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
김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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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티비에서 인공지능이 어쩌구, 바둑이 어쩌구, 최고의 기사가 인공지능에 깨졌나느니 하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인공지능이란 인간에게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일종의 인간이 만들어놓은 허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에게 인간이 졌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마치 터미네이터란 영화에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 것 처럼요.
하지만 그건 기우였습니다. 그 이후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으려니와, 인공지능이라고 시중에 나온 책을 (물론 사서 읽지는 않습니다. 돈이 없으니까요) 도서관에서 근근히 빌려 와 읽어보니 별게 없었습니다. 아직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인공지능이 나를 잡아먹을 일은 없겠구나 하는 그런 모종의 안도감 같은 것이었죠.
얼마 전 주말에 방바닥을 뒹굴거리다가 티비를 켜고 채널을 낮은 번호에서 높은 번호로 돌리고 있었습니다. 터미네이터 2를 한 케이블 방송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채널을 고정하고 영화를 봤죠. 사실 이 영화는 제가 한 열 번은 본 영화입니다. 어디서 어떤 내용이 나올 줄 다 알고 있죠. 하지만 그게 그런다고 재미가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장면을 예상하면서도 그 장면이 나오면 만족감을 느낀다는 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역시나 기계와 인간과의 사투,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플롯, 현란한 액션과 그래픽 화면에 지루한 줄도 모르고 다시 봤습니다. 역시 명작은 다시 봐도 명작이란 생각까지 하며 말이죠.
다음은 제가 얼마 전 한 강연에 가서 ‘인공지능 시대의 글쓰기’란 주제로 한 유명하지도 책을 많이 쓰지도 않은 작가의 강연을 요약한 것입니다. 키워드 위주로 요약해 정확한 정보가 전달될지는 미지수지만, 큰 줄기는 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속기하듯이 나름 기록한 것으로써 여러 동도제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디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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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매우 애석하게도, 제가 이미 그러니까, 예정된 강연자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애석하게도, 저도 아주 좋아라하는 그런,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 분이 원래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분이 요즘 베스트셀러 작가로 워낙 잘 나가시는 분이고, 그 분 스케줄이 살인적이라는 것도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치 공연에서 그 한 사람을 보러 왔는데 그분이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그런 형국이라 하겠습니다.
하필 제가 이런 오명을 쓰면서 여기 이 자리에서 서게 된데는 결국 저의 강력한 바램도 아니고, 제가 뛰어난 작가이기 때문도 아니며, 제가 이 분야에 책을 쓴 사람도 아니란 말씀올시다. 다만, 그 분이 일정이 모조리 틀어졌는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주최측에서 이야기해주질 않으니, 저도 알 도리가 없음은 분명하고, 저 역시 내키지 않지만, 주최측에서 저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를 하면 저 역시 이 바닥에서 매장당할 것이 분명해 보이고, 제가 또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를 그 분이 오지 않고 제가 대신 나와서 강연하게 됨을 그리 애석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도중에 자리를 떠나지 말아달라, 뭐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떠나신다고 제가 할 말은 없지만, 저 역시도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본적이 딱히 없고, 지금도 내색은 안 하지만 손발이 오그라들고 이렇게 생수라도 한 병 들고 서있지 않으면 손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뭐 그런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인공지능에 대한 책은 결코 써본 일이 없으며, 다만, 이 자리에 선 것은 주지하다시피 제가 제 SNS에 인공지능과 글쓰기 관련 글을 몇 개 올린 것이 화재라면 화재랄까? 아니면 이 분야에 글을 쓰는 분이 별로 없는지, 이게 관심을 받았더라는 겁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이유로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죠.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무도 니 글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써도 된다’는 거였습니다. 제가 유명해서 사회장 파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리고 쓴 책도 인공지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 책들도 첫 책을 빼고는 그다지 팔려나간 책도 없기에, 오늘 이 자리가 부담스러운 건 역시 저의 능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한 시간을 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게 단 하나라도 건져갈 수 있는 말을 해야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면 글쓰기는 대단한 위기에 봉착하리라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올시다.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인공지능이란 놈과 글쓰기가 사뭇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일견 전혀 겹칠 거같지 않은데, 도대체 뭐가 겹치냐? 고 묻는다면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가장 위협할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기자에 대한 인식이 영 안좋은데요, 기레기라고 부르며, 반 쓰레기로 취급하는 걸 보니 조금 가슴이 아프기도 합니다. 저도 기자 생활을 조금 했고, 제 친형도 기자 출신이거든요. 모든 기자가 다 그런 것도 아닌데, 어디서 국적도 없는 모호한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랍시고 펜데를 함부로 휘두르니 이거 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기자들이 쓰는 기사란 게 보통 6하원칙으로 이루어졌다 이겁니다. 다분히 기계적이라는 거죠. 이미 해외 언론사에서는 컴퓨터가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게 이제 보편화 될거라는 거죠.
그 다음은 법조 영역입니다. 이미 수많은 판례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변호사 비싸지 않습니까? 뭐 말을 그리 어렵게 적는지, 무슨 절차가 그리 복잡한지 지들까리만 헤쳐먹을 수 있게 우리같은 일반인은 접근도 못하게 그리 만들어놓았습니다. 변호사 없이는 소송도 못하게 법으로 정해놨죠. 그러니 돈은 돈대로 나가고 변호사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소송에서 져도 어디다 하소연할 때도 없다 이거죠. 세상에 이런 불공정한 게임이 어디 있답니까? 그래서 이 분야는 당장 인공지능이 들어와야 할 분야이기도 합니다. 요즘 무슨 로스쿨이니 해서 변호사가 양산된다고 하는데 그거 믿을 거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들 밥줄이 끊어집닉까? 그렇다고 소송 수임단가가 체감할 수 있게 내려갔습니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실 판결문과 각종 법원서류를 모아서 빅데이터화 해 그걸 분석해 쓰면 된다는 겁니다. 인공지능이 넉끈히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판례란 것도 과거의 자료를 뒤져서 현 재판의 참고자료로 삼는 건데, 인간이 찾는 것보다는 기계가 훨씬 정확하죠. 제가 법대를 나와서가 아니라 법조인들은 다들 개만도 못한 것들입니다. 지들까리의 카르텔이라는 게 있죠. 1심에서 누가 이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항소하니까요. 그럼 변호사를 다시 사야 합니다. 이렇게 서로 도와줍니다. 시장을 만드는 거죠. 판사, 변호사, 검사가 모두 한통속입니다. 죽아나가는 건 피고와 피고인, 원고죠. 참 서글픕니다. 그러면서도 참 우리 인간이란게 이율배반적이기도 한게 서로 사법시험이다 로스쿨이다 해서 법조인이 되려고 혈안이 되어있죠. 변혹사는 다 사기꾼 색희들이다 하면서도 부모들은 자식이 법조인이 되길 바랍니다. 그만큼 전문직이고 돈도 잘 버니까요.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라고 별 수 있나요? 창작이란게 인공지능이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소설가만 해도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이 필요한데, 이거 사람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구라를 못친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가능하게 된 게 딥러닝입니다. 배운대로 행동하는 거구, 배운대로 쓰는 거죠. 가장 최선을 찾아 쓰는 겁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가령, 불륜, 삼각관계, 배신, 사기, 치정관계를 빅데이터화하여 절묘하게 섞어내는 겁니다. 인공지능이 오히려 인간보다 더 잘 할 수 있어요. 시인은 다른가요? 비유와 은유, 그거 빅데이터가 쌓이면 충분히 가능해요. 가령 공감각적 심상을 봅시다. 비유와 은유는 비교하는 양 자가 멀면 멀수록 더 효과를 발휘한다지요? 푸른 종소리가 대표적인 공감각적 심상입니다. 이런 말을 인공지능이 과연 못 만들어낼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공지능이 못할 게 없어요.
우리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직업을 많이 없애고 또 많이 만들어낼 꺼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 예측이 언제 번번히 맞은 적이라고 있었나요? 제가 보기엔 별로 없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이제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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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강연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음악 작곡도 가능하겠다고요. 중학교 다닐 때 컴퓨터 학원에서 배웠던 난수표가 그것입니다. 무작위 수가 배출이 되는데, 한 코드에 음계란게 있지 않습니까? 그 범위 내에서 패턴을 난수로 돌려보면 어떤 괜찮은 음계와 리듬이 나올 거구, 그걸 차용해 인간이 조금 손 만 보면 꽤 괜찮은 음악도 작곡이 가능하리라 보는 겁니다. 제 생각이 어떤가요?
설교도 마찬가지죠. 목사님이 강대상 앞에서 떠드는 내용을 들어봐도 대개 성경말씀과 실제 이야기를 접목시켜 신도들로 하여금 ‘그래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겠구나’하는 확고한 믿음을 주는 거잖아요. 그걸 인공지능이라고 못해낼리 있겠습니까? 이미 세상에 모든 이야기는 나와 있고, 그 이야기 중 성경말씀과 매칭이 되는 말씀을 강조함으로 원고를 작성할 수 있을 테구, 우리가 마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트는 말하는 기계를 통해 목사님의 걸걸한 가래낀 목소리가 아닌 청아하고 아름다운 옥음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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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인공지능이 글 쓰는 시대가 올까요? 그날이 오면 우린 밥줄 끊기는 걸까요? 저도 하루에 몇 꼭지 쓰지를 못해요. 체력이 딸려요. 하지만 인공지능은 쉬지 않습니다. 지치지도 않아요. 밤낮없이 쓸 수 있어요. 만물박사죠. 모르는 게 없어요. 감정이 없으니 평가에도 무감각해요. 못쓴다고 욕해도 절대로 좌절하지 않죠. 한마디로 멘탈 갑입니다. 이런 인공지능을 우리가 어떻게 당해내겠습니까?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리 인간이 어느 코드에서 감동하는 가에 대한 빅데이터가 쌓이면 감동적인 표현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다고요. 이 상태로 가다는 마치 인간이 쓴 것과 인공지능이 쓴 것을 우리 인간도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시대가 반드시 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기계와 인간과의 차별성이 아닐까요?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계속 우리의 차별성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요.
누군가 이런 글을 올려놓은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잘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요. 그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음을 조절해야 쓸 수 있는데, 인공지능이야 말로 멘탈 갑이다.
둘째,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 최적의 어순을 찾아야 하는데, 선택 풀이 크면 클수록 유리하다. 이건 인공지능이 최강이다.
셋째, 잘 고쳐야 좋은 글이 나오는데,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잡아낸다.
어쩌면 우리가 쓰는 번역기라던가 맞춤법 검색기도 인공지능이 이미 개입된 버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에는 틀에 박힌 번역만 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거든요. 맞춤법 검색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을 앞뒤 문맥에 맞기 기가 막히게 바꾸어 내거든요.
결국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면 우리 인간들 중 절반 이상은 손가락을 빨며 지내야 한다 이겁니다. 사람이 할 일이 없어지는 거죠. 제레미 리프킨의 말대로 ‘노동의 종말’시대가 오는 거죠. 우리 인간의 일을 로봇이 대신하면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원시시대를 떠올려 보죠.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글자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던 시대, 울산 반구대 암각화나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상상해보세요. 그런 시절이 점점 찾아오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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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뜩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미 기술은 충분히 확보했지만, 그에 맞는 철학을 가지지 못한 게 아닐까? 그래서 속도를 내기 보다는 안정화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우리 만의 영역’이라고 외쳤던 그 모든 게 다 허상이 아닐까? 우리 인간에게 부여된 고유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작은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