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구에서 잡히는 민물참게를 원료로 하는 참게백반이 어째서 수백리 떨어진 내륙인 전라북도 정읍에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말았을까.
한순이 여사가 정읍에서 대일정을 열었던 31년 전만 하더라도, 섬진강과 정읍을 이어주는 교통수단이 요사이처럼 간단하게 연결된 것도 아니었다.
그 의문은, 한순이 여사가 빚어내는 참게백반의 양념장 맛을 보면 금방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일정이 섬진강 하구에서 잡히는 참게를 고집해온 까닭은, 참게가 잡히는 곳이 지금은 섬진강 하구뿐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근육이 단단하고 기름지기 때문이다.
산 채로 육송되는 참게를 6시간쯤 물에 담가놓은 것은, 내장에 고인 뻘 흙을 스스로 게워낼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그 다음에 깨끗하게 씻어서 게딱지 속에 생강과 마늘을 다져 넣고, 조선간장과 진간장으로 채운 항아리에 참게의 배를 위로 하여 차곡차곡 쌓아 담는다.
간장 맛이 쫄깃쫄깃한 속살까지 배어들도록 하자면, 그 항아리를 그늘진 저장고에 적어도 6일 동안은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6일이 지난 뒤에 그 간장을 따라내어 다시 끓여 식힌다.
이런 과정을 적어도 3번을 반복한 다음, 냉장고에 넣어 6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먹음직스런 참게장 조리가 마감된다.
밥도둑으로 지칭되는 이 참게장을 한술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 감도는 감칠맛과 향기는 오랫동안 잊을 수 없게 되지만, 당장 느끼는 입맛에는 짜다.
그러나 이를 독특한 향기로 중화시켜 주는 것이 바로 숙성시킨 참게 한 마리와 같은 접시에 내놓는 짜지 않은 양념장이다.
식탁에 오른 게의 속살을 젓가락으로 해작해작 꺼내어 양파·고추·파·마늘·생강·통깨·참기름과 함께 버무린 양념장을 밥에 얹어 비벼 갓 구워 내놓는 김에 싸 먹으면, 천국의 음식을 먹고 있다는 기분이 들 만큼 행복해진다.
지난날, 금강 유역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절기가 가을로 들어서기 직전 금강 지류의 얕은 여울에 돌담을 어긋나게 쌓거나 삭정이를 주워 촘촘하게 세워두고 기다리면, 속없이 기어드는 참게들을 손쉽게 잡아낼 수 있었다.
횃불을 켜들고 새끼에 수수를 매달아 항아리 속으로 들어오도록 유인해 잡기도 하였다.
연안 개발이 기승을 부리지 않았던 시절, 이 강변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손전등 하나를 달랑 들고 강 근처의 갈대밭으로 나간다.
갈대 속으로 가만히 전등을 비추고 있으면, 불빛의 유혹을 받은 어린 참게들이 흡사 벌통 앞에 벌들이 모여들 듯 새까맣게 모여든다.
검은 색깔에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인 이것을 갈게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때는 새까맣게 모여드는 이 갈게를 가져간 망태기에 마냥 주어 담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뻘흙을 빼고 간장에다 젓을 담가 겨우내 밑반찬으로 삼았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소설가
◈참게 맛보려면…
참게를 구경하려면 물 맑은 섬진강으로 가야 한다.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곳에 압록(鴨綠)유원지가 있다.
가든산장(061-362-8343)은 참게로 유명한 집이다.
참게장은 참게가 알을 배고 있는 가을에 담근 게 가장 맛있다.
털이 나 있는 양쪽 집게발을 쪽쪽 빨아먹고, 배딱지를 열고 끄집어내 먹는 주황빛 참게 알 맛은 ‘진정한 밥도둑’이 무엇인가를 실감나게 해준다.
정읍 태인에 있는 대일정(063-534-4030)은 참게장 백반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다.
게장 맛이 짭조름하면서도 향긋하고, 깊이가 있다.
참게장 전문이라 1년 내내 참게장 맛을 볼 수 있다.
게장은 담그는 것도, 먹을 수 있는 계절에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얼큰하게 매운탕을 끓여 먹는 것도 괜찮다.
논산 탑정 저수지 곁에 있는 평매매운탕(041-741-0926)은 냄비에 시래기와 무를 깔고 매콤하게 끓인 참게 매운탕 맛이 후련하다.
쌍계사의 선선한 바람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들러보는 화개장터의 동백식당(055-883-2439)도 참게와 은어로 유명한 집이다.
요즘엔 토란대, 시래기, 미나리, 쑥갓, 무 등 야채를 듬뿍 넣어서 시원하게 끓인 참게탕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