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 추모예배 – 세상을 바꾼 슬픔!
누가복음 6:20-26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25.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26.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세월호 참사 4주기입니다. 지난 목요일 광화문 추모기도회를 시작으로 어제는 광화문 다짐문화제, 오늘은 목포 다짐대회와 안산 4주기 기억예배가 열립니다. 그리고 내일 4주기 추모일에는 안산에서 정부가 참여하는 합동 영결식이 열립니다.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 희생자 영결식을 하는 것은 참사 이후 처음입니다. 이낙연 총리와 다수의 정부 각료가 참석한다고 합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세월호 문제 해결의 기대가 높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규명되고 해결되어야 할 일이 많습니다.
4년 전 4월16일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3년을 물속에 있다가 작년에 목포 신항으로 올라왔습니다. 본격적인 시신 수색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수습되지 못한 실종자는 아직도 5명이 남았습니다. 단원고 남현철 군, 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와 일반 승객 권재근 씨와 아들 권혁규 군입니다.
지금 세월호는 선체를 바로 세우는 직립(直立) 작업을 앞두고 있고, 이어 마지막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재개될 예정입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고 해결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예전에 그랬듯이 해결의 시늉으로 끝난다면 이명박, 박근혜 시절처럼 우리의 미래는 또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해결을 위해 밝혀져야 할 내용을 정리해 보면 ▲‘선체 충돌 가능성’ 등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등 정부와 해경의 대응 의혹 ▲1기 특조위 활동에 대한 조직적 방해 공작 ▲국정원, 해수부, 해경 등 모든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 ▲추모공원 건립과 안산주민들의 갈등 해결 등입니다.
지난해 11월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소위 특조위 2기로 불리는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3월 말에 출범하였습니다. 제대로 된 활동으로 4년간 감춰져 있었던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기를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세월호 추모공원 건립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번 4주기 영결식을 끝으로 다음날인 4월 17일 안산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4년간 이곳을 찾은 추모객은 73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안산시는 지난 2월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단원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공원을 화랑유원지에 조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과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난항을 격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민 휴식공간에 납골당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습니다.
안산시가 조성하기로 한 4.16생명안전공원은 화랑유원지 전체면적의 4%정도인 7천평 규모라고 합니다. 시설 또한 단순한 납골당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참사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시설입니다. 더 이상의 무모한 희생이 없는 안전 사회 조성의 염원을 함께하는 장소로서 역사, 문화적인 가치를 갖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미국 911추모관이나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영국 다이애나 추모분수처럼 대대로 역사적 비극을 잊지 않고 평화와 안전을 교육하는 뜻깊은 기념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남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감은커녕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고통을 가하고 때로는 그 고통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끔찍한 비극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사이코패스(Psychopath)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란 반사회적 인격 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발정, 광신, 자기현시, 의지결여, 폭발적 성격, 무기력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정신병적 기질이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대개는 끔찍한 범행으로 이어집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죠. 때문에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아 재범률도 높고, 연쇄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일반 범죄자들보다 높습니다. 또 공격적 성향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이 부족하여 사소한 일에도 강한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하지만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도 있습니다. 소시오패스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동, 심지어 살인도 스스럼없이 저지릅니다. 이들이 사이코패스와 다른 점은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면서도 합리화시키면서 후회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에 비해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실제로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구의 4%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소시오패스의 특징은 다음의 8개 항목으로 진단해 볼 수 있습니다. 혹 이 중에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는지 꼽아 보시기 바랍니다.
▲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조절이 뛰어나다.
▲ 인생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나 도박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타겟으로 생각한다.
▲ 매우 계산적이다.
▲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다.
▲ 어릴 때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들 재미 삼아 한다 (예. 동물학대, 불내기)
▲ 쉽게 지루함을 느끼며, 자극 욕구가 강해서 새롭고 위험한 과제를 흥미로워 한다.
▲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순진함을 강조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위 8복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5장에서 7장에 걸쳐있는 산상수훈 맨 처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며 12제자를 택하신 후 산을 내려와 평지에서 가르치신 말씀으로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복된 삶을 살게 될 대상을 8부류의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 상태와 앞으로 그들이 복음을 통해 받게 될 복된 상태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누가복음은 행복한 4부류의 사람들과 불행한 4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팔복이라는 제목과 다른 복과 화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이 전하는 행복한 사람들이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비해 불행한 사람은 부요한 사람,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 칭찬받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선뜻 동의가 되시나요? 이러한 예수님의 역설을 이해하려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에 참여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지금 힘들고 고통 속에 지내며 그 처지 때문에 슬픔에 빠져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부를 누리고, 쾌락을 누리며,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 복과 화의 이야기는 슬픔과 기쁨의 역전이라는 코드를 가진 이야기입니다. 인류 역사를 통털어서 슬픔과 고통은 역사의 대부분, 인류의 대부분이 안고 살아왔던 현실이었습니다. 인류사에서 최근 몇십 년 동안, 소수의 사람만이 기쁨과 쾌락의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희(喜)는 즐거움인데 여러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즐거움입니다. 락(樂)은 혼자서 조용하게 즐기는 즐거움입니다. 노(怒)는 자신 또는 상대에 대해 분노가 일어나 화를 내는 감정입니다, 애(哀)는 슬퍼하는 감정인데 자신에게 닥치는 부정적인 상태에 대한 비장한 감정 또는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안타까운 감정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 4가지 감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슬픔입니다. 슬픔이란 자신, 또는 남의 불행이나 실패의 경험, 예측 또는 회고(回顧)를 수반한 억울한 정서를 나타내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슬픔은 기쁨보다 훨씬 오래된 보편적 감정입니다. 나약함과 한심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기도 합니다. 슬픔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반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위로할 줄 압니다. 위로받은 슬픔은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슬픔은 공명이 강한 감정이기에 같이 슬퍼해야 할 때 그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비인간적이거나 냉혈한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민중들이 살기 어려워지면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회수가 많아지게 됩니다. 슬픔이 사회적 갈등으로 표출되면 분노나 증오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행동들은 때때로 역사를 바꾸는 엄청난 힘이 되기도 합니다.
슬픔을 나타내는 한자어는 애(哀)입니다. 哀는 의미 부분 口(입 구)와 발음 부분 衣(옷 의)로 이루어진 문자로, 옷(衣) 속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口) 내어 우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슬피 울 때 “아이고, 아이고!” 하는데, 이때의 ‘아이고’는 슬픔과 괴로움을 의미하는 애고(哀苦)에서 나온 말로, ‘아이고’의 ‘아이’는 애(哀)를 늘인 소리라고 합니다.
이 감정이 격해지면 혈액순환이 약해지고, 호흡이 완만해지며, 안색이 창백해지고, 흔히 콧물 눈물을 흘리는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지금 울며 슬퍼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되고 위로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을 보며 우리는 예수님이 그 시대 민중들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에 공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감정의 공명을 영어표현으로는 공감(sympathy)이라고 합니다. 타인과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어로 이것이 사회화될 때 변혁의 큰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슬픔을 경험하고 있는 민중들과의 공감을 통해 새로운 세상,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70여 년 해방 이후 기간 동안 슬픔과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때가 무르익어 그 자양분이 촛불로 타올랐고 드디어 광장의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아직 슬픔과 고통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우리도 위로받고 웃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여세를 몰아 참다운 민주주의의 꽃을 피워내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길 기도합니다.
4.16 세월호 참사가 우리 시대를 변화시킨 원동력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 함께 하는 모든사람들의 공감과 연대가 오늘 우리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6.13 지방선거를 통해 이 슬픔이 승화되어 진정한 혁명의 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이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 기도하고 애쓰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018.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