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11월 7일
𐑏 저서 : 남진원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지음 (1985. 11. 7. 아동문예사)
[시집 차례 및 내용]
●차례
서시 5 서문 박유석 6
발문 최도규 97
제1부 아내의 가게 13
나무심기 15 작약꽃 16 꽃이 피는 창가에서 17 달 18
여인 19 겨울 스케치 20 정사 21 사랑법 22 단식 23
어느 화가 24 바람들은 25 봄빛 26 아침 새 28 그날이 오면 29
장마 30 돌과 물 31 코풀기 32 눈병 33 탑 34 아내의 가게 35
도시의 아침 36
제2부 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37
1.이슬 2.나무 3.풀벌레 4.노을 5.달맞이꽃 6.밤새 7.별 8.풀꽃
9.기다림에 비워 둔 꽃잎 하나가 10.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제3부 아라리, 정산 아라리 49
제4부 임이여, 청산에 꽃 되오서 71
당신이 곁에 있으면 73 임이 비 되어 오신다면 74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75
사랑은 76 샘 77 사랑 78 행복 79 그리운 이가 그리운 밤에 80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81 대숲 아래서 82 돌이 되고 싶은 날 84 부러운 밤 85
이슬의 노래 86 라일락 피는 봄에 87 봄 밤 88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90
알아나 보자 91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92 산유화 94 도라지 96
*저자 근영 3 *저자 약력 4
서문 恨 意識의 계승
박유석
恨이 많은 詩人 그는 南鎭源이다.
그를 만난 것은 오래지만 그의 人間과 文學을 함께 참 모습으로 느끼게 된 것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한 방에서 두 달 이상을 숙식을 같이 한 벽탄에서 시작되었다.
남 시인은 정선아리랑의 고장인 이곳 정선 골지리 출생으로 그를 대하고 있으면 靑山의 풀내음과 솔바람 소리를 느끼며 뜨거운 정에 이내 同化돠고 만다.
이번 詩集 「나비, 靑山의 나비」는 4부로 나누어 노래하고 있다.
그의 詩 世界 전반에 깔려 있는 意識은 정선아라리에 숨겨진 恨의 비애를 강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
詩人이기에 앞서 한 人間으로서 日常과 生에서 아파야 하는 것들에 깊은 애착을 통해 언어만으로가 아닌 淸純함으로 詩를 잉태하고 있다.
또한 아픔과 외로움 속 혼의 事物들을 사랑으로 그물을 짜며 그것을 더 높은 次元의 傳統的 아라리의 恨으로 여울져 흐르게 하고 있다.
그 한은 또다시 개성있는 순수한 詩精神으로 형상화되고 體質化하여 그 나름의 靑山에 작은 우주를 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번뜩이는 예지와 표현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친구야 외로울 때 바람이 되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먼 기억들을 되살려서
달 뜨는 밤이면
달맞이꽃 처럼 일어서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
그렇게 바람이 되어 만나는 거다.
풀물든 얼굴로 만나는 거다.
‘ 어느 산기슭 풀꽃 처럼 살다가’ 의 일부이다.
이렇듯 남 시인은 정선아라리의 恨 意識을 자신의 詩脈 속에 용해하여, 임이여 靑山에 꽃 되소서로 시를 통해 다시 태어나고 있어 기쁘다.
1985. 10. 20
정선 벽탄에서
江原兒童文學會長 朴裕錫
제1부 아내의 가게
나무 심기
나무를 심는다.
아내와 내가
언젠가
비좁도록 공간을 메울
목숨의 푸른 줄기를
땀을 버무려 넣으며
아내의 살갗처럼 흰
웃음을 다독거리며
사과나무를 심는다.
아내의 행주치마에 담은
우리의 미래를 나눠 심는다.
작약꽃
고향을 더나 있으면
내 마음 속엔
고향인냥 그리웁게
피는 꽃이 있다.
초여름 뒤 울안
수줍은 새색시처럼
솔곳이 피어나는 작약꽃
막걸리 한 사발에
고향을 풀어넣고
손가락으로 휘저으면
거기
뻐꾸기 울음과 함께
풀물처럼 묻어나오는
꽃 한 송이
오늘은
뉘집 뒤란에서
흙냄새로 물씬 피고 있을까.
꽃이 피는 창가에서
사는 게 때로 피곤할 때면
창가에 앉아
꽃을 본다.
인생은
다들 혼자로
피어난 꽃들
어둠이 풀어지는
창가에 서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는 게 더러 힘이 들 때면
사는 게 이리도 아플 때면
창가에 기대
꽃을 보다가
빈 배가 된다.
달
한 밤에
고무신 가득히 고이는
선지피.
여인
여안은
화초
사랑의 물을 줄 때에야
싱그럽고 윤기있게 피어 오르는 꽃.
겨울 스케치
눈이
내린다..
간간이
바람의 작은
기침 소리
산에서 내려오고
뿌연
낮달이
눈 내리는 저 너머
생각 속에 잠겨 있다.
정사
다리가
보일 뿐
숲에는
하늘이 열린 채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사랑법
부풀어
출렁이는 바다
빛과 소리가 슬프도록 차다.
단식
찢어진
북이 되어 앉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살들이
흐물흐물
흘러내리고
보아야 한다.
지금
죽음 저 너머에서
하얗게 일어서는
내 뼈를.
어느 화가
무지개가 몇 층 식 둘러선 가운데
동양화를 그리며
산을 마구 팔던 너
너의 노래는
귀에 쟁쟁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고
우린 그때
하늘의 피부 깊숙이
네 손이 닿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바람들은
마을 밖에서 달려오는
저 눈물의 깊이 나는 몰라
어디쯤서 태고의 바람이 부는지
츨량할 수 없는 은밀한 불안으로
나는 밤마다 잠들다 놀라 깨고
어둠으로 부푼 벽에
죽음처럼 널려있는 우리들의 옷
오늘 밤 탈출의 의미를
나는 저 방황하는 속에서 듣는다.
뜨락에 지는 오동잎, 거기
불행이 될 수 없는
조용히 기울이는 바람의 눈동자
비 오는 동구밖 떠나는 것들이
네것이 된다해도
허전하게 고이는 빛깔들을
그렇게 사랑하는 바람들은
아픈 것을 나란히 눕혀놓고
밤마다 꿈을 꾸며
들을 수 없던
어둠의 음성까지
파란 속 잎을 틔우게 하고
저 깊은 나무들의 뿌리
맑고 깨끗한 신경을 퍼올리며
밤 내내 눈을 뜬 채
걸어가는 소리.
봄 빛
1
새벽으로 가는 안개들의
푸른 길 옆에
산의 손시린 물소리
마을로 오고 있다.
들판은
번쩍이는 햇살과
귀가 아픈 새떼 속에 일어서고
우리들의 삶
그 한가운데
희디 흰 소금으로 남아
짭짤하게 등허리를 절이고 있는
풀 뿌리 밑에서
아침은 깨끗한 피부를 드러낸다.
벌써 몇 광주리씩 푸른 바람을 이고
대문을 나서는‘아주머니들
땀과 거름으로
기름진 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빛 속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다.
2
미루나무 잎새들이 부풀어오르는 한나절
따뜻한 것으로 닿아
살 섞이는 돌과 풀
눈썹같은 아지랑이들이
꽃씨들을 파랗게 들어올리는
햇빛 속으로
웃대 할아버지의 송화가루
풀풀 뻐꾸기 울음으로 날리면
종달새가
보릿대궁 피워 물고 솟아오르는 하늘 속엔
유리알 같은 오월의 바람이 불고
네 이름과 내 이름이 가슴 속까지 닿는
우리들의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아침새
신비의
숲에서
새가 운다.
우는 소리가
차가울수록
아름다워서
산이
바람처럼
일어서고
새벽의 강을
건너오는
꽃 한 송이.
그날이 오면
옷을 벗는 일이다.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일이다.
내 목숨의 빈 잔 거두어갈 때
당신의 손에 끌려가지 않고
당신의 뒤에 따라가지 않고
다만 내 스스로
걸어가도록 준비하게 해 주소서
나는 당신의 나라를 모르지만
당신이
나를 찾아오는 줄은 압니다.
질병과 무서움, 괴로움의 병정을‘거느리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남루한 옷을 벗기기 위한
당신의 예법이기에
정영, 내가 나의 임을 사랑하듯이
그날이 오면
나는 나의 문을 열어 놓고
그렇게 당신을 맞이하여
옷을 벗으리
옷을 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으리.
장 마
생채기 투성이다.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 손을
잡기는 커녕 보지도 못한 채
자꾸 뜯김을 당하고만 있다.
어둡고 혼돈한
비가 내리고
물아개만 푸르딩딩한 넋으로 살아
물 위를 거닐고 있다.
돌과 물
물이 돌을 부순다.
온 몸이 박살나는 물
그렇게 흩어진 물 알갱이들은
또 다시 모여서 돌을 부순다.
이제는 어리석은 물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을 걸어 잠근
돌이 미울 뿐이다.
코풀기
코를 푼다
썩은 콧물을 풀어낸다.
가난한 그 시대의 다락방에서
눈물보다 매운 코를 풀어 던진다.
온 몸의 힘을 콧구멍에다 쏟고
숨통이 콱 터지라고
풀어내는 코지만
아가리가 시커먼 그놈은
되려 눈만번들거리고
은밀한 곳에서 썩어가면서도
썩는 줄 모르고
세도를 누리고 있다.이, 팍 물어 쳐죽일
콧구멍 때야
이놈의 코
이놈의 코.
눈병
눈이 꽤나 속이 상해 있었다는 걸
눈병이 나서야 알았다.
너무 더러운 것을 많이 본 죄로
더러는 안 볼 것을 본 죄로
눈이 앓고 있다.
곪아터진 후에야 원망을 하는
나 자신을 비웃으며
나 대신 눈이 앓고 있는 것이다.
눈이 이제는 좀
세상을 가려가며 보라고 한다.
한 동안 한쪽으로만
정성스럽게 보는 법을 익히라고 한다.
탑
일하는 사람들 여기 모여
배움의 탑을 쌓는
청정한 손날
더러는 아프고 배고픈 노동이지만
돌의 중량 만큼이나
층층이 쌓이는 기쁨으로
탑을 쌓는다.
두 발은 견고하게 땅을 딛고
하늘로 솟아오를
꿈을 꾸며
오늘도
시린 손 끝에 온 힘을 모아
어둠의 한 쪽을 깨뜨리는 이여
광활한 땅 위에
우리의 뼈로 쌓아가는
탑은 높아만 가고
어느 날
손바닥 부르튼 피멍으로
일어서는 탑을 보게 되리
그때
탑 속에서 울려나오는
빛과 소리
그 푸른 눈물로 신나게 울자.
아내의 가게
자동차 바퀴의 소음 속에서
아내는 잠을 깬다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3백원 짜리 떡볶기를 팔고
김밥을 파는 아내
처음 가게문을 열고나서
손님이 오니
신랑보다 더 반갑더라고
활짝 웃으며 말하는 목소리에서
억센 풀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진 것이 남루해도
늘 행주질을 하며 사는 아내
봄꽃보다 아름다운 수줍음도 몇 개
소매 끝에 숨겨둔 채
오늘도 아내는
빈 그릇에 수북히 담겨지는 도시의 소음
그 폐수를 닦아내며
키 큰 손님
키 작은 손님의 목소리 따라
분주히 간을 맞추고 있다.
도시의 아침
자동차 소음과 번쩍이는 간판과
골목에 숨었던
때 묻은 바람 소리로
도시의 아침이 깨어나면
고단한
간밤의 꿈을
옷섶에 여며 넣으며
서둘러 문을 여는 사람들
그리고 부지런히
시림들은
살찌우기 출발을 하고 있다.
제2부 사랑, 그 외로움의 그물을 깁는…
(1)사랑
사랑은
아침 햇빛에 매달린
투명한 울음
내가
네 속에 사는
네가
내 속에 사는
사랑은
슬픈
맞물림
(2)나무
바람이
불면
우리는
한 그루 씩의 나무
빈 하늘
이쪽 저쪽에
서로 외로운 이름을 쓴다.
서로 허전한 얼굴을 그린다.
(3)풀벌레
무후한
어둠 속에 젖는
풀잎들의
저 눈물을 보아요.
달빛이 구부러진
숲길에
목소리만 남아
가슴 속 입술만 남아
설움을 만지고 있는
풀벌레 갸름한
손
(4)노을
외로움이 깊어서 바다가 될 때
당신이 부르시면
난 멀리서 대답하는 노을이 될래요.
먼 길에 당신 모습만 봐도
난 벙어린데
난 벙어린데
당신 앞에 서면
말이 없어도
황홀한 말씀
당신이 오실 땐
마냥 부끄러워서
눈을 감아도
자꾸만 가슴이 뛰는데
내 그리움 너무 깊어
당신이 찾으시면
난 멀리서 우는
노을이 될래요.
(5)달맞이꽃
아파도
고운 약속이라서
그리움만 짙은
네가 피운 꽃은
슬퍼도
아름다운 약속이라서
기다림만 물든
네가 피운 꽃은
사랑은
외로운 약속이라서
밤에만 몰래
네가 피운 꽃은
울음소리도 작게
네가 피운 꽃은…
(6) 밤 새
그리도
애닲은
혼만 남아
달빛 푸른
숲
숲에 고인 새야
울다가
지치거든
고운
고운 잠 자라.
(7)별
머나먼
그
하늘 밭
터질듯
외로운
몸짓으로
밤에만 피어나는
들꽃
내 작은 들꽃
눈빛이 고와
눈빛이 맑아
가슴에 훈장처럼
너를 달고 싶은
밤
(8)풀 꽃
우리가
이름 없는
풀꽃이어도
가리울데 있는
서런
잎이지 말자
잊힌듯
볼품없는
빛깔이어도
하늘과 물과 바람과 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며 살자
피어서
꽃이라고
불러줄 이 없어도
내가 네곁에서 피고 있는 것을
네가 내곁에서 피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살자.
기도하며 살자.
(9)기다림에 비워 둔 꽃잎 하나가
초록 햇살이 내리는
길 위론
눈이 아려서
당신 오실 길도
눈이 아려서
비워 둔 채
귀가
아픈
내
이름은
작은 꽃망울
(10) 戀歌
처음도 끝도 없는
늘 설레임의 마당
내 사는 곳은
다시 갈 수 없는 그대 울밑이라도
늘 서성거리는 마당
그대 사는 곳은
- 기다림으로만 살았어도 좋아라
- 그리움 만으로 살았어도 좋아라
세월에 흰 머리카락 날리며
풋풋한 바람처럼
영혼이여, 육신을 떠나 날아 오를때면
오오, 그때야
그대 기다림으로 비워 놓은 자리에
온전하게 살을 붙이리
내 영혼의 집을 지으리.
제3부 아라리, 정선아라리
1
내 입김만
닿아도
스며 아지랑이
되는 임
그 연한
외롬만 짙어…
어느
천년
꽃이 될까.
2
바람이 불어오는 밤은
무섭다.
오늘처럼
어느 산기슭 이름 모르는
꽃이 피는 밤은
더 무섭다.
어둠이 일어서서
돌 하나를
흔들어대는 밤
하늘에
미친 달이 타고
아아
머리칼이 빠진 바람이 분다.
3
하늘 아래
울음 빛
푸르른 봄날
성마령
골짜기에도
산수유가 피고
나는
색동옷 입은 나비
임 그리던
생각을 모아
날개를 짠다.
하늘 아래
울음 빛만
푸르른 봄날
4
임 계신
꽃대궐
어디신가
그리던 생각일랑
날개에 싣고
잠들면
환한 세상
꿈밭길에서
가자
또 가자
나비
청산의 나비
5
먼 산에
아지랑이 같은
오오, 나의 림은
그 연한
외로움만
푸르르게 돋아
봄 오고
또 봄 오는 들판에서서
가슴에 돋아나는 그리움들을
파랗게 파아랗게 시로 씁니다.
먼산에
아지랑이 같은
오오, 나의 임은
6
임은
작은 별
쏟아질 듯
총총총
별 빛나는 밤
불어라
바람아 바람아 바람아
7
그리움이
소망으로 젖어드는 밤
바람이 사는 언덕에서
당신 젖가슴이 고운
달을 보자던
오늘은
달처럼 또 하나 달이 떠서
마음이 그립도록 번져가도
임이 깰까봐
숨어 비치는
달
팔 아픈 달
8
하늘 창창한 봄날
이별보다 싯푸른
울음이 섞여
산굽이도 한줄기 틀어져 내려와
입이 시리게 섞여 도는
혼백의 강
꿈에라도 손이 닿는
사랑길이라면
눈물 맛 한 백년 아우라져도
단맛만 나리
단맛만 나리
산비알 굽이굽이 외로움만 짙은
서른 세 살의 강 모래톱엔
탱탱 가슴이 빈
머슴의 눈빛 같은 싸리꽃만 피고
이 빠진 기다림에
이승을 지키고 선 내 나룻배엔
저승에서 쫓겨 온
오오, 불쌍한 임의 손톱자국만
아프게 흔들리고 있다.
- 아우라지강-
9
헤어질 사람도 없는데
서럽게 울 눈물도 없는데
꽃이
피어
외로운
봄밤
촛불을 켜고
그리운 것들을
다시 데운다.
10
생자의 목숨 가지에
날아와 앉는
새야
궁금타
입술 마른
사랑의
식량 때문
오늘은
하느님의 나라도
비어
말 없는
햇살만 콩가루처럼
섭섭하게
진종일
배 고픈
연두색 미운
봄날
11
당신은
강물이구려
흐르기만 하는
떠돌기만 하는
나는 눈 먼 사공의
낚싯대가 되어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추를 드리고
천년
또 천년
당신의 살 속에서 익으리.
12
열두번 도 더
산을 오르고 싶다.
연한 새순이 돋아
만산
채운이 도는
임의 살결
그 같다면
그 같다면
열백번도 더
산을 오르고 싶다.
13
오늘 밤에 든
달은
천년
푸른 솔가지 태워
조총처럼 구운
그리움
단 한번 피우려다 엉겨 붙은
사랑의 풀꽃 무더기 무더기
잠이 든 그대 창가에
밤 내내
소망인냥 떠 있거라
내 임을 그리사와 우니나니.
14
사는 게
꿈인가
꿈 속이
삶인가
청산에
저 나비
임이라시면
꿈 속에
뵈는 임
왜 보내셨나.
15.
너, 내가
하늘과 땅 그 머나 먼 거리도
아프락싸스
그분이 예비하신
온 몸을 떨어
울어
눈물이 빛날 때 까지
너, 내가 만나냐 할
열매, 젖가슴, 그리움
장밋빛 해
우리가 어둠을 나누어 섞을 때
사랑이 두 개 네 개 여덟 개…
하늘 밭에 번져갈
눈물을 처음 보신
아프락싸스
그분이 예비하신
카인의 표지
땅과 하늘의 사랑
16
설운 사랑도
여물면
분이 나는가
외로움도
달디 단
씨가 되어서
제 홀로
여문
희디 흰 울음
슬픈 사랑도
여물면
분이 나는가.
17
맺히고 싶은
열망이
오죽이나 컷으랴
지금
몽글몽글한
푸른 맛으로 채워지고 있는
포도나무를 보고 있으니
먼 산 보듯
바라보고 사는
임과 내가
부럽다.
18
임도
나도
모르게
꿈속에서만
쬐끔 씩
키우는 사랑
빨갛지도 하얗지도 못한
자주색
감자.
19
물을 태우고
바위를 태우는
불
사랑 불
나도
나의 임도
태우리
태워서
희디 흰
꽃씨 만드리.
제4부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당신이 곁에 있으면
당신이 곁에 있으면
나는 연둣빛 연한 오월의 사슴
정녕
나는 당신의 사슴일레요.
당신이 곁에 있으면
나는 6월의 바람
우윳빛 당신의 젖줄 같은
사랑을 물고
언제나 당신의 바람일레요
당신이 곁에 있으면
당신이 곁에 있으면
오, 그래요
나는 한 송이 꽃일레요
질 수 없는 당신의 꽃이 될레요.
임이 비되어 오신다면
임이 비 되어 오신다면
나는 세상보다 큰 솜덩이가 되어
앉으리다.
참으로 석지 않는
솜이 된 채
내 살을
당신의 비로 적시리.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내 창가에 달디 단 향기로 묻어나는
너는 한 줄기 바람이더니
꽃가지를 흔들며 내 귓가에 속삭이는
너는 봄 아침 은은한 빗소리더니
저 들녘 새 잎 돋아나는 아우성처럼
와 - 와 -
소리 없이 번져
내 빈 가슴 속 자리 잡은 너는
칠색 무지개더니
오늘은 귀가 귀가
네 귀가 고와라
스물 네 살 쑥 내 나는 푸른 바람이여.
사랑은
사랑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근원에서 나와
너와 나를 적셔주는 봄비 같은 것
사랑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저 언덕 연두색 들판의 아지랑이 같은 것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많이 고여
주어도 주어도 철철 넘치는
여름 아침의 샘물터 같은 것
그러나
사랑은
해 지고 달 뜨면 울고 싶은
사랑은….
샘
마주
앉으면
우리는
하나
나는 네게로
너는 내게로
언제까지고
주기만 하는
너와 나
샘이고 싶다.
사랑
하늘 속에서
울리는
푸른 떨림을
그대
땅에 스며
흙의 기운으로 되울리는
너와 나는
한 개 씩
혼으로 우는
진동 항아리
행복
내 속에
송두리
네가 살고
네 속에
송두리
내가 살고.
그리운 이가 그리운 밤에
오늘 밤은
그리운
촛불을 켜렵니다
그대
외로워
잠 못 이루던
그 많은 밤을 위하여
그 많은 날을 위하여
어느 머나 먼 나라의
소망처럼
별이 빛나듯
눈물로
고운 촛불을 켜렵니다.
손 모두어
밝히는
촛불을 켜렵니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꽃가지를 흔들듯이
너를 자꾸만 흔들고 싶은
바람이고 싶어…
매화 향기 불어오듯
그렇게 네 가슴에 번져드는
향기이고 싶어…
가을엔 내 속살 송두리
너로 하여 익어가는
과일이고 싶다.
그러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내 하늘 빛 기다림은 겨울바다에서
또 한해 새움으로 돋아날
바람이고 싶어서
봄이고 싶어서….
대숲 아래서
당신은저렇게 굽이굽이
아랑의 안개에 젖고 있다.
생각도 젖어 흐느낌도 젖어
그 달 같은 옷고름도
자꾸 젖는 밤
이땅의 모두가 슬픔이라도
바람이 자고
또 바람이 자면
당신은
예맥의 여인
소망의 어느 산기슭에서
작으디 작은 등을 켜는가
산다는 것이 혼돈이어도
혀 아닌 가슴으로
한 세월 사랑의 옷을 깁고 앉은
당신의 눈 먼 바늘 귀
산도 바다도 가라앉는
눈물이 젖어
밤은 깊어가고
달빛이어라, 당신은
내 온 몸 소리없이 젖는 달빛이어라.
돌이 되고 싶은 날
하늘이 푸른 날은
나는
가라앉는 돌이 된다.
아지랑이
실실이 붉은 날은
차라리 눈이 먼 채로 돌이 된다.
하늘 구만리
저리도 고운 노을은
죽어서도 내가 남아 울다
바람이 자면 가라앉는
나의 돌
해 지면
달아
뜨지 말아라.
부러운 밤
나무 이파리들이 흔들린다.
주고받는 이야기가 싱거운 거야
상관없다.
그들에겐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있다는 확인이 중요하다.
말이 없어도 좋은 밤에
서로가 서로를 흔들고 있다.
이슬의 노래
내가 물방울이라면 당신 생각으로
몽친
다만 그 하나
외로움에 떠는
햇빛에 눈부셔
무지개 내 속에서 빛나도
그건 오직 그대 가슴에 들고픈
두근거림의 빛
상기도 풀잎에 매어달림은
네 마른 입술에 스밀
투명한 눈물이기에
해가 뜬 한낮에도
젖은 채
아아 내 눈부신
울음을.
라일락 피는 봄에
라일락 옆에 서면
나도 라일락 꽃 될까부다.
사는 것이
눈물나도록 고마운
봄 하늘 아래
네 앙가슴
작은 말들이
푸르러지도록 귓속말로 들리는
라일락 옆에 서면
네 숨결 내 가슴에
하나로 모아
정말은 나
네 속에 번져나는
솔방 향기이고 싶다.
(* 솔방: 몽땅이란 뜻)
봄 밤
봄밤은 떠나간 이름들의
발자국 소리
그렇게 떠나간 이들이
스며드는 소리
천리 먼 내 임의 울음소리도
개구리 울면 문밖에 나와
외로운 갈꽃인냥 흔들고 있어
별이 반짝이면
숨었던 바람들이
얼굴을 들고 찾아오고
서리서리 굽이쳐 돌다
물끼 어린 눈동자로 오는 바람아
너무나 소중한 것들끼리
그렇게 만난 이유 하나로
죽은 듯 살아온 식구들아
주는 것이 없어도 좋아서
받는 것이 없어도 좋아서
시작도 끝도 없는
그리움 만이
발자국 소리로 흐르는 밤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친구야
외로울 때 바람이 되자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먼 기억들을 되살려서
달 뜨는 밤이면
달맞이꽃처럼 일어서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그렇게 바람이 되어 만나는 거다.
풀물든 얼굴로 만나는 거다.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알아나 보자
궂은 비
눈보라
인욕으로 사는 한 생
알아나 보자
새가 우는 까닭을
세상사 끊이잖고
물레처럼 도는 시름
알아나 보자
꽃이 피는 까닭을
한 목숨 피고지면
흙이 되어 썩을 육신
행자여, 옷을 깁듯
시름 속에 깁는 사랑
알아나 보자
해가 뜨는 까닭을
알아나 보자
달이 뜨는 까닭을.
임이여 청산에 꽃 되소서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소서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곤하면
갈섶에서 잠이 들고
잠 들면 꿈속에서
임의 꽃 가르쳐주소서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꽃 되소서
나는 한 마리
나비 되오리다.
가다가 힘들면
아무 꽃잎에 앉으리까
아무 풀잎에나 앉으리까
그리운 이가 그리운 날에
임이여
가는 길도
임의 향기로 가르쳐주소서
임의 향기로 붙들어주소서.
산유화
한 세상
구비 돌면
외진
그런 곳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사는
산유화
산유화
가슴이 맑아
산에
피었나
보일 듯
말 듯
바람에 흔들리며
석양에
물드는
노을을 닮아
그리운
그 모습을
그려 보다가
저 혼자
산에
산에
피워보는 꽃.
도라지
깊은 산
뻐꾸기 울다
지나가는
파란 하늘
그 아래
아무도 없는 외딴 산길
산처녀 같은
도라지
도라지꽃
피었습니다.
발문
최도규(시조시인, 아동문학가)
‘나비 청산의 나비’라는 조그마한 시집을 하나 내겠다고 어느 토요일 저녁 남선생이 찾아왔다.
보석함이 어디 커서 값진 것을 담았던가 무엇을 담느냐가 문제인것이다.
나는 일주일 만에 만난 아내와도 아야가를 나눌새 없이 술 한 잔을 나누며 밤 늦도록 남선생과 시집에 관한 의논을 했다.
일찍이 아동문학으로 등단을 하여 동시집 ‘싸리울’을 내 놓았고 시조문학과 월간문학에 시조로 당선하여 문제작을 발표하더니 그것도 부족해 몇 년 전시로 다시 신춘의 문까지 통과한 남시인이다.
문학이라는 것은 사색하는 것이고 너그러움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와 치열한 정신의 승패 없는 싸움을 해 온 그였다.
이런 남선생의 시집에 발문을 쓰게 되어 영광스럽긴 하다.
그러나 각 시편마다 잘 짜여진 이미지의 직조를 서투른 가위로 재단하고 또 보기 흉한 실올까지 보이게 한다면 시에 대한 해설이나 분석은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이므로 나만의 감상으로 그칠까 한다.
남시인은 강원도 하고도 ‘울고 가서 울고 왔다’는 정선 태생이다.
연작으로 쓴 ‘아라리 정선 아라리’에서 시인의 내밀한 꿈을 읽는 것 같아 차분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빨갛지도 하얗지도 못한 / 자주색 / 감자’에서 향토작인 깊은 의미와 현실성과 역사성을 전달시키고 있다.
‘슬픈 사랑도 / 여물면 / 분이 나는가’
‘천년 / 또 천년 / 당신의 살속에서 익으리’ 에서피의 진함을 인간의 바램속에서 염원하고 있다.
‘지금 / 죽음 저 너머에서 / 하얗게 일어서는 / 내 뼈를’
‘남루한 옷을 벗기 위한 / 당신의 예법이기에/ 옷을 벗으리’ 죽음은 하나의 공포가 아니라 눈물이 진주알로 순화될 그런 빛남의 유앙스를 지나는 깊은 곳의 이야기도 길어올렸다.
죽음을 바탕으로 한 삶의 긍정을 바로 삶 그 자체에 폭 넓은 애정의 근겅를 두었기 때문임을 이내 찾을 수가 있다.
남시인의 시는 설명이 필요없는 시다. 그 만큼 쉽게 쓰여졌을 뿐만 아니라 관념과 정서와 이미지가 하나로 무르녹아 있기 때문이다.
또 노래하는 시라기 보다는 생각을 요구하는 시에 속한다. 이러한 냄새는 그의 시가 거느리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 구조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수년 동안 동시를 다루어 온 원숙미가 바로 시에 그대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티없는 동심과 천심이 어우러진 그의 고백이 우리에게 넉넉한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남시인의 재치는 상상력의 뒷받침에 의해 돋보인다.
“봄빛”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밝은 색조도 많은 작품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현상이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글이란 기발한 낱말이나 절묘한 기교 등에서 오는 수사력이 아니다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사상 우리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상상력 묵중한 사색에서 오는 끈덕진 이야기들만이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흡착력을 지니게 마련인데 남시인은 상당한 소화력으로 주어진 소재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앞으로 제2 제3의 시집이 장마 뒤 봇물 터지듯 이어 나오길 기대하면서 박수를 보낸다.
〠남진원 시집 나비, 청산의 나비
1985년 11월 5일인쇄
1985년 11월 7일 발행
펴낸이: 박 종 현 발행소: 아동문예사
등록: 1977년 6월 23일 (마 No. 36호)
서울 종로구 인사동 16-2 (402호) TEL 723-6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