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 깡통값, 소운/박목철
못살던 세대에 나고 자란 탓인지 요즘 신세대의 눈에는 소운이 딱 궁상으로 보이나 보다.
뭘 버린다거나 음식을 남긴다거나 하는 것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는 소운을 두고 궁상맞다고 하니 말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버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뭘 버리려면 버려? 말아? 하는 잠시의 고민이 있기 마련인데 그런 주저가 전혀 없다.
-뭘 버려도 참 당당하게 버리네- 소운은 이런 젊은 세대에 기가 죽는다.
캔맥주를 마실 때 마다 빈 캔이 참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에는 깡통을 전부 오려서 핀 후, 이것들을 주욱 이어 지붕을 덮는 양철판을 만들어 썼고,
커다란 깡통은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을 만들거나 물건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아주 요긴하게 썼으니 말이다.
보통 깡통도 그렇게 요긴하게 썼는데 하물며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요즘 맥주캔을 그냥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소운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페트병 맥주가 제일 맛이 없고, 그다음이 병맥주이고, 캔맥주가 제일 맛이 좋다-
누구에게 들은 말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캔맥주가 제일 맛있다는 생각 때문에 맥주는 늘 캔맥주를
마시게 된다. 맥주 마시기도 부담이 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맥주 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유명 맥주까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에서 입이 호사하며 산다 하겠다.
외국 맥주를 마셔본 사람이면 국산 맥주가 맛없다는데 모두 동의 한다.
내 생각에도 우리나라 맥주가 동남아나 남미에서 만든 맥주보다도 맛이 없다.
(필리핀 산, 산 미구엘이나 멕시코의 코로나도 미국시장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고 있었다)
우리도 기술이 없어 맛 있는 맥주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이, 새 제품을 선 보일 때면 맛이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슬쩍 도로 맹물 맥주 맛이 되는 걸 보면,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상술의 오만함 탓이리라,
맛은 그렇다 쳐도 날씨가 더우면 갈증을 달래는데 맥주보다 좋은 음료수는 없다.
이렇게 마시는 맥주캔은 아깝지만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알루미늄 캔은 꽤 값이 나간다는 소리를
자판기를 가게 앞에 두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한잔하자- 이런 이벤트가 없이 쉽게 마시게 되는 것이 맥주이고 한 2년을 마신 맥주캔은 발로 밟아
부피를 줄여서 커다란 비닐봉지에 모았다. 빈 캔이 꽤 값이 나간다니, 캔 모으는 재미도 있다.
어디다 팔지? 파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폐품을 수집하고 있는데, 멀쩡한 사람이 자신들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이런 소리를 듣게 될까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알루미늄 캔을 모은 커다란 비닐 포대를 남의 눈을 피해 차에 싣기가 좀 그랬지만
앞좌석 의자를 미리 젖혀두고 차 문도 열어둔 채 후다닥 가져다 싣고, 딸 집을 오가며 봐준 폐품수집소를
찾아가 포대를 내리며 나름 기대를 했다. 2년이나 모은 건데,
판 돈은 손주 녀석 통장에 넣어주겠다고 미리 작정하고 있었기에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여기 올려보세요- 커다란 저울에 올리더니, -9kg 이내요-
9kg, 사실 적은 양이 아니다. 캔 하나 는 거의 무게감을 느끼기 어려울 만큼 가볍다.
이런 것을 모아 9kg이나, 마신 맥주값을 따지면 아마 상당하겠지만 암튼 9kg이란 무게가 대견스러웠다.
-여기요 캔값-
-오매, 달랑 6천 원-
유명 맥주 한 캔 값과 비슷한 6천 원 벌자고 2년간 기를 쓰고 모은 나 자신에 어이가 없었다.
자랑스럽게 빈 캔 판 사연을 멋지게 글로 써 보려 했는데,
그러게 뭐랬어, 소운, 돈과 인연 없다 했지, ㅎㅎ,
-양평 딸 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빈 캔은 발로 밟는 수고도 없이 미련없이 던져 버렸다-
-치사해서 안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