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公 12年(紀元前 597年)
十二年春, 楚子圍鄭, 旬有七日. 鄭人卜行成不吉. 卜臨于大宮, 且巷出車吉. 國人大臨, 守陴者皆哭. 楚子退師. 鄭人脩城, 進復圍之, 三月, 克之. 入自皇門, 至于逵路.
십이년춘, 초자위정, 순유칠일. 정인복행성불길. 복림우대궁, 차항출차길. 국인대림, 수비자개곡. 초자퇴사. 정인수성, 진부위지, 삼월, 극지. 입자황문, 지우규로.
[解釋] 노나라 선공 12년 봄에, 楚子는 정나라를 포위하여, 27일이 되었다. 정나라 사람들은 초나라와의 화평을 점쳤으나 불길이었다. 그래서 태궁에 모여서 나라의 멸망에 대하여 곡하고, 또 시가에 전차를 내놓고 일전을 벌이는 것을 점쳤더니 길이었다. 그리하여 정나라 사람들은 조상의 사당에 모여서 대대적으로 곡을 하고, 성벽 위를 지키는 자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곡을 하였다. 이것을 본 초자는 군대를 퇴각시켰다. 그러자 정나라 사람들이 성벽을 수축하였기 때문에, 초군은 진격하여 다시 정나라의 서울을 포위하여, 석 달 만에, 그들을 쳐서 이겼다. 그리하여 황문으로 들어가, 대로에까지 이르렀다.
鄭伯肉袒牽羊以逆曰 : 「孤不天, 不能事君, 使君懷怒, 以及敝邑, 孤之罪也. 敢不唯命是聽. 其俘諸江南, 以實海濱, 亦唯命. 其翦以賜諸侯, 使臣妾之, 亦唯命. 若惠顧前好, 徼福於厲,`宣桓武不泯其社稷, 使改事君, 夷於九縣, 君之惠也, 孤之願也. 非所敢望也, 敢布腹心. 君實圖之.」
정백육단견양이역왈 : 「고불천, 불능사군, 사군회노, 이급폐읍, 고지죄야. 감불유명시청. 기부제강남, 이실해빈, 역유명. 기전이사제후, 사신첩지, 역유명. 약혜고전호, 요복어려,`선환무불민기사직, 사개사군, 이어구현, 군지혜야, 고지원야. 비소감망야, 감포복심. 군실도지.」
[解釋] 이때 정백은 윗몸을 벌거벗고 염소를 끌고 그를 맞으며 말하기를, 「제가 실로 하늘에 버림을 받아, 당신을 섬길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노여움을 품고, 우리나라에까지 오시게 한 것은, 저의 죄입니다. 어찌 감시 듣지 않겠습니까? 다만 명령만 하십시오. 저희들을 사로잡아 귀국의 강남 지방에 데리고 가서, 바닷가에 살 게 하시는 것도, 또한 명령한 하십시오. 저희 땅을 분할하여 제후들에게 주시고, 그들을 신`첩으로서 섬기게 하시는 것도, 또한 오직 명령만 하십시오. 만약 옛날부터의 우호를 생각하시고, 우리 선조 厲王,`宣王, 桓公, 武公의 신령에게 복을 구하여 주시어 우리나라를 멸망시키지 않고, 새로이 당신을 섬기는 것을, 구현과 마찬가지로 하게 해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은혜요, 저의 소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히 바랄 바는 아니지만, 감히 본심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실로 잘 생각하십시오.」라고 하였다.
左右曰 : 「不可許也. 得國無赦.」 王曰 : 「其君能下人. 必能信用其民矣. 庸可幾乎?」 退三十里, 而許之平. 潘尪入盟, 子良出質.
좌우왈 : 「불가허야. 득국무사.」 왕왈 : 「기군능하인. 필능신용기민의. 용가기호?」 퇴삼십리, 이허지평. 반왕입맹, 자량출질.
[解釋] 장왕의 좌우의 신하들은 말하기를,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차지하고 그를 용서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으나, 장왕은 말하기를, 「정나라 임금은 능히 다른 사람이니 아래에 처할 줄을 안다. 반드시 진정으로 그 백성을 부릴 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30리를 물러나서, 정백에게 화평을 허락하였다. 그때 초나라 대부 潘尪이 정나라에 들어가 맹약하였고, 정백의 아우 자량은 출국하여 초나라에 인질이 되었다.
夏六月, 晉師救鄭. 荀林父將中軍, 先縠佐之, 士會將上軍, 郤克佐之, 趙朔將下軍, 欒書佐之, 趙括, 趙嬰齊, 爲中軍大夫, 鞏朔, 韓穿, 爲上軍大夫, 荀首, 趙同, 爲下軍大夫, 韓厥爲司馬. 及河, 聞鄭既及楚平, 桓子欲還曰 : 「無及於鄭, 而勦民, 焉用之? 楚歸而動, 不後.」
하륙월, 진사구정. 순림보장중군, 선곡좌지, 사회장상군, 극극좌지, 조삭장하군, 난서좌지, 조괄, 조영제, 위중군대부, 공삭, 한천, 위상군대부, 순수, 조동, 위하군대부, 한궐위사마. 급하, 문정기급초평, 환자욕환왈 : 「무급어정, 이초민, 언용지? 초귀이동, 불후.」
[解釋] 여름 6월에, 진군은 정나라를 구원하였다. 이때 荀林父가 중군의 대장, 先縠이 그 부장, 士會가 상군의 대장, 郤克이 그 부장, 趙朔이 하군의 대장, 欒書가 그 부장, 趙括과 趙嬰齊가 中軍의 大夫, 鞏朔과 韓穿은 上軍의 大夫, 荀首와 趙同은 下軍의 大夫, 韓厥은 司馬가 되었다. 황하까지 이르렀을 때, 정나라가 이미 초나라에 항복하여 화평하였다는 것을 듣고, 환자는 되돌아가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정나라를 미처 구하기도 전에, 우리 백성들을 피로하게 한다면,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초나라가 돌아간 후에 움직여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였다.
隨武子曰 : 「善會聞, '用師觀釁而動.' 德刑政事典禮不易, 不可敵也, 不爲是征. 楚軍討鄭, 怒其貳而哀其卑. 叛而伐之, 服而舍之, 德刑成矣. 伐叛刑也, 柔服德也. 二者立矣. 昔歲入陳, 今茲入鄭, 民不罷勞, 君無怨讟, 政有經矣. 荊尸而舉, 商農工賈, 不敗其業, 而卒乘輯睦, 事不奸矣.
수무자왈 : 「선회문, '용사관흔이동.' 덕형정사전례불역, 불가적야, 불위시정. 초군토정, 노기이이애기비. 반이벌지, 복이사지, 덕형성의. 벌반형야, 유복덕야. 이자립의. 석세입진, 금자입정, 민불파로, 군무원독, 정유경의. 형시이거, 상농공고, 불패기업, 이졸승집목, 사불간의.
[解釋] 隨武子도 말하기를, 「좋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전쟁은 적의 빈틈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德, 刑, 政, 事, 典, 禮의 여섯 가지가 올바로 행해지는 나라는, 대적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을 정벌하지 않는 것입니다. 초나라 임금이 정나라를 토벌한 것은, 정나라가 두 마음을 품고 있는 데에 노한 것이었으나, 정나라 임금의 겸손함에 가엾게 여겨서 용서했던 것입니다. 배반하면 토벌하고, 복종하면 용서하여, 덕과 형이 잘 행해지고 있습니다. 배반자를 토벌하는 것은 형벌이고, 복종하는 자를 용서하는 것은 인덕이니라. 이 두 가지가 확립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진나라에 쳐들어갔고, 올해에는 정나라에 쳐들어갔으나, 백성들은 피로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임금을 원망하는 자가 없는 것은, 정치가 잘되고 있는 것입니다. 초나라의 독특한 진법을 펴서 전쟁을 하여도, 商, 農, 工, 賈는 자기의 직업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보졸이나 수레를 타는 군사들도 화목한 것은, 자기의 일에 충실하여 남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薦敖爲宰, 擇楚國之令典, 軍行, 右轅, 左追蓐, 前茅慮無, 中權, 後勁, 百官象物而動, 軍政不戒而備, 能用典矣. 其君之舉也, 內姓選於親, 外姓選於舊, 舉不失德, 賞不失勞, 老有加惠, 旅有施舍.
천오위재, 택초국지령전, 군행, 우원, 좌추욕, 전모려무, 중권, 후경, 백관상물이동, 군정불계이비, 능용전의. 기군지거야, 내성선어친, 외성선어구, 거불실덕, 상불실로, 노유가혜, 여유시사.
[解釋] 薦敖가 재상이 되어, 초나라의 법전을 만들었는데, 진군할 때는, 우익은 장군의 수레 채가 향하는 것을 따라가고, 좌익은 풀을 거두어들여 숙위할 준비를 하며, 띠 풀을 깃발에 장식한 전군은 복병의 유무를 대비하고, 중군은 임기응변하여 전략을 세우고, 후군은 정예로서 후방을 맡고, 백관들은 각각 물체를 본떠서 만든 깃발을 따라 움직이어, 군정이 엄하게 경계시키지 않아도 잘 시행되고 있는 것은, 그 법전을 잘 운용하는 증거입니다. 초나라 임금이 사람을 등용할 때, 동성이면 더 가까운 친족을 뽑아 쓰고, 이성이면 연륜이 더 오래된 자를 임용하여, 인재의 등용에 유덕한 자를 빠뜨리지 않고, 상을 내릴 때는 공로가 있는 자를 잊지 않으며, 노인에게는 특혜를 주고, 다른 나라에서 온 자에게는 혜택을 주어 편안하게 해줍니다.
君子小人, 物有服章, 貴有常尊, 賤有等威, 禮不逆矣. 德立刑行, 政成事時, 典從禮順. 若之何敵之? 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 兼弱攻昧, 武之善經也. 子姑整軍而經武乎. 猶有弱而昧者, 何必楚.
군자소인, 물유복장, 귀유상존, 천유등위, 례불역의. 덕립형행, 정성사시, 전종례순. 약지하적지? 견가이진, 지난이퇴, 군지선정야, 겸약공매, 무지선경야. 자고정군이경무호. 유유약이매자, 하필초.
[解釋] 또 군자와 소인의 신분에 따라, 의복에 쓰는 장식품에는 구별이 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일정한 높은 자리가 있고, 낮은 지위에 있는 자는 각각 그 지위에 응하는 위의의 차별이 있는 것은, 예의가 문란하지 않은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초나라에서는 덕이 확립되고 형이 잘 시행되며, 정이 잘 이루어지고 사가 때에 맞으며, 전이 지켜지고 예가 문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들을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능함을 보면 나아가고, 어려운 줄을 알면 물러나는 것이, 용병의 정법이요, 약한 자를 쳐서 빼앗고 혼란에 빠진 자를 공격하는 것은, 전쟁의 양법입니다. 그대는 잠깐 군대를 정돈하여 무력의 충실을 꾀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약하고 혼란에 빠진 나라가 얼마든지 있는데, 구태여 초나라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仲虺有言曰, '取亂侮亡.' 兼弱也, 汋曰, '於鑠王師, 遵養時晦.' 耆昧也. 武曰, '無競惟烈.' 撫弱耆昧, 以務烈所, 可也.」
중훼유언왈, '취란모망.' 겸약야, 작왈, '어삭왕사, 준양시회.' 기매야. 무왈, '무경유렬.' 무약기매, 이무렬소, 가야.」
[解釋] 옛날의 명신 仲虺의 말에, '어지러운 나라를 쳐서 빼앗고 멸망하려는 나라를 업신여겨 침략한다.'고 한 것은, 약한 나라를 쳐서 빼앗는다는 뜻이고, 작의 시에 이르기를, '아, 훌륭한 무왕의 군대여, 하늘의 명령을 좇아 이 포악한 암군 주왕을 쳐서 빼앗는구나.'라고 한 것은, 혼란에 빠진 나라를 쳐서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또 무의 시에는 이르기를, '더없이 강하구나! 무왕의 업적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약한 자를 위무하고 어지러운 자를 쳐서, 훌륭한 업적을 세우기에 힘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彘子曰 : 「不可. 晉所以霸, 師武臣力也. 今失諸侯, 不可謂力, 有敵而不從, 不可謂武. 由我失霸, 不如死. 且成師以出, 聞敵彊而退, 非夫也. 命有軍師, 而卒以非夫, 唯群子能, 我弗爲也.」 以中軍佐濟.
체자왈 : 「불가. 진소이패, 사무신력야. 금실제후, 불가위력, 유적이부종, 불가위무. 유아실패, 불여사. 차성사이출, 문적강이퇴, 비부야. 명유군사, 이졸이비부, 유군자능, 아불위야.」 이중군좌제.
[解釋] 彘子는 말하기를, 「안됩니다. 진나라가 패자가 된 이유는, 군대는 무용하고 신하가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후 정나라를 버려둔다면, 노력한다고 할 수 없고, 적이 있는데 추격하지 않는 것은, 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패자가 될 기회를 버리는 것은, 죽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또 군대를 일으키어 출동하였으면서, 적이 강하다는 것만 듣고 물러난다면, 그것은 대장부가 아닐 것이오. 명령을 받아 군대의 장수가 되었는데, 대장부가 되지 못하고 마는 것은, 그대들만이 할 수 있는 것, 나는 그렇게 못하겠소.」라고 말하고, 마침내 중군의 부장으로서 군사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갔다.
知莊子曰 : 「此師殆哉, ≪周易≫有之, 在師之臨曰, '師出以律. 否臧凶.' 執事順成爲臧, 逆爲否. 眾散爲弱, 川壅爲澤. 有律以如己也, 故曰, '律否臧, 且律竭也.' 盈而以竭, 夭且不整, 所以凶也. 不行謂之臨, 有帥而不從, 臨孰甚焉? 此之謂矣. 果遇必敗, 彘子尸之. 雖免而歸, 必有大咎.」
지장자왈 : 「차사태재, ≪주역≫유지, 재사지림왈, '사출이률. 부장흉.' 집사순성위장, 역위부. 중산위약, 천옹위택. 유률이여기야, 고왈, '율부장, 차률갈야.' 영이이갈, 요차부정, 소이흉야. 불행위지림, 유수이부종, 임숙심언? 차지위의. 과우필패, 체자시지. 수면이귀, 필유대구.」
[解釋] 知莊子는 말하기를, 「이 군사들은 위태로울 것이오. ≪周易≫에도, 師卦가 臨卦로 변해 가는 것에 대하여, '군대가 출전할 때는 군율로 통제한다. 그 통제가 좋지 않으면 凶하다.'고 하였다. 일을 행할 때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순종하여 잘 처리하는 것을 좋다고 하고, 좋은 사람에 거역하는 것을 좋지 않다고 하였다. 중이 이산하는 것을 弱이라 하고, 내가 막혀 흐르지 않는 것을 澤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군율이 있어도 부장들이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율이 좋지 않으면, 장차 군율이 없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물이 가득 차도 말라 버리게 되고, 막혀서 또 잘 흐르지 않는 것은, 흉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정체하여 흘러가지 않는 것을 臨이라고 하는데, 장수가 있으면서도 따르지 않으니, 어느 것이 이보다 더한 臨이겠는가? ≪周易≫의 말은 결국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결국 초나라 군대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패배할 것이며, 체자는 이 재난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을 면하여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커다란 허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韓獻子謂桓子曰 : 「彘子以偏師陷, 子罪大矣. 子爲元帥, 師不用命, 誰之罪也? 失屬亡師, 爲罪已重, 不如進也. 事之不捷, 惡有所分. 與其專罪, 六人同之, 不猶愈乎?」 師遂濟.
한헌자위환자왈 : 「체자이편사함, 자죄대의. 자위원수, 사불용명, 수지죄야? 실속망사, 위죄이중, 불여진야. 사지불첩, 악유소분. 여기전죄, 육인동지, 불유유호?」 사수제.
[解釋] 韓獻子는 桓子에게 말하기를, 「彘子가 소수의 군사들을 데리고 사로잡혀 버린다면, 당신의 큰 책임입니다. 당신은 원수인데, 군사들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누구의 죄이겠습니까? 속국을 잃고 군사를 잃어버린다면, 그 죄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니, 진격함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잘못은 나눌 수가 있습니다. 당신 혼자서 죄를 뒤집어쓰는 것보다는, 여섯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으므로, 전군은 마침내 강을 건넜다.
楚子北師次於郔. 沈尹將中軍, 子重將左, 子反將右. 將飲馬於河而歸, 聞晉師既濟, 王欲還. 嬖人伍參欲戰. 令尹孫叔敖弗欲曰 : 「昔歲入陳, 今茲入鄭, 不無事矣. 戰而不捷, 參之肉, 其足食乎.」
초자북사차어연. 침윤장중군, 자중장좌, 자반장우. 장음마어하이귀, 문진사기제, 왕욕환. 폐인오참욕전. 령윤손숙오불욕왈 : 「석세입진, 금자입정, 불무사의. 전이불첩, 참지육, 기족식호.」
[解釋] 楚子는 군대를 북쪽으로 진군시켜 정나라의 북부인 연 땅에 숙영하였다. 이때 침윤은 중군의 장, 子重은 좌군의 장, 子反은 우군의 장이었다. 바야흐로 황하의 물을 말들에게 마시게 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진군이 이미 건너왔다는 사실을 듣고, 장왕은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嬖人 伍參은 싸우려고 하였다. 令尹 孫叔敖는 싸우려 하지 않고 말하기를, 「지난해에는 진날에 쳐들어갔고, 올해에는 정나라에 쳐들어가서, 쉴 사이도 없이 싸웠소. 진나라와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대의 고기는, 먹기에도 부족하게 될 것이오.」라고 하자,
參曰 : 「若事之捷, 孫叔爲無謀矣, 不捷, 參之肉, 將在晉軍, 可得食乎?」 令尹南轅反旆. 伍參言於王曰 : 「晉之從政者新, 未能行令. 其佐先縠, 剛愎不仁, 未肯用命, 其三帥者, 專行不獲, 聽而無上. 眾誰適從? 此行也, 晉師必敗. 且君而逃臣, 若社稷何?」 王病之, 告令尹, 改乘轅而北之, 次于管以待之. 晉師在敖鄗之間.
참왈 : 「약사지첩, 손숙위무모의, 불첩, 참지육, 장재진군, 가득식호?」 영윤남원반패. 오참언어왕왈 : 「진지종정자신, 미능행령. 기좌선곡, 강퍅불인, 미긍용명, 기삼수자, 전행불획, 청이무상. 중수적종? 차행야, 진사필패. 차군이도신, 약사직하?」 왕병지, 고령윤, 개승원이북지, 차우관이대지. 진사재오호지간.
[解釋] 參은 말하기를, 「만약 싸움에 이긴다면, 孫叔은 책략이 없다고 하게 될 것이지만, 이기지 못한다고 하면, 저의 고기는, 장차 진군 속에 있게 될 것이니, 가히 얻어먹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나 영윤은 수레 채를 남쪽으로 행하게 하고 전방에 있던 큰 깃발을 반대쪽으로 돌리게 하였다. 그래서 伍參은 장왕에게 말하기를, 「진나라의 정치를 맡은 사람들은 신참들이므로, 아직 명령을 잘 수행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부장인 선곡은, 완고하고 인덕이 없어서, 원수의 명령을 따르려고 하지 않으며, 그 세 장수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싫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부하들은 명령을 들으려고 하여도 윗사람들이 없습니다. 군사들이 누구를 따르겠습니까? 이 싸움에 진군은 반드시 패배할 것입니다. 또 임금으로서 진나라 신하들을 피하여 달아난다면, 사직은 어떻게 하시려고 합니까?」라고 했기 때문에, 장왕은 그것을 염려하고, 영윤에게 고하여, 다시 수레를 타고 북쪽으로 진군하게 하고, 정나라의 관 땅에 머물러 진군을 기다렸다. 이때 진나라 군대는 오산과 고산 사이에 있었다.
鄭皇戌使如晉師曰 : 「鄭之從楚, 社稷之故也, 未有貳心. 楚師驟勝而驕, 其師老矣, 而不設備. 子擊之, 鄭師爲承, 楚師必敗.」
정황술사여진사왈 : 「정지종초, 사직지고야, 미유이심. 초사취승이교, 기사로의, 이불설비. 자격지, 정사위승, 초사필패.」
[解釋] 정나라의 대부 皇戌은 사자로서 진나라의 군중으로 가서 말하기를, 「정나라가 초나라를 따르는 것을, 社稷 때문이며, 딴 마음은 없습니다. 초나라 군대는 여러 번 싸움에 이겼기 때문에 교만하고, 그 군사들은 지쳐서, 대비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치고, 우리 정나라 군사들이 뒤를 잇는다면, 초군은 반드시 패배할 것입니다.」고 하였다.
彘子曰 : 「敗楚服鄭, 於此在矣, 必許之.」 欒武子曰 : 「楚自克庸以來, 其君無日不討國人而訓之, 于民生之不易. 禍至之無日, 戒懼之不可以怠.」 在軍, 無日不討軍實而申儆之, '于勝之不可保. 紂之百克, 而卒無後.' 訓之, '以若敖蚡冒, 篳路藍縷, 以啟山林.' 箴之曰, '民生在勤. 勤則不匱.' 不可謂驕.
체자왈 : 「패초복정, 어차재의, 필허지.」 난무자왈 : 「초자극용이래, 기군무일불토국인이훈지, 우민생지불이. 화지지무일, 계구지불가이태.」 재군, 무일불토군실이신경지, '우승지불가보. 주지백극, 이졸무후.' 훈지, '이약오분모, 필로람루, 이계산림.' 잠지왈, '민생재근. 근즉불궤.' 불가위교.
[解釋] 彘子는 말하기를, 「초나라를 쳐부수고 정나라를 복종시키는 것은, 여기에 달려 있으니, 꼭 그 말을 받아들입시다.」고 하자, 欒武子는 말하기를, 「楚나라는 庸나라와 싸워서 이긴 이래, 그 임금은 매일같이 백성들을 다스리고 일깨우기를, '백성의 생활은 안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화가 언제 이를지 모르니, 잘 경계하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군중에 있을 때에는, 매일같이 군사들을 다스리어 거듭 경계하기를, '승리는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나라의 주왕은 백 번 싸워 이겼는데도, 결국 패하여 자곤이 끊겼던 것이다.'라고 하며, 그들에게 가르치기를, '조상인 약오와 분모가, 땔나무 수레를 타고 해어진 옷을 입은 채, 산림을 개척하였다.'고 하였고, 깨우치기를, '백성의 생활은 근면에 달려 있다. 근면하면 모자라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초나라가 교만하다고 할 수는 없소.
先大夫子犯有言曰, '師直爲壯, 曲爲老.' 我則不德, 而徼怨于楚, 我曲楚直, 不可謂老. 其君之戎, 分爲二廣, 廣有一卒, 卒偏之兩. 右廣初駕, 數及日中, 左則受之, 以至于昏, 內官序當其夜, 以待不虞, 不可謂'無備.'
선대부자범유언왈, '사직위장, 곡위로.' 아즉부덕, 이요원우초, 아곡초직, 불가위로. 기군지융, 분위이광, 광유일졸, 졸편지량. 우광초가, 수급일중, 좌즉수지, 이지우혼, 내관서당기야, 이대불우, 불가위'무비.'
[解釋] 우리의 先大夫 子犯의 말에도, '군대는 정도를 지키는 것을 壯이라고 하며, 올바르지 않은 것을 老라고 한다.'고 하였소. 우리에게 덕이 없으면서, 초나라에게 원한을 산다면, 그것은 우리가 올바르지 않고 초나라가 올바른 것이 되니, 지쳐 있다고 할 수는 없소. 또 그 임금의 군사들은, 두 광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좌우의 광에는 각각 100명의 군사들이 있으며, 또 그 100명의 군사에는 50명의 편과 25명의 양이 있소. 우광의 부대가 먼저 수레를 타고 경계하는데, 시간을 재서 정오가 되면, 좌광이 그것을 인수하여, 저녁까지 경계하고, 그 후에는 내관들이 순서에 따라 야간 경계를 하여 맡으니, 사태에 대비하고 있으니, 초나라가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오.
子良, 鄭之良也, 師叔, 楚之崇也, 師叔入盟, 子良在楚, 楚鄭親矣, 來勸我戰, 我克則來, 不克遂往. 以我卜也, 鄭不可從, 趙括趙同曰, '率師以來, 唯敵是求. 克敵得屬, 又何俟? 必從彘子.' 知季曰, '原屏, 咎之徒也.' 趙莊子曰, '欒伯, 善哉! 實其言, 必長晉國.'
자량, 정지량야, 사숙, 초지숭야, 사숙입맹, 자량재초, 초정친의, 내권아전, 아극즉래, 불극수왕. 이아복야, 정불가종, 조괄조동왈, '솔사이래, 유적시구. 극적득속, 우하사? 필종체자.' 지계왈, '원병, 구지도야.' 조장자왈, '난백, 선재! 실기언, 필장진국.'
[解釋] 子良은, 정나라의 양신이고, 師叔은, 초나라 사람들이 숭배하는 인물인데, 그 사숙이 정나라에 들어가서 맹약을 하였고, 子良은 인질로 초나라에 있는 것은, 초나라와 정나라가 친밀한 증거인데, 정나라의 사자가 와서 우리에게 싸움을 권하고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이기면 우리에게 오고, 이기지 못하면 결국 초나라로 가 버릴 것이오, 우리의 승패를 가지고 그들의 거취를 점치려는 것이니, 정나라 사자의 말을 따라서는 아니 되오.'라고 하였으나, 趙括과 趙同은 말하기를, '군대를 거느리고 온 것은, 오직 적을 치려고 하는 것이오. 적과 싸워서 이기고 속국을 얻는다면, 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꼭 체자의 의견에 따라야 하오.'라고 하였다. 知季曰는 이를 비평하여 말하기를, '原과 屏은, 일을 그르쳐 되를 받을 자들이다.'라고 하였고, 趙莊子는 말하기를, '欒伯은, 훌륭하구나. 그의 말대로 실천한다면, 반드시 진나라의 정치를 맡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楚少宰如晉師曰 : 「寡君少遭閔凶, 不能文, 聞'二先君之出入此行也, 將鄭是訓定.' 豈敢求罪于晉? 二三子無淹久.」 隨季對曰 : 「昔平王命我先君文侯曰, '與鄭夾輔周室, 毋廢王命. 今鄭不率, 寡君使群臣問諸鄭. 豈敢辱候人? 敢拜君命之辱.' 彘子以爲諂, 使趙括從而更之曰, '行人失辭.' 寡君使群臣遷大國之跡於鄭曰, '無辟敵.' 群臣無所逃命.」
초소재여진사왈 : 「과군소조민흉, 불능문, 문'이선군지출입차행야, 장정시훈정.' 기감구죄우진? 이삼자무엄구.」 수계대왈 : 「석평왕명아선군문후왈, '여정협보주실, 무폐왕명. 금정불솔, 과군사군신문저정. 기감욕후인? 감배군명지욕.' 체자이위첨, 사조괄종이경지왈, '행인실사.' 과군사군신천대국지적어정왈, '무피적.' 군신무소도명.」
[解釋] 楚나라 少宰가 진나라 군중으로 가서 말하기를, 「저희 임금은 어려서 불행을 만나서, 문덕을 닦을 수가 없으나, 듣건대 '돌아가신 성왕과 목왕이 정나라와의 사움에 출입하긴 것은, 장차 정나라를 가르쳐서 진정시키려는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귀국에 대하여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들은 오래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고 하자, 隨季는 말하기를, 「옛날 주나라 평왕께서 우리의 선군 문후에 명하기를, '정나라와 함께 주실을 보좌하여, 왕명을 저 버리지 말라고 하셨소. 그런데 이제 정나라가 왕명을 따르지 않으므로, 저희 임금은 저희들을 정나라에 보내어 그 까닭을 묻게 하신 것입니다. 어찌 감히 사자를 욕되게 하겠습니까? 감히 임금의 명령을 받드는 바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을 들은 체자는 아첨한다고 생각하고, 趙括에게 명하여 사자를 쫓아가서 고쳐 말하게 하기를, '그 사람이 말을 잘못하였소. 저희 임금께서는 저희들을 보내어 대국의 발자취를 정나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하도록 하시고, '적을 피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오. 저희들은 이 명령을 어길 수가 없소.」라고 하였다.
楚子又使求成于晉, 晉人許之, 盟有日矣. 楚許伯御樂伯, 攝叔爲右, 以致晉師. 許伯曰 : 「吾聞'致師者, 御靡旌, 摩壘而還.'」 樂伯曰 : 「吾聞'致師者, 左射以菆, 代御執轡, 御下兩馬, 掉鞅而還.'」 攝叔曰 : 「吾聞'致師者, 右入壘, 折馘, 執俘而還.'」 皆行其所聞而復.
초자우사구성우진, 진인허지, 맹유일의. 초허백어악백, 섭숙위우, 이치진사. 허백왈 : 「오문'치사자, 어미정, 마루이환.'」 악백왈 : 「오문'치사자, 좌사이추, 대어집비, 어하량마, 도앙이환.'」 섭숙왈 : 「오문'치사자, 우입루, 절괵, 집부이환.'」 개행기소문이복.
[解釋] 楚子는 또 사자를 보내어 진날에 화평을 요구하게 하였으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맹약의 날도 결정되었다. 그러나 초나라의 許伯은, 樂伯의 수레를 몰고 攝叔은 그 오른편을 맡아, 진군에 도전하였다. 이때 許伯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도전하는 자의, 어자는 깃발을 바람에 쏠리듯이 나부끼면서, 적의 진지를 스쳐 지난 후 돌아온다.'라고 하였소.」라고 하고, 樂伯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도전하는 자는 왼쪽을 맡은 자는, 좋은 화살로 쏘고, 어자는 대신하여 고삐를 잡으며, 어자는 수레에서 내려서 말의 장식물을 고치고, 안장을 바르게 한 후 돌아온다.'고 하였소.」라고 하였으며, 攝叔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도전하는 자는, 오른쪽을 맡은 자는 적진에 쳐들어가, 적병을 죽이고 그 귀를 잘라가지고 오거나, 적병을 사로잡아 가지고 돌아온다.'고 하였소.」라고 하였다. 그들은 모두 자기가 들은 대로 실행하고 돌아왔다.
晉人逐之, 左右角之. 樂伯左射馬而右射人, 角不能進, 矢一而已. 麋興於前. 射麋麗龜晉鮑癸當其後, 使攝叔奉麋獻焉曰 : 「以歲之非時, 獻禽之未至, 敢膳諸從者.」 鮑癸止之曰 : 「其左善射, 其右有辭. 君子也.」 既免.
진인축지, 좌우각지. 악백좌사마이우사인, 각불능진, 시일이이. 미흥어전. 사미려구진포계당기후, 사섭숙봉미헌언왈 : 「이세지비시, 헌금지미지, 감선저종자.」 포계지지왈 : 「기좌선사, 기우유사. 군자야.」 기면.
[解釋] 진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추격하여, 좌우에서 포위하여 공격하였다. 樂伯은 왼쪽으로 말을 쏘고 오른쪽으로는 사람을 쏘았으므로, 좌우 모두 나아갈 수가 없었으나, 화살은 한 대뿐이었다. 그때 사슴이 갑자기 앞에 나타났다. 그래서 사슴을 쏘아 등골을 꿰뚫었다 그때 진나라의 포계는 악백의 뒤를 쫓아왔는데, 악백은 攝叔에게 명하여 사슴을 받들어 그에게 바치게 하며 말하기를, 「사냥할 때가 아니어서, 바칠 것도 없기 때문에, 감히 이것을 종자들의 먹을 것으로 바칩니다.」고 하였다. 鮑癸는 추격을 그만두고 말하기를, 「왼쪽은 활쏘기를 잘하고, 오른쪽은 말을 잘하는구나. 군자들이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해서 면하게 되었다.
晉魏錡求, 公族未得, 而怒, 欲敗晉師, 請致師, 弗許. 請使許之遂往請戰而還. 楚潘黨逐之. 及熒澤, 見六麋, 射一麋以顧獻曰 : 「子有軍事, 獸人無乃不給於鮮. 敢獻於從者.」 叔黨命去之.
진위기구, 공족미득, 이노, 욕패진사, 청치사, 불허. 청사허지수왕청전이환. 초반당축지. 급형택, 견륙미, 사일미이고헌왈 : 「자유군사, 수인무내불급어선. 감헌어종자.」 숙당명거지.
[解釋] 晉나라의 魏錡는 공족이 되고 싶어 하였으나, 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나서, 진군을 깨뜨리고, 적에게 싸움을 걸 것을 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화평의 사자로 가게 되어 싸움을 청하고 돌아왔다. 楚나라의 潘黨은 그를 추격하였다. 熒澤에 이르렀을 때, 사슴 여섯 마리가 보였기 때문에, 사슴 한 마리를 쏘아 잡아서 돌아보면서 潘黨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그대는 전쟁에 참가하여, 요리사에게 신선한 고기가 넉넉지 않을 것이다. 감히 從者에게 바치는 바이다.」고 하였다. 그래서 叔黨은 추격을 그만두도록 명령하였다.
趙旃求卿未得, 且怒於失楚之致師者, 請挑戰, 弗許. 請召盟, 許之. 與魏錡皆命而往. 郤獻子曰 : 「二憾往矣, 弗備必敗.」 彘子曰 : 「鄭人勸戰, 弗敢從也, 楚人求成, 弗能好也. 師無成命, 多備何爲?」
조전구경미득, 차노어실초지치사자, 청도전, 불허. 청소맹, 허지. 여위기개명이왕. 극헌자왈 : 「이감왕의, 불비필패.」 체자왈 : 「정인권전, 불감종야, 초인구성, 불능호야. 사무성명, 다비하위?」
[解釋] 한편 趙旃은 경이 되고 싶어 하였으나 될 수가 없었고, 또 초나라에서 온 도전자를 잡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초나라에 挑戰하겠다고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초나라의 사자를 불러들여 맹약하겠다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는 魏錡와 함께 모두 명령을 받고 초나라로 갔다. 郤獻子는 말하기를, 「두 사람의 불만을 품은 자가 갔으니, 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이다.」고 하자, 彘子는 말하기를, 「鄭나라 사람들이 싸우기를 권해도, 감히 따르지 못하였고, 초나라 사람들이 화평을 요청해도, 우호를 맺을 수가 없었다. 우리 군대에는 결정적인 명령이 없으니, 아무리 대비한들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士季曰 : 「備之善. 若二子怒楚, 楚人乘我, 喪師無日矣. 不如備之. 楚之無惡, 除備而盟, 何損於好? 若以惡來, 有備不敗. 且雖諸侯相見, 軍衛不徹, 警也.」 彘子不可.
사계왈 : 「비지선. 약이자노초, 초인승아, 상사무일의. 불여비지. 초지무악, 제비이맹, 하손어호? 약이악래, 유비불패. 차수제후상견, 군위불철, 경야.」 체자불가.
[解釋] 士季는 말하기를, 「초나라의 진격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만약 두 사람이 초나라를 격분시켜, 초나라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쳐들어온다면, 우리 군사들은 쉽게 패할 것이다. 대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초나라에 나쁜 마음이 없다면, 대비를 하지 않고 맹약하는 것도, 어찌 우호에 장애가 되겠는가? 만약 나쁜 마음을 가지고 쳐들어온다면, 대비가 있으면 패하지 않을 것이다. 또 비록 제후들이 서로 만난다고 하더라도, 호위하는 군사를 거두지 않는 것은,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고 하였지만, 彘子는 듣지 않았다.
士季使鞏朔韓穿, 帥七覆于敖前, 故上軍不敗. 趙嬰齊使其徒先具舟于河, 故敗而先濟. 潘黨既逐魏錡, 趙旃夜至於楚軍, 席於軍門之外, 使其徒入之. 楚子爲乘廣三十乘, 分爲左右. 右廣, 雞鳴而駕, 日中而說. 左則受之, 日入而說. 許偃御右廣, 養由基爲右, 彭名御左廣, 屈蕩爲右.
사계사공삭한천, 수칠복우오전, 고상군불패. 조영제사기도선구주우하, 고패이선제. 반당기축위기, 조전야지어초군, 석어군문지외, 사기도입지. 초자위승광삼십승, 분위좌우. 우광, 계명이가, 일중이설. 좌칙수지, 일입이설. 허언어우광, 양유기위우, 팽명어좌광, 굴탕위우.
[解釋] 상군의 대장인 士季는 鞏朔과 韓穿에게 명하여, 오산의 앞에 일곱 군에의 복병을 두게 했기 때문에, 상군은 패배하지 않게 되었다. 중군 대부 趙嬰齊는 그 부하에게 명하여 미리 황하의 언덕에 준비시켰기 때문에, 敗하게 되었을 때 맨 먼저 황하를 건너 달아날 수가 있었다. 潘黨은 이미 위기를 쫓아 버렸는데, 趙旃은 밤중에 초나라의 진지에 가서, 군문밖에 자리를 펴고 앉은 채, 부하들에게 명하여 쳐들어가게 하였다. 楚子는 전차 30대를 만들어, 그것을 좌`우로 나누었다. 右廣은 닭이 울어 날이 새면 전차에 말을 매어 경계하고, 정오가 되면 말을 풀고 교체하였다. 左廣이 그것을 인수하여, 해가 지면 멍에를 풀었다. 허언은 우광의 어자가 되었고, 양유기는 그 오른쪽을 맡았으며, 팽명이 좌광의 어자가 되었고, 굴탕은 그 오른쪽을 맡았다.
乙卯, 王乘左廣, 以逐趙旃. 趙旃棄車而走林, 屈蕩搏之, 得其甲裳. 晉人懼二子之怒楚師也, 使軘車逆之. 潘黨望其塵, 使騁而告曰 : 「晉師至矣.」 楚人亦懼王之入晉軍也, 遂出陳.
을묘, 왕승좌광, 이축조전. 조전기차이주림, 굴탕박지, 득기갑상. 진인구이자지노초사야, 사돈차역지. 반당망기진, 사빙이고왈 : 「진사지의.」 초인역구왕지입진군야, 수출진.
[解釋] 乙卯日에, 장왕은 左廣을 타고, 趙旃을 추격하였다. 趙旃은 전차를 버리고 숲속으로 달아났지만, 屈蕩은 그를 따라잡아, 갑옷의 아랫부분을 얻었다. 晉나라 사람들은 두 사람이 초군을 격분시킬까 두려워하여, 주둔용의 전차를 보내어 그들을 맞으려 왔다. 潘黨은 그 먼지를 바라다보고, 말을 달려 초군에게 말하기를, 「진군이 온다.」고 알리게 하였다. 초나라 사람들도 역시 장왕이 진나라 진중으로 돌입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출진하였다.
孫叔曰 : 「進之. 寧我薄人, 無人薄我. ≪詩≫云, '元戎十乘, 以先啟行.' 先人也, 軍志曰, '先人有奪人之心.' 薄之也.」 遂疾進師, 車馳卒奔, 乘晉軍. 桓子不知所爲, 鼓於軍中曰 : 「先濟者有賞.」 中軍下軍爭舟.
손숙왈 : 「진지. 녕아박인, 무인박아. ≪시≫운, '원융십승, 이선계행.' 선인야, 군지왈, '선인유탈인지심.' 박지야.」 수질진사, 차치졸분, 승진군. 환자부지소위, 고어군중왈 : 「선제자유상.」 중군하군쟁주.
[解釋] 孫叔曰은 말하기를, 「진격하라. '차라리 아군이 적을 핍박할지언정, 적이 아군을 핍박하게 하지는 말라. ≪詩經≫에 이르기를, '앞장선 열 대의 전차는, 먼저 진군의 길을 여는구나.'라고 한 것은, 남보다 선수를 치는 것을 말하고, 병서[軍志]에 '남보다 선수를 치면 그들의 전의를 빼앗는다.'고 한 것은, 적에게 육박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재빨리 진군시켜, 전차는 달리고 군사들은 뛰어, 晉軍에 쳐들어갔다. 桓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군중에서 북을 두드리면서 말하기를, 「먼저 건너는 자에게 상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으므로, 中軍과 下軍의 군사들은 배에 먼저 오르려고 서로 다투었다,
舟中之指可掬也. 晉師右移, 上軍未動. 工尹齊, 將右拒卒, 以逐下軍. 楚子使唐狡與蔡鳩居, 告唐惠侯曰 : 「不穀不德而貪, 以遇大敵, 不穀之罪也. 然楚不克, 君之羞也.」
주중지지가국야. 진사우이, 상군미동. 공윤제, 장우거졸, 이축하군. 초자사당교여채구거, 고당혜후왈 : 「불곡부덕이탐, 이우대적, 불곡지죄야. 연초불극, 군지수야.」
[解釋] 배 안에 떨어진 손가락이 두 손으로 움켜쥘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진군은 오른쪽으로 이동하였지만, 상군만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초나라의 工尹齊는 우익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下軍을 추격하였다. 楚子는 唐狡와 蔡鳩居 두 대부에게 명하여, 唐나라의 惠侯에게 말하기를, 「나는 덕이 없으면서도 탐욕하여, 커다란 적을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나의 죄이다. 그러나 초나라가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당신에게도 수치가 될 것이오.」라고 고하게 하였다.
敢藉君靈, 以濟楚師, 使潘黨率游闕四十乘, 從唐侯以爲左拒, 以從上軍. 駒伯曰 : 「待諸乎?」 隨季曰 : 「楚師方壯. 若萃於我, 吾師必盡. 不如收而去之. 分謗生民, 不亦可乎?」 殿其卒而退, 不敗.
감자군령, 이제초사, 사반당솔유궐사십승, 종당후이위좌거, 이종상군. 구백왈 : 「대저호?」 수계왈 : 「초사방장. 약췌어아, 오사필진. 불여수이거지. 분방생민, 불역가호?」 전기졸이퇴, 불패.
[解釋] 감히 그대의 힘을 빌려, 군을 구제하려고 하오. 潘黨에게 명하여 유격 40승을 이끌고, 당후를 따라 좌익이 되게 하여, 진나라의 상군을 뒤쫓게 하였다. 구백은 말하기를, 「그들을 기다릴까요?」라고 하자, 대장 수계는 말하기를, 「초군은 바야흐로 기세가 왕성하다. 만약 우리에게 모여들어 공격한다면, 우리 군사들은 반드시 전멸될 것이다. 군사들을 거두어 물러가는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타군과 같이 패배의 비난을 나누고 군사들을 살리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라고 하고, 스스로 군사들의 맨 뒤쪽을 맡아서 퇴각하였으나, 패하지는 않았다.
王見右廣, 將從之乘, 屈蕩尸之曰 : 「君以此始, 亦必以終.」 自是楚之乘, 廣先左. 晉人或以廣隊, 不能進. 楚人惎之脫扃. 少進, 馬還. 又惎之拔旆投衡, 乃出. 顧曰 : 「吾不如大國之數奔也.」
왕견우광, 장종지승, 굴탕시지왈 : 「군이차시, 역필이종.」 자시초지승, 광선좌. 진인혹이광대, 불능진. 초인기지탈경. 소진, 마환. 우기지발패투형, 내출. 고왈 : 「오불여대국지수분야.」
[解釋] 장왕은 오광의 전차를 보고, 그것을 갈아타려고 하였으나, 屈蕩은 그를 만류하며 말하기를, 「임금께서 이 전차로 싸움을 시작하셨으니, 또한 반드시 최후까지 타셔야 합니다.」고 하였다. 그 후 초나라의 전차는, 왼쪽을 상위로서 앞세우게 되었다. 진나라 사람들의 어떤 전차가 구덩이에 떨어져, 진나라 사람들이 병거가 나아가지 못하자, 초나라 사람들이 경을 떼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수레는 약간 나아갔지만, 깃대가 막히어 말이 쩔쩔매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또 깃대를 뽑아 멍에에 걸도록 그들에게 가르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 그러자 진나라 사람들은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리들은 자주 패하여 달아난 경험이 있는 귀국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趙旃以其良馬二, 濟其兄與叔父, 以他馬反, 遇敵不能去, 棄車而走林. 逢大夫與其二子乘, 謂其二子無顧, 顧曰 : 「趙傁在後.」 怒之, 使下, 指木曰 : 「尸女於是.」 授趙旃綏以免.
조전이기량마이, 제기형여숙부, 이타마반, 우적불능거, 기차이주림. 봉대부여기이자승, 위기이자무고, 고왈 : 「조수재후.」 노지, 사하, 지목왈 : 「시녀어시.」 수조전수이면.
[解釋] 趙旃은 자기의 수레를 끌던 두 마리의 양마를, 형과 숙부에게 주어, 달아나게 하고 다른 말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적을 만나 달아날 수가 없었으므로, 수레를 버리고 숲속으로 달아났다. 그때 진나의 逢大夫는 그의 두 아들과 수레를 타고 있었는데, 그 두 아들에게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지만, 돌아보고 말하기를, 「조 어른이 뒤에 있다.」고 했기 때문에, 그는 노하여,
수레에서 내리게 하고, 곁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여기에서 너희들의 시체를 찾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전에게 끈을 내주어 수레에 태워 무사히 피하게 하였다.
明日以表尸之. 皆重獲在木下. 楚熊負羈囚知罃. 知莊子以其族反之. 廚武子御, 下軍之士多從之. 每射, 抽矢菆, 納諸廚子之房. 廚子怒曰 : 「非子之求, 而蒲之愛, 董澤之蒲, 可勝既乎?」
명일이표시지. 개중획재목하. 초웅부기수지앵. 지장자이기족반지. 주무자어, 하군지사다종지. 매사, 추시추, 납저주자지방. 주자노왈 : 「비자지구, 이포지애, 동택지포, 가승기호?」
[解釋] 이튿날 표시한 나무로 아들의 시체를 찾으러 갔다. 두 사람 모두 나무 아래에 겹친 채 죽어 있었다. 초나라 대부 웅부기는 진나라의 知罃을 사로잡았다. 知莊子는 일족을 거느리고 데리러 돌아갔다. 그때 주무자는 그의 어자였기 때문에, 下軍의 군사들은 이에 많이 따라붙었다. 知莊子는 화살을 쓸 때마다, 좋은 화살을 뽑아서, 廚子의 화살 통에 집어넣었다. 廚子는 화를 내고 말하기를, 「지식은 찾지 않고, 화살만을 아까워하다니, 돌아가면 董澤의 화살을, 다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다.
知季曰 : 「不以人子, 吾子其可得乎? 吾不可以苟射故也.」 射連尹襄老獲之, 遂載其尸, 射公子穀臣, 囚之, 以二者還. 及昏, 楚師軍於邲. 晉之餘師不能軍, 宵濟. 亦終夜有聲.
지계왈 : 「불이인자, 오자기가득호? 오불가이구사고야.」 사련윤양로획지, 수재기시, 사공자곡신, 수지, 이이자환. 급혼, 초사군어필. 진지여사불능군, 소제. 역종야유성.
[解釋] 知季는 말하기를, 「남의 자식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 자식을 그와 교환하여 찾을 수 있겠는가? 그때가지는 쓸데없이 좋은 화살을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고 하고, 초나라의 連尹襄老를 쏘아죽이고, 마침내 그 시체를 수레에 싣고, 초나라의 公子 穀臣을 쏘아, 그를 사로잡아, 이 두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저녁이 되자, 초군은 필 땅에 진을 쳤다. 진나라의 패잔병들은 진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밤에 강을 건넜다. 이때도 역시 밤새도록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丙辰, 楚重至於邲, 遂次于衡雍. 潘黨曰 : 「君盍築武軍, 而收晉尸以爲京觀? 臣聞'克敵, 必示子孫, 以無忘武功.'」 楚子曰 : 「非爾所知也. 夫文, 止'戈爲武. 武王克商, 作頌曰, '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之.' 又作武, 其卒章曰, '耆定爾功.' 其三曰, '鋪時繹思, 我徂維求定.' 其六曰, '綏萬邦, 屢豐年.'
병진, 초중지어필, 수차우형옹. 반당왈 : 「군합축무군, 이수진시이위경관? 신문'극적, 필시자손, 이무망무공.'」 초자왈 : 「비이소지야. 부문, 지'과위무. 무왕극상, 작송왈, '재집간과, 재고궁시, 아구의덕, 사우시하, 윤왕보지.' 우작무, 기졸장왈, '기정이공.' 기삼왈, '포시역사, 아조유구정.' 기륙왈, '수만방, 루풍년.'
[解釋] 丙辰日에, 초나라의 치중이 필 땅에 도착했으므로, 마침내 나아가 정나라의 형옹 땅에 머물렀다. 潘黨이 말하기를, 「임금께서는 왜 군영을 쌓고, 진나라 사람들의 시체를 거두어 커다란 관람대를 만들지 않습니까? 제가 듣건대, '적과 싸워서 이기면, 반드시 자손에게 보여, 조상의 무공을 잊지 않도록 한다.'고 합니다.」고 하자, 楚子는 말하기를, 「네가 알 바가 아니다. 대개 글자대로 풀이한다면, '창을 멈추는 것을 武라고 한다. 그래서 무왕이 商나라를 이기고, 전공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방패와 창을 거두어들이며, 활과 화살을 자루에 넣어두었고, 아름다운 덕을 구하여, 이 중국 땅에 펴니, 진실로 임금님은 나라를 보전할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武篇을 지으셨으니, 그 마지막 장에는 이르기를, '이러한 공을 세우게 되었도다.'라고 하였으며, 세 번째 시에는 이르기를, '이것은 덕을 펴고 잘 생각하여, 내가 상나라에 간 것은 오직 백성들의 안정을 구한 것이어라.'라고 하였다. 그 여섯 번째 시에는, 온 나라를 편안히 하니, 풍년이 거듭되었도다.'고 하였다.
夫武, 禁暴, 戢兵, 保大, 定功, 安民, 和眾, 豐財者也. 故使子孫無忘其章. 今我使二國暴骨, 暴矣, 觀兵以威諸侯, 兵不戢矣. 暴而不戢, 安能保大? 猶有晉在, 焉得定功? 所違民欲猶多, 民何安焉? 無德而強爭諸侯, 何以和眾? 利人之幾, 而安人之亂, 以爲己榮, 何以豐財? 武有七德, 我無一焉, 何以示子孫? 其爲先君宮, 告成事而已. 武非吾功也.
부무, 금폭, 집병, 보대, 정공, 안민, 화중, 풍재자야. 고사자손무망기장. 금아사이국폭골, 폭의, 관병이위제후, 병부집의. 폭이부집, 안능보대? 유유진재, 언득정공? 소위민욕유다, 민하안언? 무덕이강쟁제후, 하이화중? 이인지기, 이안인지란, 이위기영, 하이풍재? 무유칠덕, 아무일언, 하이시자손? 기위선군궁, 고성사이이. 무비오공야.
[解釋] 대개 武라고 하는 것은, 난폭한 자를 다스리고, 무기를 거두어들여 싸움을 그치게 하고, 큰 나라를 지키며, 공적을 세우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며, 만민을 화합하고, 물자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손으로 하여금 그 밝은 공적을 잊지 말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진`초 두 나라 사람들을 싸우게 하여, 그들의 뼈가 들판에 드러나게 한 것은 난폭한 것이며, 군대를 내어 제후에게 시위한 것은, 무기를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이다. 난폭하고 무기를 거두어들이지 못하였으니, 이렇게 큰 나라를 보유하겠는가? 아직도 진나라가 남아 있으니, 어떻게 공적을 세울 수 있겠는가? 백성들이 바라는 것에 거역하는 것이 아직도 많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편안하겠는가? 덕이 없으면서 무리하게 제후들과 다투고 있으니, 어떻게 만민을 화합할 수 있겠는가? 다른 나라의 위기를 이롭게 생각하고, 다른 나라의 혼란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여 안심하고, 자기의 번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어떻게 물자를 풍부하게 할 것인가? 이와 같이 무에는 일곱 가지의 덕이 있는데, 나에게는 한 가지도 없으니, 어떻게 자손에게 보일 수 있겠는가? 선군의 사당을 지어 전승을 고할 수 있을 뿐이다. 무에 있어서는 나에게 아무런 공적도 없다.
古者明王, 伐不敬, 取其鯨鯢而封之, 以爲大戮, 於是乎有京觀, 以懲淫慝. 今罪無所, 而民皆盡忠, 以死君命, 又何以爲京觀乎?」 祀于河作先君宮, 告成事而還. 是役也, 鄭石制, 實入楚師, 將以分鄭, 而立公子魚臣.
고자명왕, 벌불경, 취기경예이봉지, 이위대륙, 어시호유경관, 이징음특. 금죄무소, 이민개진충, 이사군명, 우하이위경관호?」 사우하작선군궁, 고성사이환. 시역야, 정석제, 실입초사, 장이분정, 이립공자어신.
[解釋] 옛날 어진 임금이, 불경한 자를 토벌하여, 그 우두머리를 죽여서 땅에 묻고, 흙을 쌓아올려 대 살육임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경관이라는 커다란 관람대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불의하고 부정한 무리들을 징계하였던 것이다. 이제 진나라는 이렇다 할 죄가 없는데도, 그 백성들은 모두 충성을 다하여, 임금의 명령에 목숨을 바쳤으니, 또 어떻게 경관을 만들어 자랑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선군의 사당을 지어, 전승을 고하고 노나라로 돌아갔다. 이 싸움에서, 鄭나라의 石制가 사실상 초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던 것이며, 장차 정나라를 나누어 반은 초나라에 주고, 나머지 반으로 公子魚臣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辛未, 鄭殺僕叔及子服. 君子曰 : 「史佚所謂'毋怙亂者.' 謂是類也. ≪詩≫曰, '亂離瘼矣, 爰其適歸?' 歸於怙亂者也夫.」
신미, 정살복숙급자복. 군자왈 : 「사일소위'무호란자.' 위시류야. ≪시≫왈, '난리막의, 원기적귀?' 귀어호란자야부.」
[解釋] 그리하여 辛未日에, 정나라에서는 僕叔과 자숙을 죽였다. 이에 대하여 군자는 말하기를, 「주나라의 사일이 '남의 혼란에 의지하여 이익을 꾀하지 말라.'고 한 것은, 이러한 사람을 두고 한 것이다. ≪詩經≫에도 이르기를, '난리에 병들었으니,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라고 하였지만, 재난은 결국 남의 혼란에 의지해서 이익을 꾀하려는 자에게 돌아가는 법이다.」고 비평하였다.
鄭伯, 許男, 如楚. 秋晉師歸. 桓子請死, 晉侯欲許之. 士貞子諫曰 : 「不可. 城濮之役, 晉師三日穀, 文公猶有憂色. 左右曰, '有喜而憂, 如有憂而喜乎?'」 公曰 : 「得臣猶在, 憂未歇也. 困獸猶鬥, 況國相乎?」
정백, 허남, 여초. 추진사귀. 환자청사, 진후욕허지. 사정자간왈 : 「불가. 성복지역, 진사삼일곡, 문공유유우색. 좌우왈, '유희이우, 여유우이희호?'」 공왈 : 「득신유재, 우미헐야. 곤수유두, 황국상호?」
[解釋] 鄭伯과 許男은 초나라로 가서 복종할 뜻을 나타냈다. 가을에 진군은 돌아왔다. 桓子가 죽음을 청하자, 晉侯는 그것을 허락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士貞子는 간하기를, 「안됩니다. 城濮의 싸움에, 진군이 대승하여 초군의 식량을 사흘 동안이나 먹었지만, 문공은 오히려 걱정하는 낯빛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좌우의 신하들이 말하기를, '기쁜 일인데 걱정을 하시니, 만약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면 기뻐하시겠습니까?'」라고 하자, 문공은 말하기를, 「초나라에는 득신이 아직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짐승도 곤경에 처하게 되면 오히려 싸우려 하는 법인데, 하물며 한 나라의 재상임에야?」라고 하셨습니다.
及楚殺子玉, 公喜而後可知也. 曰, '莫余毒也已.' 是晉再克, 而楚再敗也. 楚是以再世不競. 今天或者大警晉也. 而又殺林父以重楚勝, 其無乃久不競乎? 林父之事君也, 進思盡忠, 退思補過, 社稷之衛也. 若之何殺之? 夫其敗也, 如日月之食焉, 何損於明?」 晉侯使復其位.
급초살자옥, 공희이후가지야. 왈, '막여독야이.' 시진재극, 이초재패야. 초시이재세불경. 금천혹자대경진야. 이우살림보이중초승, 기무내구불경호? 임보지사군야, 진사진충, 퇴사보과, 사직지위야. 약지하살지? 부기패야, 여일월지식언, 하손어명?」 진후사복기위.
[解釋] 초나라에서 자옥을 죽인 후에야, 문공의 기쁨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말하기를, 「그때 문공은 나를 해치는 자가 없어졌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진나라가 두 번 이기고, 초나라가 두 번 패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초나라는 그 후 두 세대 동안 떨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진나라가 대패한 것은 하늘이 어쩌면 진나라를 크게 경계시키려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林父를 죽여 초나라의 승리를 이중으로 해준다면, 우리 진나라는 이후 오랫동안 떨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林父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나아가서 충성을 다하는 것을 생각하고, 물러 나와서는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의 수호자입니다. 어떻게 그를 죽이겠습니까? 이번의 패배는, 마치 일식이나 월식과 같은 것이니, 어찌 본래의 빛을 흐리겠습니까?'라고 하였기 때문에, 晉侯는 환자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冬楚子伐蕭. 宋華椒以蔡人救蕭. 蕭人囚熊相宜僚及公子丙. 王曰 : 「勿殺. 吾退.」 蕭人殺之. 王怒, 遂圍蕭, 蕭潰. 申公巫臣曰 : 「師人多寒.」
동초자벌소. 송화초이채인구소. 소인수웅상의료급공자병. 왕왈 : 「물살. 오퇴.」 소인살지. 왕노, 수위소, 소궤. 신공무신왈 : 「사인다한.」
[解釋] 겨울에 초자는 蕭나라를 쳤다. 宋나라의 華椒는 蔡나라 사람들을 이끌고 蕭나라를 구원하였다. 蕭나라 사람들은 초나라의 熊相宜僚와 公子丙을 사로잡았다. 자왕은 말하기를, 「죽이지 마시오. 내가 물러나겠소.」라고 하였으나, 蕭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죽여 버렸다. 장왕은 노하여, 마침내 蕭나라를 포위하였기 때문에, 蕭나라는 전멸하였다. 이때 초나라의 申公巫臣은 말하기를, 「우리 군사들은 모두 떨고 있습니다.」고 하였다.
王巡三軍, 拊而勉之, 三軍之士, 皆如挾纊. 遂傅於蕭. 還無社與司馬卯言, 號申叔展. 叔展曰 : 「有麥麴乎?」 曰 : 「無.」 「有山鞠窮乎?」 曰 : 「無.」 「河魚腹疾奈何?」 曰 : 「目於眢井而拯之.」 「若爲茅絰. 哭井則已.」
왕순삼군, 부이면지, 삼군지사, 개여협광. 수부어소. 환무사여사마묘언, 호신숙전. 숙전왈 : 「유맥국호?」 왈 : 「무.」 「유산국궁호?」 왈 : 「무.」 「하어복질내하?」 왈 : 「목어원정이증지.」 「약위모질. 곡정즉이.」
[解釋] 이에 장왕은 전군을 순행하면서, 군사들의 등을 쓰다듬어 격려하였기 때문에, 전군의 군사들은, 모두 마치 솜옷을 입은 듯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소나라의 성벽에 달라붙었던 것이다. 소나라의 대부 선무사는 초나라의 대부 司馬卯에게 말하여, 초나라의 대부 申叔展을 불러오게 했다. 叔展은 말하기를, 「엿기름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말하기를, 「없습니다.」고 하였다. 「山鞠窮은 있습니까?」라고 하자, 말하기를, 「없습니다.」고 하였다. 「황하에 사는 물고기가 배탈이 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말하기를, 「말라 버린 우물을 눈여겨 보아두었다가 건져 주시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띠 풀로 둥근 띠를 만들어 그 우물에 걸어 두시오. 그곳에서 곡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일 것입니다.」고 하였다.
明日, 蕭潰. 申叔視其井, 則茅絰存焉, 號而出之. 晉原縠, 宋華椒, 衛孔達, 曹人, 同盟于清丘. 曰 : 「恤病討貳.」 於是卿不書, 不實其言也. 宋爲盟故, 伐陳. 衛人救之. 孔達曰 : 「先君有約言焉. 若大國討, 我則死之.」
명일, 소궤. 신숙시기정, 즉모질존언, 호이출지. 진원곡, 송화초, 위공달, 조인, 동맹우청구. 왈 : 「휼병토이.」 어시경불서, 불실기언야. 송위맹고, 벌진. 위인구지. 공달왈 : 「선군유약언언. 약대국토, 아즉사지.」
[解釋] 이튿날 蕭나라는 전멸하였다. 申叔이 그 우물을 찾아보니, 띠 풀로 엮은 둥근 띠가 이었기 때문에, 큰 소리를 질러 그를 구출해 내었다. 晉나라의 原縠, 宋나라의 華椒, 衛나라의 孔達, 曺나라 대부가, 위나라의 清丘 땅에서 동맹하였다. 그 맹약은, 「괴로움을 당하는 나라를 돕고 두 마음을 품는 나라는 토벌하자.」는 것이었다. 경문에 경들의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은, 그 맹세의 말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宋나라는 맹약을 지키기 위하여, 초나라에 대하여 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진나라를 쳤다. 그런데 衛나라 사람들은 진나라를 구원하였다. 衛나라의 孔達은 말하기를, 「이것은 선군에게 진나라의 공공과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大國이 토벌하러 온다면, 나는 그 해명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