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도서관 수필쓰기 강좌 –7차시 (2022년 5월 25일 수)
수필창작의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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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품 첨삭 지도
1. 내 마음의 쉼터 / 김을수
1. 산과 들이 초록이다. 봄꽃들이 제멋을 뽐내고 쏟아지는 햇살에 신록이 반짝거린다.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에 엄살을 부리듯 가지끝에 매달린 나뭇잎이 나붓거린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초록빛은 설렘으로 속살댄다.
2. 이때면 반겨주는 이 없는 고향 마을이 눈앞에 남실거린다.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마을은 언제 가도 넉넉하고 평화롭다. 모내기가 끝낸 넓은 들은 여린 풀빛 바다를 이룬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마을 골목길은 인적없는 한낮의 정적이 나를 에워싼다.
3. 부모님과 살았던 옛집에는 모두가 떠나버려 이제는 선뜻 들어서기도 머뭇거려지고 낯설다. 어머니의 손길로 화사하던 화단엔 채송화와 석류꽃이 무심한 옛 주인을 반기듯 바라본다. 마당 한쪽에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감나무를 보니, 어린 시절에 새벽 일찍 일어나 감꽃을 많이 주우려던 형제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떫음과 달콤함이 오묘하게 섞인 감꽃, 짚으로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벽에 걸어 놓고 말리며 하나씩 따먹던 그 맛이 기억 속에 아련하다. 추억을 되씹으며 발걸음을 돌리니 곰삭은 세월만큼이나 허물어진 담장 밖에서 키다리 접시꽃이 방실거리며 배웅한다.
4 .마을 둑길 끝에 있는 당나무가 제 품만큼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에 자리를 깔고 앉아 본다. 숨을 크게 몰아쉬니 풀숲에서 밀려오는 건초 내음이 구수하다,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도 지긋이 올려다보고 푸른 나무들도 한참 바라보니 내눈도 푸르르며 시원해진다
5. 한여름 냇가에서 멱을 감고 자갈을 치마에 수북이 담아와 공기놀이하며 재잘거리던 동무들의 소리가 환청되어 지나간다.
그 때의 소꼽동무들도 어디에선가 각기 다른 일상에서 세월의 탑을 쌓으며 이 고향을 추억하고 있으려나?
6. 마을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소리가 추억에 잠긴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몸을 일으켜 강둑 아래 흙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니 마음의 물결도 잦아든다. 부드러운 강바람이 내몸을 감싸고 돌아가니 어머니의 품에 안긴듯 시름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7.생전에 어머니는 늘 선심공덕을 강조하셨다. 그래선지 어린 시절 고향집엔 참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수시로 이웃들이 갖고 오는 애환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셨다. 시든 꽃나무를 들고 오면 어머니의 정원에서 생기를 찾았고, 동상으로 발이 퉁퉁부은 아이를 데려오면 두부 간수로 부기를 빼 주기도 했다. 끼니때가 되면 박바가지에 밥 한 주걱에다 그날 반찬인 나물들을 한 주먹 올려 툇마루에 내놓아 지나다 굶는이들의 주린 배를 채우게 했다.
8. 살아보니 인생은 공덕과 비례하지만은 않는 것일까?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평범한 진리도 빗나가기 일쑤다. 삶이 팍팍하고 헛헛할때 찾게 되는 고향은 내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는 쉼터다. 그곳에 남아 있을 어머니의 흔적을 추억해보면서 때때로 나약해지는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을 얻는다. 어느새 내 모습위에 내려앉은 나의 세월도 붙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만 가고 있다. 이제는 참고 기다리며 품어야 할 내 삶만이 오롯이 남아 있다.
9.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빛나는 신록이 느린 내 걸음을 재촉하며 등을 떠민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 일상으로 어서 돌아가라는 어머니의 토닥거림이 내 어깨 위에 머문다.
2. 부부란 음식솜씨도 닮아가는구나(아침 식습관) / 남병웅
1.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아침 식습관이 바뀌었다.
그동안 식습관은 면을 즐기지 않아서 세끼를 꼭 밥으로 찾아 먹는 편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나니 거리두기와 집합금지 등으로 대외 활동이 줄어들고 일상생활에서도 급격한 변화 속에 온택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콕하는 날이 많아졌다.
2. 그동안 주업이 강사이다보니 전국을 누비며 활동을 해 왔는데 코로나 발생 첫해에는 강의도 거의 대부분 취소되고, 모임도 취소되니 외출 할 일이 대폭 줄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삼시세끼를 집밥으로 해결하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활동량이 줄어드니 세끼식사를 밥으로 계속하기가 몹시 부담스러워졌다.
3. 그래서 아침이나 점심 중 하루 한 끼정도는 가볍게 간편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아침에 밥만 챙겨 먹었는데 코로나로 집콕하면서 아침에 밥을 먹고 나면 돌아서서 점심을 먹게 되는 것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식사로 밥 대신 우유식빵을 구워서 야채, 과일과 함께 더치커피 한잔 마시는 것으로 해결했다. 처음에는 식사를 한 것 같은 포만감이 들지 않아서 다소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면서 이제는 습관화가 되었다.
4. 아내는 식빵을 먹을때는 꼭 야채와 과일을 같이 먹는것이 좋다고 강조를 한다. 샌드위치처럼 식빵 사이에 야채와 과일을 넣어서 이따금 계란 플라이 까지 얹어서 먹을 때도 있다. 1년정도 하고나니 맛있게 해먹는 노하우도 생겼다. 어제도 식빵으로 간편하게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이것 저것 찾아냈다. 에어플라이에 넣어서 구운 식빵에다 잼을 바르고, 쌈추, 깻잎, 토마토, 딸기를 얹어서 더치커피 한잔과 같이 먹으려고 준비했다.
5. 차려놓고 먹으려다 보니 그림이 좋아서 폰으로 찍어서 가족톡방에 올렸다. 사진을 보고 아들과 딸이 당근 엄마가 차린 건 줄 알았다고 하며 놀라운 반응들이다. 결혼때부터 둘이 얼굴이 닮았다는 소리를 유난히 많이 들어 왔던터라 이정도는 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럼 같이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하면서, ‘역시 부부란 음식솜씨도 닮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6. 결혼후 40년 세월을 같이 살다가 보니 아내가 음식하는걸 자연스레 보고 배우게 되고, 맛있게 해 주는 음식을 잘 먹어 왔으니 식성도 닮아갈 수 밖에 없을 터이다. 게다가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삼시세끼 집밥을 먹으면서 시간여유가 생기니까 조리를 할 때 거들거나 직접 해 볼 기회가 많아진 것도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7. 아침 간편식이란 제목으로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였더니 지인이 댓글로 ‘이 정도면 절대 간편식이 아닙니다.’ 라고 적었다. ‘그럼 뭐라고 할 까요?’ 하고 답글을 적었더니 ‘정찬이라고 해야지요.’라고 답했다.
8. 아무튼 간편식이든 정찬이든 내가 직접 식빵과 야채 과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먹고 있다는 것이 큰 변화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밥 대신 식빵과 야채, 과일로 가볍게 먹는것으로 식습관이 바뀐 것이다. 손녀들 유치원과 학교 보내는데 바쁜 아내는 아침식사 준비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코로나 덕분에 이제는 내가 우리집 아침식사 고정 당번이 된 것이다. 오늘도 이 모든 것에 감사하며 즐겁게 하루를 시작한다.
3. 노년의 아름다움/이문자
1 사람만 노년에 볼품없어지는 게 아니다. 나이 들고 기운 없어지면 개나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소나무 또한 그렇다.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솔방울이 더욱 많이 열린다. 그런데 빽빽하게 열린 솔방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2 꽃마저 이런 우주의 이치를 감당해야 한다. 화려하면 할수록 끝은 더 볼썽사납다. 푸르른 봄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목련꽃을 보라. 코를 대면 갓난아기의 몸에 밴 젖내음이 훅 풍길 듯, 우윳빛으로 타오르는 꽃. 마치 봄의 신탁이라도 받는 중인 양 당당한 모습. 그러나 말로는 처참하다. 어느 작가는 구질구질하게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양을 말기 암 환자에 비유했다. 또 누구는 상갓집의 낭자한 곡소리 같다고도 했다.
3 목숨 없는 사물들도 매한가지다. 가전제품의 수명은 얼추 잡아 십 년 내외다. 좀 더 오래 쓰기도 하지만, 그럴 때의 몰골은 흉하다. 세탁기는 찌든 때가 잘 빠지지 않게 되고, 텔레비전은 화질이 나빠지거나 고장이 잦아진다. 냉장고는 또 어떤가. 무슨 치명적인 질병으로 밤새도록 앓는 중환자처럼 시끄럽다. 문을 꼭꼭 닫아걸고 지내는 겨울은 그래도 좀 낫다. 문이란 문을 있는 대로 활짝 열어놓고 지내는 여름밤이면, 냉장고 속에 말매미 군단이 점령한 듯 착각할 지경이다.
4 결혼 전에 분양받은 아파트가 하나 있다. 셋집을 전전하며 잦은 이사에 허덕이던 차에 좀 무리해서 장만한 집이다. 스무 평이 안 되는 5층 아파트. 고향이 시골이어서 대학생인 여동생과 고등학생인 남동생과 함께 자취를 했다. 결혼해서도 한참 이곳에서 살다가,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5 지은 지 40년이 넘어 재건축을 하게 됐다. 몇 달 후면 새로 짓는다. 이 와중에 오래 세 살던 사람이 나갔다. 다시 세 놓기가 어중간하여 비워두기로 했다. 그랬다가 생각을 바꿨다. 헐리는 날까지 서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집에서 작은 오디오를 제일 먼저 가져왔다. 책 몇 권과 노트북, 야외용 가스버너와 등산용 코펠, 커피잔 두 개와 낡은 주전자 따위를 가져왔다. 거의 매일 아침, 직장으로 학교로 가족이 나가면 여기에 온다. 옛날 생각을 하며 글을 써 보기도 하고, 무슨 대단한 학자라도 된 양 똥폼을 잡으며 책을 읽기도 한다. 자그마하지만 언감생심 내 복에 집 전체를 서재로 쓰다니!
6 식구가 모두 늦는다고 해서 아홉 시가 넘어 서재를 나선다. 원래 한적한 동네인데다가 빈집이 꽤 많아 단지의 밤 풍경은 생기가 없다. ‘재건축을 축하합니다. 조합원은 왕이십니다.’현수막이,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무슨 억지를 쓰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 금이 가고 칠이 벗겨진 건물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하릴없이 배회하는 명예퇴직자 같다. 여기저기 털이 빠진 강아지가 비를 맞아 푹 젖은 것 같다.
7 단지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 어슬렁거린다. 까닭 모를 서러움이 목구멍을 치민다. 이 집을 분양받아 이때껏 함께 나이 먹었다. 이 집이 낡아가는 동안 동생들이 중년이 됐고, 나 또한 주름투성이 노인이 다 됐다. 이십 대의 생기발랄한 발자국이 이 길 어디에 각인되어 있을 것만 같다. 딸아이가 아장 아장 걸었던 발자국이, 아직도 여전히 모시조개만 한 그 발자국이 새겨져 있을 것만 같다. 눈오는 날 엉덩방아를 찧었던 그 모습이 여기 어딘가에 찍혀 있을 것만 같다.
8 주름은 오래 살았다는 증거다. 수십 년 걸어온 발자국이 새겨진 거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부모님을 아주 먼 곳으로 떠나보내며 얻은 나이테다. 살아 숨쉰다는 보증서다.
9 자주 전기가 끊기고 이따금 녹물이 나오고 변기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 이 집. 너무나 불편하지만 이 공간은 내 젊은 날의 일기장이다. 형제자매들이 웃고 울던 사진첩이다.
10 꽃이 시들어야 열매를 맺고, 문이 비틀어지고 수도관이 녹슬어야 새것으로 바꾸듯이, 낡고 늙음은 풋풋한 새 삶을 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래 어슬렁거렸다. 가끔, 3년 후에 나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에 몸과 맘이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곤 했다. 그런데 문득, 달빛이 밝아지고 얼굴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이 하나 없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주름 하나가 한 권의 책이다. 굵고 깊은 주름은 백과사전이겠다. 내 얼굴을 달빛에 비춰본다. 첨으로 사랑스럽다. 서두에 열거한 늙은것들에게도 필시 유익함과 아름다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40여분 걸리는 집까지 걸어가며 그것에 대해 생각해봐야겠다. 발자국 하나가 역사책 한 페이지라고 여기니, 닳아빠진 내 신발이 노련한 사관의 붓 같다. (12매)
4. 남의 편 /차갑희
1.어버이날을 맞았다.
2. 전날, 당일의 혼잡을 피하고자 예약을 하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전화기는 통화 중 신호음만 남겼다. 할 수 없이 식당의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로 다들 약속하였다.
3.칠곡에 사는 큰딸 내외가 먼저 도착하여 다행히 자리를 잡았다.
“오늘 밥값은 당신이 계산하도록 해”
남편이 미리 언질을 주었기에 그러려니 하였다. 어젯밤 우리 집에서 갑자기 하룻밤 묵게 된 언니도 함께였다. 같이 사는 작은딸과 손자까지 한자리에 모이니 식탁의 웃음소리는 널리 퍼져나갔다. 입이 짧은 우리 식구보다 덩치만큼 식성이 좋은 사위를 위해 모자라지 않게 음식을 챙겼다. 적당하되 넘치지 않는 식습관을 가진 남편의 지론이 흘러나올까 조바심도 살짝 났었다.
4.남편은 우직하면서 고집 또한 황소 못지 않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건 끝까지 밀어 붙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는데에도 재주가 있다. 평생 함께 살아온 나만이 그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일에는 늘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땅 꺼질까 봐 걸어가기를 두려워하는 이 같았다. 소심하기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5. 4, 5년 전의 일이다. 함께 가게를 꾸려 가면서 점심을 먹은후 남편은 외근을 나갔다. 먼저 퇴근하라고 일러둔터였다. 마칠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서 있기조차 힘든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울렁증이 진정되기만 기다렸다. 구토까지 동반한 증세에 겁이 덜컥 났다. 말할 기운조차 없어질 무렵 겨우 연락을 취했다. 그이가 가게에 다시 오기까진 몇 시간이 걸렸다.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조금씩 나아질거 라는 것은 오산이었다. 정신을 놓지 말라고 울어대는 잦은 전화통에 짜증이 확 일어났다.
6. 일요일마다 어머님 댁을 찾을 때였다. 편두통이 예기치 않게 찾아왔을 때도 방문을 미루지 않았다. 식사를 겨우 챙겨 드리고 어머님 댁에 누워있다가 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집에서 쉬고 있지 왜 왔느냐는 어른의 말씀에 그이는 귓등으로 흘렸다. 불편한 모습을 보여 드리지 않고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7. 마뜩하지 않은 남편의 태도에 몇 번 반기를 들었다가 꼬리 내리기가 부지기수다. 다툼이 있는 날 말문을 닫아버린게 화근이 되어 더 크게 싸운 날도 있다. 원인과 과정을 분석하여 결과를 내는 성격과 달리 두루뭉술하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두 성격이 만난 지도 30여 년 세월이다. 모습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격도 조금씩 배어 들어갈 때인 것 같다.
8.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기 좋아하는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딸 내외, 우리 부부, 작은딸과 손자의 모습을 각각 담았다. 큰딸은 2년 차 부부지만 오랜 연애를 한 탓에 많이 닮아 있다. 작은딸은 사위를 그대로 빼 박은 손자와 함박웃음을 짓는다.
9. 식사가 끝나갈 무렵 슬며시 계산서를 챙겼다. 뺏을려는 사위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이의 눈빛은 완고하다. 다른 손님들의 시선에 멋쩍어진다. 지켜보던 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계산해야 되겠다!”
10. 자녀들에게 의지하는 세대도 우리가 마지막이라고들 한다. 가정을 꾸렸지만 홀로 계신 어머님이 늘 우선이었다. 효는 의무로 점철되었다. 아이들에게 만큼은 부담을 주지 않을려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올망졸망 많지 않은 식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없지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부모마음 이란게 이런 걸까? 언니의 중재가 없었다면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될뻔 했다. 때로는 자식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부모 된 도리의 한 부분이리라.
뺏으려는자와 뺏기지 않으려는자의 팽팽한 대립은 끝이 났다.
5. 사립문은 말하지 않는다 / 한외근
1. 내가 어릴 때 살던 시골집은 초가집이었다. 담도 제대로 없었다. 옻나무나 잡목 울타리가 고작이었다. 자연히 대문도 사립문이다. 싸리나무 가지로 얼기설기 엮은 것이다. 울타리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사립문을 달았다. 높이도 나지막했다.
2. 문을 닫는 다기보다 걸친다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그냥 닫혔다는 시늉만으로 족하다는 듯 비스듬하게 누워있었다. 인심 좋은 시골엔 튼튼한 게 필요치 않았다.
3. 문은 출입의 경계선이다. 누구라도 집 안으로 들어오려면 대문을 넘어서 들어와야 하고 집안에서 집 밖으로 나가려면 역시 대문을 지나야 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출입이다. 마치 허파처럼 호흡하는 곳이다, 대문은 막힌 담을 열어 주는 소통의 공간이다. 집안과 집 밖을 연결하는 통로이다. 생명을 유통하는 창구이다, 열린 이웃의 출발선이다. 그래서 문은 동고동락하는 벳동서의 가교이다 .
4. 사립문은 자연 친화적이다. 그 흔한 페인트칠 흔적도 하나 없다. 길에서도 마당 안이 훤히 노출되어 있다. 집안에서도 길 가는 사람이 뚜렷하게 보인다. 조직이 엉성하여 바람 길도 열려 있다. 먼지 길도 자유롭다. 흐름에 거스르는 게 없다.
5. 동장군이 몰고 오는 찬바람 군대에는 지진에 흔들리듯 삐거덕댄다. 여름날 눈치 없는 소낙비엔 온몸이 젖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지붕 없는 설움의 눈물도 빗물 덕분에 들키지 않는다.
6. 우리 집의 사립문을 매일 여닫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일과의 시작을 대문부터 여셨다. 샛별이 더욱 커진 검은 새벽을 깨우셨다. 밤중에도 마실 갔던 아들이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으셨다. 대문이 개폐되는 걸 별들도 내려다본다. 사립문은 아침이 되면 다소곳해진다. 저녁에는 더 친절해진다.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7. 사립문은 알고 있다. 밤이면 사랑채에 놀러 오신 동네 어른들의 밤참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손맛 냄새를 잊지 않는다. 도시로 공부하러 보낸 큰아들 학비 마련에 마음 졸이던 주인의 걱정하던 한숨 소리를 들었다.
8. 몇 번인가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고추와 숯을 꽂은 새끼줄을 사립문 위쪽에 달고 ‘우리 집에 아들놈 태어났어요‘ 시위하던 금줄도 보았다. 우시장에서 데려온 송아지가 며칠이고 어미 그리워 우는 애끓는 울음을 녹음기 틀어놓듯 잊지 않고 있다. 앞집의 바람난 소녀를 부르는 여드름 소년의 어눌한 고양이 소리도 기억하고 있다.
9. 가뭄이 심하던 어느 해 밤중에 자기 논에 물을 넣으려 수로를 몰래 바꾼 일로 뒤숭숭했던 마을 분위기는 오래갔었던 것도. 마을 인근에서 김신조와 함께 온 울진지역 무장 공비 잔당 토벌작전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은 청년과 동거하던 처녀의 사연도 들었다.
10. 70년대 초 크게 히트했던 TV 연속극 ’여로’를 보려고 마당에 멍석 깔고 앉아 웃고 안타까워하던 이웃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 마을에 한 대 뿐이던 전화 때문에 객지에서 걸려 온 마을 사람 집으로 달려가 “전화 받아라” 전달하느라 힘 빼시던 어머니의 땀 흘리는 모습도 저장하고 있을 것이다 .
11. 사립문은 얼기설기 엮어져 있어도 보고 들은 스토리들이 부지기수다. 어지간한 사건들은 꿰뚫고 있다. 에피소드를 듬뿍 저장한 보고이다. 그럼에도 잠금장치 하나 없이 입이 천금 무게다.
12. 아이들의 숨바꼭질에 부대끼며 몸살을 앓거나, 소 뒷발에 차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한 번도 시시비비의 증인이 된 적이 없다.
13. 비밀보장에 대한 윤리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누구에게도 사생활을 발설하지 않는다. 누구를 모함하기 위해 고자질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가짜 뉴스를 퍼뜨릴 줄도 모른다.
14. 그런 사립문도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다. 과수원을 지키던 우리 집 개는 영리했다. 자주 보는 동네 사람이 지나가도 인정사정없이 짖지만 오랜만에 찾아오는 친척에게는 희한하게 짖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15. 울타리 옆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잎이 쪼그라들며 뭉쳐지는 걸 바라보면서 살아 있는 것은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인가 궁금해했을까?
16. 외양간 횃대에 앉아서 자던 닭들이 허기 충전하러 숨어든 불법 사냥꾼 살쾡이 발걸음 소리에 진저리 치며 속수무책으로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을까 몰라.
17.사립문은 말하지 않는다. 사립문을 넘어 불나라 건너 먼 길 가신 아버지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6. 수레 /김형윤
1. 정이 많이 든 물건이다. 대구에 이사 와서 처음 산 것이니 20년이 넘었다. 손잡이의 플라스틱은 빛바래서 본래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쓰레기를 담아 버리러 나갔다가, 수레를 잊어버리고 그냥 집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나중에 가 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아무도 탐을 내지 않을 만큼 수레가 낡은 것이 분명하다.
2.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 주변에 장이 선다. 싱싱한 채소와 생선, 과일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구경만 하겠다며 집을 나서도 막상 시장에 가면 하나, 둘, 살 것이 늘어난다. 올망졸망한 보따리를 양손에 가득히 들어야 하는 수고를 수레가 대신해준다. 수레가 있었다면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셨던 할머니도 허리가 굽어지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3. 어린 시절 나는 늘 불만 속에 살았다.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은 것처럼 인상을 쓰고 다녔다. 공연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머니는 까다롭기가 밤송이 같다고 나무라셨지만 왜 그리 못마땅한 일이 많은지. 내 마음을 나도 몰랐다.
4.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하시던 날이면 나는 어디로 숨고 싶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돌아오신 아버지의 허름한 모습이 부끄러웠다. 영미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했다. 위인전에 나오는 간디나 세종대왕이 아니고 아버지를 존경한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아버지를 생각해보았다. 여름에는 늘 런닝구 바람인 아버지는 검댕이 칠도 씻지 않은 채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말씀이 별로 없고 무뚝뚝하셨다. 아버지는 다혈질이어서 가끔 불안정해 보였다. 뒤끝이 없다고 하지만 성격이 급한 아버지가 화가 나면 내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주사가 심하셔서 술을 많이 드시는 날은 집안의 평화가 십 리 밖으로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6. 나는 집을 떠날 생각을 자주 하였다.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된 것이 좋은 기회처럼 생각되었다. 가족을 떠난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발은 달콤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자취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스스로 자청한 생활이었지만 낯선 곳에서의 삶은 쓸쓸하였다. 저녁 빈방에 들어와 피곤한 몸을 누이면 눈물이 났다. 세상은 떫은맛이었다. 현실은 꿈꾸었던 나의 이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나의 삶은 비속하게 느껴졌다.
7. 어느 날 자취방에서 아버지의 짧은 편지를 발견하였다. 내가 없을 때 아버지가 다녀가신 것이다. 나의 안부를 걱정하시는 아버지의 서투른 글씨를 보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내가 원하는 대로 유학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돋보기도 없이 급하게 몇 자 적었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글귀가 안개가 낀 듯 흐릿하게 보였다.
8. 내가 결혼한 후 우리 집에 처음 오셨을 때, 아버지는 제일 먼저 달성공원에 가보고 싶어 하셨다. 무일푼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돌던 청년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다. 홀로 객지를 방황하던 아버지에게 공원은 갈 곳 없는 사람도 따스하게 품어주는 안식처였다. 햇볕을 쬐며 풀밭에 앉아 졸던 아버지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빵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달려가셨다. 손을 내밀었지만 잡히지 않았다. 바람에 신문지가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빈 하늘을 움켜잡고 주저앉은 젊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옛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외로웠던 시간이 하나, 둘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9. 아버지는 췌장암 진단을 받으시고도 담담하셨다. 오히려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서 자식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겨주시고 살림살이를 걱정해주셨다.
10. 이 세상을 내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에게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컸는지 몰랐다. 아버지의 장점뿐만 아니라 이해되지 않았던 단점조차도 내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11. 내 짐을 가볍게 해주었던 수레가 이제는 낡아서 안타깝고 때로는 가슴이 찡하기까지 하다. 우리를 위해 고생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스쳐 간다. 눈발이 흩날리던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내가 만든 보양식을 드시고 좋아하셨던 것이 어제 같은데.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닫힌 것처럼 느껴졌다.
12. “인생이 길지 않구나.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아라.” 아버지의 말씀이 유언처럼 남았다. 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는데 떠나시고 나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7. 앵두 따 듯 재미있는 일만 있을 순 없지 / 박송애
1.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남편이 현관 밖으로 나간다. 놓칠세라 꽁무니 따라가니 바구니 하나 들고 오란다. ‘어디 가?’ 대답은 안 하고 꿀 항아리 발견한 듯 히죽히죽 웃기만 한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보다. 발랑발랑 따라가 보니 텃밭이다.
2. 체리나무, 매실나무,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사이로 들어가니 앵두나무가 두 그루 있다. 앵두는 가지마다 휘어지게 달렸는데 손이 들어갈 틈이 없이 빽빽하다. 가지 하나만 따도 양이 엄청 많다.
3. 어릴 때 우물 곁의 앵두를 따 먹어본 기억은 있지만, 앵두를 이렇게 수확하기는 처음이다. 알맞게 영글어 탱글탱글하기도 하거니와 빛깔이 곱고 선명하다. 앵두 같은 입술이 왜 나왔는지 이해가 간다.
4. 그는 무슨 신기루를 발견한 듯 내내 흥분해서 소리치고 나도 덩달아 따면서 내심 흐뭇해서 어머나! 어머나! 탄성을 질러댔다. 식전에 앵두를 따오니 어머니는‘ 잘 따왔다고’ 하신다.
" 야야 바쁠땐 눈이 빠져도 줏어 넣을 시간도 없다"
아무리 주렁주렁 매달렸어도 농사철에 강아지도 바쁘다는데 두 분 손길이 앵두에게 미칠 여유가 없으신 거다. 날짜를 놓치면 저절로 떨어져 버릴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땄으니 횡재한 것만 같다. 앵두술을 가득 담고도 남을 양이다. 모든 일이 앵두 따는 것만큼 신나고 재밌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오뉴월 땡볕이 틈 하나 없이 내리퍼부을 때 해는 조금도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쨍 한 불볕 아래서 마늘 캘 때 숨이 헉헉 턱까지 차올라 고행도 이런 고행은 없다고 아침나절 앵두 따던 순간이 꿈만 같다. 더위를 보태려고 뻐꾸기는 목이 쉬게 울어대고 마른 땅은 시위하듯 더 굳게 입을 다문다. 마늘 양쪽 둘레를 삽으로 파고 대궁을 잡고 뽑는다. 어떤 놈은 질기게 아등바등하다가 도마뱀이 제 꼬리를 끊고 도망가듯 여전히 땅속에서 그 뿌리를 숨긴다. 그것은 상품 가치 없는 낙오자가 된 것도 모르고 승리에 도취한다. 고집도 왠만해야지. 사람도 융통성 없이 저리 뻗대다가는 자기 꼬리 하나 잘리지
6.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지열이 아른거린다. 감자 캐기는 아직 때가 일렀지만 온 김에 가져가려고 몇 포기를 우선 뽑는다. 흰 감자와 자주감자 두 가지다. 감자 캐기는 신이 난다. 뿌리에 조롱조롱 매달려 쭉 딸려 오는 재미. 엉뚱한 곳에서 난데없이 감자알이 뒹굴기도 한다. 예전엔 자주감자는 그 맛이 아려서 창고 헛간에 뒹굴었는데 농촌지도소에서 종자를 구해다 일부러 심으셨단다. 아버님은 예전 맛을 일일이 찿으신다. 생선도 숯불에 구워야 제맛이라고 하고 감자는 흰 감자는 쪄서 먹기엔 좋으나 반찬으론 너무 전분이 많아 목이 매인다고 자주감자를 심으신 거다.
자주감자는 돌멩이 처럼 울퉁불퉁 모양도 재밌지만, 그 빛깔이 아무래도 촌놈 같다. 이글거리는 태양 빛에 검게 그을린 농부, 익살스러운 토우일까? 그 속은 짠하다. 바늘 실에 자줏빛 피를 묻혀 한땀 한땀 문신을 새기면 이런 모습일까? 단면은 하나의 나팔꽃, 오랜 세월 동안 박대받아온 민중이다.
7. 집에 와선 뿌리째 뽑아온 완두콩을 손으로 깐다. 콩깍지 속에 여남은 개씩 파르스름하니 앉아 있는 데 특유의 향긋한 맛이 날로 먹어도 비리지 않는다.
8. 식전에 앵두 딸 땐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재미를 맛보았다. 뙤약볕 아래서 마늘 캐기는 왜 그리도 낮이 길기만 하던지. 엿가락 늘인 듯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가고 팽팽한 여름날은 바싹 마른 땅만큼 인정머리 없이 길기만 했다. 낮은 영영 지속될 것 같았다. 땅거미가 지고 일을 끝냈을 땐 고단함이 산 그림자처럼 몰려왔다. 앵두, 마늘, 감자, 완두콩을 싣고 오는 길엔 얼마나 깊이 잠이 들었는지 아파트에 도착하고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기실 남편이 더 힘들었을 텐데.
9. 시골에서 돌아오면 분주해진다. 이것저것 보따리를 풀어 챙겨야 한다. 늘 그렇지만 흙의 부산물들을 싣고 오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흙의 충일감이 가득 몰려온다. 보따리 보따리마다 담겨있는 흙의 손길, 부모님의 손길, 그 따뜻한 마음들이 내내 행복에 이르게 한다. 부자가 되어 버린 순간, 앵두 따 듯 재밌는 일만 있을 수는 없지. 흙에 감사 하면서.
8. 푼어치의 행복 /이장희
1.국민소득은 늘었다지만 서민들 지갑은 얇기만 하다. 노인의 절반이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고, 청년 일자리 형편도 뒷걸음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간혹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이웃에 내놓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있어 우러러 보인다. 반면에 단돈 몇 푼에 눈이 멀어 남을 해치는 일도 있으니 이것만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2.주머니에 잔돈이 없어 곤욕을 치른 옛 기억이 스쳐간다. 그때에만 해도 시내버스가 서민들의 유일한 발이었다. 신용카드도 대중화되기 전, 동네에는 토큰 판매소마저 없어 시내 볼일을 볼 때마다 여유 있게 사둬야 했다.
3.마침 그날은 버스에 오르고서야 아차 싶었다. 지갑엔 달랑 오천 원 한 장뿐이라 일찌감치 운전석에 다가가 신고했다. ‘기사님, 거스름돈 좀 준비해 주세요’라고. 기사는 느긋하게 기다려보라는 말만 내뱉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자리 잡고 앉아도 거스름돈 모일 때까지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싶어 좀이 쑤셨다.
4.잠깐 사이에 가슴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감나무 밑에서 홍시 떨어지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버스는 손님이 적었다. 중간에 타는 이도 하나같이 토큰만 넣질 않는가. 내릴 곳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스럽고 애간장이 탔다.
5.천 원 지폐는 끝내 쌓이질 않자 운전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냥 내리시오.’한다. 마치 범죄 피의자가 무죄판결 받은 듯 안심은 되었다.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쥐구멍을 찾듯 고개 숙여 내렸다. 잔돈을 미리 챙기지 못한 죄가 컸다. 본의 아니게 저지른 비신사적 행위 같아서 내린 뒤에도 겸연쩍은 마음에 버스 뒤꽁무니를 쳐다보았다.
6.지금 생각하니 참 한심하고 어리숙했다. 잔돈은 괜찮으니 그냥 내리겠다고 왜 흔쾌히 말하지 못했을까. 버스 번호라도 기억했다가 뒤에 받는 방법은 없었던가. 그 당시는 좀처럼 택시를 타지 않던 버릇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정말 좀스럽고 사내답지 못했다.
7.A 중고서점을 자주 찾는 요즘, 지상 지하철이 나의 단골 이동 수단이다. 마음에 둔 책이 그곳에 꽂혔다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러 간다. 은퇴 공무원 상대로 몇 년째 무료로 가르치면서 참고할 서적이 있으면 얼른 사면서도 값은 줄이고 줄였다. 전공 관련 미술책은 컬러 인쇄물이라 비싸지만 반드시 사고 만다.
8.필요한 책이 있나 싶어 휴대폰으로 늘 검색하곤 했다. 전부터 사고 싶던 재고도서 한 권이 들어왔다는 전광석화 같은 소식이 떴다. 거리가 멀고 시간 여유가 없어도 상관없다. 도시철도 환승의 번거로움은 즐거움이다. 누군가 먼저 사 가지 않기만을 염원하며 9.서점을 향해 달리고 보는 것이다.
그날따라 열차 안은 적막이 감돌았다. 웬 젊은이가 한쪽이 잘린 외다리로 힘겹게 끌며 다가왔다. 평소 행상이나 껌팔이도 없던 공간에서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설프게 써 붙인 쪽지엔 사고 당시 사연과 아픈 딸의 사진이 애처로웠다. 딸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은 이뿐이라며 울먹였다. 엎치고 겹친 불행이 자못 가슴을 때렸다.
10.주머니 안쪽의 지폐와 동전을 만지작거렸다. 선뜻 몽땅 털어 적선하였더니 여기저기서 얼마씩 내놓는 모습이 보였다. 새 책 사면서 얻을 수 없는 헌책의 혜택을 누리려고 가다가 우연찮게 행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현실에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며 서점을 향했다.
11.계단을 한 걸음에 밟아 들어서니 과연 찾던 책이 눈에 띄었다. 입 맞추고 싶도록 깔끔한 책을 대하니 그리던 애인을 대한 듯 반가웠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아뿔싸! 주머니에 지갑이 없었다. 핸드폰 안쪽에도 경로 승차권 외에는 카드가 한 장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 다른 옷에 넣어놓고 오늘은 챙기지 않은 모양이다.
12.이곳의 책은 시간을 다툰다. 먼저 보면 임자라 언제 누구 손에 들어갈지 모른다. 단한 권의 책을 놓치고 말아야 하나? 진퇴양난의 길에서 고민하는 중에 기적이 일어났다. 천재일우인지 핸드폰 속에 만 원짜리가 꼭꼭 숨겨있었다. 그렇다, 언젠가 누가 가르쳐 준대로 넣어둔 비상금이다.
13.값이 꽤 비싼 인기 도서라 가진 돈만으로 살 수나 있을지 걱정되었다. 정가의 절반 남짓이면 사곤 했는데 할인받은 들 가능할까. 가엾게도 남아있는 마일리지도 일백 원뿐이었다. 고객을 대하느라 바쁜 직원에게 도움받을 요량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14.직원의 안내에 따라 서점 애플리케이션을 다시 깔았다. 이런저런 포인트를 쌓고 퀴즈까지 풀면 더 할인된다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했다. 그가 가르쳐주는 대로 마일리지를 더 많이 불릴 수 있었다. 찾은 비상금을 합치니 쌈짓돈 마냥 결재가 쉬웠다. 외상을 달거나 궁색한 소리 않고 여느 때보다 더 싸게 단돈 만 원으로 거머쥔 것이다.
15.책 사는 돈은 아끼지 말라고들 했다. 그런데도 한 푼 더 싸게 사는 짜릿한 행운을 차마 놓치기 싫으니 어쩌겠는가. 오늘 곤경에 처한 애처로운 젊은이를 도운 일도 푼돈의 공덕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푼어치의 행복을 이어가고 싶다.(12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