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25年(紀元前 548年)
二十五年春, 齊崔杼帥師伐我北鄙, 以報孝伯之師也. 公患之, 使告于晉. 孟公綽曰 : 「崔子將有大志, 不在病我. 必速歸, 何患焉?」 其來也不寇, 使民不嚴, 異於他日, 齊師徒歸.
이십오년춘, 제최저솔사벌아북비, 이보효백지사야. 공환지, 사고우진. 맹공작왈 : 「최자장유대지, 불재병아. 필속귀, 하환언?」 기래야불구, 사민불엄, 이어타일, 제사도귀.
[解釋] 양공 25년 봄에, 제나라 최저가 우리 노나라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온 것은, 효백의 군대에게 보복하기 위해서였다. 양공은 이를 두려워하여, 사람을 시켜 진나라에 보고하게 했다. 그때 노나라 대부 맹공자가 말하기를, 「최저에게는 큰 뜻이 있어, 우리를 괴롭히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속히 돌아갈 것이니, 어찌 걱정하십니까?」라고 말했다. 과연 그들은 공격하면서도 노략질을 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에게 심하게 굴지도 않고, 전날과는 달리 행동하다가, 齊나라 군대는 돌아갔다.
齊棠公之妻, 東郭偃之姊也. 東郭偃臣崔武子, 棠公死, 偃御武子以弔焉. 見棠姜而美之, 使偃取之. 偃曰 : 「男女辨姓. 今君出自丁, 臣出自桓, 不可.」 武子筮之, 遇困[☱☵]之大過[☱☴]. 史皆曰 : 「吉.」
제당공지처, 동곽언지자야. 동곽언신최무자, 당공사, 언어무자이조언. 견당강이미지, 사언취지. 언왈 : 「남녀변성. 금군출자정, 신출자환, 불가.」 무자서지, 우곤[☱☵]지대과[☱☴]. 사개왈 : 「길.」
[解釋] 齊나라 棠邑의 대부의 아내는, 東郭偃의 누님이었다. 東郭偃은 崔武子의 가신으로 있었는데, 棠의 대부가 죽자, 동곽언이 최무자가 조상을 가는데 모시고 갔었다. 최무자는 당읍 대부의 부인 棠姜을 보자 예쁘다고 칭찬하고, 동곽언으로 하여금 장가들 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동곽언이 말하기를, 「남녀는 성이 달라야 합니다. 지금 나리께서는 정공의 후손이고, 저는 환공의 후손이라 모두 강씨이기 때문에, 결혼할 수가 없습니다.」고 하였다. 그래서 최무자는 점을 쳐보게 하니, 困卦[☱☵]가 大過卦[☱☴]로 변하는 형상이 나타났다. 점쟁이들은 모두 「길하다.」고 말했다.
示陳文子, 文子曰 : 「夫從風, 風隕妻, 不可娶也. 且其繇曰, 困于石, 據于蒺黎. 入于其宮, 不見其妻凶, 困于石, 往不濟也, 據于蒺黎, 所恃傷也. 入于其宮, 不見其妻凶, 無所歸也.」
시진문자, 문자왈 : 「부종풍, 풍운처, 불가취야. 차기요왈, 곤우석, 거우질려. 입우기궁, 불견기처흉, 곤우석, 왕부제야, 거우질려, 소시상야. 입우기궁, 불견기처흉, 무소귀야.」
[解釋] 陳文子에게 보이니, 진문자는 말하기를, 「夫[지아비]가 風[바람]을 따르고 있어, 風은 妻[아내]를 떨어뜨리므로, 장가들 수가 없습니다. 또 卦辭에 '돌[石]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납가세[蒺黎]에 의지한다. 그 집으로 들어가면, 아내를 보지 못한다고 했으니, 돌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가서 건널 수가 없고, 납가세에 의지한다고 했으니, 믿는 것에 찔리는 격입니다. 그 집으로 들어가서, 그 아내를 보지 못하여 흉하다고 했으니, 돌아갈 곳이 없는 격입니다.」고 했다.
崔子曰 : 「嫠也, 何害? 先夫當之矣.」 遂取之. 莊公通焉, 驟如崔氏, 以崔子之冠賜人, 侍者曰 : 「不可.」 公曰 : 「不爲崔子, 其無冠乎?」
최자왈 : 「이야, 하해? 선부당지의.」 수취지. 장공통언, 취여최씨, 이최자지관사인, 시자왈 : 「불가.」 공왈 : 「불위최자, 기무관호?」
[解釋] 이에 崔子가 말하기를, 「과부[嫠]인데, 무슨 관계가 있는가? 먼저 남편이 이 점괘에 해당했던 것이다.」고 하고서, 마침내 아내를 삼아 버렸다. 그러나 제나라 장공이 그녀와 사통하고, 여러 번 崔武子의 집에 가서, 崔武子의 모자를 곁에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니, 시자가 말하기를, 「안됩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장공은 말하기를, 「崔子가 되지 못할지라도, 그 모자[冠]도 못 써 보느냐?」고 하였다.
崔子因是, 又以其間伐晉也曰 : 「晉必將報.」 欲弑公以說于晉, 而不獲間. 公鞭侍人賈擧, 而又近之, 乃爲崔子間公.
최자인시, 우이기간벌진야왈 : 「진필장보.」 욕시공이설우진, 이불획간. 공편시인가거, 이우근지, 내위최자간공.
[解釋] 崔子는 이 일로 성을 내고, 또한 내란을 틈타서 진나라를 정벌하면서 말하기를, 「진나라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서 제나라 장공을 죽여 진나라에 해명하려고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후 장공은 태갑 賈擧를 매질하고, 또 그를 가까이 하니, 賈擧가 최무자를 위해서 장공과 사이를 나쁘게 만들었다.
夏五月, 莒爲且于之役故, 莒子朝于齊. 甲戌, 饗諸北郭, 崔子稱疾, 不視事. 乙亥, 公問崔子, 遂從姜氏. 姜入于室, 與崔子自側戶出. 公拊楹而歌, 侍人賈擧止衆從者而入, 閉門.
하오월, 거위차우지역고, 거자조우제. 갑술, 향저북곽, 최자칭질, 불시사. 을해, 공문최자, 수종강씨. 강입우실, 여최자자측호출. 공부영이가, 시인가거지중종자이입, 폐문.
[解釋] 여름 5월에, 莒나라가 且于에서의 싸움 때문에, 거나라 임금이 제나라 임금에게 조회하러 갔었다. 甲戌日에, 제나라에서는 그 거나라 임금을 북쪽 외성에서 대접할 때에, 최무자는 병을 핑계 삼아, 일을 보지 않았다. 乙亥日에, 장공은 최무자를 위문하고, 그 길로 강씨를 따라갔다. 강씨는 방으로 들어가자, 최무자와 같이 옆문으로 나가 버렸다. 장공이 밖에서 기둥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자, 태갑 가거는 시중드는 사람을 기다리게 해 놓고 최저의 집에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甲興, 公登臺而請, 弗許. 請盟, 弗許. 請自刃於廟, 弗許. 皆曰 : 「君之臣杼疾病, 不能聽命. 近於公宮, 陪臣干掫有淫者. 不知二命.」
갑흥, 공등대이청, 불허. 청맹, 불허. 청자인어묘, 불허. 개왈 : 「군지신저질병, 불능청명. 근어공궁, 배신간추유음자. 부지이명.」
[解釋] 그러자 복병들이 일제히 소리 지르며 습격하니, 장공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구원을 요청했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장공은 급한 나머지 무슨 요청이라도 들어 준다고 하여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궁으로 돌아가 종묘에서 자살을 하겠다고 하여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모두들 말하기를, 「임금님의 신하인 최무자는 병이 들어, 임금님의 명령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는 궁궐과 가까운데, 저희들이 야간 순찰을 하자 이상한 자가 나타났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를 찾는 중이므로 다른 명령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고 했다.
公踰牆, 又射之. 中股, 反隊, 遂弑之. 賈擧, 州綽, 邴師, 公孫敖, 封具, 鐸父, 襄伊, 僂堙皆死. 祝佗父祭於高唐, 至復命, 不脫弁而死於崔氏.
공유장, 우사지. 중고, 반대, 수시지. 가거, 주작, 병사, 공손오, 봉구, 탁보, 양이, 누인개사. 축타보제어고당, 지복명, 불탈변이사어최씨.
[解釋] 그래서 장공은 낮은 담을 뛰어넘어 달아나려 할 때에, 누군가가 활을 쏘았다. 다리에 화살을 맞고, 뒤집혀 떨어질 때에, 그대로 죽여 버렸다. 이때 賈擧, 州綽, 邴師, 公孫敖, 封具, 鐸父, 襄伊, 僂堙 등이 모두 장공을 따라서 죽었다. 그때 祝佗父는 高唐의 사당에 가서 제사를 끝내고, 조정에 돌아와 복명하고, 제복을 벗지도 못한 채 최무자의 집으로 달려 왔다가 죽었다.
申蒯, 侍漁者退, 謂其宰曰 : 「爾以帑免, 我將死.」 其宰曰 : 「免是反子之義也. 」 與之皆死. 崔氏殺鬷蔑于平陰. 晏子立於崔氏之門外, 其人曰 : 「死乎?」 曰 : 「獨吾君也乎哉, 吾死也?」
신괴, 시어자퇴, 위기재왈 : 「이이탕면, 아장사.」 기재왈 : 「면시반자지의야. 」 여지개사. 최씨살종멸우평음. 안자립어최씨지문외, 기인왈 : 「사호?」 왈 : 「독오군야호재, 오사야?」
[解釋] 申蒯는, 고기 잡는 일을 맡은 신하였는데 난리가 난 줄 알고 집에 돌아와, 가신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도망가게, 나는 죽을 걸세.」라고 하자, 가신이 말하기를, 「도망간다면 마음을 배반하는 결과가 됩니다.」고 답하고서, 두 사람도 함께 죽었다. 최무자는 평음의 대부 鬷蔑을 죽였다. 그때 안자는 최무자네 집 문밖에 있었는데, 하인이 말하기를,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라고 하니, 말하기를, 「나 혼자만의 임금이 아닌데, 내가 어째서 죽겠느냐?」라고 하였다.
曰 : 「行乎?」 曰 : 「吾罪也乎哉? 吾亡也.」 曰 : 「歸乎?」 曰 : 「君死. 安歸? 君民者, 豈以陵民, 社稷是主. 臣君者, 豈爲其口實, 社稷是養. 故君爲社稷死, 則死之, 爲社稷亡, 則亡之. 若爲己死, 而爲己亡, 非其私暱, 誰敢任之? 且人有君而弑之, 吾焉得死之? 而焉得亡之? 將庸何歸?」
왈 : 「행호?」 왈 : 「오죄야호재? 오망야.」 왈 : 「귀호?」 왈 : 「군사. 안귀? 군민자, 기이릉민, 사직시주. 신군자, 기위기구실, 사직시양. 고군위사직사, 즉사지, 위사직망, 즉망지. 약위기사, 이위기망, 비기사닐, 수감임지? 차인유군이시지, 오언득사지? 이언득망지? 장용하귀?」
[解釋] 다시 묻기를, 「도망가시렵니까?」라고 하자, 말하기를, 「내게 죄가 있느냐? 내가 도망가다니.」라고 하였다. 그래서 말하기를, 「그러면 댁으로 돌아가시렵니까?」라고 하자, 안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임금이 죽었는데, 어디로 돌아가느냐? 임금이란, 백성을 능멸하는 데 능해서는 안 되고,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다. 또 신하란, 먹는 것을 찾는 데만 능해서는 안 되고, 나라를 돕는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임금이 나라를 위해서 죽으면, 신하도 따라서 죽고, 임금이 나라를 위하여 도망가면, 신하도 도망가는 법이다. 만일 임금이 자기 개인을 위해서 죽거나, 자기 개인을 위하여 도망간다면, 특별히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누가 감히 그런 책임을 감당하겠느냐? 또한 신하된 자가 주인을 죽였다고 하는데, 거기에 관계도 없이 내가 어째서 죽어야 하는가? 어째서 도망가야 하는가? 그렇다고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門啓而入, 枕尸股而哭, 興三踊而出. 人謂崔子, 必殺之, 崔子曰 : 「民之望也. 舍之, 得民.」 盧蒲癸奔晉, 王何奔莒. 叔孫宣伯之在齊也, 叔孫還納其女於靈公, 生景公.
문계이입, 침시고이곡, 흥삼용이출. 인위최자, 필살지, 최자왈 : 「민지망야. 사지, 득민.」 노포계분진, 왕하분거. 숙손선백지재제야, 숙손환납기녀어령공, 생경공.
[解釋] 그 대문이 열리자 안자는 들어가, 장공의 시체를 자기 무릎에다 올려놓고 통곡을 하다가, 일어나 세 번 뛰는 예를 행하고 나왔다. 사람들이 최무자에게, 안자를 반드시 죽여 버리라고 하니, 최무자가 말하기를, 「그는 백성들이 신망하는 사람이다. 그를 죽이면, 백성들의 마음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 또한 盧蒲癸는 진나라로, 王何는 莒나라로 달아났다. 叔孫宣伯이 제나라에 있을 때에, 叔孫還이 그의 딸을 靈公에게 바쳐, 그녀는 사랑을 받아 景公을 낳았다.
丁丑, 崔杼立而相之, 慶封爲左相. 盟國人於大宮曰 : 「所不與崔, 慶者〇〇.」 晏子仰天歎曰 : 「嬰所不唯忠於君, 利社稷者是與? 有如上帝.」 乃歃.
정축, 최저립이상지, 경봉위좌상. 맹국인어대궁왈 : 「소불여최, 경자〇〇.」 안자앙천탄왈 : 「영소불유충어군, 이사직자시여? 유여상제.」 내삽.
[解釋] 丁丑日에, 최무자는 경공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재상이 되고, 慶封이 左相이 되었다. 그래서 은나라 사람들을 종묘에 모아 놓고 맹세하기를, 「우리 최씨 경씨와 한 패가 되지 않는 자가 있다면, 하느님이 내려다볼 것이다.」고 말할 때에, 晏子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오직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이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내려다볼 것이다.」고 하고서, 동맹의 피를 마셨다.
辛巳, 公與大夫及莒子盟. 大史書曰 : 「崔杼弑其君.」 崔子殺之. 其弟嗣書, 而死者二人. 其弟又書, 乃舍之. 南史氏聞大史盡死, 執簡以往, 聞旣書矣, 乃還.
신사, 공여대부급거자맹. 대사서왈 : 「최저시기군.」 최자살지. 기제사서, 이사자이인. 기제우서, 내사지. 남사씨문대사진사, 집간이왕, 문기서의, 내환.
[解釋] 辛巳日에, 경공은 대부들과 거나라 임금과 함께 동맹을 맺었다. 사관이 역사서에 기록하기를, 「최저가 그 임금을 죽였다.」고 했으므로, 최무자는 그 사관을 죽였다. 그러자 그 사관의 동생이 또한 계속하여 그런 내용을 써서, 죽음을 당한 자가 두 사람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의 동생이 또 그렇게 써 버리니, 최무자는 할 수 없이 허락했다. 제나라 남쪽에 사는 사관이 사관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책을 가지고 와서 적으려고 하다가, 제대로 기록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갔다.
閭丘嬰以帷縛其妻而載之, 與申鮮虞乘而出. 鮮虞推而下之曰 : 「君昏不能匡, 危不能救, 死不能死, 而知匿其暱, 其誰納之?」 行及弇中, 將舍, 嬰曰 : 「崔慶其追我?」 鮮虞曰 : 「一與一, 誰能懼我?」
여구영이유박기처이재지, 여신선우승이출. 선우추이하지왈 : 「군혼불능광, 위불능구, 사불능사, 이지닉기닐, 기수납지?」 행급엄중, 장사, 영왈 : 「최경기추아?」 선우왈 : 「일여일, 수능구아?」
[解釋] 또 閭丘嬰은 휘장 조각으로 그 아내를 결박하여 수레에 싣고, 申鮮虞와 같이 서울을 도망갔다. 그때 申鮮虞는 閭丘嬰의 부인을 수레에서 밀어 버리면서 閭丘嬰에게 말하기를, 「임금님이 어리석은 것을 고치지도 못하고, 위험했을 때 구하지도 못하고, 죽었을 때도 같이 죽지 못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만 숨겨 갈 줄 아니, 누가 우리를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했다. 그들이 도망가다가 좁은 길에 이르러, 잠시 쉴 때에, 여구영이 말하기를, 「최저와 경봉이 우리를 추격해 올 것인가?」라고 하니, 신선우가 대답하기를, 「1대 1인데, 누가 두려운가?」라고 했다.
遂舍, 枕轡而寢. 食馬而食, 駕而行. 出弇中, 謂嬰曰 : 「速驅之. 崔慶之衆, 不可當也.」 遂來奔. 崔氏側莊公于北郭. 丁亥, 葬諸士孫之里. 四翣, 不蹕, 下車七乘, 不以兵甲.
수사, 침비이침. 식마이식, 가이행. 출엄중, 위영왈 : 「속구지. 최경지중, 불가당야.」 수래분. 최씨측장공우북곽. 정해, 장저사손지리. 사삽, 불필, 하거칠승, 불이병갑.
[解釋] 그리고서 그대로 잠잘 때에, 말고삐를 잡고서 잤다. 다음 날 아침에 말부터 먹이고, 자기들도 먹고 말을 몰아 도망갔다. 그 좁은 길을 나오자, 신선우가 말하기를, 「빨리 가세. 최저와 경봉의 무리들이 많아지면, 대적할 수가 없을 것일세.」라고 하고서, 노나라로 도망왔다. 최저는 장공을 북부지방에다 매장했다. 그랬다가 丁亥日에, 사손이란 마을에다 개장했다. 그때 장공의 장례수레에는, 손잡이가 긴 부채 네 개만 장식했고, 길손들도 통제하지 않고, 장례식 때 사용한 수레도 7대뿐이고 호위하는 무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晉侯濟自泮, 會于夷儀, 伐齊, 以報朝歌之役, 齊人以莊公說, 使隰鉏請成, 慶封如師. 男女以班, 賂晉侯以宗器樂器, 自六正, 五吏三十帥, 三軍之大夫, 百官之正長, 師旅及處守者皆有賂, 晉侯許之, 使叔向告於諸侯. 公使子服惠伯對曰 : 「君舍有罪, 以靖小國, 君之惠也. 寡君聞命矣.」
진후제자반, 회우이의, 벌제, 이보조가지역, 제인이장공설, 사습서청성, 경봉여사. 남녀이반, 뇌진후이종기락기, 자륙정, 오리삼십수, 삼군지대부, 백관지정장, 사려급처수자개유뢰, 진후허지, 사숙향고어제후. 공사자복혜백대왈 : 「군사유죄, 이정소국, 군지혜야. 과군문명의.」
[解釋] 진나라 임금이 반수를 건너, 夷儀에 도착하여 회합을 열고, 제나라를 정벌하여, 朝歌에서의 싸움을 보복하려고 하니, 제나라 사람은 장공을 죽인 까닭을 해명하고, 隰鉏로 하여금 강화를 요청하게 하며, 慶封을 진나라 군대로 파견했다. 男女를 분반하고, 제기와 악기들을 진나라 평공에게 뇌물로 드릴 때에, 六正으로부터, 五吏 30명의 장수, 三軍의 大夫, 모든 관리의 우두머리와, 지방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물을 바치니, 진나라 임금은 화평을 허락하고, 叔向에게 명하여 제후들에게 알리게 했다. 이때 양공은 子服惠伯에게 대답하기를, 「죄를 용서하여, 작은 나라를 안정시켜 주시니, 당신의 은혜입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고 했다.
晉侯使魏舒宛沒逆衛侯, 將使衛與之夷儀, 崔子止其帑, 以求五鹿. 初陳侯會楚子伐鄭, 當陳隧者, 井堙, 木刊, 鄭人怨之.
진후사위서완몰역위후, 장사위여지이의, 최자지기탕, 이구오록. 초진후회초자벌정, 당진수자, 정인, 목간, 정인원지.
[解釋] 진나라 평공은 위서와 宛沒로 하여금 제나라로 가서 제나라에 머물러 있는 위나라 헌공을 맞이하였다가, 이의 지방에 와서 회합에 참석하게 했는데, 최저는 위나라 헌공의 가족을 잡아 두고서, 五鹿지방의 땅을 요구하려고 했다. 처음에 진나라 임금이 초나라 임금과 만나 정나라를 정벌할 때에, 군대들이 지나가는 곳에는, 우물을 메우고,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게 했으므로, 정나라 사람들이 이를 원망했다.
六月, 鄭子展, 子産帥車七百乘伐陳, 宵突陳城, 遂入之. 陳侯扶其大子偃師奔墓, 遇司馬桓子曰 : 「載余曰, 將巡城.」 遇賈獲, 載其母妻, 下之, 而授公車.
육월, 정자전, 자산솔거칠백승벌진, 소돌진성, 수입지. 진후부기태자언사분묘, 우사마환자왈 : 「재여왈, 장순성.」 우가획, 재기모처, 하지, 이수공거.
[解釋] 6월에, 鄭나라 子展과 子産이 병거 700승을 거느리고 진나라 서울로 쳐들어가, 밤에 진나라 성을 돌격하여, 드디어 쳐들어갔다. 진나라 임금은 태자 언사를 데리고 묘지로 달아나려 할 때에, 마침 司馬桓子를 만나 말하기를, 「나를 태워다오.」라고 하니, 司馬桓子가 말하기를, 「성을 순찰하는 중입니다.」고 했다. 다시 賈獲을 만나니, 그는 자기 어머니와 부인을 싣고, 가다가 내려놓고, 임금님과 태자를 수레에 태웠다.
公曰 : 「舍而母.」 辭曰 : 「不祥.」 與其妻扶其母以奔墓, 亦免. 子展命師無入公宮, 與子産親御諸門.
공왈 : 「사이모.」 사왈 : 「불상.」 여기처부기모이분묘, 역면. 자전명사무입공궁, 여자산친어저문.
[解釋] 진나라 애공이 말하기를, 「자네 어머니도 태우고 가세.」라고 했으나,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상서롭지 못합니다.」고 하고, 그의 아내와 같이 어머니를 부축하고 무덤 있는 곳으로, 또한 달아나 피했다. 정나라 자산이 정나라 군대에게 궁중에 들어오지 못하게 명하고서, 자산과 함께 구문에서 군사를 손수 막았다.
陳侯使司馬桓子賂以宗器, 陳侯免, 擁社, 使其衆男女別而纍, 以待於朝. 子展執縶而見, 再拜稽首, 承飮而進獻. 子美入, 數俘而出. 祝祓社, 司徒致民, 司馬致節, 司空致地, 乃還.
진후사사마환자뢰이종기, 진후면, 옹사, 사기중남녀별이류, 이대어조. 자전집집이현, 재배계수, 승음이진헌. 자미입, 수부이출. 축불사, 사도치민, 사마치절, 사공치지, 내환.
[解釋] 그래서 진나라 임금이 사마환자에게 명하여 제기를 뇌물로 주게 하고서, 진나라 애공은 상복을 입고, 신주를 안고, 국민들에게 남녀별로 끈으로 묶어, 조정에 나와서 기다리게 했다. 자전은 말고삐를 잡고서 애공을 뵙고,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술잔을 바쳤다. 그리고 子美는 조정으로 들어가, 포로를 세어 보고 나왔다. 그리고 정나라 사람들은 진나라 신관에게 재앙을 떨어 버리는 세사를 지내게 하고, 司徒에게는 인민의 호적을, 司馬에게는 군의 중요한 문서를, 司空에게는 토지대장을 각각 정리해서 제출하게 하고서, 돌아갔다.
秋七月己巳, 同盟于重丘, 齊成故也. 趙文子爲政, 令薄諸侯之幣, 而重其禮. 穆叔見之, 謂穆叔曰 : 「自今以往, 兵其少弭矣, 齊崔慶新得政, 將求善於諸侯. 武也知楚令尹, 若敬行其禮, 道之以文辭, 以靖諸侯, 兵可以弭.」
추칠월기사, 동맹우중구, 제성고야. 조문자위정, 령박제후지폐, 이중기례. 목숙견지, 위목숙왈 : 「자금이왕, 병기소미의, 제최경신득정, 장구선어제후. 무야지초령윤, 약경행기례, 도지이문사, 이정제후, 병가이미.」
[解釋] 가을 7월 己巳日에, 重丘에서 동맹을 맺은 것은, 제나라가 복종했기 때문이다. 조문자가 정권을 잡자, 제후들이 바치는 공물을 경감하여 주고, 그 대신 예법을 중시하게 했다. 노나라 숙손표가 진나라로 가서 조문자를 만나니, 조문자가 숙손표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전쟁이 없어질 것이오. 제나라 최저와 경봉이 새로 정권을 잡자, 제후들과 잘 지내려고 하고 있소. 나 또한 초나라의 영윤 굴건과 잘 알고 있으므로, 만약에 공경하는 예를 행하고, 말을 삼가 이끌어, 제후들을 안정시킨다면, 전쟁이 멈출 것이오.」라고 했다.
楚薳子馮卒, 屈建爲令尹, 屈蕩爲莫敖. 舒鳩人卒叛楚, 令尹子木伐之, 及離城. 吳人救之, 子木遽以右師先. 子彊, `息桓, 子捷, 子騈, 子盂帥左師以退. 吳人居其間七日.
초위자풍졸, 굴건위령윤, 굴탕위막오. 서구인졸반초, 영윤자목벌지, 급리성. 오인구지, 자목거이우사선. 자강, `식환, 자첩, 자병, 자우솔좌사이퇴. 오인거기간칠일.
[解釋] 楚나라 薳子馮이 죽으니, 屈建이 令尹이 되고, 屈蕩이 莫敖가 되었다. 舒鳩사람들이 마침내 배반하자, 노나라 令尹 子木이 이를 정벌하여, 離城에 도착하자, 吳나라 사람들이 구제하려 와서, 子木은 급히 우익 부대를 거느리고 먼저 서구에 도착했다. 子彊, 息桓, 子捷, 子騈, 子盂 등은 좌익 부대를 거느리고 일단 후퇴했다. 吳나라 사람들은 초나라의 두 부대 가운데서 7일 동안이나 갇히게 되었다.
子彊曰 : 「久將墊隘, 隘乃禽也, 不如速戰. 請以其私卒誘之, 簡師, 陳以待我. 我克則進, 奔則亦視之. 乃可以免, 不然, 必爲吳禽.」 從之, 五人以其私卒先擊吳師, 吳師奔, 登山以望, 見楚師不繼, 復逐之, 傅諸其軍, 簡師會之, 吳師大敗. 遂圍舒鳩, 舒鳩潰, 八月楚滅舒鳩.
자강왈 : 「구장점애, 애내금야, 불여속전. 청이기사졸유지, 간사, 진이대아. 아극즉진, 분즉역시지. 내가이면, 불연, 필위오금.」 종지, 오인이기사졸선격오사, 오사분, 등산이망, 견초사불계, 부축지, 부저기군, 간사회지, 오사대패. 수위서구, 서구궤, 팔월초멸서구.
[解釋] 그때 子彊이 말하기를, 「오래되면 비가 와서 신지가 좁아져, 좁아져서 마침내 포로가 되기 쉬우니 빨리 사우는 것만 같지 못하오. 청컨대 내가 나의 부대를 끌고 적을 유인해 보리니 군사들을 뽑아, 진을 이루어 기다리고 있으시오. 내가 이기면 진격하고, 내가 달아날 경우에도 잘 돌보시오. 그렇게 하면 면할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고 했다. 모두들 그 의견을 따라, 5명의 장수가 자기 부대를 이끌고 먼저 오나라 군대로 쳐들어가, 吳나라 군사들은 달아나, 산으로 올라가 바라볼 때에, 초나라 군대가 계속해서 진격하여 오지 않음을 보았다. 그래서 다시 초나라 군대를 추격하여, 초나라 본진에 육박했을 때에, 초나라의 선발된 군대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을 가하여, 吳나라 군대는 대패했다. 초나라 군대는 드디어 舒鳩를 포위하니, 舒鳩는 스스로 궤멸하여, 8월에 초나라는 舒鳩를 멸했다.
衛獻公入于夷儀. 鄭子産獻捷于晉, 戎服將事. 晉人問陳之罪, 對曰 : 「昔虞閼父爲周陶正, 以服事我先王. 我先王賴其利器用也, 與其神明之後也, 庸以元女大姬配胡公, 而封諸陳, 以備三恪. 則我周之自出, 至于今是賴.
위헌공입우이의. 정자산헌첩우진, 융복장사. 진인문진지죄, 대왈 : 「석우알보위주도정, 이복사아선왕. 아선왕뢰기리기용야, 여기신명지후야, 용이원녀태희배호공, 이봉저진, 이비삼각. 즉아주지자출, 지우금시뢰.
[解釋] 衛나라 獻公이 夷儀지방으로 들어갔다. 정나라 자산이 진나라에서 얻은 포로를 진나라에 바칠 때에, 군복을 입고 그 예를 행했다. 晉사람이 陳나라의 죄를 묻자, 자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 虞閼父는 질그릇 만드는 일을 책임 맡아 주나라 무왕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무왕은 虞閼父가 만든 질그릇을 이용하였고, 그의 집안이 성인 순임금의 혈통을 이었으므로, 주나라 무왕은 장녀 大姬를 虞閼父의 아들 호공만에게 시집보내고, 호공만을 진나라의 땅에 봉하여, 세 개의 중요한 후손국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나라에서 갈라 나갔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힘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桓公之亂, 蔡人欲立其出, 我先君莊公奉五父而立之, 蔡人殺之, 我又與蔡人奉戴厲公. 至於莊宣, 皆我之自立.
환공지란, 채인욕립기출, 아선군장공봉오보이립지, 채인살지, 아우여채인봉대려공. 지어장선, 개아지자립.
[解釋] 진나라 환공의 난에, 蔡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 공주가 낳은 여공을 세우려 하였으나, 우리나라 선군 莊公이 五父를 임금의 자리에 세웠으나, 蔡나라 사람들은 그를 죽여 버려, 우리 선군은 할 수 없이 채나라 사람과 같이 여공을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그 후 진나라 장공, 선공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나라의 힘을 입었습니다.
夏氏之亂, 成公播蕩, 又我之自入, 君所知也. 今陳忘周之大德, 蔑我大惠, 棄我姻親, 介恃楚衆, 以馮陵我敝邑, 不可億逞. 我是以有往年之告, 未獲成命.
하씨지란, 성공파탕, 우아지자입, 군소지야. 금진망주지대덕, 멸아대혜, 기아인친, 개시초중, 이풍릉아폐읍, 불가억령. 아시이유왕년지고, 미획성명.
[解釋] 그 후에 하징서가 영공을 죽였을 때에, 영공이 아들 성공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우리나라가 들여보내어 왕으로 삼은 것은, 당신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주나라의 큰 덕을 잊고, 우리나라의 큰 은혜도 멸시하고, 우리와 인척인 것도 저 버리고, 강국인 초나라만 믿고서, 우리나라를 능욕하니, 내 버려두면 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해에 귀국에 보고했는데, 명령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則有我東門之役, 當陳隧者, 井堙, 木刊, 敝邑大懼不競而恥大姬. 天誘其衷, 啓敝邑之心, 陳知其罪, 授手于我, 用敢獻功.」
즉유아동문지역, 당진수자, 정인, 목간, 폐읍대구불경이치태희. 천유기충, 계폐읍지심, 진지기죄, 수수우아, 용감헌공.」
[解釋] 그 뒤 우리 정나라의 동문으로 쳐들어온 싸움이 있었을 때에, 그들은 군대를 끌고 가는 길에서, 우물을 모두 묻고, 나무들을 모두 잘라 버려, 우리나라에서는 이로부터 국력이 허약하여져서 大姬의 영혼에 부끄러움을 끼칠까 걱정했었습니다. 다행히 하늘이 우리의 진심을 알아 주셔서, 우리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陳나라도 또한 그들의 죄를 알아, 우리에게 손을 들었으므로, 이에 승리를 보고하는 바입니다.」
晉人曰 : 「何故侵小?」 對曰 : 「先王之命, 唯罪所在, 各致其辟. 且昔天子之地一圻, 列國一同, 自是以衰. 今大國多數圻矣, 若無侵小, 何以至焉?」
진인왈 : 「하고침소?」 대왈 : 「선왕지명, 유죄소재, 각치기벽. 차석천자지지일기, 열국일동, 자시이쇠. 금대국다수기의, 약무침소, 하이지언?」
[解釋] 晉나라 사람들이 다시 묻기를, 「어째서 작은 나라를 침략했는가?」고 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선왕의 명령에는, 죄를 진 자에게, 그만큼 형벌을 가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옛날에는 천자의 땅은 사방 천 리요, 제후는 사방 백 리이며, 그 아래는 단계적으로 적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국은 수천 리나 가지고 있으니, 이들이 만약 작은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커질 수가 있겠습니까?」
晉人曰 : 「何故戎服?」 對曰 : 「我先君武莊爲平桓卿士, 城濮之役, 文公布命曰, '各復舊職.' 命我文公戎服輔王, 以授楚捷, 不敢廢王命故也.」 士莊伯不能詰, 復於趙文子, 文子曰 : 「其辭順. 犯順, 不祥.」 乃受之.
진인왈 : 「하고융복?」 대왈 : 「아선군무장위평환경사, 성복지역, 문공포명왈, '각부구직.' 명아문공융복보왕, 이수초첩, 불감폐왕명고야.」 사장백불능힐, 복어조문자, 문자왈 : 「기사순. 범순, 불상.」 내수지.
[解釋] 진나라 사람들이 재차 묻기를, 「어째서 군복을 입고 왔는가?」라고 하니, 자산은 또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선군 무공과 장공은 주나라의 평왕과 환왕을 위해서 卿士가 되었었는데, 城濮의 싸움 이후로, 진나라 문공이 명령을 내리기를, '각기 다시 옛 직책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문공에게 군복을 입고 주나라 천자를 도우라고 하여, 초나라의 포로를 바친 일이 있으므로, 오늘도 군복을 입은 것은 임금님의 명령을 폐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士莊伯이 자산을 더 꾸짖지 못하고, 趙文子에게 복명하니, 조문자는 말하기를, 「그 말이 순리에 맞는다. 순리를 쫒지 않으면, 불길하다.」고 하고서, 곧 포로들을 받아들었다.
冬十月, 子展相鄭伯如晉, 拜陳之功. 子西復伐陳, 陳及鄭平. 仲尼曰 : 「志有之, '言以足志, 文以足言.' 不言, 誰知其志? 言之無文, 幸而不遠. 晉爲伯, 鄭入陳, 非文辭不爲功. 愼辭也.」
동십월, 자전상정백여진, 배진지공. 자서부벌진, 진급정평. 중니왈 : 「지유지, '언이족지, 문이족언.' 불언, 수지기지? 언지무문, 행이불원. 진위백, 정입진, 비문사불위공. 신사야.」
[解釋] 겨울 10월에, 정나라 자전이 정나라 임금을 따라 진나라로 가서, 진나라를 정벌한 데에 대한 공로를 사례했다. 그리고서 자서가 또한 진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니, 진나라는 간화를 요청했다. 공자가 정나라 자산의 대답을 비평하여 말하였는데, 「책에 기록되어 있기를, '말로써 뜻을 이루고, 문식으로써 말을 이룬다.'라고 했으니,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뜻을 누가 알 것인가? 말을 하되 꾸밈이 없다면, 유행하기는 하나 멀리 퍼질 수는 없다. 진나라가 패자가 되었는데, 정나라가 진나라로 쳐들어갔으니, 이러한 아름다운 문장이 아니었으면 공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말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
楚蔿掩爲司馬, 子木使庀賦, 數甲兵. 甲午, 蔿掩書土田, 度山林, 鳩藪澤, 辨京陵, 表淳鹵, 數疆潦, 規偃豬, 町原防, 牧隰皐, 井衍沃, 量入脩賦, 賦車籍馬賦車兵徒兵甲楯之數, 旣成, 以授子木, 禮也.
초위엄위사마, 자목사비부, 수갑병. 갑오, 위엄서토전, 탁산림, 구수택, 변경릉, 표순로, 수강료, 규언저, 정원방, 목습고, 정연옥, 량입수부, 부거적마부거병도병갑순지수, 기성, 이수자목, 예야.
[解釋] 楚나라에서는 蔿掩이 司馬가 되니, 영윤 자목이 그로 하여금 세금을 절이하게 하고, 군대의 세목을 열람하게 했다. 甲午日에, 蔿掩은 논`밭을 등기부에 올리게 하고, 산림의 材木을 헤아리게 하며, 늪이나 못을 깊게 하고, 구릉을 평지와 구별하게 하였으며, 불모지를 구분하게 하고, 냇물이나 여울을 헤아리게 하였으며, 습지의 수확 상황을 조사하게 하고, 하천 부지를 정리하게 하였으며, 습한 곳을 목장으로 지정하게 하고, 비옥한 땅을 논으로 만들게 하여, 수입의 다소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원칙을 만들고, 車[수레], 말[馬], `거병[車兵], 보졸[徒兵], 갑옷[甲], 방패[楯] 등의 부담을 할당시켜, 그러한 문서가 만들어지자, 영윤 자목에게 넘겨주니, 이는 예법에 맞는 일이었다.
十二月, 吳子諸樊伐楚, 以報舟師之役. 門于巢, 巢牛臣曰 : 「吳王勇而輕, 若啓之, 將親門. 我獲射之, 必殪. 是君也死, 疆其少安.」 從之. 吳子門焉, 牛臣隱於短牆以射之卒.
십이월, 오자제번벌초, 이보주사지역. 문우소, 소우신왈 : 「오왕용이경, 약계지, 장친문. 아획사지, 필에. 시군야사, 강기소안.」 종지. 오자문언, 우신은어단장이사지졸.
[解釋] 12월에, 吳나라 임금 諸樊은 초나라를 정벌하여, 전에 초나라에서 수군을 거느리고 공격해 왔던 싸움을 보복했다. 그리고서 巢지방의 성문으로 공격해 들어가, 巢지방을 다스리던 牛臣이 말하기를, 「吳나라 왕은 용기는 있으나 경망하므로, 만약 성문을 열어 보이면, 친히 앞장서서 쳐들어 올 것이다. 그때 내가 활을 쏘면, 반드시 죽일 것이다. 그래서 임금만 죽이면, 국경지대가 좀 조용해질 것이다.」고 하니, 소지방의 사람들은 그 의견을 따랐다. 그래서 오나라 왕이 성문으로 달려들어 오자, 牛臣은 낮은 담 아래 숨어 있다가 화살을 쏘니 그는 곧 죽었다.
楚子以滅舒鳩賞子木, 辭曰 : 「先大夫蔿子之功也.」 以與蔿掩. 晉程鄭卒. 子産始知然明, 問爲政焉, 對曰 : 「視民如子. 見不仁者, 誅之, 如鷹鸇之逐鳥雀也.」
초자이멸서구상자목, 사왈 : 「선대부위자지공야.」 이여위엄. 진정정졸. 자산시지연명, 문위정언, 대왈 : 「시민여자. 견불인자, 주지, 여응전지축조작야.」
[解釋] 楚나라 왕이 서구를 멸하고 자목에게 상을 주려고 하니,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그것은 죽은 대부 위자빙의 공로입니다.」고 말했으므로, 위자빙의 아들 위엄에게 하사했다. 晉나라 程鄭이 죽었다. 자산이 비로소 연명의 진면목을 알아, 정치에 관하여 물으니 연명이 대답하기를, 「백성을 자식과 같이 돌보아야 합니다. 또 어질지 못한 자를 보면, 곧 죽여 버려야 할 것이니, 마치 매가 새를 쫓듯이 하여야 될 것입니다.」고 했다.
子産喜, 以語子大叔, 且曰 : 「他日吾見蔑之面而已, 今吾見其心矣.」 子大叔問政於子産, 子産曰 : 「政如農功, 日夜思之, 思其始而成其終. 朝夕而行之, 行無越思, 如農之有畔, 其過鮮矣.」
자산희, 이어자태숙, 차왈 : 「타일오견멸지면이이, 금오견기심의.」 자태숙문정어자산, 자산왈 : 「정여농공, 일야사지, 사기시이성기종. 조석이행지, 행무월사, 여농지유반, 기과선의.」
[解釋] 子産은 기뻐하여, 子大叔에게 이 말을 하고, 또 덧붙여 말하기를, 「전에 나는 蔑의 얼굴만을 보았었는데, 지금 나는 그의 마음을 알았노라.」고 했다. 子大叔이 자산에게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니, 子産이 대답하기를, 「정치랄 농사일과 같아, 주야로 생각하며, 그 시초를 중하게 여기고 그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오.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면서, 다른 것을 생각함이 없어야, 농부들이 경계를 분명히 지키는 것과 같아, 잘못이 적은 것입니다.」고 했다.
衛獻公自夷儀使與寗喜言, 寗喜許之. 大叔文子聞之曰 : 「烏呼! ≪詩≫所謂, '我躬不說, 皇恤我後者?' 寗子可謂不恤其後矣, 將可乎哉? 殆必不可. 君子之行, 思其終也, 思其復也.
위헌공자이의사여녕희언, 영희허지. 태숙문자문지왈 : 「오호! ≪시≫소위, '아궁불설, 황휼아후자?' 영자가위불휼기후의, 장가호재? 태필불가. 군자지행, 사기종야, 사기복야.
[解釋] 衛나라 獻公이 夷儀로부터 사람을 보내어 寗喜와 상담하고자 하니, 寗喜가 이를 허락했다. 大叔文子가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아! ≪詩經≫에서 말하는 바, '내가 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으니, 내 후손을 돌볼 겨를이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이 영희 자신도 자기 후손을 생각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장차 안 될 것이다. 군자의 행위는, 반드시 그 끝마침을 생각해서, 반복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書曰, '愼始而敬終, 終以不困.' ≪詩≫曰, '夙夜匪懈, 以事一人.' 今寗子視君不如弈棋, 其何以免乎? 弈者擧棋不定, 不勝其耦. 而況置君而弗定乎? 必不免矣, 九世之卿族, 一擧而滅之, 可哀也哉!」
서왈, '신시이경종, 종이불곤.' ≪시≫왈, '숙야비해, 이사일인.' 금녕자시군불여혁기, 기하이면호? 혁자거기부정, 불승기우. 이황치군이불정호? 필불면의, 구세지경족, 일거이멸지, 가애야재!」
[解釋] 옛 책에 말하기를, '처음을 삼가고 끝을 공경해야, 마침내 곤란함이 없다.」고 하였고, ≪詩經≫에서도 말하기를, '아침저녁으로 게으름이 없이, 한 사람만을 섬겨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 영희가 임금을 대하는 것은 바둑을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죄를 면할 수가 있겠는가? 바둑을 두는 자가 바둑알을 들고서 어디에다 놓을 줄을 무르면, 상대방을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임금을 상대하는 데 방향이 없다면야 어떻게 죄를 면할 수가 있겠는가? 반드시 면하지 못하거나, 9대째 내려오는 경의 집안이, 한 번의 잘못으로 멸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애달프다.」고 했다.
會于夷儀之歲, 齊人城郟. 其五月, 秦晉爲成, 晉韓起如秦涖盟, 秦伯車如晉涖盟. 成而不結.
회우이의지세, 제인성겹. 기오월, 진진위성, 진한기여진리맹, 진백거여진리맹. 성이불결.
[解釋] 夷儀에서의 회합을 한 그 해에, 齊나라 사람은 주나라 천자를 위하여 교에 성을 쌓았다. 그해 5월에, 秦나라와 晉나라는 강화를 이루었는데, 晉나라의 韓起가 진나라로 가서 동맹에 참석하고, 秦나라의 伯車가 진나라에 가서 동맹에 참석했다. 그래서 강화는 성립되었으나 단결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