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의 무대는 조선이 아니라 송나라였다.[8] 등장하는 지명들도 남경 일대의 지명인데,
명나라인 판본도 있다. 즉, 굳이 반도에서 대륙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아니라 그냥 중원에서 시작해서 중원에서 끝난 것.
그래도 중국 땅덩어리 크기 생각해보면 작은 스케일은 아니다. 심봉사를 대륙까지 오게 한 셈이 된 부분은 구전 중 변형으로 생겨난 옥의 티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외 심청을
사가는 상인들은
난징의 상인들. 어쨋든 현재 알려진 판은 조선 후기에서
개화기 무렵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판에서 더 희한하게 된 점은 분명 최소 조선 시대 중기로 추정되며
청나라 상인들까지 등장했는데 결말에서 도달하는 중국은 명나라, 송나라 같은 중국이다.
타임슬립?? 사실 이는 굳이 시간을 넘거나 조선에서
강남까지 언제 가냐 하는 계산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심청의 효심이 보답받는 눈 뜬 아버지와 재회하고 황후가 되면서 도달하는 결말 자체가 일종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증오하며
요순시대를 꿈꾸던 당시 민초들의 의식이 자연스레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완판본에서는 맹인 잔치 마지막 날까지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자, "몽운사 부처님이 영험하여
그 동안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보시어
맹인 축에서 빠지셨는가"라며 걱정을 한다.
[9] 물론 이렇게 생각한 직후에 심학규가 등장.
[10]애초에 원전에서도 "아버지 눈을 띄우기 위해서"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는 묘사보다는 그저 아버지가 생각없이 승낙한 공양미 삼백석 빚값 갚을려고
[11] 뛰어들었다는 뉘앙스가 훨씬 강하고, 1990년 초반에
독일에서 각색하여 뮤지컬로 만든 바 있는데 독일인 극작가도 용왕이 심청에게 '너 아버지 여태 맹인' 이라고 알려주는 게 나오는 걸로 각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개화기 판본부터는 배경이 조선에서 시작해서 조선으로 끝나도록 수정되어서 나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심청의 고향 황주는
황해도 황주군으로 수정되고 인당수는
백령도 앞바다의 해역으로, 중국 황제는 조선의 왕
[12]으로 수정되는 게 대다수. 이 판본도 상당히 널리 퍼져서 실제로
백령도에 심청의 넋을 모신 심청각이 있을 정도이다. 요즘 어린이용 동화에서는 사실 조선이라는 명칭도 잘 등장 안 한다. 동화 버전에서는 그냥 배경은 옛날이고 조선 왕은 옛날에 있었던 왕으로 바뀌고 끝.
배경이 중국 송나라 또는 명나라인 판본 중에는 심봉사의 이름이 심학규가 아니라 심현으로 나오는 판본이 있는데 여기서는 심청의 신분이
진짜 선녀로 나온다. 심청의 아버지는 원래 옥황상제를 모시던 천상의 관리, 어머니는 선녀였는데 둘이 눈이 맞았다가 지상으로 추방되는 벌을 받아 인간이 되었고 그래서 둘 사이에 태어난 심청도 본래 선녀라는 것. 여기서는 심청이 용궁에 가자 용왕과 함께 다시 선녀로 복귀한 심청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고, 심청은 어머니와 함께 한참을 천계에 가서 노닐다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옥황상제의 결정으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나온다.
중간에 심학규를 등쳐먹으려는 약간 개그성 섞인
악녀로 뺑덕 어멈이란
여자가 등장하는데, 소설에는
추녀로 묘사되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미녀라는 이야기도 있다.
[13] 재미있는 것은 뺑덕 어멈이 나중에 심봉사의
돈을 들고 쨀 때 같이 도망갔던
남자가
황봉사, 즉, 심봉사와 같은
맹인이라는 거다.
[14] 시각 장애인 전문 사기꾼? 비장애인을 상대로 하기에는 외모가 부족한가 보다. 뺑덕 어멈은 일부 판본에선 생략되는 경우가 있으며, 경우에 따라 뺑덕 어멈이 벌을 받는 장면이 들어간다.
여담으로 심학규의 눈 상태를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백내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공양미 300석의 가치를 심청전의 배경인 조선 시대의 가치로 따지면 초가집 50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15] 현대로 본다면 쌀의 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약 1억 가량은 되니 지금으로 해도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을 거다. 일단 쌀 한 석은 무게로 쳐서 140kg 전후로 성인 남성 한 명이 1년치 양식으로 여겨졌으므로, 이는 300명의 1년치 양식에 해당하는 양이다. 쌀의 가치가 현재보다 훨씬 높았고, 쌀값(즉 식량 구매 비용)이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당시 상황까지 생각한다면 성인 남성 2백명 ~ 3백명의 1년치 생활비라고 봐도 큰 문제는 없는데, 이 관점을 현대에 대입해 보면 1억이 문제가 아니라 십억 이상에 이를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