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PELE
본명은 Edson Arantes do Nascimento라는 긴 이름이나 '검은 진주'라는 뜻의 '펠레'라는 애칭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4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해 브라질에게 3번이나 우승컵을 가져다 주었으며 개인통산 1283골을 기록했다.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로 '축구 황제'로 불린다. 그가 뛰던 브라질 산토스팀의 등번호 10번은 펠레를 기념하기 위해 영구 결번되어 있다. 브라질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2-BECKENBAUER
'Kaiser Franz'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팀의 자랑으로 '리베로'라는 포지션을 완성시켰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주장으로 맹활약하며 서독을 월드컵 우승시켰으며 1990년에는 감독으로 독일을 월드컵 우승시켰다. 바이에른 뮌헨의 구단주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2006년 독일 월드컵 유치에도 큰 공헌을 하며 선수로서뿐 아니라 행정가로서도 큰 활약을 보였다. 일부에선 차기 FIFA회장으로 추천되고 있기도 하다.
3-YASHIN
구 소련이 자랑하는 골키퍼.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소련을 우승시킨 이후 여러 차례 대회에서 소련을 우승시키며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활약했다. 1963년 '프랑스 풋볼'이 선정하는 '유럽 최우수선수'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까지 골키퍼로서는 유일한 수상이다. 1970년 선수생활 은퇴 뒤 소련의 최고 훈장인 레닌 훈장을 받았으며 소련축구협회의 행정가로서도 활약했다. 1990년 그가 사망한 이후 FIFA는 그를 기리며 월드컵에서 최고 골키퍼부문의 상을 신설했으며 그 상의 이름을 '야신상'으로 제정하며 그를 기념하고 있다.
4-Bobby CHARLTON
'미스터 잉글랜드', '그라운드의 노동자'로 불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원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으나 1966년 월드컵에서 미드필더로 변신하며 잉글랜드를 우승시키는데 결정적인 활약을 했으며 영국 왕실로부터 CBE(대영제국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근대적인 '플레이메이커'의 효시로 불리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570경기 출장 192골을 기록. 맨체스터팀의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5-MARADONA
'축구신동'으로 불리는 아르헨티나의 보물, 1978년 월드컵 대표팀으로 선발되었으나 선배들에 밀려 탈락한 이후 1979년 세계 유스 선수권대회와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시키며 세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펠레를 능가할 슈퍼스타'로 기대되었으나 갖은 기행으로 구설수에 오른데다 1994년 월드컵에서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 선수생활을 은퇴해야했다. 최근 FIFA가 선정한 '20세기 위대한 선수'로 펠레와 함께 공동 선정되었다.
6-Cruyff
'날으는 네델란드인'으로 불린 토털사커의 지휘자. 네델란드 최고의 슈퍼스타로 추앙받고 있다.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델란드를 결승에 진출시켰다. 감독으로서도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며 여러차례 우승을 시켜 감독으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7-DI STEFANO
아르헨티나 출생이나 여러차례 국적을 바꾼 선수로 '축구머신'으로 불렸다. 레알 마드리드에 몸담고 있을 때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가 UEFA 챔피언스 리그를 5연패 하는데의 일등공신이었다. 경기중에 특별한 위치없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 낸 만능 선수였으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꼽힌다.
8- EUSEBIO
모잠비크 출신의 포루투칼 선수로 그의 스카우트를 놓고 납치사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1966년 월드컵에서 9골로 득점왕이 되었으며 북한과의 8강전에서 3-0으로 뒤지고 있을 때 연속 4골을 넣으며 대역전극을 주도하여 포루투칼이 4강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폭팔적인 공격력으로 '검은 표범'으로 불렸다.
9- MATTHEWS
'드리블의 명인'으로 불린 선수로 17세에 프로팀에서 데뷔해 이후 33년간 선수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측면 공격수로 활동했다. 1965년 50살의 나이로 은퇴할때까지 계속 선수생활을 하여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까지 받았다. 측면공격의 중요성을 알린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10- PUSKAS
'작은 대포'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로 헝가리가 1950년부터 54년까지 A매치 32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울때의 주축 선수였다. 1956년 헝가리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자 스페인으로 망명해 이후 스페인 국가대표로 1962년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A매치 84경기에 출장 83골을 기록하여 현재까지도 A매치 최다골을 기록한 선수다.
11- Gordon BANKS
1966년 잉글랜드가 월드컵 우승할때의 주전 골키퍼로 당시 야신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골키퍼중 한명으로 꼽혔다. 유연성면에선 야신보다 한수 위로 평가되며 1970년 월드컵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펠레의 헤딩 슛을 막아낸 것은 '신기'로 꼽힌다.
12- Franco(Franceschino) BARESI
1990년 1994년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AC밀란의 중앙 수비수를 맡아 AC밀란의 전성시대를 지킨 선수, 뛰어난 판단력과 카리스마로 대표팀과 소속팀 중앙 수비를 책임졌다. 199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가 브라질의 파상 공세를 막아낸 것은 바레시의 공이 컸다.
13- Oleg BLOKHIN
디나모 키에프 팀의 '총알'로 100M를 10초에 끊었던 빠른 스피드가 특기였던 선수. 1975년 유럽 컵 결승에서 디나모 키에프팀이 당시 세계 최고의 전력을 자랑한 서독의 바이에른 뮌헨을 맞아 2-0, 1-0의 승리를 거둘때의 3골을 혼자 기록했다. 구 소련선수중 A매치에 가장 많이 출전했으며 가장 많은 골을 넣었다.
14- Paul Breitner
1974년 월드컵부터 1982년 월드컵까지 3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한 서독의 노장 선수로 풀백이면서도 빠른 공격가담으로 현대의 '윙백'의 개념을 세운 선수이다. 대포알같은 중거리 슛과 성실한 수비로 유명하며 역대 월드컵 결승전에서 두차례(1974년 페널티킥, 1982년 서독의 만회골) 골을 기록한 것은 브라이트너가 유일하다.
15- 차범근
한국 축구가 세계에 자랑하는 선수로 1996년 영국에서 나온 '축구대백과사전'의 '위대한 선수'란에도 아시아선수로선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978년부터 활약했으며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기록하여 분데스리가에서 뛴 외국인 선수중 최다골을 기록했다. 선수생활 은퇴 이후 울산 현대팀의 감독과 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16- Teofilo CUBILLAS
1970년과 1978년 월드컵 페루 대표로 나와 폭팔적인 공격력을 선보였던 선수. 뛰어난 개인기로 페루의 공격을 이끌었다. 1978년 월드컵이 끝난 뒤 유니세프의 명예 대사를 맡기도 했다.
17- DIDI(Waldyr Pereira)
195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한 선수로 당시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렸다 '공의 마술사'외에도 '낙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개인기에 수비수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함께 낙엽처럼 가벼운 그의 몸 움직임에서 유래된 별명이다.
18- Giacinto FACCHETTI
'리베로'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수비수로 불린다. '그라운드의 낭만주의자'라는 별명과는 달리 뛰어난 수비와 함께 기습적인 공격가담과 묵직한 중거리 슛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이탈리아 수비를 책임졌으며 이탈리아 특유의 '자물쇠 수비'를 지휘했다.
19- Just FONTAINE
월드컵 득점왕중 최다골(13골)을 기록한 '골 머신'이다.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 귀화해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리그에서도 1961년 20경기에 출장해 27골을 기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 Enzo FRANCESCOLI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개인기로 '황태자', '귀공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우루과이의 스타. 1990년 한국과의 월드컵 경기에도 출장했었다. 남미 최우수 선수에 여러차례 선정되었었다.
21- GARRINCHA(Manoel Francisco dos Santos)
'작은새'라는 뜻의 닉네임 '가린샤'로 잘 알려진 선수. 선천성 소아마비를 가지고 있었으나 1958년 1962년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을 할 때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며 '브라질 전성시대'를 펠레와 함께 대표하는 선수이다.
22- Ruud GULLIT
1988년 네델란드가 유럽 선수권대회 우승을 할 때의 네델란드 팀의 주장으로 수리남 출신의 흑인이다. 프랭키 레이캬르트, 반 바스텐과 함께 '오렌지 3총사'로 유명하며 AC밀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으며 선수생활을 은퇴한 뒤에는 1995년 첼시 감독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23- Gheorghe HAGI
루마니아의 슈퍼스타로 1990년 월드컵에서 루마니아 돌풍을 일으킨 3인방중 현역으로 아직까지 뛰고 있다. '발칸의 마라도나'로 불리는 그의 뛰어난 볼 컨트롤과 패스는 루마니아팀의 공격을 이끈다.
24- JAIRZINHO(Jair Ventura Filho)
1970년대 브라질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펠레의 후계자로 불렸다. 뛰어난 개인기로 수비수 여려명을 제치는 개인기는 그만의 특기였다.
25- Kevin KEEGAN
197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작은 거인'으로 리버풀의 슈퍼스타였다. 키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악바리같이 뛰면서 기회를 만들어 내고 골을 넣는 그의 플레이로 리버풀은 1970년대 잉글랜드 1부리그의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1998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Euro2000에서의 부진으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26- Roberto BAGGIO
1994년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를 실축한 것으로 잘 알려진 선수로 1990년대의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슈퍼스타. 뛰어난 골 감각과 개인기로 1990년대 중반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1998년 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 대표팀에 발탁되어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준 바 있다.
27- Jurgen KLINSMANN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활약중인 선수. 1988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며 4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학자풍의 선수. 전성기때엔 빠른 발로 상대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어가는 드리블이 주특기였으나 나이가 든 이후 팀플레이에도 뛰어난 만능적인 선수로 역대 독일 스트라이커중 '폭격기' 게르트 뮐러와 상대할만한 유일한 선수로 평가되고 있다.
28- Raymond KOPA
1950년대 프랑스 축구를 대표하는 '나폴레옹' 그러나 그는 폴란드계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1956년부터 1960년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5연패를 할 때의 주역중 한명이다. 1958년 월드컵에서 퐁텐이 13골을 기록할때에도 대부분의 어시스트는 코파가 만들어냈던 1950년대 세계 최고의 '찬스메이커'로 불렸다.
29 - Grzegorz LATO
1974년 서독 월드컵의 득점왕으로 1972년 올림픽에서도 폴란드 대표팀의 골잡이로 맹활약했다. A매치 104경기에 출장하여 46골을 기록했다.
30 - Michael LAUDRUP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덴마크 대표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한 선수. 경기의 맥을 짚어나가는 패스와 드리블로 축구전문가들로부터 1990년대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중 한명에 꼽혔다. 동생인 브리안 라우드럽도 덴마크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1992년 브리안 라우드럽의 활약으로 덴마크가 EURO92에서 우승할 때 형인 미카엘은 덴마크 대표팀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에 없었다.
31 - Denis LAW
스코틀랜드의 골 머신. A매치 55경기에 출장해서 30골을 기록한 뛰어난 골잡이. 네델란드의 슈퍼스타 베르캄프는 아버지가 '데니스 로'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라는 뜻에서 이름을 '데니스'로 붙인 에피소드도 있다.
32 - LEONIDAS da Silva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득점왕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브라질 축구계에선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꼽을 정도로 뛰어난 골 감각과 개인기를 자랑했던 선수.
33 - Gary LINERKER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득점왕으로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중 한명으로 꼽힌다. 체구는 작았지만 뛰어난 위치선정능력으로 많은 골을 뽑아내었으며 1990년 월드컵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의 동점골은 그의 골잡이로서의 판단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골이다.
34 - Paolo MALDINI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윙백으로 활약중인 이탈리아의 노장. 뛰어난 수비능력과 적시의 공격가담으로 '윙백의 교과서'로 불린다.
35 - Lothar MATTHAUS
1980년부터 현재까지 계속 현역에서 뛰고 있는 독일축구의 전설 A매치 최다출장 기록(150경기)을 가지고 있다.
36 - Giuseppe Meazza
1934년 1938년 이탈리아가 월드컵 연속 우승할때의 주축선수로 1938년 월드컵에선 이탈리아팀의 주장을 역임했다. 현재 밀라노의 SAN SIRO스타디움은 그에게 헌정되어 공식 명칭이 Giuseppe Meazza 경기장으로 불린다.
37 - Roger MILLA
카메룬의 노장으로 1982년 월드컵에 출장한 이후 은퇴하였으나 1990년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통령의 요청으로 대표팀에 복귀하여 중요 고비마다 골을 기록하며 카메룬을 아프리카팀중 최초로 월드컵 8강에 올려놨다 1994년 월드컵에도 출전하여 골을 기록함으로서 월드컵 득점자중 최고령 득점자로 기록되었다.
38 - Bobby MOORE
1960년대 세계 최고 수비수중 한명으로 꼽히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팀의 주장이었다. 암으로 사망한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소속팀이었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홈구장의 관중석 한 곳은 'Bobby Moore Stand'로 이름붙여졌으며 웸블리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중 한부분은 'Bobby Moore 터널'로 이름붙여졌다.
39 - Gerd Muller
역대 독일 대표팀 공격수중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받고 있다. '폭격기', '등에 레이더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70년 월드컵에서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월드컵에 두 번 출전하여 14골을 기록 '역대 월드컵 최다득점 기록자'로 남아있다.
40 - Johan NEESKENS
1970년대 네델란드의 '토털 사커'를 이끈 선수중 한명으로 역대 네델란드 미드필더중 최고 선수로 꼽힌다.
41 - Jean-Pierre PAPIN
'마르세이유의 득점기계'로 불렸던 선수로 역대 프랑스 골잡이중 최고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 리그 득점왕을 4연패 하는 등 마르세이유 팀에서 뛰면서 많은 골을 기록했다.
42 - Michel PLATINI
'그라운드의 예술가'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뛰어난 득점 능력을 지녔던 선수. 1984년 유럽 선수권대회에서 2경기 연속 해트트릭에 전경기 득점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정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43 - Thomas RAVELLI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스웨덴을 4강까지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골키퍼. 본업이 자동차 세일즈맨이고 세미 프로였기에 화제에 올랐던 바 있다.
44 - Frank RIJKAARD
'네델란드 3총사'중 한명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리베로로 꼽혔다. AC밀란의 전성기를 이끈 뒤 은퇴하여 1998년 네델란드 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Euro2000을 끝으로 네델란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났다.
45 - Roberto RIVELINO
펠레와 같은 시대에 뛰었던 브라질의 또다른 플레이메이커. 마법과 같은 왼발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그의 왼발 프리킥은 엄청난 곡선을 그리며 들어가는 브라질의 또다른 골메이커였다.
46 - Paolo ROSSI
1978년 월드컵에서 활약했으나 이후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선수생활을 못하는 위기에 몰렸다가 1982년 이탈리아 월드컵 감독의 강한 요청에 의해 복권되어 82년 월드컵에 출전하여, 브라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총 6골을 뽑아내 득점왕에 오르며 이탈리아 우승에 공헌했다.
47 - Kal-Heinz RUMMENIGGE
독일축구의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선수로 유럽최우수 선수를 3년 연속으로 수상 하는 등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로 불렸다.
48 - Ian RUSH
웨일스 출신의 민완 미드필더로 1리버풀 소속으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49 - Hugo SANCHEZ
멕시코 축구의 영웅. 1978년 올림픽때부터 뛰어왔고 이후 스페인에서 활약하며 멕시코 축구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986년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8강에 올려놨다.
50 - Djalma SANTOS
1958년 월드컵부터 1966년 월드컵까지 브라질 수비를 책임진 수비수로 현재 기록 정비로 A매치 98경기 출장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1998년 이전까지는 브라질에서 유일하게 A매치 100경기를 출장한 수비수였다. 브라질은 워낙 뛰어난 선수가 많아 A매치 100경기를 출전한 선수로는 둥가와 타파렐이 유일한데 국제경기가 적었던 이전에 이미 A매치 100경기를 출전한 것은 그만큼 뛰어난 기량을 가졌던 것이다.
51 - Gyorgy SAROSI
'만능 선수'로 불렸던 헝가리의 자랑. 1936년 올림픽에 펜싱과 요트 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축구선수로서의 기량도 뛰어났다 헝가리 국내 리그에서 383경기에 출전하여 349골을 뽑아냈으며 A매치에도 75경기 출장 42골을 기록한 선수다.
52 - Peter SCHMEICHEL
1992년 덴마크가 유고를 대신해 유럽선수권대회에 참가했을때의 주전 골키퍼. 192Cm의 큰 장신에 뛰어난 판단력과 순발력을 곁들여 당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불렸으며 현재도 정상급 골키퍼로 군림하고 있다. 맨체스터팀에서 뛰면서 맨체스터를 연속으로 프리미어 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53 - Vincenzo "ENZO" SCIFO
이탈리아계 탄광 노동자 이민으로 벨기에 최고의 미드필더로 불렸다. 1986년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데뷔하며 벨기에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1990년 한국과의 경기에서도 출장. 뛰어난 한국팀이 70여차례의 패스미스를 하는데 일조했다. 뛰어난 개인기와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는 벨기에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유럽 정상급'팀으로 군림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54 - Uwe SEELER
1954년부터 1970년월드컵까지 뛰면서 마테우스가 깨기 이전의 '월드컵 최다경기 출장자'로 기록된 독일 축구의 1960년대의 상징이었다. 작은 체구였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독일의 미드필드를 책임진 선수였다.
55 - Alan SHEARER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로 꼽힌다. 어떠한 위치에서든지 쏘아대는 슈팅과 골문 앞에서의 위치 선정 등 골잡이로서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일부 평론가는 "골문 앞에서의 플레이는 세계 최고"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56 - Peter SHILTON
1970년부터 1990년까지 잉글랜드의 골문을 지켜온 '불독' 역대 잉글랜드 주장중 가장 위대한 주장으로 손꼽히며 20년동안 잉글랜드 최고의 골키퍼로 군림했다.
57 - Matthias SINDELAR
오스트리아 출신의 '종이 비행기'로 이름난 1930년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중 한명이다. 당시 유럽 최강의 오스트리아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유태계 출신이라는게 알려져 1939년 1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불운한 스트라이커였다.
58 - Hristo STYOICHKOV
불가리아의 'CRAZY MAN' 갖은 기행과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반면 그라운드에서의 철저히 계산된 플레이는 그의 냉철함을 대변한다. 특히 그의 왼발 프리킥은 스피드와 각이 살아있어 골키퍼들을 괴롭힌다.
59 - Carlos VALDERRAMA
'사자머리'라는 헤어스타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전설, 콜롬비아가 1980년대 이후 남미 정상급으로 뛰어오르는 데에는 그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이 절대적이었다. 어렵지 않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플레이메이킹 능력은 또다른 차원의 축구를 느끼게 한다.
60 - Macro van Basten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로 꼽히는 득점기계. 무릎부상으로 일찍 은퇴했으나 그가 선보인 골잡이로서의 능력은 최고의 골잡이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네델란드3총사'로 AC밀란에서 뛰면서 AC밀란의 최고시대를 만들었다.
61 - ZICO(Artur Antunes Coimbra)
'하얀 펠레'로 불린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브라질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생활을 은퇴했으며 가시마 앤틀러스의 총감독직을 역임했다.
62 - Dino ZOFF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로 A매치에서 1142분간 무실점을 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40세의 나이로 1982년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월드컵 최고령 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다. 선수생활 은퇴 이후 라치오팀의 감독과 사장직을 역임했으며 Euro2000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맡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