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정신은 용서와 화해입니다.
본 문 / 이사야 53장 5절
주 제 / 그리스도인은 이웃과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십자가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작성일 / 2024년 2월 25일. 사순절둘째주일. (№ 24-0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Ⅰ 십자가정신은 용서와 화해 (사 53:5)
사순절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신앙’에 집중하는 절기라 했다. 신앙의 연조가 더해갈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십자가신앙’을 다시 회복시키는 절기이다. 그래서 ‘사순절둘째주일’인 오늘도 ‘십자가정신’을 배우려 한다.
오늘의 본문 이사야 53장 5절을 다시 본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인데, 이는 우리의 죄를 사면하기 위함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십자가정신’을 가르친다.
첫째, 이사야가 가르치는 십자가정신은 ‘용서’이다.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c).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나음’을 준다고 가르친다. ‘나음’이 무엇일까? ‘치유’이고, 내적으로는 ‘용서’이다. 이사야가 가르치는 십자가정신은 ‘용서’이다. 그러니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려면 용서해야 한다. ‘용서’가 우리의 십자가이다.
둘째, 이사야가 가르치는 십자가정신은 ‘화해’이다.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사 53:5b)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평화’를 준다고 가르친다. ‘평화’는 ‘화해의 열매’이다. 그러니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면 화해해야 한다. 화해가 우리의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사순절에는 ‘용서의 신앙’과 ‘화해의 신앙’에 집중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용서하고, 예수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면서 화해하는 절기이다. 2024년 사순절에는 꼭 용서하고, 꼭 화해하길 바란다.
Ⅱ 용서와 회해의 대상 (마 10:36; 롬 5:8)
그러면, 용서와 화해의 대상은 누구일까? 십자가신앙에 집중하고자 하는 우리는 누구를 용서하고, 누구와 화해해야 할까?
첫째, ‘가장 가까운 이웃’이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다.
‘가족들’, ‘친구들’, ‘교우들’이 용서의 대상이고, 화해의 대상이다. ‘먼 친척’이나, ‘한 다리 건넌 친구’,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가끔 보는 관계, 한발 떨어져서 보는 관계이다. 그래서 서로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 받을 일도 없다. 원수 될 일이 없다. 그런데 ‘가족들’, ‘친구들’, ‘교우들’은 매일 만나고, 매일 전화한다.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서로 냄새로 맡게 되고, 숨소리도 듣게 된다. 서로 격이 없는 사이이다. 그래서 무심코 뱉은 말이, 무심코 취한 행동이 상대에게 큰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상처를 받은 사람은 너무 가까운 사이이니 서운하다 말하지 못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일들이 몇 번 누적되다 보면 마음의 담이 생기고, 피하게 되고, 미워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계기가 되면 ‘펑’하고 폭발한다.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가장 가까운 이웃을 통해 상처를 받고, 또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상처를 준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원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니다. 용서하고 화해하여서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저에게도 마음의 짐이 있었다. 노회에서 크고 작은 의견차가 되풀이되다 보니, 가장 가깝게 지내던 두 분 목사님과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연락 없이 지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한 목사님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다. 잠간 망설였으나 이내 아내와 함께 찾아갔다. 얼마나 반가워하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또 한 분의 목사님 아내가 소천하셨는데, 장례를 마친 후에야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노회목사님들 중 그 분과 인연이 있던 목사님들 다 연락해서 조의금을 모으고, 식사비까지 준비해서 모두 함께 만났다. 얼마나 반가워들 하시는지 마음의 짐이 모두 사라졌다.
가깝게 지내면,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많다. 예수의 십자가를 배운 사람, 자기십자가를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 먼저 용서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니, 예수님께서 병사들에게 붙잡힐 때,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때에 ‘베드로’가 그 곳에 있었는데, 예수님 면전에서 세 번이나 부인했다고 한다. 맹세하여 부인했고, 저주하며 부인했다고 한다.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랬던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함께 먹자”고 하신다(눅 24:30). 그러자 제자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부인하고 도망쳤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다. 용서와 화해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우리가 가족들, 친구들, 교우들을 용서하고 먼저 화해를 청하면 나를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얻게 된다. 나를 가장 아끼는 친구를 얻게 된다.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는 교우를 얻게 된다. “함께 먹자” 이 한 마디면 되는 일이다.
둘째, ‘자기 자신’이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량한 마음’ 즉 ‘양심’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악하다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인 양심이 있다. 바로 이 양심이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어떤 일을 계획하다가도 옳지 않은 일이라 판단되면 포기하게 하는 것이 양심이다. 남의 물건을 훔쳤다가도 비난을 무릅쓰고 돌려주게 하는 것도 양심이다. 양심은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그런데 양심이 지나치면 자신의 인생을 마구 흔들기도 한다. 죄책감 자극하여서 자신을 괴롭힌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8:12) 히브리서가 하나님의 말씀 두 가지를 전한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불의를 괘씸히 여기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말씀을 전한다. 왜 죄악에 빠진 우리를 미워하지 않으시고, 측은히 여기실까?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죄에 빠졌던 우리 자신을 괘씸히 여기지 말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측은히 여겨야 한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용서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훌훌 털어야 한다.
로마서 5장 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사도 바울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첫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시기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깨끗하고 정결할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더러운 죄인일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왜일까? 우리가 의인되기를 기다렸다가는 영원히 십자가를 지지 못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언제 용서하고 언제 화해해야할까? 새 사람으로 거듭났을 때에 용서하고 화해해야할까? 만약 그러려고 한다면 평생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거듭남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용서하고 지금 화해해야 한다.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증이다. 우리는 아무리 보잘 것 없이 보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 죄책감을 훌훌 털어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고, 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는 방법이다.
Ⅲ 십자가 정신이 향하는 곳은
사순절은 십자가정신을 배우는 절기,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절기이다. ‘이사야’가 오늘 우리에게 가르친 십자가정신은 용서와 화해이다. 먼저 가장 가까운 이웃을 용서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과 화해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함께 먹자!” 이 한마디면 나머지는 성령이 다 알아서 해 주신다. 다음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죄책감의 골방에서 훌훌 털고 나와야 한다. 이 또한 간단하다. 나를 진지하게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기도>
하나님 영광교회 성도들, 사순절에는 가장 가까운 이웃과 자기 자신을 용서하게 하소서. 가장 가까운 이웃, 그리고 자신과 화해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