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그리고 길에서 (5/12/14 대체로 맑음 Puente la Reina-Estella 22km 주행 시간 7시간 반)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근질근질, 배꼽을 중심으로 허리 뒷쪽까지 따발총을 맞은 듯 벌레물린 자국이
빨간 띠를 둘렀다. 모처럼 독방에서 거금을 주고 잤는데 빈대님께서 나만 집중 공격했다. 알베르게에
빈대가 가끔나온다는 사전 정보는 있었지만 케미칼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게 싫어 준비하지 않았는데
우째 이런 일이...빈대라는 놈이 보통 독종이 아니라던데 그놈이 다른 짐에도 들어갔을까봐 짐들을 욕조
에서 탈탈 털었어도 께림직하다. 6시 50분 부랴부랴 알베르게를 나와 Puente la Reina 마을 끝에 있는
다리에서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 이 마을의 이름이 되어버린 '여왕의 다리'는 12세기 Navarra
왕국의 왕비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Arga강을 건너기 위해 비싼 뱃삯을 치러야했던 순례자들을 위해 놓아
주어 '왕비의 다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안내 책자에 소개될 정도로 아름다운 다리다. 마을을 벗어
나 얼마 안 가서 가파른 언덕길, 중간에 몇 번을 숨을 고르며 올라가는데 다리 긴 서양애들은 잘도 올라
간다. 젊음과 롱다리를 부러워하며 그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이마의 구슬땀을 닦는다. Maneru라는
첫 번째 마을을 지나 녹색의 장원 밀밭 사잇길을 한참 걸어 두 번째 마을, Cirauqui에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다음 마을인 Lorca까지 가는 길은 로마시대에 만들어 진 유서깊은 길이라는데 2000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순례자가 그 길을 걸을 때 스쳐가는 단상 하나,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옛것과 지금을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을 이어준다.
너와 나를...
끝까지 나를 힘들게 한 배낭이여~
Lorca 마을 초입의 예쁜 집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그 길에는 포도밭과 올리브밭 그리고 겨자꽃무리(유채꽃이라고 알았던 노란꽃이 실은 겨자꽃임을 나중에
알았다.)가 계속 이어지고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길, 내리막길. Villatuerta라는 작은 마을에서 점심부터
산초 판사는 Vino(wine) 한 잔을 물대신 마시고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도 된양 느긋하게 걷는다. 마을을 벗어
나자 또 다시 가파른 길...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인생길도 오늘 걸은 길과 같지 않을까?
올라갔다고 자만하지 말고 내려갔다고 좌절하지 말지니 인생은 새옹지마.
오늘 목적지인 Estella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2시 반. 침대가 104개 있는 공립 알베르게는 6유로로 Wi Fi도
되고 부엌도 있다. 여기는 큰 방이 두 개있는데 방 하나에 50명 정도 수용하니 첫 날 Roncesvalles 숙소보다
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우리 침대는 부엌을 지나 자그만한 쉼터 옆에 있는 방인데 2층 침대 둘씩 마주
보게 되어있다. 내 옆에는 South Africa에서 왔다는 40대 정도의 Giovanni, 그 위 침대에는 Italy에서 왔다는
30대로 보이는 Maria로 각각 일행들과 함께 왔나보다. 숙소에 도착해서 처음하는 일은 빨래, 해가 있을 때
빨아야 겨우 말릴 수 있기때문이다. 세면대에서 당장 필요한 것만 조물조물 빨아 이미 빽빽하게 널려있는
빨래줄의 빈 틈을 찾아 빨래를 널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옷 핀으로 다시 고정시켜준다. 속 옷을 너는게
조금 민망하지만 벌써 누군가의 많은 속 옷들이 널려있어 조금은 안심이다. 샤워장은 두 개,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시각에 도착하기때문에 차례를 기다려야한다. 오늘은 오르막내리막이 많아서인지 발에 물집도 생기
고 새끼 발가락 두개와 오른 쪽 두 번째 발가락이 까맣게 사망신고를 했다. 샤워 후 실이달린 수술용 바늘로
발가락 물집을 관통시킨 후 실을 적당히 자르고 한 5분 정도 꾹눌러 물을 다 빼는 작업으로 물집 처리를
하고 그동안 눈길도 주지 않았던 발님이 고마운 마음에 정성스레 발 마싸지를 해준다. 이런 발 상태로
배낭을 지고 걷는게 무리일 것같아 내일은 짐을 부치기로 했다. 수송비는 7유로로 프랑스보다 1유로 싸다.
개양귀비 들판 Villatuerta 마을 전 아니면 후? 아리송하네
Iglesia de Santo Sepulcro (12~14 세기 로마네스크 양식)
Iglesia de anto Sepucro 중앙 부분 (펌)
(The interior is accessed through a large Gothic doorway early fourteenth century . It consists of twelve Archivolts flare resting on columns topped by capitals decorated with plant run and zoomorphic motifs. The tympanum of the front page is divided into three levels. At the bottom is shown the "Last Supper" on top "The Crucifixion", while the center has three scenes: left "The three Marys at the tomb" in the middle "The rescue of the innocent" and right the "Noli Me Tang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