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는 암탉과 누렁이가 산다.
우리집 암탉은 달걀을 낳는 기특한 짓을 하지도
않았건만 사랑을 듬뿍 받았더랬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움이었다. 사랑을 독차지하며 맘껏 그것을 누리던 어느 날 고물고물한 누렁이 한 녀석이
우리집에 새로 들어왔다. 더군다나 모두 암탉의 영역이었던 공간 한 쪽을 터서 그녀석이 있을 곳을 마련해준다.
이게 무슨 청천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존재가 나의 영역, 나의 공간을 침범한 것이다. 누렁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라? 요거 봐라. 별 거 아니다. 몇 번 쪼아줬더니 힘도 못 쓴다. 이녀석에게 챙겨주는 특별식도 일단 내가 맛을 본다.
우리집에는 4살 첫째와 2살 둘째가 산다.
우리집 첫째는 뭘 해도 사랑스러웠다.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듬뿍 주었다. 그런 첫째에게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지 20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동생이라는 녀석이
나타났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 모든 공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있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내가 쓰던 침대도 동생에게,
내가 쓰던 이불도 동생에게, 심지어 딸랑이마저 동생에게 모두 주인을 빼앗겨버렸다.
이게 무슨 청천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동생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일단 눈을 한 번 찔러본다. 그리고 올라도 타본다. 그런데 어라? 요거
봐라. 별 거 아니다. 손이랑 발만 버둥댈 뿐 전혀 힘도 쓰지 못한다. 젖병에 담긴 우유도 내가 먼저 맛을 본다. 꿀맛이 따로 없다.
그림책이 육아서로 보이는 걸로 보면 나도 어지간히 우리집
두 남매에게 시달리고(?) 있나보다. 서로 마주보며 으르렁대고 있는 표지를 볼 때부터 왜 우리집 아이들이 생각났을까? 그런데 이야기를 읽을수록
우리집 암탉과 누렁이가 확실하다.
누나가 애지중지 만들어 둔 블럭 작품을 건들다 무너뜨려서
호되게 당하고 누나 장난감 하나 갖고 싶어서 만지다가 제대로 밀려서 뒤로 발랑 넘어지던 둘째가, 걷기 시작하면서 반격을 시작했다. 누나 장난감을
하나 들고서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한편 절대 쉽게 뺏기지 않는다. 간혹 동생에게 뺏기고서는 다시 찾아오지 못해 누나가 우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짬밥 2년이 어찌 짬밥 4년과 비교가 되겠는가?
미끄럼틀 위로, 목욕의자 위로 쏙 올라가버린 누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누나도 이젠 전만큼 동생에게 함부로 굴지 않는다. 준우꺼~ 준우꺼~
하면서 말도 하기 전에 동생부터 챙기고 본다.
상황에 대해 마땅히 설명할 말이 없을 때 속담만큼 명쾌한
것도 없다. 그런데 속담은 짧은 글로만 봐서는 언뜻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속담 안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들어놓으니 속담 속으로 풍덩 빠져들 수 있다. 더군다나 도깨비 화가로 유명한 '한병호'의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어
속담을 처음 접하는 유아나 아이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함께 선사해주고 있다. 등장 인물의 동선을 점선으로 표현하고 있어 평면 그림책임에도
생동감이 넘친다. 점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보면 나도 모르게 암탉이 되어 누렁이를 쫓고 있고, 또 누렁이가 되어 암탉을 쫓고 있다.
네살 딸 아이는 상대적으로 암탉이 누렁이를 괴롭히는
부분이 많아서인지 누렁이 편을 든다. 나는 그런 딸아이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말한다. 거봐. 너도 그렇잖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암탉과 누렁이 옆을 맴도는
생쥐의 역할이다. 암탉과 누렁이 사이의 긴장감과 갈등을 지켜보며 상황을 생중계해주는 듯한 매개체 역할은 현장감을 살려준다. 그렇지만 이야기
그림책 시리즈물에 걸맞게 다음 편의 예고편처럼 생쥐가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준다면 어떨까? 이야기 그림책 2는 쥐에 관한 속담인 식으로
말이다. 그런 부분이 가미가 된다면 책을 이어 읽어가는 동기부여도 되고 연결고리라는 작은 재미가 더해져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내는 즐거움도
쏠쏠할 것 같다.
첫댓글 http://blog.naver.com/alaya84/220495760553
http://booklog.kyobobook.co.kr/alaya84/1502777
선생님~ 다른 분 서평에 댓글 다는 거 첨인데... 서평이 너무 재밌어서 안 달 수가 없었어요!!^^
어머~ 선생님 과찬이셔요. 일상글이라서 서평에 어울리나 싶었는데. 댓글 감사해요.^^
저도 선생님 서평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 기분에도 좋아요가 있으면 누르고 싶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