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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전 세계가 변혁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중대한 시점을 맞고 있다.
세계 각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과 더불어 '경제 위기극복', '정치 경제 양극화',
기후 변화의 원인 온난화'등 해결해야 할 엄청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STB스페셜'에서는 동북아 3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국제관계 등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보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13년 10월 방송> 사회 STB 최원호 / 대담자 前 공군중장 배창식 사령관 / 前 해군중장 서양원 제독 / 前 육군소장 송길섭 장군
새로운 밀레니엄을 외치면서 시작했던 2천년도 벌써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을 꿈꾸었지만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를 시작으로 20세기 문명의 행태로 회귀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시리아 사태까지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갈등, 대결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도, 2013년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정전이란 말 그대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 전쟁이 민족과 인류의 앞날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들을 모시고‘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그런 주제로 대담을 나눠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세계 여러 곳곳에서 지금 갈등과 대립,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그중 특별히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왜 한반도가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가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배 사령관 과거에는 문화 흐름의 중심이 유럽이었으나 최근에 문화, 경제, 군사력 중심이 동북아로 이동되고 있죠. 특히 경제대국 일본과, 최근 양극체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중국과 미국이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 특수전부대, 화학전 대비 등 여러 가지 지역내 안보위협이 있다보니 세계 언론들이 한반도를 주목한다고 생각합니다.
서 제독 군사적인 측면에서 한반도는 아시아의 발칸반도, 즉 전쟁이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륙세력에겐 바다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해양세력에겐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충돌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쪽으로 주변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중국의 경우, 안정을 바라는 시진핑 체제로서는 호전적인 북한 김정은 체제가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정전 60주년이잖아요.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송 장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열강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육교적인 위치죠. 그래서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냉전시대가 45년간 지속되는 가운데 1950년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이 두 사건을 계기로 한반도는 공산진영과 자유진영으로 분단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그 외에도 양대 세력간 대립각은 한반도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고 열강들은 우리 한반도가 분단된 상태로 계속 유지되기를 오히려 희망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이것이 열강들의 대한반도 정책기조가 되는 ‘현상유지 정책’인데, 우리가 통일을 앞두고 해결해야 될 큰 과제죠.
최근에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하면서 미중간 경쟁패턴, 패권경쟁에서 한반도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고, 또다시 6.25와 같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3차대전으로 확전할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지역이 한반도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피해사상자 그림]
배 사령관 한국전쟁 당시 우리 남북한 3천만 인구로 볼 때 사상자 인원은 정말 대단한 숫자죠. 지금 남북한을 비교해보면 당시보다 훨씬 많은 무기와 성능이니 만일 다시 이땅에 제2의 6.25가 난다면 우리는 재건하기 힘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겁니다.
서 제독 6.25전쟁의 교훈은 한마디로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잘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을 믿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나라 전체가 전쟁에 휩싸였던 역사가 있습니다(임금이 의주까지 피난). 전쟁의 뼈아픈 역사를 우리 민족은 금방 잊어버렸고 그 뒤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뼈아픈 역사를 겪었고, 광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6.25전쟁을 겪었죠.
송 장군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60년대까지는 전후복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이후부터 북한은 소규모 국지도발을 계속 해왔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안보의식이나 군의 경계태세를 점검하는 의도도 있다고 봅니다. 즉 적의 준비태세, 경계태세를 시험하는 소규모 도발이었죠.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은 IMF시대를 맞기 전 1996년 9월입니다. 18일 새벽 한시 반경, 강릉시 안인진리 대포리 인근 해안가에서 북한에서 독자적으로 제조한 상어급 잠수함(약 300톤급)이 발견되었죠. 이들의 침투목적은 군사 정찰이었습니다. 문제는 잠수함을 발견한 장본인이 초소 경계병이 아니라 택시기사였다는 거죠. 그날부터 11월5일까지 50일간에 거쳐 게릴라 무장공비 소탕작전을 전개합니다. 50일이라는 것은 대단히 장기간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될 부분은 이 50일 작전기간 동안 강원도에 살고있던 주민들은 그야말로 공포와 불안 속에 살 수밖에 없었고 생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습니다. 완전 마비상태였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당시 생포한 이광수 상위 수첩에는 여러번 우리 해안 NLL을 넘어 동해안을 침투해 군사정찰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자유로운 무기체계가 잠수함입니다.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잠수함은 인공위성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북한은 70여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오늘날도 잠수함을 이용해서 북한군이 정찰 내지는 정보수집 임무를 하려고 언제든 NLL을 넘을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또 택시기사가 신고했다는 것은, 이제는 민간인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경계병 역할을 해야 되고 민간군이 통합일체가 되는 총력전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북한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교훈을 도출하게 된 것이죠.
정전 이후 국지적인 도발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바다 아닙니까? 그 중 서해쪽 NLL 국지도발에 대해서 정리를 해주시죠.
서 제독 북한은 1970년대부터 NLL이 무효한 선이다 라고 주장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NLL문제는 근본배경이 뭐냐면 그동안 양측의 군사작전 경계선(=해상작전경계선, 해상영토선)으로 쭉 유지되어 왔던 유효한 선이다 라고 주장하는 우리측 주장과, 이것은 유엔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선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라는 북한측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대결해온 것이죠.
원래 6.25전쟁 당시에는 연합군 해군이 한반도 전체 해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각 도서들도 유엔군이 운영해오고 있었죠. 가령 대동강 입구에 있는 석도라는 섬이라든가, 동해 영흥만 안에 있던 각종 섬들이 우리가 장악한 것이었기에 그 섬을 기준으로 유격대나 특수작전부대가 북한지역에서 작전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지금의 NLL북쪽에 있는 섬들은 관리차원에서 포기하고 다 철수를 했는데 그중 남아있던 섬이 지금의 서해 5개 도서 곧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이런 섬들이었죠.
그런데 남쪽에서나 북쪽에서나 바다를 작전수행에 이용하다 보니 어민들이 바다에서 생업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민들이 바다에서 생업을 할 수 있도록 선포한 선이 NLL입니다. 통항이나 생업을 위해 우리 한국이나 유엔군 선박이 위로 올라가지 말아라 이렇게 양보해준 선이니, 북쪽에서 볼 때는 당시로선 아주 감지덕지한 선이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러던 것이 1973년도가 되면서 북한에서 기습공격전력을 좀 갖추게 되고 또 잠수함도 갖게 되니까 이제 그 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입니다.
[NLL과 북 주장 해상경계선 그림] 북한에서는 그림에 보이는 엉터리 같은 빨간 선을 지켜라 주장하면서 수시로 NLL선 남쪽으로 도발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연평해전, 2차 연평해전(=서해교전), 천안함 사건,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사건 등이 모두 다 NLL을 무시하려는 북한의 책동에 의해 이루어졌던 사건들입니다.
서 제독 NLL에서 교전도 벌어지고 포격사건도 있다보니 남과 북이 상당히 많은 전력을 NLL 주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도발을 해야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제가 볼 때는 틀림없이 NLL부근 수역이 아니겠느냐. 왜냐하면 북한의 속성이 궁지에 몰리거나 정치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때는 항상 도발을 해왔는데 가장 쉬운 곳이 서로 의견충돌이 있는 NLL지역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배 사령관 운전을 하면 교통규칙을 지켜야 하고 스포츠를 하면 룰을 지켜야 되죠?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전규칙은 전시와 평시 두 가지 교전규칙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 군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북한의 게릴라전, 국지도발에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까 해서 평시교전규칙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좀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걸로 생각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적이 공격해오면 비슷한 화력으로 공격해라 이렇게 했지만 이런 문제점을 없앴죠. 이제는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①공격받는 즉시 공격하라. 비례성으로 하지말고 ②도발하는 세력과 지원세력까지 완전히 제압하라.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북한도 연평도 같은 포격은 섣불리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고 우리 군이 참으로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현대전에서는 공군의 역할이 대단히 크잖아요. 현재 남북한 공군의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공군 작전수행능력비교 사진]
배 사령관 우리 공군이 작전하는 걸 실제로 보여드리지 못하는게 안타깝습니다. 아시겠지만 걸프전, 아프간전, 코소보전, 이라크전… 현대전에서는 인명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전쟁의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육군의 인명피해가 많은데, 그래서 전쟁 초기에는 대부분 공군과 해군이 제압을 합니다. 나중에 육군이 진입을 하는데, 특히 산악지대 같으면 공군이 먼저 제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북한 공군을 비교하면 제가 볼 때 숫자는 북한이 좀 많습니다. 그러나 숫자보다 ①얼마나 정밀하게 필요한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느냐. 그 다음에 ②얼마만큼 파괴할 수 있느냐. 이런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숫자는 적지만 우리는 신예기로 아주 정밀하게 필요한 부분을 공격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적인 비교는 한국 공군이 북한 공군보다 조금 앞선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스포츠에서 비슷한 사람이 경기하면 결판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전시에 쌍방이 비슷해서 결론이 안날 경우, 전쟁이 오래가고, 그러면 양쪽이 다 피해를 입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우수한 전력을 가지고 빨리종결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니 우리는 한미연합 공군전력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죠. 한미연합작전을 하면 짧은 시간 내에 북한을 완전히 괴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전시작전권을 재검토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전시작전권이 무엇인지, 역사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좀 정리해 주십시오.
송 장군 전쟁은 제군과 제해권이 확보돼야만 지상작전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전시작전권이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을 누가 지휘하느냐 하는 작전지휘 및 통제권을 말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이승만 대통령은 7월14일 유엔군 사령관한테 서한을 보냅니다. 작전의 일원화와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우리국군을 포함, 미8군 사령관이 당시 한국동란에 투입된 모든 병력을 통제하고 지휘하라, 이것이 뿌리가 된 것이죠. 당시 우리 한국군은 전쟁경험도 없었고 병력도 보잘 것 없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전쟁을 경험한 군대와 그렇지 못한 군대는 전시에 지휘통제능력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것을 고려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 한국군 지상군은 미8군 사령관에게 지휘권이 이양되고 해군과 공군은 각각 극동해군 구성군 사령관한테 이양됩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 주한미군의 역할조정문제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그후 1992년 한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합의하기를 1994년까지는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한테 이양하고 2012년 4월1일까지 전시작전권을 한국군한테 이양하기로 합니다. 평시작전권이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든지 국지도발이 일어났을 때 우리 한국군이 단독으로 작전통제나 지휘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94년도에 한국군에 이양됐습니다. 전시작전 통제권은 준비가 어렵다 해서 우리정부 요청으로, 현재는 한미연합사령관이면서 유엔군 사령관이 작전지휘권, 통제권을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2015년 12월1일부로 합참의장한테 이양한다 이런 배경과 내용이 골자인데요.
문제는 한국 합참이 주도하고 미군은 보조역할, 지원역할로 변하게 될 때 우리가 여기에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적이고 하드웨어적인 부분을 다 구비해야 됩니다. 소프트웨어란 전쟁수행능력, 운용능력이고 하드웨어란 주한미군한테 의지하던 정보자산 같은 것입니다. 국군의 사정을 제일 잘 아는 국방장관이 언급한 측면을 고려할 때 아직도 2015년 12월1일부로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죠. 그러나 미국정부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2015년 12월1일부로 합참으로 전시작전 통제권을 이양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 부분이 우리 정부와 국민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입니다. 앞으로 제2의 6.25 한국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려가 있습니다. 전쟁 원칙에 보면 우리의 작전계획은 방어개념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도, 그런 계획도 없다는 뜻인데 물론 북한은 공세적인 공격개념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다 보면 적이 100이라는 전력을 보유했을 때는 최소한 70이라는 전력은 보유해야만 방어할 수 있다는 통계, 전례가 있습니다. 미군의 지원없이 한국군 독자적으로 북한군 대비 과연 70% 전력을 확보했느냐 이 부분을 우리는 예의주시하는 것이죠.
배 사령관 고려해야 될 사항이 참 많죠. 한반도처럼 핵과 미사일과 화학무기와 세균전, 게다가 특수부대, 이런 전력을 갖고 있는 나라가 세계 어느 나라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준비하면 되겠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남북한의 상황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가장인데, 내가 힘이 되면 우리집을 내가 지키면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힘이 버거울 때는 경찰 요청하고 개인경호도 사서 쓰고 해서 내 가족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한가는 국가지도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안전, 국가의 안전이 더 우선돼야 된다고 저는 봅니다. 특히 최근 북이 핵을 개발하는 소위 비대칭 전력, 아주 위험하거든요.
6.25 한국전쟁이 나던 해 1월 미 국방장관 에치슨이 에치슨 라인을 선언했죠. 우방국을 지켜준다는 방어구역이 오키나와, 필리핀까지 연결되면서 지도상으로 보면 한국이 제외돼버린 것입니다. 물론 전쟁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나진 않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오판하는데 상당히 큰 작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5개월 후에 6.25가 일어났거든요. 전/작/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북한이 전면전을 못합니다. 연합전력으로 하면 북한이 자기가 멸망한다는 걸 알거든요. 내가 죽는데 왜 덤비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전작권이 한국에 넘어와 미국의 지원이 소홀해지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지금처럼 연합사령관이 하면 자기 전력을 요청해서 불러오겠지만, 만일 여기서 제가 합동사령관이 돼서 미국에 어, 폭격기 부족합니다, 몇대 보내주십시오. 쉽게 보내줄까요? 그러한 예상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이런 안보위협과 현상황을 좀더 많이 고려해서 전/작/권 환수시기를 재검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 장군 손자병법에도 나옵니다만 적을 모르고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의 대남전략은 선남조선 혁명인데요, 쉽게 얘기해서 남한을 분홍색으로 물들여놓고 그 후에 인민군을 투입시키겠다는 개념이죠. 매우 주목해야 되고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입니다. 이를 위해서 북한은 일찍부터 3대혁명역랑 강화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북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남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국제사회주의 혁명역량강화, 이 세 가지 혁명역량이 강화됐을 때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하겠다. 즉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인데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남한사회주의 혁명 역량강화를 위해 북한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
쉽게 얘기하면 간첩과 공작원을 통해 남한세력을 동맹세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공세력, 즉 북한 공산주의를 따르는 세력을 많이 확충하고 이런 사람들을 동맹세력으로 포섭해서 한마디로 ①연공정권(북한 공산주의와 연계되거나 공산주의를 따르는 정권)을 서울에 수립하게 한다.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②인민군을 투입해서 무력통일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것이 대남전략의 기조입니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소위 공작원, 간첩들이죠.
남조선혁명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간첩들이 우리 정부나 군에 대한 정보수집을 해서 북한에 보고하는 시스템인데, 최근 들어 우리가 중국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습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간첩 운영하는데 있어서 정말 좋아졌습니다. 우리는 아주 자유로운 사회 아닙니까. 중국을 통해서 많은 공작원, 간첩들이 침투하고 있다고 봅니다.
분단과 대결 과정의 정점에 있는 것이 북한 핵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북한의 핵개발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 국민들이 아직 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핵무기라는 것은 어떤 무기입니까?
배 사령관 딱 하나만 예를 들면 현대 미, 중, 러시아, 프랑스, 영국이 갖고 있는 핵들은 전부 메가톤급이거든요. 100메가톤 한 발이 대전 2km 상공에서 떨어지면 남한은 완전히 초토화 됩니다. 그게 핵무기입니다. 단 한 발에.
과거 미소 냉전시대 때 핵은 탄두로 몇천개가 됩니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호멸망하기 싫으니까 사용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스타트START, 썰트SALT 해서 감축을 하고 있죠.
2차대전 때 아시아대륙, 태평양까지 그렇게 쟁쟁하던 일본이 두발 맞고 그냥 항복을 했거든요. 종말 무대가 되었죠. 이것이 핵무기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북한이 개발하는 핵무기는 이보다 성능이 좋다고 봐야 됩니다. 올해 개발됐다면 더 위험한 것이고, 거기다 소형화까지 되고 나면 정말 우리는 방법이 없는 것이죠.
송 장군 북한은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전후복구 사업에 매진합니다. 해외 자본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데, 그 일환으로 1956년, 전쟁 끝나고 3년 후 소련과 핵연구소 조직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고 1959년에는 조소朝蘇 원자력평화이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영변 핵시설 단지에 제1원자로, 그것은 소형입니다만 연구용 원자로인데,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아 설비를 합니다. 자, 김일성은 애초에 소련과 협정을 맺을 당시에는 평화적인 분야에 핵을 활용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기도 부족했고 수풍발전소도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봤고.
그런데 생각을 바꾸게 되는 시점이 옵니다. 북한은 많은 재래식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핵폭탄을 한번 만들어놓으면 다 해소가 된다. 그래서 김일성은 드보나 연구소라고 모스크바 북방에 국립핵연구소가 있는데 매년 수명씩 연구원 또는 기술자를 보냅니다. 기술축적을 위해서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같은데서도 핵공학 분야에 젊은이들을 양성해 현재 약 3천명의 핵관련 기술자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1980년대 우리가 아시안게임을 했을 때 벌써 영변 핵시설 단지에서 고폭실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고폭실험이라는 것은 뇌관실험입니다. 소위 신관의 발화실험인데, 150여회 실험을 하면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 239를 추출해내기 시작한 거죠.
원자폭탄은 플루토늄과 우라늄으로 구분되는데 우라늄 235를 응축시켜서 만들어낸 것이 우라늄탄, 플루토늄 239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이 플루토늄탄입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에 투하한 것이 우라늄탄이고, 나가사끼에는 플루토늄탄을 투하하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 플루토늄을 계속 추출해낸 겁니다. 그리고 2006년 10월9일 드디어 1차 핵실험을 한 거죠. 그렇게 보면 약 20년에 걸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
실제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은 아주 소규모고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그 다음에 2009년 5월에 한번, 또 금년 2013년 2월12일 3차에 걸쳐서 핵실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군에서는 거의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금번 핵실험은 소형화와 경량화를 성공시킨 핵실험이다,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아주 심각한 얘기입니다. 소형화와 경량화를 이뤘다, 달성했다는 것은 스커드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 또는 대포동 미사일에 탄두를 (고폭탄이 아닌) 원자탄으로 장착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은 투발 수단면에서 대단히 발전된 단계거든요.
[히로시마 원폭사진] 미국이 히로시마나 나가사끼에 투하할 때 원자탄은 3톤에 가까운, 닉네임도 Fat-Man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큽니다. 초기단계의 핵탄은 크게 만들 수밖에 없는데 과학기술수준이 발전함에 따라 자꾸 작게 만드는 겁니다. 지금은 말입니다. 제가 대학에서 무기체계를 강의하고 있습니다만 소총탄만한 우라늄, 초정밀 우라늄탄을 만들어낼 정도입니다. 소총으로 실은 원자탄을 쏜다는 거죠. 그런 단계까지 왔는데.
아무튼 북한은 현재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의하면 한 10발 정도의 플루토늄 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일부에서는 북한이 핵을 갖고 또 그 핵을 소형화시켜서 미사일에 탑재하게 되면 미국을 향해서 공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그건 가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일단은 ①북한의 목표는 대한민국입니다. 어떻게든지 대한민국을 무력 적화통일하겠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것이고. 두 번째로 국제정세 속에서 북한의 소형화된 핵폭탄(=미사일)이 테러분자들한테 팔려나간다면 그게 어디로 돌아오겠습니까? ②제2의 9.11사태가 또다시 미국을 향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개발한 소형 핵미사일이 테러분자들한테 넘어갔을 때 그게 심각하다는 겁니다. 이것이 미국이 걱정하는 부분이죠.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동된 것이 6자회담이잖아요. 6자회담이 몇년 동안 계속 진행되면서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배 사령관 핵개발을 못하게 하는 것이 6자회담이었는데 지금 핵개발이 됐지 않았습니까. 여러 차례 핵실험도 했고. 그러니 6자회담은 실패했다고 저는 정리하고 싶고요. 그동안 6자회담은 시간을 벌어주고 개발할 수 있는 자금도 오히려 지원을 해줬던 것입니다. 이건 정말 우리가 잘못한 거죠.
그 핵이 어디로 돌아옵니까?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돌아온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으로 6자회담을 한다면 현지에 있는 핵폐기까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쪽으로 6자회담을 유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3년 10월 방송> 사회 STB 최원호 / 대담자 前 공군중장 배창식 사령관 / 前 해군중장 서양원 제독 / 前 육군소장 송길섭 장군
9천년의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약 7천년간의 상고시대를 지나면서부터 분단과 통일을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뿌리문화인 제천문화가 빛을 발하던 때는 통일국가로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제천문화가 퇴색할 때는 어김없이 분열의 역사를 통과해 왔습니다. 영토는 한반도로 축소되었지만 통일 고려와 통일 조선을 거쳐 왔던 우리 한민족은 일제 35년의 치욕을 극복하고 해방되던 날 또다시 분단의 역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광복 68주년, 분단 68주년,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오늘, 이 작은 한반도에는 세계가 주목하는 군사력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번 시간은 남북한의 전력비교를 통해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나 환상적인 기대를 경계할까 합니다.
서 제독 핵을 제외하고는 비대칭 전력의 가장 대표주자가 잠수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수함은 적한테 탐지가 되지 않고 적의 수상함에 대해 치명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 여러 가지 작전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의 잠수함 한 척에 순양함이 어뢰를 맞아 침몰했고 천안함도 소형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은 잠수함 전력을 매우 많이 확보했습니다. 6.25전쟁 때 유엔군에게 해양통제(인천상륙작전)를 빼앗겼기 때문에 북한이 거의 다 이긴 전쟁을 역전당해 압록강까지 패퇴한 경험은 북한에게는 아주 뼈저린 교훈이었을 것입니다. 북한은 유엔군 해군에 대응하자는 목적으로 70여척의 잠수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육지에서 땅굴처럼 바다에서 잠수함은 적에게 들키지 않고 아주 은밀하게 접근해 치명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북한 비대칭전력 그림]
송 장군 상대방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무기체계를 내가 보유함으로써 전력의 균형을 깨트리는 것을 비대칭 전력이라고 합니다. 핵무기가 최고 중요한 비대칭 전력이고, 다음에 북한이 갖고 있는 생화학무기와 장사정포가 위협적인 비대칭 전력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이, 240미리 방사포와 170미리 자주포들이 평상시에는 동굴진지에 들어가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동굴에서 나와서 바로 포를 쏘고 다시 들어갑니다. 그렇게 대응타격 할 수 없게 전술적인 전법을 쓰는데, 이 방사포들이 서울을 한 시간 정도 타격했을 때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죠. 북한군 수백명이 휴전선 동굴진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최전방에서 60키로라면 사실 서울 이남까지 사격 가능한 것이죠.
1994년 3월 남북간 판문점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조평통(통일전선부 산하조직) 서기국장 박영수라는 사람이 우리 송영대 통일부차관한테 서울 불바다 얘기를 합니다. 그때는 핵무기를 만들기 이전이므로 그 호언장담은 170미리 자주포와 240미리 방사포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죠.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되는데, 북한이 대남공작을 해올 경우 일단 전술적으로 포병사격을 하게 됩니다. 공격준비사격이라고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전방지역 및 수도권까지 계속 집중포격을 하는데 이때 피해는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합니다. 포병화력과 장사정포로 서울 북방까지 집결해 있는 우리 전방전력에 대해 사격을 가해온다면 우리 전투준비태세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피해가 막대하다는 것이죠. 실질적인 위협으로서 명심해야 될 부분입니다.
배 사령관 징후경보란 것이 있습니다. 전쟁하기 위한 징후가 뭐냐 이것을 아는 것입니다. 정보가 없으면 전쟁의 승패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정보를 점령하는 사람이 전쟁에서 승리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북한은 워낙 감추는 걸 좋아해서 전방의 땅굴만이 아니라 후방의 탱크를 비롯한 기계화 군단까지 지하로 들어갑니다. 공군비행장에 비행기까지 다 지하에 가 있습니다. 심지어 활주로까지 산속에 낸다는 상상하기 어려운 실정이 곧 북한입니다. 군사용어를 쓰면, 위성 카메라 30센치 정도를 식별해야 군사정보로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성도 이용하고 항공기도 이용하고 사람도 이용하고 또 무선감청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주 소규모 국지도발은 탐지가 어렵지만, 대규모 국지도발이라든지 혹은 전면전 준비는 현재 있는 우리 시스템 가지고 전부 다 포착됩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안심하셔도 되고 그만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송 장군 비대칭 전력 중 핵무기에 이어 생화학무기가 굉장히 치명적이고 엄청난 살상력을 발휘합니다. 생화학무기*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비용 대 효과면에서 유용한 무기체계입니다.
제네바 협정에서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했습니다만 북한이 유사시에 이를 지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1970년대부터 북한은 생화학무기를 대량 만들라는 김일성 지시로 상당량의 화학무기를 비축해놓았습니다. 생물무기*란 쉽게 말해 병원균입니다.
실제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화학무기는 엄밀히 말해 화학작용제라고 해야 맞는데, 화학독극물을 포탄이나 미사일에 충전시켜야만 화학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독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이원화시스템으로 용기에 담아 놓습니다. 전쟁 발발 한 열흘 전부터 충전시키는 것이죠.
송 장군 땅굴은 무기체계는 아니지만 비대칭 시스템화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북한은 70년대초 서유럽에서 굴삭기를 대규모로 수입합니다. 땅굴부설에 사용했던 것이죠. 땅굴을 이용해서 북한군이 남침할 경우, 그들은 피해없이 온전한 상태로 남한의 어느 지점까지 진군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만일 전방부대 GOP라인 후방에 땅굴의 출구가 형성됐다면 전방에 있는 우리 전력들이 고스란히 포위되는, 그래서 혼란에 빠지고 전의를 상실하는, 매우 충격적인 시스템이 땅굴입니다. 그래서 땅굴을 더 찾아내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북한에는 특수부대 12만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특전사령군이라고 생각하면 맞는데 어마어마한 병력입니다. 전쟁이 날 경우 12만명의 특수부대 중 일부 부대들은 북한의 전쟁지도본부나 핵무기 보유시설에서 경계근무방어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수가 우리 남한에 침투하게 되는데 공군에도 특수부대가 있고 해군에도 저격여단이라는 특수부대가 있습니다.
북한군의 전략이 기습전, 속도전, 배합전입니다. 특수부대는 정규전과 아울러 비정규부대와의 배합전을 후방지역에서 동시에 전개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일반 병사에 비해 고도로 전투기술이 숙달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비대칭전력 중 하나입니다.
배 사령관 EMP탄이란 일렉트로 마그네틱 펄스탄이라고 해서 전자파 폭탄입니다. 인명손상도 별로 없고 건물도 부수지 못하지만 핵으로 만들어져 폭발할 때 감마선이 나옵니다. 이 감마선이 공기 중에 산소, 질소와 결합하면서 강력한 펄스를 생산하거든요. 얼마나 강력하냐면 반경 내에 들어가 있으면 수Km까지 전자시계, 컴퓨터, 스마트폰, 모든 전자장비들이 아웃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웬만한 지하속 땅굴이나 벙커에 들어가 있어도 환기구나 안테나를 통해 이 파가 들어갑니다. 그럼 그 속에 있는 전자장비도 역시 쓰기가 어렵습니다. 핵은 세계적으로 비난도 많고 파괴가 크기 때문에 쓰기 어렵지만 이럴 때 EMP탄은 쓸 가능성이 상당히 높죠. 지금은 컴퓨터 없으면 전쟁이 안 되는데, 컴퓨터 시스템을 포함한 전자회로를 다 망가뜨려버리니까 EMP탄이 상당히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1958년 태평양에서 미군이 수소폭탄 실험을 했는데 수백Km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거기서 착안해서 만든 것이 EMP탄이고 그리고 대략 한 발에 주파수 용량 10GW(기가와트) 급이고 180만 암페어입니다. 집에서 쓰는 TV나 전류가 3, 5암페어 정도, 좀 높은 게 15암페어 됩니다. 위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보통 우리 여름에 번개를 많이 보는데, 번개보다 100 내지 1,000배 이상의 위력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전시에 쓴다면 컴퓨터로 이뤄지는 현대 전쟁에 상당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 제독 그동안 북한 지도자들이 세 번 바뀌었는데 밖에서 볼 때 북한시스템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마 북한체제는 자기들 특성에 맞게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평도 포격도발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상황이 생기는 것은 지도자가 갖고 있는 호전적인 성격이 독재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과 맞아떨어져서 쉽게 일어났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안정적인 상태를 북한체제가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젊은이라는 특성 때문에, 그리고 절대자로서의 권한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우발적인 상황들은 항상 우리가 대비를 해야 됩니다.
배 사령관 강대국들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미국도 과거보다는 상당히 강도높게 대북제제를 하고 북한이 양자회담을 하자 해도 거들떠보지 않거든요. 중국도 북한이 3차 핵실험하고 나서는 상당히 달라졌어요. 일본도 그렇죠. 특히 대한민국이 달라졌거든요. 이러한 여러 가지 입장변화 때문에 가장 고민이 많은 것이 사실은 북한 지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방법을 다 내놓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전협정*[사진]을 폐기한 것인데, 그러나 정전협정이 바뀌었다고 대한민국이 갑자기 불안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러나 저렇게 불안하고 폭력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북한이 언제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 놓는 건 아니고 늘 깨어서 준비해야 전쟁을 예방할 수 있지 않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송 장군 얼마전 중국 고위간부가 김정은을 만났을 때 김정은이 극동지역에서 불안한 일이 없을 겁니다 하고 얘기했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믿고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내부문제가 복잡해지면 출구전략 차원에서 대남도발을 해왔던 것이 북한의 전례입니다. 항상 안보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서 제독 중국은 북한을 항상 안고 있을 것입니다. 환탕불환약, 탕재를 바꿔도 약은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북한은 중국의 대미전략을 대신 수행해줄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적절한 완충작용을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주변 안정을 해치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중국에서 충분히 압력을 넣고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마 그 압력의 일환으로 더 이상 어떤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은 북한을 항상 끌어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을 어떤 범위 내에서 그대로 둘 수 있는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미국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범위 내에서는 그대로 놔두는 역할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습니다.
서 제독 얼마전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언론기자가 세미나 하는데 참가했습니다. 동북공정 문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시각에 대해 언급하는데 동북공정 문제를 먼저 시작한 것은 한국 사람이다 이렇게 중국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중국 영토로 돼 있는 곳을 한국 사람들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느냐 하는 우려 때문에 동북공정이라는 용어를 시작을 했다. 이런 농담 반 진담 반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역사에서는 항상 강자의 주장이 약자한테 강요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적인 힘을 키워서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야 된다는 논리가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배 사령관 동북공정은 동북변강 역사와 현 상황에 대한 계획연구공정인데, 동북 3성(랴오닝성=요녕성, 지린성=길림성, 헤이룽장성=흑룡강성)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고조선과 고구려, 이 모든 역사내용이 뭐냐 하면 그 시조가 중국 황제의 후손이다 이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과거 한국에서 했던 모든 역사의 흔적을 지우고 있습니다. 학교 교과서나 기념비, 기념탑 내용을 다 지우면서 그곳의 학생들의 교육도 그렇게 시키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에 급변사태가 생긴다든지 한국의 통일(참 어렵긴 하지만)이 된다면, 중국이 영향을 많이 미칠 것으로 봅니다. 특히 얼마전 중국이 국경선에 많은 군을 배치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북한의 급변사태 때 북한으로 진주하려고 와 있었지 않았냐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우리는 동북공정이나 주변국이 변화해가는 정치를 보고서 적절한 대응을 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송 장군 1997년 IMF시기에 제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있는 미안보연구소에 연구원으로 1년간 공부하러 갔었는데 그 당시 연구원들이 2015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 이건 경제적 군사적인 면이 다 포함되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 미국의 대응 준비가 대단히 빠르고 기민하구나. 미리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렇게 놀란 적이 있는데, 벌써 20년 전이네요.
자, 1990년을 전후해서 구소련과 동부유럽이 붕괴됩니다. 지금까지 최대의 초강대국인 소련과 대치하고 있던 라이벌이었던 미국은 사실 대항마를 잃은 결과거든요. 미 국방부 입장에서는 국방비 삭감이라는 것은 아주 치명적이죠.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전세계의 경찰국가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국방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차기 경쟁상대를 찾아보니 중국이 딱 버티고 있는 겁니다.
미국이 걱정하는 부분은 중국의 잠재력입니다. 인구도 미국은 3억 1천만명밖에 안되는데 중국은 13억 4천만명입니다. 그리고 세계경제가 계속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도 중국은 변함없이 8~10% 고속성장을 계속 해오고 있었거든요. 여기에 미국은 사실 당황하고 우려했던 것이죠.
세계경제가 침체된 가운데 미국경제도 쉽게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따라서 미국은 조급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근본적으로 국력비교라는 것은 영토, 인구, GDP를 가지고 따져요. 아직까지 이런 부분에서 미국을 추월하기는 어렵습니다.
서 제독 해군력을 가지고 제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중국의 해군력이 우리 주변에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해군이 그렇게 발전하게 된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원래 중국은 대륙중심주의적 사고라고 해서 해군을 항상 육군에 소속돼 있는 군 정도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군은 육군 중심으로 운영을 하되 해군은 육군을 지원하는 개념으로만 발전시켜왔다는 것이 대륙중심적 사고였는데, 그러다보니 중국 해군력이 초기에는 해안방어유도탄, 해안포, 소형어뢰정, 그리고 큰 것이 잠수함 정도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니까 해양국가 미국이 간섭해오면 그때 방어할 수 있는 수준만 가지면 된다 하는 개념으로 해안방어 전력에 중점적으로 투자했다가, 1980년도가 되면서 유화청*[사진]이 해군사령관이 되면서부터 해군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송 장군 1983년에 북한이 합영법을 만듭니다. 재일조총련계 기업체가 중심이 돼서 50개 기업이 북한에 투자합니다. 일본제품을 파는 낙원백화점만 성공했지 나머지는 다 실패하고 돌아갑니다. 그래서 북한이 나진, 선봉 특구를 개발하면서 일본에도 투자 종용을 했지만 일본은 위험이 크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일본이 미국과의 공조없이 독자적으로 북한과 수교하는 예는 없을 것입니다. 단지 아베정권이 극우정치인들과 합세해 우경화 헌법개정, 자위대의 기능변환 등을 도모한다면 지역안보 구도에 아주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만약에 일본이 헌법도 개정하고 자위대의 위상을 변환시킨다면 곧바로 군사력 증강으로 가는 겁니다. 이럴 경우 중국은 또다른 군사력 증강을 할 것이고 일본과 중국 두 나라가 군사력 팽창의 라이벌로서 극동아시아는 그야말로 세계 속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배 사령관 일본 군국주의 시절, 당시 아시아 인구 가운데 일본군에 희생된 사람이 약 2천만명 가까이 됩니다. 대단한 숫자거든요. 독일 메르켈 총리*[사진]가 나치 강제수용소에 가서 사과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자행된 범죄에 대해 우리는 영원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건 참 부끄럽고 슬프다” 그랬습니다. 독일 총리로는 처음입니다. 아베 수상이 좀 배워야 됩니다.
일본헌법 9조에 자위대 이외에는 군대를 갖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바꾸려 하거든요. 보통 국가로서 군대를 갖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방어도 되지만 침략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헌법 96조에 헌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3분의 2 출석에 3분의 2 찬성을 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거든요. 아베의 꼼수가 먼저 96조를 바꾸고 그 다음에 9조를 바꾸자는 얘기거든요. 다행인 것은 최근에 헌법개정에 절반이 불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도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는 상당히 반대하고 있으니 아마 헌법개정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서 제독 전쟁역사교육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전쟁에 대비하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겪었던 아픔을 역사교육에 반영해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이 우리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 가슴 속에 담아질 수 있도록 산 역사교육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송 장군 우리 국민의 국민성은 아주 빠르게 발전되고 변해가는 거 같습니다. 특히 전후세대들은 아예 국가안보에 대한 생각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아주 안타까운 면을 많이 보는데. 통일도 그렇습니다. 통일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가면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형태로 통일할 것이냐, 이것도 민족의 장기목표거든요.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외침을 900번이나 받았다는 고통과 역사적인 어려움에 대해 책에서나 말로는 잘합니다. 그러나 피부에 와닿는 느낌으로는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있고, 국가가 안정되고 발전되어야 나도 그속에서 일원으로서 잘살 수 있고 편안하게 가족과 더불어 삶의 질을 높여서 살 수 있습니다. 국가 없이 어떻게 내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안보라는 것은 개인적인 삶과 직접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배 사령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이 말이 진리입니다. 프랑스 역사에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실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되어야 전쟁도 준비하고 평화도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에 왕도는 없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서 남남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단합된 국민의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또 그 다음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에 단호하게, 즉 남북관계를 잘 고려해 대화를 하면서 보상을 해준다든지, 도발에는 적극적 대응을 하는 자세를 가져야 안보유지가 되고 통일도 이뤄지지 않을까 합니다.
[마무리말]
역사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유비무환, 역사는 준비하지 않으면 준비하지 않은 만큼 댓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로운 상생의 새 세상을 준비한다면 인류는 늘 전쟁을 경계하고 대비하며 깨어있어야 되겠습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오늘 대담의 주제와 같이 바쁘신 가운데 한 자리에 함께 해주신 육해공군 예비역 장성들께 감사드립니다. 시청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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