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불안이 자녀를 잡는다. -고병헌교수

[팔랑나비]

언젠가 감명깊게 들었던 고병헌 교수님의 희망인문학 강의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때의 강의내용은 아니지만 함께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부모의 불안이 자녀를 잡는다 -고병헌교수

http://cafe.daum.net/Confucian/MAhE/57

1.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극단적으로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행동이 한 인간 안에서 병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없음’에서 찾았다. 저녁 시간, 가족과 함께 촛불을 켜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게 식사하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히만이, 낮에는 그토록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원인은 아이히만의 ‘악마적 성격’이 아니라 그의 ‘생각없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나는 악 그 자체는 “인간의 생각을 그릇된 길로 가게 하거나 해칠 수 있는 힘”이 없으며(악의 평범성), 사유 자체가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 .... 아돌프 아이히만을 예루살렘 법정에서 보게 되었을 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사유와 관계되는 생각이 생성되어 있었다. 당시 그녀는 그렇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으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정상적이며 보통사람으로 보였던 그 남자를 보며 어떤 생각이 떠올라 손으로 이마를 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악의 진부함’이란 말로 시사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피상성이다.

이제 한나 아렌트는 그토록 진부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악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뒤쫓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이 ‘마음이 악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어서 악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또한 악이 어리석음이나 지성과 관계가 있다거나 단지 도덕적 계율을 위반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도 생각지 않았다. 그런 식의 설명에는 악이 인간의 생각을 이른바 그릇된 길로 가게 하거나 해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에 반해서 한나 아렌트는 악의 근원이 사유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알로이스프린츠, [한나 아렌트] 2000: 285-287)

한나 아렌트의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세계 경영학의 대부로 평가받던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 나치의 대량학살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관한 책에서 독일계 미국인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함’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는 아주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악행을 하는 사람이 평범할 뿐이다. 아렌트는 스스로 ‘위대한 죄인’이라는 낭만적인 환상에 빠져버렸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이아고, 엄청난 죄를 짓는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약간의 멕베스부인이 있다.

사탄을 ‘어둠의 왕자’라 부르는 관용어구가 아렌트의 표현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주기도문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약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고 악에서 구해 달라고 신에게 청하는 것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셰피처럼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을 때 인간은 또한 악의 도구가 된다. 나는 가끔 이 둘 가운데 어느 편이 더 해로울까를 생각한다. ....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랜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 자서전(Peter F. Drucker)], 2005: 363 -364)

얼핏 보면, 두사람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런데 피터 드러커가 한나 아렌트의 ‘생각’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이 두 사람을 서로 대립적 관계로 놓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생각‘에 대해서 서로 방점을 두는 지점이 다를 뿐이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사유의 존재’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면, 피터 드러커는 그러한 ‘사유의 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즉, 두 사람은 서로 보안적 관계로서, 사유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한나아렌트) 동시에 올바른 방향으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함(피터 드러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사유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는 ‘사유한다는 것’을 ‘말없는 대화’로 정의하고 있다.

“..... 사유의 조건 가운데 하나는 소크라테스가 발견한 조건, 즉 사유는 다름 아닌 ‘말없는 대화’라는 점이다. .... 이른바 ‘한 몸 속의 두 사람’임을 경험하기 .... 다른 사람과 교제하듯이 사람은 사유 속에서 자기 자신과 교제한다. .... 자기 자신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이러한 필연성이 한나 아렌트에게는 사람들이 보통 양심이라 부르는 것의 원천이었다. ..... 사람은 생각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이 대화를 진행하며, 자신의 내적 상대를 일깨운다. 생각을 그만두지 않는 한, 누구든 이 상대로부터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경우가 바로 아이히만 같은 사람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훗날 출간된 저서 [정신의 삶]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침묵의 교류(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할지 시험하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반대하는 법도 발견하지 못한다. 다시말해 그는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모든 임의의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자신이 다음 순간 그것을 잊으리라는 것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생각 없는 삶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럴 경우 자기 고유의 본질을 펼치지는 못한다. 그런 삶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전혀 제대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몽유병자와 같다. ’ (287)” (알로이스 프린츠, 위의책: 286-287)

한나 아렌트의 말로 표현하면, ‘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다. 성찰적 사유를 통해서 삶의 본질적 의미를 찾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는데,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가 바로 그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빅터 프랭클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장기수로 생활하면서 지치고 희망을 잃은 삶의 조건 속에서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벌거벗은 자신의 삶 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살을 택하지 않고 비록 가늘었지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 심리철학 이론을 창안해낸다.

로고테라피는 환자가 인생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마음에 평정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으로 긴장하게 만드는데, 바로 이러한 긴장이 건강한 정신의 핵심요소이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에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자각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길이 없다는 것이 빅터 프랭클의 주장이다(빅터 프랭클, 1984:144), 즉, 아우슈비츠처럼 생지옥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자기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 지킬 수 있게 했던 ‘성찰적 사유’였던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수십 권의 책을 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1945년에 쓰고서 저자로서의 어떤 명성도 쌓지 않기 위해 익명으로 출판하려 했던 [죽음의 수용소 Man's Search for Meaning]가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한 마디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특성이며,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자신을 구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라는 삶의 극한 상황 속에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자포자기 사이의 그리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마음 상태와 육체의 면역 상태 사이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 실제 경험을 토대로, 수용소에서 수용자들에게 정신적인 의지를 되찾아 주려면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목표를 갖게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서 아무리 혹독한 시련 속에 있을 지라도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들고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내면의 정신적 자유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통이 삶의 깊은 의미를 더해주는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이때 그 고통들이 가치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로 실존적 고통 속에서 자기 삶의 깊은 의미와 목적을 성취할 기회를 찾을 필요가 있는데, ‘사유한다는 것’의 실존적 의미는 바로 이러한 ‘자기 삶의 깊은 의미와 목적을 성취할 기회’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2. 사유하는 주제(主題)

1) 교육의 의미에 대한 성찰적 사유

문제는 우리 사회의 성인들 대부분이 이렇듯 중요한 ‘성찰적 사유 능력’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애초부터 성찰적 사유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성찰적 사유 능력의 힘은 인문교육을 통해서 길러지고, 인문교육은 보편교육 단계의 핵심적인 교육내용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보편교육은 이미 오래전에 대학진학을 위한 준비교육단계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물론, 지식인들조차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경향이 매우 짙다. 합리성보다는 지연이나 학연같은 우연성이 우리의 행동거지를 지배하게 된 지 오래다. 또한 상식조차도 소리 높이질 않으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일반인은 물론, 부모나 교사들마저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삶인지 등을 성찰할 수 있는 힘도, 또 그럴 의지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적 사유 능력의 상실, 그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을 한자어로는 ‘人間’으로 표현한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뜻이며, ‘인간과 더불어 있는 인간’을 뜻하는 부버의 ‘사이존재(Zwischensein)' 개념도 이와 통한다. 결국 ‘인간다움’은 관계를 통해서 표현되고, 교육이 삶을 위한 것이라면, 그 교육은 관계의 결을 좀더 부드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떤 질의 교육을 받았는지는 그 사람이 맺는 관계의 결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맺는 관계의 질과 결을 보면 조악하고 거칠기 이를 데 없다. 국제화다 뭐다 해서 교육 영역에서도 외국 박사가 날로 늘어만 가는데,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본모습을 잃어가고, 급기야 우리사회의 교육은 ‘인재양성’에 그 자리를 내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적 사유 능력이 상실된 인재양성은 우리 사회를 극단적인 양극화 사회로 몰아갈 것이며, “사는 곳이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해주는” 야만적인 사회로 몰고 갈 수 있다.

참으로, 교육은 인재양성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교육의 모습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인간다움’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인간다움’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가정 교육 단계는 물론, 보편교육 단계에서도 반드시 견지되어야 한다. 같은 지식 영역을 가르치더라도, 대학에서 국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전문 지식영역으로서 자기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만, 중고등학교나, 특히 초등학교에서 국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는 그들 과목을 통해서 인간을 교육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정교육 단계에서든 보편교육 단계에서든, 교육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살아야 할 삶의 모습, 혹은 무늬에 대해서 소통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무늬는 학(學)과 습(習)이 쌓여 삶의 힘이 되고 이 힘이 사회적 환경과 조건들이 발휘하는 영향력 사이에서 서로 어우러질 때 매우 다양한 모습을 띄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녀의 성찰적 사유 능력과 학습력을 높여서 자녀(혹은 학생) 스스로 부드럽고 향기 나는 ‘삶의 결’을 빚어낼수 있게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가정교육의 ‘힘’인 동시에 보편교육의 최소한의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정에는 이런 힘이 없다. 부모는 상식과 주변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에 근거해서 자녀를 교육한다. 하지만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 그리 건강하지 않은 것이 문제며, 여기에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낳은 근본 원인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입시제도나 입시를 위한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이 문제라고 하지만, 순서로 보자면, 사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교육에 ‘힘’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이지, 이런 문제들 때문에 교육에서 ‘힘’이 빠진 것이 아니다. 즉, 보편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교육 수준을 넘어설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에게 ‘교육다운’ 교육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 교육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부모가 교육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주류 담론들, 혹은 유행하는 이론들에 휘둘리게 되고, 그 결과 그런 추세에 자기 자녀가 뒤떨어질까봐 불안해지게 되는데, 부모들이 대체로 품고 있는 이런 불안이 우리 아이들을 ‘잡는’ 것이다. ‘교육열’이라는 이름으로.

2) 자녀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삶에 대한 성찰적 사유

교육의 본래모습에 대한 성찰적 사유와 함께, ‘사유하는 부모’가 사유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주제가 바로 ‘자녀가 살아가야 할 미래’다. 앞에서 소개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다시 상기하면, “앞날을 생각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야말로 극한 상황에서 조차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수단이라고 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비단 아우슈비츠에만 국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실 가르치는 사람이 갖춰야 할 핵심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미래에 대한 성찰적 사유능력, 즉 ‘전망능력’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망은 미래에 대한 단순한 계획과는 다르다. 전망은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되는 미래), 그렇게 분석된 미래 조건에서 지향하는 가치가 녹아난 사회(원하는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하고,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전망(vision) = 원하는 미래 (예측되는 미래 + 지향하는 가치) + 실현 능력

여기서 ‘예측되는 미래’와는 달리 ‘원하는 미래’는 미래사회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요구한다. 미래를 앉아서 기다리다 세태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대응하면서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사회적 특성에 대한 성찰적 사유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교육을 받고 있지만, 그 교육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꽃피게 될 시점도 ‘미래’며, 또 ‘지금’ 받고 있는 교육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 삶의 시기도 바로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 부모들은 어떤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가? 아니 과연, 자기 자녀들이 살아야 할 미래의 삶에 대한 전망을 성찰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있기나 한 것일까?

필자가 부모 대상 교육을 할 때 묻는 질문이 있다. “당신 자녀가 당신 나이쯤 되었을 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당신처럼 산다면 당신은 만족하시겠는가, 아니면 당신의 지금 삶보다 더 멋있고, 더 아름답고, 더 충실하게 살기를 원하시는가?” 수강생 부모들의 대답은 하나같이 모두 다 “나보다는 더”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부모로서 자신의 지식과 경험 중에서 최선의 것들을 자녀에게 경험시켜주고 싶어 하고, 만일 자녀가 부모가 지닌 최선의 지식과 경험을 부모 뜻대로 모두 잘 수용했다면 부모처럼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따라서 부모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미리 경험하게 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부모가 자녀의 미래 삶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는 우리가 익숙해 있는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 미래사회에서 경제력의 크기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질이나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그가 지닌 지적 능력이 될 것이다. 단순히 무엇을 알거나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창조하며 그것을 종합하고 재구성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경제력의 원천이 된다. 미래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을 낳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유산과 가정환경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감성적 능력의 차이보다는 배우고 판단하고 새롭게 만들고 종합하고 재구성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의 차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사회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면 개개인이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배워 알고 만들며, 아는 것을 종합하거나 재구성해서 그것을 슬기롭게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까지 지녀왔던 교육과 훈련에 관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함을 시사한다.” (강홍렬 외, [메가트렌드 코리아], 2006: 62-63)

이 인용문에서 말하는 미래형 패러다임의 핵심요소들 중의 하나가 창조적 사고력인데, 창조적 사고는 모든 분야를 아우르고 통합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전문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은 오히려 파편화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 정보의 기원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2007: 5). 문제는 대부분의 가정은 물론, 우리 교육계 또한 이런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미래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에만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는 기업 영역에서 쏟아 내는 미래에 관한 정보들이 교육정책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근 나라의 교육을 담당할 주무부처의 이름에서 ‘교육’이라는 단어를 빼버리려고 한 것은 이른바 ‘교육마인드’를 ‘기업마인드’로 대체하는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사건이라 하겠다.

3. 사유하는 부모의 의미

그런데 부모가 성찰적 사유 능력을 갖추면 자녀의 인성과 품성에는 긍정적이겠지만, 결국 경쟁력은 떨어져서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의 두 젊은 경제학자인 스티븐 레빗과 스테펀 더브너(Steven D. Levitt and Stephen J. Dubner)가 행한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그들은 경제학을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대표한다’는 윤리학과 대비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경제학은 “측정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학문의 상위에 위치하며, 두서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보를 신뢰성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강력하고 융통성 있는 도구로 구성되어 있어, 한 요인이 미친 영향 혹은 전체적인 결과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다음의 몇 가지 기본전제에 기초하여 기존과는 다른, “아주 특별한 시각”으로 경제를 바라본다면, 경제학이 사용하는 도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다양한 주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스티븐 레빗과 스테펀 더브너, [괴짜경제학], 2005: 30-31

첫째, 인센티브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이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이해하는 것, 혹은 그것을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폭력범죄에서 스포츠 부정행위, 온라인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다.

둘째,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 통념 가운데는 잘못된 것들이 많다. 사회통념은 대개 매우 교묘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에 진실을 꿰뚫어보는 일이 악마의 손을 빌려야 할 정도로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셋째, 전혀 예상치 못한 극적인 결과는 흔히 거리가 멀고 미묘한 요인을 원인으로 한다. 수수께끼의 해답이 항상 눈앞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넷째, 소위 ‘전문가들’(범죄학자에서 부동산중개업자에 이르기까지)은 정보의 우위라는 강점을 자기 자신의 아젠다(agenda)를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에는 ‘정보의 우위’가 매일매일 감소하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의 게임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

다섯째, 무엇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알면 복잡한 세상이 훨씬 단순해진다. 혼란과 모순의 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 도구로 숫자의 힘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법을 배우면, 그 전에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수수께끼들까지 풀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 사례로, 학교성적과 상관관계가 있는 ‘부모 요소들’에 대한 ‘상식’과 실제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이 서로 차이가 있다고 레빗은 말한다. 레빗은 분석에 따르면,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와 없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스티븐레빗과 스테펀 더브너, 위의 책, 2005: 229-230):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들	상관관계가 없는 요소들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다.	가족 구성이 온전하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다.	최근 주변환경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첫아이의 출산 나이가 30세 이상이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니기까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
아이의 출생 당시 몸무게가 적었다.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자주 데리고 간다.
아이의 부모가 집에서 영어를 쓴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체벌한다.
입양된 아이다.	아이가 TV를 많이 본다.
부모가 PTA 활동을 한다.	부모가 거의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집에 책이 많다.

레빗은 상관관계가 있는 요소 목록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묘사하고 있고, 상관관계가 없는 목록은 부모가 ‘아이를 박물관에 데려가든, 체벌을 가하든, 자주 책을 읽어주든, TV에 빠져 있게 하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교육 수준이 높고 성공적이며 건강한 부모의 아이가 학교 성적이 높은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결과는 “현실적으로 자녀 양육 기술이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물론 부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 양육 책을 집어드는 그 시기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는 사실을 실제 데이터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적절한 데이터 분석방법을 통하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하는 점이 자녀의 학업성적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것이 레빗의 주장이다(스티븐 레빗과 스테펀 더브너, 위의 책, 2005: 230-231). 즉, 부모의 ‘사람됨’이 궁극적으로는 자녀의 학업 성취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부모의 ‘사람됨’을 어떻게 질적으로 향상시킬 것인가? 결국 성찰적 사유 능력이 있는 부모가 소위 말하는 ‘자녀의 성적을 높여주는, 경쟁력 있는 부모’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젯밥에만 관심을 가지고 ‘흉내’만 내서는 결코 ‘사유하는 부모’가 될 수 없다. ‘생각 없는 아이히만’을, ‘학식있는 괴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로, 자녀에게 가르치고 싶은 삶을 앞서 살아보려는 부모라면 ‘덤’으로 학업성적도 좋은 자녀를 기대해도 좋겠다.

부모의불안이자녀를잡는다-고병헌.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