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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카와 죠지-더 파이팅>
<장태관 - 아웃복서>
<호소노 후지히코 - 타로>
<노베 토시오 - 파이팅! 모나코와 소라>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최기자는 복싱을 만화로 배웠습니다-_-;
지금도 만화는 좋아합니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요샌 복싱만화는 잘 안나오더라구요.
스포츠 만화를 보다보면 그 종목의 위대한 실존 선수가 언급되거나 그 선수가 모델인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토마스 헌즈는 이 분야의 단골입니다. VIP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네요.
월간연재를 넘어 계간연재를 향해가는 최기자가 묻는다. 오늘은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위대한 복서, 디트로이트의 저격수 토마스 헌즈에 관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958년 네바다 주 멤피스에서 9남매중 셋째로 태어난 헌즈는 여느 흑인 복서들과 다를 바 없이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생활을 보냈습니다. 헌즈가 여섯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처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고고 그것은 헌즈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되었습니다. 힘들게 9남매를 키우던 헌즈의 어머니는 흑인폭동을 계기로
디트로이트로 이주하게 됩니다.
헌즈가 살던 이스트사이드 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강력범죄가 들끓는 전형적인 슬럼가였습니다.
헌즈의 어머니는 청소부, 미용실 보조 등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9남매를 길렀고 효자인 헌즈는 그런
어머니의 고초를 알아 범죄와 탈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얌전한 모범생으로 자라납니다.
큰 키로 인해 농구선수가 꿈이었던 소년 헌즈였지만 그 큰 키로 인해 헌즈는 불량배들에게 종종 표적이
되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복싱을 배우기로 결심합니다.
헌즈의 어머니는 유순한 큰 아들이 사람을 패는 운동인 복싱을 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결국 헌즈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고 1970년 디트로이트 시내의 킹솔로몬 바티스타 교회의 복싱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열다섯살이 되던 해 헌즈는 복싱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좀 더 큰 체육관을 찾게 되는 데
이 체육관이 바로 지금도 명문 체육관으로 알려져 있는 크롱크 짐이었습니다.
<헌즈를 비롯 힐머 켄티, 밀턴 맥크로이, 지미 폴 등 수 많은 복싱 챔피언을 길러낸 디트로이트의 명문 체육관 크롱크 짐
그리고 크롱크 짐의 상징이었던 옐로우 트렁크.>
크롱크 짐에서 밴텀급으로 데뷔한 헌즈는 2승 4패의 부진한 출발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자신의 참 스승인 엠마뉴엘 스튜어트
의 꾸준한 지도로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구보다 깊은 유대를 보여준 스승과 제자 엠마뉴엘 스튜어트와 토마스 헌즈
그리고 그 둘에게 지지 않는 스승과 제자 김주태와 신현제ㅋㅋ>
크롱크로 옮긴 첫 해 주니어올림픽 밴텀급에서 우승을 차지한 헌즈는
75년 AAU(Amateur Athletic Union) 라이트급 준우승(상대는 아론 프라이어 판정패)
76년 몬트리얼 올림픽 라이트급 미국 대표 선발전 결승까지 진출 등
(헌즈를 이기고 올림픽에 진출한 하워드 데이비스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마추어에서 굵직굵직한 행보를 보여준 헌즈는 77년 11월 아마추어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프로로 전향하게 됩니다.
아마추어 시절 155승을 거두었지만 RSC(Refree Stop Contest:심판 중지 시합
프로로 치면 K.O!)는 12회에 불과할 정도로 펀치력이 부족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헌즈는 체격이 점점 성장해나가고 프로 데뷔 후 완성된 체격으로 인해
슬러거로 변신하게 됩니다.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프로 데뷔전에서 제롬 힐을 상대로 2라운드 KO로 승리.
데뷔전을 시작으로 17연속 KO승을 기록합니다.
어쨌거나 나날이 스튜어트의 지도 아래 기량이 상승해 나간 헌즈는
주(州) 챔피언들과 상대하게 되는데요.
펜실베니아 주 챔피언이었던 지미 로스웰을 1라운드만에 텍사스 주 챔피언
라울 아기레를 3라운드에 끝내버리고 WBA 8위의 강타자 에디 마르셀을 역시 2라운드 ko로 이겨
세계 랭킹에 진입. 레너드와도 싸운 적이 있는 브루스 핀치를 3라운드 KO로 이기고
여기서 지금도 회자되는 별명인 HITMAN! 저격수라 불리우게 됩니다.
<세계적인 복싱잡지 RING의 표지모델이 된 헌즈.
디트로이트의 저격수는 레너드와 듀란을 조준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잠시 이야기를 딴 데로 돌린다면 헌즈는 히트맨이라는 별명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격수, 암살자라는 뜻도 있지만 살인강도라는 의미도 있어서 라고 하네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또 다른 별명 중 하나인 모터 시티 코브라(Motor City Cobra)를 좋아했고
당시에 많은 사람들도 히트맨 보다 모터 시티 코브라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웠다고 합니다.
<포드, GM,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있는 미국 최대의 공업도시이자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
아마도 한국사람들에겐 영화 로보캅의 배경으로 더 알려져 있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거침없는 연승가도를 달리는 헌즈는(28전 28승 26KO) 1980년 8월 2일 세계 타이틀에 도전합니다.
상대는 76년 7월 푸에르토리코의 앙헬 에스파다를 2회 TKO로 이겨 챔피언 등극 후 11전의 방어전을 치루는 동안
11승 10KO로 거기다 도전자 두 명의 턱뼈를 부숴버린 죠 브레이커(Jaw Breaker:해석하자면 턱 파괴자?)
쿠에바스와 웰터급 타이틀을 놓고 겨루게 된 거죠.
하지만 경기 전 예상은 헌즈의 우세였습니다. 쿠에바스가 강한 챔피언이긴 하지만
그 기세가 너무도 강했고 신체조건 및 스타일상 헌즈의 우세를 점쳤던 거지요.
그리고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헌즈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쿠에바스와 헌즈 전의 포스터. 듀란과 레너드전이 세계대전이라고 불린 것을
착안했는 지 2차 세계대전이라 적혀있다.
참고로 이 시합에서는 헌즈와 쿠에바스 전 말고도 두 개의 세계 타이틀전이 열렸다.
사무엘 세라뇨vs우에하라 야츠츠네의 주니어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헌즈의 체육관 동료이기도 한 힐머 켄티vs오영호의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
하지만 우에하라는 6회 통렬한 역전 KO로 벨트를 거머쥐었지만 오영호는 9회 TKO패로
아쉽게 타이틀 획득에 실패하고 만다.>
<쿠에바스의 턱에 작렬하는 헌즈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타이틀을 획득한 후 헌즈는
“나는 어떤 스포츠를 했더라도 성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알리 선배의 충고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알리 선배의 충고대로 시합했더니 그냥 경기가 끝나버렸다. 그리고 시합 전 쿠에바스는 나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녀석은 자신의 링슈즈에 신경 쓰는가 하면 플로어쪽에 눈을 돌리기도 하고 계속 아래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승리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웰터급 타이틀 획득은 내 목표의 1/4에 불과하다. 나는 앞으로 주니어미들,
미들에 이어 라이트헤비급까지 손에 넣겠다”
라는 챔피언 다운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2차 방어까지 성공적으로 치룬 그는 오랜 숙원을 풀게 됩니다.
바로 라이벌 슈거레이 레너드와의 통합 타이틀 매치.
<헌즈와 레너드의 1차전 포스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일진일퇴의 공방전 레너드와 헌즈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승부를 펼쳐나가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도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6라운드 이후
경기는 레너드가 조금씩 우세를 보이자 헌즈는 철저한 아웃복싱으로 포인트를 유리하게 가져가는데
13라운드 슬립다운 이후 레너드는 14라운드에서 맹렬하게 덤벼듭니다. 그리고 라운드 중반
레너드의 롱훅이 헌즈의 턱에 적중하고 그 뒤 터지는 연타. 레프리는 시합을 중지합니다.
14라운드 1분 45초. 헌즈의 첫 패배기록이었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꼭 레너드에게 복수하고 싶다.-시합 종료 후 헌즈의 인터뷰>
첫 검은별을 달았지만 헌즈는 좌절하지 않고 레너드와의 2차전을 추진하면서 재기전을 준비합니다.
주니어 미들급으로 월장 후 듀란을 이긴 적도 있던 어니 싱글태리를 상대로 깔끔하게 판정승을 거둔 헌즈는 이후
지명 도전자 자격으로 천재 윌프레드 베니테즈에게 도전하게 됩니다.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은 관심도 없다. 헌즈를 빨리 물리치고 미들급의 해글러에게 도전하겠다."
"난 이 경기에는 한 손만 쓰겠다. 다음 경기에 다른 한 손을 써먹겠다."
라는 둥의 시합을 하기 전 부터 둘은 치열한 신경전을 보여줍니다.
둘의 시합은 이름값에 비해 좀 루즈했다는 평이 많지만 헌즈는 베니테즈를 판정으로 꺾고 2체급 제패에 성공하게 됩니다.
<주니어 미들급 1, 2차 방어전을 모두 승리했지만 판정으로 이긴 헌즈는 이제 헌즈의 펀치력도
한 물 간 게 아니냐?는 논란을 들었고 3차 방어 상대인 듀란을 2라운드 KO로 이기며 그 논란을 조용히
잠재웠다. 사진은 큰 머리와 짧은 팔다리가 최기자를 꼭 닮은 복서 로베르토 듀란과의 3차 방어전>
그리고 헌즈는 다시 미들급으로 월장. 미들급의 독재자 해글러에게 도전하지만 3라운드에 KO패
그 후 1년에 가까운 공백을 갖습니다.
<헌즈와 해글러의 미들급 타이틀 매치.
그리고 복싱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4인방(좌부터 레너드 해글러 헌즈 듀란)>
이후 오랫만에 링으로 돌아온 제임스 슐러를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침몰시키며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헌즈는 해글러와의 재대결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가시화 되는 가 싶었지만
은퇴했던 레너드가 컴백하고 해글러는 레너드와의 대결을 가지기로 합니다. 헌즈는 이 경기에 대해
"랭킹에도 들지 않은 레너드가 어떻게 해글러와 경기를 치룰 수 있단 말인가.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라고
분통을 터뜨렸으며 "레너드는 비겁한 선수다. 해글러를 이길 수 없어서 은퇴한다고 해놓고선 해글러와 무가비
전을 보고 해글러가 예전같지 않다는걸 보고선 도전하는 거다."라고 맹렬히 독설을 퍼붓습니다.
결국 이 뒤로도 헌즈와 해글러의 재대결은 끝끝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해글러와의 재대결이 물건너가고 wbc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헌즈는
존 무가비와의 의무방어전이 잡혔지만 4체급 제패를 이유로 타이틀을 반납하고 두 체급 위인
라이브 헤비급 타이틀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챔피언 데니스 안드리스를 상대로 6회에 네번 다운, 9회에 또 한 차례 다운을 뺏으며
10라운드 TKO. 복싱사상 아홉번째 3체급을 제패합니다.
"누구와 싸워도 자신있다. 복싱 사상 최초로 4체급 석권의 신화를 이루어 복싱사상 불멸의 챔피언으로 남겠다."
3체급을 제패한 헌즈는 wba 챔피언인 마빈 존슨과 통합 타이틀 전을 제의했지만 존슨 측의 고사로 그만두게 되었고
87년 4월 레너드가 해글러를 이긴 뒤 미들급 타이틀을 반납하자 다시 미들급으로 체급을 내려 후앙 롤단과 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합니다. 꿈의 4체급 도전을 위한 마지막 도전이었습니다.
<후안 롤단과의 미들급 타이틀 매치에서 승리를 거둔 헌즈는 복싱 역사상 최초로 4체급을 제패하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무하마드 알리가 복싱 대통령이라면 난 차기 복싱 대통령이다. 레너드든 해글러든 누구든 좋다. 다시 붙자."
라며 자신감을 보여준 헌즈. 하지만 결국 재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차 방어전에서 천적 아이언 바클리를 만나 시종일관 압도하다가 충격적인 3회 KO를 당하게 됩니다.
패배 이후 5체급 제패에 도전하기 위해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풀헨시오 오벨메이야스에게 도전장을 던지지만
오벨메이야스 측의 보이콧으로 성사되지 못했고 당시 신생복싱기구인 WBO와 NABF 슈퍼 미들급 타이틀을 놓고
제임스 킨첸과 대결. 판정을 거두며 5체급 제패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래왔던 레너드와의 리매치도 이때 벌어집니다.
<7년 9개월 만의 재대결. 30년 전의 포스터가 현재 한국복싱 포스터보다 멋져보인다.>
둘 다 예전같은 강맹함도 민첩함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호랑이는 늙어도 호랑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2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심판진은 무승부라는 판정을 내렸고 헌즈는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복싱계에서의 판정 논란은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있다. 헌즈와 레너드의 2차전은
판정시비가 일어나면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판정논란 경기 중에 하나이다.>
이후 헌즈는 계속 복서로서의 열정을 보여주며 활동을 계속 합니다. 마이너 기구였지만
크루저급까지 제패하며 6체급을 제패하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마지막 경기인 2006년 2월 샤논 랜드버그 전에서 10회 TKO승까지 35년이란 세월간 링을 누비며
67전 61승(48KO) 5패 1무승부의 전적으로 복서 인생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복서가 누구냐는 질문에 토마스 헌즈가 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허나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복서가 누구냐는 질문에 토마스 헌즈라는 답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그만큼 매력적이었고 전 세계 복싱팬들을 열광시킨 주역이니까요.
<요즘 헌즈는 아들인 로널드 헌즈의 트레이너로써 활약하고 있다. 아버지를 꼭 닮은 로널드 헌즈는
작년에 아쉽게 WBA 미들급 챔피언 펠릭스 스툼에게 패했고 역시 2세 복서인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에게 패했다.>
헌즈는 올해 2012년 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이 내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복서가 아닌 트레이너로써 제 2 라운드를 시작한 헌즈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봅니다.
p.s-이 글은 딴지일보 추억의 명승부편과 카페 링사이드 스토리 명복서 열전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p.s2-관장님. 미국에서 헌즈 인터뷰 따올테니 출장비 좀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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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감솨~~
아~ 이 최기자가 그 최기자셨군요.ㅋㅋㅋ 글잘 읽어봤슴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