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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치 논제 : 역사 드라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주장이 있다. <가>와 <나> 중 어느 쪽의 주장에 더 공감하는가. 그 이유를 논하라.
<가>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기록에 생략되어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울 수는 있지만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임의로 변형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나> 역사 드라마의 기록 중 역사적 기록과 어긋나는 부분은 역사 왜곡이 아니라 가치 있는 창작으로 봐야 하며 그것 자체로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 1.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tv드라마, 드라마 쇼, tv쇼 등으로 부르며, 미국에서는 보통 ‘show’라고 통칭한다. show는 오락물, 구경거리라는 의미로 이처럼 드라마는 흥미 위주의 상업적 쇼이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속 창작은 시청자들의 흥미를 위한 창작이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딱딱하고 무거운 역사를 다양한 상상력을 활용하여 흥미를 유발하고, 이를 통해 시청자 확보와 더 많은 사람에게 역사라는 주제를 알리는 것이 역사 드라마 창작의 긍정적 역할이다.
정확히 역사적 사실을 고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실되거나 사리진 기록과 역사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갈리기 때문에 100퍼센트 정확한 역사 고증이라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이다. 또한 남아있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다. 실제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승리자의 입장에서 조작된 기록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완벽한 고증은 없다. 이처럼 완벽한 사실만을 담아내 역사 드라마를 만든 것은 가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도 작가의 창작의 영역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역사드라마 속 가치 있는 창작은 시청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한다. 이러한 창작은 역사 드라마 속 장면을 더욱 극적이게 표현하여 시청자들의 감정을 더 몰입하게 만들고 흥미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창작이 담긴 명량 영화가 역대영화흥행순위 1위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역사를 바꾸는 전투를 보며 시청자는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명량 속 이순신 장군이 배에 올라타는 적장의 목은 베는 장면은 허구이지만 극적인 장면을 위해 삽입되었다. 이 장면을 역사 왜곡으로 보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창작의 가치가 중요한 드라마와 사실적 기록의 재현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는 다른 영역이다. 역사 교과서에 잘못된 역사가 실린 것과 역사를 바탕으로 한 만화책에 역사적 창작이 들어가 실제 역사와 다르게 묘사된 것은 엄연히 다른 부분이다. 이를 보고 우리는 하나의 창작물로 인정하지 역사 왜곡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책처럼 무겁고 진지하지 않고, 가볍고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어 역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어렵게 고증된 책이나 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보다 가치있는 창작을 통해 사람들에게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측면으로 봐도 더 긍정적 효과를 보여준다. 태백석탄박물관의 화석의 학명 오류,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의 전시 중 박쥐나무의 학명 오류도 사실이 왜곡되었지만 크게 논란이 되지 않고 사라진 것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왜곡도 사실도 소용이 없다. 해당 사실과 왜곡의 문제들은 관심을 가지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인식된다. 역사드라마로 많은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드라마로 인해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는 역사 드라마의 창작이 가치 있다는 논증이기도 하다.
# 2.
민족의식은 한 나라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기 민족의 존엄성과 권리를 지키고 민족의 단결과 발전을 꾀하는 이 민족의식은 결국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민족의식을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 민족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올바른 인지로부터 올바른 의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 문화, 역사적 사실 등이 그 예시가 된다.
그 중에서도 역사는 다른 요소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 역사는 인류 사회의 변천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봄으로써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가 역사로서 갖는 의미이자 가치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뜻을 같이한다. 흰 도화지에 새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막막하다. 밑그림이 그려져 있을 때, 아쉬웠던 부분을 수정하고 보충해야 할 부분을 채워넣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 민족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역사적 사실은 그것이 변형되거나 왜곡되지 않았을 때 가치 있다. 하지만 이 역사적 사실은 드라마와 결합하는 순간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목표로 한다. 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기존의 사실을 임의로 변형시켜 전달하는 것은, 단순한 내용 변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도 변형되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사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형된 역사적 가치는 시청자 개개인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결국 민족이라는 큰 범위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청자들은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수용하게 되거나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에 대해 혼동을 느끼게 된다. 민족이란 것은 개개인이 모여 형성된 집단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민족의식은 자연스레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 민족 구성원들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왜곡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인식 방향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 드라마를 제작할 때는, 역사가 갖는 의미를 재고해 그 사실을 변형하지 않는 선에서 제작되어야 한다.
# 3.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역사는 그 나라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역사에서 임진왜란, 개항과 현대화, 민족주의 운동 등은 모두 한국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2017학년도 수능에 한국사를 필수 응시 과목으로 지정했고, 공무원 시험에 ‘한국사’를 포함한다. ‘올바른 역사관 형성’이 국가적 차원에서 핵심 문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따라서 고전과 역사적 이야기는 현재 우리들의 삶을 반성하게 만들고 미래에 우리가 가져야 할 모습을 예견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는 학계를 넘어 문학·영화·드라마 등을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90년대 이후 ‘팩션’(팩트와 픽션)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퓨전사극’이라는 장르가 나타났다. 퓨전사극은 보통 역사적인 사실을 충실하게 전개하는 ‘정통 사극’과 달리, 시공간 배경만 차용하거나, 인물 및 민중의 이야기를 다루고 그 시대 쓰였던 도구들만 등장한다. 이런 역사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하고 있어 ‘재미’와 ‘교훈’을 모두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각색’과 ‘왜곡’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역사 왜곡 논란이 가장 컸던 SBS ‘조선구마사(2021)’에선 최영 장군,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을 비롯해 조선을 비하하고 모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큰 비판을 받아 조기종영했다. tvN ‘철인왕후’(2020)와 디즈니플러스 ‘설강화’(2021) 역시 역사적 인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역사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역사는 해석의 범주이지만, 이렇게 실존 인물과 역사적 사실까지 상상력으로 왜곡하는 것은 잘못됐다. 의도가 없었더라도 역사 왜곡으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영 장군의 후손들은 조선구마사 제작진을 상대로 공개 사과를 요구했고,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삶이 망가진 누군가도 있다.
역사 드라마는 ‘대중문화 콘텐츠’의 역할도 강하다.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상황일수록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중시된다. 콘텐츠를 보며 그 나라의 정보를 흡수하는 시대이다. 왜곡된 역사가 글로벌 OTT를 통해 수출된다면, 외국인들은 잘못된 시각으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한국의 문화를 체험할 때 보통 ‘전통체험’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들은 과거보다 역사 왜곡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화의 뿌리는 ‘한국 역사’에 있기 때문에 ‘역사’와 ‘문화’의 연관성은 깊다. 한 나라의 문화를 향유할 때 역사는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문화는 역사를 들여다보는 렌즈 역할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역사 정보를 접하고 있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와 대중이 만나는 장의 역할을 형성한다. 역사왜곡이라고 비판받은 드라마들의 공통적 특징은, 실존 인물을 폄하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미화했다. 미디어 콘텐츠에 역사적 상상력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해당 콘텐츠를 감상하는 대중들은 콘텐츠 내용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역사 드라마가 단순히 드라마로서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것이 아닌, 대중의 역사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작단계부터 어느 수준까지 픽션을 가미할지 신중한 잣대가 필요하다. 더 나은 고증과 대중의 이해도를 고려해 ‘역사’와 ‘드라마’의 사이에서 균형을 갖춰야 한다.
# 4.
역사 왜곡 사극 논란은 창작의 자유 범위에 관한 문제다. 역사는 창작의 소재가 될 수 없고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된다는 가치, 창작의 소재에 포함해야 된다는 가치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창작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폭 넓게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인격발현은 보장되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도 창작의 소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록과 다른 창작물이라도 가치가 있으며 대중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미군 특수부대가 히틀러를 포함한 나치 수뇌부를 학살하는 내용이다. 시대상을 제외한 모든 것이 허구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 서사도 그렇다. 실제로 타이타닉호에서 두 남녀의 극적인 만남과 이별이 있었는 지 확인된 바 없다. '타이타닉'의 주요 호평은 치밀한 고증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정확히 반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적 효과를 위해 사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한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박스오피스와 비디오시장에서 큰 상업적 성취를 거뒀다.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선과 BBC가 고른 100대 21세기 영화에 선정되거나, 아카데미상 수상, 미 의회도서관 영구보존물에 등재되기도 하는 등 비평가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역사를 소재로 한 자유로운 창작은 대중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향유 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한 자유로운 창작이 허용되면, 왜곡된 역사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터무니 없을 정도로 기록과 다른 창작이 가능한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폭 넓게 인정되는 사회다. 어떤 이유로든 문제가 되는 창작물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도 보장되는 사회란 것이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넓게 보장함으로서 문제작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폐해를 방지할 비평문화와 집단지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실제로 영화 '타이타닉'의 허구 요소들은 개봉 이후 대중들의 비판이 이어지며 밝혀졌다. 또한 전문가들의 타이타닉호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며 관련한 연구들이 진전되기도 했다. 따라서 기록과 어긋난 창작물이 생산되어도, 집단지성이 가동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유익하다.
건강을 위해 무균실에 사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면역력은 다양한 균에 노출될 때 증가한다. 역사적 기록과 어긋난 창작물을 배제하려는 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대중의 문화수준은 걸작이든 문제작이든,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때 높아진다. 이것은 대중의 권리이기도 하다. 또한 화제가 되는 창작물이 착안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며 집단지성이 가동된다. 결국 실보다 득이 더 많다. 예술 창작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간섭해선 안된다.
# 5.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다.” 중대한 일을 기념하거나 기록하고자 할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관용적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역사는 기록의 산물 그 자체이며 누군가가 지나온 발자취이다.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록의 주체는 당연히 승자의 관점일 수 밖에 없고, 주요 세력과 소외된 그룹의 목소리는 기록된다 하더라도 파괴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 역사드라마는 극문학으로서 당연히 허구성이 포함되어 있지만 얼마나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표현했는가 하는 도마에 자주 오르내린다. 과거의 기록에 대한 영상물을 현재의 대중이 보면서 같은 기억을 공유하게 될테니 논란이 생기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저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미디어에서, 특히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역사는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정확한 사료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을 극대화하여 창작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의 방향성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을 버리고 이야기로서의 역사에 더욱 주목하기 때문이다. 2010년대 방영되는 사극들의 제목이나 설명을 읽어보면 ‘퓨전사극’, ‘팩션사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가을에 시청률 8.3%를 기록했던 KBS드라마 <조선로코 – 녹두전>을 보면 제목부터가 ‘조선로코’이며, 김은숙 작가의 첫 사극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미스터 션샤인>의 설명을 보면 신미양요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드라마’이다.
역사드라마는 안방극장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적당한 도구이다. 미디어를 연구하거나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결국엔 재미를 위해 혹은 휴식의 개념으로 시청하기 때문이다. 이때 사극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방식, 의복형태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시청하는 드라마에 대해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창작자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조선로코 – 녹두전>에서 인조가 영창대군을 직접 죽였다고 나오지만 실제로 영창대군은 병사, 아사, 독살 등 정황만 있을 뿐,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단순히 사료에 나와있는 기록을 나열하기보다 창작을 가미한다면 풍부한 정서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교육적인 관심을 유발할 수도 있지만 드라마의 성공과 완성도가 우선되어야 하는 아이러니를 마주한다. 역사드라마에서 과거는 시공간적인 배경으로서 활용되는 경우가 최근의 경향이다. 드라마에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한 주인공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흥미와 쾌감을 선물하고 스스로 성찰해보는 기회까지 제공할 수 있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건 조선 말기의 옷인데’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뒤에 지나친 허구는 특정 역사적 인물 또는 사건에 대한 혼동을 야기할 수 있으니 창작자는 시청자가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시청자는 이를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6.
사람들의 관심이 역사에서 멀어졌다. 서울 소재 대학의 사학과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은 이제 놀랄 거리도 되지 않는다. 통폐합을 피해 살아남은 서울 소재 대학 사학과는 13개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정원이 줄어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원을 뽑는다. 이렇게 역사에서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강원도 레고랜드 건설 당시와 같은 일이 쉽게 되풀이된다. 개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발굴한 유물을 다시 묻어두고, 훼손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역사로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역사 드라마와 같은 창작물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드라마는 아니나 영화의 경우 ‘변호인’이 한국의 근대 역사를 조명하기도 했다. 실화를 기반으로 각색하여 부당하게 체포당한 학생들이 받은 고통을 생생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하였으며 대중에게 민주주의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외에도 ‘명량’, ‘남한산성’ 등이 다양한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인 이력이 있다.
이러한 역사 관련 창작물이 나오면 항상 뒤따르는 논란이 왜곡과 관련한 논란이다. 사람들은 어디까지를 각색으로 보고, 어디서부터 왜곡이라 인지할까. 우리가 인지하는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가가 핵심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성들을 위해 군량을 일부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백성들의 식량을 약탈하여 군량으로 삼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실존 인물의 행적과 창작물에서의 행적 사이 괴리감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요소를 우리는 왜곡이라 받아들인다.
역사를 기반으로 각색한 창작물은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변화를 준다. 실존 인물의 발걸음 사이에는 비어있는 기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비어있는 기록을 큰 맥락과 결이 다르지 않게 상상하는 것은 사학가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창작이 하나의 가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각색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명시하고 역사적 인물의 이미지를 훼손시키지 않는다면 사학가처럼 또 하나의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행동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역사를 사용하는 창작은 단순하게 관심을 끄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한국의 소프트 파워를 확대하는 것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OTT 상에서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는 ‘연인’과 같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사를 활용한 드라마나 영화가 늘어난다면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조금 더 보편적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창작물만 보더라도 시대적인 배경과 관계없이 창작한 국가의 역사적인 색채가 드러난다. 이것을 자주 접한 시청자층은 그 문화를 익숙하고 친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소프트 파워가 확대된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역사라는 분야의 소프트 파워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지금까지의 행보를 반성하고 역사를 각색한 창작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1479자)
# 7.
역사드라마를 만들 때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의무는 없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만든 ‘픽션(fiction)’이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역사 왜곡 방지법'을 재정해 홀로코스트 부인 등을 창작물에 사용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한다. 이와 같이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창작자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 받을 권리가 있다. 한국에서는 문화재보호법과 출판물에 의거해 역사 혹은 사실과 관련해 특정한 경우에는 창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 재현 여부를 기준으로 창작자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오히려 창작자가 역사적 사실에 얽매이지 않았을 때 질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은 수용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창작자의 상상력이 역사와는 다른 결말로 이야기를 끌고가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은 실제 역사와는 다른 결말로 끝맺음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아카데미, 골든글로브와 같이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관객들의 신선함을 평가하는 ‘로튼 토마토 지수'에서 88%를 기록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을 틀었을 때 작품은 수용자에게 정서적 쾌감을 선사할 수 있다.
창작자의 역사적 상상력은 ‘만약'의 세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모습을 담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와 나치와 일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The Man in the High Castle’이 그 예다. 이들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정반대로 역사가 흘렀을 때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묘사한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지금과는 다른 역사적 흐름으로 이어졌을 때의 세상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작품들은 수용자에게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줘 역사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역사에 대한 창작은 나아가 역사가 지닌 한계에 맞선다. 기존 역사는 지배층의 관점에서만 서술된 한계를 갖는다. 스피박은 인도에서 ‘서벌턴' 연구를 진행하며 사회 최하층에 있는 이들은 역사적 기록에서 제외되며 현재 역사는 역사라고 할 수 없다는 역사의 한계를 밝혀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창작자가 지배층 중심 역사를 비틀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역사로 재구성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역사 서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의 역사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적 소재일지라도 창작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선물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일은 더욱 다양한 생각들을 낳기 마련이다. 중국은 국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묘사한다는 이유로 거장 지아장커를 비롯해 여러 영화인들의 작품들을 검열했다. 그 후 중국 영화계를 보면 창작의 자유 억압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의 자유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다양한 생각들이 모여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 8.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미디어 경제와 문화'에 실린 연구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드라마의 화제성은 작가 등 제작진의 영향이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한다. 즉 무엇보다도 '재미'가 필수 요소라는 것이다. 드라마가 재미있지 않다면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다. 드라마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사랑받는다.
사극과 다큐멘터리가 다른 이유는 허구성에 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되 '창작'에 주안점을 둔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고 그것을 교육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것이 더 옳다. 드라마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지 교육이 아니다. 이는 사극에서 100% 고증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 '유진 초이'가 미국으로 건너간 시기가 미국인이 국내에 들어온 시기와 맞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상대등 비담 및 김유신과 선덕여왕 사이 러브라인이 생기는데, 이들은 서로 연령대가 맞지 않아 사랑을 했다고 볼 여지가 부족하다. 이는 고증이 철저하다고 여겨지는 정통사극에서도 나타나는데,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나타나는 현종의 모습과 '허준'에서 '허준'과 100년 이상 시대 차이가 나는 스승 '유의태'의 예시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렇게 고증을 지키지 않은 드라마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며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을지언정 교육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수 없다. 애초에 드라마를 제작하는 목적이 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과 허구에서 출발한 사극은 극이 시작하기 전 자막으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기에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재미를 주기 위해 창작됐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또한, 각색은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들어 시청자가 즐길 수 있게 하고, 이 자체로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은 이야기의 구조가 없어 시청자들을 유인하기가 어렵다. 다큐멘터리조차 드라마의 형식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등장할 정도다.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 서사를 만들고 드라마에 적용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다. 요즘에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원작각색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소설, 만화와 같은 대중 매체를 영상 매체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각색이 그렇다. 소설의 경우 글로 서술된 상황적 묘사를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하며 축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만화의 사례도 너무 만화 같은 연출을 드라마에 넣으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원작의 각색처럼 역사의 각색도 드라마화의 방법이다.
각색으로 시청자를 더욱 끌어모으고, 그 것이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면 그것 또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볼 수 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과거에서 이어져 온 교훈을 주며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가르침을 준다. 역사 드라마를 보는 해외 시청자에게도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국 관광이나 상품 판매 등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한류 스타가 등장하는 파친코 등의 사극 드라마나 이전에 이란에서 인기를 끈 대장금 등이 있다. 이들 드라마는 글로벌 OTT로써 전 세계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각색으로 역사에 대한 흥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은 BTS, 블랙핑크 등의 한국풍 콘셉트와도 비교된다. 이들 아이돌 그룹이 뮤직비디오, 무대에 현대식으로 재해석된 한복을 입고 등장하고, 무대가 한국 전통 문화로 꾸며진 모습에서 감명을 받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관광을 오고 결국엔 한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예능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게스트로 등장한 가나에서 온 쌍둥이도 그 예다. 이들은 드라마 '기황후'를 보고 한국에 오게 됐다고 언급했다. 해당 드라마는 왜곡 논란이 있었으나 이러한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줬다고 할 수 있다.
# 9.
드라마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역사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변형하다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2021년 방영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방송 2화 만에 폐지 수순을 밟았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로마 교황청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 충녕대군이 서양 사제를 대접하는 장면에서 중국식 음식과 의복을 사용한 점, 태종이 악령에 시달려 백성을 학살한 점 등이 역사 왜곡 지점으로 꼽혔다.
역사 드라마는 공적 기록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공식 자료만으로 채우기 어려운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을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역사 자료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가의 해석이 대중의 해석과 동떨어지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실시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2.7%가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과 제작자의 상상력을 함께 방영할 수 있다”는 의견은 55.5%였고 “제작자의 상상력에만 맡겨도 된다”고 답한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답변으로부터 시청자가 역사 왜곡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21년 방영된 JTBC 드라마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간첩이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안기부를 미화한 점에서 시청자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민주화운동 당시 허위자백으로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제작자들이 이를 간과하고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며 지적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동북공정 연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중국 자본을 투자받아 문화 동북공정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작사 측은 입장문을 통해 이는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책임 의식의 부족으로 역사를 세세히 검수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조선구마사’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언제든지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외국의 막대한 투자와 제작사의 몰역사가 만나면 국내 드라마는 역사 왜곡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역사 드라마 작가에게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되면 하는 말이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판타지 픽션으로서 봐달라는 것이다. 작가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방송이 대중에게 미치는 파급력을 경시하면 안 된다. 무심코 펼친 상상의 나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겐 이용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 막대한 자본 투자, 작품의 흥행은 즉각적인 행복을 준다. 역사 보호는 당장 눈에 띄는 이득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의 행복에 눈이 멀어 과거를 갉아먹으면 미래는 무너진다. 개인의 작은 행복이 아닌 모두를 위한 질 높은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 10.
이데아idea는 철학자 플라톤이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현실 세계의 바깥에 존재하는, 절대 불변의 진리다. 이 이론은 많은 현대 철학자에 의해 비판받는다.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불변하는 하나의 진리를 상정하는 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이데아’를 찾고자 하는 시도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가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불변할 것 같았던 가치조차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적 기록을 변형한 창작물을 ‘역사 왜곡’이라고 보는 관점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역사의 ‘이데아’를 찾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의 ‘이데아’에 가닿을 수 없다. 역사는 기록을 통해 파악되지만, 기록된 역사에는 기록자의 주관이 개입된다. 이를 간과하면 당시 지배층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의 객관성은 식민정부, 독재정부 하에서 강조된다. 과거 일제는 조선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사실을 객관적인 역사 기록으로 내세웠고, 박정희 또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기록 자체가 의미 없는 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의미화되는 사회적 구성물이다.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역사적 사실은 새로 발굴되거나, 재구성된다. 최근 여성 인권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사 속 여성 인물을 발굴하는 작업이 주목받고 있다. 역사적 사실의 발굴이 수백 년간 지배적이었던 남성중심적 관점에 균열을 내는 시도로서 의미를 획득한 사례다.
역사적 기록을 변형한 창작물 또한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되는 소통의 과정이자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획득한다. 역사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인물은 이순신이다. 그 안에서 이순신 장군은 때로 민족적 영웅으로, 갈등하고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 전쟁의 참혹함 속 카리스마 있는 장군으로 다뤄졌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기도 하며,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거꾸로 시청자의 반응은 드라마의 제작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양한 창작물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해석이 공존해야 역사에 대한 인식도 다양해지고, 단일한 역사적 해석이 ‘이데아’와 같은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따라서 역사 드라마가 얼마나 역사적 기록에 충실한지보다, 어떤 기록을 어떤 의도로 어떻게 재현했는지에 주목하는 게 더 유의미하다. 그것으로부터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철인왕후>는 역사 왜곡 논란으로 각종 OTT 플랫폼에서 철회되는 등 풍파를 겪었지만,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특히 역사 드라마에서 부각 되는 여성의 수동성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먼 미래에 이 드라마와 드라마를 둘러싼 반응 또한 과거를 해석하는 역사적 자료로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 11.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이 있다. 역사는 한 개인을 넘어 한 민족, 나라에 영향 을 준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왜곡 없이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역사는 반복되므로 역사를 배우면 문제 상황에 대응하는 통찰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민족말살 정책을 펼쳐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려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시켜 일본에 복속시키려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한글과 역사 공부를 하며 저항했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듯 외적 억압에 저항하여 자유를 얻은 역사를 배워 통찰력을 얻었기 때문에 독재 정권에 촛불로써 저항하여 민주주의라는 자유를 또다시 쟁취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역사를 올바르게 교육받아 인간 다운 생활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추구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역사 드라마는 우리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매개체 중 하나로서 사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서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역사 드라마는 사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서술에서 생략된 소외 계층의 이야기를 담아 사람들에게 역사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서술을 부정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므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역사가는 모든 사료를 사용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 비판 과정을 거친 사료로 연구하기 때문이다. 사료 비판 과정에서 무의식적 오인, 착오, 잘못된 내용을 제외하고 역사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므로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료를 기반으로 한 역사적 서술은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역사 드라마들은 역사적 서술을 보완하는 역할은 뒤로한 채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역사가의 서술에 빠져있는 주변화된 계층이나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을 왜곡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구마사'에서 조선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지만 중국식 곳간에서 중국식 의복을 입고 중국식 음식을 먹은 장면이 방영된 것이 있다. 이는 명백히 한국 역사를 무시한 역사 왜곡으로 동북공정의 논란까지 발생했다. 또한 철인광후에서 조선왕실록을 지라시라고 말하며 조선 왕들의 기록인 조선광족실록을 비하했다. 이렇듯 역사 드라마가 제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배우게 만든다.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 통찰력을 얻고 정체성을 기를 수 있기 때문에 역사 드라마의 역사 왜곡은 시청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준다.
우리 사회는 현재 OTT 플랫폼의 발달로 드라마 시장이 확대됐다. 이는 역사 드라마의 역할 이 중요해 졌다는 것을 뜻한다. 드라마 시청으로 역사를 학습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철인왕후'의 넷플릭스 순위가 한 때 국내외를 불문하고 10위권 안에 들었다는 것을 통에 이를 알 수 있다. 약은 질병을 낫게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써서 사탕과 함께 준다. 이처럼 역사 드라마는 시청률이라는 사탕만을 생각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서술을 보완한다는 약을 챙겨야 할 것이다.
# 12.
시청자는 역사 ‘드라마’를 원한다. 역사는 기록됐고 기억된다. 드라마는 그런 역사를 소환하고 재현한다. 시청자들이 역사드라마를 찾는 이유는 오락적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역사드라마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역사적 개연성과 허구성의 외연을 넓힘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해왔다. 살아보지 못했던 과거의 세계를 구현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멜로나 추리 플롯에서 재미를 끌어들이는 장치를 도입했다. 대중은 역사적 진실의 문제보다 역사적 특수성에 더 재미를 느끼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역사의 권위를 비틀고 해체하면서 과거를 다시 읽는 부류의 팩션(Faction:Fact+Fiction)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그러나 드라마가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순간 시청자들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강한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는 한국 시청자들은 민족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은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를 왜곡하는 것은 유산을 손상하는 행위다. 공익을 해치는 행위로까지 간주된다. 2021년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이 방영된 뒤 시청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이 깃든 좀비라는 플롯을 추가해 재미를 더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중국풍 소품 사용, 서역 구마사의 도움을 받는 설정으로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결국 방영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역사드라마가 상상력의 코드에 기대어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 주류, 기록의 부분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청자들은 왜곡된 드라마에 실망하고 외면한다. 문화 텍스트는 수용자의 삶을 반영하며, 수용자들이 능동적인 작용을 하는 장을 형성한다. 역사드라마에서 역사는 현재의 요구로 소환된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의 두 축을 매개하고 소통해 현재 한국 사회를 읽어낸다는 긍정적 효과를 가진다. 현실 세계의 답답함을 역사에 우회적으로 빗대어 해결해 통쾌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드라마는 문화 소통을 저해한다. 시청자가 과거에 몰입하고 공감할 기회를 차단하고 그저 사실 입증 논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실망은 대중들의 갈증을 소화할 기회를 앗아간다.
역사드라마에서 허구적 상상력을 발휘할 때는 기록된 역사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좀비물을 가미한 가상의 조선이 무대였지만 여타 사극들보다 고증 수준이 높았다. 감독은 “가공의 이야기지만 충실하게 고증해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담으려고 했다”며 국내외 사람들의 몰입을 이끌어낸 이유를 밝혔다. 시청자가 즐기는 진정한 재미는 재현의 정확성을 갖춘 작품에서 온다. 다시 말해 불편함이 없는 콘텐츠인 것이다. 그 대전제를 지키지 못한다면 드라마의 본질도 갖추지 못한 부끄러운 드라마가 될 것이다.
# 13.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특정 사건 위주로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상상력 개입되지 않는다면 드라마를 만들 수조차 없다. 세세한 행동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만으로 구성된 역사 ‘드라마’는 존재할 수 없다.
역사 드라마는 가치 있는 창작물이며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권위자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을 역사드라마는 조명할 수 있다. 우리는 역사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배웠으며 학습한 역사 인물 또한 선택적이다. 제1차 교육과정은 광개토대왕, 김춘추 등 정치 기반을 형성한 인물 위주로 국사교과서가 구성됐다. 제2차 교육과정은 4·19혁명과 5·16쿠데타 이후의 정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특정 인물을 강조한다. 드라마는 일반적으로 다루지 않은 인물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역사에서 비담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비담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전(金庾信傳)>에서 기록되어 있었지만 교과서에서는 찾을 수 없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 시청자는 역사 인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또한 역사드라마는 기록의 역사에서 경험의 역사로 바뀌게 한다. 역사드라마는 시청자가 과거의 시대를 상상하게 만든다. 역사는 기록된 것이기 시각적 상상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영상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생동감 있게 만들어졌다. 이는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태종 이방원>을 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떠올릴 수 있다. 조선시대의 옷, 음식, 말투, 머리 스타일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본다. 시각적, 청각적 경험을 통해 역사의 일부를 이미지로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누군가는 시청자가 각색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의 순기능은 대중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관해 토론의 장이 마련된다면, 이것은 이미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과 다름없다. 드라마 <설강화>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있었다. 시청자는 토론의 장에서 무엇이 역사와 다른 요소인지 접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역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즉 소수(권위자)의 역사에서 다수(시청자)의 역사로 바뀌는 것이다. 시청자가 해석한 내용은 권위자의 시선이 아니다. 기록의 역사는 권위자의 관점으로 치우쳐서 해석되지만, 시청자가 해석한 역사는 다수의 시선이기 때문에 더 객관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드라마의 각색 범위의 경계를 정할 필요가 있다. 역사드라마의 소비자는 작품을 시청하는 우리 모두이다. 따라서 창작물의 각색 제한은 소비자의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 현재까지 방영된 역사드라마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드라마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 방영이 취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16부작 중 2부만을 방영한 후 조기에 종영했다. 동북공정 및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로 해석되는 요인이 있다. 중국 음식을 소품으로 사용하고, 무녀에게 중국풍 의상을 입혔다. ‘한국의 정체성’이 흔들린 것이다. 시청자는 바로 불쾌감을 느꼈다.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역사드라마는 제작되어야 한다.
# 14.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역사적 인물들의 피와 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다른 나라 말을 빌려 쓰고 있었을 것이고,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렇듯 역사는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많은 영향을 끼친다. 역사를 기억하고 왜곡하지 않아야만 앞으로의 미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즘 집에 텔레비전 없는 집은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없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전에 방영했던 드라마들을 시청할 수 있고, 요즘에는 실시간 VOD까지 가능하다. 방송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미디어인 신문, 잡지 등과 구별된다. 특히 신문은 자산과 하고 싶은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찍어낼 수 있다. 그와 다르게 방송은 누구나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송은 전파매체라서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서 국민으로부터 수탁받은 사람만이 방송사를 제한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방송은 개인의 사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인종,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송에서 역사 왜곡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시청자가 왜곡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될 경우 역사를 잘 못 이해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특히 OTT가 발달한 요즘 외국인들이 왜곡된 드라마를 그대로 볼 경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잘못된 방향으로 알려질 수 있다. 실제로 드라마 <설강화>는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왜곡했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4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되기도 했다. 설강화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걸그룹 블랙핑크 인기 멤버 지수가 출연해서 더 화제가 되었는데 유튜브 조회수 중에 제일 높은 것이 165만 회에 달했고, 대부분의 댓글이 영어로 되어 있었다. 이제 역사 왜곡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문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인식까지도 고려해야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정통사극보다는 퓨전사극에서 역사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재미요소나 해피엔딩을 넣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원래 있던 역사의 내용을 반영하지 않고 충분히 창작자의 자유를 넓게 펼친 사례도 있다. 최근 MBN에서 방영했던 드라마인 <세자가 사라졌다>라는 드라마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해종이라는 가상의 왕을 내세웠다. 덕분에 그 드라마는 역사왜곡을 하지 않고도 창의적으로 전개를 풀어나가서 호평을 받았으며 시청률 1.5%로 시작해서 5.1%로 끝나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다. 처음부터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창작자가 원하는 스토리와 결말까지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을 왜곡한 사례에서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더 컸지만 왜곡하지 않고 가상의 인물로 만든 사극에서는 오히려 호평을 얻었다. 창작자의 자유도 누릴 수 있고 역사 왜곡을 하지 않는 방향이 충분히 있는데도 과거에 기록된 사실을 가져와서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15.
역사란 과거 사건에 대한 현재적 진술로 기억과 망각이 반복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과거에서는 이전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일부를 망각하고, 현재에서는 과거 일부를 다시 기억해낸다. 3.1절, 현충일, 광복절 장르의 대중 예술은 모두 공유된 역사의 기억을 통해 민족에 대한 일체성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민족의 운명을 기억해내고, 그 운명에 일체성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허구적 사실이 들어간 역사 장르는 그 자체로 실재했다는 점과 ‘현재적 진술’이라는 상상의 집합이 함께 구성된 것이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를 소환할 때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소환 자체가 비판받을 수 있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 자체보다는 특정 맥락이나 세계를 구성하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어 사건, 시간, 공간 등을 꾸며낸다. 역사 소환은 현재에서 관심이 높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관련지어 현재의 요구를 바탕으로 제작해야 한다. 2004년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의 산실이었던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한반도에 영향력을 끼치려고 시도하였다. 당시 고구려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지고, 2006년 ‘연개소문’이라는 드라마는 주목받게 되었다. 드라마 ‘연개소문’은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기반하여 특별한 인물로 구성하고 강한 민족주의를 표현했다. 이에 대중은 연개소문을 막연한 영웅적 인물로 해석했다며 비판하였지만, 오늘날 현실은 동북공정이라는 국가 위기 속에서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대중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역사 드라마는 민족에게 역사적 결핍 해결을 위해 영광스러운 조상에 투사하여 대중들의 역사적 관심을 높이는 방법 즉, 역사적 사실에 문화적 변용을 넣었다.
이러한 역사 장르의 대중 예술의 문화적 변용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물을 널리 퍼트리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1940년대 송몽규는 윤동주 시인의 사촌이며 함께 문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윤동주가 열등의식을 가질 만큼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영화 ‘과거 일부를’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다루며 재능이 뛰어났던 송몽규라는 인물을 부각하며 현대에서 담론을 통해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역사 드라마는 현재적 관점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작되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라는 장르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의미 있거나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상상하여 풀어내야 한다. 이와 같은 요소를 통해 시대의 개인특성, 집단의 모습, 친숙한 장면을 통해 수용자들로 하여금 재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은 개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 드라마의 기록 중 역사적 기록과 어긋나는 부분은 역사 왜곡이 아닌 창작물로, 수용자들의 역사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문화적 변용을 허락해야 한다.
# 16.
하나가 다른 것을 수식하는 형태로 연결되는 단어를 종속 합성어라고 한다. 역사+드라마는 ‘역사’가 ‘드라마’를 수식하는 의미의 결합으로 ‘드라마’ 에 방점을 두어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역사드라마와 역사의 경계는 존재한다. 역사는 기록을 바탕으로 해석하고 흩어진 정보를 통해 사실을 구성하는 데 의미가 있다. 이에 비해 드라마는 역사를 소환하고 재현하는 방식과 이를 수용하는 시청자의 반응이 가장 흥미로운 영역일 수밖에 없다. 역사의 의미가 곧 역사 드라마의 의미로 적용될 수 없는 이유이다.
드라마는 사실로서 가치를 전달하는 장르가 아니다. 역사드라마는 작가가 기록을 ‘선택’하여 ‘변주’함으로써 인간 보편의 가치, 해방과 자유, 억압과 저항 등의 문제를 현재로 소환하는 것에 가치가 있다. 선택의 과정에서 아무리 민족의 운명을 뒤바꾼 인물이나 사건이 사실로 존재할지라도 극적 흥미요소가 없다면 드라마로 소환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실 고증만을 강조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제삼자의 이성적 판단에 불과하다.
역사 저서, 역사 교육에 적용되는 역사 왜곡에 대한 엄중한 잣대를 픽션드라마에 확장하는 것은 과거의 관습에 그쳐야 한다. <명인 백서>와 같은 초창기 한국 역사 드라마는 국민 통합·결속이라는 명분으로 교육과 계몽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목적이 뚜렷한 극은 정작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장희빈>, <전설의 고향> 같은 작품들이 역사드라마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위상을 공고히 할 뿐이었다. 2000년대 들어 <선덕여왕>,<주몽>과 같은 작품들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청률은 시청자 또한 역사드라마가 기존의 교육·계몽 수단에서 벗어나 창작과 가능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인 시청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드라마 시장의 당연한 이치이다.
신역사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역사적 사실’이 아닐지라도 수용자의 역사성을 자각시킬 수 있다고 보며 이를 ‘역사 효과’ 라고 한다. 현재의 역사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역사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등장인물과 상황에 극적으로 몰입하도록 장치를 두고, 생각해 봄 직한 문제를 담론의 장에 꺼내놓는다. 드라마와 같은 대중 문화가 ‘역사 효과’에 역할을 다한다면, 역사교육과 역사관 확립에는 진정한 의미의 ‘역사’가 책임을 다할 차례이다. 역사 드라마가 개인의 역사관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통로라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역사의 대중화로 인해 생기는 역사 왜곡 문제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식 확립에 주체적 책임 의식을 갖고 나서야 한다.
# 17.
역사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한 나라의 역사는 그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 등 수많은 침략과 응전을 겪으며, '한(恨)'에 기반한 강한 자부심을 형성했다. 이러한 시대정신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왜곡된 역사 인식은 이러한 힘을 잃게 만들고,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올바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 형성은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역사를 토대로 자아를 형성하는 것이다. 잘못된 사실을 받아들이면 왜곡된 자아를 형성할 위험이 있다. 민주화운동을 폄훼한 드라마를 보고 자란 이들은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할 수밖에 없고, 조선 초기의 가톨릭 사제를 본 이들은 계급 사회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단순한 오해를 넘어 민족적 정체성의 기반을 흔들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역사는 갈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명분이 된다. 한일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러시아의 크림반도 문제 등 국가 간의 투쟁은 긴 역사 속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비롯된다. 잘못된 역사 인식은 특정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작될 수 있으며, 정치적 선전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역사 교과서 집필에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느끼지 않았던가. 결국 편향된 역사 연구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세간의 흐름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통찰하기 위해 정확한 역사 전달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과거의 실수와 성공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새로운 관점을 통해 내면이 성장하는 기반을 세우고, 여러 분야에 걸쳐 혜안을 제공한다. 왜곡된 역사 사실은 역사가 전하는 가치를 훼손하고, 교훈적 의의도 상실한다. 균형 잡힌 시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통한 내성이 필요하다. 적나라한 과오를 돌이켜보며 현실을 개선하는 훈련을 반복해야만 현명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
# 18.
드라마는 무엇인가? 시대를 보여주는 기록물인가 배움이 담긴 교육물인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에 드라마는 오락물이라 답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확인하거나 배우기 위해서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여가에 잠깐의 휴식 또는 작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드라마의 역할이 시청자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드라마에 오락물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드라마 앞에 '역사'라는 단어를 붙여서 생각해 보자.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 기록을 빌려다 구성한 '드라마'이다. 역사가 앞에 붙어도 드라마임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역사 드라마가 기록된 사실에 대한 고증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드라마의 역할을 오락이 아닌 사실의 전달물 혹은 역사 교육물이라 인식하며 생겨난 오류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기록된 역사를 허구로 꾸며낸다면, 역사와 관련된 국가적 갈등에서 불리한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한 창작물인 드라마가 역사의 진실에 대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지위를 지나치게 고평가한 것이다. 또한 기록된 역사가 절대적인 진실도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들에 의해 쓰인다. 과거의 사실이 오늘날에 와선 거짓이 되고, 오늘날의 진실이 미래에 가선 거짓이 될 수 있다. 역사는 언제나 해석 당한다. 명성황후를 보자. 누구는 그녀를 외세의 침략 탓에 무참히 살해당한 국모로, 누구는 사치와 친족 우대 정치로 나라를 망하게 한 악녀로 본다. 이렇듯 한 인물에 대한 평가도 극명하게 갈린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진실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며, 단 하나의 시선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이기에 역사 드라마에 기록을 철저하게 반영하라는 요구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재해석한 내용으로 관련된 개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진실을 재해석하는 데에는 조심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창작자의 영역이다. 어떤 역사를 다룰 것인지, 기록된 사실을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모두 창작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물론 이 선택으로 인한 결과의 책임도 창작자에게 있다. 올해 방영된 KBS 역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역사 왜곡 논란으로 시청자들의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이 사건은 앞으로 역사 드라마를 제작하는 창작자에게 역사의 재해석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시사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시청자는 창작자의 해석에 영향을 줄 순 있지만, 막을 권리는 없다. 그렇기에 기록된 역사를 철저하게 반영하라는 요구 보다는 창작자가 어떤 시선으로 내용을 해석했는지에 주목하여, 기록된 역사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 19.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2002년부터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전개하며 한국의 문화를 뺏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일본은 지나간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왜곡된 역사를 교과서에 실었다. 기록으로 남아있기에 불변할 것만 같았던 역사는 국가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흔들린다. 역사는 우리의 선조가 쌓아올린 시간이며, 현재를 이루고 있는 근간이다. 우리는 우리가 쌓아올린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아야한다.
드라마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예술이다.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이 녹아있는 현실을 토대로 작가는 서사를 쌓아올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우리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에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적인 소품이 나온다. 근로소득자 주인공의 원룸에 명품 가방이 줄지어 놓여져 있지 않는 이유다. 시청자는 이와 같은 잣대를 역사 드라마에도 적용한다. 실제로 시청자들은 고증이 잘된 드라마를 높게 평가한다. 시청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작가는 역사학자와 협업하여 시대 고증이 잘 되었는지 검증을 한다. <킹덤> 제작시 김은희 작가는 조선시대 가상마을을 만들기 위해 대동여지도를 공부하기도 했다.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드라마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물이여야만 한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질 뿐더러,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하여 시청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드라마는 다수의 시청자에게 동시에 메세지를 전달하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다. 의도를 전달할 때, 문화는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 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신문과 출판물을 검열했다. 윤동주는 시를 들고 싸웠다. 문화가 전달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개인이 집에 소장하는 미술 작품이 아니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기에, 창작자에는게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진다.
전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며, 드라마 산업도 해외 수출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더 커진 시청자 층은 인터넷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담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자국의 역사만을 공부한 사람들은 하나의 시점으로 과거를 읽는다.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른 내용을 보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 마다 얽혀있는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사실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영웅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는 일본에서 테러리스트로 알려져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시청하는 역사드라마에 역사적 사실에 관한 논쟁이 따라오는 것이 불가피한 이유다. 논란에 대한 뒷감당은 창작자 뿐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짊어져야한다. 문화는 동시대 사람들의 정신의 근간을 모아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왜곡하여 송출된 드라마가 우리나라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여 선조가 쌓아올린 희생을 무시하는건 후손으로서 짊어진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다. 창작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을 인지해야한다.
# 20.
역사의 본질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이다. 역사는 크게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역사의 객관성을, 후자는 주관성을 강조한다. 이때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임의로 변형하는 것과 다르다. 기록된 역사는 먼저 객관적인 사실이어야 하며 여기에 주관이 개입되어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다. 역사적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는 있지만, 기록을 왜곡하여 객관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역사 드라마는 허구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서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역사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역사 드라마가 허구의 영역이기 때문에 창작의 자유를 존중하고 주관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창작의 자유는 생략된 기록을 상상력으로 메울 때 인정되는 것이다.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제작자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드라마 <파친코>는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배경을 스토리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규정된 여성의 역할과 사회경제적 상태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이는 재일조선인 여성의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편적 정의와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사실의 왜곡이 아닌 사실의 재현이었기 때문에 역사에서 평가절하되었던 여성의 행위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기록물로서 역사 드라마의 역할은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더 커지고 있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이제 역사학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의 몫이다. 사람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나 영상 플랫폼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학습한다. 올바른 역사 인식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데서 출발하는데, 드라마의 왜곡된 내용은 시청자에게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역사 왜곡 문제로 방송 2일 만에 종영된 <조선구마사>는 동북공정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선시대 배경인데도 불구하고 중국풍의 소품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우리나라 역사를 격하시킨다면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거나 정치적, 외교적 문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는 현재의 상황에 따라 과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성에 근거해 충분히 이해할 때 현재에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는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안경과 같다. 안경의 형태는 다양해도 렌즈는 누구에게나 선명해야 한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에 대한 해석이 의미를 갖는다. 형식에 관계없이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라면, 역사의 렌즈가 더러워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 21
역사드라마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허구로서의 드라마를 결합한 극예술이다.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하여 극적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재적 의미를 생성하는 것이 역사드라마의 본질이다. 드라마의 허구성은 당연하다. 작가와 연출자는 드라마의 기획의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역사적 사실을 ‘극적으로 변용’한다.
창작이란 대상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변형하고 강조하고 생략하는 것이다. 역사를 각색한 드라마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업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있기 때문에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있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고 봤다. 따라서 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가와 연출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각자의 해석과 창의력을 발휘해 개별적 사실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 개연성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역사는 과거 그 자체이자, 현재에 대한 담론이다. 작가와 연출자는 드라마를 제작할 때 당대의 시청자들의 관심사와 가치관을 반영한다. 역사적 이야기에 현대적 의미를 덧입힌다. 이때 드라마의 시공간과 인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 시청자들은 퓨전 사극이 그려내는 역사를 실제 역사와 혼동하지 않는다. 대신에 드라마를 통해 현재를 돌아본다. 드라마 <연인>은 17세기 병자호란 전후의 조선을 배경으로 백성들의 끈질긴 생존 서사, 그리고 연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유길채의 강인한 생존 서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치열함을 떠올리게 한다. 시청자는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역사를 재의미화하고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돌아보며 능동적인 수용자가 된다.
퓨전 사극은 역사의 한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갔던 ‘평범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이야기보다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비주류의 주인공의 입장을 대변했다. 역사적 사건을 미시사적인 시선으로 접근해 민중을 역사에 편입시켰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기록된 역사로 학습된 선입견을 뒤집게 된다.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은 역사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를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은 중요하다. 지식을 암기하고 복제하는 것보다 원형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에 역사적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가치가 있다.
# 22.
누군가는 역사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를 공부한다 하고, 또 누군가는 역사 드라마에 잘못 표현된 역사적 사실을 비판한다. 역사학자들은 고증의 오류를 지적하는 반면, 제작자들은 이를 드라마적 상상력이라고 주장하듯, 역사 드라마의 인기는 역사왜곡 논란을 동반해왔다. 역사 드라마는 사실(史實), 그 사실에 대한 인과적 설명, 그리고 그 설명에 대한 '상상적 해설'의 관계에 있는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역사왜곡이 될 수도, 창작의 자유가 될 수 있는 문제에 놓여있다.
역사 드라마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소환하고, 드라마라는 시공간 속에서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역사왜곡 논란이 되는 것은 ‘정통 사극’에서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역사적 사실(fact)을 중심으로 허구(fiction)를 접목시킨 ‘팩션 사극’에서 실존하는 인물이나 실제 있었던 사건을 왜곡할 때이다. 몇 년 만에 부활한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일부 각색에서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드라마 ‘슈룹’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에 반해 중국풍 연출이 있다는 오점을 남기며,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제작자들은 ‘엄격한 고증은 상상력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하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시대나 실존 인물을 가져오는 경우 그것에 대한 고증은 필수적일 것이다. 또한 역사적 고증을 자문할 수 있는 환경적, 인적 자본이 충분하기 때문에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비판받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창작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반문할 수 있다. 논제에서 주어진 것처럼, 역사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나 허구의 인물과 사건 등을 통해 충분히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나 ‘대장금’처럼 말이다.
드라마는 영구적으로 남는 자료로, 한 번 제작된 영상을 쉽게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 수 백 명의 인원이 투입되고 회당 몇 억이 투자되는 만큼 논란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제작 초기 단계부터 고증과 자문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레적으로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2회차 만에 폐지가 됐다. 방영 이전부터 시놉시스의 역사적 개연성 결핍이 우려됐고, 방영 이후에는 중국식 월병, 젓가락, 실내장식으로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에 불을 지폈다. 촬영 편의 혹은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고증을 충실히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연출이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고증의 정확성, 엄중성을 넘어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호응했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막바지 촬영 중 제작이 중단되고 결국 폐지되었다. 방송법에는 ‘방송은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대중들은 역사왜곡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출한다.
드라마 ‘태조 왕건’이 "우리 역사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후삼국시대를 생생하게 되살려 새로운 역사드라마의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드라마 ‘녹두꽃’은 "동학농민운동을 전봉준의 영웅적 일대기가 아닌 민초들의 삶과 항쟁에 초점을 맞춰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역사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역사나 인물들을 재조명함으로써 시청자 혹은 대중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재점화하고, 역사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제대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게오르크 루카치는 ‘역사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들을 재진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민중들에 대한 시적 깨우침이다.’라고 했다. 문제는 허구 자체가 아니라, 인물과 역사적 정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의 재현에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상상력을 가미한 역사 드라마를 통해 교훈적 가치, 인간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변용 가능성으로서의 역사’를 보여줌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수동적으로 보는 것에 그칠 게 아니라 어떻게 역사를 소환하고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23.
역사는 왜 보존되어야 할 가치인가.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민족이나 국가에 있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적 동질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는 민족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어 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자아를 확립하고 한 민족으로서 결속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국민의 올바른 역사인식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지식을 교육하고 신뢰성있는 기록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사는 하나의 콘텐츠 IP로 전락하고 있다.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인기를 끌고, 이에 따라 많은 사극과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단순한 차용이 아니라, 각색을 통한 사실 왜곡에 있다. 실제로 최근 방영된 ‘고려거란전쟁’에서 현종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장면을 추가해 평가 절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과거 ‘조선 구마사‘의 경우에는 중국 문화를 사극에 접목하였으며 ’설강화’는 독립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역사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경제적 가치추구를 위해 역사를 시청자의 입맛에 맞춰 재가공하는 것은 역사를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상품이자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의 발전은 역사 왜곡을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드라마의 2차 창작물이 빠르게 확산됨에 따라 왜곡된 사실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다. 실제로 인기 드라마의 경우, 숏폼으로 재편집되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역사 인식에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확한 정보와 배경 지식이 바탕이 되어 있다면, 각색이나 왜곡을 올바르게 판단할 힘이 있겠지만 아직 미숙한 청소년들에게는 그러한 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따라서 학생과 국민의 정확한 알 권리를 위해서 사극 제작자들은 더욱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누구는 사극을 역사와 별개의 이야기로써 봐줄 것을 요청하며 예술 창작의 자유를 근거로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의 ‘소재‘이기 전에 보존되어야 할 ’유산’이다. 국보나 문화유산을 함부로 변형하거나 활용하지 않는 것처럼, 무형의 기록일지라도 역사적 사실은 그 신빙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극이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예술 창작의 자유를 누릴 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빈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맥락에 맞게 각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된 사실을 바꾸는 각색을 지속한다면 역사는 더 이상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아닌 개인 편의에 맞춰진 ’보정 카메라‘로 전락할 것이다.
# 24.
티비 프로그램 중 드라마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특히 역사드라마는 시청자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시대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특정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고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주제인 역사에 창작을 가미해 흥미를 제공한 점이 유효했다. 드라마 마의 흥망은 역사적 창작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좌우한다. 이는 우리나라 영화 흥행순위 1위인 <명량>을 보면 알 수 있다. 약 1800만의 관객을 동원한 <명량>에도 많은 각색이 존재한다. 이순신의 호칭, 전투에 참여한 함선 수, 조선 수군의 복장 등이 그러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보다, 대중들에게 역사적 흥미를 제공한 부분을 높게사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드라마 작가는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역사적 창작은 ‘대한민국 헌법 21조’에도 언급돼있는 ‘표현의 자유’이다. 만약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당해 각색하지 못하고 역사적 사실만을 그대로 나열한 한다면, 이는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사료될 것이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재미를 전달하는게 최우선이다. 가치있는 창작을 통한 역사드라마를 제작하면 시청률은 올라가고, 역사적 인식에 대한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강대국에게 둘러쌓여 잦은 약탈과 침략을 겪으며 성장해왔기때문에 역사적 자료에 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서술이 안돼있는 부분은 작가의 각색이 불가피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이미 우리에게 익순한 격언이다. 지나친 규제로 역사드라마의 각색을 막는다면 어떠한 작가도 역사 드라마를 제작하려하지 않을 것이고, 역사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다만 선이 넘는 각색은 왜곡으로 비춰질 수 있다. 2021년 16부작으로 기획된 <조선구마사>는 1700여개에 달하는 시청자들의 항의로 인해 2화만에 조기종영됐다. 작품에선 한국의 전통 음식이 월병과 피단으로 표현됐으며, 무녀가 중국전통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이는 명백히 조선을 비하하고 모욕적으로 표현한 요소이며, 동북공정의 논란까지 발생했다. 각색된 부분은 작품의 흥미적 요소를 높이는 것 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왜교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었다. OTT서비스가 열풍인 지금 넷플릭스의 유료회원수가 3억명이 머지 않았다. 지구 반대편 사람도 손쉽게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접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일정 선 안에서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를 가치있는 창작을 통해 널리 알렸으면 한다.
# 25.
인간은 예로부터 현상 이면의 진실을 좇았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는 이데아를 추구하는 인류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학자는 진실의 추구로서 ‘역사’라는 이름의 양태를, 예술가는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각자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이해를 꾸려 나갔다. 그런데 두 영역의 교집합은 어떠할까? 역사를 빌려 세상을 그려 나가는 창작물이 최근 화두에 오르며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필자는 역사적 사실의 임의적 변형에 반대한다.
먼저, 역사에는 진실 추구라는 고유의 목적성이 있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판단하여 오늘날 우리의 행동과 인식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 인식과 의식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구축해간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동은 생각으로부터 나오고, 생각은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주장은 사실관계로부터 기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의 조작은 건강하지 않은 상상력의 단초이다. 사회구성원의 역사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실제 사실을 사용했다면 자유는 더욱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예를 들어 tvN에서 방영된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라는 대사로 큰 논란을 빚었다. 국가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전통문화를 일방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인식을 전파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들의 세계관에서 서사를 진행하면 되는 부분이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창작자가 세계를 그려온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로서 역사를 매개하는 창작자로서 사회적 책임이 중대하다. 그 정도는 예술 작품이 한때 계몽의 수단과 진리의 전파자로서 위상을 지닐 정도였다. 특히, 드라마와 영화라는 장르는 인물의 감정과 내면 세계를 재현하는 데 탁월하다. 서사는 맥락과 공감을 기반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특성을 고려한다면 시청자가 작품의 메시지를 진실 그대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크다. 때로는 정당화의 도구가 되기도 쉽다. 물론 예술 자체에 진실을 추구해야 할 당위는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세상에 대한 이해를 구성하기도 한다. 매체로서 수용자에 미치는 영향 즉, 창작의 사회적 책임을 인지해야 한다.
역사를 빌려다 쓴 이들에게는 과연 어디까지의 상상력이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 논의는 이야기꾼의 윤리의식에 관한 것이다. 역사를 배경으로써 사용하는 이들이라면 역사에 마땅히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대가라는 것이 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진실된 이해는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왜곡의 씨앗은 사실의 변형으로부터 비롯된다. 개인의 역사관이 사회구성원의 의사결정과 사회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창작자에게는 보다 중대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 26.
역사에 대한 기억의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기억과 역사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본다. 기억은 그저 과거를 떠올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역사인식과 맞물려 있어서다. 이는 역사의 서술, 역사적 진실 문제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한 사회의 집단기억은 사회적 의미와 더불어 정치성을 지닌다. 기억하려는 행위의 중요성, 엄중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철학자 로크는 기억을 마음의 힘으로 이해했다. 역사적 현장이나 환경이 사라지면 마음의 힘인 회상도 약해지고, 마음의 힘이 약해지면 당연히 역사에 대한 의식도 약해진다는 것이다.
지배권력은 집단기억에 내재한 정치성을 간파해낸다. 통치와 지배에 유리한 집단기억을 만들려고 한다. 다양한 선전, 선동 활동을 동원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반면 지배권력이 원치 않는 기억은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배제를 넘어 망각을 강요한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작가 밀란 쿤데라는 통찰했다. 기억담론이 대두되면서 역사학계에서도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역사’라는 주장이 나온다. 기억투쟁은 망각에 대항해 기억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내는 행위이다. 지배권력의 망각 시도에 맞서 배제된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묻혀진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역사란 시간이 아니라 기억,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문화적 기억이다. 역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선택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기억 이론은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의 집단 기억에서 출발한다. 시간의 종적 흐름에 기초한 역사 서술이 결코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언제나 상호 주관적으로 기억되는 집합적, 구성적 특징을 가진다는 주장이다. 이런 집단 기억 혹은 문화적 기억의 수단은 역사 교과서의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그림, TV드라마, 박물관, 동상에 이르기까지 그 매체가 다양하다.
미디어의 전통적 역할 중 하나는 사회구성원들의 사적 기억을 공적기억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특히 매스미디어는 사적인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서 공공의 기억을 만들어 낸다. 과거의 현재적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매스미디어는 과거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역사인식의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는 기억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 학문이다. 역사의 서술 공간에는 누락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역사에 비어있는 공간을 서술하면 새로운 담론이 출현할 수 있다. 역사의 재구성은 단순히 과거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를 재해석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고취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역사를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보며 한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기존의 시각을 재해석하고 재평가하는 토론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 27.
TV를 통해 정해진 시간대에서만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 각종 OTT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넘쳐나는 컨텐츠는 시청자에게 개개인의 선호와 취향에 맞는 드라마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지만 제작자들의 경쟁은 더욱 과열시켰다. 성행이 보장되지 않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제작자들이 역사 드라마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에 기반하는 만큼 고증해야 할 것들이 많고 그에 맞는 소품과 배경까지 갖추려면 그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들 속에서 사극을 원활히 제작하려면 작가의 상상력은 필연적이다.
한국의 고대사는 기록이 적어 완벽하게 고증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학계에서조차 의견이 나뉘고 논란의 여지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역사이다. 특히 고대시대의 기록은 역사서에 한 두 줄 적혀있는 것이 전부이며 이조차 객관적인 정보라 단정할 수 없다. “역사는 이긴자들의 기록”이라는 말을 흔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역사 왜곡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피하라는 것은 역사 드라마 제작을 금지시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일례로 드라마 “대장금”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국민 드라마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실제 대장금이 조선실록에 기록된 것은 단 몇 줄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인 것이다. 실제 대장금이라는 의녀가 존재했다는 사실밖에는 확인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우리는 그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감동받고 일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과거 의녀에 삶에 대한 관심까지 가질 수 있었다. 이는 방영당시 최고 시청률 55.5%를 기록하기도 했다. 만약 역사 드라마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됐다면 지금까지 명작으로 평가받는 “대장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시청자들의 흥미를 위해서 역사를 왜곡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역사드라마는 결과적으로 교육적인 효과까지 낳을 수 있다. 현 시대는 1인 미디어의 시대이다. 드라마가 성행하면 각종 1인 미디어를 통해 리뷰들이 쏟아진다.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라마에 대한 2차 감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는 시청자들의 생각과 상상을 확장시켜주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된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정정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한다. 만약 역사가 심각한 수준으로 왜곡되었다면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때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왜곡된 역사를 정정할 수 있으며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드라마가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더라도 현 시대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게 두지 않는다. 과거 수동적인 시청자들에서 현재 능동적인 시청자들로 그 역할이 변했다.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가져다준다는 우려는 시대착오적이다. 창작이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드라마는 창작자의 작품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고 있다. 저작권이 주어진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다시 말해 드라마는 제작자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권리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설사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수 있는 명분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