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처음부터 스스로 거룩하시며 스스로 완전하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 그리고 예수님 역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신성을 알려 줍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요 17:19 )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을 받는 분이신데, 이것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인성을 깨닫게 해 줍니다.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요 10:36 )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시는 신성과,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을 받는 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으로 인해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중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성이 없는 인간은 그 어느 누구도 타인의 중보자가 될 수 없으며, 인성이 없는 신은 다른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온 인류의 유일한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뿐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 그러므로, 유일한 중보자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리는 유일한 분도 역시 예수님뿐이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 이처럼 죽은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면서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바로, 온 우주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유일한 중보기도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믿는 신자들이 남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으로, 틀린 말입니다. 사람들은 남들을 위한 중보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남들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교회가 속한 예장 합동 교단은 2008년에, 교단 총회의 결의를 통해서, 중보기도 라는 용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상당히 유명한 목사님들이 사용하고 있으나, 대한예수교 장로회(합동)교단에서는 총회결의에 의하여, 중보기도라는 용어사용을 중단할 것을 결의하고 각 노회에 통보하였으며, ‘남을 위한 기도 혹은 이웃을 위한 기도’로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1. 총회에서 "중보기도"라는 용어의 사용을 중지할 것을, 신문에 공고하였습니다.
2. 성경 딤전 2:1 절에, 도고 ( 엔튜크세이스 ) 라는 용어가 있음으로, 이 용어를 대신 사용함이 적절합니다.
3. 교단 헌법에도, 신도게요서에도, 대 요리문답에도 중보사역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훼손할 소지가 많으므로, 중보기도라는 단어의 사용을 중지토록 합니다.
4. 기도 하는 분들이 "내가 중보하여" "중보합시다" 등의 용어로 말하는 것은,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중보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여, 속죄하여 주신 예수님에 대하여 사용된 용어입니다.
5. 중보자의 자격은 인성과, 신성, 그리고 무죄함을 갖추어야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한 기도는 중보기도가 아니라, 청원기도나 도고기도 또는 남들과 이웃을 위한 기도라고 해야만 됩니다. 이 때, 도고라는 말은 ‘기도로 고함’이라는 뜻을 압축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1 ) 이 구절에서 사용된 도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 엔튜크세이스 ) 라고 하는 반면에, 딤전 2:5의 ‘중보자’는 헬라어로 ( 메시테스 ) 라고 하여, 서로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딤전 2:1은 중보기도를 하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그냥 기도를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라는 용어는, 천주교의 신부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간에 서서, 천주교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받을 때도 사용되어 집니다. 오늘날에는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킴으로 인해서, 수많은 교회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단으로 규정된 신사도운동 계열의 인터콥에서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이를 널리 확산시켰습니다.
특히, 이단적인 신사도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중보기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잘못된 내용들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습니다.
1) 신사도운동가들은, 지금도 예수님 이외의 수많은 인간 중보자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2) 중보기도는 아무나 할 수 없고, 오직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3) 중보기도는 반드시 비밀을 유지해야만 된다고 주장합니다.
4) 중보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니라 예언기도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모두가 다 잘못된 주장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단 신사도운동의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조금도 미혹당하지 말고, 오직 성경 말씀대로만 똑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그래야지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응답하시는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