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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교회와 새빛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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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소망/상급 스크랩 1. 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 - 시작하며 (정훈택/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상록수 추천 0 조회 6 14.11.05 15: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정훈택/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 신학자료
최정열 | 조회 26 |추천 0 | 2008.06.26. 12:07

 

 

 

                                        1. 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

                                            정훈택(총신대학교 신학대원원 교수)

## 시작하며

 

 기독교 신앙의 역사가 수천 년에 이르는 유럽에서 살다보면 신자들이 -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누구보다도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모습들은 어려서부터 오직 생존경쟁에서 이기고 앞서기 위해 배우며 익히는 한국식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 같은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 심히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서구 교회가 쇠퇴 내지 몰락해 가고 있다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간략하게 “양심적이고 성실하게 그리고 사회 선도적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적 삶”으로 분석하는 유럽형 신앙생활에 비해볼 때 한국형 신앙생활은 허황된 면이 적지 않다. 현세 기복적 사고와 생활이 신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어서 과정과 방법을 중요시하지 않고 결과와 성과에만 치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 지적되어 온 우리의 문제점이다. “꿩 잡는 것이 매다”는 속담은 개인의 삶에 만이 아니라, 전도와 목회에도 마치 진리인 것 마냥 통용되고 있다. 부정, 거짓, 술수, 모함 등을 마다않고 “하나님의 축복”인 출세와 성공과 부와 영광을 일궈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목회의 성공여부, 삶의 성공여부는 오직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적 삶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에 떨어져 썩어져 가는 한 알의 씨”나 “땅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 또는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 아니라 그 반대인 “맛을 잃은 소금”, “빛을 가린 등불”로 전락하고 있다. 진실과 성실이 아니라 모험과 대박의 꿈이 우리 기독교인의 삶과 사역을 지배하는 것이다.

 

 성경을 근거로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도 다르다. 한국에서 자라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경을 배우고 신학을 공부한 후, 그리고 더 공부하면서 만난 유럽 기독교 사회는 필자에게 우리의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 선배들이 배워주고 물려준 - 한국의 보수적 신앙과 보수적 신학 자체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겠다는 동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이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와 과제를 안겨주었다.

 

 하나님을 믿으며 한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한 한 우리는 겸손하게 서구 사회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곳에도 지적하고 수정해야 할 문제점들이 적지 않지만 서구 기독교 사회와 그 사회에서의 삶은 우리가 배워야 할 많은 기독교적 요소들과 바람직한 삶의 모델들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적 삶을 한 방 대박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루하루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 차이를 필자는 “성실한 삶”과 “허황된 삶”의 차이로 요약하고 싶다.

 

 어디에서 이러한 차이가 왔을까? “성경을 잘 몰라서”나 “성경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답은 피상적이다. 아니 틀린 답이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성경을 더 많이 읽고 더 열심히 공부하며 더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만큼 축자적으로까지 성경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성경에 대한 우리의 열심은 가히 세계 톱 수준이다. 따라서 “성경을 몰라서”나 “성경대로 하지 않아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성경의 사용과 성경에 대한 사랑에 눈을 돌리면 오히려 정 반대의 답에 도달한다. 즉 성경을 더 사랑하고 더 애용하는 우리 한국 신자들이 성경대로 산다고 하면서도 성실한 삶보다는 허황된 삶을 쌓아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을 비평하고 고대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맞추어 분석하며 그 중에서 눈에 좋아 보이는 것만을 취사선택하여 현대적 삶에 적용하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더 성실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그렇다면, 고전적 성경관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언제라도 인생의 황혼에서 신앙의 만루 홈런을 치는 그런 종류의 삶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기독교인들이 성실한 삶을 추구하려면, 따라서, 성경을 좀 덜 보며,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성경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면서도 적당히 얼버무리는 소위 자유주의적 태도를 익혀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원인은 우리가 성경을 너무 많이, 너무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보는 것에 놓여 있지는 않다. 우선 이 점을 지적하고 싶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다음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한국 교회가 성장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멋대로 살다가 삶을 마감하기 전에 극적으로 주님을 만나 갑자기 천국을 소유하는 그런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우리가 “허황된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은 대부분의 신자들이 경험하는 인생의 대 역전 드라마였다. 그래서 누구나 이러한 삶을 당연시했고 또 누구나 그렇게 변화되기를 기대해왔으며 그것을 정상적인 기독교적 삶이라고 생각했다. 기독교란 멋대로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다가 복음을 듣고 갑자기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가 백 년 이상 이어져 오는 동안 한국교회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인생의 역전 드라마를 경험하는 바울식 회심보다는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찬송을 익히고 기독교적 분위기를 좋아하며 아빠를 부르듯이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경을 자신의 사고와 존재의 틀로 가진 그런 신자들이 훨씬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인생의 기막힌 역전 드라마로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적 삶은 이제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도 어머니의 태로부터 차곡차곡 배우고 익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멋대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돈과 명예와 출세만을 꿈꾸다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영적 축복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느 모로 보거나 “허황된 삶”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기독교적 삶이 계속 대박을 손에 넣으려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것이 지금 우리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이다. 성실한 삶이 아니라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신앙생활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것.

 

 성경을 곧이곧대로 읽고 외우고 공부하며 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경건한 자세로부터 바로 “우리의 허황된 기독교적 삶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바른 삶이 아니라는 것도 정확하게 옳은 말이다. 성실한 삶을 요구하는 성경에서 허황된 삶이 비롯되는 이 현상의 최 근저에 필자는 한국식 “상(賞)의 신학” 즉 “상급론(賞給論)”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한글 성경의 오역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성경은 “삯의 신학” 즉 보상론(報償論)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한글 성경에 오역된 부분들을 수정하고 이 수정에 필요한 신학적 과제를 떠안고, 즉 성경적, 개혁신학적 보상론을 정립하고 이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을 성실한 삶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 유럽형 기독교인들에게만이 아니라 -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도 가능하다. 이 글은 왜 “상의 신학”/“상급론”이 잘못이며 “삯의 신학”/“보상론”으로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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