은 팽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있다.
가입리 갈림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도로 우측으로 도상 43.1봉이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하는데 초반에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보이더니 신도비 지나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속으로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도상 43.1봉을 찍고 내려오면서 보니 우측 민가 바로 뒤로 진행을 하였으면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었는데 괜시리 가시잡목속에 갇혀 개고생만 하고 있다.
다시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며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대전 산꾼들이 걸어 둔 종이코팅지에 이곳이 도상 43.1봉임을 알리는 이정판을 걸어 뒀다.
사진 한장 남기고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다시 24번 현해로로 복귀해 도로를 따라 해제로 들어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나즈막한 언덕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수암정식당 지나 에덴교회 이정판이 서 있고 좌측으로는 이제 해제면을 알리는 도로표지판도 서 있어 현경면에서 해제면으로 경계가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잠시 후 77번과 24번 포장도로가 갈리는 갈림사거리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계속 직진의 해제와 영광 방향으로 전진하니 다시 갈림사거리인 수암교차로에 도착을 해 신호를 기다리며 살펴보니 직진 방향은 여전히 해제와 영광 방향이고 좌측은 임지와 내일 만나게 될 지도 방향이며 우측으로는 무안갯벌도립공원이 있는 유월리 방향이 표기되어 있다.
수암교차로를 지나 다시 직진의 해제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는 파란 양배추가 자라고 있는 드넓은 밭경작지가 이국적으로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가게들과 상가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물암 버스정류장도 통과한다.
물암은 유 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유월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위치한 리로서 들이 넓은 농촌지역이며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자연마을로는 오류, 용산, 물암, 유투마을 등이 있는데 오류마을은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동쪽에 수양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서 다섯 오(五)자와 버들 유(柳)자를 따서 오류(五柳)라 불렀다고 하고 용산마을은 마을의 동편에 인접된 바다에서 용이 하늘로 성천하다 떨어졌던 산이 있다는 설에 의해 용산(龍山)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물암마을은 마을 앞 바닷가에 높이 2m에 둘레 6m정도 되는 바위가 있어 이 바위이름을 따서 물바위라 불러오다가 1910년 마을이름을 물암(勿岩)이라 하였고 유투마을은 마을 서편에 앵소유지라는 묘지가 있는데 꾀꼬리들이 버드나무 가지를 물고 오다가 이 마을에 떨어뜨려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하여 류투정(柳投亭)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물암버스 정류장을 지나 우측으로 도리포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을 통과하니 미곡처리장 버스정류장이 다시 나타나고 그곳 지나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이제 지금까지 타고 온 77번 현해로를 좌측 직진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틀어 해제오류길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들어가니 오류회관 건물이 나타나고 그 건물 앞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면서 좌측 위로 이성산으로 오를 수 있는 비포장임도가 나타난다.
오류마을은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유월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동쪽에 수양 버드나무 다섯 그루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서 다섯 오(五)자와 버들 유(柳)자를 따서 오류(五柳)라 불렀다고 전해지는 마을로서 이성산 등산로 입구에 해당되는 마을이다.
좌측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니 드넓은 양파 재배예정지와 파란 양배추 밭이 펼쳐져 있는데 농부 한명이 양배추에 스프링쿨러를 이용해 물을 주고 있어 인사 나누고 잠시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후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올라가 본다.
잠시 후 좌측으로 이성산 약수터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가운데에 이정표가 서 이어 살펴보니 무안생태갯벌센터 방향에서 신만마을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판인데 산행에는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약수터 갈림삼거리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번에는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비포장임도와 만나 좌측으로 이어가는데 가운데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황금박쥐 금굴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반갑다.
갈림삼거리 지나 좌측으로 여전히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전진하니 나무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고 어렵게 계단을 오르니 이정판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도상 122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이정판과 삼각점이 박혀 있는 도상 122 삼각점봉을 지나 조금 더 북쪽으로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 지나 언덕으로 오르고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황금박쥐금굴까지 200미터이라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보여 다녀오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다리가 떨어지지 않아 마음만 보내고 다시 나즈막하게 내려 갔다 오르니 벤취쉼터와 나무가지에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123.6 이성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담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정판 바로 옆으로 아름다운 분재형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다만 이곳 이성산에 관한 자료가 전혀 없어 왜 이성산인지 알 수가 없으니 궁금하기만 하다.
이성산 이정판 우측 뒤로는 서해바다와 갯벌이 펼쳐지고 그 갯벌 우측으로는 송석리 도리포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산줄기가 보이는데 지도로 확인해 보니 영광군의 염산면과 백수읍 방향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인데 장암지맥의 수리봉과 그 근처의 구수산은 분명히 솟아 있을 것 같은데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성산 정상부를 살펴보고 추억을 남긴 후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무안의 유월리 마을과 드넓은 황토갯벌랜드가 펼쳐져 있고 좌측 뒤로는 대도와 소도가 보이는데 그 섬으로 이어지는 갯골(물길)이 또한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 뒤 저 먼 곳으로는 좌측의 함평에서 우측의 무안으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영산기맥이 펼쳐져 있는데 거리감과 박무로 인해 각 봉우리의 이름을 불러주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이렇게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시간이다.
이제 북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해제면의 만풍리와 송석리 지나 도리포를 건너 함평방향의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뒤로는 멋진 산줄기가 높게 솟아 있어 확인해 보니 월암산과 금산 방향의 봉우리들이고 우측 중간의 높은 봉우리는 영산기맥의 군유산이 보이는데 그 군유산 우측 뒤로 보여야 할 영광의 불갑산은 사진에 잘려 보이지 않는다.
저 도리포 좌우측으로는 서해바다와 접해 있는데 이곳에서 보기에도 드넓은 갯벌들이 접해 있으며 그 갯벌로 내려가기 전에는 파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도 내려다 보여 많은 사진에 담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그 이성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이제 진행 방향을 살펴보지만 앞에 우거진 나무들과 능선으로 인해 보이는 것이 없으니 올랐던 등로를 뒤돌아 내려 와 두번의 갈림삼거리를 지나 오류회관을 통과하니 다시 77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우측인 서쪽으로 진행한다.
해제 방향으로 조금 더 전진하니 학천교차로에 도착을 하고 그 위에 설치된 도로표지판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영광과 군산으로 갈 수 있는 방향이 보인다.
학천교차로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토치 버스정류장이 나타나는데 토치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양매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토치마을은 여시몰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앞 망월산의 형세가 마치 토끼가 달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흙 토(土)자에 고개 치(峙)자를 써서 토치(土峙)라 하였다.
토치 버스 정류장을 지나니 도로 양쪽으로 황톳빛 밭경작지들이 펼쳐지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우측으로 토치길이 분기하는 지점에 양매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양매마을 표지석도 서 있다.
양매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리로서 땅이 비옥한 농촌마을로 토치저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매곡, 토치마을 등이 있다.
이중 매곡마을은 매실 또는 매일이라고도 했는데 매실나무가 많고 마을형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하여 매곡(梅谷)이라 부르게 되었고 토치마을은 여시몰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을 앞 망월산의 형세가 마치 토끼가 달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흙 토(土)자에 고개 치(峙)자를 써서 토치(土峙)라 하였다.
양매 버스정류장을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으로 배나무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하고 그 도로를 타고 들어가니 좁은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민가 옆으로 오르니 약간의 잡목 구간을 지나 금새 도상 64.2미터의 동산에 도착을 하는데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다.
원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했으면 이성산을 다녀 와 77번 현해로를 건너 능선으로 올라 이곳으로 진행을 했겠지만 도로를 따라 하산 등로를 타고 거꾸로 올라 동산에 올랐지만 이곳 동산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용학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역시나 동산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용학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리로서 들이 넓으며 마을 앞으로 강이 흘러 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장성과 이방마을 등이 있는데 장성(長城)은 마을 앞의 언덕이 성처럼 쌓여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또 옛 조상들이 마을에 입향 하였을 때 두 장승(남자, 여자)을 세웠다 하여 장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리방(梨芳)은 마을 뒷산에 배나무가 있었는데 그 배나무 꽃이 아름답고 향기가 좋아 배꽃 리(梨)자와 꽃다울 방(芳)자를 따서 지은지명이다.
동산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올랐던 등로를 따라 다시 내려 와 배나무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805번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로 복귀해 좌측으로 도로를 따르니 드디어 해제면 중심부로 접어 들고 사거리 지나 우측으로 돌아가니 신협 앞으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보니 바로 옆 신백번식당에 짱뚱어탕이 보여 맛을 보기로 한다.
오래 전 산친구들과 땅끝기맥을 하면서 이쪽 남도에서는 산행 후 주로 먹었던 음식이기에 감회가 새로운데 같은 음식 맛에 같은 느낌으로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해제면은 전라남도 무안군의 서쪽 해제반도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서북쪽에 봉대산, 이성산, 강산 등이 있고 간석지가 발달하였는데 이 간석지를 간척하여 농지를 조성하였으며 신안군 지도와는 간척을 통하여 육지로 연결하였고 많은 간석지들이 간척되어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77번 국도가 남북으로, 24번 국도와 805번 지방도가 반도부를 연결하고 있으며 면 소재지인 신정리를 비롯하여 17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함평현 속해 있다가 1866년(고종 3)에 무안현으로 편입되었으며 여지도서에 해제면은 함평현 관아에서 서쪽으로 70리이고 (중략) 해제후산이 옹산에서 뻗어 나오며 관아의 서쪽 70리에 있다.
해제후산 봉수가 관아의 서쪽 68리에 있고 북쪽으로 영광현 차음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동쪽으로 옹산봉수로 신호를 보내며 임치진이 관아의 서쪽 70리에 있다. (중략) 해제 폐현이 관의 서쪽 7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동지도에 임치진과 해제봉수가 표기되어 있으며 대동여지도에는 해제와 임치라는 지명이 북쪽에 해제라는 봉수가 표기되어 있고 목장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식당으로 들어가 짱뚱어탕을 시키니 잠시 후 나와 먹어보니 예전에 먹었던 맛과 향이 유사해 허기를 달래며 허겁지겁 이른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지맥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점심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짱뚱어탕은 된장 푼 물에 짜웅어를 삶아 으깬 뒤 시래기와 애호박 등을 넣어 한소끔 끓여낸 전라남도의 탕 요리이다.
짱뚱어는 순천만 갯벌 일대에서 주로 서식하는 물고기로 이곳에서 짱뚱어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였고 주로 탕으로 많이 끓여 먹으며 구이나 회로도 즐겨 먹는다.
힘이 세고 생명력이 강하여 예로부터 여름에 보양식으로 많이 먹었는데 크기가 클수록 맛이 좋으며 살에 탄력이 있고 비늘이 훼손되지 않은 것이 싱싱한 상태이다.
짱뚱어는 단백질이 풍부하며 여름철 체력 보강에 좋고 타우린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 회복과 간 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며 또한 비타민이 풍부하여 면역력 증진과 피부 미용에 도움을 준다.
점심식사 후 약간의 식수와 음료수를 배낭에 보충하고 등산화를 단단하게 조인 후 805번 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오르니 양간2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양쪽으로 상가건물들이 보이더니 금새 해제면 중심부를 벗어 나 민가와 밭경작지들이 보이는 풍경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양간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리로서 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땅이 비옥하여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며 대천동저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양간마을이 있는데 양간마을은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다리를 중심으로 동쪽은 개니라 하고 서쪽은 고읍내라 하였으나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시 마을의 중심에 다리가 있다하여 양간(兩干)이란 지명으로 바뀌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그 민가를 지나자마자 매곡내분길 시멘트 포장도로가 분기되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드디어 도로 우측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갈림삼거리 언덕에 도착을 해 원 봉대지맥 마루금에 접속을 해 좌측의 밭경작지 옆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언덕 넘어 등로 우측 아래로는 매곡과 외분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좌측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니 양배추 밭과 고구마 수확이 끝난 밭이 펼쳐지고 그 밭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비포장임도가 다시 나타나더니 금새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진행한다.
도로 양쪽으로 양배추 밭을 지나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언덕으로 올라 좌측으로 휘어져 이어가니 고구마 수확이 끝난 드넓은 황톳빛 밭경작지가 펼쳐지고 그 밭을 타고 걸어가며 좌측을 보니 남서 방향으로 해제면의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내일 만나 걸어야 할 신안군 지도읍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해제면 중심부 우측으로 지도읍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을 확인하며 고구마가 수확된 넓은 밭경작지를 타고 진행하다 뒤돌아 보니 나즈막한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원 마루금이 보이고 좌측인 남쪽으로는 해제면 중심부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막힘없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전진하니 이제 양파를 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밭경작지 우측 옆 밭둑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스프링쿨러와 묘지 넘어 진행 방향으로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받게 한 봉대산이 전방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고구마를 수확해 비어 있는 밭경작지와 양파를 파종하기 위해 비닐을 씌운 후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낸 밭경작지 경계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사야길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805번 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가 보이는데 우측으로는 민가도 서 있다.
지나 온 방향으로 뒤돌아 보고 갈림사거리를 지나니 좌측으로 함평이씨세장산과 남양홍씨세장비가 서 있고 우측으로는 신정1리 응양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보여 찾아보니 응양마을은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신정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마을이 이루어질 당시 어느 스님이 이르기를 마을 이름을 응양(鷹揚)이라고 지으면 자손 대대로 부자가 나오고 큰 인물이 날 것이라 하여 지은 이름이다라는 자료가 보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산행을 하면서 세장산과 세장비를 참으로 많이 만났다는 생각인데 저런 세장산이나 세장비는 원래의 의미보다는 성씨를 알린다는 의미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응양마을 표지석을 지나 해제신정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전진하니 잠시 후 마루금은 우측 비포장임도로 오르는데 이곳 우측도 역시 파란 양배추가 드넓게 자라고 있어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저 멀리 해제면에서 좌측으로 빙 돌아 진행한 봉대지맥의 나즈막한 들판이 하눈ㄴ에 들어 오는데 다른 지맥과는 다른 이국적인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머문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도로 좌우측으로는 비닐을 씌워 둔 양파 모종을 위한 밭과 파란 양배추가 단다하게 속을 채운 모습으로 빼곡하게 들어 찬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 향하던 시멘트 포장도로가 좌측인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잠시 더 주위 풍경들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인 남쪽으로 꺽어 조금 더 전진하니 굵은 소나무와 파란 의자가 보이는 지점 우측 잡목 사이로 해피마당쇠님 띠지 한장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감사의 목례를 하고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며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이 산객의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억센 억새와 가시잡목들이 혼재되어 있어 온 몸을 햟키며 고통을 주는 등로를 힘들게 헤치며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초지밭이 나타나고 잠시 숨을 돌리고 그 초지밭 지나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로 변해가는 과수원을 따라 어렵게 오르니 잡목속에 감나무들이 보이는데 잘 익어가는 홍시 두어개 따 먹고 눈 앞으로 펼쳐진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와 칡넝굴들을 헤치며 사투를 벌이다 보니 거미줄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한발자국 옮길때마다 얼굴을 휘감는 거미줄의 기분 나쁜 촉감에 자꾸만 발걸음이 자동으로 멈추게 된다.
그래도 힘들게 그 가시와 칡넝굴 지대를 빠져 나가니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는 등로가 되살아 나고 칡넝굴 사이로 보이는 등로를 따라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생각보다 힘든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이다.
짧은 거리이지만 지독한 가시잡목과 키가 큰 잡풀들 그리고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들을 헤치며 오르다 보니 온 몸은 굵은 땀방울로 흥건히 젖어오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며 능선으로 오르니 약간의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지만 진해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여 다행이었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가드레일이 설치된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깊은 한숨을 내쉰 뒤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양쪽으로는 파란 잎이 무성한 동백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동안 편안하게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인 남남동 방향으로는 방금 전 짱뚱어탕으로 맛난 점심식사를 했던 무안군 해제면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그 좌측 옆으로는 높지 않지만 우뚝 솟아 보이는 123.6미터의 이성산이 자꾸만 눈길을 잡는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꾸불꾸불 걸어 오르니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그렇게 잠시 더 편안하게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니 임도 좌측으로 삼나무라 생각되는 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데 편백나무와는 달리 잎이 부드러워 다른 수종임을 알게 된다.
그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도 임도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계속 해 해제면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뒷쪽으로 강처럼 보이는 무안만이 보이며 그 무안만 뒷쪽 저 멀리 희미하게 펼쳐진 산들은 평탄하게 이어지는 함평에서 무안으로 내려가는 영산기맥인 듯 한데 우측 끝자락으로 승달산도 보일듯 말듯 서 있다.
잠시 후 제2약수터 갈림 이정표 지나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육각정과 화장실 그리고 해제출신 시인이 적어 놓은 봉대산 시비가 보여 읽어본 후 사진에 담고 다시 출발한다.
넓은 공터를 지나 오르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많은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곧이어 도로 우측 옆으로 시멘트 계단과 봉대정 건립기념비가 보이고 그 시멘트계단을 타고 오르니 2층으로 된 커다란 봉대정이 앞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받게 한 197.1미터의 봉대산 정상으로 삼각점 표시가 보여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없고 이정판이나 정상판을 찾아 보지만 봉대전 뒷편의 작은 나뭇가지에 선답자의 산행띠지 두장이 걸려있는 것 이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다.
봉대산은 전라남도 무안군의 서쪽 해제반도 해제면 석룡리와 학송리 및 신정리 등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196m이고 조선 시대에 해제후산으로도 불렸다.
여지도서에 해제후산(海際後山)은 옹산에서 뻗어 나오고 함평현에서 서쪽 70리에 있으며 해제후산 봉수는 관아의 서쪽 68리에 있고 북쪽으로 영광현 차음산(次音山) 봉수의 신호를 받아 서쪽과 동쪽으로 옹산(瓮山) 봉수로 신호를 보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 이치진 북쪽의 해제봉수가 표기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 함평현 남쪽에 있는 감악산에서 해제반도를 따라 이어지는 산줄기가 해제 고현(古縣) 북쪽 해제 봉수에 이르고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무안읍지의 봉수에 관한 내용 중에서 슬산(瑟山)이 지금의 해제 봉대산이니 남쪽으로 함평 옹산에서 북쪽 영광 차음산으로 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봉대산이 슬산이란 이름으로도 불렸음을 짐작케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봉대산 역시 봉수로서의 역활이 있었던 듯 싶어 혹시나 하고 봉화터나 흔적을 찾아 보지만 그 역시 보이는 것이 없어 포기하고 다시 봉대정으로 올라 막혀 있는 조망속에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제일 먼저 북동쪽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여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좌측의 대사리와 우측의 덕산리 해변이 좁은 농토 끝자락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도리포로 가는 길목인 송석리 방향의 길게 뻗어 나온 나즈막한 산줄기 뒤로 무안군 염산면 방향의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우측 가장 높은 산이 336.3미터의 월암산부터 중간의 설매산과 봉덕산 지나 좌측으로 서해바다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나즈막한 산줄기처럼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눈을 남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앞 방금 전 타고 올라 온 능선에 막혀 약간의 시야에 방해가 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미 우측 가운데 방향으로 해제면 마을이 제법 크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뒤로 동산과 바로 좌측 뒤로는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이성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이성산 우측 뒤로는 육지인지 바다인지 분간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로 끊어질듯 이어진 봉대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이곳에서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감도 있고 박무도 있어 아쉬움도 느끼는 시간이다.
북동과 남동 방향을 살펴보고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잘 보이지 않지만 잠시 후 따라가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만나야 할 이동통신탑이 드높게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고 아쉬움만 남긴 채 봉대정을 내려간다.
봉대정을 내려 와 다시 한번 더 삼각점과 봉대지맥과 관련된 흔적들을 찾아 보지만 보이는 것 하나 없이 뒷쪽 키 작은 편백나무에 선답자의 산행띠지 두장만 확인하고 이어지는 시멘트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봉대산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어 살펴보니 서쪽으로 봉대산성이 보여 이제서야 봉화대터가 왜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아쉬움에 봉대정을 다시 한번 더 올려다 보고 남서 방향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으로 흐르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 벗나무 사이로 나 있는 능선으로 오르는데 간벌된 등로에는 키 작은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굵은 소나무 사이로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불편과 어려움을 느낀다.
보기에는 편안하게 보이는 간벌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렵고 힘들게 오르니 갑자기 잘 정비된 고속도로 같은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따라 잠시 빠르게 걸어가니 좌측으로 분기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마루금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휘어져 내려가야 하지만 눈 앞으로 높게 설치된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보이는 봉대산 정상보다도 더 높은 202.2봉이 보여 잠시 다녀오기로 하고 오르니 카메라 보호 철망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와 함께 준희 선생님의 202.2미터를 알리는 이정판이 걸려있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본다.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된 202.2봉 역시 조망을 시원치 않는데 유일하게 북서 방향으로 학송리와 백학산 넘어 서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만 사진에 담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와 이제 진행 방향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 산사면 방향으로는 제법 굵은 편백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곧이어 KT와 LG 이동통신탑 2개가 드높게 설치되어 있어 확인하며 사진에 담아 본다.
그 통신탑들을 지나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계속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좌우측으로 많은 묘지들이 보여 확인해 보니 좌측은 전주이씨 묘지들이고 우측은 함평이씨 가족묘지처럼 보이는 곳이다.
그 묘지들 지나 조금 더 내려가니 임도 주위로 가을 야생화들이 피어 있고 눈 앞으로는 묘지들 지나 남ㅗㄱ과 남남서쪽 방향으로 129.6미터의 강산이 독립된 산줄기로 제법 높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오늘과 내일 만나야 할 대월산과 한봉산으로 이어지는 봉대지맥 마루금 지 나 뒷쪽으로 올망졸망 펼쳐져 있는 천사의 섬을 가진 신안군의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듯 기분 좋게 조금 더 진행 방향으로 봉대지맥 마루금과 신안군의 섬들을 살펴보고 야생화들과 눈맞춤도 해 준 후 잡목 사이로 잘 정비된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등로 주변으로 굵은 편백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짧게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광천등산로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다.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닭고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벗어 난 지점으로 우측 비포장임도를 따라 한참을 걸어 간 다음에야 정상적인 마루금을 만나 남쪽 방향의 잡목 숲으로 진행을 이어가는데 내려가자마자 눈 앞으로 펼쳐진 공포스런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 지대를 만나 남감하기만 한데 통과를 하지 못하면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그래도 지난해까지 지나다닌 흔적이 남아 있는 낮아진 등로가 느껴지고 그곳을 통해 어렵게 그 칡넝굴 지대를 통과한다.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 지대를 무사히 빠져 나오니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다시 양파를 파종하려는 비닐이 씌워진 드넓은 밭경작지들이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직진의 등로를 따르니 양파가 파종된 밭경작지 지나 편백나무들이 보이는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능선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광산김공 묘지가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많은 비문들이 묘지 앞으로 설치되어 있다.
잠시 관목의 편백나무 지대를 빠져 나가 만나는 남양홍공 묘지를 지나 대나무 군락지로 진입하니 생각보다 대나무가 빼곡하지 않아 무사히 통과하니 이미 양파들이 파종된 드넓은 밭경작지가 펼쳐지고 그 밭을 따라 내려가니 등로는 민가 바로 옆 골목으로 이어지고 있어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토록 주의하며 내려가는데 땅골마을로 광산리에 있던 오래 전 자연마을이었는제 지금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 도로명과 지명으로 남아 있는 듯 보인다.
민가 앞 땅골길이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양파 묘목들이 파종된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언덕에는 사각정자도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해제면이 드넓은 들판 뒤로 버이기 시작하는데 지도를 보니 해제면에서 봉대산으로 올랐다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 온 반원형을 그리며 진행되고 있어 가깝게 해제면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사각정자가 서 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완만하게 내려가니 주민들이 트럭에 물건을 옮겨 실고 있어 살펴보니 양배추를 작은 그물망에 넣어 적재하고 있는 모습으로 괜시리 산행으로 만나는 것이 미안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봉대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에서 양배추를 트럭에 옮겨 실고 있는 주민들에게 미안한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입하니 이구에는 김해김씨세장산이 서 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양파 파종지에 스프링쿨러를 통해 물을 뿌려주는 모습이 이색적으로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수확이 끝난 드넓은 비어있는 밭경작지가 보인다.
도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드넓은 양파 파종지 넘어 해제면의 건물들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도로 양쪽으로는 속이 꽉 찬 양배추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서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봉대산과 봉대지맥 마루금이 양배추밭 넘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지나 온 봉대산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고 눈을 좌측인 동쪽과 북동동 방향으로 돌리니 드넓은 양배추와 양파 파종지 넘어 해제면의 건물들이 보이는데 점심식사 후 2시간 가까이 봉대산을 돌아 이곳으로 진행해 온 마루금이 반원형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 방향이 바뀌면서 해제면 우측으로 동산과 이성산이 보이고 좌측 뒤로는 희미하게 봉대산 정상에서 봤던 염산면의 월암산과 봉덕산의 머리 부분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는데 방향이 틀어지니 보이는 풍경도 모두 다르게 보여 지도로 확인을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드넓은 양배추와 양파 파종지를 따라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지나 온 봉대산과 해제면 마을들을 살펴보고 샂ㄴ에 담으며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 앞으로 멋진 건물들이 보이는데 몇채의 건물들이 한옥 형태로 보여 처음에는 누군가 멋진 한옥을 지어 놓고 살고 있다고 부러워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작은 암자의 용덕사였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우측 직진으로 드넓은 밭경작지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니 최근에 신설된 듯한 1차선 포장도로 건너 다시 밭 가장자리를 따라 전진하니 좌측에서 올라 오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남쪽으로 걸어가는데 도로 우측 아래로 용덕사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방금 전 통과한 신설된 1차선 포장도로도 저 용덕사로 통하는 도로처럼 보인다.
용덕사 지나 회안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양쪽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잡목들이 도로쪽으로 침범해 관리를 하지 않으면 조만간 이 도로도 사라질 듯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는 키가 큰 조릿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다시 초지지대가 펼쳐지는데 좌측으로는 사라진 광산리 비석거리 마을의 민가들도 보인다.
그 초지지대 지나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들을 통과하니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진입로가 나타나고 잠시 거미줄을 헤치며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법광님이 산행띠지에 고도를 적어 놓은 도상 56.8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남동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나즈막한 도상 56.8봉을 지나자마자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숲으로 들어가 개고생을 하면서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힘들게 빠져 나오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우측인 남쪽으로 등로는 이어진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잠시 내려가니 다시 드넓은 양배추 밭이 펼쳐지고 그 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다시 발산길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발산길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나즈막한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처음에는 저 봉우리를 통과해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행된다.
도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풍경도 감상하고 작게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도 확인한 후 계속 이어지는 발산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 드넓은 고구마 밭에서는 허리가 휘어진 할머니 한분이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는데 자식들은 그 수고로움과 고마움을 알고 저 고구마를 먹고 이을지 궁금하기만 한데 문득 이미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시간이다.
언덕을 넘어가니 가족들이 모여 콩수확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뿌리분재란 이정석이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옆으로는 발산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과 버스정류장도 보이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이다.
발산마을은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광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발산(鉢山)은 마을의 지형이 마을 앞 강산에 있는 절의 스님이 들고 다니던 바래 모양과 같다 하여 발대 발(鉢)자와 마을 뒷 편에 산이 있어 뫼 산(山)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발산마을 입구 갈림삼거리에서 등로는 우측 현해로를 따라 이어지지만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 가까운 곳에 16.7미터의 수준점이 박혀있어 잠시 다녀 온 후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는데 지도에는 이곳을 감나무재라 하였는데 조금 더 진행 한 지점에도 또 다른 감나무재가 보여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자료에는 감나무는 광산리의 옛 자연마을 중 한곳이지만 이제는 이 지명이 사라진 듯 보이는 곳으로 이제부터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이제는 폐쇄된 듯 보이는 기상레이더연구센터 지나 공장 건물 앞으로 천장2구 보천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보천마을은 이웃마을 등과 발산마을에 조선시대 양곡 공동 보관창고가 있었는데 이 마을은 창고를 뒤로 두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배창골'이라 하였으나 그 후 일제시대 때 마을 앞에 우물을 개발하여 물이 맑고 맛이 좋아서 보배같은 우물이라 하여 보천(寶泉)이라 하였다.
커다란 보천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해제남부교회가 보이고 언덕 정상부로 진행하니 도로 우측으로 진주강씨세장산과 산길1리 신등마을 및 산길3리 강산을 알리는 표지서이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원갑사와 가람농장 및 신등마을로 통하는 이정판들이 보인다.
산길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리로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주변에 산이 여럿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등과 강산마을 등이 있는데 신등마을은 마을 앞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을을 내왕할 때 산의 재를 오르내린다 하여 등길(登吉)이라 하였다가 후에 새로운 마을이라는 뜻의 신등(新登)이란 지명으로 바뀌었고 강산마을은 신등 마을 서편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나락을 쌓아놓은 형국이라 하여 강산(糠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갑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강산(糠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처음의 이름은 강산사였으나 뒤에 당산사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원갑사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다가 1701년(숙종 24)에 명선(明善)이 중건하였으며 1804년(순조 4)에 여관(如寬)이 중수했는데 이 무렵에 원갑사라 하였다가 그 뒤 다시 퇴락되었으나 1891년(고종 28)에 중건하였다.
한말에 사찰이 붕괴되어 중건하려 하자 인근의 목우암(牧牛庵) 신도들이 협력하여 1908년에 중건하였고 1953년에 일현(日鉉)이 중수하였으며 1988년에는 혜광(惠光)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무량전(無量殿)과 요사채 1동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1879년(고종 16)에 조성한 탱화 1점이 있다.
언덕 정상에 있는 원갑사와 산길리 자연마을에 대한 이정판을 확인하고 잠시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은 구등마을로 갈 수 있는 구도로이고 좌측이 천장리 방향인 신설된 도로처럼 보이는 곳으로 좌측 신설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우측 구도로 상 구등마을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구등은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산길2리에 속한 마을로 원래는 구등길(舊登吉)로 써야 하는데 왜냐하면 구등 하면 의미가 없지만 구등길로 쓰면 지명이 갖는 본래의 의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1789년에 나온 호구총수나 진주강씨 김해김씨 족보에도 전부 구등길로 나오나 1914년 일본인에 의해서 행정구역 개편 때 그들의 잣대로 구등길에서 구등으로 간편하게 바꾼 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구등마을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우리농수산 지나 지도까지 12 Km 거리라는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그곳 지나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독산과 천마산이 사진에 들어오고 그 우측으로 드넓은 논경작지에 쌓아 둔 볏짚더미 지나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대월산과 내일 만나야 할 지도읍의 산줄기가 살짝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현해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며 남쪽 방향으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건너 좌측으로 천장2리 보천마을이란 커다란 표시적이 다시 보이고 계속 눈길을 잡는 도로 우측으로 펼쳐진 산길리 들판과 그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솟아 있는 강산을 살펴보며 전진하니 도로 우측 저 멀리 봉대산 자락도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삼오가든을 지나자마자 주유소 지나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천장삼거리란 도로표지팜이 걸려있는 곳으로 좌측으로 해제남초등학교가 있는 곳이다.
천장리는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에 위치한 리로서 포구 앞에 자리하며 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장동, 보천, 백동, 돌기마을 등이 있는데 장동마을은처음에는 장곡(壯谷)이라 하였고 장곡은 소의 씩씩함을 뜻하며 우형국(牛形局)이라고도하였으며 현재 마을이 있는 곳은 소의 배 부분에 해당되며 소가 이 마을을 감싸는형태라 하며 행정구역 개편시 장동(壯洞)으로 변경하였다.
보천마을은 이웃마을 등과 발산마을에 조선시대 양곡 공동 보관창고가 있었는데 이 마을은 창고를 뒤로 두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배창골이라 하였으나 그 후 일제시대 때 마을 앞에 우물을 개발하여 물이 맑고 맛이 좋아서 보배같은 우물이라 하여 보천(寶泉)이라 하였고 백동마을은 마을에 잣나무가 많았으며 백동과 가실을 합하여 백동(栢洞)이라 하였으며 돌기마을은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드나들어 돌계라 했는데 그 후 돌귀라 부르다가 마을민들이 돌기(乭起)로 개칭하였다.
천장삼거리 지나 해제남초등학교 도로표지판과 버스정류 장 옆으로 천장4리 돌기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도 서 있는 지점도 통과하니 우측으로 낡은 해제남부 경로당 건물이 보이는데 그 앞으로는 커다란 사각정자도 설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는 드넓은 양배추 밭이 펼쳐지고 바로 눈 앞으로는 다시 갈림삼거리 지나 우측 뒤 저 멀리 대월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사진에 담고 잠시 후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 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올라가니 우측으로 왕국회관이 보이고 곧이어 24번 해제지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천장교가 보인다.
천장교를 통해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면서 좌측인 북동쪽을 보니 천장리와 용학리 사이로 강처럼 보이는 물길이 보이고 그 우측 뒤로 오전에 통과한 가입리 방향의 좁은 봉대지맥 마루금이 보이는데 그 마루금 좌우측으로 바다가 둘러쌓여 있어 마루금은 보일듯 말듯 이어지고 있고 우측으로는 도로를 내면서 생긴 절개지만 보일 뿐이다.
그 천장교를 지나자마자 도로 우측으로 짧은 시멘트 포장도로 지나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입구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바로 천장리 장동마을 뒷쪽으로 보이는 71.5봉으로 오르는 입구이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를 짧게 지나 잡목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진입하니 입구에는 선답자의 산행띠지 한장이 걸려있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약간의 잡목지대 지나 굵은 편백나무 등로가 펼쳐진다.
생각보다 뚜렷하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이 자라고 있는 자연화 묘지 지나 또 다른 무명묘지도 통과한다.
무명묘지 지나 좁은 등로를 오르니 잡풀들과 키작은 잡목들이 우거진 공터인지 무명묘지를 지나 다시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몇기의 묘지들이 보이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들만 무성하게 보인다.
그 묘지들을 지나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갑자기 우거진 잡목등로가 나타나고 힘들게 통과하니 봉분이 낮은 묘지 옆에 해피마당쇠님 산행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72.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 지나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좌측 옆으로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우측 옆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여 들어가 보니 도상 71.5봉인데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속에 제단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확인이 불가능해 다시 뒤돌아 나와 이동통신탑 뒤로 올라 사진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내려온다.
힘들게 도상 71.5봉을 사진에 담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성나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앞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드넓은 밭경작지 지나 잠시 후 만나야 될 천마산과 그 우측 뒤로 독산이 보이고 좌측 뒤로는 창매리에 솟아 있는 97미터의 중매산이 솟아 있는 모습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내려가는데 자꾸만 눈길을 잡으며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시간이다.
넓게 펼쳐진 황톳빛 밭경작지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사진 제일 우측의 중매산을 기준으로 좌측으로 저 멀리 희미하게 영산기맥 산줄기가 펼쳐져 있고 그 좌측인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오늘 아침에 잠시 들렸던 봉대지맥의 검무산이 솟아 있는데 워낙 높은 산들이 없다 보니 104.3미터의 검무산도 제법 높게 보이는 풍경이 웃음만 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이제 마루금 우측을 보니 이제부터 만나야 할 천마산과 독산 지나 남해바다가 보이는데 그 우측으로 보여야 할 대월산은 바로 앞 나뭇가지들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이름들을 불러주며 내려가니 양배추밭이 나타나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좌측으로 장동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곧이어 비포장임도와 고구마밭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통과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다시 이어지는 구멍 뚫린 비닐을 씌워 놓은 양파 파종지를 따라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의 잡목능선 지나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잡목들이 우거져 있어 참으로 힘들게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오르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보이면서 뚜렷한 드로가 되살아 난다.
잠시 후 작은 벗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어 처음에는 천마산 정상이라 생각하며 사진에 담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정상은 조금 더 남동 방향으로 진행해야 만날 수 있는 천마산이다.
띠지를 지나자마자 바위무명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능선상 나뭇가지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83미터의 천마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다만 이곳 무안군 해제면에 있는 83미터의 천마산에 관한 자료가 보이지 않아 무슨 유래가 사연이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천마산 정상을 지나니 다시 뚜렷한 등로가 잠시 이어지지만 내려갈수록 키작은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등로 우측으로 2층으로 된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 옆으로는 소망바위 0.2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바위지대 지나 길게 설치된 나무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을 모두 내려가니 우측으로 소망바위 설명판이 보이고 그 뒤로 전망대와 바위 하나가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소망바위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억지로 붙여진 이름은 아닐까 생각된다.
소망바위를 읽어보니 예로부터 청산마을 대대로 구전으로 전해오는 소원성취를 기원하던 바위로 청산마을 뒤에 있는 철마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탄도만의 낙조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다라는 글이 보인다.
그 소망바위를 지나 여전히 뚜렷하고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에는 소망바위 0.15 Km와 전망대 0.37 Km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걸어 오르니 마루금은 좌측 드넓은 양배추 밭 사이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양배추 밭 사이로 조심하며 걸어 오르는데 그 양배추 밭 위로 고구마를 수확한 드넓은 밭에 양파를 파종하려는지 비닐를 씌운 밭에 농부 한명이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고 있어 미안한 마음에 인사를 건네니 생각보다 너무 친절하게 반겨주고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인사 드리고 곧바로 능선으로 진입한다.
양배추와 양파 파종지를 지나 잡목과 동백나무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잠시 후 양파를 파종한 넓은 밭이 나타나고 그 밭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니 가시잡목 사이로 희미한 등로 진입로가 보이고 조심하며 그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능선으로 진입하니 몇발자국 걷지 않아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56미터의 독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양파 파종지로 되돌아 나온다.
이곳 독산 역시 방금 전 다녀 온 천마산과 마찬가지로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아 독산에 관한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짧은 거리지만 양파 파종지에서 독산정상을 왕복으로 다녀온 후 우측에 양파 파종지를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이제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묵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해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짧은 구간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등로가 나타나고 어렵게 빠져 나가니 양파 파종지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한다.
양파 파종지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고구마를 수확한 드넓은 황토밭이 펼쳐져 있어 마음 편히 그 밭 가운데를 통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민가와 고래 캠핑장 방향을 살펴보며 천천히 내려가는데 고래캠핑장 뒷쪽으로는 무명봉 지나 마지막 이름이는 봉우리인 대월산이 보이고 우측 뒤로는 내일 걸어 만나야 할 지도읍에 펼쳐져 있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제각각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습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구마를 수확해 비어 있는 드넓은 황토밭을 타고 민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내려가니 남서 방향으로 대월산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대월산 좌측으로는 서해바다 건너 지도읍의 봉황산과 선봉산 등이 보이는데 저 봉우리들은 봉대지맥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어 직접 만날 수는 없는 산들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 넓은 밭경작지를 따라 민가 옆으로 내려가니 참새골길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 옆으로는 참새골이란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마루금은 우측 고래캠핑장 방향으로 도로따라 이어진다.
이제 민가를 지나 참새골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예쁜 건물들이 보이고 처음에는 이런 시골에 무슨 어린이집이 있을까 생각을 했는데 오르다 살펴보니 고래캠핑장으로 설치된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이는데 손님들은 거의 없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그렇게 좌측으로 고래캠핑장을 살펴보고 계속 걸어 오르니 고갯마루로 오르기 직전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입하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앞으로 일어 날 대월산과 78.5봉에서의 지독한 가시잡목과의 한판 승부는 생각도 못하고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보다는 이른 계절에 진행하면서도 무탈하게 잘 딘행하였다고 자축도 해 보는 시간이다.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능선으로 진입하니 도로 좌측으로 고개캠핑장 지나 드넓은 밭경작지를 통과한 후 독산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지나 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오를때 고생한 기억은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 쌓이고 바라보는 풍경이 좋으니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 뿐이다.
생각보다 넓고 뚜렷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는 갑자기 우측 잡목 사이로 이어지고 약간의 잡목들을 헤치며 전진하니 다시 드넓은 초지와 양배추 밭이 펼쳐지며 이국적인 풍경에 힘든줄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 나오는 시간이다.
초지지대 지나 양배추 밭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따라 내려가며 진행 방향인 남서쪽을 살펴보니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지고 정중앙부로 솟아 있는 대월산을 만난 후 우측 뒤로 솟아 있는 78.5봉 지나 지도읍으로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직도 물을 주고 있는지 질척이는 양배추 가장자리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민가 옆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한동안 진행하게 된다.
방금 전 내려 온 양배추와 초지지대를 살펴보고 24번 해제지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서해랑길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도로 좌측인 남쪽으로 드넓은 무안 갯벌이 펼쳐지는데 좌측의 창매리 산줄기 끝자락 옆으로 저 멀리 무안공항과 운남면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들과 우측으로 신안군의 섬들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몇장의 사진에 담은 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사진 정웅앙 우측으로 풍력발전기가 보이는데 무안군 운남면 내리에 건설된 4기의 풍력발전기이다.
무안 갯벌과 운남면 내리에 건설된 풍력발전기를 살펴보며 계속 이어지는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남동 방향으로 무안갯벌 좌측의 양월리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창매리의 중대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고 계속 도로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생선을 파는 식당과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는데 이미 필요한 물품은 모두 가지고 있기에 통과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신촌 버스정류장이 보여 잠시 배낭 내려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을 이어간다.
신촌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니 도로 좌측으로 잡풀들이 우거진 묵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해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좌측으로 묘지들이 보이는 지점 우측 가시잡목 능선이 보이고 그곳으로 진입하며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데 온통 가시라는 가시는 모두 모여있고 그 사이마다 거미줄이 쳐져 있어 서서히 지옥문이 보이는 듯 느껴진다.
ㅓ무나 힘들게 가시잡목 사이로 보이는 거미줄을 걷어 내며 천천히 전진하니 갑자기 간벌된 후 소나무와 활엽수들이 조림된 지역이 나타나고 조금은 편안하게 주능선으로 오르니 간벌된 후 소나무가 식재된 지점은 그곳까지로 다시 진입하는 입구에는 가시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간벌된 후 어린 소나무와 활엽수가 식재된 조림지 지나 다시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묵은 비포장임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지독한 가시잡목과 키가 큰 잡풀들이 숨이 막히게 서 있고 이리저리 살피며 조금이라도 넓은 틈이 보이는 곳을 찾아 어렵게 한발 두발 전진시키니 다시 짧은 간벌 후 편백나무가 식재된 풍경이 보인다.
그 간된 후 편백나무들이 식재된 조림지를 통과하니 희미한 등로가 열리고 조심하며 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와도450이란 삼각점이 박혀있고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도상 106.9미터의 대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다만 이곳 대월산 역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자료가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대월산 정상으로 올라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드넓은 공터에 잡풀들이 우거져 볼품없이 병해 있고 좌측으로는 부서진 벤취쉼터들이 잡풀속에 방치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동쪽을 살펴보니 드넓은 무안갯벌 지나 창매리의 중매산이 여전히 독립된 솟아 있는 봉우리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 방금 전 이 산객이 만나고 온 독산과 천마산 지나 좌측으로 71.5봉까지 이어지는 봉대지맥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더 담고 잠시 더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준다.
동쪽으로 지나 온 마루금과 중매산을 확인하고 조금 더 주의깊게 진행을 했어야 하는데 당연히 대월산등산로 안내판과 벤취쉼터가 서 있는 좌측 옆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좋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산행띠지들도 걸려있지 않아 의심스럽게 지도와 트랭글을 확인해 보니 마루금은 우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해야 할 길 주의 지점이다.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잡목 능선으로 내려가 가파르게 이어가니 어마무시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아 다시 온 몸에 심한 생채기들을 남기고 빠져 내려가니 조금은 희미한 등로가 보였다가 다시 지덕하게 우거진 잡목 등로가 번갈아 나타나기 시작한다.
한동안 조심하며 내려가니 선답자 띠지가 보이고 다시 앞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가시잡목 숲에 갇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멋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누가 도와줄 것도 아니기에 그 지독한 가시잡목들을 손으로 일일히 헤치며 천천히 내려가니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등로 좌측으로 가장 가까운 시멘트 도로 방향으로 무조건 내려가니 등로에서 좌측으로 조금 지나쳐 내려간 명양길 시멘트 포장도로이다.
온갖 낙엽과 나뭇가지들 그리고 가시들까지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내려 가 떼어내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는데 양월리 고개이다.
도로 좌측으로는 명양마을이란 작은 표지판이 보이는 곳을 지나 횡단보도에서 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서 있는 양월2리 신월마을이란 커다란 표지석을 사진에 담고 버스정류장과 다양한 입간판 그리고 도로표지판을 사진에 담은 후 다시 좌측으로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광산김씨 가족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위 능선으로 오르니 이곳 역시 대월산 못지 않는 지독한 가시잡목들과 거미줄이 앞을 가로막으며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잠시 후 이동통신탑을 만나 사진에 남기고 오르니 짧은 구간 벌목 후 편백나무 조림지가 펼쳐지고 그곳을 통과하자마자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발목을 붙잡는데 이곳 역시 방금 전 대월산과 마찬가지로 최악이다.
그래도 한발 두발 천천히 걸어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보이고 준희 선생님의 빛바랜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78.5봉에 도착을 해 오늘 산행 중 마지막 봉을 인증한다.
도상 봉대지맥 제1구간인 무안군 해제면의 마지막 봉우리인 78.5봉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니 출발부터 관목의 소나무와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우거진 가시잡목들로 인해 최고의 고통을 맛보기 시작하고 일일이 하나둘씩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천천히 진행하니 잠시 편백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군락지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되는가 싶던 등로는 다시 편백나무 군락지가 끝이 나며 더욱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괴롭힌다.
너무나 힘들게 그 가시잡목 구간을 헤치며 골짜기 같은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으로 거대한 칡넝굴 지대가 펼쳐지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등로는 높은 절개지로 이뤄져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좌측 잡목들을 헤치며 용을 써 본다.
골짜기 같은 등로에서 절개지로 내려 갈 수 없어 좌측 잡목숲을 헤치며 조그믹 걸어가다 등로 우측인 북쪽과 북북서쪽을 내려다 보니 지독하게 우거진 드넓은 칡넝굴 지내 좌측 아래로 잠시 후 만나 걸어가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끝자락에 민가 한채 지나 드넓은 논에는 수확이 끝난 볏짚들이 저미로 널려있는 모습이 펼쳐지고 그 좌측으로는 다라를 가르는 연육교이자 무안군 해제면과 신안군 지도읍을 이어주는 3개의 연육교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봉대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우측 들판 뒷쪽으로는 강산이 좌측 지도읍 방향으로는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산줄기와 봉우리들이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잡목들을 헤치며 좌측으로 올랐다 완만하게 내려가는 능선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지독한 칡넝굴 지대 넘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온 몸에 붙어 있는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털어 낸 후 민가가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하니 도로 좌측으로 내일 새벽에 만나야 할 한봉산이 솟아 있고 곧이어 민가 앞에 도착을 하는데 할머니 한분이 고생한다며 이곳에서 오랫동안 허가를 맡아 물고기를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잠시 더 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좌측 서해바다를 가르고 설치된 제일 북쪽의 나즈막한 연육교를 타고 지도읍으로 향하는데 이곳 역시 지독하게 우거진 칡넝굴로 인해 초반부터 애를 먹어 이곳에서 마무리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이다.
진행 방향 전방으로는 연육교 넘어 한봉산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데 다음날 아침에 올라보니 이곳 역시 어느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악명 높은 가시잡목에 우거진 칡넝굴까지 최악의 등로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연육교를 따라 무안군 해제면에서 신안군 지도읍으로 걸어가며 우측을 보니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배를 타고 생선을 잡으러 나가고 그 뒤 저 멀리 나즈막하게 이어진 산줄기들이 보여 지도로 살펴보니 가운데 잘록한 부분이 서해바다이고 좌측으로는 봉대지맥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있는 지도읍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우측으로는 마루금에서 벗어 나 잇는 강산이 가까운 곳에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한 해제면의 봉대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는 모습과는 달리 보름달처럼 둥그런 모습으로 보인다.
연육교를 통과하는데 생각보다 키가 큰 잡풀들과 가시잡목들 그리고 가시덩굴들이 뒤엉켜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어렵게 통과하니 부부가 낚시를 즐기는 모습도 보이는데 빠가사리를 낚고 있다.
그곳을 빠져 나가니 다시 억새가 피어 보기에는 좋은데 통과하는덴 어려움이 있어 바닷물이 있는 곳으로 조심해 통과한 후 뒤돌아 보니 민가 우측 뒤로 어렵게 내려 온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인 78.5봉이 보이고 민가 좌측으로는 변 수확을 한 후 볏짚들을 모아 둔 하얀 볏단들이 널려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드디어 연육교를 완전히 빠져 나와 비포장임도를 따라 신안군 지도읍으로 들어서니 좌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보니 언덕으로 오르는 등로에는 우거진 칡넝굴들이 뒤엉켜 있어 내일 아침에 진행하면서 어려움도 예상된다.
이렇게 봉대지맥 첫 구간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귀가를 할까 고민하다 남아있는 지도읍의 산줄기도 한번 구경해 보고 싶어 해제면 택시를 콜하고 좌측인 남쪽으로 24번 해제지도로 방향으로 걸어가니 드넓은 공사장이 나타난다.
공사장을 지나 끝까지 걸어 나가니 드디어 무안군 해제면과 신안군 지도읍을 연결하는 24번 해제지도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또 다른 연육교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 우측으로는 자동가스충전소가 있는 곳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도로변에는 신안갯벌 세계유산등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길을 잡는다.
신안갯벌 도립공원은 신안군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로 2008년 6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면적은 144 Km2에 이르며 신안군 하의면을 중심으로 비금면와 도초면, 암태면, 압해도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있다.
신안의 갯벌은 육상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정화하는 기능과 재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 5대 습지 중 하나로 불린다.
신안갯벌은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생태적인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되며 전남 신안군은 점차 갯벌공원의 범위를 확장과 국립공원으로 승격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가스충전소가 있고 신안갯벌 세계자연유산등재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는 24번 해제지도로가 지나는 연육교 앞에서 조금 더 기다리니 해제면 택시가 도착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기사님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새 해제면 신협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늘 운전을 하는 택시가 아닌 콜을 받아 운전하다 보니 가사일을 하면서 용돈벌이처럼 택시 운전을 한다는 아주머니는 현찰로 계산하면 10,000.-만 계산한다기에 2,000.-원 할인을 받아 기분 좋게 헤어지고 애마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근처의 중국집에서 짬뽕 곱빼기에 공기밥 하나까지 먹고 지도읍 읍내리의 모텔로 들어가 하룻밤 지내게 되었는데 내일 지도읍 산줄기에서는 또 어떤 추억과 인연들을 만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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