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문화캡슐 동족마을을 찾아서<40>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영천이씨 (상)
2005년 05월 16일 00시 00분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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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들이 동족마을을 이루고 있는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는 뒤로는 불대산과 병풍산이 병립하고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로 한눈에도 명당터임을 알 수 있다. | | 광주.전남 문화캡슐 동족마을을 찾아서<40>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영천이씨 (상)
‘(담양)한재에 가면 이가떼가 있고 (광산)동곡에 가면 유가떼가 있다’
광주·전남지역의 대표적 동족마을인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한재)를 두고 내려오는 속설이다.
‘얼마나 동족들이 많고 동족간 유대의식이 강했던지 타씨 성들은 감히 함께 살아갈 수 없었다’는 뜻에서 유래됐다.
물론 한재골 이가떼는 영천이씨(永川李氏)요 광산구 동곡의 유가떼는 서산유씨다.
광주시 북구 오치동 패밀리랜드를 지나 담양쪽으로 달리면 대전면 대치리가 나온다.
대치리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로 명당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마을 뒤 북쪽으로 불대산과 병풍산이 병립해 있고 마을 앞에는 대평야가 전개돼 무등산을 조산으로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현재 대치리는 8개 마을 533호 가량이 살고 있으며 영천이씨가 280호로 절반이 조금넘는다. 한국전쟁 이전까지만해도 영천이씨는 500여호가 넘었다.
그러나 도시화 바람과 함께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다른 성씨들이 들어오면서 예전같은 동족 유대의식이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고 이종섭(78·담양군 대전면 대치리)씨는 전했다.
문헌에 따르면 대치리는 고려초기에 후백제 견훤이 3개월간 머물렀다 전주로 이도한바 있다.
또 조선시대 단종복위운동의 여화(余禍)로 경기도 용인에서 피신해 온 영천이씨 영양군파(永陽君派) 11세 희증공(希曾公)이 이곳의 산세를 보고 터를 잡아 이름을 대점이라 불러오다가 일제시대인 1917년 동리폐합으로 대치리로 개칭 통합됐다.
대치리 영천이씨 후손들은 담양군지 등의 문헌에 따라 입향조는 희증공이고 시기는 연산군 2년 전후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영천은 물론 경북 영천군이고 옛 명칭이 영양군이었다. 경북 영천을 본으로 한 영천이씨가 전라도 담양의 대치로 입향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씨족사가 숨쉬고 있다.
영천이씨의 시조는 고려중엽 평장사를 지낸 이문한(李文漢)이다.
문중에서는 이때를 고려 중기로 보고 있으며 경북 영천에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나 5세까지 사적기록이나 묘소를 찾지 못하고 다만 6세 이영(李榮)은 금오위장군 기록과 함께 묘소가 영천군 청통면에 있다.
1798년 영천이씨 무오보 족보에 따르면 6세 이영이 아들 6형제를 두면서 가문이 번성, 여러 파로 갈라졌다.
장남 광순(光純)은 서승공파, 2남 광청(光淸)과 3남 봉(封)은 절손, 4남 극인(克仁)은 익양군파다. 5남 수춘(守椿)은 상장군공파, 6남 세화(世和)는 상서공파로 6세 이후 절손 등의 이력을 가진다.
대치면 영천이씨는 이영의 4남 익양군 극인의 후손이다.
극인은 6세까지 자손기록은 있으나 그후 기록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계미상이지만 극인의 후손으로 영양군(永陽君) 이대영(李大榮)과 울산군(鬱山君) 중영(仲榮)형제가 있다.
현재 영양군파 문중에서는 상계기록 미상으로 대영이 익양군파 이극인의 직계 손자뻘로 추정만 하고 있다.
때문에 대영은 영천이씨 중시조로 영양군파 1세가 되며 대치리의 직접 선조다. 동생 중영은 울산군파 중시조 1세가 된다.
한편 계보미상의 이박을 중시조로 하는 영천이씨 영동정공파가 있는데 현재 계대가 영양군파와 비슷해 ‘동본이파’가 있을 수 없다는 양 문중의 논의 끝에 합적을 합의하였다.
이후 이대영을 중시조 1세로 하는 영양군파는 2세 득분(得芬)- 3세 문경(文卿)- 4세 송계(松桂)로 이어진다.
송계의 큰 아들 5세 윤무- 6세 백고는 소감공으로 이어지고, 송계의 동생 송현(松賢)은 5세 천(天)- 6세 선-7세 백의 자손으로 판서공파를 이룬다.
그리고 5세 이천의 동생 흡(洽)은 6세 이석지(李釋之)로 이어지며 남곡공파(南谷公派)를 이루며 대치리 영천이씨의 직접 선조가 된다.
또 남곡공 이석지의 둘째 아들 7세 안직(安直)- 8세 효우당공(孝友堂公) 종검(宗儉)- 9세 중호(仲浩)로 이어진다. 또 중호의 둘째 아들인 10세 봉손(鳳孫)으로 이어졌으며, 봉손의 네째 아들인 11세 습독공(習讀公) 이희증(李希曾)으로 이어진다.
물론 희증은 영천이씨의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입향조다. 시기는 연산군때로 추정된다. 즉 대치리 영천이씨 사람들은 이문한을 시조로 익양군(이극인)-영양군(이대영·중시조 1세)-남곡공(이석지)-효우당공(이종검)으로 계대를 면면히 이어왔으며 11세 습독공때 대치리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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