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통 《호서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지역문학 선봉의 위치에서 진로 탐색
호서(湖西)라는 명칭은 일반적으로 충남.북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문자의 뜻을 따라 호수의 서쪽이라고 할 때 그 호수는 충북 제천의 의림지를 일컬어왔다. 그 호서지방의 중심도시 대전에서 호서문학회가 창립을 한 해가 1951년 11월 11일이었고 ⟪호서문학⟫이 창간된 것은 1952년 8월 1일이었다.<호서문학회>는 대전을 기반으로 정 훈, 박용래, 한성기, 권선근 등의 선배 문인으로 조직된 한국 최장수 종합문학지를 가진 문학회다.
나이를 가리키는 말로써 70세를 고희(古稀)라 한다 두보의 시구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왔고 희수(稀壽)라고도 일컫는다 《호서문학》이 처음으로 창간된 해가 1952년 8월, 어느덧 70년이 되었으니 올해가 고희(古稀)다.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연륜이 깊은 종합문학지로 자타가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호서인의 자랑이고 자긍심이다. 더구나 서울도 아닌 지방에서 인적, 재정적인 열악함을 극복하면서 70년을 꿋꿋이 버티어 온 것은 선배 문인들의 헌신적인 공로와 호서회원 모두의 전통 계승 정신이 투철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있다. 《호서문학》이 문학의 각 장르에서 한낱 대전. 충청지역에 머물지 않고 수도권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회원들이 분포되 있고 문학 활동 또한 폭넓게 활발히 활동하고 있음은 호서 70년의 역사가 튼튼한 반석 위에서 앞으로 한국문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다져 가고 있음을 믿음직하게 실감 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10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지난 2012년 내가 호서문학회장직을 맡았을 때 『호서문학 60년사』를 간행하였다 『호서문학 60년사』는 1952년부터 2012년 까지 호서문학회에서 간행한 책자 『호서문학』,『호서시선』등의 사적 사실 중심으로 송석홍, 최문희, 김용재, 이진우, 전 민이 기술하였고 방대한 양의 표지 사진과 목차 정리는 홍순갑이 맡아서 하였다 《호서문학》의 역사가 간간히 소사만 단편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을 뿐 역사적 자료가 점점 없어져 가거나 원로 선배 회원들이 고인이 되어 역사적 진실이 와전되거나 오도될 염려도 있을 것 같아 하나의 역사적 의미를 남겨 보존하고 호서문학 발전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호서문학》 60주년 회갑을 기념하고 후배 문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어 문학 활동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준다는 의미에서 『호서문학 60년사』를 간행 한 바가 있다, 또 하나 의미 있는 일은 그간 애타게 찾아내 보관하려고 노력하던 《호서문학》 창간호를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충남대학교에서 찾아내 영인본으로 발간할 수가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호서문학회>가 올해로 70살이 되었다. 70년 전, 6.25 한국전쟁의 참화를 가장 극심하게 입어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일 때, 대한민국의 중심 한밭, 대전에 선비의 고장답게 정훈을 중심으로 홍성규, 한성기, 박용래, 권선근 등이 뜻을 같이하는 <호서문학회>가 전국에서 대전으로 문인을 포함한 피난민들이 모여들던 1951년 한국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태동의 움직임을 보였다. 정훈과 박용래, 박희선 세 명의 시인은 시지 <동백>에 이어 1951년 <호서문학회>를 창립하기로 하는 등 대전지역의 문학사를 일구는데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호서문학회>는 1951년 정훈과 박용래, 한성기, 권선근(소설), 등에 의해 그 구심체가 형성되었고 중앙문단에서 활약하던 강소천 등의 작품이 호서와 합세하는 활기찬 재출발을 하게 되어 닻을 올린 지 반년 남짓 1952년 7월에 임희재와 원영한의 편집으로 창간호가 발행 되었다. 바로 70년 전, 필자의 나이 불과 네 살에 불과한 철부지 유아 이었을 때 일이다.
<호서문학회> 초대회장은 정훈, 부회장 대전일보사장 임지호와 중도일보의 송영헌, 총무는 한성기, 정재수, 심재규, 편집은 정해붕, 원영한, 박용래, 박상용, 명예회원에 홍효민, 시에 성기원, 아동문학에 성열균, 소설에 권선근, 평론에 주기형, 고전문학에 지헌영, 외국문학에 곽소진, 시나리오에 명제익, 희곡에 양기철, 그리고 송기홍, 임희재, 임강빈 등이 <호서문학회>의 초대 멤버들의 얼굴이다
1954년 정기총회에서 회장 전형․부회장 홍성규․시 한성기․소설 권선근․평론 전형(겸)․희곡 신관우․사무국장 김지향으로 임원진이 개편되었고「湖西文學」 제2집 발간과 전후하여 대전일보를 통해 익히 알려진 곽학송이 「文藝」지에 추천 완료함으로서 임상순과 권선근․한성기․이종학 등 그들 순수를 기치로 내걸었던 소장파 문인들이 추천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호서문학회>도 지역문학의 한계에 부딛치기 시작하여 조금씩 흔들리더니 1955년 7월 들어 한국자유문협충남지부를 결성함에 이르러 호서문학 주요 멤버들이 호서문학회를 떠나 이주하고 말았다.
그 후 195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정주상이 소년소설 「경재와 하모니카」로 당선되어 기염을 올리고 3.1절 경축 예술제를 열었으며 지상에 「詩 리레이」「隨筆 리레이」가 이어져 다시 동인활동이 상승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에는 6.25로 떨어져 있던 정해붕․송석홍이 다시 돌아와 참가했고 김영덕이 새로이 합세했다.
1956년 6월에 국판 200면의 <湖西文學> 제3집이 간행되었다. 이때 총무에는 홍성규․이교탁, 편집에는 원영한․정주상이 ,재정적인 면은 주로 전형의 도움이 컷다.
《호서문학》이 1952년 창간호가 발간된 이후 2022년 69호가 나오기까지 그동안 대전. 충청지역의 가장 대표적인 지역문학지로서 또한 중앙문학과의 가교적인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고 본다. 연 1회 발행하던 호서문학은 2001년부터 연 2회 발간하고 있다 《호서문학》은 역량 있는 문인들이 집결하여 작품으로 말하는 문학세계를 심도 있게 개척해 왔으며「전통과 신감각의 조화」란 한 이념을 지속적으로 계발해 왔다. 대표적 문인으로는 정 훈, 지헌영, 이재복, 김대현, 박희선, 한성기, 박용래, 권선근, 윤모촌, 임헌도, 임희재. 송석홍, 이교탁, 김영배, 민용환, 신정식, 이덕영, 정의홍, 신재후, 김동직, 등 작고 문인을 비롯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역 문인들이 많다. 《호서문학》은 「작고문인 발굴」,「월북-납북문인연구」,「작가탐구」등의 특집을 통해서 박노갑, 이해문, 윤백남, 김형원, 민태원, 엄홍섭, 염인수, 신동엽, 안회남 등 작가와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재조명했다. 아울러 출향 문인 특집을 통해서 하유상, 이병구, 김홍신, 김낙중, 성기조, 임성숙, 김성동, 이병남, 김영만, 이생진, 유한근, 김용철, 채규판, 임동권, 최창열, 정광수 등 비중 있는 문인들의 원고를 수록함으로써 호서문학의 역량을 상승시켰다. 《호서문학》은 호서문학상 시상, 신인작가 발굴, 작고 동인 대표작 순례, 예술 산책 등 간판급 얼굴로서의 문학의 지평을 심도 있게 확장해왔다. 《호서문학》은 여타 문학지와의 차별화 전략 중 하나로 외국문학을 광범위하게 탐구하고 소개해 왔다. 대부분 국내외 저명교수들께 의뢰하여 어렵게 원고를 받았지만 많은 찬사와 더불어 자평으로도 성공적이었다 소설가로 잘 알려진 최상규는 1980년대 후반 문학단체라곤 오직 호서문학회에서만 활동을 했는데 1994년 초 외롭게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미문학이론을 소개하는 번역작업의 선봉에 있었다.
호서문학 정신을 오늘에 반영하고 미래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다짐 몇 가지로 요약해 본다.
1. 미래를 개척해가는 향토 문단을 창설하고자 하는 정신이다. 《호서문학》 창간호에 실린 창간사에 나타나듯이 거센 바람을 견뎌내고 비상한 각오로 조국 문단에 꽃을 피우기 위해 초지일관 노력하여 최장수 문학지의 자긍심과 자존심, 그리고 명예로운 전통을 지키자는 것이다.
2.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끝까지 서로 존중하고 포용하면서 문단을 세워나가는 전통을 지키자는 것이다. 때로 의견을 달리하고 다른 조직을 가졌더라도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큰 명분과 긴 전통을 내세울 때는 배척함 없이 함께하는 것이다.
3. 향토 사랑과 전통적 토착 문단의 주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중앙문단의 격류나 다른 정치사회적 혼란이 있더라도 향토 문단은 독자적인 탄생과 발전 과정의 산물로서 중심을 지키며 나간다는 것이다.
4.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력으로 상생을 도모하는 문인 정신이다. 새로운 단체가 설립되고 다양한 활동형태가 나타난다할지라도 서로 적대감을 갖거나 참여를 제한하는 일이 없이 자유의사에 따라 모두의 참여를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5.명예로운 문인의 자존과 문우애와 문단 존중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문단이 정치나 사회적 격동에 흔들리고 파괴되지 않고 결국은 본연의 위치로 돌아와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가는 것이다.
6.향토문단을 흔들거나 갈등으로 몰고 가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이권이나 야심이나 감정 때문에 잠시 충격을 받더라도 끝내는 모든 문인이 함께 향토 문단을 지켜가는 일원으로 동참하게 하는 흡수력을 바탕으로 대의명분에 충실함이다.
7. 선비고장의 품격을 지키는 것이다. 개별적으로는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문단의 전체적 운영은 선비고장다운 면모를 유지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호서문학》은 매년 6월과 11월에 반 년간으로 발간하여 회원, 문인, 공공기관, 대학도서관 등에 배부하고 있으며 호서우수문학상, 호서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호서문학》은 1940년대 '동백'과 '향토'지의 맥을 이어받은 명실상부 지역문학지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행이 끊기지않고 면면이 이어오고 있음은 대전을 넘어 한국문학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호서문학》이 역사가 오래됐다는 것만 자랑하는 것만은 아니다. 지역문학지를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그동안 선·후배 문인들의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부심을 이어가며 더욱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회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지역문학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지역문학 발전을 위한 지역문인의 일관된 목소리가 크지 못했으며 그 지역의 특색으로 접근하지 못한 향토문학의 실종을 꼽을 수 있다. 향토적인 것은 개성적인 것을 뜻하며 개성은 지역 문학의 근원이 된다. 향토성에는 작품의 소재적 측면은 물론이고 지역문학이 자기의 지역에 기여하는 측면, 예를 들자면 강원도의 토지문학관이나 김유정 문학관과 같은 문인의 생가, 작품의 배경, 지역주민을 위한 문학 활동, 지역문학의 저변확대로 대전, 충청의 문학적인 체험을 하고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문학매개체가 갖추어져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지역문학 발전에 관심이 부족한 언론 매체와 홍보의 여건이 잘 안 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문, 방송 등의 얼론 매체를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독자와 만나는데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지역문학의 여건상 언론매체의 무관심이나 부재가 지역문학이 중앙의 독자를 확보하지 못한데다 경제적 상황마저 빈약한 지역문학으로서는 문예지나 무크지 발간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각 지역마다 수많은 지역문학지가 발행되고는 있지만 문학 비평을 통한 작품 발굴과 질적 향상이 연계되지 않고 있어 문학매체로서의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시. 도 단위별로 지역 연고를 둔 문예지의 발간과 지역연고 문예지끼리의 연대를 통해 지역문학의 중앙 화를 지향하기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다. 중앙지를 표방한 문예지와 차별화 할 수 있는 작품의 향토색을 드러내지 못한 채 문예지 출신끼리의 지면 맞교환, 지역문예지의 장 안에 들어온 문인의 연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앙문예지보다 폐쇄적이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는 지역문예지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방문학지의 성격을 넘어서는 열린 시각이라 하겠다.
이 기회에 하나 더 말하자면 지역문학의 어려운 점은 비평다운 문학비평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문학의 구성원에 평론가와 국문학자도 적을뿐더러, 몇 명 안되는 문학평론가마저 지명도 있는 문인 중심으로 평론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지역문인의 작품이 비평의 도마에 오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지역문학이 다른 지역이나 중앙을 겨냥한 치열한 창작정신보다는 지역의 문화 권력으로 안주하는 현상도 문제점이라 말 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와 맞물리면서 독자와 유권자의 혼동 속에 지역의 문화 권력으로 만족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문학은 지역의 문화 권력 숲에서 벗어나 지역문학의 활성화, 지역문학의 중앙문학으로의 진출,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문학의 활성화 모색은 중앙으로 진출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중심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아니라 탈경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문학에 대한 열등감은 무조건적인 지방분파주의적 편견을 낳았고 지방색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던 만큼, 지역문학의 위상회복을 위해서는 “중심부 문화자본의 논리에 흡수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지역주의의 입장에서 지역문학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호서문학》이 한 지역문학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더욱더 향상과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재정적, 인적인 확보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치단체, 문화재단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여 사업의 예산 편성과 확보에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내의 뜻 있는 기업체 그리고 출향 인사 가운데 재력가나 뜻 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나감으로서 문학에 관한 책자 발간 등 지역문학 발전을 다각적으로 모색해 갈 수 있다고 본다.
인적인 확보 역시 수량적인 면보다는 질적인 면에 더욱 치중해야 할 것으로 본다. 회원들의 창작 의욕 고취는 물론이고 유능한 신입회원 영입 등에 심혈을 기울이며, 호서문학상 및 작품상 등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발. 발굴하고 격조 높고 품위가 있는 시상이 되도록 제도 및 절차를 능률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호서문학》은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 척박한 문화풍토 속에서 향토 문학의 꽃으로 1952년 태어난 우리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유구한 전통을 이어 온 종합문예지 중의 하나이며 지역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70여 년간 그 맥을 면면히 이어왔고 순수한 문학 활동의 지향과 전통문화의 가치를 진작시켜 왔으며 우리의 문화적 자각과 자율성을 추구하면서 문학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호서문학》은 지역문학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어 중앙문학의 버팀목이 됨은 물론 한국문학 세계화의 길을 함께 추구해 가야 한다는 보다 큰 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