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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안천에서 난리법석
- 참 멋진 친구들
권 옥 희
장마 끝나고 나니 꽃불처럼 태양이 이글거린다.
그 열기를 받은 듯 카페 안을 뜨겁게 달구던 길안천에서
난리법석 떨 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작년에 장딴지 튼실했던
광호가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가 또 입방아 찧어
그리도 좋아 죽겠던 길안천은 올해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늦게 가면 차 막히니까 길에서 아까운 시간 허비하지 말고
일찍 가서 많이 놀자며 은희가 새벽 3시에 강서구청 앞에서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이 더위에 천막을 치느라 비지땀을
바가지로 흘리고 있을 광호에게 “고생하지? 삼겹살하고
양주 한 병 들고 갈게 기다려.”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뺑이 치고 있다.
모든 준비 완료! 얼릉 와.”하는 답장이 왔다.
안 봐도 느껴지는 참 멋진 친구. 구레나룻은 여전히 거멀 테고
털복숭이 장딴지도 튼실할 거다. 친구들을 위해 열일 제쳐두고
먹거리며 마실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려 주는 친구가 있어
우린 또 얼마나 행복한가?
언제나 고마운 친구 철현이는 업무상 술 마시느라 이틀 밤을
새우고도 그 신새벽에 은희와 나, 힘없는 병아리 친구를
고향까지 데려가기 위해서 기꺼이 몸을 던져 봉사하고 있었다.
그것 보다는 이 친구도 누구 못지 않게 고향을 그리고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을 거다. 언제나
말 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바른 말을 잘하기 때문에 스스로
흐트러짐을 용납 못하는 친구. 이런 친구가 지금 세상에는
많이 필요할 거다.
재영이도 함께 가면 좋았을 걸. 집에 일이 있어 못 가고
개봉동에서 기다리는 탁준이를 태웠다. 최근에 어려운 일을
겪고도 유유자적 하는 그 느림의 여유를 한 수 배우고 싶을 만큼
참 편안한 친구다. 말투 역시 느려서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영락없는 고향 사람 막걸리 타입이다. 어둠만 가득한 길은 걸리적거릴
것 없이 뻥 뚫려 있었다. 이 밤 친구를 기다리며 잠 못 이루고 있을
또 다른 친구가 기다리는 길안천을 향해 철현이는 총알택시처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카페에 처음 가입했던 재영이가 자기 아이디를 잊어버리고 찾지 못해
철현이한테 물어올 때 왈: 철현아 내 아이디 어예 찾노?
응, 영어로 니 성인 moon을 쳐 봐라. 그래도 안 되는데?
자슥아, 우예 쳤노? 응. 영어로 엠자 치고 9자 옆에 있는 00치고 엔자 쳤다.
에라이~ 문디 자슥아, 그건 00이지 우째 oo이고!!
한참 잠들어 있을 재영이 귀가 간지럽도록 한바탕 웃어 제치며
휴게소에서 그 좋아하는 가락국수도 먹지 않고 우리는
희붐한 어둠 속을 옥례표 밥상을 받으러 죽자 살자 달려갔다.
마음 넉넉하고 친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멋진 여장부 옥례네 집에 도착하니 6시가 조금 넘었다.
전날 밤 12시까지 일을 했다는 옥례는 뜨이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도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가방을 팽개치고 우리는 옥례네 마당 쪽문을 열고 둑방으로 나갔다.
어머나, 세상에! 봉숭아며 백일홍이 새벽이슬에 함초롬히 젖어 있다.
지지배 일하랴, 산에 다니랴 제 몸을 혹사 시키면서도 이렇게
자연에 젖고 싶어 하는구나. 호박덩굴, 고지덩굴, 무레덩굴 어우러진
틈 사이로 없는 게 없다. 토마토며 고추며 깻잎, 상추가 튼실하고
고구마는 주인의 마음처럼 푸근한 땅 속에서 토실토실 영글고 있을 거다.
산나물과 부로콜리까지 안동 친구들 반찬거리 사려면
옥례네 텃밭만 가면 되겠다.
우리 왔다고 밀가루 주물주물 하더니 장떡을 만든단다.
지가 쪄 놓고도“아이고, 우예 이클 이쁘게 쪄졌노! 야야,
희안하게 반들반들하다.”하며 자화자찬이다.
옥례는 음식도 맛있지만 말도 참 맛있게 한다.
이제부터 그야말로 웰빙이요, 무공해 식단이 차려질 모양이다.
텃밭에서 따온 오리지널 조선애호박 뚝뚝 썰더니
난 보기도 처음 본 옥수수전분을 요래요래 묻히란다. 정성들여 앞뒤로
가루를 발라가며 묻히는데 야야 보래이 그래 말고 요래요래 해 봐라.
그러면서 풀어 놓은 계란물에 푹 담가 요래요래 지지란다.
난 그렇게 맛있는 애호박전은 처음 먹어봤다. 그리고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만 찍어먹을 줄 알았던 부로콜리도 시금치나물처럼
무쳐서 먹는 맛은 또 색달랐다.
순 토종으로 아침밥을 거나하게 먹고 한숨 쉬었다 가려는데
광호가 빨리 안 온다고 성화다. 함께 천막을 치느라 고생한
정걸이, 기하, 춘수, 오국이, 윤수, 희준이 다 모여 있단다.
그러고 보니 여자 애들 앞에서 다 한가락씩 했던 악동들이다.
1년 만에 다시 찾는 길안천 가는 길. 금소 앞을 지나려니
이맘 때면 삼을 삼고 계시다가 손주놈 왔다고 맨발로 뛰쳐나오시던
외할매가 그립다. 집에 갈 때 엄마하고 먹으라고 밭에서
갓 따온 우리 머리통 보다 큰 수박을 동생과 내 손에 들려주던 할매.
대촐 지나 불거리까지 걸어오는 동안
동생 손에 들려졌던 수박은 그예 퍽석!
‘아이고, 큰일 났다.’ 하면서도 입이 미어져라 퍼 먹던 그 수박 맛.
그 때가 4학년, 고향에서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내 아름다운 유년은
거기서 끝났고 우리 외할매도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할매, 나 왔어!’ 가슴 밑바닥이 축축이 젖어 온다.
역시 금소의 처가집을 지나치는 철현이도 지금 장모님요, 미안하니더.
하며 죄송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 거다.
조금 더 달려 다리 3개를 지나면 삼거리 길목이고 여기에 우리의
또 다른 멋진 친구 경란이의 띵호네 슈퍼가 있다. 수줍고 새색시
같은 경란이를 힘없는 여자라고 얕보면 안 된다.
1인 몇 역을 뚝딱 해치우는 또 다른 여장부다. 한창 피크인 수퍼일이며
농사일이 경란이 얼굴을 발갛게 익혀 놓았다. 그래도 힘든 기색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친구들이 더울까봐 아이스께끼 하나씩을 입에 물려준다.
이 마음 예쁘고 멋진 친구를 두고 우리는
젊은 산티아고(노인과 바다의 어부)가
물고기를 잡고 있을 길안천의 그 보물창고로 출발했다.
길안천은 여전히 1급수 물을 안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놓여 있었다.
천막이 더울 거라며 자기 집 옥상의 검은 차양막을 갖다 쳐 주는
윤수의 멋진 마음은 누가 그를 개구쟁이 떡개구리라고 부른단 말인가?
이제 그런 별명을 버리고 멋쟁이 사교신사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에구,
그 개구쟁이 기질은 어쩔 수 없어서 제일 먼저 나를 물먹였겠다.
넌 여전히 떡개구리다. 이 친구야! 하면서도 어렸을 때 그 모습이
떠오르며 천진함이 묻어난다.
창섭이가 직접 키워 따왔다는 옥수수를 두루 둘러 앉아 껍질
벗겨 솥에 안치고 선크림을 꺼냈다. 작년에 가져 오지 않아
살이 익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해 여기 저기 바르고 있으니
머스마들이 너도 나도 발라 달랜다. 광호의 장딴지에 바르려니까
자꾸 바지를 걷어 올려서 거시기 보인다고 또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 속에 뛰어 들었다.
은희가 산 튜브에 몸을 동동 띄우고 그야말로 무릉도원에 들었는데
윤수가 나를 물 속에 거꾸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수영장에서
접영까지 배운 내가 내 가슴께밖에 오지 않는 물깊이에서
죽자 살자 허우적대다니 체면이 말이 아니고 접시물에
코 빠져 죽는다는 말 실감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우스워
죽겠다고 배꼽을 잡는다.
그런 재미로 춘수 영한이 기하에게 물 먹는 재미(?)를
톡톡히 맛봤다. 아무리 1급수라고 하지만 광호 오줌, 탁준이 오줌,
내 오줌, 은희 오줌 저 못된 머스마들 오줌 골고루 들어 있는 물을
꼴깍꼴깍 먹었으니 ‘내 배탈 나면 니들이 책임져라.’
그래도 입 안에 고인 말은 그냥 찝찝한 물이 되어 꿀떡 넘어갔다.
이런 복에 겨운 일이 또 있을까? 나이 오십이 넘어 남자,
여자 너 나 할 것 없이 물 먹이고 물 먹고, 물장구치고 물싸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 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나, 친구들아 많이많이 빠트려 줘. 하는 바램까지 들었다.
한바탕의 물놀이에 시장기를 느낀 우린 삼겹살에
소주에 정신없이 먹고 마셨다.
창섭이의 옥수수는 찰지고도 맛나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 집안에
편찮으신 아버님 아무 문제 없기를 옥수수알 하나하나 씹을 때마다
그 정성을 느껴본다. 이제 다섯 살이라는 딸내미는 얼마나 예쁜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다. 사진도 잘 찍어서 우리 인물 환하게 만들어 주는
듬직하고도 멋진 친구. 그가 있어 우리가 개최하는 내년의 총동창회
체육대회는 한 편의 파노라마가 될 것이다.
삼겹살 맛이 시들해질 무렵 무심코 눈을 돌려보니 오~잉!
은희와 철현이가 보 둑에 앉아 도란도란 소꿉장난하듯
그 유명한 꺽지회를 뜨고 있는 게 아닌가? 필원이가 왔으면
분명 소주병을 들고 달려갔을 텐데 꿩 대신 닭처럼 잽싸게
초고추장과 술병을 들고 쫓아갔다.
작년에 한 점밖에 못 먹어서 껄떡증이 들었던 그 꺾지회!
우루루 달려온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며 연신
입맛을 다시며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있는 나를 누가 또 물속에 빠트린다. 누구야, 누구냔 말이여!
물 속에 빠져서도 그래 잘 했어 하는데 자칭 해병대 출신인 춘수가
친절하게 끌어올려준다. 그런데 왠걸! 한 수 더 떠서 아예 눌러버린다.
오매 나 죽어! 그러나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그래도 재미있게
맘껏 놀자.
3시쯤에 도착한다던 대구의 마스코트 분자와 영한이
옥향이 희복이 그리고 무게는 폼 나게 잡지만 무엇이든 열심인
동책이가 도착했다. 대구에 일이 있어 먼저 내려갔던 종열이,
아직도 미소년 같은 종직이, 예쁜 색시 자랑하는 종필이
그리고 시택이도 왔다.
토종닭을 푹 삶아 먹고 분자의 선창으로 노래도 한순배 돌았다.
이 친구는 애교덩어리다. 광호는 쇠랑실의 명물이란다. 기쁨조로
나서면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을 분위기 메이커였다. 분자가 가지고 온
시바스 리갈을 마시며 우리는 계속 매미처럼 시바, 시바 해댔다.
누군가 싫다는 분자를 기어코 물에 빠트려 무릎이 벌겋게 까졌는데도
연신 생글생글이다. 아침부터 순둥이처럼 물도 안 적시고 앉아 있는
오국이나 빠트릴 일이지.
계속 노래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희준이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 끼를 어찌 누르고 살꼬!
들통 뚜껑을 엎어 놓고 장단을 치는데 어깨춤이 절로 난다.
이 때 아니면 듣지 못할 귀한 연주. 그래 맞아. 넌 내년에
운동장에서 꽹과리 두들기면 되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친구들 모두 어디 하나 빠져서는 안 될
나사처럼 소중한 친구들이다. 평상복 보다 경찰복이 더 어울리는
마음씨 좋은 순사이자 무실의 호프 정걸이는 수시로 들락날락 하며
필요한 것을 조달하고 무뚝뚝해서 말도 못 붙였는데 의외로
다정다감한 면이 있다.
작은 체구면서도 당차고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우리의 만능엔터테이너 은희는 계속 셔터를 눌러대는데
아마도 우리 카페의 가장 부지런한 살림꾼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타고난 기질은 어쩔 수 없어 우리의 대모 옥례는
또 물고기 튀김을 한다고 가스불 앞에서 비지땀을 흘린다.
들꽃을 좋아해 부지런히 돈 벌어 들꽃 가든을 차리면
죽을 때까지 친구들 불러 함께 노는 게 꿈이라는 멋지고도
좋은 마음을 가진 친구이기도 하다.
7월의 해는 장마 끝난 축축한 몸을 안고 산을 넘어가 버리고
운무에 쌓인 보름달이 어디가 불만인 듯 잔뜩 불어 있다.
작년에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던 그 많은 별들이 어디로 갔는지
겨우 두어 개가 힘없이 떠서 드넓은 길안천을 지키고 있다.
모두 피곤할 텐데도 즐거운 밤이 깊어간다.
누군가 회장인 성희는 왜 안 오지? 하고 물었다.
꼭 봐야 할 사람을 못 본다는 건 기다림이다. 그리고 사랑이다.
회장은 아무나 하나? 그 짐이 무거운 줄은 누구나 해 봐야 한다.
역시 회장님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떠드는
입을 한 방에 날려 버리듯
때맞춰 짠! 하고 나타났다. 역시 회장님은 멋지다.
아무도 말이 없다. 여기저기서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
하던 일도 제쳐두고 왔을 성희의 성의를 위해 나는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위대하신 회장님요. 힘 내시소. 모두들 내년의 큰 행사를 앞두고
마음의 짐들이 무거워서 그러더니.’
옥례와 동책이는 골부리 주우러 가고 없는데 아삭고추를
가져와 우리 입맛을 산뜻하게 했던 선행이는
부랴부랴 안주거리를 장만한다. 고춧가루도 없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물고기 조림을 투닥투닥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철현이는 일찌감치 하나뿐인 텐트를 잡아
잠이 들었고 동책이의 차 안에서 은희와 옥례, 나는 호텔이라도
하나 잡은 듯 모기 하나 없는 길안천에서의 밤을 보냈다.
밤길 운전이 무섭다는 선행이는 어떻게 잘 갔는지,
누군가 서울 회장 성종이가 왔다고 하는데도 귓가에
가물가물할 뿐 대관절 눈이 떠지지가 않는다. 그렇게 열정의 밤은
물길 따라 흘러가고 우리의 숨소리는 풀벌레 소리에 묻혔다.
기하가 밥 먹자! 하는 소리에 눈을 뜨니 여섯시다.
왜 이렇게 일찍 깨우냐고 투덜대는데 어젯밤
과한 술에 속이 쓰린가 보다.
골뱅이국 먹으러 갈까? 라면을 먹을까? 아니면 광호에게
매운탕을 끓여 달라고 할까? 의견이 분분한데 참 멋진 친구,
다시 봐야 할 친구 선행이가 해장국 재료를
가져와 또 순식간에 끓여 낸다.
일요일인데 집에 있는 식구들 아침밥도 안 해 주고 말도 없으면서
친구를 위하는 모습이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경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밥을 한 들통을 해서
거기다 물고기를 튀겨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고추장 양념에 묻혀 보냈는데
그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란 난생 처음이였다.
선행이가 만든 얼큰한 해장국에 겉절이며 경란이의 찰진
쌀밥과 물고기 튀김요리. 생일 때도 이보다 더한 밥상을
받아 볼 수 없을 거다.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리오. 해장술을 곁들여
푸짐한 아침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겠다. 아침 설거지는
기하가 한다고 했다. 어제 저녁에 그릇은
물이 흐르는 데서 씻어야 한다며
물 가운데로 그릇을 던져 놓고 물 속에 들어가서
그릇을 뽀득뽀득 닦는
영한이를 보고 기하에게 너도 집에서 저렇게 하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이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귀여운 맛이 있고
또 어딘가 모르게 외로움도 묻어 있는 듯하다.
들통에 씻을 그릇들을 주섬주섬 담아 주었더니 보 둑 위가 아니라
우리가 자리 깔아 놓은 둑방 밑으로 들통을 휙 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우리 키 두 배는 넘는 듯한 물속으로 그냥 다이빙을 했다.
그런데 물속에서 허우적댄다. 술이나 안 마셨으면 장난이겠거니
하겠지만 아침 해장술이 어디 그냥 술인가? 분자가 놀라
소리치고 역시 해장술에 취해 잠들었던 철현이는 벌떡 일어나
뛰어들 자세다.
왜 그랬냐고 하니까 들통 속에 물이 가득 든 걸 들고 나오려니까
힘이 달려서 그랬다고 했다. 어휴 바보! 간 떨어지게 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그리고 상황종료 끝!
환경오염을 걱정하며 부지런히 그릇을 씻는데 옥례가
“기하야, 춘수가 오리 2마리 가져왔다. 껍질 좀 벗겨다오.” 하며 부른다.
퍼덕퍼덕 살아서 씩씩한 야생 오리를 저 연약한 기하가 어찌 잡을꼬!
난 아예 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기하에게
술 좀 줄이라고 말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랑 놀면서 설거지도 해 주고
오리도 잡아주지.
영한이가 투망을 던지는데 날마다
말딱소에서 놀던 가닥이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 모두 몸에 털이 나고 빠졌다는 것만 다를 뿐
모든 기억은 어릴 적 그대로였다.
혼자 남아 어지럽혀진 자리를 치우며 바닥을 닦는데
제가 닦는다고 걸레질 하는 종렬이도 멋지고 보 사이를 건너뛰는데
빠질까봐 다정히 손잡아 주는 종직이도 멋지다.
밤새 잡아온 골부리가 아깝게 죽는다고 몇 번을 벅벅 씻어
골부리 맛을 보게 해준 동책이도 멋지고
그 골부리가 역시 고향맛인지
나보다 더 맛있게 까먹는 시택이도 멋지다.
제 다리는 일자 다리라고, 그래서 트렁크가 아닌
삼각팬티를 입어야 된다고 젖어서 물이 줄줄 흐르는
팬티를 벗어 자랑하는 폼이
여전히 코흘리개 개구쟁이다.
비싼 상황버섯을 한 줌이나 넣고 고운 오리탕은 그야말로 보양식.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에 한 번 더
들어갔다 나온 뒤 우리는 짐을 챙겼다. 또 누군가 올 사람이 있다는
기하만 남겨두고 경란이 집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돌풍이 불며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그 바람에 기하가 걱정 되었지만
별일 없다는 것에 안심하며 비 그칠 때까지 경란이 집에서
음담패설로 또 한바탕 웃었다. 북한산에서는 뜻하지 않은 벼락으로
몇 명이나 사상자가 났다지만 길안천은 달랐다. 죄 진 것 없고 뜻이 맞는
친구들은 곱게 놀게 하다 돌려보낸다는 것을.
스무남 명 되는 친구들이 즐겁게 모여 먹고 마시며 그 옛날의 동심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먼저 닿았다는 증거였다. 친구의 장딴지는 역시 튼실했다는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우리는 또 새로운 힘을 충전한 만큼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삭막한 도시의 물리지 않으면 물어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이 점점 말라가는 우리는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들에게서
넉넉한 마음을 배우고 나 보다는 너를 위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온다.
부득이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도 내년에 총동창체육대회
훌륭하게 치뤄 놓고 뒤풀이로 또 이렇게 만나 시끌벅적하게
놀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멋진 친구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친구 권옥희가 쓴글을 제가 편집해 봤습니다~
작년,제작년 두번씩이나 길안천에 우리 친구들이
놀러가서 재미있게 동심으로 돌아가서 물장구치고,
빠뜨려도 보고 꺽지도 잡고 골부리도 줏으며 잼있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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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시 우리 친구 권옥희(46회)의 길안천 다녀온 후기를 담아왔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사진은 제가 넣어 편집했구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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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두, 몽땅 옮겨 가자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