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의 저명한 고생물학자인 오스니얼 찰스 마시. 그가 1879년 보고한 브론토사우루스가 112년 만에 이름을 되찾을 계기가 마련됐다. ⓒ 위키피디아
미국 하버드대의 고생물학자이자 탁월한 과학저술가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에세이집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가 지난해 번역 출간됐다. 원서는 23년 전인 1991년 나왔다. 굴드가 2002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책에 실려 있는 에세이 35편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다.
공룡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티라노사우루스와 함께 브론토사우루스 정도는 알 것이다. 전자가 육식공룡을 대표한다면 후자는 초식공룡을 상징하고 있다.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면 코끼리가 연상되는 몸뚱이에 기린보다 긴 목과 역시 엄청나게 긴 꼬리가 달려있는 브론토사우루스가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굴드가 브론토사우루스에 대한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1989년 미국 우정 공사가 발행한 공룡 우표 네 종 가운데 하나에 브론토사우루스를 그리고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름을 붙였는데 왜 문제인가 의아할 텐데 사실 브론토사우루스는 정식 학명이 아니다. 우표를 보고 몇몇 사람들이 공인된 이름인 아파토사우루스를 쓰지 않았다며 우표를 회수해 전량 폐기하라고 항의를 한 것.
‘아파토사우루스? 처음 들어보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꽤 될 텐데 당시 미국 우정 공사가 아파토사우루스 대신 브론토사우루스를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반 대중들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굴드는 에세이에서 이런 혼란이 생기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때는 18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고생물학계의 라이벌인 E. D. 코프와 O. C. 마시는 누가 새로운 종의 이름을 더 많이 붙이느냐 같은 유치한 경쟁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발굴한 화석을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고 학명부터 붙이고 봤다. 1877년 마시는 1억 5000만 년 전 쥐라기 지층에서 나온 거대 용각류 공룡의 발견을 간단히 보고하며 아파토사우루스 아작스(Apatosaurus ajax)라는 학명을 붙였다. 아파토사우루스는 ‘거짓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2년 뒤인 1879년 다른 논문에서 비슷한 시기의 용각류 화석에 대해 역시 간단한 언급만한 채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Brontosaurus excelsus)라는 학명을 지었다. 브론토사우루스는 ‘천둥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마시는 두 공룡이 서로 꽤 비슷하지만 브론토사우루스는 몸길이가 21~24미터로 15미터로 추정한 아파토사우루스보다 큰 종이라고 믿었다. 아쉽게도 둘 다 머리뼈가 없었지만 브론토사우루스는 뼈가 많이 남아있어 거의 완전한 골격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마시가 타계하고 4년이 지난 1903년 미국 시카고필드박물관의 엘머 리그스는 마시의 용각류 화석을 전면 재조사했고 마시가 코프와의 경쟁에서 이기려고 학명을 남발했음을 깨달았다. 즉 아파토사우루스 화석은 별도의 속이 아니라 아직 덜 자란 브론토사우루스라는 것. 그러나 당시 통용되던 우선권 규칙, 즉 먼저 발표된 학명이 우선권을 주는 관행에 따라 리그스는 마시가 1879년 보고한 공룡의 학명을 아파토사우루스 엑셀수스라고 바꿔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고 학계에서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논문이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거대 초식공룡을 왠지 어울리는 이름인 브론토사우루스라고 불렀다.
마시가 직접 그린, 브론토사우루스의 완전한 골격을 묘사한 그림. 다만 머리뼈는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화석을 토대로 그렸는데 발굴한 화석에 머리뼈가 없었기 때문이다. ⓒ 위키피디아
477가지 형태적 특징을 바탕으로 재분류
학술지 ‘피어J(PeerJ)’ 최근호에는 마시가 1879년 보고한 브론토사우루스가 아파토사우루스와 꽤 달라 별개의 속(屬), 즉 브론토사우루스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포르투갈과 영국의 고생물학자 세 사람은 무려 298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논문에서 디플로도쿠스과(Diplodocidae) 용각류 공룡에 대한 분류를 업데이트한 결과를 담았다.
디플로도쿠스과는 아파토사우루스를 비롯해 12~15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구자들은 최근 발굴한 화석 시료를 비롯해 디플로도쿠스과 화석 49개체를 비롯해 모두 81개체에 대해 477가지나 되는 형태적 특징을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를 비교하자 한 속으로 묶기에는 그 차이가 너무 컸다고. 따라서 마시가 1879년 보고한 화석은 당시 학명인 브론토사우루스 엑셀수스를 돌려받아야한다는 것.
아울러 연구자들은 별개의 속으로 분류했던 에오브론토사우루스 야나핀(Eobrontosaurus yahnahpin)을 브론토사우루스속으로 편입했고(브론토사우루스 야나핀), 1902년 발굴 당시에는 엘로사우루스 파부스(Elosaurus parvus)라는 학명을 얻었다가 훗날 아파토사우루스속으로 재편된(아파토사우루스 파부스) 종 역시 브론토사우루스속으로 재분류했다(브론토사우루스 파부스). 결국 브론토사우루스속이 부활했을 뿐 아니라 세 가지 종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루투갈과 영국의 연구자들은 디플로도쿠스과(科) 공룡 화석 49개체에 대해 477가지 형태적 특징을 재조사한 결과 아파토사우루스와 브론토사우루스는 별개의 속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파토사우루스 루이재(A. louisae, 왼쪽)와 브론토사우루스 파부스(오른쪽)의 가슴등뼈를 보면 세부 구조가 꽤 다름을 알 수 있다. ⓒPeerJ
한편 아파토사우루스속은 식구가 줄어 두 종뿐이다(아작스와 A. louisae(루이재)).이런 재분류 결과 디플로도쿠스과를 이루는 식구들도 15~18종으로 늘어났다. 아직 이들의 주장이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위키피디아의 ‘브론토사우루스’ 항목에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등 반응은 뜨겁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에세이에서 브론토사우루스 우표 논란은 아파토사우루스 옹호자들의 음모였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도 마음을 바뀔까봐 걱정하고 있다. 굴드는 “요란한 천둥소리(브론토사우루스를 뜻함)는 아닌, 언젠가 내 우표책의 잿더미 속에서 개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신음과 함께 나는 이만 물러간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굴드가 아직 살아있어 브론토사우루스가 아파토사우루스와 별개의 속이므로 이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이번 연구결과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