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티리
원래 청산현 북면 예곡리에 속해 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명월리와 척치리를 병합하여 명월리의 명 자와 척치리의 치 자를 취하여 명치리라고 하고 옥천군 청산면에 편입하여 오늘에 이른다. 자연부락으로는 자티, 구루미, 솔증이, 달박골, 광산 등이 있다.
명티리
<마을현황>
마을유래
1914년 옥천군에 소속되면서 북이면이 청산면이 되고 이때 예곡리에서 명티리로 나뉘어 졌다. 명티리라 부르게 된 것은 여러 자연부락을 합하여 한 마을이 되면서 월명동의 명자와 척티의 티자를 한자씩 취하여 명티리라 하였다. 팔음산은 높이는 762m 이고 옥청군 청산면 명티리와 경북의 도계를 이룬 산으로 지하자원이 많이 나던 곳이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의 흑연광산은 그 질이 좋다. 옛날에는 우거진 숲속에서 8가지 이상의 짐승 소리가 들렸고 임진왜란 당시 사에서 여덟번의 소리가 났다하여 팔음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마을연혁
명티리는 원래 청산현 북면 예곡리에 속해있던 마을로 1914년 군.면 분합에 따라 예곡리에서 나뉘어져 현재에 이른다. 명티리라 부르게 된것은 여러 자연부락을 합하여 한 마을로 되면서 월명동의 명자와 척티의 티자를 합하여 명티리라 부르게 되었다.면적은 총 419ha(논30, 밭35, 임야350, 기타4)이고 18가구에 26명이 살고있다.
마을위치
청산면 소재지에서 약 7km거리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아랫마을로는 삼방리가 있고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계곡으로 올라오다보면 명티리가 있습니다. 팔음산을 넘으면 경북 상주시 화동면 평산리가 위치해 있습니다.
<마을탐방>
밝을 명에 척티, 그리하여 명티리다. 높은 팔음산과 가까워 달을 밝게 볼 수 있어 지어진 이름으로 유추된다. 달밖골, 월명동, 바리미, 구루미, 자티, 새뜸(솔증이)이 명티리의 자연마을이다. 이 중에 달밖골과 바리미, 구루미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자티에 1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새뜸에 3∼4가구, 월명동에 3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팔음산 꼭대기에 뜬 달은 유난히 밝았고, 그 달빛은 계곡물에 비쳐줘 한층 더 마을을 밝게 했으리라.
청산의 끝자락, 오지중의 오지라던 명티리는 최근 예곡에서 명티까지 잇는 군도 확포장 공사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하지만, 정겨운 오솔길과 그 옆에 졸졸졸 흐르던 계곡물의 정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는 마을 주민들도 안타까워 하는 점이다. 쉽게 자동차로 올 수 있는 편리함에 오랫동안 명티리를 둘러싼 자연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계곡은 하천 정비를 통해서 구불구불한 아름다움은 사라졌고, 오솔길은 2차선으로 넓어졌다. 오히려 쓰레기가 많아졌고, 산나물도 외지인들의 나들이에 배겨나지 못한다. 2년 여 간의 공사기간 중 그 많던 올갱이와 징게미는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명티리 주민들은 돈독한 이웃사랑으로 다시 마을의 옛 정취를 찾으려 한다.
그 구심점에 지난해부터 이장을 보아 온 구국림(45·청산 LG화재) 마을 이장이 있다. 구 이장은 자티와 새뜸, 월명동까지를 자주 왕복하며 마을 사람들을 챙긴다. 마을의 젊은 일꾼 손광식씨도 외지에서 철공일을 하지만, 늦더라도 고향인 명티리에 꼭 와서 잠을 잔다. 월명동에 사는 두 동갑나기 할머니 김정순(82), 강해종(82)의 우애는 청산면에서 유명하다. 청주에서 자주 찾는 출향인 배순열(42)씨도 고향일이라면 열일 제쳐놓고 나서고, 설기용(49) 전 이장과 안동현 새마을 지도자, 윤홍순(63), 고동석(71)씨 부부 명티리 마을을 너무 사랑하는 주민들이다. 명티리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외형적 모습이 많이 변했음에도 그 모습과 상관없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정신적인 유대감은 아직도 꼭 부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