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중생론은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였다. 그대로 해석을 해야 된다. 성령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 거듭나라고 하였다. 다시 태어나라는 소리다. 성령이 되라는 소리다. 성령이 하나님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니고 비성경적인 기독교라는 것을 이긴자가 논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죄가 무엇인지 생명과가 무엇인지 선악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성경이 논한 구원론과 중생론과 부활론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기독교인들이 사이비 종교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앙론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으며 구원론도 역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은 단지파에서 구세주의 출현을 약속
구세주론도 역시 예수가 구세주라고 하는 구세주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세주가 유대땅에서 나온다고 약속을 한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 이사야서 41장 1-9절에 보면 ‘섬들아 잠잠하라 동방에서 의인 한 사람을 불러일으키리니 열국 왕들이 다와서 굴복하리라. 땅끝 땅 모퉁이에서 너를 불러일으키리라.’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땅끝 땅 모퉁이 나라 한국에서 구세주가 나온다고 약속이 되어 있는 것이다.
또 창세기서 49장에 보면 야곱이 열두아들의 장래 일을 예언한 말씀이 나오는데 예수의 조상“유다는 사자새끼로다 ‘홀(忽)’이 함께 하는데 ‘실로’가 나타날 때까지로다”고 하였다. 실로는 히브리어인데 번역하면 구세주라는 뜻이다. 구세주가 나타날 때까지만 왕 노릇한다는 것이니 구세주가 나타나면 왕권을 내어놓아야 되는 것이다. 이는 유다지파 가운데서 구세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단은 그 백성을 심판하리라(창49:16)”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구세주는 단지파 가운데서 나타난다고 약속이 되어 있다. 이 말씀과 이사야서 41장을 짝을 맞추어 보면 동방의 땅끝 땅모퉁이에 단지파가 살고 있다. 그러니까 짝이 맞는다. 또 구세주는 ‘이슬성신’을 부어주는 자가 구세주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 (호14:5) 내가 이스라엘(이긴자)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에서 보면, 백합화는 구세주를 상징하니까(구주는 산곡의백합 명랑한 새벽별?합동찬송 84장 후렴?), 이슬성신을 내리는 자가 구세주라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는 이슬성신을 내려주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슬성신을 부어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이슬성신을 부어주는 자가 한국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람이 단지파 자손으로 한국 땅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창세기 49장과도 맞고, 이사야서 41장과도 맞고 호세아서 14장 5절과도 맞으니까 틀림없이 구세주는 한국 땅에서 나타나서 이슬성신을 내린자가 이긴자 구세주라고 그 자격을 세밀하게 논하여 놓았다. 그런고로 성경적인 구세주론을 논한다면 이슬성신을 부어주는 자라야 구세주요 단지파 즉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라야 구세주이다. 한국땅에서 나와야 구세주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구세주가 어떤 모양으로 어디서 나타난다고 약속이 돼 있다. 고로 예수는 가짜이다.
믿음이란 사망을 이긴 하나님의 영
여러분도 성경을 믿어야 된다. 구세주론을 정확하게 성경적으로 논하게 되면 성경적인 구원론이 확립이 되는 것이다. 구원론은 생명과일을 먹어야 구원을 얻는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이 돼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이 돼 있는데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믿음이라고 성경에 써 있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를 믿는 마음이 믿음이라고 하였다. 고로 예수의 신앙론은 비성경적인 신앙론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선물(엡 2:8)이 믿음이라고 하였고 히브리 11장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고 하였다.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요, 보지못했던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또한 믿음이라는 것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명하여 저리로 옮기라면 옮겨진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영적인 말씀이다. 태산같은 죄악의 산 즉 나라는 주체의식을 옮긴다는 것이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산이다. 그래서 그 낙원을 에덴동산이라고 하였다.
에덴동산이 낙원이요, 천국이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하리니 너희 마음속에 있나니라” 人間의 마음을 山이라고 하였다. 이 사람은 성경을 가르친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죄악의 산(山)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는데, 그 선물이 영생이다. 영생은 하나님이나 영생을 한다. 영생을 하려면 나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는 하나님의 영이라야 영생을 한다. 그러므로 이기신 하나님의 영이 믿음이 되는 것이다.
성경적인 신앙론은 나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하나님이 믿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성경을 해석을 하려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야 성경을 풀수 있다.’ 고 하였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 성경에 깊이 묻혀있는 진리를 파헤칠 정도면 진짜 하나님의 신이 아니면 파헤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파헤치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구원을 얻는다고 성경에 써 있다. 기독교에서 성경적인 죄(罪)를 모르고 있다. 죄(罪)라고 하는 것이 원죄요 죄가 선악과요, 선악과가 원죄요, 원죄(原罪)가 나라는 주체의식이다. 성경에는 하나님 안에서 행하라고 하였다. 하나님 안에서 행하라는 것은 내가 기도해도 죄가 된다. “중언부언. 정욕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정욕으로 기도하는 것에 해당이 된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죄요 사망의 근본원인
오늘날 기독교에서 죄(罪)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데 나라는 주체의식이 죄니까 내가 행한는 것은 다 죄가 된다. 말하는 것도 죄(罪)요, 기도하는 것도 죄가 된다. 그래서 나를 항상 버리라고 하였다. 항상 버리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 없어져야 성령으로 거듭나서 나라는 주체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지 나를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이 내가 될 수 없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이 내가 되라는 말이다. 나를 버리라는 것은 마귀의 영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도 기독교에서는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나라는 주체의식이 기도를 해도 죄요, 생각을 해도 죄가 되는고로 양심의 영 하나님의 영이 내가 되어야 성령으로 거듭났다가 되고 나라고 하는 주체의식이 바뀌었다가 되는 것이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하나님의 영이 되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어야 죄와 상관이 없이 살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기 전에는 죄를 안지을래야 아니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기성교회에서는 죄인이 어떻게 죄를 안지을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일주일 동안지은 죄는 일요일날 교회에 가서 “지금까지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만 하면 싹 없어진다고 한다. 그들은 ‘내’가 기도하는 것조차 죄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행하는 것은 모든 것이 죄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마귀요 선악과가 되기 때문에, 성경에는 ‘하나님 안에서 행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기도를 해도 죄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초초로 하나님을 바라보아라 고도로 하나님을 사모하라 그리고 어떻게 기도하라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 기도는 내가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셔야 기도가 상달되고 죄가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안에서 행한다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진다. 고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승리제단에서는 성경적인 죄론을 정확하게 논한다. 나라고 하는 것이 죄가 되는고로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하나님이 조종하는대로 하나님이 주장하는 안에서 사는 것이 죄와 상관이 없는 생활이다. 그래서 하나님안에서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온전히 맡기는 생활이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생활
그러므로 온전히 내 생명과 모든 것을 맡기는 생활을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어야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는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생활을 했다가 되고 하나님의 진액이 연결됐다가 되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몸이 되는 것이다. 그때 성령으로 거듭났다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겨버리면 하나님의 진액이 흐르면서 마귀의 진액은 빠져나가고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주장하는대로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니까, 하나님의 피로 바뀌어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지고, 하나님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논하는 것은 과학적이요 성경적이다. 논리가 완벽하다.
기독교의 죄론은 성경적인 죄론이 아니다. 예수가 죄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나라는 것이 예수를 믿고 죽어서 영혼이 하늘나라에 올라간다고 하였다. 죽으면 생명이 죽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몸만 죽는 것이 아니고 생명까지 죽는다. 성경에 영이 생명(生命)이라고 써 있다. 생명이 영이요, 영이 생명이라고 하였다. 생명이 죽으면 영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사람 속에 있는 영은 죽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이 자신속에도 있고 형제속에도 있다. 이런 것을 예수가 전혀 몰랐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이비종교라고 할수도 없다. 사이비는 흉내라도 내는데 기독교에는 흉내정도도 못낸다.
나라고 하는 의식이 죄가 되는고로 나를 항상 버려라 하는 말씀이 성경에 써 있다. 죄요 마귀니까 버리라고 하였다. 항상 버리라고 했으니까 나라는 것은 쓸데없는 것 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표시한 것이다. 쓸데없는 것이 마귀이다. 그런데 그 마귀가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말한 병신은 미처도 보통미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저것이 무엇인지 분별도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다 말한 것을 진리라고 믿는 것들이 더 우습다.
중생론에 있어서도 내가 성령을 받아 중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성령을 받기 위해서 산에가서 기도하고 내가 성령을 받았다고 산기도원에서 내려오는데 마귀를 받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이 사람이 늘 말하지만 똥위에는 똥파리가 의레껏 똥 냄새를 맡고 앉는다. 죄가 똥과 같은 것이다. 똥과 같은 죄가 잔뜩 들어있는 것이 하늘을 보고 오오! 하나님 하고 외치니 마귀가 오냐오냐 내가 너희 하나님이다 하고 죄인 속에 쑥 들어온다. 그러면 오 내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고 미친짓을 한다. 기독교회 부흥회에 가서 보면 미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마귀신을 받았기에 그렇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세계만민이 모두 하나님의 자식
그러므로 성경의 중생론은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하였다. 그대로 해석을 해야된다. 성령을 받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 거듭나라고 하였다. 다시 태어나라는 소리다. 성령이 되라는 소리다. 성령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신으로 다시 태어나면 하나님이다. 사람이 전에 하나님이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전에 하나님이었다면 예수가 외아들이란 말이 틀렸다. 독생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개소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식이 아담,해와의 후손들이다. 세계만민이 다 하나님의 자식이다.
예수는 자기가 외아들이면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아들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쳐던 것이다. 자기를 통해야 천당에 간다고 개소리를 하였다.
천국이 너희 마음속에 있다고 했으니 너희라는 말은 이 세상 사람을 다 가리킨 것이다. 그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라고 했으니까 이 세상 사람들은 마음속에 다 하나님의 신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이 세상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식이라면, 예수가 외아들이라면 틀림없이 마귀의 아들이다. 마귀 자식이라고 성경에 써 있다.
세례 요한이 물세레 줄 때 공중하늘에서 예수를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소리를 세례 요한이가 들었던 것이다. 세례 요한이는 하늘의 꼭대기에 하나님이 계신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관을 잘못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게 되어 예수교가 시작이 된 것이다. 성경을 사실대로 논해야 된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세례 요한이 공중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증거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공중권세 잡은 신은 마귀의 신이라고 성경에 써 있다. 또 공중신은 악신(엡 6:12)이라고 써 있다.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라 짝이 없는 말씀이 하나도 없나니라”고 했으니가 짝을 맞추면 답이 나온다.
세례 요한이 들은 소리는 공중신의 소리이다. 세례 요한이에게 말한 신과 에베소 6장 12절에 있는 신(神)과 같은 신(神) 이다. 그것은 마귀의 신이면, 예수는 마귀의 아들이라는 답이 정확히 나온다. 또한 사울이 다메섹 고개를 넘어갈 때, 공중에서 “사울아 사울아! 하고 공중에서 불렀다. 그때 사울이 숲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였으니 예수는 공중신이 틀림이 없다. 공중신이 마귀라고 성경에 써 있으니 예수는 마귀가 틀림이 없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고 성경상에 써 있으니 예수를 믿는 사람이 다 죽었다. 죽음은 마귀다. 하나님은 영생의 신이다. 영생을 주어야 하나님의 신이다. 죽게 하는 것은 마귀의 신이다. 그 열매를 보아서도 예수는 마귀다.
기독교의 중생론은 비성경적인 중생론을 논했으며 부활론도 비성경적인 부활론을 논하고 있다. 무론대소하고 죽은 사람들이 다 예수가 천사장의 나팔을 불고 구름을 타고 올 때에 무덤이 짝짝 벌어져 죽은자가 화다닥 살아나온다고 부흥강사들이 말하는 것이다. 산소에서 하나씩 튀어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활이라는 말은 성경말씀이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고로 하나님의 부활을 논한 것이다. 하나님이 현재 무덤 속에 갇혀 있다.
하나님의 신은 영생의 신 죽은 자와는 상관이 없어
우리 속에 양심이 하나님의 영이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마귀다. 나라는 주체의식이 마귀니까 무덤이다. 무덤 속에 갇혀 있는 하나님의 영이 나라는 주체의식을 죽여버리고 하나님의 영이 내가 되면 하나님이 또 다시 살았다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이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땅속에 묻혀있던 예수가 3일만에 다시 살았다고 부활절을 지킨다.
죽은 자가 무덤에서 다시 산다면 그 부활론은 육(肉)의 부활이 되는 것이다. 성경의 부활론이니까 영적 부활이다. 하나님의 영이 다시 사는 것이 부활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의 부활론도 잘못된 것이다. 성경상에는 순교자라는 것이 있는데 예수를 증거하다 죽은 자들을 전부 순교자라고 한다.
순교자라는 것은 성경말씀이요, 영적인 순교를 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의식이 죽고 하나님의 영이 내가 되면 부활을 입었다가 되면서 부활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순교자론이다. 영적 순교자는 마음이 죽어야 된다. 나라는 마귀의 마음이 죽어야 된다. 내가 죽고 양심이 내가 되어야 순교자가 되는 것이다.
이긴자들이 순교자들이다. 조희성이가 죽었다. 그래서 순교자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었다. 그래서 이긴자가 순교자요, 중생자요, 부활자이며 구세주 하나님이시다.
이제 그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대로 자신을 이기고 자신을 죽인 자는 가장 어려운일을 해낸 자이므로 세상을 이긴 자요, 무적장수요, 우주를 마음대로 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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