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한번 죽어보니 제대로 사는 길을 알겠더라
정병규·서기흔 등 작가 11명 ‘상*상(喪*想)’전
“안녕하세요. 서기흔입니다. 제가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섰는데 장례식장이다. 출품작가 중 한 명인 서기흔(57) 경원대 미대 학장은 스스로 부고를 내고
자신의 죽은 모습을 찍어 내걸었다.
“사후 생이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만 나의 주검을 내가 본다는 것만큼 신비로운 경험이 또 있을까요.
인간은 무엇으로 성숙하나, 싶었는데 임종 체험으로 생의 후반부를 새로 맞이하렵니다.
특히 집사람에게 잘 하겠습니다.”
영정사진을 내놓은 사진가 정주하(53·백제예술대학 교수)씨는 “연구실에 늘 걸어놓고 있는데 이 앞에 설 때마다
허허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해골을 닮은 돌 그림을 내놓은 윤희수(50·공주대 교수)씨는 “죽음은 삶에서 살짝
건너가는 경계 너머 같아서 그저 또 다른 세상 일 뿐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든다”며 “죽음에 대한 많은 상상을 기쁘게
즐겼다”고 좋아했다.
다른 작가들도 ‘죽음을 마음 속에 안아 들고 보니 그렇게 무겁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는 소감을 털어놨다.
‘돌아선다와 돌아간다’의 의미를 새삼 음미했다는 작가도 있었다.
2008년 말 첫 번째 전시를 이끌었던 권혁수(53)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죽음을 맞고 보내는 한국인의 태도가
각 병원 장례식장 틀에 값싸게 갇혀있는 게 안타까워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삶과 죽음은 본디
하나인데도 별개인양 생각 저편에 밀쳐두고 있다가 정작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는 본능이나 관습에 묻혀버린다는
것이다. 주어진 삶을 받아들었을 때 이미 한 몸으로 우리에게 와있는 죽음을 제대로 모시고 대접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정한 삶을 원한다면 죽음에 대비하라’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의 경구가 전시장 곳곳에서 울린다.
엄숙하게 듣고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서울 견지동 목인갤러리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장례 지내는 이상한 작가 11명을 만났다.
‘상*상(喪*想)-죽음의 삶을 스스로 생각하며, 삶의 죽음을 더불어 상상하며’는 디자이너·화가·사진가 11명이 꾸민
가상의 장례 전시다. 정병규·서기흔·홍성택·송성재·정주하·권혁수·윤희수·김영철·박연주·오진경·손승현씨는 각기
죽음을 나름대로 푼 시각물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