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9회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에세이부문 당선작] 우주연
대상
무꽃 / 우주연
무가 없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 언뜻 보니 나의 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는 중에 잘 돌아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내 사랑을 그렇게나 받던 그것이 아무 조짐도 보여주지 않다가 이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다니. 고이 키운 딸이 말 한마디 안 남기고 야반도주라도 해버린 것 같았다.
제주농원 아저씨는 꽃값은 절대로 안 깎아 주는데 뭔가 그에게 시시해 보이는 것들은 인심을 좀 쓰는 편이다. 예를 들면 다육식물이나 선인장에서 잘라낸 가지, 팔기에는 말라버린 모종, 꽃이 다 져버린 화분 같은 것 말이다. 아무거나 주어도 내가 너무 기뻐하니까 재미가 생긴 듯하다. 가게 문을 나서는데 손바닥만 한 무 한 덩이가 땅바닥에 던져진 듯 떨어져 있었다. 윗부분에 짧은 초록색 잎이 보글보글 올라온 모양이 귀여웠다.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왜 무가 여기서 구르냐고 물어보니까 얼른 가져가란다. 나는 언제나처럼 기뻐하며 어린 아기를 보에 싸서 오듯 검정 봉지에 넣어서 집에 데리고 왔다.
무는 고생을 좀 한 듯 거칠고 색이 곱지는 않았으나 동그란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작은 텃밭에 무를 잘 심어놓고 물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면서 보살폈다. 과연 얼마나 큰 무로 클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후 얼만가 지났는데 무 줄기 끝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였다. 꽃, 무꽃이었다! 초록색 줄기에 하얀 꽃 한 송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꽃핀을 머리에 꽃은 예쁜 어린 딸 같았다.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난리가 났다.
“세상 이쁘네.”
“백치미? 동치미?”
“백치미, 고거이 진짜 예쁘다는 거잖아.”
“하하.”
꽃말이 궁금했다. ‘계절이 주는 풍요’. 아, 얼마나 멋진 꽃말인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풍요의 여신 ‘데메테르’의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가 떠올랐다. 조금 있으니 여러 송이가 쉴 새 없이 피어올라 왔다. 꽃을 잘라서 작은 꽃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소박하기 그지없고 다정한 꽃을 보며 나는 이것이 바로 계절이 주는 풍요로구나 생각하면서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언젠가 큰 무로 자라서 캐내야 할 때가 되면, 나는 과연 나의 무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도 아마 내가 먹어주는 게 무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많았다. 깍두기 동치미 무생채 무나물…. 그래도 펄펄 끓는 물에 무를 던져넣어야 하는 뭇국은 안 되겠다 싶었다. 잘 썰어서 햇살에 말려서 무말랭이를 만들어 조금씩 반찬으로 먹는 게 가장 오래 그녀를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봄이 지나가면서 꽃을 자른 줄기가 이리저리 휘면서 꽃이 정신없고 얌전하지 않게 퍼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자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고는 꽃을 식탁에 꽂지 않았다. 여름이 왔다. 곧 장마도 시작되었다. 나는 안 좋은 날씨를 핑계로 텃밭에 잘 나가지 않았고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대체 그사이에 무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 집에 어슬렁대는 줄무늬 고양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내가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흙에다 박아놓은 것도 아닌데 고양이가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아니면 뒷마당에 떨어진 밤을 먹으러 가끔 왔다 갔다, 하는 청설모? 밤을 까먹으니, 무도 먹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무를 뽑아서 들고 가기에 청설모는 너무 작았다.
요새는 인터넷에 치면 웬만한 답은 다 나온다. 검색창에 ‘꽃피는 무’라고 쳐보았다. ‘추대 피해’, ‘농가 시름’ 이런 말들이 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는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무에 꽃이 피는 것을 두고 마치 가축 농가에 돼지열병이 돌던 때처럼 난리들을 치고 있었다. 기자들이 너도나도 나와서 국가비상사태라도 되는 듯 열띤 보도를 하고 있었다. 무에 꽃이 좀 피었는데 이 난리란 말인가? 알고 봤더니 꽃이 피어 버리면 꽃에 영양을 빼앗겨서 땅속의 무가 못 자라고 질겨져서 팔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품종이었는데 모두 다 꽃이 피어버려 생산자에게 고소하려 한다니. 아니, 나의 무가 화란에서 왔다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의 잎이 꼬불꼬불 보슬보슬하였구나. 화란에서 예전 남편이 애들에게 사다 준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온몸을 바쳐 꽃을 피우느라 땅속에서 녹으며 쏟아지는 장맛비와 함께 흔적도 없이 나의 무가 사라졌다는 스토리다. 문뜩 어느 책에선가 감자꽃을 똑똑 따 주어야 감자가 동글동글 실해진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이 세상에 살면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나 감자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손이 어디 스스로 꽃을 피울 것인가, 어머니가 통째로 자기 자신을 바쳐야 할 거다.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자식 셋 키우느라 나 자신을 못 찾고 허둥지둥 바쁘게 살았는데 과연 자식 꽃은 잘 피운 것일까. 요즘은 애들이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하면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다가 나도 조금 있으면 없어지는 게 아닌지, 살짝 팔다리를 만져본다.
겨울이 되었다. 동치미를 먹다가 보니 다소곳이 묻혀있던 나의 무가 떠오른다. 나를 그리도 행복하게 해주고 아름다웠던 너를 쉽게 잊지는 못하리. 네가 있던 그 자리는 다른 풀은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며, 또 다른 무도 심기 싫다. 나는 그냥 그대로 비워놓고 그 빈자리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한다.
우수상
단순하게 / 윤주연
“앞으로 머리카락 자르는 걸 무서워하지 마요! 왜? 어차피 자랄 거니까!”
헤어커트 선생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사삭사삭 가위질 소리 사이로 지나간다. 나를 포함해서 헤어 가위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두 명밖에 없다. 나머지는 초급반을 여러 번 수강한 사람들이다. 선생님 말씀을 찰떡같이 이해하는 이들의 책상 위에는 틴닝가위(숱가위), 빗이 달린 바리캉 등이 반짝이는 옷을 입고 각자의 위엄을 뽐내듯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들은 엄지와 약지를 가위 손잡이 구멍에 넣고 손목을 약간 뒤로 젖힌 채 능숙하게 가위질한다.
문화센터에서 하는 홈헤어커트 수업 시간이다. 수강생들은 선생님이 오기 전 일찍 도착해서 책상에 고정 거치대를 손나사로 조여 설치한다. 거치대 끝 원뿔 모양의 정상에 대머리 마네킹 얼굴을 끼워 넣는다. 마네킹 얼굴의 이마 꼭대기에는 힘차게 날아오르는 갈매기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 갈매기 선과 통가발의 이마 끝을 맞추어 덮어씌워야 한다. 빡빡해서 온 힘을 다해 중심선을 맞추어야 하니 시작부터 난관이다.
내 옆자리 수강생은 바리캉으로 본인의 머리를 민다는 남자 수강생이다. 그분이 사물함에서 마네킹을 꺼내갈 때는 마네킹 두 개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이따금 흠칫 놀랜다. 삶은 달걀과 두상이 똑 닮았다. 따발총처럼 발사되면 멈추기 힘든 나의 웃음 총이 작동하지 않도록 그 수강생 쪽으로 얼굴을 돌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황금색 옷을 입은 선생님은 털이 긴 고양이 같다. 우리가 실습하는 동안 거울을 바라보며 수시로 자신의 상한 머리끝을 잘라낸다. 중간중간 가위를 한두 바퀴씩 돌리며 자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생경해서 실습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털 관리를 끝낸 후 거울 속 자기와 흡족한 눈인사를 나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회원님, 손빗을 사용하면 안 되죠. 빗을 써요!”
“아, 이어라인부터 다시 탈게요.”
“욕심이 피를 부릅니다. 가위 조심!”
“악!”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무시했다가 피를 봤다. 왼손으로 잡은 머리카락을 한 번에 다 자르려 하면 안 된다. 가위 끝부분이 왼손 손바닥과 맞닿아서 다칠 수 있다. 절반만 자르고, 머리카락을 놓는다. 자르지 않은 나머지를 손가락 끝부분으로 다시 잡아야 한다. 안전하게 헤어커트를 할 수 있는 팁이다. 머리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이 수칙을 실천하기 어렵다. 쉽고 빠르게 결과물을 내려 하면 더더욱 그렇다. 선생님이 나누어 준 유인물 속 브로킹(컷을 하기 쉽도록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것)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지만, 현재에 집중하는 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머리카락은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작품으로 탄생한다.
노인복지관 봉사를 다니다가 헤어커트 봉사자 수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로 학원에서 헤어커트를 배우는 학생들이 의무 봉사로 온다. 복지관에서 헤어컷을 받고 싶다고 신청하는 분들이 훨씬 많아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 요즘 미용실 헤어커트 비용이 제법 비싸다. 가격이 매년 오르기 때문에 신청자가 더 많아지는 듯하다. 문화센터에서 12주 과정만 수강해도 남성 커트는 가능하다고 하니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면서 언젠가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겠다는 말을 한 이후로 남편은 예전보다 미용실에 가는 주기가 짧아졌다. 자기 뒷머리에 땜빵이 생기거나 옆머리에 계단이 생길까 봐 두려운 모양이다. 타란툴라 거미 같은 두 개의 층이 될까봐? 아니면 본인의 머리를 도화지로 쓸 것 같아서? 누구에게나 서툰 시기는 있는 법 아닌가. 통가발 여러 개를 이용해서라도 그 시기를 잘 지나가 보리라. 왼손으로 잡은 키친 타올 한 장을 허공에 두고 일직선으로 자르기를 한다. 무한 반복하니 점점 가위질이 익숙해진다. 그와 더불어 팔꿈치가 자연스럽게 내려간다.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큰 결심을 할 때 머리를 자른다. 최근에 머리 복잡한 일이 많았던 나도 십 년 넘게 유지한 긴 머리를 짧게 잘랐다. 퍼머를 한 것도 아닌데, 나를 괴롭혔던 복잡한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닌데 기분이 새롭다. 마음속 언저리에 숨어 있던 용기가 꿈틀거리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잘려 나갈 때마다, 챙챙 가윗날이 맞부딪치는 금속성이 날 때마다 근심 걱정도 함께 사라졌다. 내 얼굴형에는 긴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확신에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는데, 주변의 반응을 보니 편견이었다. 복잡한 일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에도 편견이 깊게 깔려 있어 더 힘들었다.
삶에서 처음 보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할 순간에 다다랐을 때, 문화센터에서 배웠던 헤어컷 수업 내용이 떠오른다.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생활을 하던 딸이 국제학교나 대안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그랬다. 당황스러운 속에서도 헤어컷 선생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선생님이 질문했다.
“실수로 친구의 정수리 부분을 약간 짧게 잘랐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강생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다른 헤어스타일로 바꾸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오른손 검지를 흔들며 말하셨다.
“뒤는 본인이 보기 힘들어요. 앞머리보다 빨리 자라고요. 굳이 말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층을 내는 허쉬컷을 해줬는데 양쪽 길이와 모발 끝 질감 처리가 엉망이에요. 어떻게 해야 하죠?”
앞자리에 앉아 있는 수강생이 대답했다.
“중단발로 바꾸는 건 어떠냐고 물어봐요.”
고개를 흔들며 선생님이 말했다.
“헤어컷 값도 받지 않고, 그날 밥을 한 끼 사줍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 세상일이 좀 더 쉽게 해결되는 거 아시죠. 그리고 머리카락은 또 자랄 거니까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내가 잘라야 하는 머리카락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자식을 남과 다른 길인 ‘대안학교’에 보내려 하냐는 시선에 신경 쓰는 것보다 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려 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 꼭 다수에 속할 필요는 없지만, 외로운 소수의 길을 선택했을 땐 당당함을 좀 더 겸비해야 한다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교육청 인정 대안학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서 직접 발로 뛰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머리는 어차피 또 자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처럼, 어떠한 형태로든 각자 원하는 방향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만의 인생 작품을 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위질할 때 좀 더 자연스러워진 팔꿈치를 기대하면서.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 / 조성주
30여 년째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재건축 이주 기간이 공고되면서 요즘 단지는 쓰레기와의 전쟁이다. 2,000여 세대의 대단지에는 세대 평균연령 칠십 세가 넘는 오래 산 주민들이어서인가 날이면 날마다 버려지는 물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버려지는 것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해 하루가 즐겁다. 한때는 아이들로 붐볐을 놀이터 한편에 비를 가릴 수 있는 가림막을 설치해서 만든 물물교환 장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배려로 ‘필요한 것 가져가세요’라는 팻말이 등장한 이후, 오늘은 무엇이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에 퇴근길에 한 번씩 둘러보곤 한다. 아직 몇 년은 더 쓸 만해 보이는 전자제품에서부터 탁자나 흔들의자 등의 엔틱가구류, 어느 집 서재를 장식했을 시사잡지에서 화집, 유럽 여행 중 유명미술관 아트숍에서 구매했을 서양화가의 복제화 액자, 그리고 새댁의 혼수품이었을 게 분명한 60~70년대의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커피잔 세트 등등 온갖 생활용품들이 나와 있다. 평생 어느 집에서 요긴하게 쓰였을 물건들이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든가 아니면 쓰레기로 분류될 운명이다.
나도 버리기에는 아까운, 오래 아꼈던 것들을 시간 날 때마다 정리해 내놓으면서 나와 있는 것 중 마음이 가는 것들하고 물물 교환한다. 어제는 밀레의 화집과 체코산 크리스탈 와인잔 세트가 눈에 들어와 냉큼 집어왔다. 오늘도 퇴근길에, 어제 저녁에 정리해 놓은 물건을 내어놓고 죽 돌아보는데 내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어 이발소 그림이네…….’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 이발소는 추억의 장소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푸시킨의 시에 아담한 초가집 한두 채, 농부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는데 옆에는 물레방아 혹은 풍차가 돌아가는 풍경, 어미의 젖을 물고 있는 새끼 돼지들과 그 옆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글씨가 세로로 씌어 있다. 이발소 그림의 단골 풍경이다.
제도권 미술의 상투화된 패턴이 저급화해 대량 생산되어 유통되는 통속미술을 우리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 한다. 미술계에서는 예술성이 없거나 그림 수준이 낮다고 비하해 쓰는 말이기도 하다. 소재는 상투적이고 기법은 유치하지만, 이발소 그림에는 대중이 꿈꾸는 이상향이 담겨 있다. 너무도 낭만적이어서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런 풍경이다.
이발소 그림은 한국전쟁 직후 서울 용산 삼각지 부근에 자리 잡은 화랑들이 대량 제작한 조악한 상업화가 그 시작이다. 이곳의 주 고객은 미군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그림들을 구매해 그리운 ‘켄터키 옛집’으로 보내면서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또 한편, 이 화랑들은 전국의 이발소에 이런 그림들을 대량으로 보급해 전국의 이발소를 작은 갤러리화 하는 데도 한몫했다.
누구라도 알만한 세계 명화나 전통 민화를 복제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지금도 용산의 삼각지역에서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재개발에 묶인 건물에 이발소 그림을 생산하는 조락한 화랑들이 몇 군데 남아 있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를 따라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빠들과 이발소에 가는 날은 집안 행사에 준하는 날로 특별 외식인 자장면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부터 서열에 따라 이발하는 동안 나머지 형제들은 대기 의자에 앉아 육영재단에서 발간하는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나 신문 ‘소년동아. 조선’ 등을 보았다. 그달에 발간된 잡지와 그날의 신문을 다 읽을 때쯤이면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취학 전인 나는 의자 높이가 맞지 않아 손잡이에 나무 빨래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어깨에 하얀 나일론 보자기가 둘리고 머리가 잘려 나가는 동안 몸을 꼼짝할 수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대형 거울 위에 걸려 있는 그림 감상이었다. 눈을 좌우로 돌려가며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액자 안의 시를 보고 또 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은 그 시절 이발소에 흔히 걸려 있던 유명 복제화였다. <만종>에는 해 질 무렵 들판 한가운데에서 부부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멀리 뒤편 교회당의 저녁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 그림 속 풍경을 보면서 손님들은 자연스레 서양 회화에 접근(?)할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상상했을 것이다. 이발소 그림이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수요를 낳은 것도 바로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거기에 걸려 있던 푸시킨의 시 「삶」은 내가 암송한 첫 시다. 한글을 깨치게 된 것도 이발소에 다니면서 잡지나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게 된 것 같다. 후에 그 시가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시라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어쨌든 그의 시 「삶」은 대한민국 방방곡곡 전국의 이발소에 걸린 덕분에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 우리에게 각인되어 널리 알려진 국민 애송시가 되었다.
이발소 그림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기억으로 중고등학교 시절 각 학교 문예반의 ‘시화전’이다. 이때는 남·여학교를 불문하고 타 학교 방문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날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무리 지어 국화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남학교 교문을 들어설 때 두근거리던 설레임, 문학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 전시 작품들은 이발소 그림이 가지는 문화 콘텐츠를 좀 더 풍요롭게 하는 데 한몫했다.
작가가 상상한 풍경을 구도와 색상으로 대담하게 전개한 이발소 그림은 현실보다는 이상세계에 가깝다. 그것은 고단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민중들의 이상향이었다. 이러한 그림은 근대 이후 우리 미술 역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그림들을 일컫는 하나의 상징이며 한 시대를 읽는 아이콘이다. 미술이 원래 삶의 한 요소로 생활에서 부여받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라면, 대중 그림의 통칭처럼 쓰이는 이발소 그림은 그림의 존재 이유를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다. 시대를 읽는 키워드의 역할을 나눠 가진 이발소 그림이 그림이란 기능에서 그것이 진지한 예술론적 탐구이거나 대중미술로서 장식용으로서 역할이거나 간에 그림의 기능으로서는 족하다.
미국의 토머스 킨 케이드는 ‘이발소 그림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미국에서만 1,000만 장 넘게 인쇄되어 팔렸다. 특히 크리스마스카드에 흔히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사람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이발소 그림이 소위 ‘이발소 그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준 낮은 그림을 우리는 흔히 ‘이발소 그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그림에는 삶에 굳건히 뿌리내린 민중의 삶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 그림이 조금이나마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삶의 고단함을 보상해 주고 회복시켜 준다면 그것이 비록 덜 예술적이라 할지라도 비하되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리고 또 하나, 이발소는 지난 시절 유년의 나에게 그림과 시를 감상하고 잡지와 신문을 접할 수 있는 유일의 최고의 ‘문화의 전당’이자 ‘작은 화랑’이었다.
오늘 나는 분신처럼 아끼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놀이터에서 주워 온 푸시킨의 「삶」이 있는 이발소 그림을 벽에 걸고 오래도록 흐뭇했다.
에세이부문 본심평 / 섬세한 시각과 위트,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
이번 『시와산문』 신인상 수필 부문에는 예년에 비해 많은 예비 작가가 참가했다. 본심에 11분의 응모자 작품들이 올라왔다.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예년 투고작에 비해 그 수준이 높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간 우리 『시와산문』의 신인상을 통해 많은 좋은 시인들이 발굴된 성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닌가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동안 투고된 작품들 상당수가 감상적인 신변잡기로 시작해서 상투적인 교훈으로 끝내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수필을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유로운 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글쓰기이다. 글로 담아야 할 주제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기에 이 내용이나 표현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 상투적인 글이 되어 버린다. 이 상투성을 얼마나 극복했나 하는 점이 수필 심사의 가장 큰 기준이라 할 수 있다.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 중 윤주연의 「단순하게」, 김은희의 「곰신과 꽃신」, 우주연의 「무꽃」 그리고 조성태의 「이발소 그림 풍경에는」이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모두 다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무리가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지금 당장 수필 전문 문예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중 김은희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소재가 조금 진부해서 수상작에서 제외되었다.
영예의 대상작으로 우주연의 「무꽃」을 뽑기로 합의했다. 우주연의 작품은 탄탄한 글쓰기 실력과 언어구사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물을 보는 섬세한 시각이 큰 장점이다. 작가는 이런 예민한 감각으로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의미 있는 삶의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훌륭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다. 윤주연의 작품은 위트가 돋보인다. 이 위트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감상적이지 않은 어조로 잘 전달하고 있다. 조성태의 작품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여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까지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수필 문학의 묘미를 잘 보여준 수작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우주연 그리고 우수상으로 선정된 윤주연, 조성태 세 분의 수상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훌륭한 에세이스트로서 활발한 활동 기대되는 바가 크다.
황정산 장석남 장병환
첫댓글 일단 이름에 '주'가 들어가야 하군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