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도인 이광현(李光玄)
옛날에 이광현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발해인이다(생몰연대는 미상이나 10세기 경 인물로 추정된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제와 동복(童僕) 몇 명이 있었는데, 집에는 거만금의 큰 재산이 쌓여 있었다. 이광현이 마침내 약관의 나이에 고향 사람을 따라 배를 타고 청사(靑社), 회수와 절강 등을 돌아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무역을 하였다.
이후에는 바다를 건너다가 한 도인(道人)을 만나 함께 배를 탔는데, 그 도인은 조석(朝夕)으로 이광현과 신라, 발해, 일본 등 여러 나라를 함께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광현이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도인에게 여쭈었다.
"중국에는 어찌 좋은 일이 없어서 바다를 돌아다니십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비유하면 뜬구름과 같아 마음에 아무런 일도 없어, 바다로 나온 것이라네."
이광현은 대단하다고 여기며, 다시 조석으로 도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인이 이광현에게 말하였다.
"낭군의 집에는 재산이 얼마나 있소?"
이광현이 말하였다.
"저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제와 동복 몇 명이 있는데, 재산은 거만금입니다."
도인이 말하였다.
"재산이 이렇게 많은데도 어째서 먼바다의 풍파를 무릅쓰고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거요? 망망대해의 큰 장파에 잘못하면 물고기의 밥이 될 터이니, 어찌 이를 슬기롭다 하겠소?"
이광현이 말하였다.
"제가 재산 때문에 풍파를 무릅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 이 세상(인세)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모두 꿈과도 같습니다. 아침의 노을과 새벽의 이슬이 어찌 오랫동안 있겠습니까?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인생이 이와 같으니 어찌 생각할 것이 있겠습니까? 옛 무덤이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무덤이 즐비해지고, 산더미 같은 금이 넘쳐나도 저의 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옥이 하늘과 같이 쌓이더라도 어찌 사람의 목숨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파도를 건너 곧바로 외방(外方)으로 들었던 것이며, 저의 뜻은 진인(眞人)을 찾아뵙고 달사(達士)를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것을 알고, 어떠한 술법이라도 얻어 죽기 전에 한 번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외방으로 가본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달사를 만나지도 못하여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진실로 저의 뜻은 이런 것이지, 재산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인이 말하였다.
"자네는 젊어서 부귀영화만을 추구할 듯한데, 이처럼 총명하니 매우 대견스럽네. 신선이 될 인연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고, 다만 스스로의 수양을 힘쓴다면 반드시 진(眞)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이광현은 도인의 말을 듣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 말하였다.
"광현은 자질이 지렁이와 같으니 어찌 용이 될 수 있겠으며, 모습이 참새나 메추라기와 같으니 어찌 봉황에 견주겠습니까? 감히 큰 가르침을 바랄 수는 없고 작은 지혜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고인(高人)께서 저를 어리석다 여기지 않으시어 조금이나마 가르침을 주신다면 종신토록 생각하며, 은혜를 져버리지 않겠습니다."
도인이 말하였다.
"그대는 수명을 늘려 목숨을 보전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가? 금단내약(金丹內藥)을 구하는 것인가?"
이광현이 말하였다.
"어찌 감히 가려서 선택하겠습니까? 다만 고인께서는 현명하신 분이시니 가르침을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종신토록 받들어 지키겠습니다."
도인이 이내 말하였다.
"금단의 대약은 나도 지인(至人)을 만나지 못하여 알 수가 없고, 수명을 늘리고 목숨을 보전하는 방법은 알고 있네. 그대가 좋다고 한다면 내가 어찌 아낄 것이 있겠는가?"
이광현이 대답하였다.
"제가 어리고 우매하니 어찌 감히 현묘지문(玄妙之門)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도인이 말하였다.
"무릇 도(道)라는 것은 몸에 있어, 다시 밖으로 일삼을 것이 없다네. 그대가 능히 여인을 멀리하고 세상 인연을 모두 버리고 나서, 바위에 머리를 눕히고 샘물로 양치질하며 번뇌를 제거하고, 청정(淸淨)에 나아간다면 원기(元氣)를 기르게 되므로 이는 사람의 근본이 되는 기틀이네.
생각이 멈추면 기(氣)도 멈추며, 신(神)이 움직이면 기도 흩어진다네. 이 때문에 지인(至人)은 숨을 멈추고 시비를 버리며, 미련을 끊어내고, 쉬는 숨이 코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며, 생각을 항상 단전에 모은다네. 만약 세 단전(삼전, 三田)이 충실해지면 천 년도 살 수 있네. 또 새것을 받아들이고 옛것을 내보내며, 침을 모아 삼키는 것들은 모두 다 수명을 늘리는 방법으로 모두 몸을 굳게 하는 도(道)일세. 옛 노래에서 이르기를 '기(氣)는 나이를 더하는 약이요, 정(精)은 목숨을 늘리는 것이네. 세상 사람들 공연히 바쁘고 내달리지만, 자기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구하리오.'라고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라네. 조석으로 게으르지 말고 내 말에 따라 행한다면 반드시 수명을 연장시켜 오래 사는 도를 얻게 될 것이오."
도인이 다시 이광현에게 물었다.
"나의 수염과 머리카락의 모습을 보았는가?"
이광현이 말하였다.
"고인께서는 수염과 머리카락에 일반 사람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은 푸르고 얼굴은 어린아이와 같으며, 입술은 붉고 이는 하얗습니다."
도인이 말하였다.
"이 도(道)를 행한다면 마침내 이렇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벌써 백 세를 지났지만 질병에 걸린 적이 없다네. 그대가 어찌 나를 알겠는가?"
이광현이 두 번 절하고 감사하며 말하였다.
"나이 어린 소자가 대도(大道)를 들었습니다. 이 어찌 고인께서 굽어살펴 주신 비결을 가르침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종신토록 간직하면서 은덕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이후 동쪽 해안에 도착하여 도인은 스스로 신라와 발해로 가고자 하여, 이광현과 작별하였다. 이광현은 이에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도인에게 작별을 말을 올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광현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 한 마음으로 지극한 도를 받들어 세상의 번영과 영화 따위는 잊었다. 마침내 그는 고향을 떠나 다시 창해(滄海)로 떠돌다가, 운도(雲島) 가운데로 들어가서 십여 년을 살았다. 그는 고인의 가르침에 따라 지극한 도를 지켜서 넓게 했다. 이에 그의 기력은 백배가 되고, 모습도 보통 사람과는 완연하게 달라졌다.
이러한 까닭에 지난날 함께 배를 타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광현은 '해객(海客)'으로 불리게 되었다.
[출처] 금액환단백문결(金液還丹百問訣) - 이광현(발해시대 때의 도사)
https://blog.naver.com/jogaewon/220082908924
.............................
<참고1> 발해도인 이광현(李光玄)
이광현(李光玄)은 10세기 전후의 발해인이다. 발해와 당, 신라 등 동아시아에서 해상무역을 하며 상인으로 활동한 대부호(거만금의 재산가라고 한다!)이자 도사이다. 같은 시기의 장보고와 비슷한 해상무역가 정도로 보면 된다. 다만 이광현은 도교 관련 족적을 많이 남겨서, 무역 관련 족적을 많이 남긴 장보고가 상인이라면, 이광현은 그냥 도사다(...)
어려서부터 부유했지만 부모를 잃고 하인 몇 명과 살다가, 구도에 뜻을 두어 약관의 나이(20세)에 중국 산동반도와 양자강 사이를 왕래하며 장생의 비법을 얻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24세경 바다를 건너 귀향했다.
이광현의 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太上日月混元經태상일월혼원경>, <金液還丹百問訣금액환단백문결>, <海客論해객론>, <金液還丹內篇금액환단내편>
위 저작들은 전부 현전하며, 한국에 '발해인 이광현 도교저술 역주(도교사의 흐름을 잡는 이광현 저작 국역서)'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이 책들은 전부 도교 관련 서적들이며, 연단술에 관한 내용도 있다.
- 출처;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D%B4%EA%B4%91%ED%98%84(%EB%B0%9C%ED%95%B4)
.............................................
<참고 2>
- 이광현의 저서와 연단술(鍊丹術)
1445년 명나라에서 도교의 경전을 모아 편찬한 [도장(道藏)]에는 이광현과 관련된 4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금액환단백문결(金液還丹百問訣)]은 이광현의 대표작에 해당되며, [해객론(海客論)]과 [금액환단내편(金液還丹內篇)]은 이를 요약한 책이다. [태상일월혼원경(太上日月混元經)]은 이광현이 2세기 경에 살았던 동한(東漢)의 위백양(魏伯陽)의 저서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단약(丹藥)을 만드는 재료와 수량, 만드는 방법, 그리고 단약을 먹은 후 몸의 변화 등에 대한 연단술(鍊丹術- 불로장생의 약으로 믿었던 단(丹)을 만드는 기술)의 핵심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그는 [금액환단백문결]에서 신선이 되는데 필요한 선약인 금액과 관련한 내용을 현수 도인과의 문답을 통해 서술하고 있다. 도가에는 다양한 연단술이 있다. 황금과 단사를 중심으로 단약을 만들고자 하는 금단파, 납과 수은으로 만드는 연홍파, 유황과 수은으로 만드는 유황파 등 저마다 다른 재료와 방법을 이용한 연단술을 제시하고 있다. 위백양은 납과 수은을 사용하는 연홍파의 입장이다. 이광현도 역시 납과 수은을 통해 단약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금액환단백문결]에서 위백양의 설을 지지하고, 다른 연단술과 연단 재료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가 언급한 단약의 재료는 72종 100여 가지에 달한다. 그는 영혼불멸을 위한 단약은 약초와 같은 변하는 성질의 재료로는 만들지 못하고, 변하지 않는 납과 수은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 이광현의 구도가 후대에 남긴 것
[금액환단백문결]은 이광현이 현수 도인과 헤어진 후, 그와의 대화를 기록하여 세상에 단약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이 이 책을 보고 생각하고 연구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다. 따라서 현수 도인과 이별한 이광현의 나머지 생애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다만 현수 도인이 단약을 만들기 좋은 곳으로 추천한 천태산(天台山)을 비롯한 여러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장생불사의 핵심인 단약을 제련하며 자신의 깨달은 바를 기록하며 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가 원했던 것처럼 그의 책은 여러 도교 수련자들에게 널리 읽혔다. [금액환단백문결]을 요약한 책인 [해객론]이 송(宋: 960〜1279)나라 시대에 출간된 것은, 그의 저술이 널리 대중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송나라 도사 증조(曾慥)가 소흥(紹興: 남송 고종의 연호, 1131〜1162) 연간에 역대 도교 수련방법을 모아 편찬한 [도추(道樞)]라는 책에 [금액환단내편]이 수록되는 등 그의 저서는 도교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글;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https://cafe.daum.net/alhc/N2bq/170q=%EA%B8%88%EC%95%A1%ED%99%98%EB%8B%A8%EB%B0%B1%EB%AC%B8%EA%B2%B0%28%E9%87%91%E6%B6%B2%E9%82%84%E4%B8%B9%E7%99%BE%E5%95%8F%E8%A8%A3%29&re=1
............................................
<덧글>
발해의 선도는 당시의 단편적 기록들만 보아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발해에서 독자적으로 발간한 선도 책자들도 꽤 많아서 심지어 도교 매니아였던 당의 무종에게 선물로 보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구체적인 자료는 전해지지 않아서 발해 선도의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던 차에, 1990년대 이후 중국 학계에서 도교 경전을 조사하면서 발해도인 이광현 선생의 실체가 알려지게 됩니다. 한국에선 발해사 연구자인 임상선 박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광현 선생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소개할까 합니다.