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의 야구탐사] 시골학교 야구부의 기적과 비극
시골중학 모가중 야구부는 쓰러진 그물망처럼 꿈을 잃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체육교사 고한이는 두 번 하늘을 날았다. 한번은 나라를 위해, 다른 한번은 학교 야구부 덕분에 날았다. 하지만, 그는 요즘 들어 하늘에서 추락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그럴 때면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마의 땀을 매만지며 현실이 주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쉰다.
“휴우-.”
과연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 교사는 찬물을 들이키며 안개 같은 하얀 한숨을 또 한번 토해낸다. 그러나 불행히도 고 교사의 악몽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그의 혼과 열정이 담긴 시골 중학교 야구부가 끝을 모르고 비극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전교생 86명의 시골 중학교, 야구를 통한 부활의 길을 선택하다.
모가중 정문(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학교 보세요. 정말 한편의 그림 아닙니까?”
고 교사는 지인들이 학교를 찾을 때마다 루브르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된것 마냥 학교 풍경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가 근무하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모가중학교는 그의 자랑만큼이나 수려한 풍경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게 65년 전통의 교사(校舍)는 낡았으나 소담스럽고, 교사를 에워싼 산은 낮으나 웅장하며, 교문 앞의 저수지는 깊으나 잔잔했다.
물론 도시 출신 교사였다면 모가중의 풍경은 한편의 그림보단 창살 없는 감옥에 가까울지 몰랐다. 말이 인구 20만 명의 이천시 소재 중학교지, 학교가 있는 모가면은 인구 5천 명이 채 되지 않는 영락없는 시골인 데다 모가중도 전교생 86명의 미니 학교였다.
하지만, 고 교사에겐 그건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교육 열정을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기엔 되레 미니학교가 최적이라 믿고 있었다. 사실 그는 ‘열정’ 하나로 교사가 된 이였다.
경희대 태권도학과 출신의 고 교사는 엘리트 태권도인의 길을 마다하고,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나라 사랑의 열정 하나로 택한 진로였다. 특히나 그는 특수전사령부 공수특전여단 고공낙하팀의 대응로 근무하며 수십 번의 강하훈련을 받았는데, 낙하산에 매달려 하늘을 날 때마다 나라를 지킨다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서른 살의 늦은 나이에 임용고사에 합격해 체육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미래 이 나라의 중심이 될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군복을 입고 나라를 지키는 임무만큼이나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혈맥처럼 뛰는 가슴의 울림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러던 2012년 11월. 다시 고 교사의 열정에 불을 지르는 일이 터졌다.
“네? 뭐요? 야구부요?” 고 교사는 안00 모가중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방금 안 교장은 고 교사에게 “우리 학교에 야구부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화두를 던진 터였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고 교사는 “에이, 교장 선생님. 농담하지 마십시오. 우리학교 학생수가 얼마나 된다고 야구부를 만듭니까. 설령 만든다고 여기 같은 시골 중학교에 누가 야구 하러 오겠어요. 그리고 여기 이천은 축구의 도시 아닙니까”하며 안 교장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그러나 안 교장의 표정은 단호했다.
“이봐 고 선생. 잘 생각해봐. 우리 학교 학생수가 몇 명이야? 86명이라고. 관내 초교가 몇 개나 있어? 2개야, 2개. 지금처럼 관내 초교 졸업생이 갈수록 줄면 우리 학교에 입학할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어? 기껏해야 서너 명일 거라고. 그럼 학교가 유지되겠어, 안 되겠어?”
고 교사가 “안 되겠죠”라고 답하자 안 교장은 “바로 그거야. 지금은 우리 모가중이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야구부를 창단하면 입학생이 많아질 거 아니냐고. 그러다 보면 예전처럼 지역 명문중으로 재도약할 수도 있고 말이야.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자네가 중심이 돼서 2012년 창단을 목표로 한번 뛰어보라고”하며 고 교사의 등을 두들겼다.
내심 ‘학교에 운동부가 있었으면’하고 바랐던 고 교사는 안 교장의 야구부 창단 지시가 떨어지자 곧바로 움직였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2012년 3월까지 야구부를 창단하려면 최소 2월 안에 감독·코치를 선임하고, 야구부원들을 모집해야 했다. 개인종목이면 모를까 야구같은 단체 종목에서 코칭스태프와 25명이 넘는 학생선수들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모집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고 교사에겐 열정이 있었다.
2012년까지 교정에 웃음이 끊이지 않던 모가중은 지역의 대표적 '문제 학교'로 전락했다 |
학교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야구부 창단의 기틀을 닦은 고 교사는 안 교장과 함께 초대 야구부 감독 공개 모집에 나섰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화강암처럼 단단했다. 주변에서 추천받은 야구 지도자 대부분은 서울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설령 있다손 쳐도 모가면 시골까지 오겠다는 지도자는 극소수였다.
우여곡절 끝에 감독 후보 5명의 이력서를 받은 모가중은 초대 야구부 감독 선임에 들어갔다. 그 가운데 고 교사의 마음을 잡아끈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완수 현 모가중 감독이었다.“사실 5명의 감독 후보 가운데 꽤 괜찮은 분이 많았어요. 프로 출신 지도자부터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에 비하면 김완수 감독은 무명 지도자에 가까웠어요. 가뜩이나 한동안 야구계를 떠나 있던 사람이었죠. 그런데 야구계 평이 정말 좋았습니다. 어느 분이 그러시더군요. ‘김완수는 모든 중학교 학생선수 부모님들이 꿈꾸는 좋은 감독의 표상’이라고요. 실제로 면접을 해보니까 그 말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더군요. 좋은 감독 이전에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고 교사의 회상이다.
다른 학교 구성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는지 모가중은 야구부 초대 감독으로 김완수를 선택했다. 그리고 초대 야구부장으로 학생부장·진로진학부장·체육부장·3학년 부장·3학년 담임 등 1인 5역을 맡고 있던 고 교사를 임명했다. 보통의 교사라면 손사래를 칠 일이었지만, 고 교사는 흔쾌히 야구부장 제안을 수락했다. 다른 교사에게 짐을 지우느니 자신이 그 짐을 메는 게 낫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고 교사는 김완수 감독과 모가중 야구부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맹세했던 약속을 지금도 기억한다.“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 ‘감독님, 우리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이나 부모님께 폐끼치는 일은 하지 맙시다. 절대로 학부모님들과 밥 먹거나 술 마시지 말고, 학부모 면담도 꼭 외부가 아닌 학교에서 합시다’라고요. 김 감독이 기다렸다는 듯 ‘당연하지요’ 하더군요.”
야구부장 고 교사와 김 감독은 금세 단짝이 됐다. 그렇다고 야구부 창단이 본궤도에 오른 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학생선수 수급은 시작도 못 한 상황이었다. 고 교사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생각해보세요. 감독님 공개 모집할 때도 이 시골에 오겠다는 분이 극소수였는데, 학부모님들과 어린 학생들은 어땠겠습니까. 속으로 ‘이거 어렵겠다’ 싶었죠.”
그때 진가를 발휘한 이가 김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서울과 경기지역 초교와 리틀야구부를 돌며 학생선수 모집에 나섰다. 현재 모가중 3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의 아버지는 2012년 겨울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초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준비할 때였어요. 아들 연습경기를 보러 갔는데,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옆에 있던 학부모님이 ‘저기 김완수 감독님 오셨네’하며 그쪽으로 뛰어가시는데 처음엔 누군가 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리틀야구계와 초교야구계에서 김 감독님은 ‘야구 지도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야구성적만큼이나 학업성적에도 관심이 많은 지도자’로 유명하셨어요. 특히나 ‘학부모와 식사, 술을 하지 않는 청렴한 지도자’로 불리고 계셨죠. 그런 감독님이 중학교 학생선수를 모집하러 오셨다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가족회의를 했죠. 결론요? 아들도 흔쾌히 승낙해서 아들을 모가중으로 진학시켜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고교에 다니는 당시 중3이었던 B군의 아버지도 같은 이유로 아들의 모가중 전학을 결심했다.
“아들이 야구부원으로 활동했는데, 실력도 실력이지만 ‘영’ 공부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리고 친구들도 야구부원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김 감독님이 모가중 야구부원을 모집한다는 소릴 들었어요. 김 감독님을 찾아갔죠. 그때 김 감독님이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뭐였는지 아세요? ‘학부모님, 만약 아드님을 야구선수로 대성시킬 지도자를 찾는다면 저는 제격이 아닙니다. 대신 학업과 야구를 병행할 수 있는 학생선수로 키우고 싶으시다면 제가 적격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더군요. 고한이 야구부장님 역시 ‘아들을 야구기계로 만들고 싶으시다면 우리 학교는 아닌 것 같다’면서 ‘아드님을 학원 대신 자연과 뛰놀게 해주고 싶다면 우리 학교에 꼭 오시라’고 했어요. 두 분 말씀에 믿음이 가더군요.”
불가능할 것 같았던 학생선수 수급은 두 달도 되지 않아 성공적으로 끝났다. 전교생 86명의 시골 미니학교 모가중이 120명의 중학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갈빗집 아이들’의 기적 같은 우승
2012년 모가중 야구부 창단식 장면(사진=모가중) |
감독, 코치 선임과 학생선수 수급을 순조롭게 끝낸 고 교사는 2012년 3월 23일 야구부 창단식을 성공리에 마쳤다. 그러나 한숨을 돌릴 새도 없이 다시 새로운 ‘현실의 벽’과 마주쳐야 했다. 바로 야구부원들의 숙식 문제였다.
“야구부원 대부분이 서울, 인천, 수원, 전북 등에서 온 아이들이었어요. 원거리에 사는 아이들이 많고, 원체 어린 친구들이라 꼭 기숙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모가중이 원체 작은 학교인지라, 기숙사가 있을 리 만무했어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원거리나 혹은 원룸에서 통학하게 할 순 없었죠. 김 감독과 저 그리고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긴 학부모님들을 봐서라도 정말 그럴 순 없었습니다.” 고 교사의 말이다.
학교 측은 고심 끝에 이천시 대월면에 있는 예전 대형 갈빗집 건물을 기숙사로 활용키로 했다. 이곳을 기숙사로 선택한 덴 저렴한 임대료도 한몫했지만, 건물 앞에 공터 2면이 존재한다는 게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막상 야구부 창단은 했는데, 아이들이 훈련할 수 있는 야구장이 없다는 게 문제였어요. 학교 운동장은 야구장으로 쓰기엔 악조건이 많았고, 학교 인근에 있는 사회인 야구장은 조명시설이 없어 야간훈련이 불가능했어요. 주변에서 ‘무슨 폐업한 갈빗집을 기숙사로 쓰냐’ ‘전용구장이 있어도 성적 내기가 힘든데 야구장 하나 없이 어느 세월에 우승하겠느냐’고 비웃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곳이 최적의 공간이었습니다. 최소한 거긴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밤이 돼서도 자율훈련할 수 있는 공터라도 있었으니까요.” 고 교사의 회상이다.
김 감독과 고 교사는 교대로 기숙사 사감을 맡았다. 두 이의 철저한 관리 덕분인지 학생선수들은 사고 없이 학업과 야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가중 야구부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했다.
모가중은 처음부터 야구부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선수들은 정규 수업을 모두 받고, 숙제까지 마친 상태에서 훈련해야 했다. 당연히 훈련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도내 대회에서 번번이 패전의 고배를 마시고, 창단 6개월 만에 겨우 첫 승리를 거둔 것도 학업과 야구를 철저하게 병행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고 교사의 열정과 김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 그리고 학교 측의 지원과 모가면 주민들의 응원, 마지막으로 학부모들의 ‘선을 넘지 않는’ 뒷바라지로 모가중 야구부는 빠른 속도로 진화해나갔다. 특히나 ‘갈빗집 아이들’ ‘공터 야구선수’란 비아냥은 모가중 학생선수들에겐 더없이 강렬한 자극제이자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아이들은 찰흙처럼 단단한 팀 워크로 뭉쳤고,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나가 됐다.
그러던 2012년 10월. 제9회 성남시장기 중학교 야구대회에서 모가중 야구부는 아마추어 야구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용인 송전중을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8강에 진출한 뒤 수원 매향중마저 승부치기 끝에 누르고서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경기지역 야구인들은 모가중의 준결승행을 다소 운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모가중은 준결승에서 우승후보로 꼽힌 성남 매송중을 6대 3으로 꺾고 결승에까지 진출했다. 고 교사와 김 감독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결승전 상대가 야구명문 부천중이기에 모가중의 기적은 거기서 끝날 게 확실해 보였다. 그즈음 아마추어 야구계에서도 “창단 첫해 대규모 대회에서 우승한 중학 야구부는 지금껏 없었다”는 말로 모가중의 우승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고 교사는 한껏 긴장한 아이들에게 “결승전은 즐기면서 치르자”고 격려했다.
모가중 학생선수들은 고 교사의 격려대로 즐기면서 결승전을 치렀다. 이때 어른들과 아이들이 깨달은 게 있었다. 즐기면서 뛰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아무래도 역부족인 경기였어요. 상대는 야구 명문중, 우리는 창단 7개월의 신생팀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우리가 4대 1로 이겼습니다. 우리 아이들 실력이 상대 팀과 비교해 역부족이긴 했지만, 정신력에선 상대 팀이 우리 팀에 역부족이었거든요.” 김 감독은 지금도 당시 우승 장면이 연상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2013년 성남시장기배에서 창단 7개월 만에 우승컵을 차지한 모가중 야구부 |
모가중의 성남시장기배 우승은 기적 그 이상이었다. 창단 7개월의 오합지졸 팀, 그것도 변변한 야구장 하나 없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 일궈낸 우승이었다. 무엇보다 창단 첫해 대규모 대회에서 우승한 첫번째 팀이 된지라, 더 가치가 있었다. 지역 최초의 학원야구팀 모가중의 우승은 모가면 주민들에게도 자랑거리였다.
취재 중 만난 모가면 주민은 “평생 고향 모가면에 살면서 우리 지역 아이들이 어디 나가 우승했다는 소릴 처음 들었다”며 “신문에서 ‘모가중학교 야구부 우승’이란 기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만세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환하게 웃었다.
고 교사는 우승을 축하하는 아이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특전사 시절 하늘을 날던 뿌듯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야구부 지원 노력하겠다”던 교장. 그러나 현실은 야구부 감사 요청
모가중 야구부는 지역사회와 학교 그리고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로 경남 양산 원동중학교와 함께 시골 야구부의 롤모델이 됐던 학교다. 그러나 지금은 지역사회와 학교 그리고 학부모가 불협화음을 일으킬 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잘 보여주는 문제 야구부로 전락했다 |
창단 첫해 야구부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고, 지역의 자랑이 됐을 뿐만 아니라 학생선수들의 고교 진학 결과도 좋았다. 실제로 모가중 중 3 학생선수 10명 전원이 야구부가 있는 고교로 무리 없이 진학했다(성남 야탑고 4명, 안양 충훈고 3명, 안산공고 1명, 시흥 소래고 1명, 포항제철고 1명).
거기다 우승을 한 뒤 번듯한 기숙사까지 생겼다.
“2012년 11월이었어요.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던 미술관을 개조해 기숙사로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학교 안에서 생활하는 게 더 교육적이고 안전하다고 믿으셨던 것 같아요. 당연히 아이들과 학부모님들 모두 환영 일색이었습니다.”
고 교사의 말대로 아이들은 교내 기숙사가 생기자 제집이 생긴 것처럼 기뻐했다. 독지가도 나타났다. 야구부 학부모 가운데 한 이가 미술관 확장 공사를 위해 3천만 원을 본인 명의로 대출받아 내놓은 것이었다. 이때 다른 야구부 학부모들은 십시일반 돈을 거두려 했다. 그러나 이 학부모는 미술관이 확장 공사를 끝내고 기숙사로 탈바꿈하자 “아이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쾌척한 돈”이라며 다른 학부모들의 뜻을 극구 사양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도 지원의 손길을 보냈다. KBO는 이천지역 최초의 학원야구부인 모가중에 1억5천만 원(1년에 5천만 원씩 3년 지원)의 지원금을 약속하며 “아이들의 꿈을 위해 학교가 계속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2013년을 맞은 고 교사는 꿈에 부풀었다.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고도 좋은 성적을 계속 낸다면 색안경을 끼고 운동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좋은 메시지가 될 것 같았어요. 특히나 우리 아이들이 기숙사가 생긴 다음부터 학교생활을 더 행복해 하는 것 같아 ‘더 좋은 야구부를 만들어야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선지 2013년 새 학기가 시작하는데, 제가 아이들보다 더 설레고 신이 나더라고요(웃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모가중 야구부의 비극은 새 학기서부터 시작했다. 발단은 안 교장의 이임이었다. 야구부 창단을 이끌던 안 교장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모가중을 떠났다. 대신 김형필 신임 교장이 2013년 3월 1일 신임 모가중 교장으로 부임했다.
모가중 학교 구성원들은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김 교장을 맞이했다. ‘우려 반’은 “여성 교장 선생님은 운동부를 싫어한다”는 편견과 “신임 교장 선생님이 과거 구리 Y 중학교 교감 재직 시 야구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에서 출발했다. 반대로 ‘기대 반’은 그해 3월 19일 야구부 학부모 간담회에서 김 교장이 했던 약속에서 비롯됐다.
당시 간담회 회의록을 보면 김 교장은 “야구부의 모든 사안에 대해 반드시 학부모들의 의견을 따르겠다”며 “야구부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갈 수 있도록 야구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의에 참가했던 학부모 K 씨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 학부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며 “4월께 야구부 학부모 총무와 부총무가 교장 선생님을 찾아뵙을 때도 ‘야구부원들의 학적관리에 어려움이 있으니 아이들의 주소를 기숙사로 옮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셔서 정말 눈물이 핑 돌만 감사한 마음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교장은 4월 16일 성남탄천야구장을 찾아 협회장기대회에서 경기 중이던 모가중 야구부원들을 격려하며 “야구부 발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재차 약속했다. 5월 들어서도 김 교장은 야구부 학부모들에게 “학교 가사실습실을 식당(조리실)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하며 “현 기숙사 현황이 열악하다고 판단해 이천시교육지원청에 신규 기숙사 예산을 요청하겠다”고 공언했다. 한발 나아가 김 교장은 “현 불법 증축돼 운영되는 기숙사를 양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때까지 야구부 학부모들과 김 교장 사이엔 별문제가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그 이면엔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야구부원 김 모 군의 어머니는 “6월 초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소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김 교장은 야구부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숙사 예산과 함께 야구부 버스 예산을 (이천시 교육청에)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야구부의 모든 불법을 교육청 감사를 통해 원칙적으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기숙사 예산과 야구부 버스 예산을 신청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만 해도 ‘야구부에 대한 애정이 참 많으신 분’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야구부의 모든 불법을 교육지원청 감사를 통해 밝혀내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한마디로 지금껏 우리 학부모들 앞에서 이것저것을 약속하시는 사이 뒤에선 야구부의 약점을 파고 계셨던 겁니다.”
야구부 학부모들은 김 교장이 교육청에 감사 신청한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이들의 야구부가 ‘불법을 자행해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교장은 감사 요청서 공개를 거부했다. 감사 요청서가 공개된 건 엉뚱하게도 모가면 주민들의 교장 퇴진 서명 운동 때문이었다.
모가중 야구부원들의 동계 훈련 장면(사진=모가중) |
6월 11일 모가면의 한 미용실에선 김 교장의 퇴진 서명운동이 시작됐다. 놀랍게도 퇴진 서명을 주도한 이들은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이었다. 당시 학교운영위에 참여했던 모 인사는 “모가중에 부임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김 교장이 독선적인 학교 운영을 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불만이 팽배했다”고 밝혔다.
“매년 모가중 수학여행 때마다 학부모 몇 분이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말았어요. 아시다시피 농촌 지역이고, 저소득층 가정도 꽤 있어 김밥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교장 선생님께서 카톡으로 ‘학생들의 행사 시 학부모 갹출경비는 절대 금지하고 있다’며 ‘김밥을 가져오지 마라’고 하셨어요. 한번 말하면 될 것을 교감 선생님을 통해 수차례 통보하니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김밥 싸주는 것도 불법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왔어요. 비단 김밥 사건만이 아니었어요. 교장 선생님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셨지만, 지역주민을 무시하신다는 인상을 줄곧 받고 있었어요.”
이 주민은 작심하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야구부도 주민들 사이에선 화제였어요. 사실 모가중 야구부가 생기면서 학교가 살아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자꾸 교장 선생님께서 ‘야구부원들은 불법 전입자다. 현 기숙사도 불법이다. 교육청은 야구부나 기숙사를 승인한 적이 없다’면서 야구부를 없애려는 듯한 행동을 취하셨어요. 그래 학교운영위원들이 나서서 ‘이건 잘못됐다’하면서 학교장 퇴진운동을 벌인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학교운영위원들이 자신의 퇴진 서명을 받고 다닌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 교장은 모가면장의 주선으로 학교운영위원들과 학부모회 임원 등이 참석한 긴급협의에서 자신의 입장을 전달했다. 그리고 야구부 학부모들 앞에서 ‘공개할 수 없다’고 버텼던 ‘야구부 감사 요청서’를 공개했다.
김 교장이 이천시교육청에 제출한 <모가중학교 운동부 운영 특별감사 요청서>에서 김 교장은 ‘학부모들이 3천만 원을 갹출해 미술관을 기숙사로 불법 증축했다’며 ‘2012년 야구부 창단 시 운동부 지도자 공개채용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기다 김 교장은 ‘학생선수 유치 과정에서 (학생선수들이) 위장전입 상태로 현재까지 학적관리가 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야구부 학부모들은 특별감사 요청서를 읽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항상 학부모들한텐 ‘학교 안 문제를 학교 밖으로 끌고 가려는 학부모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한 분이 교장 선생님이에요. 그런 분이 자기 제자들을 교육청에 감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더군요. 물론 필요하다면 해야죠. 중요한 건 감사 요청한 내용들이 거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모가면 주민 및 학부모, 졸업생 700명이 서명한 '모가중 교장 퇴진 서명 진정서'. 경기도교육청 김상곤 전 교육감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교육은 100년지 대계이고, 교육감은 교육을 바로 세우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러난 정작 그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임기 중 경기도교육감에서 물러났고, 그후 도 내 모가중 같은 사태가 벌어져도 선장 잃은 도 교육청은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김 교장과 학부모 그리고 주민들과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2013년 9월 17일 모가중 학부모 대표들과 주민, 졸업생 등 700여 명이 참여한 <모가중 교장 퇴진을 위한 진정서>가 경기도교육청에 전달됐다. 이젠 학교운영위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뭉친 상태였다. 진정인들은 “김 교장이 부임한 뒤 학교장의 일방적인 독선과 독단적인 학교 운영으로 모가중 및 모가면 지역 발전이 현저한 지장을 받고 있다”며 “학교와 지역발전을 위해 공모교장을 선임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자가 입수한 <진정서>엔 충격적인 내용이 여럿 보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게 김 교장이 학부모들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는 것과 김 교장이 전(前) 학교에서도 학부모들과 고소·고발을 주고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고소의 여왕’으로 불리는 시골 중학교 교장 선생님
김 교장이 학교운영위 부위장을 고소한 뒤 검찰이 조사한 내용. 법조계에선 학부모의 평범한 발언을 교장이 공무집행 방해행위로 고소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대화가 사라지고, 조정능력이 상실된 교육현장에선 고소, 고발이 난무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모가중 교장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고소의 여왕’이예요. 기자님도 고소당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6월 15일 모가중을 방문하기 전 학교 인근에서 만난 주민은 김 교장을 가리켜 ‘고소의 여왕’이라고 했다. 지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시골학교 교장이 ‘고소의 여왕’이란 달갑지 않은 별명이 달린 덴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김 교장은 학교운영위원장과 학부모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신 모 씨를 업무방해혐의로 역시 고소했다. 당시 고소 사건을 잘 기억하는 한 학부모는 “주민들과 학부모들이 원한 건 교장과의 소통이었다”며 “그러나 교장은 소통 대신 말도 되지 않는 고소장을 남발하며 학부모와 주민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고 목소릴 높였다.
기자는 몇 차례의 취재신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던 김 교장을 대한야구협회 관계자들과 함께 교장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 교장은 당시 <진정서> 사건을 “몇몇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학부모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해 받아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결국 진정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며 “내게 고소당한 사람들이 용서를 빌어 고소를 취하해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취재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자가 입수한 검찰의 ‘불기소 이유 통지서’를 보면 어째서 주민들이 ‘말도 되지 않는 고소장’이라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교장은 2013년 6월 12일 임시학부모 회의에서 “교육청에 특별 감사 요청한 자료를 공개를 공개하십시오”라고 주장한 학교운영위 부위원장 신 모 씨의 발언을 ‘학교장으로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교장실에서 신 씨가 “전 야구부 지도교사 고한이의 사퇴를 환원시켜주십시오”라고 요청한 것도 ‘물리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공무집행 방해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신 씨가 학교운영위 부위원장으로서 학교 회의에서 발언권을 얻어 자신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고, 학부모가 정상적인 학교장의 면담과정에서 학교장의 방침과 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일 뿐”이라며 “공무집행방해를 하였다고 인정할만한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 씨를 불기소(혐의없음)했다.
김 교장은 “자신이 용서해줬다”는 말을 썼지만, 실제론 신 씨처럼 무혐의를 받거나 김 교장 스스로 고소를 취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문에 역으로 김 교장이 무고죄로 고소돼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대통령도 비판하는 세상인데, 이 정도 정상적인 발언으로 공무집행 방해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상식적으로 공무집행 방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걸 고소인 본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소장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아마 이전에도 모가중에서처럼 학교 구성원이나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을 것”이라며 “대개의 교육자들은 고소·고발 대신 대화와 대협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모가중은 학년당 1학급의 미니학교다. 사진은 3학년 아이들이 체육수업을 받는 장면. 비야구부 아이들은 "야구부 아이들도 우리랑 똑같은 아이들"이라며 "수업 끝나고 우리가 미술학원에 가듯 야구부 아이들도 특기를 살려 야구장에 가는 것뿐"이라고 했다. 김 교장은 야구부의 폐해 가운데 하나로 "야구부에 폭력사건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체육수업 때 같은 반이던 야구부 아이 둘이 수업 도중 몸싸움을 벌인 것이었고, 야구부 합숙소 내 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어른들만 '야구부'를 특별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
사실이었다. 김 교장은 모가중 부임 전, 구리 Y중에서 야구부 학부모와 고소장을 주고받은 전력이 있다. 지금도 야구계에선 김 교장과 Y중 야구부 학부모들의 갈등은 전설로 남아있다.
Y중 사건을 잘 아는 한 야구 감독은 “당시 Y중 교감이던 김 교장과 갈등을 빚던 야구부 학부모 가운데 한 분이 가스통을 들고 학교에 찾아와 난리가 났었다”며 “김 교장과 그 학부모가 서로를 고소했다가 김 교장이 용인 N중학교로 교장 발령 나고서 쌍방 고소를 취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용인 N중학교에서도 김 교장은 학교 구성원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이때는 N중 교사들로부터 경기도교육청에 고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N중 사건을 잘 아는 한 교사는 “초임 교장이던 김 교장의 독선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 운영에 많은 교사가 힘들어하다가 결국 경기도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며 “교장 눈밖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인사 이동을 당하고, 심한 간섭을 받아 도저히 정상적인 교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나 이 교사는 “김 교장이 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조리사님들과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의 고유업무를 원리원칙을 내세워 끊임없이 참견하고 간섭하는 바람에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며 “사서 선생님들의 연이은 사직으로 도서관이 잠시 문을 닫기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진정서를 접수한 경기도 교육청은 감사를 벌였고, 결국 김 교장을 직위 해제했다. 2011년 9월 1일에 용인 N중에 초임 교장으로 부임했으니 채 1년도 안 돼 김 교장은 교장직에서 물러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김 교장은 경기도교육청과 교육부를 상대로 소청을 제기했고, 소청 결과 교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경기도교육청은 이후 김 교장을 시골학교인 모가중 교장으로 발령냈다.
모가중 학부모들과 주민들이 2013년 9월 경기도교육청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전(前) 학교 재직 시 학부모를 고소·고발하고 정직처분을 받았던 김 교장이 어떻게 우리 모가중에 부임하게 됐는지 경기도 교육청이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원리원칙의 교장, 그러나 자세히 들춰보면 허점투성이의 원리원칙
2014년 2월까지 모가중 야구부가 사용하던 교내 기숙사. 하늘색 표시가 김 교장이 '불법증축했다"며 교육청에 특별 감사 신청한 부분이다. 이곳은 아이들의 신발장과 보일러실을 설치한 부분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모가중 학부모들과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선 ‘모가중 감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교장이 “대화를 통한 해결 노력이 부족했다. 고소했던 학부모님들께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히고, “학생들의 실력향상과 특기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며 극적으로 사태는 봉합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후로도 김 교장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고소도 마찬가지였다. 김 교장은 전임 모가중 교장과 또 한 번의 고소전을 펼쳤다. 주민들 사이에서 “학생들에게 ‘대화와 타협’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허구한 날 고소·고발장만 남발하고 있다”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야구부에 대한 자세도 바뀌지 않았다. 2013년 11월 29일 김 교장은 야구부 학부모들에게 보낸 <야구부 운영 안내서>에서 ‘2014년 3월부터 학교 기숙사 이용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이유는 미술관을 증축한 기숙사는 불법 건축물이고, 야구부원들이 불법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과 6개월 전 기숙사를 양성화하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기숙사 폐쇄 안내문을 접한 학부모들은 김 교장을 찾아가 사실과 다르다고 항변했다.
“교장 선생님께선 매번 말씀하실 때마다 ‘학부모들이 3천만 원을 갹출해 미술관을 기숙사로 증축했다’ ‘기숙사는 학교운영위와 교육청에서 승인해주지 않은 불법 기숙사’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달랐습니다. 당시 야구부원 학부모님 한 분이 증축 비용을 전액 부담하시기로 했고, 전임 교장 선생님과 학교운영위원회의 승인 아래 미술관을 기숙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겁니다. 만약 기존 미술관 안에 현관, 화장실, 보일러실 등을 증축한 게 ‘불법 증축’이라 한다면 사실 할 말은 없어요. 원래 기존 학교 시설물을 증축하면 교육청에 허가를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교육청에선 ‘내화성 구조로 변경하고, 소화기 설치 등 몇 가지 문제점을 보강한 뒤 용도변경 신청 및 승인절차를 거치면 사용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보내오셨어요. 그리고 기존 미술관을 계속 기숙사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설계도면을 제출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 ‘교육청에서 설계도면을 제출하라는데 도면 작성에 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합니다. 저희가 비용을 부담해도 되는데 괜찮겠습니까’하고 물었어요.
처음엔 ‘알아서 하시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 설계도면비는 학부모들이 갹출해 부담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원체 교장 선생님께서 원리원칙을 따지시는 분이라, 혹여 나중에 ‘불법 갹출’이라고 하실까 봐 ‘교장 선생님. 설계도면 의뢰 시 드는 비용에 대해 교육청에 질의해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었죠. 그랬더니 무슨 말씀을 하신지 아세요? ‘그런 건 전혀 없으니까 교육청에 알아보지도 말고, 민원도 올리지 마라. 만약 그렇게 하는 학부모가 있다면 그 학부모의 학생은 당장 전출 보내겠다’고 하셨어요."
교내 기숙사에서 야구부 아이들을 내보낼 때 학교 측은 "미술실로 환원해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곳은 미술실로 환원되지 않았고, 보안업체의 경보장치가 달려 있는 상태였다. 모가중은 여기저기 CC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일부 교직원들과 아이들은 CC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기자는 열흘 넘게 이천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 교육과학기술부를 대상으로 김 교장의 말이 사실인지 취재했다. 취재 결과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미술관을 불법 증축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경기도교육청의 안내대로 몇가지 문제점을 보강하고, 설계도면을 제출해 용도변경을 신청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게다가 운동부 학생선수들의 합숙활동은 금지되고 있으나, 교육부는 모가중처럼 학생선수들의 원거리 통학이 불가피한 학교엔 기숙사 운영을 허락하고 있다. 여기다 설계도면 작성비 역시 학부모 부담이 아니라 전액 학교 부담이 원칙이었다.
김 교장이 기숙사 폐쇄의 변으로 내세운 ‘본교 기숙사 조건(책상·의자·컴퓨터·휴게실·침실·세탁실·주방·화장실 등 완비)이 미흡하여 운영 불가 상태’라는 주장도 이천시교육청의 확인 결과 궁색한 주장임이 밝혀졌다.
교육청 담당 관계자는 “교육기관이 제시한 기숙사 조건에 미흡하면 부족 시설을 보강하면 된다. 기숙사 안에 열거한 모든 조건이 완비될 수 없을 시 별도의 공간에 부족 시설을 설치해도 무방하다”며 “시 혹은 도 교육청이 승인을 해주지 않아 기숙사 운영을 할 수 없다는 교장 선생님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학부모들이 미술관을 증축한 것도 기숙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한 독지가 학부모가 기증한 3천만 원으로 기숙사엔 기존 침실과 함께 화장실과 세탁실이 생겼다. 책상과 의자, 컴퓨터는 언제든 구입해 기숙사 안에 배치하면 그만이었다.
한 학부모는 “기숙사 폐쇄를 통보하기 6개월 전, ‘학교 가사실습실을 식당(조리실)으로 사용하라’고 권유한 이는 다름 아닌 교장 선생님이었다”며 “만약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 가사실습실을 식당으로 썼다면 기숙사 조건은 모두 충족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의 취재 결과 김 교장이 “교육청에 신규 기숙사 예산 신청을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천시교육청 담당 관계자는 “모가중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그러한 요청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다”며 “신청 사실 또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정황과 어긋난 사실관계에도 야구부원들은 2014년 3월 기숙사를 떠나야 했다. 3학년 야구부원 이 모 군의 아버지는 “교육법의 맹점과 교장 선생님의 요구를 순진하게 받아들인 결과”라고 설명했다.
“교장 선생님께선 마치 기숙사 운영이 교육청 반대로 불가한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사실 기숙사 운영 여부는 교육청 재량이나 승인 사항이 아니었어요. 지난해부터 교육법이 바뀌어서 기숙사 설치·폐쇄 모두를 학교장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됐어요. 한마디로 교장 선생님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기숙사를 폐쇄하겠다고 하면 대통령님이 와도 말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기숙사를 떠날 수밖에 없던 건 교장 선생님께서 ‘기숙사를 학교 밖으로 옮기면 신입(전입) 야구부원을 받아주고, 감독·코치님과도 재계약을 해주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에요.”
새로 입주한 기숙사에서 아이들이 프로야구 선수의 타격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
중학 야구부에 2학기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유는 리틀야구부원들이 중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리틀야구클럽에 있다가 2학기부터 중학교 야구부로 소속을 옮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2학기가 학생선수 수급 철이라는 뜻이다.
야구부 운영경비가 교육법상으로 학부모 일체 부담인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선 신입부원 충원은 팀 전력 강화와 운영비 분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따라서 1학년 2학기에 리틀야구부원들을 충원하지 못한다면 3학년이 졸업했을 때 다음해 2학기까지 야구부는 팀 전력 약화와 운영비 부담에 시달려야 한다.
무엇보다 현 학교법상 감독·코치의 생살여탈권을 교장이 쥐고 있기에 모가중 학부모들은 김완수 감독의 재계약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기숙사 밖으로 데려와야 했다.
결국 아이들은 학교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주택을 얻어 이를 현재까지 기숙사로 쓰고 있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됨과 동시에 학생선수들의 안전에도 빨간 불이 켜진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 학부모는 “세월호 참사 이후 다른 학교들은 ‘학교 밖에 기숙사가 있으면 안전 관리 감독이 힘들다며 학교 안으로 들어오라’는 추세인데, 모가중은 여전히 ‘학교 밖 상황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해냈다.
그래도 이때까진 학부모들과 학생선수들은 학교 측의 처사를 묵묵히 참아왔다. 그러다 김 교장의 ‘위장 전입’ 발언이 계속되며 갈등이 수면 위로 올랐다.
‘위장전입과 강제 전출’ 노이로제에 걸린 모가중 학생선수들
야구부 아이들의 일기내용. 야구부원 아이들의 일기장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부분이 바로 '전출 위협'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중대한 갈등은 2014년 3월 20일 교장실에서 시작됐다. 2학년생인 C군은 “교장 선생님께서 2학년 야구부 11명을 교장실로 따로 불러 내 ‘2학년 야구부원들의 수업태도가 좋지 않다’며 ‘한 번 더 수업태도가 좋지 않을 시 1번 걸리면 교내봉사활동, 2번 걸리면 부모님 호출, 3번 걸리면 다른 학교로 전출 보내 야구를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털어놨다.
그로부터 6일 뒤에도 김 교장의 ‘전출 발언’은 되풀이됐다. 야구부원 D군은 “아침 8시 30분에 교장 선생님께서 야구부원 전원을 불러모아 놓고 ‘야구부원들이 수업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으면 전출을 보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각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과목 선생님과 주위 친구 중 한 명에게 자신의 수업 태도에 대해 (잘했음)과 (못했음) 가운데 한쪽에 사인을 받아오라’고 지시하셨다”고 전했다.
야구부원들은 김 교장의 지시에 따라 그날 교과목 교사들과 친구들에게 사인을 받아 제출했고, 그 가운데 몇몇 학생선수는 심한 모멸감을 느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5월 13일 2학년생 야구부원 K군은 등굣길에 김 교장으로부터 “넌 왜 야구부 기숙사에서 생활하니? 너 위장전입 아니니?”라는 말을 들은 뒤 교장실로 올 것을 지시받았다. 애초 K군은 용인지역 리틀야구팀에서 1학년 1학기까지 야구를 하다 2013년 9월에 모가중으로 전학을 오려 했다. 그러나 김 교장이 “교내 불법 기숙사를 외부로 이전하지 않을 시 신입생과 전학생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통에 2014년 2월에야 모가중에 전학 올 수 있었다.
K군은 전학 당시 어머니와 함께 모가면으로 주소지를 옮겨 원룸에서 생활했으나, 어린 동생들 때문에 어머니가 용인과 모가면을 왕래해야 하는 통에 결국 야구부 기숙사에 들어오게 됐다.
교장 선생님의 말에 겁먹은 K군은 어머니에게 전활 걸었고, 학교로 찾아온 어머니와 김 교장은 언쟁을 벌였다. 당시 김 교장은 김 감독을 불러 세운 뒤 “K군은 위장전입자이니 강제전학 시키겠다”며 “야구부원들의 주소를 확인한 뒤 모가면이 주소가 아닌 학생선수들은 전부 강제전학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리고 K군의 어머니가 항의를 이어가자 경찰서에 전활 걸었다. K군의 어머니는 졸지에 경찰들에 둘러싸였고, 이 장면을 본 K군은 큰 충격을 받았다.
K군이 학교로부터 받은 메시지(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이틀 뒤 김 교장은 행정실을 통해 K군 부모에게 “5월 15일 자로 전(前) 학교로 전출처리 요청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서 야구부 학생선수 전원에게 등교할 때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모가중 야구부 학부모들과 학생선수들이 김 교장에 직접적으로 대항해 단체행동을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아들의 전출처리 소식을 처한 K군의 아버지는 다음날 김 교장과 만났을 때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아내로부터 김 교장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그런 교육자가 설마 있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교장은 K군의 아버지를 보자마자 가족 모두가 모가면으로 이주했는지를 물으며 이삿짐센터를 통해 이사했는지를 깨물었다. 그리고서 “운동부는 특별하기 때문에 운동부 학생은 사전면담을 통해 전학 여부가 결정 난다”며 “전가족이 이사했는지 실사 확인을 하고 나서 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교장과 교감 모르게 담임이 그냥 아이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교장은 “만약 그 당시에 담임이 내게 보고를 했다면 전출 처리가 됐을 것”이라며 “K군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의 (위장전입을 통한 입학 및 전학은) 전임교장 시절 잘못한 것이고, 그 교장이 처벌 받을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술 더 떠 김 교장은 K군의 아버지에게 “현 야구부는 교육청의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이자 모가중은 (야구부)인가가 날 수 없는 곳”이라며 “학부모가 계속 전임 교장과 함께하자고 한다면 난 책임 못 진다. 이건 정말 경찰에 만약에 누가···그럼 그냥 다 전출이다. 할 수 있어요, 교장”이라며 위협적 발언을 이어갔다.
사실 ‘위장전입과 전출’은 운동부 학생선수들에겐 가장 큰 허점이자 위협이다. 고한이 교사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 거주하지 않고, 주소지만 옮겼다면 위장전입으로 판명 납니다. 현행 주민등록법상에 위장전입으로 드러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1천만 원을 내야 해요. 학생들 같은 경우엔 위장전입이 드러날 시 원소속학교로 돌아가야 하죠. 그래서 위장전입한 학생들은 전학 온 학교에서 ‘위장전입’이나 ‘전출’이란 말을 들으면 긴장하게 됩니다. 모가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한창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원소속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기자는 지금껏 여러 지방학교를 다녔다. 지방학교 운동부원 대부분이 위장전입을 통해 학교에 다닌다는 걸 확인했다. 분명 법상으론 잘못된 행위였다. 하지만, 현실을 파고든다면 과연 이것이 법으로 해결할 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이유는 간명하다.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는 아직 극소수다. 야구부는 더하다. 2014년 3월 기준 서울지역 초교 야구부는 24개교다. 서울지역 리틀야구부는 23개팀이다. 그러나 서울지역 중학교 야구부는 23개교에 불과하다. 47개 초교·리틀야구부에서 배출하는 학생선수들 가운데 절반은 서울지역 중학 야구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부 중학 야구부에선 리틀 출신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의 꿈은 어디서 이어가야 할까.
궁리 끝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방법이 야구부가 있는 지방 중학교 입학 혹은 전학이다. 개중엔 모가중처럼 지방 중학교 감독을 보고 전·입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법대로라면 전 가족이 이주하는 ‘전세대 이주’를 통한 입학이나 전학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할 때가 많다. 아이를 위해 부모가 헌신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자가주택이나 부모의 근무지가 서울일 때 전가족이 지방에서 억지로 기거와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재산권과 생계를 포기하란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좋은 학군을 위해 상류층에서 흔히 하는 위장전입은 막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 시골학교로 꿈을 찾아 떠나는 학생들을 같은 잣대로 재는 건 무리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 교육법은 이처럼 허술한 것일까.
학교 측이 감독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김 교장은 K군을 대회 명단에서 뺄 것을 요구하며 야구부의 대회 참가신청서를 반려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그렇지 않다는 게 취재 중 얻은 팩트였다. 이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반학생과 운동부 학생을 떠나 전체 가족 구성원이 주소지를 옮기는 이른바 ‘전세대 전입’이 원칙이나 부모의 이혼과 별거, 부모의 근무지 등이 옮기려는 주소지와 먼 경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시(운동부 포함) 사유서를 제출하면 부모 중 1인과 학생만 거주지를 옮길 수 있는 ‘부분세대 전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위장전입 의심 시 일주일 내 실사를 나가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만약 그 기간을 넘기고 몇 달이 지난 상태가 되면 위장전입 의심 학생에게 전출을 강요할 수 없다”며 “만약 부분세대 전입 시 학교 측의 미설명으로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그 책임은 주지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학교에 있다”고 강조했다.
두 교육 당국 관계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학생들에게 “전출 위협을 가했다면 심각한 비교육적 처사”라며 “위장전입을 학생의 미래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 대단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K군의 경우는 모가중으로 전학 온 지 3달이나 지났는데도 김 교장으로부터 전출 위협을 받았다. 게다가 K군은 어머니와 함께 정상 절차에 따라 부분세대 전입을 했다. 사유서가 빠졌던 건 학교 측으로부터 사유서 제출을 안내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K군은 김 교장으로부터 전출 압박과 함께 야구부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받았다.
더 주목할 건 김 교장이 교무부장을 대동하고 K군과 어머니가 살고 있던 모가면 원룸으로 실사를 나갔다는 것이다. K군의 어머니는 “교장 선생님께서 한창 집안 청소를 하던 나를 보자마자 ‘전체 가족이 이주했느냐, 이삿짐센터를 통해 확실하게 이사한 게 맞느냐’ 등을 재차 깨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교육법을 잘 모르는 우리를 상대로 교장 선생님께서 정말 비교육적 방법을 동원해 학생들의 뒤를 캐신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교육청으로부터 인가가 나지 않은 이른바 ‘불법 야구부’라는 김 교장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천시교육청과 교육부 학교 체육 담당자는 “학교 야구부 창단은 교육청의 인가 사항이 아니다. 학교운영위에서 창단 승인을 하고, 종목을 관할하는 협회에 선수등록을 마치면 된다”며 “도대체 뭘 교육청으로 인가받아야 한다는 소린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야구계의 대표적인 정직한 지도자에서 비리 지도자로 둔갑한 감독
등교 거부에 나서며 교문에서 침묵시위를 했던 모가중 야구부원들(사진 제공=경인일보) |
김 교장으로부터 전출 위협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5월 26일 학교 정문 앞에서 등교를 거부하며 침묵시위를 펼쳤다. 김 교장의 부당한 처사와 위협을 알리고, 야구부 존치를 호소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P군은 당시를 회상하며 “교장 선생님의 독선적 행정과 압력으로 감독님께서 팀을 떠나려 하셨다. 감독님을 보고 모가중까지 왔던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며 “아직 어리지만, 2년 동안 참아왔던 설움과 고통을 어른들께 알리고 싶어 정문 앞에서 침묵시위를 했다”고 밝혔다.
창단 7개월 만에 모가중 야구부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완수 감독은 김 교장의 수시로 변하는 업무 지시와 압박을 감내하다 결국 사표를 제출하려 했다.
기자와 만난 김 감독은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있지도 않았던 기숙사 증축 시 학부모 갹출 문제를 털어놓으라고 압박하고, 저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교장 선생님의 개인적 고소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며 “특히나 재계약을 볼모로 교장 선생님께서 압박하시는 걸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기자는 김 교장이 그토록 주장했던 기숙사 증축 당시 학부모들이 과연 3천만 원의 비용을 갹출했는지를 알아봤다. 애초 3천만 원을 기부했던 독지가 학부모의 통장엔 다른 학부모들이 송금했다는 기록이 2014년 3월 이전까지 전무했다. 김 교장은 김 감독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2012년 11월 밤 운동부 학부모 협의에서 3천만 원 중 2천만 원 미결건에 대한 녹취파일을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학부모들은 “김 교장이 부임한 시기는 2013년 3월 2일”이며 “만약 김 교장의 주장대로 녹취파일이 있다면 당장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가중의 학교 지도자 급여 책정 기준. 출장비, 특별근무수당, 시간외 근무수당은 학부모들이 아니라 학교가 부담해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 이 수당들을 학부모 부담으로 돌리고 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김 교장의 개인적 고소 문제로 김 감독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건 김 교장과 모가중 전임 교장의 고소건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김 교장은 김 감독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전임교장의 입장만을 고려하여 현임교장의 책임 부분에 대한 코치님(김 교장은 한번도 김 감독을 ‘감독’이라 부르지 않았다)의 활동이 우리학교 야구부를 정상화함에 상당한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은연중 자신의 고소건에 대한 유리한 입장을 표명해달라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김 감독은 “교장 선생님께서 내가 이천시야구협회로부터 매달 50만 원을 감독 격려금으로 받는다는 걸 아시고, 기존 월급에서 50만 원을 깎으셨다”고 털어놨다.
학교 예산이 한 푼도 야구부를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걸 자랑삼아 강조하는 김 교장은 김 감독의 출장비와 시간 외 수당도 철저하게 학부모 부담으로 돌렸다. 기자가 입수한 <2014년 운동부 관리계획>에 따르면 김 교장은 출장비와 특별근무수당, 시간외 근무수당을 학부모 부담금으로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위법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이 발간한 <학교운동부 지도자 관리 지침>에 보면 ‘운동부 지도자의 월급여는 연봉과 그밖의 각종 수당을 합산한 금액으로 지급한다’며 ‘[2014년도 학교회계직원 처우개선방안]에 따라 각종 수당 정의를 맞춤형 복지비, 교통 복지비, 자녀보조수당, 가족수당 등으로 한정한다’고 명기했다.
김 교장이 학부모 부담으로 내세웠던 출장비, 특별근무수당, 시간외 근무수당은 ‘각종 수당’과는 별개로 학부모가 아닌 학교 측에서 지급해야 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김 교장이 도 교육청의 원칙과 기본적인 노동법마저 무시했거나 ‘학부모 수익자 부담’이란 원리·원칙에 하도 얽매이다 보니 다른 부분은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경기도교육청 학교 체육 담당자는 “만약 김 교장이 학교 측이 마땅히 부담해야할 여타 수당을 학부모 부담으로 처리해왔다면 이는 문제”라며 “해당건은 조사 사안”이라고 밝혔다.
최근 김 교장은 김 감독을 경찰에 고발했다. 김 감독은 “전임교장 선생님 시절 월급 가운데 150만 원을 학교 야구부 통장(클린 통장)이 아닌 학부모 대표자였던 총무님 통장에서 받은 걸 문제 삼으신 걸로 안다”며 “기숙사에서 돈을 내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식사한 것도 고발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모가중 김완수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기자의 취재 결과 전임교장 시절 150만 원을 클린 통장에서 받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임교장이 허락한 사안이고, 150만 원은 월급 외 돈이 아닌 월급 그 자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현 김 교장이 부임하자 이러한 관행은 곧바로 수정됐다.
교육부 체육담당 관계자는 “교육부의 방침은 원칙적으로 학교회계처리 원칙에 따라 운동부 지도자의 급여가 클린 통장을 통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라며 “만약 학부모들에게 직접 150만 원씩을 수령했다면 이는 학교회계처리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담당자는 “만약 후임 교장이 이 사실을 알고서도 해당 지도자와 재계약을 했다면 차후 이의를 제기할 소지가 줄어든다”며 “모가중의 경우 현 교장이 잘못된 학교회계처리 원칙을 세웠을 때 현 감독을 해임했다면 모를까 다시 재계약을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 문제를 고발의 근거로 삼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식사 시 지도자도 돈을 내도록 권고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과연 형사적 처벌을 받을 문제인지에 관해선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며 “운동부 지도자 해임은 학교장 단독으로 할 수 없고, 학교운영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취재 중 한 학생선수로부터 “감독님이 우리 기숙사로 들어오시면서 전에 살던 원룸 보증금을 빼 학부모님들께 드리는 걸 봤다”며 “‘어차피 아이들을 관리하려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이 보증금은 학부모님들께서 아이들을 위해 써주십시오’라고 하시는 감독님 말씀을 직접 들었다”고 귀띔했다.
야구부 학부모 총무인 김 모 씨는 “아이들 진학 문제로 고교 야구부 감독님을 만날 때도 항상 자기 돈을 쓰시는 저런 분을 어떻게 범법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모가중 야구부 사태는 야구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모가중 고한이 교사. 그는 김 교장에서 "소통"을 요구했지만, 이후로도 갈등은 계속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야구부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학교 측은 그런 그를 '편안한 개인생활을 즐기고자 야구부장 자리를 포기한 사람'으로 교육청에 보고했다 (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모가중 야구부원들과 학부모들은 이천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을 찾아가 중재자가 돼줄 것을 수없이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은 소리 없는 메아리로 그치게 마련이었다. 모가중 학생선수들이 등교 거부에 나선 것도 절박한 심정으로 손을 뻗었지만, 아무도 그 손을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은 학부모들이 도 교육청을 찾아가 시위를 벌이자 그제야 5월 27일 이천교육청 회의실에서 ‘모가중 야구부 간담회’를 개최하며 진화에 나섰다. 당시 도 교육청 관계자는 “오늘은 꼭 교장 선생님께서 참석하시겠다고 했다”며 “양측의 의견을 종합해 사태 해결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간담회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애초 참석하기로 약속한 김 교장이 불참한 것이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김 교장은 전임 교장과의 고소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쓰러져 학교에 병가를 내는 바람에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우리가 교장 선생님을 뵙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항상 병가나 병조퇴로 학교를 비우셨다”고 말했다. 기자도 같은 경험을 했다. 기자는 전화상으로 학교 측에 김 교장 인터뷰 요청을 했다. 그러나 번번이 답변을 듣지 못한 채 모가중을 3번 방문했다. 한번은 김 교장을 교장실에서 만날 수 있었으나, 나머지 두 번은 김 교장이 병조퇴로 학교를 비운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김 교장이 불참한 간담회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물론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천시교육청에 모가중을 감사하도록 지시했다. 현재 이천시교육청은 모가중에 감사를 펼치고 있다. 다행히 이천시교육청의 감사가 의욕적으로 진행되며 학부모들은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정작 문제는 경기도교육청이다. 기자가 처음 경기도교육청에 학교체육 담당자에게 전활 걸어 모가중 사태를 물었을 때 그 담당자가 던진 첫 마디는 “이천시교육청에 물어보시라”는 거였다. 그 관계자는 “초·중학교는 해당 시교육청 담당이고, 우리는 고교 이상 담당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모가중 사태를 가장 잘 아는 곳은 이천시교육청이었다. 그러나 이천시교육청은 감사권만 있지, 교장 징계권은 경기도교육청이 쥐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태 해결의 결정적인 키를 도 교육청이 쥐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데도 경기도교육청은 질의를 할 때마다 “우리와는 관련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했고, 부서마다 답변을 회피한 채 다른 부서로 전활 돌려주기 바빴다.
경기도교육청이 책임 회피에만 열심인 건 아니었다. 업무 회피에도 열심이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은 모가중 감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감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기자가 경기도교육청을 상대로 아직 모가중 감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묻자 역시나 교육청 관계자들은 “제 소관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담당 부서로 전화 연결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다시 한번 폭탄 돌리기에 열중했다.
경기도교육청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면 올해 6월 이천시교육청이 똑같은 감사를 진행해 행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이유없이 경기도교육청이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통에 이천시교육청은 산적한 업무에도 매일 같이 모가중을 찾아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모가중의 교비. 교육은 창과 방패를 녹여 쟁기를 만드는 행위다. 그러나 일선 교육현장에선 되레 대화와 타협이란 이름의 쟁기를 녹여 고소, 고발이란 이름의 창과 방패를 만들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주민과 학부모, 교육관계자들은 "모가중 이야기를 했다가 혹시 고소라도 당할까 무섭다"며 두려움에 떨었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기자가 열흘 넘게 모가중 사태를 취재하며 깨달은 건 세 가지다. 지금처럼 학교장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담당 교육청이 임무를 방기하는 이상 언제든 제2의 모가중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가중은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모든 게 변화할 수 있는 일종의 왕국이었다. 모가중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교에서 교장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사들의 운명은 단칼에 정리될 수 있다. 지난해 모가중 기간제 교사 8명이 모두 재계약에 실패한 뒤 학교를 떠나고, 교장을 향해 가장 쓴소릴 많이 하며 1인 6역을 담당했던 고한이 교사의 보직이 대부분 박탈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제 전력' 학교 관리자(교장·교감)의 시골학교 투입이다. 지금 대한민국엔 영화 ‘선생 김봉두’가 현실에서 수없이 펼쳐지고 있다. 도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징계를 받았던 관리자들의 시골 학교 부임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 모가면 주민들은 "이런 인사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목소릴 높였다.
1년 넘게 모가중 사태를 용기 있게 보도하며 김 교장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던 경기일보 정재훈 기자는 “가장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분들이 오셔야할 시골학교가 되레 문제 관리자들의 은신처나 정거장이 되고 있다는 게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며 “여전히 교육당국이 인구수가 적은 지방과 시골을 철저히 무시하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기자가 만난 교육 당국자들도 이를 시인했다. 한 교육 당국 관계자는 “대개 모가면 같은 시골을 흔히 ‘하급지’로 부른다”며 “징계를 받았거나 교육자로서 문제가 있던 학교 관리자들을 대도시 상급지에서 시골 하급지로 전출 보내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은 관리 감독에 철저해야 할 교육청의 무능과 태만이다. 기자가 만난 많은 주민과 학부모들은 “지난해 주민들과 졸업생, 학부모 700명이 제출한 <진정서>만 경기도교육청이 제대로 읽고, 감사를 진행했다면 지금처럼 모가중이 분열과 대립의 상징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수차례 진정과 민원을 넣어도 앞에서만 ‘잘 처리하겠습니다’하고 뒤에 가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징계권이 없는 ‘이천시교육청 관할’이란 소리만 되풀이했던 경기도교육청이야말로 문제를 확대시킨 최대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어쩌면 김 교장 역시 외로운 이였을지 모른다. 그는 전임 교장과 소송을 진행하며 무언의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대상은 교육 당국, 학부모, 감독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민 손을 잡아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학부모와 감독은 철저한 원리원칙주의자인 김 교장이 전임 교장 시 시행했던 일들을 원칙을 따져 뒤엎으려하니 답답했을 것이다.
두 교장의 소송 때 김 교장이 감독에게 보낸 이메일이 공개되며 김 교장은 ‘내편은 아무도 없구나’하는 절망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기자와의 인터뷰 때 김 교장이 학부모들을 학부모들이라 부르지 않고 시종일관 ‘그들’이라 칭했을지 모른다.
만약 이때 교육당국이 개입해 중재자 역할을 했다면 인간적 갈등과 배신감으로 인한 학교 내 오해와 반목은 조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두 교장간의 소송을 뻔히 알았으면서 “개인적인 소송”이라며 개입 자체를 하지 않았다. 두 교장간 개인적인 소송이 불러올 충격파를 알았어도 이처럼 담담했을지 의문이다.
6월 20일 김 교장으로부터 전출 압박에 시달리고 자신 때문에 야구부의 대회 참가가 어렵다며 자책하던 K군은 ‘죽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 다행히 학교 상담교사와 상담을 하며 다소 진정됐지만, 현재 모가중 야구부원들은 극도로 불안한 심리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다. 김 교장은 같은 날 또 한 번 병조퇴를 낸 뒤 점심 이후 퇴근했다.
+ 취재후 +
2012년 창단 7년개월 만에 대회 우승을 차지했을 때 한 방송국은 모가중과 관련한 방송을 내보냈다. 호응이 좋았는지 전국의 많은 학부모가 모가중 입학과 전학을 희망했다. 그러나 모가중 사태가 불거진 뒤 모가중을 오겠다는 학부모는 자취를 감췄다. 모가중 야구부는 창단 7개월 만에 우승한 이후 2013년부터 각종 혼란을 겪으며 최약체로 전락했다. |
김 교장은 학부모 2명을 추가로 고소했다. 김 감독은 경찰 조사를 받을 준비를 하면서도 방과 후면 이천시야구협회가 제공한 야구장에서 모가중 학생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학교 운동부 감독은 운영비 전액의 수익자(학부모) 부담을 내세우면서도 관리 감독권은 꼭 쥐고 있는 ‘슈퍼갑’ 학교장의 부당한 처사에 괴로워하고 있다.
모가중 야구부 창단 주역인 고 교사는 야구부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야구부 정상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김 교장 부임 이후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했던 교사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란 이름으로 조금씩 하나로 뭉치고 있다. 모가중 아이들은 야구부가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우승기를 흔들 날을 기다리고 있고, 모가면 주민들은 자랑스러운 모교가 정상궤도로 돌아오길 간곡히 바라고 있다.
기자가 2차례 방문했던 이천시교육청 모가중 감사팀은 지금도 날을 세워 자료들을 수집 중이고, 경기도교육청은 여전히 지난해 조사했던 감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많은 학부모는 감사 자체가 없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야구부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다시 해맑게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길 바라면서도 자신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외면하는 사이 모가중 야구부는 ‘불행’이란 검은 바닷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
첫댓글 같은 이천시의 중학교 야구부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