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대 예술심리치료학과 23학번 2학년인 나는 시험만 보면 말씀과 신앙을 잡기 어려워한다 시험기간에 공부에 몰두하며 밤새면서 쪽잠자면서 공부를 한다 평소에 엄청 열심히 하지 않아서 더욱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년도에도 똑같이 시험기간에 밤을 새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밤을 새가며 정신 없이 몰아치면서 공부를 한 탓인지 그 외에는 항상 잘 신경쓰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삶 가운데서 또 잠깐의 시험기간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손을 놓쳤다 그래서 수련회에 다시 오게된 첫 날부터 사실은 살 것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치 사막에서 오래 걸으면서 온 몸에서 물을 갈망하다가 물을 마시며 온 몸에 수분이 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고 나눔을 하면서 성령 가운데 회복됨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 첫 날에 허진열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반복되는 죄 가운데 나는 죄를 이기려고 죄와 싸우면서 발버둥까지 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닳게 되었습니다 "죄 짓는게 그냥 쉽고 편하니까" 라고 합리화하며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목사님 말씀 중 모든 상황 가운데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을 발견하고 모든 곳이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 짓지 못해서 안달 난 저를 발견하게 되었고 저는 저의 죄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나의 죄를 인식해야한다. 하나님 경외함을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나의 마음 속의 주인으로 모셔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위 자아를 버려야한다.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한다. 라는 말씀과 뜻을 받게 되었고 나를 더욱 돌아보는 말씀의 시간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서 너무 은혜를 받은 시간들이었다 또한 이어서 2일차 김성경 전도사님 설교 시간에 믿음은 나의 환경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라는 말씀과 함께 머리가 띵해졌다 다시 나를 돌아보게되었고 나는 그동안 내가 바뀌기 위함도 있었지만 사실은 나의 마음 가운데 나의 환경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랬었구나라는 마음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들은 말씀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던 것이 아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처음 만나고 경험하게 된 이후로 하나님의 벌이 무서워서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를 다 아시는데 내가 죄인이라고 하니까 괜히 온전한 자이고 싶어서 다 믿기지 않으면서도 거짓으로 믿었구나 라는 저의 죄를 깨닫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죄를 고백하며 회복하는 은혜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처럼 이번 여름 수련회에서도 목소리가 점점 쉬어가는 것이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빨리 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오직 믿음으로 작년처럼 또 한 번 다시 제 목을 살피사 뚫어주시리라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며 기도했더니 오히려 목이 안 막히고 목은 더 쎈 강도로 주님을 부르짖었지만 오히려 현상유지가 되니 신기하고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는 그러한 은혜의 경험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저는 사실 초등학생 때 가정 가운데 큰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가정의 불화는 아니였지만 더 힘든 시간들이 있었죠 제가 11살의 나이에 동생이 생기게 되었는데 간절히 바랬던 동생은 엄마의 불치병과 함께 오게 되었습니다 태명까지 제가 지었던 저는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저는 어쩔 수 없다 라는 현실적 합리화를 이 때 처음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주말부부셨던 아빠가 집에서 출근을 하게되셨습니다 그거 하나는 너무 좋았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엄마가 점점 나아지면서 미뤄뒀던 아빠와 엄마의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엄마의 위가 아프다고 해서 였습니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다녀온 부모님은 위가 아프다던 엄마가 아니라 뜬금없이 아빠의 위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라는 것으로 정밀 검사를 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정밀 검사를 마치고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3기 라고 하더군요 엄마의 병간호를 하면서부터 그 사이에 생긴 것 같은데 만약 일찍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네요 어쨌든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그 뒤로 아빠의 항암치료 투병생활이 시작이 됩니다 저는 혼자 있는 시간들도 생겼구요 그 때 밤이 너무 무섭고 외로워서 컴퓨터를 하며 tv를 틀어놨습니다 tv 소리를 들으니 조금 안정이 되더군요 가끔 이모 집에 맡겨지며 거의 맡겨지다시피 한 시간들도 있었고 혼자 지내온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지내면서 신앙간증하신 대윤 조사님처럼 저도 게임 중독 음란물 중독에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혼자로써 지내는 시간이 점점 괜찮아졌습니다 아니 어쩌면 괜찮은 척해온 것일지도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빠는 위암 말기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저는 아빠가 죽는 전날에 그 사실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렇게 5남매 중에 셋째로 아래에 남자 형제가 없었던 아빠의 장례식에 상주로 제가 서게 됩니다 말이 상주지 사실 바지 상주였죠 그러다가 유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하게될 때 떼를 쓰며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저는 상주로써 한 아버지의 아들로써 소복 입히는 아버지의 차가운 머리를 붙잡으며 온기가 느껴지지 않고 이 사람이 살아있지 않구나를 얇은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한기로 깨닳게 됩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제가 아빠한테 다짐한 것이 있었는데 엄마 앞에서 절대 울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너무나도 났는데 울 수가 없었습니다 기를 쓰고 참았더니 저는 아빠의 소복을 다 입히고 쓰러지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저와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제가 11살 때 이사를 왔는데 이 곳의 전세대출을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으로 갚았습니다 그 후에 저는 당시 11살부터 하고 있었던 제과제빵 = 파티쉐의 꿈을 저희 집의 금전적인 상황을 알게된 이후로 접게됩니다 당시 달에 45만원 정도 들었던 학원이었고 맞벌이도 아니고 이제 외벌이 이신 엄마가 아빠 사망보험금이 남아있더라도 혼자 유지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꿈을 처음으로 포기해보았습니다 어쩌면 그 때 이후로 끝까지 해내는 것보다 포기가 쉽다는 것을 알게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내기보다 포기를 먼저 겪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뒤에 음악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래퍼를 준비하면서 4~5년 정도 준비하면서 장비도 얻고 녹음도 하고 가사도 많이 썻었지만 한계를 느껴 레슨을 받고자 했습니다 레슨비가 60만원이 든다더군요
엄마에게 레슨을 받고 싶다 자신 있게 말했지만 부탁드렸지만 금액을 듣자마자 저는 포기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하다가 더 이상 랩만 준비하면 안되겠다하고 공부를 그제서야 시작해 2년만에 4등급을 찍고 전주대 예술심리치료학과에 입학하게되었습니다 그렇게 16살에 하나님을 처음 만나게 된 뒤로 기독교 동아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희영 조사님에 소개로 스스로 찾아가게됩니다 그 뒤로 dsm에 매력에 사로잡혀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이렇게 긴 사정 설명을 한 이유는 제가 이러한 길들을 걸어오면서 (저는 중학교 때 사고를 몇번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가 알고 계신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손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것들도 모르십니다 말 한 적도 없고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버티면서 말이죠 그렇게 사촌들에게도 이제 가족 중에 남자는 너 혼자다 너가 엄마를 지켜야한다 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평생 돈에 신경 쓰지 않던 제가 점점 돈을 갈망하게 되면서 물들더군요 그렇게 살아가면서 스스로 모든 것을 짊어지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수련회 마지막 날에 예수의 이름만 부르고 주님을 부르짖으며 또는 찬양을 부르기만 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더군요 타이레놀을 먹어도 아팠습니다 그렇게 밖에서 앉아있는데 기도회 시작하면서 했던 부산 지체의 공연이 떠올랐습니다 본인이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감동과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과 몇 번 맛봤던 좌절감에 다시 삼켜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감정에 집어 삼켜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깊은 절망 가운데 바다를 깊이 가라앉는 것처럼 죽어가는데도 편안한 것처럼 위험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가보려는데 밀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얇은 문이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저기를 다시 들어가면 머리가 아프고 다시 두려워질까봐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꿈과 목표와 인생을 포기하고 얻은 조금의 알량하고 부질없는 그 재산이 사라질까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두려웠던 문을 열고 헬프데스크에 계시던 은현 간사님께 면담을 요청드렸습니다 그렇게 은현 간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됩니다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려고 하지않아도 돼 라는 말을 듣고 저는 깨짐에 가까운 무너짐을 겪게 됩니다 저는 눈물이 터져버렸고 급속도로 저를 삼키는 악한 영들이 눈물과 함께 씻겨나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평생 듣고 싶었던 말들을 듣게 되면서 감사하면서도 내 인생이 드러내지 않았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에 아무도 나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지 않았었구나 또한 아버지께서 간사님의 입을 빌려서 이러한 말을 해주시는구나 나에게 이러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아버지께 맡기라 라는 말씀을 하고 싶으시구나 오직 믿음으로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실 아버지를 믿으라 라는 메세지를 주시는 것이라고 뒤늦게서야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총 3차례를 냐리 울고 나서야 주의 은혜 가운데 씻겨지며 너무나도 두려웠던 문이 그저 얇은 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닳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과 나의 사이를 갈라놓는 죄의 방해와 같았던 벽과 같이 느껴지던 문이 얇은 막으로 느껴지며 은현 간사님의 위로를 받으며 기도의 자리로 다시 나아갔습니다 내려놓음에 대한 주제로 계속 기도하며 많은 짐들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어른이 아니면러 어른인 척을 계속 해야되었던 나를 내려놓고 내 모든 미래와 모든 인생을 아버지께 맡기겠노라고 다짐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또 다시 무너질지 모릅니다 수련회가 끝나 하루가 지나고 바로 앞에서 급정거하는 차 때문에 사고날 뻔하여 또 다시 시험에 들 뻔하였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들이 어떨지 설레기보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너무나 무섭고 돈이 없어 돈에 집착하고 물질에 집착하고 감사함을 잃고 나아갈까봐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게임과 음란물에 중독되어 살던 내가 돈이 없어 친구들과 제대로 한 번 놀지를 못하고 집 안에 쳐박혀서 가사만 쓰던 나를 폐인과 같았던 나를 2년 동안 공부시켜 전주대학교로 dsm으로 이끄시고 이렇게 수련회까지 이끄시며 회복으로 이끄신 아버지를 믿습니다 아버지의 계획 하심에 실수 따윈 없으니 죽으려고 하던 나를 두려움으로 살리시고 가장 좋은 곳으로 나를 이끄신 사랑의 하나님 그 분을 믿고 의지합니다 또 다시 깊은 절망가운데 어려움 가운데 죽음 가운데 있더라도 포기치 않으시는 생명되시는 예수를 그의 십자가를 보혈의 피를 믿고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다짐하는 수련회가 된 것 같습니다 다시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이러한 은혜의 기회를 주신 dsm에게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