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와 자연경관
이번 산행은 덕진공원건지산 명소화운동 시민모임과 건지산 산행과 함께 등산로 실태조사와 환경정화활동을 병행했다.
건지산 천년의 길은 호남정맥 만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가 북쪽은 소양천, 남쪽은 전주천을 가르며
은내봉. 점치. 소양 묵방산. 502봉. 동부우회도로 절개지를 거쳐 기린봉에 이르게 된다.
기린봉 정상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남.북으로 나뉜다. 남쪽은 승암산을 거쳐
발이산(이목대 . 오목대)로 뻗어가고, 북쪽의 산줄기는
기린봉-마당재-건지산-덕진공원-가련산으로 뻗어가게 된다.
조선왕조 발상지이자 전주의 북방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건지산 왕자봉 끝자락 조경단에는
태조 이성계의 시조 이한공의 단이 모셔져 있다. 조경肇慶이란 조선왕조의 경사로움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고종은 일만 평에 이르는 경내에 단을 쌓아 관리하고 비문을 친히 써서 대한조경단이라 칭하였다.
영조 때 경기전과 함께 창건한 조경묘는 조선 이씨의 발상지라는 의미를 더욱 현실화하는 조치였다.
갑오동학혁명군의 전주부성 점령으로 전주를 성역화하려했다. 조경단을 쌓은 다음해 오목대와 이목대에 비를 세워
이태조의 발자취와 4대 조인 목조대왕의 행적을 남기려했던 것과 궤를 같이한다.
풍수지리설을 믿던 시절 땅기운이 음지쪽인 서북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고려시대에 동쪽 건지산과 서쪽 가련산 사이에 둑을 쌓고 커다란 덕진 연못을 팠다고 한다.
선조들은 풍수지리상 기린봉에서 건지산으로 뻗어온 산자락이 덕진 연못 쪽으로 전주의 기맥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여겼던 까닭이다. 그 뒤 풍수지리에 밝은 전라감사로 부임한 이서구가 건너편에 있는
가련산과 잇기 위해 덕진제의 제방을 튼실하게 쌓았다. 건지산은 전라감영 북쪽에 있는
전주의 주산으로 남쪽 동서학동의 곤지산과 풍수상 짝을 이룬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주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위치한 덕진 연못은 나무와 언덕이 없어
풍수지리상 기氣가 허약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덕진이란 지명도 참진眞을 쓸 때는 물과 관련이 없지만
나루진津을 쓰면 기가 꺾게 되어 전주에 갑부가 없다는 속설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인들이 그 허점을 노려 덕진 연못을 깊게 파고 나루진으로 고쳐서 전주의 정기를 눌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려 왕건은 훈요십조에 전주지형 상 전주천이 서북으로 흐르는 것을 임금이 계시는 북쪽으로
흐른다하여 모반의 땅이라 왜곡해서 차령 이남의 인재등용을 막기도 했다.
덕진 연못은 연꽃향기 그윽한 한여름 풍월정에 앉아 서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장관이 전주10경 중 하나인
덕진채련 德津採蓮이다. 덕진 연못은 한때 전국에서 기장 맛좋은 민물고기로 쳐 주던
붕어가 자란다고 하여 낚시꾼들의 인기몰이를 하였다.
1978년 문을 연 동물원과 조경단과 건지산, 덕진 연못 등을 연계해서 덕진공원으로 조성했다.
가련산 아지랑이의 가련청람可連晴嵐, 덕진연못의 아름다운 연꽃의 덕진채련과 함께
건지산에 부는 솔바람의 건지송뢰 乾止松? 등을 완산승경으로 여겼다.
특히 덕진연못과 건지산의 소나무들은 임금이 계신 한양과 조경단을 향하고 있어 왕소나무로 여겼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부터 아름다운 소나무 수십만 그루가 좀 벌레와 솔잎혹파리병으로 인해 모두 새까맣게 말라 죽고 말았다.
예부터 단오절에는 부녀자들이 덕진 연못에서 창포로 머리 감는 일이 세시풍속인 민속행사로 자리잡았다.
팔월 중순이면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며 연꽃 향이 은은하게 풍겨준다. 덕진 연못의 연꽃은 한달 가까이 꽃이 핀다.
한 송이 연꽃이 피었다가 지는 시간은 불과 사나흘이다. 끊임없이 솟아나고 꽃망울을 맺고 피고
연밥이 결실을 맺는 순환적이고 연속적인 현상이 한 달 내내 반복되는 정경을 연출한다.
연꽃이 만개하는 절기에 연향에 취해서 사는 전주사람들이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연꽃을 바라보면 문득 다산 정약용의 죽난시사竹欄詩社가 떠올려진다.
다산이 자신의 집이 있었던 지금의 서울 명동에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죽난시사라 명명하고
다산의 형과 문우 열다섯을 초청했다. 그 뒤 모임을 만들어 좋은 날 만나서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가져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기로 의기투합했다. 예컨대 살구꽃 필 때, 복숭아꽃 필 때, 참외가 익을 때, 연꽃 필 때, 국화꽃 필 때,
첫눈 내릴 때, 매화꽃 필 때였다. 또 아들 낳았을 때, 수령으로 내려갈 때, 품계가 승진할 때, 아들이 과거급제 때도 모임이 있었다.
흥미진진한 것은 연꽃이 피기 시작한 날은 새벽까지 기다려 연꽃이 개화하며 ‘퍽’하고 내는 작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날은 연잎의 오목한 곳에 술을 따라 연 대롱을 빨아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가히 멋진 풍류가 아닐 수 없다.
연향을 뒤로하고 건지산자락을 허위허위 오르면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묘소와
오송제, 편백숲, 전주이씨 시조 이한 공이 모셔져 있는 조경단 등을 만날 수 있다. 본디 전주이씨 땅이었던 것을
전주 이씨 문중에서 오십만 평의 땅을 전북대학교에 기증하였다. 전북대학교에서 헐벗은 야산을 조림하여
아름다운 숲으로 가꾸어 전국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숲길로 가꾸었다. 육산으로 숲이 울창하여
햇빛도 가릴 필요가 없고 완만한 길이라서 가족과 연인들에게 각광받는다.
최근 전주시에서 덕진공원을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천년역사의 정원으로 조성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예컨대 덕진 연못은 천년전통 품격의 정원, 조경단은 조선왕조 뿌리 찾기, 오송제는 생태테마 정원이다.
덕진 연못권역은 전통문화요소를 중심으로 한 천년전통 품격의 정원이다. 조경단 권역은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세워진 역사적 유산인 만큼 조경단 및 조선왕조 건립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뿌리의 정원이다. 오송제 권역은 습지보존과 생태학습장 등
자연생태를 중심으로 한 호수의 정원이다.
덕진공원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정원을 지향하는 만큼 후백제 견훤왕 설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까지 이어지는 덕진공원의 역사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100년 앞을 바라보는 백년 수목식재와 토담길· 싸리문 등 우리의 아름다운
삶의 풍경들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들도 제시되었다.
더불어 은행로 실개천이 한옥마을을 살린 기폭제가 되었듯이 건지산에서 덕진 연못까지 이어지는
옛 시냇물 길을 복원하는 방안 등도 중요한 과제로 제시되었다. 옛 문헌 및 자료 등의 고증을 통해 천년의 역사를
되살릴 수 있는 정자 등의 시설물과 경관을 조성하여 덕진공원을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정원 조성이 자못 기대된다.
▶ 산행코스
덕진공원(연지문)-연화마을-최명희훈불공원-장군바위-장덕사정상-오송제-편백숲-
대지마을-산불감시초소-씨제각길-00-승마장-전북대병원-조경단-연화마을(7.5km, 2시간30분)
▶ 교통편
-전주 팔달로-덕진공원(연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