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
본 문 / 디모데후서 3:1∼5
주 제 /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은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작성일 / 2018년 2월 18일. (№ 18-07)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Ⅰ 경건의 능력을 요구하는 사순절 (딤후 3:5)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몇 가지 절기를 지키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절기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예수의 탄생과 부활은 느닷없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미리 예고된 사건이란 점이다. 예수의 탄생은 선지자 ‘이사야’가 구체적으로 예고하였고(사 9:6), 예수의 부활은 예수님 자신께서 직접 예고하셨다(막 9:31). 예고는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로써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자고 외쳤던 것이다(막 1:4).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은 무엇으로 준비해야할까? ‘경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경건한 태도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경건하게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절기가 ‘사순절’이다. 동방교회는 8주 동안 경건의 기간을 가지는데 비해, 서방교회 즉 로마교회와 개혁주의교회는 6주 동안 경건의 기간을 지킨다. 주일을 제외하면 40일 동안이기 때문에 ‘사순절’이라 부른다.
그래서 사순절 첫째주일인 오늘은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한다. 한국교회는 결혼식이나 파티를 절제하고, 여신도들은 흰 한복을 입음으로써 사순절의 경건을 표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은 아닌 것 같다. 디모데후서 3:5을 본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
‘경건의 능력’은 없이 ‘경건의 모양’만으로 사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한다. 즉 잔치를 금하고, 흰 한복을 입고, 금식을 하는 등 ‘모양이 아름다운 경건’보다는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은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Ⅱ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란? (딤후 3:1-4)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은 무엇일까? 우선 디모데후서 3:1에 주목해 보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딤후 3:1). 말세는 ‘고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고통하는’(칼레포스)이란 단어가 마태복음에서도 사용되었다. “…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마 8:28) 귀신 들린 자들이 몹시 사나워서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나워’란 단어가 ‘고통하는’과 같은 단어이다. 말세에는 ‘고통하는 시대’, ‘사나운 시대’, ‘사람이 살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말세가 고통하는 시대, 사나운 시대라고 말하는가? 바울은 14가지 근거를 제시하는데, 오늘은 사랑과 관련된 3가지 근거만을 살펴본다.
1. 자기를 사랑하는 현상 (딤후 3:2a)
첫째, 바울은 ‘자기를 사랑하는 현상’을 근거로 제시한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딤후 3:2a).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함으로써 그 시대를 고통의 시대, 사나운 시대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자기를 사랑함이 왜 문제인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자기만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이다. 바울은 ‘이기주의’(利己主義)가 세상을 고통의 시대로, 사나운 시대로 만든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산행’이란 영화는 이기주의가 재앙을 불러온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였다. ‘수완 아빠’는 펀드 매니저인데, 그와 그의 동료들이 작전 걸어 살려놓은 회사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바이러스의 출처이다. 기차에서 괴물들에게 쫓겨 도망친 뒤 수완이가 어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수완 아빠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런 때는 자기가 우선이다”라고 말한다. 대전역에서 정차하면 모두 격리될 것이란 정보를 얻자 사람들에게 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와 수완이만 다른 곳으로 피신할 계획을 세운다. ‘운송회사 임원’이란 남자도 등장하는데, 대전역에 내렸으나 그곳도 오염되었기 때문에 다시 떠나야 하는데 하차했던 사람들이 승차도 하기 전에 출발하자고 다그친다. 기차가 출발한 후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문을 열어주지 않고, 문이 열리자 기존의 시민들과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따로 격리한다. 그때 ‘진희’라는 여학생은 기존의 시민들과 함께 있어야 했지만, 기존시민들과 함께 있으라는 남자친구의 제안에 “저 사람들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감염되었을 수도 있는데, 세균에 감염되었을 수도 있는 사람들보다 이기주의에 감염된 사람들이 더 무섭다는 것이다. 이 여학생의 대사가 작가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천국잔치의 비유’(눅 14:16-24)에 보면 잔치 초대를 받았으나, 참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밭을 산 사람, 소를 산 사람, 강가 든 사람이, 밭을 샀기 때문에, 소를 샀기 때문에, 강가 들었기 때문에 참여를 거부한다. 잔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잔치다운 잔치가 된다. 잔칫집에 사람이 없다면 누가 잔칫집이라 하겠는가? 그러므로 밭이나 소를 샀다 해도 잔치에 참여하고 난 뒤에 둘러보면 되는 일이다. 장가를 들었다면 아내와 함께 잔치에 참여해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잔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남의 잔치야 어찌 되든지 내 일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유 끝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눅 14:24a). 이기주의로 무장된 사람은 천국잔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경건을 가꾸는 기간이다. 십자가에는 이기심이 없다. 십자가에는 오직 이타심뿐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생각하는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은 이기심을 버리는 경건, 이타심을 채우는 경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2. 돈을 사랑하는 현상 (딤후 3:2b)
둘째,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현상’을 근거로 제시한다, “사람들이 … 돈을 사랑하며 …”(딤후 3:2b). 사람들이 돈을 사랑함으로써 ‘고통하는 시대’, ‘사나운 시대’로 만든다는 뜻이다. 바울은 교회의 일꾼을 세울 때에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딤전 3:3).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일까? 바울이 대답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모든 악은 돈을 사랑함에서 시작된다. 또한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된다. 또한 돈을 사랑하면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지 말라고 당부한 것이다. 교회와 세상을 고통하는 시대, 사나운 시대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이 자신을 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예수님의 말씀이다.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돈도 섬길 수는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돈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돈으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게 해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돈을 사랑한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는 그 경건은 ‘모양만 아름다운 경건’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돈으로 하여금 자신을 섬기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순절이 요구하는 경건이다.
3. 쾌락을 사랑하는 현상 (딤후 3:4b)
셋째, ‘쾌락을 사랑하는 현상’을 근거로 제시한다.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4b). ‘쾌락’이 무엇인가?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을 통해 오는 즐거움’이 곧 쾌락이다. 사람들이 감성의 만족을 추구하고, 탐욕을 이룸으로써 얻는 즐거움을 추구하니, 그 시대가 고통하는 시대, 사나운 시대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쾌락을 사랑함’과 ‘하나님을 사랑함’을 대비시키고 있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이 감성의 만족을 추구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성의 만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이 탐욕이 성공함으로써 즐거워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땀 흘린 보람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은 탐욕을 채우기 위해 훔치고, 빼앗고, 속인다. 그 일이 성공하면 복을 받았다고 좋아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런 이익을 두려워하면서 오직 땀을 통한 수확만을 즐거워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빼앗고, 훔치고, 속여서 성공한 사람들이 그런 쾌감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십일조, 감사헌금을 잘 바친다. 목사님에게 목숨이라도 바칠 듯 충성을 다한다. 그래서 장로가 되고, 장로가 되어서는 교회를 좌지우지한다. ‘모양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그러나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은 아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는 자리에서 어찌 훔치고 빼앗고, 속여서 얻는 수확을 즐거워할 수 있는가? 빼앗기고 속았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생각하기에 분노하지 않고, 물들지 않고, 묵묵히 신앙의 길을 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다.
Ⅲ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을 채우는 사순절
오늘의 본문 디모데후서 3:5을 다시 본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
바울은 ‘모양이 아름다운 경건’으로 채워진 사람을 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을 채우라고 말한다. 2018년 사순절은 우리 안에 ‘능력이 아름다운 경건’이 가득 채워지는 절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