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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스크랩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거룩하신 하나님>
상록수 추천 0 조회 10 14.11.08 23: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포스트 모더니즘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거룩하신 하나님> 책에서 길을 묻다

2008/02/25 09:13

 http://blog.naver.com/yookang73/100047912395

 

 

 

옥성호 형제의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를 읽고 그 책에서 다룬 내용을 좀더 신학적인 차원에서 깊이있게 고찰하고자 데이비드 웰스의 책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데이비드 웰스의 책은 처음에 읽을 때는 무척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한번 두번 읽다보면 그 안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진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계몽주의 지지자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연이성(natural reason)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와 도덕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인간은 경험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건을 겪으면 대체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하나는 신적 존재에 대한 갈망이고 또 하나는 염세적인 태도로의 전향이다. 20세기 후반은 계몽주의의 열정이 사라진 공터에 새로운 잡초가 기세를 완전히 장악한 시대였다. 그 기세는 다름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담론(metanarrative)' 즉, 모든 것을 초월하는 의미를 경멸한다. 거대담론이 존재하지 않기에 개인 취향을 능가하는 의미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탈현대성의 시대에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걸 도저히 못견뎌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종교를 크게 부정하지 않으나 전체를 아우르는 진리에 대한 열정 대신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로서의 종교를 선호한다. 뚜렷한 경계를 긋기보다는 관용과 포용을 우선시한다. 탈현대성의 시대에는 경계가 따로 없다. 거대담론이 없는 곳에서는 경계를 가로질러 사방으로 넘나드는 행위를 적극 지지한다. 웰스는 팝스타 마돈나야말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경계가 무너지는 이런 현상을 대중문화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인식하고 이용한 사람은 팝스타 마돈나일 것이다. 실제로 그녀는 경계를 가로지르는 모습을 통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녀는 세련되면서도 통속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것 같으면서도 빈틈없고, 새침하면서도 유혹하는, 전형적인 처녀 매춘부다. 많은 점에서 그녀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완벽한 화신이다. 다시 말해, 실체 없는 느낌이요, 목적 없는 활동이요,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자신을 창조한 인물이다. 그녀의 세계에서 만물은 유동적이고 개방되어 있다. 모든 경계와 금기는 사라진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거대담론'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취향을 능가하는 의미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영역 안에서는 옳고 그름, 선과 악, 예절과 무례의 구분이 붕괴될 뿐 아니라 부적절하다. (p. 79)

 

이러한 탈현대성은 종교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리는 특정 종교에만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감히 어려운 세상이다. 종교가 빌미가 되어 이 세계에 가져다준 혼란과 무자비함은 종교간의 타협과 관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종교간의 타협'과 '엄격한 분리주의'는 이 시대의 혼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검'과 '평화'를 동시에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적인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워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부름받은 존재인가 진리를 사수하도록 부름받은 존재인가? 이 난제는 개인적으로도 풀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지만 지금 당장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만한 힘이 내겐 없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다준 '관용과 상호존중'의 메시지에 함몰되지 않고 진리 그 자체로서의 진리를 탐구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이 의문점을 해결해나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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