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흩뿌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에 잔뜩 구름이 껴 있다. 일찍 도착한 당오름은 전에 갔던 여러 오름들과 달리 마을 공동목장 안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오름을 혼자 천천히 올라 가면서 바라본 풍경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야트막한 높이의 풀밭 사이로 이어진 오름길은 국민학교 시절 소풍을 떠올리게 했다.
'당' 이란 이름을 가진 오름은 제주에 다섯개가 있으며, 오늘 오를 오름은 안덕 당오름이다. 예전에는 신당이 있어 '당오름'이란 이름으로 불리워졌으나, 당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오름17기 선생님들과 같이 모여 체조 후 본격적으로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40여년 전 오름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오름에 가면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나무 몇 그루 정도만 서 있었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훤히 내다보이고 언제나 불어오는 바람은 몸과 마음을 씻어 주었다. 어린 시절 국민학교 소풍 장소는 당오름정도의 오름이었다. 노꼬메나 새별오름 같이 높거나 아주 휑하지도 않았고, 안에 넓은 굼부리가 있어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았다. 둥굴게 둘러앉아 장기자랑을 하고 수건돌리기를 하는 곳도 오름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보물찾기의 장소도 오름이었다. 풀밭 가운데 있는 소나무 밑이나 툭 튀어나온 돌맹이 밑에는 어김없이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오름을 오르는 중에 멈춰 뒤돌아 보니, 제주 서남부 오름들과 해안이 고스란히 한눈에 들어오고, 건너편 도너리 오름의 굼부리도 선명하게 보인다. 당잔대가 외로이 홀로 피어있고 엉겅퀴는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교수님 말씀에 의하면 당오름은 봄에 들꽃이 사방으로 피어있어 걸음을 딛기가 미안할 정도라고 하신다.
정상에 올랐다. 잡목이나 나무가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듯한 굼부리 능선을 따라 걷는 기분은 정말 최고였다. 적당한 크기의 둥그런 굼부리와 멀리서 머리만 내민 한라산, 그리고 사방으로 펼쳐진 수 많은 오름들, 흐린 날씨까지 더해져 가을 오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다. 이어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서남쪽 보이는 오름들. 가운데 나즈막하게 보이는 오름이 넙게오름(광해악)이다. 많은 용암을 흘려보내 제주의 서남부 해안선을 만든 장본인이다. 용암은 산방산 밑 용머리 해안과 고산 수월봉 해안까지 흘러 갔다고 한다.그리고 박쥐가 날개를 편 모습 같아서 붙여진 바굼지 오름(단산), 염라대왕이 한라산 정상을 뽑아 던져서 생겨났다는 산방산. 고개를 돌려 동남쪽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원이 위치해 있고 근처에 물이 있어 붙여진 원물오름. 제주 서남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에 원이 있어 조선시대 관리들도 제주목에서 대정현까지의 원행에 잠시 쉬어 가거나 하룻밤 묵고 가는 장소였다. 그리고 화순 곶자왈을 만든 대병악, 소병악, 옆으로 무악이 보인다.
굼부리 능선을 따라가는 길에 남쪽 낮은 능선에 한무리의 소들이 편안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교수님을 필두로 하여 돌진하니 소들이 비켜 서며 불만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한마디 하는 것 같다. "내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당오름에서 정물오름으로 가는 산길이 험해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당오름은 서귀포시 안덕에, 정물오름은 제주시 금악에 위치해 있다. 직선거리로 불과 1km도 채 안되지만 두 오름 사이에서 시의 경계가 나눠지는 것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위치한 정물오름. 해발 466m, 비고 150m. 쌍둥이 샘이 있어 정물오름이란 이름이 생겨 났으며. 속칭 안경오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 키를 훌쩍 넘은 억새 사잇길로 정물오름 등반이 시작 되었다. 바로 전에 올랐던 당오름과 달리 정물오름은 말굽형 굼부리를 가지고 있다. 한쪽 면이 굼부리 바닥까지 터진 경우에만 말굽형으로 구분 된다고 한다.
오름길에 들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엽록소가 없어 억새에 기생하는 야고, 고마운꽃 고마리, 작고 아담한 잔대.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한 것 같다. 당오름에서 홀로 핀 당잔대를 봤을 때는 너무 아름답다고 사진 찍고 난리였는데, 정물오름에서 잔대를 보니 당잔대하고 비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잔대는 연보라빛의, 줄기와 어울리는 크기의 꽃을 가진 청초한 모습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잔대에 반해 당잔대는 줄기 굵기에 비해 꽃이 크다.
군시절 당나라 군대의 의미는 군기 빠진 오합지졸의 군대를 일컫는 말이다.(실제 당나라는 막강 군사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당잔대가 당나라와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당잔대는 중국 것 이라는 듯 '역시 중국산은 별로, 국산이 최고여!' 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고정관념이란 것이 참 무섭다. 물론 당잔대도 예쁘다. 개인적으로 잔대가 더 예쁘다는 생각일 뿐이다.
서쪽으로 도너리오름, 남송이 오름, 저멀리 수월봉, 당산봉, 저지오름이 보인다.
정물오름에서 바라본 도너리오름은 원형과 말굽형 굼부리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보인다. 도너리오름은 거대한 한경곶자왈을 만든 어머니와 같은 오름이다. 많은 양의 용암이 흘러 대정읍 영락리, 한림읍 월령리로 12km 가까이 흘러갔다. 한경곶자왈은 입구에 따라 저지곶자왈, 청수곶자왈, 산양곶자왈, 무릉곶자왈로 불려진다.
북쪽을 바라보면 신성하다는 뜻의 '검'자에서 비롯된 금오름, 옆으로 야트막한 세미소오름이 보인다. 우리가 서 있는 정물오름 앞에서부터 세미소 주변으로 펼쳐진 평야지대에 성이시돌 목장이 있다. 1954년 한림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임피제 신부는 4.3과 한국전쟁 후 빈곤에 시달리는 중산간 마을 주민을 위하여 돼지, 소, 양을 들여와 근대 목축기술 가르쳤다고 한다. 제주 근대 목축산업의 기반을 마련하신 분이다. 그리고 한림수직사를 설립하여 제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경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오름은 비고가 낮아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지만 능선을 따라 걷는 맛이 일품이었으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 또한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오름이어서 한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아이들과 같이 당오름을 오르며, 아빠의 국민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겨울이 지나 다시오는 봄에는 들꽃이 만발한 당오름과 정물오름을 꼭 오르리라 다짐한다.
첫댓글 서쪽지역의 주요 오름들을 볼 수 있는 안덕 당오름과 정물오름의 정취와 가을철에 볼 수 있는 다양한 들꽃들이 있어 좋았고 어린시절 소풍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 내용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즐감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ㅡ 글 잘쓰시는 재주가 있네요 ^^ 잘기록해서 정리 잘하셨네요 기억이새록새록 남니다 고마워요 ^^
당오름은 못 가본 오름인지라 과거와 현재를, 시 경계를 넘나드는 파노라마 후기 즐감하며 애석한 마음 달랩니다.
어머나!
그 오름에도 하얀고마리가 좌정해 있군요.
당오름 못가봤는데 올가을 꼭 가보고 싶어요~
오름까지 두루 섭렵하는 고샘의 모습에서 제주인의 의지가 보입니다.
파이팅!!!
당오름의 예상치 못한 자태와 풍경에 감동했던 그날을 이렇게 자상하게 되새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 어릴 적 경험이 묻어 있으니 더더욱 살갑게 다가옵니다. 글 쓰시느라 고생한 흔적이 문맥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못해 자리를 내주던 누렁소들의 느릿한 걸음이 기억에 남네요. 복습 고맙습니다~
시간을 더할수록 묵은 장맛같은 매력을 봅니다.
매번 후기에 정성을 기울이는
그 열정에 칭찬과 박수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