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좋은 영화 상영 ‘내 깡패 같은 애인’
본당의 좋은 영화 상영을 위한 조언을 구하고자 교구 홍보국을 방문하던 날, 교구에서 상영예정인 영화가 ‘내 깡패 같은 애인’이었습니다.
서로 으르렁 거리는 두 남녀의 대결구도처럼 보이는 포스터나, 제목을 보아도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박중훈씨가 나오는 영화는 사람 냄새가 난다고들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말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시대적 트렌드, ‘88만원’으로 상징되는 청년실업 문제를 통해 우리사회를 설명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영영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불공정한 우리사회를 진지하게, 그러나 너무 무겁지 않게 터치하여 가벼운 코미디를 접하듯 유쾌합니다.
그러나 ‘불공정한 사회’라는 주제보다 제 마음을 잡아당긴 것은 투박한 삼류건달 동철식 사랑표현이었습니다.
동철(박중훈 분)은 건달세계에서 서열은 높지만 늘 맞고 다니는 건달입니다.
싸움도 못하면서 늘 ‘가오(체면)가 있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래서 건달세계에서조차 낙오자입니다.
그러나 동철의 말대로 자신은 “만날 쌈질이나 하고 요 모양 요 꼴로 살아도 당연한데” 옆집여자 세진(정유미 분)은 자신과는 영 다른데 자기처럼 낙오자가 되어가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깡패인 자기가 보기에도 그러니 세상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지요.
지방대이긴 하지만 4년 장학금에 대학원까지 마치고 상위 3%이내의 토익점수가 보여 주듯, 세진은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사회진입을 위해 성실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첫 직장에서 3개월 만에 부도로 인해 실직당하고 재취업을 위해 애쓰지만 제대로 된 면접기회 조차 갖지 못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면접에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지만 시간이 없다며 면접관에게 질문조차 받지 못하고, 춤을 춰보라는 황당한 요구도 받습니다.
급기야는 취업을 미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온갖 불의한 대접을 받으며 세진은 점차 지쳐갑니다.
한번 낙오자는 영원한 낙오자일까요?
때때로 교육방송도 보고 건달세계에 들어온 초보건달에게 검정고시라도 보라고 훈계하는 동철에게. 자신은 비록 이렇게 찌질 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세진이 자신처럼 낙오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 납득하기 어렵고 세진이 이상으로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아마 세진에게 열심히 살아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이 되고픈 자신의 꿈을 투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 앞에선 모두가 용기를 내게 됩니다.
“너를 사랑하기에 거짓의 옷을 벗어버렸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동철 또한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삼류 건달의 ‘가오’를 벗어 버립니다.
그리고 투박한 동철식 사랑으로 면접관들을 세진이 올 때까지 붙들어 놓기 위해 “걔는 나랑은 진짜 다른 앤데 놔두면 나처럼 되겠어요, 아까워요”라며 무릎을 꿇습니다.
아마 그날 함께 영화를 보았던 50-60대 아줌마 부대들은 저처럼 거기에 마음이 붙들려 버렸을 겁니다.
이렇게 3류 조폭 동철의 희생으로 세진이 얻게 된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제대로 된 면접기회일 뿐이지요.
요즘 시대의 화두가 ‘정의’입니다.
그러나 세진으로 대표 되는 청년들에게 있어 정의란 신문을 뒤덮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누구나 누려야 하는 공평한 기회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또박또박 면접관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세진에게 면접관들은 묻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잘 됐는데 왜 탈락했냐?”고요.
그러자 세진이 대답합니다. “이렇게 물어봐 준 곳이 없었다.”라고요.
자, 그러면 우리의 영원한 테마 ‘사랑’은 세진과 동철에게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까요?
처음 상경하여 사랑했던 남자는 “내가 가장 행복할 때 내 옆에 있어주지 않았어요.”라는 세진의 말을 통해 세진에게 있어 사랑이란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철이 세진의 남자 친구 노릇하느라 세진 아버지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이나 우산을 사러갔다 미끄러져 기절하는 모습들은 우스꽝스럽지만 가슴을 찡하게 해줍니다.
면접관들을 붙들고 있었던 투박한 동철의 사랑은 안전하게 사회에 진입한 세진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나는 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함께 영화를 보았던 50-60대 아줌마 부대들은 영화가 끝났을 때 한결 따뜻해진 마음으로 교구청을 나섰습니다. 그 따뜻함은 단순히 제대로 된 면접이라는 공정경쟁을 통해 사회진출을 이룬 세진을 통해 보여준 해피엔딩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 동철이도 행복해지길 바랐거든요.
두 번째 좋은 영화 상영에 오셔서 동철의 투박한 사랑과 행복을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은 5월 11일(수) 8시에 상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