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후시아오세인 제작 : 이치야마 쇼조, 양 텡퀘이
대만, 일본 합작영화 촬영 : 마크 리 핑빈 음악 : 하노 요시히로
출연 : 양조위 하다 미치코 유가령 이가흔 잭 카오
컬러, 2시간 10분 1998
시납시스
1894년에 발표된 해상화열전이 원작이다. 거의 10에 가까운 첫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총 38컷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첫장면에서 영화를 대부분 이끌어 가는 모든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그때 그들을 면밀히 보아두면, 영화를 감상하는데, 그래도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왕나리(양조위)은 시아오홍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이이지만 최근에 만난 후이전에게 빠져 그녀에 대한 애정이 식어가는 중이다. 얼마 후 다시 시아오홍의 방을 찾아온 왕은 다른 손님을 상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격분한다. 결국 왕은 시아오홍과 헤어지고 후이전과 결혼하지만, 성격이 거친 추이펭을 멀리 하라는 친구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루오의 마음은 계속 그녀에게로 향하고,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런데 황 부인이 루오에게서 돈을 빼낼 음모로, 추이펭이 계약서를 돌려 받기 위해 돈을 벌려 애쓰고 있다는 얘기로 그를 속인다. 슈앙유. 초우의 집에 새로 온 소녀 슈앙유는 곧 인기있는 창부가 된다. 그러던 중 갑부의 아들 추와 가까워진 슈앙유는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며 손님 받기를 거절하지만, 추는 다른 여자와 약혼을 하고 만다. |
줄거리
우아함과 호사스러움,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고독과 세기말의 절망이공존하는 후 샤오시엔의 열 네 번째 영화 < 해상화 > 는 오랜 세월 지배적 권력을 행사해온 중화사상의 몰락과 서구 제국주의 문화의 강제 이식이라는 이중 상처에 시달려야 했던 19세기말 상해의 쓸쓸한 초상화이며, 대만이라는 한계조건을 벗어나 인간존재의 보편적인 삶의 문제로 다가서기 시작한 후 샤오 시엔의 새로운 3 부작 중 첫 작품이다.
< 해상화 > 속의 유곽은 성을 사고 파는 공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비현실적인 치유와 도피의 공간이다. 어린 나이에 유곽으로 팔려와 자신의 몸값을 지불해 줄 사내를 만날 때까지 몸을 팔아야 하는 여인들은 태생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며, 가정과 돈, 그리고 사회적 지위까지 가졌으면서도 놀이와 아편, 연애에서 위안을 찾는 사내들은 일상의 권태와 무게로부터 도피해 온 망명자들이다.
유곽의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운 세 여인을 사람들은 크림슨 ( 미치코 하다 ), 펄 ( 유가령 ), 에메랄드 ( 이가흔 ) 이라 부른다. 연약하고 가녀린 아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크림슨은 왕 ( 양조위 ) 이라는 중국 관리를 정부로 두고 있으며, 자신만만하고 넓은 도량을 가진 여인 펄에게는 홍이라는 나이 든 정부가, 그리고 지혜로운 여인 에메랄드에게는 루오라는 정부가 있다. 이 사내들은 세 여인의 오랜 연인이자 재정적 후원자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크림슨과 왕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왕은 크림슨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여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크림슨의 하녀는 오히려 크림슨에게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스민과 새로운 관계를 가진 왕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비난한다.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왕이 크림슨을 찾는 회수가 점점 뜸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왕에게 크림슨의 주인은 너무나 오랫동안 왕이 크림슨을 독점한 탓에 크림슨에게는 몇 해전부터 손님이 없었으며, 만일 계속해서 왕이 크림슨을 외면할 경우 크림슨이 다른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어느 날 만취한 채 크림슨의 방에 들른 왕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분노한 왕은 자스민을 후처로 삼겠다고 홍에게 밝히고 모든 준비를 부탁한다. 홍은 왕에게 크림슨과 연인관계를 끝내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재정적 지원까지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충고한다. 왕을 다시 만난 크림슨은 자신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일이 없으며 모든 것이 왕의 오해였다고 해명하지만 왕은 그녀의 말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뿐이다. 자스민을 후처로 삼은 왕은 새로운 임지로 떠나고 크림슨은 홀로 남겨진다. 그후 유곽에는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펄과 홍은 여전히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에메랄드는 루오의 도움으로 자유를 얻어 유곽을 떠나고, 새로운 여인 크리스탈은 자기의 연인과 동반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한다. 한편 왕의 후처인 자스민은 왕의 조카와 불륜을 저질러 쫓겨나고 또 한 번 불행에 빠진 왕은 크림슨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유곽을 떠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있다던 크림슨은 이제 또 다른 연인을 위해 아편을 준비한다.
이전 작품 < 남국재견, 남국 > 에서 이미 암시하였던 것처럼 후 샤오시엔은 대만 3 부작 - < 비정성시 >, < 희몽인생 >, < 호남호녀 > - 에서 제기하였던 자신과 자기 조국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부터 벗어나 삶과 시간의 문제로 자신의 미학적 관심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 해상화 > 에서 그는 이전까지 자신의 작품세계를 특징지어주던 형식적 특징들을 과감히 포기한다. 지금까지 고통스러울 만큼 냉정하게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는 이제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인물을 쫓아 움직이고, 영화 속 인물과 영화를 지켜보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확인시켜 주던 롱쇼트는 인물들 앞으로 성큼 다가선 풀쇼트로 전환되었다. 또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역동적인 인물들은 화려한 복장과 인공 조명 속으로 숨어버린 익명적이고 유형적인 인물로 대체되었다. 바깥 세계의 빛과 소리를 차단하는 굳게 닫힌 창문, 무겁게 번져나가는 아찔한 아편향기, 잡힐 듯 가까이 다가섰으면서도 주관적인 시점을 허용하지 않는 모호한 거리 두기, 그리고 한 번도 유곽 밖을 벗어나지 않은 채 꿈을 꾸듯 가볍게 떠다니는 카메라의 느린 움직임은 마치 몽환제처럼 영화 속 공간의 비현실성과 등장인물의 익명성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모든 것이 달라진 < 해상화 > 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포착할 수 있는 후 샤오 시엔적인 특징은 그가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 시간의 지속 ' 뿐이다. 그리고 오직 이 시간의 지속을 통해서만 우리는 ' 상투적인 과거 도피 ' 나 ' 부르주아적 형식실험 ' 이라는 오해로부터 벗어나 < 해상화 > 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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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영화제동안 가장 기대를 했던 영화중의 하나가 바로 후샤오시엔 감독의
신작 <상하이의 꽃>이다. 원제는 <海上花>이다. 일반적으로 海는 호(扈)와 함께 상해지방을 뜻한다. (해상은 상해의 뜻으로도 쓰였다) 그러니 원제의 뜻은 "상해에
뜬(혹은 피어난) 꽃"이다. 원작소설 (혹은 당시 기방세계의 구술담인지도 모르겠다)은 <해상화열전>이다. 그것을 후샤오시엔의 다른 작품처럼 역시 일본 자본으로
만든 것이 이 영화이다. 시대배경을 몰라 무척 고심했는데 영화중에 얼핏 보이는
계약서상의 년도는 1884년인가 그랬다. 그러니, 이른바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중국의 노른자 땅이 조차지,혹은 조계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넘어갈때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도시의 한 구획을 뚝 떼어 미국땅, 영국땅, 독일땅..이런
식으로 할양하는 것이다. 치외법권의 희한한 제국 열강의 횡포인 것이다. 당시 상해탄 - 가보면 알지만 정말 멋진 곳이다. 황포강의 더넓은 물결이 거대대륙 중국의 숨결을 쏟아붓는 장소이다. 한강 고수부지랑은 비교가 안될 만큼 - 에는 이런
푯말이 붙어 있었다. "출입금지: 개와 중국인" 이라고, 오늘날도 중국인들은 자기
땅에 붙어 있었던 그 대접 - 중국인은 개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어떠한 못된 양코뱅이도, 그 어떠한 열혈 황비홍도 등장하지 않는 퇴락할대로 퇴락한 중국의 한 계급사회만이 나온다. 영화는
놀랍도록, 어둑 어둑한 실내 - 기방에서만 펼쳐진다. 단 한장면도,외부로 카메라를 돌린 적이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시작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첫 시퀀스는 10분짜리 롱테이크이다. 전작 <남국재견남국>의 경우보다 더 길어진
충격적인 오프닝씬이다. 후샤오시엔의 영화실험은 이제 거의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모양이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고급 룸살롱에 모인 이들은 바로 淸나라라의 변발을 하고 있는 일반 유한계급들이다. 양조위도 저 구석에 조용히 앉아 알수없는
미소만 잔뜩 짓고는 연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술상을 빙 둘러앉은 이들은 연신 "후아 취엔(劃拳)"라는 일종의 가위바위보를 하며 웃고 떠든다.
(이걸 잠깐 설명하면, 두 사람이 "하나둘셋" 하고, 동시에 각자 알아서 손가락을
펼친다. 하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낼 사람을 정한다. 예를 들어 박재환이 양조위랑
이걸 한다면, 내가 먼저 할게..하고는 "하나 둘 셋!" 하며, 손가락을 펼치는데, 내가 예를 들어 "셋!"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두개 펼친다. 양조위가 하나를 펼쳤을
경우는 합쳐셔 셋이 되는 셈이다. 그럼 내가 이긴 것이다. 양조위는 벌주로 술을
한 사발 들이 마셔야 된다. 그러나. 양조위가 둘 이상을 펼쳤으면, 내가 부른
"셋"은 틀린 것이다. 그럼, 이제 발언권은 양조위에게 넘어가고, 다시 "하나둘셋"
한다. 양조위가 "다섯"하며 두개를 펼쳤다고 하자. 하필 그때 내가 펼친 게 세개면, 이번엔 양조위가 맞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벌주로 술을 마신다. 이걸 박진감있고, 리듬감 있게 하기 위하여 장단을 맞춘다. 자연스레.. 우리식으로 하면..
"일, 일본군! 이, 이순신! 삼, 삼총사! 사, 사오정! 오,오징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박자 맞추어 빨리빨리 하다보면, 어느새 술은 거나하게 취하고 의기투합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가면, 술판마다.이런 게 벌어진다. 그래서
열심히 정신없이 술 퍼마시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첫장면에서 열심히 "후아취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방의 관리일 수도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중에는 그 어떠한 우국의 이야기도, 세상사에 대한 말도 없다. 그야말로 탈역사화된, 이야기뿐이다. 가족이나, 집안 이야기조차 없다. 어느 기방에 새로 들어온 누가 예쁘다더라..라는
이야기 뿐이다. 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기방(妓房)은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업소인지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것이다. 쉽게 이해하는 유곽과도 좀 다른 것 같다. 아마도 기녀는 오늘날의 창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어릴 때 팔려와서
10여년 간 술시중 드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얼굴 만만하고, 메너좋으면, 단골을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손님의 눈에 띄면, 시집가는 것이다. 물론 첩으로. 그러면 그 술집 주인은 그동안 키워놓은 값으로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시대상황을 담담히 지켜보는 1998년 한국의 관객은 왠지 씁쓸한
맛을 느낄것이다. 지루함을 견뎌낸 대부분의 관객의 반응을 볼려고 하니, 들리는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여자애들 참 안 됐다.."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관객이 너무 안 되었다. 이런 영화를 다 보게 되다니 말이다. 이 영화는 오직 깐느 심사위원, 그리고, <까이에 드 시네마>편집장과 키노 기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화이다. 함부로 보지 말기를 권한다.
영화는 처음에 등장하는 기녀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물론 술 손님들은 열심히 후아취엔하며 퍼 마시고 있다. 등장기녀들의 워낙 촌스러우니까..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소홍(小紅.. 영어번역은 크림슨이다)이다. 유가령, 이가흔, 하다 미시코가
한 인기하는 기녀들이다. 손님들은 이들중 하나를 보기 위해 출입한다. 첫 장면부터 아무말 없이 술만 마시던, 양조위도 이 중 한 기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니
그 기녀가 양조위를 좋아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어떠한 일상적인
로멘스도 없다. 단지, 기녀들은 기녀들의 희망이 있을 뿐이고, 양조위는 양조위대로 왔다갔다 분위기만 피울 뿐이다. 단, 하나 화면에 변화를 주는 영상이 있었다면, 후반부에 기녀 하나가, 나랑 결혼해 주겠다고 하고선, 배신을 해..하며 같이
약먹고 죽자고 길길이 뛰는 장면 뿐이었다.
이 영화에서 오늘날 담배피는 것 만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편 흡입장면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귀족이나, 하층계급이나 다 아편을 들이마셨다. 그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편전쟁이었고, 이 추악한 전쟁의 결과 중국은 이제 속수무책으로 서구에게 뜯겨먹기 시작한 것이다. 임칙서(혹은 임측서)가 그렇게 막으려했던 아편은 이제 광범위하게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켰다. 아편 흡입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수증기원리를 이용한다. 물푸레같이 생겨서, 불을 붙여, 아편의
증기를 들이 마시는 것이다. 생아편은 몰핀처럼, 통증제어 효과가 있지만, 과다복용시 사망에 이른다. (<라이언 일병구하기>에서 몰핀을 바늘로 찌르는 장면참조)
담배 권하듯이 아편을 권하는 그 시대의 망쪼는 이미 들대로 든 것이다. 모택동의
제 1공로는 중국 인민의 아편흡입 절대금지였다는 것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장개석이 대만에 쫓겨가서 한 첫번째 일이 아편 밀매단체 깡끄리 소탕, 총살형이었다. 그 여파로 발생한 것이 2.28사변이고, 그걸 영화로 만든 것이 <비정성시>이다.
양조위도 이 영화에서 아편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기녀와 이야기할뿐이다. 나누는 이야기도 그렇게 철학적이거나, 우국충정의 소리는 불행하게도 단 한
마디도 없다.
이제 이 영화의 정체를 알 것이다. 이 영화는 1880년대에 멈춰버린 중국의 한 계급(상해의 유지들)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결코 형이상학적이며,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시절을 역사로부터, 완전히
떼어내어 표백시켜버렸다. 관객은 단지, 그 시절을 좋았던 한 시절로 인식할지라도, 실제로는 절망과 자포자기의 순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중 그 어느누구도 이러한 시대의 암울함, 절망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수만년 변화없는 중국제국의 몰락을 어두운 퇴영일 뿐이다. 역사인식도,
개선의 의지도, 발전의 희망도 갖고 있지 않은 그들때문에 중국은 망한 것이다.
단지, 마시는 술과, 들이키는 아편에 쩌려 하루씩을 살아가는 것이다.
후샤오시엔 감독의 영화표현기법은 이 영화에 이르러 완벽에 가깝다. 그들이 살아온 폐쇄공간은 기방으로 축소, 한정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 어떤 기녀가 어떠하다라는 식의 대사-는 그들의 관심사의 압축적 표현일 뿐이다 보고나면, 중국이
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수 있다. 그래서, 당시 이홍장이나 황비홍, 더 뒷날의 모택동 같은 인물의 출현을 목놓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렇게 지루할 정도 막힌 공간에서, 제한된 출연자에 의해 유지되다가 그렇게 끝난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후샤오시엔의 작품이다. 양조위도, 류가령도, 이가흔도...그 어떤 배우도 튀지 못한다. 오직 후샤오시엔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탈색된 역사공간에서 박제화된 인물군을 연기할 뿐이다. 놀랍도록 무서운 영화이다.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어두운 배경의 기방의 술상과, 후아취엔에 몰입하는 사람들뿐이지만, 그것이
어느시대, 어느 사회인지는 완벽하게 망각해 버린다.
당시의 중국은 새로운 피와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 그것이 후샤오시엔이 대만을
떠나, 상해의 과거로 날아가서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알려주는 역사의 교훈이고 말이다.
영화제동안, 사람들은 지겨운 영화라도 끝까지 앉아서 보아주고, 박수를 보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놀라운 하나의 변화를 보았다.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꽤 많이 나가는 것으로 보아, 후샤오시엔의 본색을 파악한 모양이다. 앞으로 영화제 예매할때, 영화 선택할때, 이런 평을 유심히 읽어보고, 작품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까운 영화를 놓치는 것은 표를 못 구한 다른 영화팬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볼수 있었던 그 사람들의 선택의 실수가 안타깝기 때문이다.
후 샤오시엔의 알레고리 병풍화 <해상화>에 관한 두 가지 시선
대만 바깥에서 90년대의 최고 작가로 떠오른 후 샤오시엔 역시 자신의 영토안에서는 한편의 영화를 힘겹게 만들고 있는 감독이다. 그는 <비정성시>로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대만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지만 점점 폐쇄회로 속으로 침잠한 후기 영화들에 와서는 대중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이다. <해상화>에 대한 대만 평론가들의 시선에는 중국인들만이 간파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 들어 있다.
1) 정감의 밀화 ▶ Text 왕 즈청
<해상화>는 시대를 묘사할 생각이 없다. 심지어 유곽(영화에서는 고급 유곽으로 부른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각종 작은 소품들을 세심하게 쌓아놓은 폐쇄된 방 안에서 후 샤오시엔은 어둡고 화려한 청나라 말기로 돌아가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운 서사적 수법으로 기생과 손님의 끈끈한 감정들을 분명하게 몇 단락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롱 테이크 스타일로 향하는 후 샤오시엔은 매 장면에서 롱 테이크를 영화 전체의 주체로 삼았으며 이 롱 테이크는 이전의 후 샤오시엔의 촬영수법과 달리 배우의 정서적 흐름에 따라 폐쇄된 방 안에서 천천히 움직인다.
그러면서 인물들 간에 보이지 않게 팽팽하게 흐르고 있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한 다단계의 재질로 짜내며, 관객의 시선이 끊어지는 말 속에 말이 있는 심오한 이치를 따라 배우 하나하나의 얼굴과 동작을 바라보게 한다. 이런 롱 테이크는 배우가 단숨에 일으키는 정서적 변화를 드러내며 또한 플롯이 분위기의 장력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하여 장편의 대화를 써내는 공력을 보여준다. 유가령 , 이가흔, 양조위의 뛰어난 연기는 매 장면을 동양화의 하나인 밀화처럼 정교하고 세밀하고 완전하고 독립적인 감정의 묘사를 만들어낸다. 영화 전체는 이에 따라 사리가 분명하고 색채가 짙고 선명하게 하나하나 펼쳐지고, 정감도 가득히 넘친다.
단골손님과 기녀가 술을 마시며 즐기는 첫 장면은 영화 전체의 총론으로 남녀간의
정이 술 손님에 의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거래라는 조건이 기본적으로 깔린
상태에서 오히려 벗어나지 못하거나 자기의 형체를 잊어버리는 쾌락의 감정에 냉혹한 주해를 단다. 쾌락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미친 듯한 애정은 단지 다른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즐기는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이어서 개성이 강한 기녀가 주인공이 되고, 그녀들이 감정의 위기와 작은 사건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통하여 각기 다른 감정에 얽힌 사건들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명쾌하고 냉혹하며 어떤 사람은
원만하고 세밀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집요하고 음험하게 청나라 기녀들에게 모질게
굴다가 나중에 기둥서방에게 당하여 굽실거리고, 다른 기녀에게 돈을 꾸는
늙은 기생도 있다.
마치 영화에서 중재인이 한 말과 같다. “ 당신은 돈을 지불하는 손님인데 왜 그 계집 대신에 빚을 갚아요? 또 다른 계집을 찾지 못하고?” 정이 드니 의리도 생겨 단골손님과 기녀 간의 거래관계는 불분명해지고 갈등과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 기생으로 살아가고 거기에 만족하며 계산에 탁월한 기녀들은 세상이 바뀌는 세기말에 이색적인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어리석고 나이 어린 사람은 목숨을 잃을 뻔하고 정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헛된 명성도 지키지 않으니 <해상화>의 어리석은 남자들과 한 많은 여자들은 고전소설 『홍루몽』과 비슷한 점이 무척 많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려온 매음제도는 오랜 문명과 오랜 역사를 가진 한 나라의 퇴폐적이고 부패한 모습의 축소판으로 애욕과 쾌락의 성거래에 따라 슬프게 발전한다. 그러나 마지막엔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해상화>는 소박하게 보이는 생활의 사소한 일들을 통하여 생활에 대한 예술의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2) 마법의 중국 호롱 ▶ Text 린 저량
영화 <희몽인생>이 뉴욕의 한 평론가로부터 ‘절반의 영화’ 10편에 선정된 이후로 후 샤오시엔은 어떻게든 그 오명을 씻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이 영화는 매혹적이며 서정적인 의미와 소수의 영화 토막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 이외에 원인 모를 이유로 실패했다). <해상화>는 상해에 가서 촬영할 수 없는 제약으로 인해 오히려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제약적인 공간 때문에 섬세하고 성숙한 걸작이 되었다. 또한 성공적인 캐스팅(이가흔, 유가령과 양조위)으로 후 샤오시엔은 카메라 렌즈를 좀더 가까이 놓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게다가 렌즈 자체도 자기가 응시하는 배우들(배우들과 사랑에 빠졌다)에 푹 빠졌고, 그들의 얼굴, 손과 작은 동작(차나 술을 따르고 아편을 피우는 동작 등)에는 느리고 감정이 배인 움직임을 담고 있다. 후 샤오시엔 자신의 말투를 빌리자면, “바로 이 느낌이야”다.
사실 사극은 SF영화와 마찬가지로 ‘비현재(非現在)’인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새로운 법칙을 다시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한다. 의상, 소품, 언어에서 디테일까지. 여기서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한 차례의 꿈, 꿈의 현실이다. 이번에 후 샤오시엔은 완전히 정화된 것만을 남겨놓았다. 장회체소설(장편소설에서 횟수를 나누어 매회마다 표제를 붙여 소설 전체의 내용을 개괄해 볼 수 있게 한 체제의 하나-역주)의 시간과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는 모두 몇 개의 다른 방(모든 고급 기녀의 물건, 식탁)에 농축되어 있으며 모든 디테일, 분위기와 인물관계는 모두 이 방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방은 바로 침묵하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주역이다. 인물의 행동과 동작, 빛과 그림자, 세밀하고 가혹하고 미리 계산을 해놓은 대화와 그 뒤에 숨어있는 감정의 회오리는 푹 가라앉아 느린 듯하고 또 온화함 속에서 <해상화>를 단계적이고 느리게 흘러나오게 한다. 관객은 반드시 그 안에 함께 가라앉아야 하며 느린 속도로 떠돌다가 영화 속의 장소로 들어가, 인물의 감정이 섬세하고 ‘얼핏 보기에는 평온하나 그 안에 회오리(계략과 실패, 초조한 마음과 질투'로 이루어진)가 치고 있는’ 풍경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후 샤오시엔은 이번에 과감하게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까봐 자막을 집어넣거나 이야기를 말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고 대량의 인간사를 이 방의 배후에 숨겨 놓았는데, 관객들은 이 의도를 잘 알지는 못해도 예상한다면 십중팔구 맞을 것이다.
얼굴을 닦고, 손을 씻고, 차를 마시고, 또 아편을 하거나 호롱에 불을 붙이는 끝없이 반복되는 동작은 의식의 일상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인물들은 마치 조각해놓은 요리처럼 기름등 같은 몽롱함으로 에틸 에테르처럼 천천히 휘발되는 것과 같다. <해상화>는 가장 오래된 주마등, 즉 그 마술의 중국 호롱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후 샤오시엔의 초기 걸작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혹스럽겠지만 그의 90년대 걸작들은 아시아의 경계를 넘어선 '발명의 영화'들이다. 그는 더 이상 본토로부터 떨어진 타이완, 그 중에서도 타이페이의 지리학만으로는 읽혀지지 않는다. 후 샤오시엔은 점점 혁신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간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호남호녀>에서의 그 기이한 변화는 <남국재견>과 <해상화>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이제 후 샤오시엔을 사로잡고 있는 관심사는 새로운 화법을 찾아내는 것임이 분명하다(어떤 의미에서 이 대가에게 스타일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다. 그의 고정된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가 찾고자 하는 화법의 내적 필연성의 귀결이기 때문이다).
<호남호녀>에서 가장 이상한 것은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팩스가 도착하고(주인공의 잃어버린 일기장을 뜯어보내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결국 그것이 유령 또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라는 깨달음을 제공하는 순간이다. 이것은 역사가 죽은 자와 산자의 소통이라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테크놀로지에 저당 잡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대만의 역사에 의식적인 결별을 선언하는 <남국재견>에서는 아예 드라마의 고리를 핸드폰 속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각각의 인물들의 행위를 보안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통해서이다.
<호남호녀>에서의 '발신인 불명'과 <남국재견>에서의 '내용 불명'의 의사소통은 <해상화>의 밀폐된 공간에서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1백년 전 상하이의 고급 유곽에서 보석의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만들어내는 규방문학적 치정극의 이야기. 그러나 보이는 것은 한숨처럼 떠도는 이곳의 기류일 뿐이고, 여인들의 드라마는 언제나 제 3자들의 한담을 통해서 전달된다.
일종의 스캔들이나 가십처럼 전해지는 이 간접화법은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쁠랑 세캉스의 리듬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풍문의 호흡으로 담아낸다. 그 속에서 유곽을 드나들던 세 가문의 남자가 시대적 전환기를 맞이하여 추락했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처럼 전해진다. 그 순간 대만으로부터 너무 멀어진 듯했던 세기초의 상하이, 즉 '사회주의' 이전의 중국은 국민당의 태동기로서 지금 이곳의 대만과 고리를 맺는다. <해상화>는 후일담으로 전락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근심의 알레고리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행위하는 주체와 설명하는 객체가 분리된 이 화법은 결코 내레이션 같은 주관적 장치를 선택하지 않는 후 샤오시엔의 매우 창조적인 실험이다. (涓)
상하이의 유혹..
한 대만 감독이 그 도시 19세기 사창가의 현란함과 나태함을 재창조한다. (By
Wendy Kan)
시간이란 개념은 대만 감독 후 샤오시엔의 영화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의 최신작 19C 상하이 사창가의 관례나 인간관계에 대한 관능적이고 지적인 영화 '해상화'를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주요 장면(객관적인 거리에서 촬영 되었다)은 고급창부들이 남자들에게 골을 내거나 수다를 떨거나 아편을 피는 장면이다.
"시간이란 것은 Flower houses(기루, 또는 윤락가의 이름)에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최근 홍콩에서 열린 그의 작품에 대한 시상식에 참석한 후 샤오시엔은 말한다. "이런 여자들은 지위, 신분, 상황, 주변 환경이나 조건에 얽매여 있다. 19C 후반 중국에서 고급창부들이경험했던 이런 상황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게이샤(일본의 고급창부)들이 처했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들은 남자들을 즐겁게 해줄(다시 말해 기녀짓(?)을 말하겠죠)운명에 처했으며 그 남자들 중의 한명이 청혼을 하거나 기루(Flower houses)에 빚진 그녀들의 생활비를 지불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어왔다. 그것은 나이든 고급창부들이 종종 사소한 경쟁을 하거나 커플끼리 다툼을 하기도 하는 은둔한 생활 방식이었다.(이부분은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후 샤오시엔은 상하이 구 영국 지역 사창가를 절묘한 노란 빛으로 둘러싼 셋트로 만들어 각 장면에서마다 구속감(억압감)을 전달하고 있다.
'해상화'는 1998년 깐느 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그 이후 극장에서 상영 되었다. 홍콩에서는 지난주에 개봉되었으며 가을에는 미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대화는 상하이의 방언으로 이루어지지만 영화는 1894년 Suzhou 방언으로 씌여진 한지윤의 만다린어 번역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책 자체는 수많은 부차적 줄거리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후 샤오시엔은 세 여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Crimson(일본의 미치코 하다) Emerald(홍콩의 이가흔) Pearl(홍콩의 유가령) 그러나 샤오시엔의 의도는 분명하지 않다. 영화에는 또한 다양한 줄거리가 있으며 심지어 세 여자의 삶조차도 Crimson이나 그녀의 경쟁자들 중 한명과 결혼을 결정해야 하는 Wang Ling-sheng(홍콩의 양조위)의 딜레마 앞에서는 그다지 중요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후 샤오시엔 영화의 각 장면은 남녀간, 단골손님과 매춘부 사이의 세력 다툼을 드러내고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 8분은 한무리의 남자들이 술마시기 게임을 하고 있으며 고급창부들이 의무적으로 그들 뒤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장면이 계속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그 여자들은 사회 구조가 허락하는 한 그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어느 정도의 통제력을 나타낸다. 모든 여자가 그렇지는 않지만 Emerald 같은 창부들은 최소한 그들의 자유를 협상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한다.
기본적인 것 이상으로 우리는 인물들(Crimson은 Wang과 결혼을 원하지만 Wang의 의사는 확실하지 않다.)에 대해 알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에 대해선 전혀 알수 없다. 샤오시엔은 미학적으로는 매우 관대하나 인물들의 배경이나동기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부족하다. 그의 카메라는 창틀에 숨거나 문 위에 정지하여 배우들 뒤에서 돌아간다. 그는 1884년 사창가 주위의 보이지 않는 곳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대화를 포착은 하지만 그들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의 스타일, 힘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문 바로 아래쪽에서부터 포착되는 남자들의 발이 우리가 Crimson이 Wang과 결혼할 예정이지만 다른 남자와 동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볼 수 있는 것의 전부다. 그 영화는 단지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속이아니다. '해상화'는 고급 창부들의 세계-극적이고, 현란하며 억압적이지만 아주 느린속도로 진보하는-와 아주 비슷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