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1
애굽에 대한 심판(1) (예레미야 46:1-12)
첫 절의 말씀은 아래의 말씀에 대하여 제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부분은 인접 국가들에 대한 말씀으로서 이 제목 하에 말씀되고 있다. 본문 말씀을 인용하면 "열국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다. 하나님이 열국을 심판하실 수 있는 것은 그가 열국의 왕이요, 재판장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를 모르는 자들과 자기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을 아시며 그들을 소환하여 이유를 대라고 하신다. 예레미야가 본문에서 열국을 쳐서 별도로 예언한 말씀은 이사야나 에스겔도 하였고 똑 같은 사건을 다 같이 다루고 있다. 구약에서 우리는 이방 국가들을 치는 여호와의 말씀을 대하게 된다. 그러나 신약 성서에서는 "이방 국가들을 위한 여호와의 말씀" 을 대하게 된다. 즉 멀리 있던 자들이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먼저 애굽에 대하여 말씀한다. 그것은 그들이 오랜 이스라엘의 압제자요, 최근에는 이스라엘을 유혹하는 자들 노릇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 제 4년에 바로느고의 군대" 가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패배할 것을 예언하신다. 이것은 바벨론 왕의 완전 승리가 될 것이요. 따라서 그는 애굽의 강에서 유브라데 강에 이르기까지 애굽 왕에게 속했던 모든 영토를 차지할 것이며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 밖으로 전쟁하러 나오지 못하리니" (왕하 24:7) 이는 애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탓이라 하신다. 또한 애굽 왕 바로가 4년 전에 앗수르 왕에 대한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그때 그가 요시야 왕을 살해한데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고 하신다(왕하 23:29). 애굽에 대하여 승리한 사건이 본문에 의기양양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그토록 위하여 통곡하였던 요시야의 죽음이 바로느고에게 보복되었기 때문에 그가 특별한 기쁨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Ⅰ. 애굽인들은 이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막강한 준비를 한데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라고 한다. 이는 그들이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방패를 예비하고 오라. 또한 전쟁에 쓸 무기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3절)고 한다. 애굽은 기병전에 능하였다. 그러므로 "말에 안장을 지우고 기병이여 올라타라" 고 한다. 또 "너희 기병이여 일어나 가거라" 한다(4절). 자! 인간의 손에 의해 무엇이 준비되었는가를 보자. 그들은 스스로는 죽지 않을 듯이 상대를 죽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과 수고를 드려 또한 막대한 비용을 써서 전쟁 준비를 하였다. 하나님은 이 정벌 군사들이 행진하는 모습을 나일 강의 범람에 비교하신다(7,8절). "애굽이 나일의 창일함과 같음이여." 강이 제방 안에 머무르는 것을 우습게 여기며 모든 인접 토지에 넘치려 하는도다 라고 하신다. 애굽인들이 이번에 일으킨 군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선지자는 그들을 선동한다(9절). "말들아 달리라. 병거들아. 급히 동하라" 고 한다. 그는 그들에게 모든 동맹을 맺은 군대들도 동원하라고 부추긴다. 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애굽인들과 같은 연원에서 비롯된 구스인들이었다(창 10:6). 또한 그들의 이웃이요, 동맹국들인 리비아인들과 리디아인들도 나오라고 한다. 이들 나라들도 아프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로 애굽 서편에 있었다. 애굽인들은 그들을 보조 군대로 삼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기술과 능력으로 자신을 무장한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헛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수치스럽게 패배할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적하여 싸우시며 "지혜도 명철도 없는" 애굽 왕을 치실 것이기 때문이다(잠 21:30, 31). 전쟁에 임하는 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방패를 예비하고 말에 안장을 지우는" 것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온갖 사악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받을 수 있다.
Ⅱ. 애굽인들은 이 정벌 전쟁에 대하여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 그들의 기대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으심으로 의도했던 것과도 전혀 대조적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알았고 하나님도 그들을 알았다. 그리고 하늘에 앉으사 그들을 보며 웃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신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미 4:11, 13). 애굽은 말하기를(8절) "내가 일어나 땅을 덮겠고 나를 막을자가 없으리라. 그리고 가는 길에 어느 성이 가로 놓여 있든지 내가 그 성을 멸할 것이라" 고 한다. 또 모세를 추격하던 바로 왕처럼 "내가 추격하여 그들을 따라 잡으리라" 고 한다. 애굽인들은 승리의 날이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날이 자신의 날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 날은 주 만군의 여호와의 보수하는 날이라" 하신다. 그 날은 여호와께서 애굽인들을 넘어뜨리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날이다. 그들은 엉뚱한 생각을 품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셨다. 그들은 그날을 그들의 위엄이 확립되고 영토가 확장되는 날로 계획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그 날을 그들의 나라로 수치를 당하고 쇠약해지는 날로 계획하셨다. 그 날은 요시야의 죽음에 대하여 "복수하는 날" 이다. 그 날은 하나님의 심판에 희생을 당하는 날이요, 따라서 이 날 애굽의 죄인들의 무리가 희생물로 넘어질 것이다. 인간들이 불의한 모험을 강행함으로 자신들의 위엄을 높이고자 생각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치시고 멸하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얻으시고자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Ⅲ. 애굽인들은 그들이 전쟁에 임하여서 겁을 먹고 치욕스러운 도주를 한데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5,6절). "내가 그들을 보았도다. 그들은 모든 용사와 막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한 용기와 충성을 다하여 싸우겠다는 호언도 하였다. 그러나 이런 허풍에도 불구하고 갈대아 군대와 대면하자 낙담하여 도망가며 마음이 동요되어 정신이 없었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1. 그들은 치욕적인 퇴각을 하였다. 사람들이 저들은 자기의 위치를 사수할 용사들이라고 생각하던 자들까지도 합심하여 도망하며 살기에만 급급하여 혼란 속에서 지극히 경솔하게 도주한다. 그들은 뒤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다. 다만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는" 것으로 여겼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정세를 이해하고 있었다.
2. 그렇지만 그들은 도주할 수 없었다. 그들은 도주하는 치욕을 맛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도주함으로 만족스럽게 자기들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었다. 왜냐하면 "발이 빠른 자도 도망하지 못하겠기 때문이다." 발뒷꿈치가 아무리 가벼운 자라도 위급한 일을 만나면 발이 말을 들어주지 않는 법이다. 마음에 품은 용기도 역시 위급한 일을 만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용사라도 피하지 못한다. 피하기는커녕 패하며 산산조각이 된다. 그들은 도주하다 넘어질 것이며 북방 곧 그들의 적의 나라를 바라보며 넘어질 것이다. 그들은 대단한 혼돈 속에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도주할 때는 고국이 있는 곳으로 도주하듯이 고국으로 퇴각한 것이 아니라 엉겁결에 적진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발이 빠른 자라고 경주에 이기는 것이 아니며 강한 자라고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님" 을 기억하자.
Ⅳ. 애굽인들은 그들이 입은 타격을 복구하지 못하는 전적인 무능에 대하여 책망을 받는다. 이 타격은 그들의 나라에 치명적인 것이었다(11,12절). 자만과 긍지를 갖고 살던 처녀들 곧 "애굽의 딸들" 은 이 패배로 아픈 상처를 입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들에게는 "길르앗의 유향" 과 그곳의 의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현자들이 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처방해 준 약과 이 패배로 잃었던 것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처방을 애굽의 딸들은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사이다. 그들을 치료할 약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렇게 강력한 군대를 전쟁터에 보낼 수 없게 될 것이다. "너의 영광과 힘을 인정하던 열국이 너의 수치에 대하여 듣게 되리라. 얼마나 수치스럽게 너희가 제거되었으며 그 전쟁의 타격이 얼마나 컸던가를 그들이 말하리라" 고 하신다. 정복자들의 승리를 일부러 알릴 필요도 없는 것은 피정복자의 울부짖음이 이를 나타낼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본문에 "네 부르짖음이 땅에 가득하였다" 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몇 길로 도주하면서 한 용사가 다른 용사에 걸려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다른 용사를 넘어뜨리는 혼란속에 그들이 있게 되므로 그들은 정복자들의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수천 군데서 일어났을 것이오 이로써 전쟁터는 정복당한 자의 울부짖음으로 채워졌다. 그러므로 용사도 그의 힘을 자랑하지 말 것은 그 힘이 그를 더 이상 지탱시켜 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46:2 없음.
46:3 없음.
46:4 없음.
46:5 없음.
46:6 없음.
46:7 없음.
46:8 없음.
46:9 없음.
46:10 없음.
46:11 없음.
46:12 없음.
46:13
애굽에 대한 심판(2) (예레미야 46:13-28)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Ⅰ. 혼동과 공포가 애굽에 경고됨. 본장의 전반부에서 기록된 예언의 내용이 성취되었으므로 이제 애굽인들은 다른 국가들에 대하여 어떠한 도모도 할 수 없이 되었다. 그들의 군대가 멸절당하였는데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자기 나라를 보존할 여력은 있었으므로 주변 국가들이 감히 그들을 넘보지 못하였다. 애굽 왕이 다시는 나라 밖으로 출전하지는 못하였지만(왕하 24:7) 아직 국내적으로 그들은 안전과 평안을 누렸다. 실상 그들이 평화로이 자족을 누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라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 정도면 누구나 자족하게 여기며 이웃 국가를 침략하려고 넘보지 않을 것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나 애굽에 불의의 양이 찼으므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것을 즐길 수도 없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것들을 약탈당하게 되었다. 본문에 나오는 예언의 범위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속히 와서 어떻게 애굽 땅을 칠 것인가" 에 대한 것이었다. 즉 전에는 국경 지역에까지 나가서 전쟁을 하던 그들이 자신의 나라 안에서 전쟁을 겪게 된 사실이 기록되고 있다(13절). 이 일은 갈그스미에서 그들을 패주케 한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러 해 후 적어도 20년 후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예언도 먼저 번 예언을 한 후 오래되어서 말씀된 것 같다. 우리가 43장 10절에서 보는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예언들이 말씀되던 시기에 예언된 것으로 보여진다.
1. 본문에는 전쟁 경보가 애굽에서 울릴 것이요, 이 때문에 그들이 크게 놀랄 것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었다(14절). 적들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주의가 사람들에게 주어지리라고 한다. 인접 국가들이 칼에 삼키움을 당하였고 이제는 애굽의 차례였다. 그러므로 애굽들은 스스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전쟁을 준비할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이다. 그래야 적들을 자신있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은 애굽 전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 특히 유대 난민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경멸하고 정착하여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44:1). 이들 유대인들에게 애굽이란 곳도 그들에게는 마찬가지로 안심할 수 없는 피난처임을 알려 주라는 말씀이다.
2. 본문에 애굽인들이 돈을 주고 고용한 외국의 군대들이 퇴각할 것이 예언되고 있다. 상당한 수효의 이들 군대들이 애굽을 방어하기 위하여 변방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침략자들에 의해 격퇴당하고 도주하였다. 다음에는 "장사들이 소나기에 쓸려가는 것처럼 쓰러지겠다" 고 한다(잠 28:3 에 이 비슷한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각자의 위치에서 몰아내신 연고로 그들 중의 아무도 자기 위치를 지켜낼 수 없으리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두려움을 주시므로 그들이 도망간다. 여호와께서는 갈대아인들을 통하여 그들을 몰아내신다. 하나님의 진노에 추적을 당하는 자들은 견고히 서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많은 자로 넘어지게 하시는 이" 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들의 날이 다하면 원수가 그들을 치지 않아도 그들은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진다." 각자마다 그의 동료 또는 따라오는 사람에게 거침돌이 된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그들은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질 것이요," "각 사람의 칼은 그의 동료를 치게 될 것이다." 또한 애굽의 고용군 즉 애굽이 국가를 위하여 사들인 군대는 "외양간의 살찐 황소 같아서" 즉 자기 욕심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잘 단련되고 용기있는 사람들로서 싸움을 좋아하며 적들을 대적하여 자기 맡은 일을 다하겠다고 보장할 수 있어야 했었다. "함께 도망하였다." 그러니 "재난의 날" 즉 하나님의 진노로 그들을 찾아오시는 날이 이르면 어떻게 그들이 자기 생명을 지켜낼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그들이 그들의 허영 때문에 살찐 황소에 비유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쾌락만 추구하며 살아와서 고통에는 적응할 수 없었고 그래서 버팅기지 못하고 돌아선 것이었다. 이 혼란 속에 그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하였다.
(1) 그들은 모두 고국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16절). "그들이 말하기를 일어나라 우리가 우리 민족에게로 돌아가자" 라고 하였다. 또한 "닥치는 대로 도륙해 버리는 갈대아인의 무서운 칼을 피하여 거기서 편안히 살자" 고 하였다. 위급한 때에는 돈으로 고용된 용병을 크게 신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만 돈을 위해 싸우며 그들이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2) 그들은 바로를 원망하였다. 그들은 바로의 소심함과 서툰 군 통솔을 원망하였다. 그들의 피해가 사실 이러한 바로의 결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바로는 용병들을 전선에 배치하면서 위급한 시기가 닥치면 자신의 신하들 중에 정예부대를 직접 인솔하여 그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실망시켰다. 적이 들이닥치자 용병들은 그들 배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침략자들의 위세 앞에 모두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이 자기 위치를 버리고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애굽 왕 바로는 말뿐이로다" 고 외쳤다(17절). 그는 허세를 부리며 대단한 일이나 할 것처럼 떠들어댔다. 그러나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가 실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와 동맹을 맺은 자들과 또 그를 위하여 고용한 사람들과 맺은 모든 약속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지원을 하지 않았거나 지원을 하였어도 이미 끝장이 난 다음이었다. "그는 시기를 잃은 것이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고 시기를 바로 선택하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용병들은 그와 결별하고 더 이상 그를 섬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무슨 일이고 말만 많이 하는 자들은 말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 수다장이치고 실행가는 거의 없는 법이다.
3. 갈대아 군대의 막대한 세력이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며,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분에 비하면 비록 지상의 아무리 강력한 왕일지라도 또 그가 우리에게는 신처럼 여겨질지라도 메뚜기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또 이 사실을 맹세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본문에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가라사대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같이, 해변의 갈멜같이 오리라. 와서 애굽의 모든 군대를 정복하리라. 이는 그가 나의 명을 받았음이요, 그러므로 이 같은 정벌이 가능한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18절). 즉 바벨론 왕이 하나님의 위력에 힘입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 또한 바벨론 왕과 "그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같이 도끼를 가지고 애굽으로 올 것임이니라" 하신다(22절). 그러므로 도끼로 나무를 베려고 오는 사람을 나무가 막을 수 없는 그 이상으로 애굽인들은 산림을 벌목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굽은 산림이 벌목하는 자에 의하여 벌목당하듯이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애굽인들의 수효가 많고 좋은 장비를 가졌다해도) 삽시간에 당하고 말 것이다. 애굽은 인구가 많고 성읍이 무수한 나라였다. 마치 그 나무수를 "계수할 수 없으며" 조사할 수 없는 수풀과 같았다. 또한 부강하여 숨은 보화로 가득 찼으므로 갈대아 군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많은 것을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나라를 극도로 유린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와 나라를 덮고 모든 푸른 것을 먹어치우는 "메뚜기 떼" 보다 무서울 것이기 때문이다(욜 1:6, 7). 갈대아인의 수효도 이렇게 무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리라고 한다. 만군의 여호와는 명령 하나로 수많은 무리를 움직일 수 있음을 기억하자.
4. 애굽의 황폐가 예언되고 있다. 즉 비옥하던 나라가 황폐하리라는 말씀이다. 지금 "애굽은 아름다운 암송아지 같아서" (20절) 살이 찌고 윤기가 흐르며 굴종스런 멍에에 익숙하지 아니하다. 애굽은 놓아 먹여 살찐 암송아지처럼 쾌락을 만끽하였다. 어떤 이들은 본문이 그들이 숭배하는 소의 신 아피스(Apis)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들로부터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금송아지 숭배를 배웠던 것이다. 애굽은 여신처럼 아름다왔으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있었다. 그러나 "파멸이 이르며 멸망이 오겠는데 북방에서 오리라" 하신다. 과연 갈대아 군사들이 무수한 도살자처럼 몰려와서 "아름다운 암송아지" 를 죽이고 난도질하였다.
(1) 애굽인들이 굴복당할 것이요, 온순하여지고 그들의 어조가 바뀐 것이다. 그러므로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리라" (24절)하였고 놀라 어안이 벙벙할 것이라 하신다.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라." 즉 그들의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 비굴한 소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암송아지처럼 굽히지 않으려하여 큰 소란이 벌어질 것이나 결국 뱀처럼 그들의 구멍에서 나오고 말 것이다. 그들은 정복자들이 잔인하다고 큰 소리로 불평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눈물로써 불평을 굳게 참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늘상 하는 대로 거만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요, 가난한 자처럼 공손히 살펴 줄 것을 간청할 것이다.
(2) 그들은 적의 나라로 사로잡혀 갈 것이다(19절). 다음과 같은 얘기다. "비옥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애굽에서 평안하게 멋을 부리며 살던 애굽의 딸들아! 그러한 삶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로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포로로 사로잡혀 갈 준비를 하여라. 적으로 하여금 너희를 벌거벗기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사치한 옷 대신에 소박하고 따스한 옷을 입도록 하라. 아름다운 구두 대신에 스스로를 단련시켜 고난을 잘 견딜 수 있도록 하라" 고 하신다.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하겠지만 그 중에도 곤경에 대비하는 준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우리는 벗들을 영접할 준비는 잘하나 적을 맞이할 준비는 소홀히 하기 쉽다. 또한 준비물 가운데 포로 당할 때를 위하여 준비물을 갖추는데 소홀히 하기가 쉽다. 애굽인들은 달아날 준비를 해야만 하였다. 이는 그들의 성들이 유린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놉이 황무하여 거민이 없을 것이다." 살육과 사로잡음으로 이 성이 쑥밭이 되겠기 때문이다.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이 재난을 모면하리라고 하나 본문에 보면 이들까지도 극악한 꼴을 당하게 된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살던 곳이라 불리우던 곳이 벌을 받아 거민이 없으리라" 고 한다(나 3:8). 그들이 손을 붙잡고 빠져나가려 하지만 피하지 못할 것이요, 무리들 가운데서 벗어나리라는 생각조차 못하게 된다. 그들은 수효가 많았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일일이 다스리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왕들과 모든 귀족들이 넘어질 것이요, 그들의 신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43:12, 13). 그들의 우상들과 위대한 인물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당할 것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보호하는 수호신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그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왕 바로도 넘어질 것이요, 그를 의지하는 자들" 역시 넘어질 것이다(25절). 특별히 하나님보다 바로를 신뢰하여 바로가 다스리는 나라로 온 유대인들이 넘어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북방 백성의 손에 붙임을 입을 것이다." 강력한 군주 느부갓네살에게뿐 아니라 "그 신하들의 손에 붙이리라." 이것은 함의 후손들에게 주어진 저주가 응한 것인데 이는 애굽인들도 함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하들의 종이 될 것이다."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 그들은 넘겨짐을 당하리라고 하신다.
5. 시간이 경과하면 애굽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암시가 주어진다(26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이 여전히 사람 살 곳이 되리라" 고 하신다. 즉 금번의 파괴로 말미암아 거의 무인지경이 되고 말았지만 다시 주민들이 거처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에스겔은 이 일이 40년이 끝날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 29:13). 지상의 국가들이 겪는 변화가 어떠한지를 기억하고 지나가자. 어떻게 국가들이 황무하여졌다가 다시 거민이 생기는지를 생각해 보고 지나가자. 지금 번영하는 민족이라고 영원히 보장되는 법은 없으며 현재는 노예상태에 있는 자들이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Ⅱ.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위로의 말씀이 본문에 주어지고 있다(27,28절).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애굽 왕이 여호아하스와 함께 포로로 사로잡아온 사람들에만 주어진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아하스와 함께 포로로 사로 잡혀온 사람들이 있다는 내용을 성서에서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봄이 좋다.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비를 비축해 놓으셨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모든 그의 백성에게 베풀 자비를 비축하고 계시다. 이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그들이 용기를 얻게 하기 위한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이 열국을 향하실 때 그의 백성에게는 자비를 내리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다. 이러한 위로의 말씀들은 30장 10,11절에도 수록되어 있다.
1. 땅에 있는 악인들은 그 악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마땅히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내 종 야곱은 두려워 말며 이스라엘아! 낙심하지 말라" 고 하신다. 또 다시 반복하여 "야곱아 두려워 말라" 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나약한 백성이 되게 하지 않으신다.
2. 지상의 악인은 쓰레기처럼 제거되고 다시는 돌봄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찾으시며 비록 멀리 있을지라도 모으시며 그들이 포로로 꼼짝없이 잡혀 있을 지라도 구원해 내시며 돌아오게 하신다.
3. 악인은 "쉼이 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되리라. 궁지에 몰릴 때까지 추격을 받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품을 고향으로 삼는 야곱은 "평안히 쉴 것이며 누구도 그를 두렵게 못할 것이다." 가령 "두려움에 그가 휩싸일지라도 그는 의지할 하나님이 있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악인을 멀리하신다. 그러나 "야곱아 너는 어디에 있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때마다 도우리라" 하신다.
5.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백성들은 애굽이나 바벨론과 같이 완전한 멸망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도 자비를 준비하시고 계신다고 하신다. 그들은 뉘우치게 될 것이요, 버림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뉘우침의 시기는 그들의 수준과 악한 생활을 한 분량에 따라 각각 다를 것이다. 어느 민족이라도 오래 존속하지는 못한다. 유대 국가도 국가로서는 그 세월이 끝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인 복음의 교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또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복음의 시대에 본문에 주어진 약속은 완벽히 성취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뉘우치게는 하시지만 "아주 멸하시지는 않으신다."
46:14 없음.
46:15 없음.
46:16 없음.
46:17 없음.
46:18 없음.
46:19 없음.
46:20 없음.
46:21 없음.
46:22 없음.
46:23 없음.
46:24 없음.
46:25 없음.
46:26 없음.
46:27 없음.
46:28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