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대한 현대 부동산학적인 해석
Ⅰ. 전반적인 이야기
조선조 숙종 16년 태어난 이중환(1690~1752)은 성호 이익의 학풍을 이어받은 남인에 속하는 실학자이다. 본관은 경기도 여주이고 호는 휘조·청담·청화산인으로 1713년 24세때 증광별시(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시행하는 과거시험) 병과에 급제하고 1722년 신임사화 때 병조좌랑(정6품의 관직으로 지금의 국방부 과장 정도의 직위)이 되었다. 1726년 섬(絶島)으로 유배되었고, 석방후 30여년 팔도를 누비며 풍찬노숙(風餐露宿,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데서 먹고 잠잔다는 뜻으로, 모진 고생 또는 객지에서 겪는 고생을 이르는 말)·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 집에서 먹고 서쪽 집에서 잔다)으로 사대부가 살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그 결과는 ‘사대부(선비로서 벼슬을 받고 양반관료체제를 구성)도 없고, 농·공·상도 없고, 또한 살만한 곳도 없으니 이것이 땅 아닌 땅(非地之地)’이었다. 이중환은 조정에 다시 출사할 기회가 있음에도 이를 뿌리치고 선비정신을 굽히지 않고 남다른 기질과 고집으로 안일한 삶을 마다하고 구도자처럼 산천을 누빈 그의 정신을 바탕으로 보고 느끼고 경험과 습득한 지식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물질이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실질적인 학문을 연구하는 실학파)의 학풍에 따른 최초의 풍수(風水)를 가미한 인문지리서(정치, 경제, 사회, 역사, 지리, 지세, 교통, 기후, 산물, 인물, 인심, 취락 등)로서 택리지를 저술(1751년, 62세, 현재 2016년에서 265년전)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많은 세상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며 회자(膾炙)되어 읽히는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목에서 보듯이 살만한 땅을 가려 택한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주거입지이론), 그 지역의 지리적·사회적·경제적 요건을 인간관계의 상호관계(그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방식)를 담아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두루 살핌으로써 인식의 폭과 깊이(국토환경조서작성 및 토지이용연구에 공헌)를 더하였다.
현대의 부동산학에서의 접근방식(지리적·자연적·인문적·사회적·경제적·행정적)과도 유사함이 내재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예컨대, 무릇 산수란 온화하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한다. 사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거칠어진다. 그러나 좋은 곳은 생업이 풍부하지 못한 곳이 많다(인구나 교통 등의 접근성이 낮아져 상업지로서의 가격은 저렴함). 사람들이 자라처럼 숨어 살 수 없고 지렁이처럼 먹지 못하니, 한갓 산수만을 구해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름진 땅과 넓은 들과 지리가 아름다운 곳을 골라 집을 짓고 사는 것이 좋다(접근성을 강조함). 십리 밖이나 한나절 거리안에 산수가 빼어난 곳(전원주택지)을 사두었다(부동산투자)가 때때로 오가며 근심을 풀거나 머물렀다가 돌아올 수 있다면, 이야말로 자손대대로 이어나갈 만한 방법(지금도 상가로서 최상의 우수한 입지는 파는 것이 아니라 대대손손 이어가도 가치는 더함)이라고 쓰고 있다. 십리밖이나 한나절거리라면 현대의 거리개념으로는 외곽에 전철노선의 개통과 함께 그곳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도시인의 모습(주말농장, 수도권일원에 산재하고 있는 전원주택과 먹거리촌의 형성)을 연상케 하면 어떨까.
책의 구성은 사(士)·농(農)·공(工)·상(商)을 다룬 사민총론(四民總論, 어진 법을 닦으면 사농공민이 다 하나다, 사대부이면서 낮은 자세로 현실세계를 실천에 옮김), 전국팔도를 다룬 팔도총론(八道總論, 강과 산은 멀리 천리 밖에서 만나고, 평안도·함경도·황해도·강원도·경상도·전라도·충청도·경기도), 지리(地理, 지형·지세가 좋은 곳, 물리적)·생리(生利, 생업이 넉넉한 곳, 교통이 편리한 곳, 경제적)·인심(人心,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곳, 주변편의시설, 인문적·사회적)·산수(山水, 경치가 아름다운 곳, 자연적) 네 분야에 걸쳐 살기에 적합한 곳을 다룬 복거총론(卜居總論, 살기 좋은 곳은 어디를 말하는가)과 종합편인 총론으로 짜여 있다.
Ⅱ. 살기 좋은 곳은 어디를 말하는가(복거총론,卜居總論)
1. 복합적인 접근방식 : 지리·생리·인심·산수가 서로 어울려야 함
무릇 사람이 삶의 터를 정할 때 첫째는 지리(地理, 지형·지세가 좋은 곳, 물리적)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생리(生利, 생업이 넉넉한 곳, 교통이 좋은 곳, 경제적)가 좋아야 하며, 셋째는 인심(人心,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곳, 주변편의시설, 인문적·사회적)이 좋아야 하고, 넷째는 산수(山水, 경치가 아름다운 곳, 자연적)가 좋아야 한다. 지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생리가 부족하면 오래 유지할 수 없고, 지리와 생리가 좋아도 인심이 나쁘면 분쟁을 일삼게 되니, 이들의 요인을 모두 갖추고 가까운 곳에 산수를 더하면 누가 살기 좋은 곳이라 아니하겠는가! 많은 이들이 이러한 구성요소를 발견하기에는 식견이 짧고 찾으려는 노력에 비해 인내가 부족하며 찾더라도 비싸게 지불해야 할 금전적 능력이 당장은 모자라서 좋은 위치를 상상만 할 뿐이다. 어쩌면 이 대목은 현대 부동산학적 관점을 이미 오래전에 이중환이 경세치용의 실학사상을 통하여 터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리적으로나 자연적으로 각지에 경치가 유리한 접근성을 보이더라도 배후지(背後地, hinterland)가 멀리 있어 인구통행이 지나가는 곳이라면 상권형성은 요원하다 할 것이다. 예컨대, 전원주택지를 찾아가다가 경관은 수려한데 지나가다 나홀로 도로변에 보이는 맛집은 지나치는 차량으로 한산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시설물들이 즐비하게 모여있는 사회적공간을 사람들은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창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수도권지역과 대도시 주변에 주택단지를 조성하여 분양을 시도하였지만 몇몇 눈먼 사람들이 낮에는 새소리에 따스한 자연공기가 좋아서 힘차게 들어갔다가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깨어있는 시간이면 볼거리나 문화생활이 전혀 없다보니 다시 도시로 U턴하는 사례는 그 지역공간을 텅비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어울리고 테마주제를 발견하여 주택을 꾸민다면 성공하는 사례(차마시고 독서하고 토론하는 숙박가능의 책방, 주거겸용)도 최근에 엿볼 수 있다.
2. 지리(地理, 지형·지세가 좋은 곳, 물리적)
지리는 물리적 조건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학에서 가격형성의 물리적 조건은 그 부동산이 지니고 있는 지형, 지세, 지질, 기후, 면적, 가로폭, 전면너비와 깊이, 구조, 설비 등을 포함하여 설명이 가능하다.
사람은 하늘을 보고 땅을 디디며 자연과 벗삼아 숨을 쉬며 살아가는데, 하늘이 잘 보이고 해와 달과 별이 찬연히 빛나 밝은 기운이 깃들고 앞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면, 이는 대단히 좋은 길지(吉地)라 할 수 있다.
꺼려야 할 지형은 사방에 산이 높이 솟아서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며, 밤에 북두칠성이 보이지 않는 곳이므로 신령한 빛이 적고 음기가 쉽게 침입하여 잡귀의 소굴이 되기 쉽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먼 산을 보면서 등반을 시작할 때 산의 모양새를 보게 된다. 어떤 산은 가보고 싶고 가서도 등반에 어려움이 없으나, 어떤 산은 등반하기 전에도 무섭지만 등반 후에 다시 뒤돌아 보면 저녁이라 그런지 어둠껌껌함을 느끼고 두 번째 가기에는 담력을 더 필요로 하게 한다. 어느 경우가 택지로 더 좋은지를 설명하고 있는 한 예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완만한 산세가 아담하여 환하게 답하면 하산하고서도 다시 찾게 되는데, 길지라는 것은 사람들이 마음에서부터 간직한데서 나오는 원리가 아닐까? 따라서 우리는 산을 거닐다가 음산한 기운이 드는 곳에 별장이 보이고, 휴게실이 있다면 이러한 징후로 인하여 그곳을 빨리 빠져 나오고 싶고 사람들이 모이질 않으니 장사도 분명 기력을 잃었을 것이다. 구지 그런 곳을 찾는 경우는 화장실을 급히 보아야 할 상황으로 용무도 빨리 보고 가야하는 생각에 일마져 잘 볼 수 없는 것을 누구나 경험하지 않았는가!
토질이 모래나 굳고 조밀하면 우물물이나 샘이 맑고 차다. 반면 붉은 진흙이나 황토나 자갈밭은 죽은 흙으로 이곳서 솟는 물은 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주택지로서는 멀리하여야 한다. 이는 우물물을 식수로 하던 시대의 관점일 것이다. 지금은 황토가 많은 곳은 향토방 주택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고, 토질이 모래성분처럼 회색토는 묘지를 쓰는데 유리한 조건이 된다.
물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기 때문에 묘자리와 달리 집터는 물을 지녀야 재산이 생긴다고 한다. 물이 고여 있는 물가에는 부유한 집과 이름난 마을이 많다. 물가가 아닌 산중이라도 시냇물이 모이는곳이라야 한다. 지금도 개울을 끼고 있거나 호수 주변에 인위적이나마 별장 등 고급주택지나 레스토랑이 즐비하게 성장하는 모습은 일찍부터 예언자를 만난 듯하다. 앞으로 주택지는 물론 상가의 발전방향을 암시하는 글귀로 이해하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3. 생리(生利, 생업이 넉넉한 곳, 교통이 편리한 곳, 경제적)
지리적 조건이 우수하더라도 사람이 먹고 살만큼 풍족하지 못하다면 가장은 식솔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살만한 기름진 곳으로 찾아 떠나야 한다. 기름진 곳이란 비옥한 농지는 물론 교통이 유리한 곳으로 배나 수레, 물자와 사람이 모여드는 지역이다. 지금 말로는 전철이 닿고 교통이 편리한 역세권(驛勢圈)을 의미하는 경제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농경사회에서의 비옥한 땅은 전라도 남원과 구례, 경상도의 성주와 진주 등을 들었는데(벼 한 말을 심어서 가장 많이 나는 곳은 140두를 거두고, 그 다음은 100두를 거두며, 적어도 80두를 거둔다. 나머지고을은 그렇지 못하다), 여기에다가 교통이 좋은 곳이 생업에는 으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물자교역을 재산증식의 주요수단으로 보았다. 물자교역에서는 말로 수레를 이용하고, 수레보다는 배를 이용함으로써 이익을 높힐 수 있다고 보았다. 상업활동에 종사해 큰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면 바닷길과 내륙으로 통하는 강이 이어져 있는 병목지점(Bottleneck, 도로망 또는 도로구간에서 물리적 혹은 기하구조적인 조건으로 인하여 시설물의 용량이 저하되거나 차량의 흐름에 방해를 주는 지점)이 가장 적합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한강과 서해 바닷길을 이용한 교역이 가장 큰 이득을 준다. 이것이 이중환이 전하는 상업활동으로 살만한 곳의 요지다. 어찌 보면, 서해안시대가 이미 오랜 전에 예언이나 한 것처럼 펼쳐지지나 않았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1751년)는 이론적으로 일찍이 서양의 리카르도(David Ricardo)의 차액지대설(1817년)과 튀넨(J.H. von Thünen)의 농경지입지이론(입지교차설, 1826년)보다도 앞서는 경세치용의 비용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비옥도에 따른 살만한 곳을 선택하고, 가고자 하는 곳이 멀면 비용이 많이 들고 수익이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비옥도가 높으면 지대가 높고, 농경지의 중심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통비(운임과 비용)가 많아지면 외곽지대는 지대가 낮고 중심은 높다는 지대이론을 추론하여 설명할 수 있다. 서양의 두 이론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결과로 물자교역에서 배를 이용한 방법이 운반비용이 적게 들며 수익이 가장 크다고 하였다.
따라서 강이나 바다를 통한 배의 운행이 가능한 지역(김해 칠성포, 한양의 마포와 용산, 나주의 영산강, 영광의 법성포, 고창의 사진포, 전주의 사탄, 부여의 백마강, 은진의 강경만, 아산의 공세호, 덕산의 유긍포, 홍주의 광천, 서산의 성연, 강화와 교동, 개성의 동강, 평양의 대동강, 안주의 청천강 등)을 중심으로 지역상권이 크게 발전하여 부유한 상인들이 많아졌다. 비추어보건대, 지금의 서울인 한양이 바다와 한강이 통하고 전국의 세금이 배로 도달하고 교역이 남쪽으로는 해외 일본, 북쪽으로는 중국 연경과 통하는 이점으로 천하의 물자를 수입하고 수출하여 재산이 수백만 금에 이르는 자도 많았다고 한다. 한양에 제일 많고, 개성이 그 다음이고, 평양과 안주가 그 다음이다. 삼남(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는 농사를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부자가 당시에는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막론하고 모두 교통입지를 잘하여 큰 부자가 된 역사적 사실임을 알 수 있다.
4. 인심(人心,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곳, 주변편의시설, 인문적·사회적)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하여 3번(묘지·시장·학교 부근)이나 이사를 했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나온다. 즉, 맹자의 어머니는 맹자가 학교 근처의 면학적 분위기에 적응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게끔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살 지역이 어진풍속을 가지지 않으면 아들을 어찌 훌륭하게 교육시키겠는가! 교육환경이 좋은 조건으로의 이사는 교육차별화를 조성하지만 않는다면 부모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 요즘에는 극성스러운 어머니들이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학군에 아이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진학시켜서 부동산가격을 높히는 사회적 가격형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막무가내로 반대할 형편이 못되는 것이 교육당국의 교육정책과 사회인식의 커다란 변화가 없는 한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적문제로 그 해결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무한한 자유경쟁사회에서 나오는 결과로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학군이 좋은 곳으로 전학을 가고, 외국에 체류하며 조기영어교육을 조장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환경을 저해하는 부정적 측면이 많다. 이중환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던져 답을 듣는 것이 순서이지만 분명 우리들이 판단하건데 현재와 비교하여 보더라도 당시의 주거관과는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중환이 태어나기전 선조때 이조 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동쪽에 살고 있음, 동인)을 옹호하는 파와 심의겸(서쪽에 살고 있음, 서인)을 옹호하는 파로 나뉘어 1583년과 1584년 사이에 사대부들이 분열을 하게 된다. 그후 1598년 동인이 남인(영남사람임, 류성룡)과 북인(서울에 살고 있음, 이산해)으로 갈라지게 되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4색 당파가 성립된다. 이중환은 남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색당파를 이야기하는 것은 팔도의 인심이 흉흉하여지고 당파색에 따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나뉘었다는 것이다. 한양은 사색이 한데 모여 풍속이 뒤섞여 고르지 않고, 지방은 서북의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를 제외하고는 사색이 동남 다섯 개도(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나뉘어 살게 되었다. 경상도만은 예안 이황의 학문을 으뜸으로 하고 류성용이 남인으로서 그 제자들과 모두 모여 이곳에서 살았다. 다른 지역은 사색이 섞여 살았다.
그러면 팔도의 인심을 지금도 그 언저리를 듣게 되는데 직접 이중환의 견해를 서책에서 살펴보자.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해서 제일이요, 풍속이 질박하고 진실한 경상도가 그 다음이라 한다. 혹 여기서 이중환이 남인으로서 경상도에 남인만이 거주하는 특성을 반영하여 우월하게 지역편향을 드러낸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연구과제를 던지고 있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마주하고 있어 백성들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대부분의 백성들이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백성들이 산골에 있어 몹시 어리석고 거칠며,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한 것을 좋아하며 그른 일에 쉽게 움직인다. 경기도는 도성 밖 들판의 고을은 백성들의 재물이 보잘 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익이 될만한 것만 좇는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나라의 인심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팔도만이 아니라 외국인도 함께 하고 있어 더욱 자세하게 마을과 단지마다 관찰하여 주거지를 택하지는 않는지 다져볼 일이다. 인심은 아이들과 어른들에서 계층화하고 배척하는 세상에서 담장과 철책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과연 그 지역에 어울려 살만한 곳인가를 사회적 측면에서 저울질하여 보는 척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5. 산수(山水, 경치가 아름다운 곳, 자연적)
산수를 설명할 때, 우리가 한번 가보았던 곳이거나 언젠가는 가보게 될 곳으로 택리지에 나오는 산과 강 및 영(嶺, 산줄기가 조금 낮아지면서 평탄한 곳)을 우선 열거하여 보자. 여기나오는 지명과 표현들은 이중환이 30여년의 풍상세월을 거쳐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노을이 지는 저녁녘 지친 발다리를 주막에 의탁하며 낮에 맞나 보았던 사민들의 세상사는 이야기거리와 풍경 및 경험을 먹을 갈아 화선지에 검게 물들이는 모습을 연상케하며 써진 내용일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면 하루의 신세를 뒤로 한 채 산하·강천을 이중환은 골똘히 사고하며 정자에 앉아 잠들고 어느 때는 노숙하면서 전라도와 함경도를 빼고 전국의 방방곡곡을 다녔던 곳을 한번더 현대적 감각으로 음미하며 우리들도 각 고을의 좋은 음식과 향토에 접하는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떨까!
조선이 여진과의 경계로 한나라의 빛이고 지붕인 백두산부터 시작한다. 함경도에는 명천의 칠보산이 평안도에는 영변의 묘향산이 있다. 백두산에서부터 압록강, 두만강, 철령이 있다. 그 남쪽으로 추지령, 금강산, 비로봉, 연수령, 오색령, 설악산, 한계산, 오대산, 대관령, 백봉령, 태백산(황지)이 되었다. 철원과 한양은 안변의 철령에서 뻗어온 산맥이 만들었다. 황해도 개성의 오관산, 송악산, 구월산과 한양의 남산, 삼각산(북한산), 백악산(북악산), 인왕산, 도봉산, 관악산이 있다. 그 밖의 춘천의 청평산, 안동의 학가산, 원주의 적악산과 사자산, 공주의 계룡산과 무성산 및 대둔산(계룡산의 작은 조산), 천안의 광덕산, 해미의 가야산, 남포의 성주산, 영평의 백운산, 곡산의 고달산, 금구의 모악산, 안동의 청량산, 합천의 가야산, 장흥의 천관산, 흥양의 팔령산, 순천의 조계산, 대구의 팔공산과 비파산, 청도의 운문산, 울산의 원적산, 청하의 내연산, 청송의 주방산(주왕산) 등이 유명하다. 태백산에서 소백산, 죽령, 천주령, 화원령, 주흘산, 조령이 있다. 속리산 남쪽 청화산, 선유산, 도장산으로 가고, 그 아래의 화령, 추풍령, 황악산, 무풍령이 있다. 덕유산(흙산, 구천동) 남쪽의 육십치, 팔량치, 지리산(두류산, 만수동과 청학동)(삼신산 : 금강산을 봉래, 지리산을 방장, 한라산을 영주)이 나온다. 덕유산 정기는 서쪽으로 마이산, 추탁산이 되었고, 마이산에서 서쪽과 북쪽으로 뻗은 줄기는 진잠과 만경에 그쳤다. 덕유산에서 가장 긴 줄기는 노령, 부안, 무안을 거쳐 서해에 흩어져 여러 섬이 되었다. 담양의 추월산과 광주의 무등산과 백운산, 영암의 월출산, 광양의 백운산과 해남현 관두리를 거쳐 남해의 여러 섬을 만들었다. 다시 바다를 건너 제주도의 한라산(영주산)이 되었다. 이 모든 산은 선도(禪道)와 불도(佛道)를 닦는 자들이 머물거나 산천을 즐기는 자들이 한때 구경할 만한 곳이지, 집을 짖고 오래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중환은 특별히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의 절경은 천하에서 둘도 없는 것, 강원도 영동의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을 극찬, 설악산에서 소백산까지의 경치를 묘사하고, 속리산의 팔곡구요, 화양동계곡의 기묘함을 찾고, 지리산의 만수동과 청학동에 이르는 경치를 칭송하고 있다.
물을 살펴보면, 북쪽 함흥에서 남쪽 동래에 이르기까지 모두 동해로 흘러가고, 경상도의 물과 예안강, 섬진강은 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철령 서쪽은 북쪽의 의주에서 남쪽 나주에 이르기까지 모두 서쪽으로 흘러간다.
산천을 둘러본 이중환에게 당신이 부동산투자를 하면 어디가 좋겠는가라고 방을 붙여 사농공상의 사민들이 묻는 투자설명회를 한다면, 당시에도 한양주변에서 구름처럼 몰려 들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산수를 말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강주변의 살만한 곳으로 평양외성을 들고 있는데, 산수가 좋은 것도 다음과 같이 앞뒤로 백리에 이르는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기상이 높고 넓어야 한다. 산색이 수려하고, 강물도 급히 쏟아지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흐른다. 산은 들이라 부를 만하고, 들은 강이라 부를 만큼 평탄하고 수려하다. 또한 강이 대단히 넓고 커서 작은 장삿배가 물결 가운데 오고가며, 빼어난 돌과 기암이 강언덕을 에워쌌다. 집이 즐비하고 상가가 번화하여 기자 때부터 당시까지 성쇠가 변함없으니 지리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사회적 편의시설이 갖추어지고 주변이 탁트이고 광활하여 사람들이 모여 살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었음을 엿 볼 수 있다.
냇가에 살면, 평온한 아름다움과 시원스런 운치가 있고, 관개(灌漑)를 통하여 농사짓는 이로움이 있는데 반해, 바다는 바람이 많아서 사람의 얼굴이 검게 되기 쉽고, 각종 질병이 많다. 냇가에서 강가로 더나아가 바닷가로 갈수록 물자를 교역하고 생선과 소금에서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이중환은 ‘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보다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것은 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라고 역설하면서 살기 좋은 계곡으로 영남의 예안 도산과 안동의 하회마을을 으뜸으로 꼽는다. 이곳에는 서애 류성용의 고택도 있다.
하회마을은 지금도 유학의 산실로 전통문화재로서 세계문화유산의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지만, 예전부터 유림들이 주거지로서 이름을 오르내렸던 유명한지역이다. 최근 경상북도 도청이 안동에 오는 쾌거는 안동이 이러한 중요한 교통과 생활공간의 입지라는 것을 잘 증명하고 있다.
그 밖에도 수없이 많은 지명을 들어 산수의 아름다움과 주변과의 어울림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Ⅲ. 강과 산은 멀리 천리 밖에서 만나고(팔도총론, 八道總論)
1. 지리적 위치에서 본 팔도의 시작
이중환의 택리지는 우리 현행 헌법 제3조에서 영토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당시에 이미 국토로서의 팔도를 백두산(불함산)을 경계로 압록강에서 서해안 하류에 이르는 중국과 동쪽의 두만강 하류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보았다. 이는 역사적 의미의 표현이다. 경상도는 옛 변한과 진한과 신라 땅이고, 경기도·충청도·전라도는 옛 마한과 백제 땅이다. 함경도·평안도·황해도는 고조선과 그 뒤를 이은 고구려 땅이고, 강원도는 따로 떨어져 동예가 있는 땅이다. 당나라 말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조선에 이르렀다.
2. 평안도(인심이 가장 좋은 곳) :
지금은 북한의 수도 평양이 위치한 지역으로 옛날 기자가 도읍을 정한 곳이기도 하다. 평양은 역대왕조의 수도로서 유적지가 많을 뿐만 아니라 먼 산과 널다란 들판, 긴 숲너머로 둘러 쌓여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풍속이 가장 발달하고 기자가 만든 토지제도인 정전(井田, 땅을 우물정자와 같이 9개 구획이 만들어지면 8가구가 각각의 구획을 경작하고 1개 구획은 공동의 구획으로 경작하여 이를 모두의 세금으로 국가에 납부함)의 터와 그 무덤이 이중환이 살았던 시대에 있었다고 한다. 남북이 공동의 연구과제를 던지는 지역이다.
3. 함경도(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되고 살만한 곳이 아닌 곳) :
함경도 함흥 이북은 산천이 험악하고 풍속이 사나우며 땅이 차고 메말라 곡식이라고는 조와 보리뿐이며, 벼 수확은 적고 면화는 산출되지 않는다. 북한이 산악에 핵실험의 동굴을 파서 사용하는 곳도 이곳 땅이다. 태조 이성계는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갔다. 그후 오래지 않아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은 태종은 태조에게 사신을 보내 한양으로 돌아오기를 청했으나, 태조는 사신이 오는 대로 모조리 베어 죽임을 당하여 심부름을 가서 오지 않는 것을 뜻하는 함흥차사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태조는 서북지방의 사람으로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우고는 ‘서북지방의 사람을 크게 쓰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나라 풍습이 문벌을 중시하므로 자연히 서울 사대부는 서북지방 사람과 혼인하지 아니하거나 벗하지 않았으므로 서북지방은 함경도와 평안도로서 사람이 살만한 땅이 못된다고 하였다.
4. 황해도(천하의 일이 생기면 다투게 되는 곳) :
황해도는 평안도와 함경도와 이웃하고, 오관산, 송악산이 되었는데 고려의 옛 도읍지다. 창금산과 수양산, 추산, 구월산에서 그쳤는데 이곳이 단군의 도읍지다. 서해로 뻗쳐 들어가서 삼면이 바다와 접해 있고 동쪽 한 면만 남북으로 통하는 큰 길에 닿아 있다. 북쪽으로는 험한 고개가 있고 남쪽으로는 여러 강으로 막혀 있어 앞뒤가 산과 하천이며 높고 험한 성곽이 많다. 활쏘기와 말타기를 즐기는 반면, 학문하는 선비는 적다. 산과 바다 사이에 끼어 있어 납, 철, 면화, 벼, 기장, 생선, 소금 등에서 개경상인이라 불릴 정도로 이익을 얻어 부자가 많은 편이나 사대부는 집안은 적다. 넓은 들과 기름진 벌판이 있으니 참으로 경치 좋고 물산도 풍요하나 세상에 변란이 있을 때 반드시 이곳에서 다투게 될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용할 만한 곳이다.
5. 강원도(등마루 산줄기가 하늘에 닿은 곳) :
여름 휴가철에 우리나라에서 휴가지로 가장 선호되는 곳이 강원도 동해안이다. 서해의 조수(조석의 작용으로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바닷물)간만(간조와 만조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밀물과 썰물을 의미)의 차와 남해의 리아스식(강이 바다와 만나는 부분에 형성되는 깔대기 모양의 지형으로 강의 입구 부분에서 하곡의 낮은 부분이 침수됨에 따라 형성되는 지형)과 달리 해안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가 없고 바닷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벽해(碧海, 짙푸른 바다)라 한다. 항구나 섬이 앞을 가리지 않아 큰 연못가에 임한 듯 넓고 아득한 기상이 자못 빼어나다.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나오듯이 관동팔경이 위치한 이 지역은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고, 높이 올라가 보면 푸른 바다가 망망대해로 나가 고기배가 까마득하다. 산골짜기가 깊어 물과 돌이 그윽하니 그 절경은 전국 최고이다. 당시 이중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원도 지방의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여 노인들의 경우 기생, 악공, 술, 고기를 함께 하며 산이나 물가를 찾아 마음껏 놀고 이를 생활의 큰 일로 여긴다. 자녀들도 이에 물들어 학문에 몰두하는 이가 적다. 그러니 이름을 날린 자가 드물고, 다만 강릉에만 과거 급제자가 종종 나왔다. 땅도 메말라 논농사가 희박하였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도 개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많은 숲이 사라지는 것을 보듯이 당시에도 이중환은 숲으로 덮혀 하늘을 볼 수 없었던 강원도 지역이 벌거벗은 모습을 여기저기서 목격하게 되었다.
6. 경상도(꾸밈이 없고 질박한 땅) :
경상도는 일찌기 삼한의 진한과 변한이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가 중심이 되어 통일국가를 일구어낸 지역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팔도중 지리가 가장 좋다고 평가한다. 백두산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은 태백산, 소백산, 작성산, 주흘산, 희양산, 청화산, 속리산, 황악산, 덕유산, 지리산 등이 되었다가 남해에서 그쳤다. 이들 산맥을 사이에 두고 기름진 들판이 천리나 펼쳐져 인물과 재물을 기름지게 하였다. 경상도 땅을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동서로 가르는 강이 낙동강으로 동쪽을 좌도(左道), 서쪽을 우도(右道)라 한다. 그 끝은 김해에서 합류하여 기름진 김해평야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좌도는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빈곤하여 비록 검소하고 군색하게 살지만 문학하는 선비가 많고, 우도는 땅이 비옥하고 백성들이 넉넉하여 호사를 즐기지만 게을리 문학에 힘쓰지 않으므로 이름을 알린 선비가 적다. 대략적인 지역 특징을 살폈지만, 타도와 비교하여 우월한 수자가 경상도 지역 일원에서 골고루 인재를 배출하였다.
흔히들 현대사에서의 경상도 정권은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으로 시작하여 박정희가 집권한 18년 동안 그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역사적 고찰을 통하여 볼 때, 이미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뿌리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의 왕건이 백제의 견훤을 제압한 후 백제 사람을 미워하여 “차령(車嶺,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과 공주시 정안면 사이에 있는 고개<재>, 천안에서 논산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관통하게 되는데 세종특별자치시로도 연계됨) 이남의 물은 거꾸로 흐른다. 차령 이남의 사람은 등용하지 말라”라는 훈요십조(訓要十條, 고려 태조가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해 942년<태조 25>에 몸소 지은 열 가지 유훈<遺訓>)은 지금도 생생하게 한국사 시간의 선생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권력의 심장부에서의 인재란 정치적 판단에 의한 등용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이중환은 산수와 지리를 들어 과거급제자와 주요관직의 함수관계를 내걸고 있다.
7. 전라도(지리산 바람은 섬진강을 안고) :
전라도는 호남(湖南)이라 부르는데, 삼국시대부터 전북 김제의 벽골제<碧骨堤><池>(남쪽을 호남, 서쪽을 호서라 함, 호남 지방<湖南地方>의 호<湖>가 바로 벽골제)라는 수리시설이 발달하고 가믐을 극복하려는 선조들의 노력이 있는 비옥한 땅이다. 조선조 최대 국난인 임진왜란(1592~1598,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시 삼남의 곡창으로 불리던 곳이 호남으로 이 지역을 전쟁의 참화로 부터 굳건히 지켜 들판의 곡식을 양식으로 지킨 이순신장군의 혁혁한 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서남쪽 연해 지방에는 생선, 소금, 벼, 실, 솜, 모시, 닥나무, 대나무, 귤, 유자, 감 등이 풍족하다. 남도의 판소리, 민요등 노래를 좋아하고 호사를 즐기는 풍속이 있고, 영리하고 간사한 자가 많으며, 문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상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거에 올라 벼슬길에 오른 자가 적고 자연히 학문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날리는데 힘쓰는 자도 역시 적다. 또 반란과 역적이 나오게 되면 주모자를 전라도를 지목하고 귀향을 보내는 곳으로도 전라도의 외딴섬이 자주 등장한다. 역사상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이들의 이야기이고 사적변화에 커다란 진면목은 호남서 나왔다. 특히 개화기의 동학혁명운동의 진원지와 일제시대 광주학생운동, 현대사의 1980년 광주 5월항쟁도 모두 호남이다. 이 대목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항상 어느 정권이든 호남 인재 등용에서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태조 왕건이 남긴 차령 이남의 인재를 중히 등용하지마라는 유훈과 박정희 정권의 인재 등용과 호남과 영남 사이에서 벌어지는 지역불균형정책은 앞으로 두고 두고 깊게 따지고 원인분석하여야 할 우리나라 중심정책과제이다.
지금도 전북의 중심이 전주인데, 당시에도 인구가 조밀하고 물자가 쌓여 있어 한양과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큰 도회지라 할 수 있다. 오직 전주만은 맑고 시원하여 가장 살만한 곳이다. 그 외에도 여러 지역의 기름진 땅이 있다.
8. 충청도(서울 사대부들의 삶의 근거지) :
충청도는 산천이 평탄하고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한양과 가까운 남쪽에 있어 사대부들이 모여 사는 곳이며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못미치나 물산이 풍성하다. 한양의 유력한 집안은 모두 충청도에 농토와 집을 두어 생활의 근거로 삼았고, 풍속이 한양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골라 살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다.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곳은 내포(현재 충남 도청 소재지인 내포신도시가 있음)이다. 가야산 일대에 자리하고 지세가 난을 피하기 유리하고 비옥하고 평탄하다. 생선과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들도 많다.
지금도 충청도는 중원의 꿈을 이루는 길목에 있다. 충청도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서 정권을 창출하는 권력의 키를 쥐는 역할을 여러 차례 하여 왔기 때문이다. 세종특별자치시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즉,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부터 수도권과밀억제와 군사적 목적을 지니고 세종시가 위치한 지역에 천도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행정수도를 옮긴다는 공약으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곳도 이곳이다.
9. 경기도(강물은 굽이굽이 서해로 흘러들고) :
경기도는 고려의 수도 개성과 조선의 수도 한양 그리고 현재의 수도 서울을 품고 있고 광역으로 넓혀가는 디딤돌이다. 그래서 국가는 서울과 경기도, 인천광역시를 폭넓게 연계하여 발전시키자는 일환으로 수도권(首都圈)이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사람이 사는 모습의 표본이 되고 나라의 언어나 풍습, 문화와 사회생활 및 교통이나 행정과 상업중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양은 앞으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동·남·북 세방향에서 전국의 세곡선이 드나들던 포구와 경북궁 뒤에 북악산(백악산)이 여러 강이 모여드는 사이에 서리고 얽혀 있어, 전국의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다. 결국 조선이 왕조를 이을 무렵, 무학대사가 길을 바꿔 북한산(삼각산이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를 일컫음)의 만경대에서 정남향의 줄기를 따라 곧장 백악산 아래에 이르렀다. 세 곳의 맥이 만나 한 들이 된 것을 보고 그곳을 궁성터로 정했다. 지금의 경복궁이다.
현재의 서울 수도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로서 인구 1000만명을 넘어서고 인천국제공항을 관문으로 하여 서울과 전국을 찾는 외국관광객수가 2015년 한해동안 1500만명을 넘나들며 명실상부한 세계문화교류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10. 서울대도시권(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오늘날 변화된 경기도의 모습을 비교하며(Seoul metropolitan region, 首都圈) :
[개설]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2011~2020) 및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2006~2020) 등 기존 법적 계획에서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를 포함하는 권역을 수도권의 범위로 규정해 왔다. 그러나 수도권의 범위는 생활권, 경제권, 계획의 범위 등 관점 및 접근기준에 따라 그 공간적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수도권의 실질적 범위는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통근권을 기초로 하여 해당도시와 그 주변지역간의 기능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권역으로서 정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원 및 변천]
오늘날의 서울과 그 인근의 경기도 일부가 정치 군사적 중심지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고대부터이다. 백제의 초기 수도인 위례성이 서울의 한강 東南岸에서 광주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있었다. 고려시대에 수도가 개경에 자리 잡고 있을 때에도, 서울은 남경으로서 편제되어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지속해 왔으며,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수도의 기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한 것을 비롯하여, 진흥왕 14년(553년)에 신라가 麗濟의 분쟁지역인 한강하류지역을 장악하고 신주(新州)라는 군사체제의 행정구역을 설치했던 때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에 전국적 지역편제가 9주 5소경으로 되고 서울 지방은 한주(漢州)에 편입되었던 점을 보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백제초기 위례성의 입지적 우위성이 관성적으로 지속되었다고 인지된다.
고려조에 들어서면서 서울지방은 양주로 존속하다가, 성종 2년에 지방제도가 정비되어 12목이 설치될 때 양주, 광주 등 지금의 서울 및 경기도의 일부가 목으로 승격된다. 조선조에 이르러 새로운 국가 건설 기운이 풍수지리설에 힘입게 되면서 태조 3년(1394년)에 드디어 한양천도가 이루어 졌으며, 태종 때에 이르러 한성부가 되었다.
경기의 관내가 현재의 것과 거의 일치되기에 이른 것은 세종 때에 이르러서 이지만 대체적인 범위는 이미 조선조 초기부터 설정되었다. 경기란 경도를 에워싼 지역적 계층구분상의 최상위 수준에 있는 지역편제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이미 그 어의에는 수도권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때의 「경기」즉, 수도권이란 하나의 결절을 에워싸고 기능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있는 기능권역의 의미가 아니라, 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계층적 지역편제로서의 수도권의 개념이었다. 그후 행정적 지역편제의 위계질서로서의 「경기」즉, 수도권의 개념은 계속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기능지역 권역으로서의 수도권의 의미로 이행되어 왔다.
조선조 말 경기관내의 상위계층의 도시는 한성, 개성, 인천으로 압축되며, 1910년 이후 일제시대의 경기도는 경성부와 인천부 및 기타 군으로 편성되는 지역편제를 이루었다.
[내용]
수도권은 우리나라에서 각 부면별로 가장 선도적 위치에 있는 지역이다. 수도권은 세계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도시지역을 형성하고 있고, 동북아 경제권의 핵심도시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각종 경제, 사회, 문화, 정치와 관련된 중추관리활동을 포괄하면서 우리나라 성장을 주도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도권의 위상과 역할을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할 수 있다.
첫째, 수도권은 동북아 경제권의 중추지역으로서의 위상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은 중심도시인 서울과 주변 도시지역들이 기능적으로 연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화, 토지이용, 경제활동, 삶의 양식 등의 측면에서 새로운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적 공간특성을 보이고 있다. 서울이 세계도시(world city, global city)로 부상하면서 수도권은 이른바 세계도시지역(global city·region)으로 성장하여 동북아 경제권의 중추지역으로서 발돋움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 시대가 도래 하는 상황에서, 서울은 연구개발 및 금융, 물류, 컨벤션 등의 분야에서 중심도시로 성장할 잠재력을 구비하고 있다.
둘째, 수도권은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정치·행정의 중심지로서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 등의 요소가 다양하게 집적되어 있는 선도적 중심지역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수도권의 집중도를 전국과 비교해보면, 면적은 전국의 11.8%에 불과하지만, 전국 인구의 48.0%, 지역생산액의 48.1%, 제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의 46.9%, 56.3%가 수도권에 집중해 있다. 또한 전국 대학의 39.2%, 의료기관의 50.4%, 예금액의 68.0%, 승용차의 48.7%, 그리고 공공기관의 85.4%를 수도권이 점유하고 있어서 전국의 행정, 금융, 교육 및 산업의 집적지이자 중심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셋째, 수도권은 우리나라 산업 및 고용의 핵심지이다. 수도권은 우리나라 기술발전을 주도하는 위치를 가진 지역으로서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경제활동 여건과 기술개발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혁신성에 기초한 첨단정보나 기술을 가장 빠르게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곳이다. 수도권은 기술이나 정보를 신속히 창출하여 전국에 전달하는 첨병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지역이다. 또한 수도권은 우리나라 지식기반산업과 기술융합형 산업의 핵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경우 서울을 중심으로, 그리고 지식기반 제조업의 경우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인천과 서울 일부지역이 지식기반 융합산업의 공간분업을 담당하고 있다. 2001년 말 기준으로 수도권의 지식기반 서비스업 종사자수의 비율이 전국대비 63.5%나 되며, 특히 서울은 45.2%로 나타나 최대의 집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수도권의 지식기반 제조업 생산액 비중 또한 전국의 52.8%에 이르러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도권 내에서도 경기도 지역의 지식기반 제조업 생산 비중이 전국대비 43.7%를 점유한다. 21세기 지식기반산업은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기술융합형 산업의 특징을 갖고 있는 바, 나노기술(NT)등의 신기술과 신기업의 대규모 출현, 그에 따른 신시장의 형성 및 발전으로 연계되어 있는 수도권은 미래 전략산업의 성장을 고도화하는 선도지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황]
1) 인구
현재 수도권 인구의 특성은 인구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나, 인구증가율은 감소하는 추세라고 인지된다. 1980년 수도권인구는 1,330만 명이었으나, 2005년에 2,260만 명으로 증가하여 1980·2005년 기간 중 수도권은 연평균 2.2%의 인구증가율을 기록하며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수도권의 전국대비 인구비중 또한 1980년의 35.5%에서 2005년의 48.1%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기간별로 보면 1980년대는 인구증가율이 3.4%로 급격히 증가한 반면, 2000년대는 연평균 1.2%의 증가에 그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수도권의 인구증가율은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수도권 인구집중문제의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완화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2) 산업
수도권의 산업은 제조업의 지속적 감소와 서비스산업의 성장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서울은 서비스업 종사자 인구가 절대적인데 반해, 인천, 부천, 안산, 시흥 등 서울 남서부지역과 평택, 화성, 이천, 용인 등 서울 남부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제조업이 활발하다.
3) 공간구조
(1) 직주불균형의 심화
수도권의 거주지와 일자리소재지의 직주비를 보면 서울 및 서울주변지역에서 심각한 직주불균형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2005년 현재 직주비는 1.14로 서울의 풍부한 일자리는 인근 주변지역에서 서울로의 통근수요를 유발하고 있으며, 반대로 서울 주변지역은 고양 0.60, 광명 0.60 등으로 나타남으로써 서울주변지역이 서울의 침상도시화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울로의 통근은 1990년의 직주비 1.08에서 2005년에는 1.14로 높아져 주변지역에서 서울로의 통근추세는 점차 심화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경기도 외곽지역은 직주비가 1.0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나, 서울에 비하여 일자리수와 거주자의 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서울통근권은 확산되고 있다. 1995·2000년 기간 동안 서울 통근자 증가분이 10만 명이었는데, 2000·2005년 기간 동안은 증가분이 23만 명에 달하여 서울 통근자의 증가분이 2배 이상 증가하였다. 2005년 수도권에서 서울로의 통근자수는 11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2) 시가지의 외연적 확산
수도권의 시가지면적(지목<地目>상 대지, 공장, 학교, 도로, 철도용지를 합한 면적)은 1980년에 비하여 2005년에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05년 현재 전체 수도권 면적 11,704㎢의 12.1%인 1,412㎢가 시가지면적으로 집계된다. 수도권의 인구가 1980년 1,330만 명에서 2005년 2,260만 명으로 약 1.7배 증가한 점에 비추어 보면, 동 기간 중 수도권의 시가지면적의 약 2.1배 증가는 인구증가와 함께 진행되는 현상으로 보여 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1기 신도시인 성남, 고양, 군포, 안양지역 중심의 대규모 택지개발지구로 인해 도시화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경기남부지역의 시가화지역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4) 토지이용관리
(1) 국토이용계획 현황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하여 수도권은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의 3개 권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수도권은 권역 특성별로 인구집중유발시설, 대규모 개발사업의 입지 등 차별적 규제를 하고 있다.
수도권은 2005년 현재, 전체 면적 중 36.5%가 도시지역이며, 관리지역이 27.8%, 농림지역이 32.4%, 자연환경보전지역이 3.3%이다. 서울은 전 지역이 도시지역이다. 수도권의 국토계획상 용도지역의 증감을 보면, 도시지역은 1995·2005년 기간 중 228.3 ㎢ 증가한 반면, 관리지역 및 농림지역은 감소하여, 관리지역 및 농림지역에서 도시지역으로 용도가 변경 조정되었음을 나타낸다.
(2) 특별법에 의한 대규모 개발사업의 시행
1980년대 후반 분당, 일산 등 대규모의 1기 신도시 건설을 시작한 이래, 2000년대에 이르러서 동탄, 파주, 판교 등 2기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2006년 현재까지 수도권에서 건설되었거나 추진 중인 택지개발사업지구는 총 677개 지구로 면적은 총 638㎢에 이르고 있으며, 수요세대수는 총 360만 세대에 달한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1980년대는 성남, 고양 등 서울 근교 일부지역에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집중되었고, 1990년대는 용인 등에 개발 사업이 집중된 반면,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파주, 김포, 화성 등 대부분 서울인근지역에서 대규모 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3) 난개발의 진행
기반시설의 설치 없는 난개발은 시가지의 무질서한 확장과 기반시설의 설치비용 부담 가중 등 수도권 내부공간관리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난개발 방지에 대응하고 있다.
11.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2006~2020)(국토종합계획과 수도권의 미래도시를 연상하며) :
1) 계획수립의 배경
•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국내적 여건이 변화하고,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경제 개방화의 진전에 따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도권 혁신의 필요성 증대
•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2006~2020) 등 상위계획이 변경되고, 신수도권 발전방안(‘04.8) 및 수도권발전 종합대책(’05.6) 등 수도권 관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현재 추진중인 제2차 수도권정비계획(1997~2011)을 조기에 종료하고 새로운 수도권의 비전과 발전방향을 담은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을 수립
2) 계획의 범위 및 성격
• 계획의 범위
• 공간적 범위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및 경기도 전역
• 계획기간 : 2006년 ~ 2020년 (15년간)※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 및 도시기본계획과 계획기간 일치
• 계획의 성격
• 수도권정비계획법(제4조)에 따라 수도권 정비의 기본방향, 인구 및 산업의 배치, 권역의 구분 및 정비방향, 광역시설의 정비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정하는 장기종합계획
3) 주요내용
가. 기본방향
• 인구안정화를 전제로 수도권의「질적 발전」 추구
•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지방과 상생 발전하는 수도권 지향
나. 수도권 인구 안정화
• 수도권 인구비중을 2020년까지 47.5%로 안정화(’04년 47.9%)
• - 현재와 같은 추세 지속시 2020년에는 52.3%까지 증가 전망
(‘05.12말 현재)
구분 | 2004 | 2011 | 2020 | |
전국인구 | 48,082(100.0) | 49,375(100.0) | 49,956(100.0) | |
수도권 인구 | 추세인구 | 23,054( 47.9) | 24,789( 50.2) | 26,133( 52.3) |
목표인구 | 23,054( 47.9) | 24,063( 48.2) | 23,752( 47.5) |
< 수도권 추세인구 및 목표인구 >
• 과도한 목표인구 설정에 따른 과잉개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2020년 시ㆍ도별 도시기본계획 인구지표를 설정
• - 서울특별시 980만명, 인천광역시 310만명, 경기도 1,450만명
다. 공간구조 개편
• 서울 중심적 공간구조를 「다핵 연계형」 공간구조로 전환
• - 인천, 경기지역에 10개 내외의 자립적 중심도시권을 형※ 인천-부천-김포권, 수원-화성권, 성남-용인권, 안양-군포-의왕권,남양주-구리권, 평택-안성권, 의정부-양주-동두천권, 안산-시흥권,파주-고양권, 이천-광주-여주권 등
• - 중심도시의 집중적 육성ㆍ정비로 도시권별 자족성을 제고
•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클러스터형 산업벨트 구축
• - 수도권에 5개의 특성화된 산업벨트 형성을 유도
• ㆍ 서울 및 주변지역: 업무 및 도시형 산업벨트
• ㆍ 수원ㆍ인천지역: 국제물류 및 첨단산업벨트
• ㆍ 경기 북부지역: 남북교류 및 첨단산업벨트
• ㆍ 경기 동부지역 : 전원 휴양벨트
• ㆍ 경기 남부지역: 해상물류 및 복합산업벨트
• 서울중심의 방사형 교통체계를 환상격자형 교통체계로 전환
• - 서울을 경유하지 않고 지역중심도시와 도시간을 직결하여 상호보완적 발전을 유도
•
라. 권역 정비방안
• 단기적으로는 현행과 같은 권역별 규제시책을 유지
• - 다만, 공공기관 종전부지, 노후공업지역 등 계획적 정비가 필요한 지역을 대상으로 수도권 규제를 차등 적용하는 정비발전지구 제도를 도입하여 획일적 규제의 문제점 보완
• 중장기적으로 현행의 권역제도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는「계획관리체제」로 전환
• - 수도권 관리목표 및 상세계획에 입각한 토지이용 및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주민ㆍNGO의 참여를 활성화하는 등 가버넌스 개선
마. 인구집중 유발시설 및 개발사업의 관리
< 주택 및 택지 >
• 2020년까지 주택보급률을 115% 수준으로 제고 (’04년 94%)
• - 2006년부터 향후 5년간 연평균 30만호씩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연간 900만평, 5년간 4,500만평의 공공택지를 공급
• 소규모ㆍ개별사업 위주로 진행된 기존 도심지 재개발 방식을 개선한 광역개발 방안을 강구※ 광역개발을 통해 공원ㆍ도로 등과 같은 기반시설을 적극 확보
• 신규개발지는 서울 인근지역의 소규모 개발을 지양하고, 연담화가 되지 않도록 고속교통시설 설치와 연계한 외곽지역에 자족성을 가질 수 있는 규모로 개발
< 공업용지 공급 >
• 공업용지 공급시책의 전환
• - 산업단지에 대해서는 현행과 같이 수도권정비계획에 의한 산업단지 공급물량 제한으로 관리
• - 개별입지 공장의 집단화 등을 유도하기 위해 산업단지 이외의 공업지역은 공장총량규제로 전환하여 관리
•
• 산업단지 공급
• - 제조업의 수도권 집중억제를 위하여 수도권 산업단지 개발면적이 전국의 20%를 넘지 않도록 관리
• ㆍ 2008년까지는 과거 10년간 전국 연평균 개발면적의 20%를 공급
• ㆍ 2009년이후는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과 연계하여 수립예정인 전국 산업입지공급계획을 고려하여 재산정
• 노후공업지역 정비를 유도하기 위해 과밀억제권역내 공업지역 대체지정시 일정기간 중복지정을 허용
• 개별입지 공장의 집단화를 위해 조성하는 산업단지는 공급물량의 30% 범위내에서 추가공급 가능
< 공장 >
• 공장총량제 등 현행 공장규제 정책의 기조를 유지
• - 대기업 공장은 수도권 입지를 계속 억제하되,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시급한 경우에 한하여 사안별ㆍ선별적으로 허용여부 검토
• - 공장총량은 수도권에 제조업이 과도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과거 집행실적 및 경기상황을 감안하여 관리하고, 개별입지 공장의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
• 수질보전을 위해 자연보전권역내 공장에 대한 직접규제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기존 개별입지 공장의 집단화 등 계획적 관리방안 강구
< 대학 >
• 4년제 대학의 신설은 계속 억제하되 접경지역으로 대학 이전이 유도될 수 있도록 지원방안 강구
• 대학의 통ㆍ폐합 등 구조조정은 지원하되, 수도권 시책에 부합하는 범위내에서 추진
< 대형건축물 >
• 현재 서울에 한정하여 부과하고 있는 과밀부담금 제도를 중장기적으로 과밀억제권역 전체로 확대하는 방안 검토
< 종전대지 관리 >
• 과밀억제권역/성장관리권역
• - 계획적ㆍ체계적 개발을 위해 수도권 심의제도를 내실화
• * 택지 100만㎡이상, 공업용지 30만㎡이상, 관광지 10만㎡이상
• - 신규개발 도시의 자족성 제고를 위해 택지개발시 업무 및 생산시설을 함께 배치하는 복합적 개발을 유도
• 자연보전권역
• - 난개발ㆍ수질오염 방지를 위해 지구단위계획 제도와 수질오염총량제 시행을 전제로 택지규제를 개선(개발총량은 불변)
• ㆍ 상한규제 → 하한규제로 규제방식을 전환
• - 관광지 조성규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중장기적으로 규제 개선 방안을 검토 (현행 6만㎡이상 금지)
바. 광역시설의 정비 및 확충
• 철도망
• - 전철 수송분담율을 2020년까지 40%로 제고(’02년 23.6%)* 2020년까지 간선도로 총연장을 860㎞에서 1,811㎞까지 확충* 총 30개 사업 782㎞의 광역전철망 확충계획을 반영
• - 급행열차 운행확대 등을 통한 철도망 이용의 효율 제고
• 도로망
• - 남북 7축, 동서 4축, 3개 순환망(7×4+3R) 간선도로망 구축* 2020년까지 간선도로 총연장을 860㎞에서 1,811㎞까지 확충
• - 서울과 인천 및 경기도를 급행으로 연결하는 간선급행버스(BRT) 노선을 구축 (총 22개노선 540㎞)
• - 광역철도망 / 광역도로망 구상
• 공항, 항만, 물류시설
• - 인천국제공항을 확충하고, 인천항 및 평택항의 경쟁력 강화
•
• - 의왕, 군포 물류기지를 확장하고, 수도권 북부 내륙화물기지를 추가 건설
• 용수공급
• - 댐 연계운용과 수요관리의 병행을 통한 용수의 안정적 확보
• - 광역상수도 물배분체계 조정으로 수도권북부의 물부족 해소
• - 해안도서지역 및 농촌지역에 대한 물부족 해소방안 강구
사. 환경보전과 관리
• 대기질
• - 2014년까지 대기환경을 OECD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
• ㆍ미세먼지 : 69㎍/㎥(2003년) → 40㎍/㎥(2014년)
• ㆍ이산화질소 : 38ppb(2003년) → 22ppb(2014년)
• - 수도권 대기환경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도별 및 배출원별 대기오염물질 총량관리 추진
• 수질
• - 팔당상수원의 수질을 Ⅱ등급에서 Ⅰ등급 수준으로 개선* 팔당상수원의 수질(BOD) : 2004년 1.3㎎/ℓ → 2015년 1.0㎎/ℓ
• - 한강수계 수질보전대책 수립 및 팔당상수원 상류지역의 오염총량제 실시를 의무화
아. 계획의 집행과 관리
•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소관별로 사업을 추진하고, 광역지자체 장은 시도별 관리계획을 수립하여 계획간의 정합성을 확보
• - 시도별 관리계획에서 기초지자체장이 수립하는 도시계획 등 토지이용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
• - 광역지자체장이 수립하는 시도별 관리계획은 수도권정비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
• 2020년 도시기본계획의 인구지표를 수도권정비계획의 인구
• - 지표와 연계하여 설정함으로써 계획의 실행력을 제고
•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는 도시기본계획에 직접 반영하고,
• 수도권정비위원회에 민간전문가를 포함시키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공동참여하는 정책협의기구 설립 검토
• 5년주기로 계획을 평가ㆍ보완하고, 수도권 경쟁력 및 삶의 질 지표에 대한 모니터링 및 연차보고서를 발간하여 주요내용을 수도권정비위원회에 보고
자. 재원조달
• 관계행정기관의 장은 다른 사업에 우선하여 예산을 확보
• 재원투자 역할분담
• - 민간부문 : 민자유치로 수익성 있는 개발사업에 참여
• - 지 자 체 : 지역발전에 필요한 공공투자 재원을 분담
• - 중앙정부 : 광역적인 공공투자 재원을 분담하되, 지자체도 일부 재원을 부담하는 매칭펀드 제도 실시
차. 「계획적 관리」로의 전환 추진
•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상호 협력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수도권의 질적 발전과 성장관리를 도모하는 「계획적 관리방식」 도입을 위한 연구에 조기 착수
• - 2006년중 기초연구를 통해 계획적 관리를 위한 기본방향을 정립하고 계획적 관리에 필요한 과제를 도출* 사회ㆍ경제적 환경에 적합한 추진방향 및 관련제도 정비 방안 등
• - 2007년중 과제별 연구를 통해 계획적 관리체계 전환에 필요한 제도 정비방안을 마련
•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
• - 2006년중에 민간전문가와 NGO, 관련 공무원으로 구성된 「수도권정책혁신 민관협의회」와 실무기획단을 구성
•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홈페이지를 구축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
•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지방화시책과 연동하여 수도권의 관리방식이「계획적 관리체제」로 전환 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계획체계에 맞추어 계획을 수립하고 본 계획을 중지 2004년, 2011년, 2020년의 전국인구, 수도권인구(추세인구, 목표인구)
Ⅳ. 이중환의 택리지가 현대 부동산학적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이중환의 택리지는 무엇보다도 부동산학적 관점에서 중요시하는 복합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지리(물리적), 생리(경제적), 인심(사회적), 산수(자연적)를 드는 것이 그것이다. 부동산학적 연구접근방법으로 물리적,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행정적(법률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당시의 상황에서는 터를 잡아 집을 짖는데, 감나라 배나라 하는 법규나 관원이 나와 보고 인허가를 통제하는 행정적 측면이 엄격히 적용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개화기가 접어들면서 외국인의 왕래가 늘고 무역이 성업하면서 마을형성은 자연히 이루어졌다. 개인간 부동산을 사고파는데 있어서 부동산중개업도 활성화 되고 무질서한 거래행태를 국가가 제어하는 인허가제도가 들어오게 된다. 이때부터는 법적으로나 행정적 조치가 여러 면에서 나타나게 된다.
또한 부동산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지로서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 셋째도 입지이다. 공교롭게도 이중환은 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중환이 지리와 경제가 결합하는 최적지로는 토지가 기름진 곳이 으뜸이라 한 것은 농경사회의 특징으로 주거입지를 우선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이며, 그 다음을 배와 수레와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어 상품교역이 일어나는 곳으로 상업입지의 중요성을 들고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주거개념이 우위고 돈을 버는 상업지는 그 다음임을 알 수 있다. 상업활동을 하는 주변지역에 부자가 많음을 볼 때 부동산가치가 높게 형성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업경영에 있어서도 국내상업 뿐만 아니라 국제무역의 요충지를 다루면서 큰 재물을 모으는 길은 중국이나 일본과 거래하는 국제무역을 주장했다. 말보다는 수레, 수레보다는 배를 통해 물자를 교역하는 이익이 크다면서 수상 또는 해상로를 이용한 상업활동을 강조했다. 지금으로 비교하자면 인천항구나 인천국제공항 혹은 KTX역이 지나는 상업요충로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상업활동에 종사해 큰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면 바닷길과 내륙으로 통하는 강이 이어져 있는 병목지로서 그중에서도 한강과 서해 바닷길(지금의 아라뱃길)을 이용한 교역이 가장 큰 이득을 준다고 하는 서해안시대의 서막을 이미 265년전에 밝혀주고 있다.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 할 수 있지만, 이중환의 택리지는 우리나라 경제 인문지리서의 효시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를 현대에 맞게 발전시키자면 우리나라의 국토계획과 전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정책에도 반영할 수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이유로는 탁상행정이 판을 치는 권위행정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전라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 방방곡곡의 산천과 마을현장을 답사하면서 각 권역별 또는 지역별로 존재하고 있는 지리적특성과 명산과 산세, 인심, 인물, 특산물, 산업, 생산, 소비, 주거, 교통, 풍속, 농업과 상업 및 국제무역이 발달한 지역 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 이중환이 전국을 누빈다면, 도보나 말마차 대신 자전거나 승용차로 산악을 오르고 계곡의 아낙네나 등산로의 울긋불긋한 옷들의 물결에 눈마중을 보냈을 것이다.
사대부 기와집이 밀집한 사람이 살만한 곳은 외국인들이 왕래하는 관광지로서 들러보게 되고 그리도 기름지고 좋다하던 평탄하고 널따란 들판은 택지개발예정지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인근에 현대식 도청청사가 이름할 것이다.
앞으로 계획가들은 이중환의 사고정신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시장조사와 자료도출을 현대적 감각으로 발전시켜 부동산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문제로서 갑을관계나 빈부격차도 부동산정책문제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반문하여 본다. 갑을관계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에서 풀어갈 상황으로 보이며, 빈부격차는 국토균형발전정책과 특성화전략 및 부동산임대정책으로서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최적의 조화로서 해결점을 제시할 수 있다.
예컨대, 신혼부부의 임대주택문제나 전월세대란문제, 다문화가구의 주거문제, 외국인마을의 조성, 해외관광객들의 숙박문제 등을 포함하여 기존 가구의 가격정책을 수요와 공급의 사례를 접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한 지역특성화전략을 세울 수 있다.
우리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자연을 벗삼고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하는 마음으로 홀연히 걷거나 타고 오르고 내리며 방랑객을 자쳐하면서라도 전국 어디든 방방곡곡(坊坊曲曲, 각처, 한 군데도 빠짐없이 모든 곳)을 탐사하고 경험을 정리하고 써내려가 보자. 그래서 그처럼 구체적 방안을 실천으로 옮기기만 한다면, 나만의 삶의 기회를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만 더나아가 그 기초자료는 어쩌면 보다 큰 그림의 국가전략의 입장에서 사회양극화, 즉 계층 간 빈부격차나 동서로의 지역간 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사려 깊은 여정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걱정 어린 고민을 혼자 하여 보는 것도 재미 있다.
앞으로 실천가능한 여러 과제중 하나로서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