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운경 제2권
[선 바라밀]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에게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면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갖췄다고 한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복덕(福德)을 많이 쌓는 것,
모든 악을 매우 싫어하는 것,
열심히 정진하는 것,
다문(多聞)을 갖추는 것,
올바로 아는 것,
법을 깨달아 법으로 향하는 것,
근기가 날카롭고 총명한 것,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있는 것,
정(定)과 지(智)를 잘 이해하는 것,
선상(禪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복덕을 많이 쌓는 것]
무엇을 복덕을 많이 쌓는 것이라 하는가?
오랫동안 대승법(大乘法)에서 선근(善根)을 쌓는 것이니,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선계(善戒)를 지켜 보호하고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며,
세세(世世)로 항상 찰리종족(刹利種族)이나 바라문대성(婆羅門大姓)이나 거사대가(居士大家)로 태어나 태어나는 곳마다 항상 정견(正見)을 가진 집을 이루어 선법(善法)을 증장시킨다.
닦아야 할 훌륭한 방편을 늘 생각하여 버리지 않고, 항상 선지식과 보살과 모든 부처를 떠나지 않으며 점점 더하여 키운다.
[모든 악을 싫어하는 것]
그리고 모든 법을 이렇게 관찰한다.
‘세간은 큰 괴로움이어서 항상 재난의 고통이 핍박해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영원히 수많은 고통을 받으나 무명(無明)으로 눈이 멀었다.
이 모든 것이 애욕(愛欲) 때문이니, 욕심이 근본이 된다.
나는 이제부터 범부들처럼 욕심을 가까이하지 않으리라.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욕심이란 망상(妄想)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연(因緣)으로 그 허물을 말씀하시기를,
비유하면 욕심은 마치 나무로 사람의 심장과 콩팥을 뚫는 것과 같고,
욕심은 날카로운 창과 같으며,
욕심은 칼날과 같고, 욕심은 독사(毒蛇)와 같으며,
욕심은 날카로운 불꽃과 같고, 욕심은 가까이해선 안 될 문드러진 고름 같으며,
욕심은 거품 덩어리 같고, 욕심은 뜨거운 불꽃 같으며,
욕심은 요술로 만들어진 것과 같고, 욕심은 꿈과 같으며,
욕심은 더러워 사람을 냄새나고 더럽게 만들며,
욕심은 농익은 종기 같고, 욕심은 썩어 문드러진 고기 같다고 하셨다.’
[열심히 정진하는 것]
이와 같이 욕심을 혐오하는 생각을 하고는
수염과 머리털을 깎고 하던 일을 놓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자 법의를 입고, 사문이 되어 정법(正法) 속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집으로부터 집 아닌 곳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대정진(大精進)을 일으켜,
선법(善法)을 얻지 못한 이는 얻을 수 있게 하고,
지혜를 얻지 못한 이는 지혜를 얻게 하며,
증득하지 못한 이는 증득하게 한다.
[다문을 얻는 것]
이와 같은 인(因)과 이와 같은 연(緣)으로 이와 같은 일로 인해 곧 다문(多聞)을 얻어,
[올바로 아는 것]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모두 잘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세제가 곧 제일의제임을 잘 알고,
전도(顚倒)되지 않는 법은 법의 체상(體相)과 같은 줄을 잘 안다.
[법을 깨달아 법으로 향하는 것]
무엇이 법의 모습을 잘 아는 것인가?
바른 견해와 바른 뜻과 바른 말과 바른 업(業)과 바른 생활과 바른 방편과 바른 의식과 바른 정(定)으로 정도(正道)를 아는 것이다.
[근기가 날카롭고 총명한 것]
이리하여 근기가 점점 더 총명해지고 마음이 항상 도(道)에 있게 된다.
근기가 총명하므로 싫어하는 마음을 많이 내어 대중이 모인 시끄럽고 번잡한 곳을 멀리 떠나고,
욕망에 의한 감각[欲覺]인 탐욕과 노여움과 사견(邪見)과 해치려는 마음을 멀리하고,
권속들도 멀리 떠나고, 명예와 이익도 멀리 떠나 모든 몸과 마음을 멀리 여읜다.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있는 것]
항상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여 선(善)과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를 생각한다.
선을 생각할 때는 마땅히 뛰어난 선을 생각해야 하니, 뛰어난 선을 생각하는 이는 환희하는 마음을 내고 믿음의 즐거움을 일으킨다.
[뛰어난 선]
무엇이 뛰어난 선을 생각하는 마음인가?
37품(品)이 그것이다.
무엇이 37품인가?
4념처(念處)와 4정근(正勤)과 4여의족(如意足)과 5근(根)과 5력(力)과 7각분(覺分)과 8정도(正道)이다.
이를 뛰어난 선이라고 하며, 이것이 진실한 도를 이루는 모든 부분이다.
마음이 아직 선하지 못하다면, 혐오하는 마음을 최대한 일으켜 많이 관찰하고 열심히 방편을 행하여 불선(不善)을 끊어야 한다.
[선하지 못한 것]
어떤 것들이 선하지 못한 것인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다.
[탐욕]
탐욕에는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탐욕인가?
욕심이 몸을 핍박하여 정견(正見)이 쇠하여 줄어들고 탐욕을 여의려는 마음이 적어지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지는가?
임야(林野)에 혼자 있으면서 몸을 거두고 고요히 생각할 때, 욕각(欲覺)을 사유하면 점점 더 성하게 되어 욕각을 귀중하게 여기고 욕각을 찬탄하게 된다.
욕각으로 인해 이렇게 사유하게 될 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어떻게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가?
욕업(欲業)과 욕작(欲作)과 욕인연(欲因緣)으로 부모 계신 곳에서 원망하는 말을 하고,
존경해야 할 어른이 계신 곳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부끄러움이 없이 스스로 덕이 있다고 나타내는 것이니,
이러한 욕심으로 인해 목숨이 끊어질 때 악취(惡趣)에 떨어진다.
이를 심한 탐욕이라 한다.
무엇이 보통 탐욕인가?
만약 탐욕[欲]을 받고 나서 싫어하고 버리려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를 보통 탐욕이라고 한다.
무엇이 약한 탐욕인가?
접촉하였을 때에 탐내는 생각이 곧 없어지거나
혹은 비록 함께 얘기를 나누며 더러운 생각이 일어나긴 했지만 곧 없어지거나
혹은 욕심나는 것을 보았을 때 탐욕스런 생각이 바로 없어지면,
이를 약한 탐욕이라 한다.
탐욕[欲]이란, 모든 의복과 음식과 몸을 치장하는 갖가지 장신구를 모두 탐욕이라고 한다.
[노여움]
노여움에도 역시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노여움인가?
만약 저것을 괴롭힐 때 깊이 분노가 생겨 5역죄(逆罪)를 짓거나 혹은 5역죄 중의 몇 가지 역죄를 짓거나 혹은 정법을 비방하는 등의 죄를 짓는 것이니, 이런 죄의 심한 정도는 숫자로 셈하여 비유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끊기면 대지옥에 떨어져 죄를 받을 것이며,
후에 사람으로 태어나도 남은 과보로 피부와 몸체가 검고 수척하며 두 눈이 항상 붉을 것이며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항상 성내고 남에게 해를 많이 끼칠 것이다.
이러한 뜻으로 심한 노여움이라고 한다.
무엇이 보통의 노여움인가?
온갖 악을 지었더라도 속히 후회해 즉시 대치(對治)하는 법을 닦는 것이니, 이를 보통의 노여움이라 한다.
무엇이 약한 노여움인가?
악한 말을 하거나 꾸짖고 비난하거나 혹은 작은 악업이 모이거나 때때로 노여움을 일으키지만 곧바로 다스리는 것이니, 이를 약한 노여움이라고 한다.
어리석음에도 역시 심한 것과 보통 것과 약한 것의 세 종류가 있다.
무엇이 심한 어리석음인가?
악을 짓고도 후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싫어하는 마음이 없을 때, 이와 같은 것을 심한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어리석음]
무엇이 보통의 어리석음인가?
몸으로 악한 일을 저질렀을 때, 곧 후회하는 마음을 내어 함께 범행을 닦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참회하고 자기의 덕(德)은 드러내지 않는 것이니, 이를 보통의 어리석음이라 한다.
무엇이 약한 어리석음인가?
여래께서 제정한 계율 중 성중죄(性重罪)가 아닌 소소한 계율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한 어리석음이라 한다.
보살마하살은 선한 마음이 일어날 때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돌이켜 애욕(愛欲)을 제거하고, 욕락(欲樂)을 제거하며, 욕심내어 집착하는 것을 제거할 수 있으니, 선한 마음으로 인해 욕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무기심]
무엇이 무기심(無記心)인가?
이 마음이 일어날 때는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고 안에 머물지도 않으며, 선(善)에 머물지도 않고 불선(不善)에 머물지도 않으며, 정(定)에 있지도 않고 지(智)에 있지도 않아, 마치 잠에서 막 깨어 일어나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것처럼 선악에 머물지 않으니, 이를 무기(無記)라고 한다.
무기심이 일어날 때 보살은 방편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환희심이 생기게 하여 선에 안주하니, 이를 보살이 선한 마음을 얻는 것이라 한다.
그 선한 마음으로 일체 모든 법이 허깨비와 같고 꿈과 같고 뜨거운 불꽃과 같고 메아리와 같으며,
이것은 선법(善法)이고 저것은 선법이 아니며,
이 법은 생사를 벗어나는 것이고 저 법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관찰한다.
보살마하살이 모든 법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을 일으켜야 하니, 법을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 선도(先導)하기 때문이다.
[정(定)과 지(智)를 잘 이해하는 것]
마땅히 그 마음을 잘 지니면 그 마음을 잘 조복시키게 되고, 모든 법을 잘 지니게 되면 모든 법을 잘 조복시키게 된다.
그리하여 정법을 보고 나면 이로 인해 곧 적정(寂定)을 얻게 된다.
마음이 경계(境界)가 되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을 묶으면 마음이 점차 적정으로 들어가고,
그리하여 마음으로써 마음에 머물러 바르게 삼매(三昧)에 머문다.
마음이 적정한 까닭에 곧 능히 전일(專一)하게 되며,
마음이 전일한 까닭에 점차 틈이 없게 된다.
정심(定心)을 얻은 까닭에 마음이 항상 적정(寂靜)하고,
마음이 적정한 까닭에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곧 애욕과 선하지 못한 모든 악을 없애게 된다.
유각유관정(有覺有觀定)이 생겨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초선(初禪)을 성취하고,
무각소관정(無覺少觀定)이 생겨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제2선(禪)을 성취하며,
기쁨을 없애고 얻은 즐거움마저 버리려고 생각하면 제3선을 얻고,
기쁨과 즐거움을 버려 평등한 마음[捨心]을 행하면 제4선을 얻는다.
아견(我見)을 없애고 근심과 기쁨을 떠나며, 고통과 즐거움을 버리고 정념(淨念)으로 버리는 마음을 행하면 4선 일체를 해탈한다.
[선상(禪相)에 집착하지 않는 것]
그리하면 색상(色相)을 여의어서 허공과 같이 되고 중생의 심상(心相)이 허공상(虛空相)과 동일하다는 해탈관(解脫觀)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까닭으로 색상이 없어지고 공상(空相)이 생긴다.
뇌괴상(惱壞相)이 멸하고 나면 허공상(虛空相)이 이루어지고,
끝없는 허공상으로부터 차례로 식(識)을 관하면 식이 끝없는 까닭에 허공상이 없어진다.
식이 점차 줄어드는 것을 관해 식이 거의 없게 되면 불용처(不用處)라 하고,
다시 이 식(識)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을 관하면 이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하며,
모든 생각과 느낌을 없애면 이를 멸정(滅定)이라고 한다.
보살은 비록 멸정에 들었다 하여도 중생 교화하는 일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영원히 즐거운 멸정을 적정(寂靜)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멸정을 버리지 않고도 능히 자비로써 두루 중생을 덮는다.
멸정 속에 있으면서 비심(悲心)과 희심(喜心)과 사심(捨心)을 일으키게 되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보살은 이때 곧 다섯 가지 신통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12문선(門禪)과 5신통(神通) 등에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바야흐로 높은 법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해 장엄함을 갖추고 공덕을 가득 채운다.
선남자야, 이 열 가지를 갖추면, 이를 보살이 선바라밀(禪波羅蜜)을 갖춘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